[북]조국반도 전쟁, <남침설>의 기만성 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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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07-07-17 22:28 조회2,19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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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7월 18일발 조선중앙통신)
18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개인필명의 론설《전쟁도발자들의 고백에 의하여 드
러난 <남침>설의 기만성》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39(1950)년 7월 8일 전체 조선인민에게 하신
방송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미제국주의자들의 허위선전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를 무력으로 침범하고있는
그들의 정체는 세계의 모든 선량한 사람들의 눈앞에 낱낱이 드러나고있습니다.》
남조선을 강점한 첫날부터 침략전쟁준비에 미쳐날뛰던 미제는 1950년에 들어
서면서 갑자기 《평화》에 대하여 요란스럽게 떠들기 시작하였다.한편 미제는 조선전
쟁도발의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전쟁도화선에 불을 달기에 앞서 온갖 허위기만선
전과 모략책동을 일삼고 유엔의 간판까지 도용하여 권모술수를 꾸미였다.
그러나 조선전쟁의 전행정은 미제의 허위기만으로 가득찬 그 어떤 선전도 세상사
람들을 속여넘길수 없었으며 날강도 미제야말로 조선전쟁의 도발자,침략자이라는것을
여지없이 확증하여주고있다.그들의 《남침》설은 모략이고 날조였다.
지난 조선전쟁과 관련한 미제침략자들의 고백과 실토,증언자료들을 보자.
지난 조선전쟁시기 미제침략군 극동군사령관이며 《유엔군》사령관이였던 맥아더
는 1951년 5월 미국회 상원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조선전쟁발발에 대하여 증언하
면서 《요컨대 북조선군은 38°선으로부터 훨씬 먼곳에 배치되여있었다.그것은 방어
를 위한 배치였지 공격을 위한 배치는 아니였다.》라고 실토하였다.
미국출판물 《미국과 조선전쟁》에 의하면 남조선주둔 미군사고문단 단장이였던
로버트는 1950년 5월말 기자들에게 《현재 38°선에서 북조선군의 증강은 보이
지 않는다.》고 말하였다.남조선의 한 출판물은 《로버트는 6월 상순 군사고문단 단
장의 직위에서 해임되여 본국으로 소환되여가면서 쌘프랜씨스코에서 기자들에게 〈북
조선의 전쟁준비설은 전혀 근거가 없는 랑설이다〉라고 말하였다.》고 썼다.
1950년 5월초 남조선주재 미국대사 무쵸도 《가까운 앞날에 북조선이 남침할
가능성은 거의나 없다.》고 본국에 보고하였다.
전쟁상인 덜레스역시 북조선의 《남침》가능성을 찾아보지 못하였다고 실토하였다
.미국의 도서 《맥아더의 수수께끼》에 의하면 미국대통령 트루맨의 특사로 남조선의
전쟁준비상태를 현지에서 최종확인하고 전쟁개시명령을 하달하기 위하여 남조선에 날
아든 덜레스는 6월 18일 38°선을 시찰하고 20일 도꾜로 가서 맥아더에게 《별
로 북으로부터의 아무런 위험도 느끼지 않는다.》라고 하였다.남조선도서 《주한미군
30년》은 《6월 17일 덜레스가 남조선방문,38°선을 시찰했으나 아무런 이상도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하였다.
미국의 첩보우두머리들까지도 《남침》을 확정할 단서를 쥐지 못하였다고 증언하
였다.미중앙정보국 우두머리는 조선에서 전면전쟁을 도발하기 일주일전에 《북조선의
공격을 예측할 어떤 근거도 없다.》고 하였으며 미극동군사령부 정보국장 월로우비도
《6.25개전당시 북조선이 그에 대처할 준비를 하지 못》한데 대하여 증언하였다.
《유엔조선위원단》의 군사감시반도 북조선의 《침략기도》를 입수하지 못하였다
고 하였다.남조선에 상주하고있던 이 군사감시반은 1950년 6월 9일부터 23일
까지 38°선일대에서의 정황을 확정하기 위하여 옹진으로부터 강릉까지 시찰하면서
공화국북반부의 무력배치에 대하여 확인하였다.이에 기초하여 24일 서울에 돌아와
그 결과에 대하여 유엔사무총장에게 《어떠한 첩보정보에 의하더라도 북조선으로부터
의 침략기도는 입수되지 않았다.》고 보고하였다.
