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조미 두 나라 교향악의 상봉과 교감 > 기타

본문 바로가기
영문뉴스 보기
2025년 10월 7일
남북공동선언 관철하여 조국통일 이룩하자!
사이트 내 전체검색
뉴스  
기타

[북]조미 두 나라 교향악의 상봉과 교감

페이지 정보

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08-03-07 23:33 조회3,559회 댓글0건

본문

조선신보는 지난 2월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뉴욕교향악단의 평양공연이 두 나라 음악가들사이의 뜻깊은 교류의
기회였다고 보도하면서 모란봉극장에서 있었던 조선 국립교향악단과 뉴욕교향악단 성원의 협연에서 보여준
조선교향악단의 높은 수준을 소개하는 보도를 하였다
조선신보의 전문을 소개한다.[민족통신 편집실]



《조미 두 나라 교향악의 상봉과 교감>

〈인터뷰〉 뉴욕교향악단의 평양방문을 돌이켜보며, 국립교향악단 김병화수석지휘자


<##IMAGE##> 【평양발 김지영기자】 지난 2월,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평양에서 뉴욕교향악단의 공연이 진행되였다. 뉴욕교향악단의 평양방문은 조미 두 나라 음악가들사이의 뜻깊은 교류의 기회이기도 하였다. 몇해전 개건된 모란봉극장에서는 조선의 국립교향악단과 뉴욕교향악단 성원들에 의한 협연도 있었다.

조미 두 나라 교향악의 상봉과 교감. 국립교향악단 김병화수석지휘자(71살)의 이야기를 들었다.

주체교향악의 력사

《뉴욕교향악단은 력사가 오래고 세계적으로도 이름난 악단입니다. 그들이 우리 나라를 방문하게 된것은 의의가 있고 조선인민과 미국인민사이의 호상리해와 신뢰를 도모하는데 이바지하였다고 봅니다.》

김병화지휘자는 미국유수의 교향악단의 연주를 들으며 오늘날 전성기를 자랑하는 주체교향악의 력사를 되새기게 되였다고 한다.

조선에서 해방후 제일먼저 조직(1946.8.8)된 전문예술단체인 국립교향악단이 새로운 발전의 궤도에 들어선것은 1970년대의 일이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벌써 60년대에 우리 교향악의 로선적인 문제들을 해명하시여 주체적인 배합관현악에 대한 사상을 내놓으시였고 70년에는 2관편성이였던 우리 악단을 3관편성관현악단으로 발전시키시였습니다. 그때 장군님께서는 전국의 우수한 연주가를 다 모으시고 악단 성원들의 명단을 직접 발표하시였습니다…》

그때 제시된 주체교향악의 기본사상을 두가지로 요악할수 있다. ◇교향악을 인민이 즐겨부르는 민요와 인민들에게 널리 보급된 명곡들을 편곡하는 원칙에서 발전시키며 ◇민족악기와 양악기를 배합하며 특히 민족악기에 양악기를 복종시키는 《우리 식 관현악편성》을 실현한다는것이다. 조선에서 1970년대에 창작된 관현악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아리랑》, 교향곡 《피바다》 등은 이러한 사상과 원칙의 구현이였다.

《우리 교향악단의 얼굴의 하나라고 할수 있는 〈청산벌〉은 원래 1960년대에 창작된 합창곡인데 장군님께서는 이 곡을 우리 식의 관현악으로 만들것을 발기하시고 끝내 완성하도록 이끄시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믿어지지 않을수 있는데 그때 곡형상이 어려워 포기하려했던 우리 전문가들에게 힘을 주시고 음악적착상과 기술적인 방조를 주신분이 장군님이십니다. 〈청산벌〉의 창작은 조선의 교향악단만이 형상할수 있는 독특한 경지를 개척하는 과정이였습니다.》

미국적 색채의 형상

국립교향악단에는 단소, 접대, 새납 등의 민족목관악기가 편성되여있다. 《청산벌》, 《아리랑》과 같은 곡목연주에서는 그 악기의 울림이 민족적색채를 낸다.