일본출판물 《조선전쟁》은 《1950년 6월 24일 밤 비가 오기 시작하였다.
날이 밝기 전에 언제나와 같이 닭이 울기 시작하였으나 38°선의 북측에서는 어떤
이상도 없었다.》는것을 확증하였다고 서술하였다.
전쟁도발자들이 실토한바와 같이 북조선으로부터의 《남침》이란 허황한 거짓선전
에 지나지 않는다.
그와 반면에 당시 남조선에서 미제와 남조선호전광들은 북침을 위한 만단의 공격
준비를 갖추고있었다.
1951년 5월 미국회 상원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맥아더는 《남조선군은 그 보
급품이나 장비를 38°선에서 멀지 않은 곳에 놓아두고있었다.그들은 종심진지를 만
들고있지 않았다.38°선과 서울사이의 이르는 곳마다가 모두 병참지역이였다.》라고
증언하였다.
미국출판물 《조선전쟁은 누가 일으켰는가》에서는 《종심진지를 구축하지 않았다
는것은 부대들이 전선에 전개되여 공격태세에 있었다는것을 의미한다.》고 하면서 남
조선군의 공격준비에 대하여 썼다.
미극동군사령부 정보국장 월로우비는 전쟁발발이 긴박해지고있는 때에 《리승만군
대의 많은 부분은 이미 실질적으로 38°선연선에 배치되여있었다.》고 고백하였다.
인디아신문 《크로스 로드》 1950년 12월 22일부가 폭로한데 의하면 미극
동군사령부에서 참모로 근무하던 에이다대좌는 이란주재 미군사고문단 성원으로 있을
때 이란군 참모들과의 담화석상에서 《조선전쟁은 일본에 있는 미군총사령부의 직접적
명령에 의하여 남조선군이 개시하였다.》고 말하였다.
력사적사실과 자료들은 지난 조선전쟁이 우리 공화국의 《남침》에 의해 일어난것
처럼 주장하는 미제의 떠벌임이 얼마나 황당무계하고 모략적인 날조선전인가 하는것을
똑똑히 보여준다.미제는 그 어떤 궤변으로써도 조선전쟁도발자로서의 정체를 가리울
수 없으며 그 범죄적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다.(끝)
18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개인필명의 론설《전쟁도발자들의 고백에 의하여 드
러난 <남침>설의 기만성》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39(1950)년 7월 8일 전체 조선인민에게 하신
방송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미제국주의자들의 허위선전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를 무력으로 침범하고있는
그들의 정체는 세계의 모든 선량한 사람들의 눈앞에 낱낱이 드러나고있습니다.》
남조선을 강점한 첫날부터 침략전쟁준비에 미쳐날뛰던 미제는 1950년에 들어
서면서 갑자기 《평화》에 대하여 요란스럽게 떠들기 시작하였다.한편 미제는 조선전
쟁도발의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전쟁도화선에 불을 달기에 앞서 온갖 허위기만선
전과 모략책동을 일삼고 유엔의 간판까지 도용하여 권모술수를 꾸미였다.
그러나 조선전쟁의 전행정은 미제의 허위기만으로 가득찬 그 어떤 선전도 세상사
람들을 속여넘길수 없었으며 날강도 미제야말로 조선전쟁의 도발자,침략자이라는것을
여지없이 확증하여주고있다.그들의 《남침》설은 모략이고 날조였다.
지난 조선전쟁과 관련한 미제침략자들의 고백과 실토,증언자료들을 보자.
지난 조선전쟁시기 미제침략군 극동군사령관이며 《유엔군》사령관이였던 맥아더
는 1951년 5월 미국회 상원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조선전쟁발발에 대하여 증언하
면서 《요컨대 북조선군은 38°선으로부터 훨씬 먼곳에 배치되여있었다.그것은 방어
를 위한 배치였지 공격을 위한 배치는 아니였다.》라고 실토하였다.
미국출판물 《미국과 조선전쟁》에 의하면 남조선주둔 미군사고문단 단장이였던
로버트는 1950년 5월말 기자들에게 《현재 38°선에서 북조선군의 증강은 보이
지 않는다.》고 말하였다.남조선의 한 출판물은 《로버트는 6월 상순 군사고문단 단
장의 직위에서 해임되여 본국으로 소환되여가면서 쌘프랜씨스코에서 기자들에게 〈북
조선의 전쟁준비설은 전혀 근거가 없는 랑설이다〉라고 말하였다.》고 썼다.
1950년 5월초 남조선주재 미국대사 무쵸도 《가까운 앞날에 북조선이 남침할
가능성은 거의나 없다.》고 본국에 보고하였다.
전쟁상인 덜레스역시 북조선의 《남침》가능성을 찾아보지 못하였다고 실토하였다
.미국의 도서 《맥아더의 수수께끼》에 의하면 미국대통령 트루맨의 특사로 남조선의
전쟁준비상태를 현지에서 최종확인하고 전쟁개시명령을 하달하기 위하여 남조선에 날
아든 덜레스는 6월 18일 38°선을 시찰하고 20일 도꾜로 가서 맥아더에게 《별
로 북으로부터의 아무런 위험도 느끼지 않는다.》라고 하였다.남조선도서 《주한미군
30년》은 《6월 17일 덜레스가 남조선방문,38°선을 시찰했으나 아무런 이상도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하였다.
미국의 첩보우두머리들까지도 《남침》을 확정할 단서를 쥐지 못하였다고 증언하
였다.미중앙정보국 우두머리는 조선에서 전면전쟁을 도발하기 일주일전에 《북조선의
공격을 예측할 어떤 근거도 없다.》고 하였으며 미극동군사령부 정보국장 월로우비도
《6.25개전당시 북조선이 그에 대처할 준비를 하지 못》한데 대하여 증언하였다.
《유엔조선위원단》의 군사감시반도 북조선의 《침략기도》를 입수하지 못하였다
고 하였다.남조선에 상주하고있던 이 군사감시반은 1950년 6월 9일부터 23일
까지 38°선일대에서의 정황을 확정하기 위하여 옹진으로부터 강릉까지 시찰하면서
공화국북반부의 무력배치에 대하여 확인하였다.이에 기초하여 24일 서울에 돌아와
그 결과에 대하여 유엔사무총장에게 《어떠한 첩보정보에 의하더라도 북조선으로부터
의 침략기도는 입수되지 않았다.》고 보고하였다.
일본출판물 《조선전쟁》은 《1950년 6월 24일 밤 비가 오기 시작하였다.
날이 밝기 전에 언제나와 같이 닭이 울기 시작하였으나 38°선의 북측에서는 어떤
이상도 없었다.》는것을 확증하였다고 서술하였다.
전쟁도발자들이 실토한바와 같이 북조선으로부터의 《남침》이란 허황한 거짓선전
에 지나지 않는다.
그와 반면에 당시 남조선에서 미제와 남조선호전광들은 북침을 위한 만단의 공격
준비를 갖추고있었다.
1951년 5월 미국회 상원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맥아더는 《남조선군은 그 보
급품이나 장비를 38°선에서 멀지 않은 곳에 놓아두고있었다.그들은 종심진지를 만
들고있지 않았다.38°선과 서울사이의 이르는 곳마다가 모두 병참지역이였다.》라고
증언하였다.
미국출판물 《조선전쟁은 누가 일으켰는가》에서는 《종심진지를 구축하지 않았다
는것은 부대들이 전선에 전개되여 공격태세에 있었다는것을 의미한다.》고 하면서 남
조선군의 공격준비에 대하여 썼다.
미극동군사령부 정보국장 월로우비는 전쟁발발이 긴박해지고있는 때에 《리승만군
대의 많은 부분은 이미 실질적으로 38°선연선에 배치되여있었다.》고 고백하였다.
인디아신문 《크로스 로드》 1950년 12월 22일부가 폭로한데 의하면 미극
동군사령부에서 참모로 근무하던 에이다대좌는 이란주재 미군사고문단 성원으로 있을
때 이란군 참모들과의 담화석상에서 《조선전쟁은 일본에 있는 미군총사령부의 직접적
명령에 의하여 남조선군이 개시하였다.》고 말하였다.
력사적사실과 자료들은 지난 조선전쟁이 우리 공화국의 《남침》에 의해 일어난것
처럼 주장하는 미제의 떠벌임이 얼마나 황당무계하고 모략적인 날조선전인가 하는것을
똑똑히 보여준다.미제는 그 어떤 궤변으로써도 조선전쟁도발자로서의 정체를 가리울
수 없으며 그 범죄적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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