《순수 양악기로는 흉낼수 없습니다. 뉴욕교향악단도 그 조화로운 울림을 형상하기 어려울것입니다.》

김병화지휘자는 조선의 주체교향악과의 대비속에 뉴욕교향악단의 연주에 대하여 말한다. 레컨대 악단이 평양에서 연주한 조지 거쉬인의 《빠리의 미국인》. 이 나라 흑인들의 대중음악형식인 《블루스》의 연주부분이 인상적인 곡은 유럽의 일반적인 《클락식》음악과 차이나는 점이 있다.

《어느 나라 교향악단이나 똑 같지 않습니다. 나라별, 민족별로 독특한 색채들이 있습니다. 거쉬인 자체가 자즈작곡가인데 그가 미국적인 색채 다시말하여 블루스요 자르스톤이요 하는 색채를 창조하여 관현악에 효과적으로 도입하였습니다. 이번 뉴욕교향악단의 공연에서는 〈빠리의 미국인〉이 가장 성공한 연주가 아니였나고 생각합니다. 거쉬인의 같은 곡을 연주해도 역시 미국의 악단은 다른 나라 악단보다 개성이 뚜렷한것 같습니다.》

조선의 인민들은 2000년대 들어 국립교향악단의 활동에 최고령도자의 더 큰 관심이 돌려지고있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악단이 한달에 수차례나 공연을 지도받은적도 있고 그들의 활동무대인 모란봉극장은 국가예산에 의하여 훌륭한 음악당으로 개건되였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 우리 악단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한명의 락오자도 없이 모두가 자기 자리를 끝까지 지켜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것을 기특하게 생각하신것입니다. 우리 악단은 단원들의 개별적인 연주기량에 비해서 확실히 안삼불의 수준은 높은데 그 요인은 장군님의 기대에 보답해야 한다는 자각, 일심단결의 감정, 이건 다른 나라 악단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우리 악단의 강점입니다.》

최근년간 조선에서는 전문가, 애호가가 아닌 일반사람들도 관현악, 교향악에 접하는 기회가 늘어났다. 령도자의 관심을 인민이 따라가는것은 조선의 독특한 사회적기풍의 하나다. 교양악단의 공연이 정기적으로 열리고 그 연주장면이 TV에서 방영되고있다. 이러한 《사회적관심의 고조》속에 뉴욕교향악단의 공연이 이루어졌다.

《미국의 교향악단공연은 처음이지만 우리 인민들은 흥미있게 보고 들은것 같습니다.》

모란봉극장에서의 협연

<##IMAGE##>
이번 공연에 대하여 외신들은 주로 《미국문화를 만난 북조선》이라는 관점에서 일방적인 보도를 하였지만 교류의 현장에서는 다른 장면들이 벌어지고있었다. 례컨대 미국의 어느 방송사 기자는 김병화지휘자의 자택을 방문취재하였는데 《조선에 와보니 자기가 미국에서 듣고 온것과 판이하게 다른 현실을 목격하게 되였다.》고 자기 심정을 토로하였다고 한다.

《그는 조선사람들이 다 례절이 있고 친절하다고 말했습니다. 짧은 체류기간이였지만 이번 방문이 미국사람들로 하여금 조선에 대하여 다소나마 알고 가는 기회로 되지 않았을가 생각됩니다. 특히 악단의 공연이 조미 두 나라 정부의 관심속에 실현된 사실에 주목해야 할것입니다.》

조미 교향악의 만남, 그 절정이라고 할수 있는 모란봉극장에서의 협연은 참으로 볼만한 장면들을 펼쳐놓았다.

조미 두 악단에서 각기 4명이 나서서 멘델스죤 작곡 현악8중주를 함께 연주하였다. 8명은 이날 아침 처음으로 만났다. 악기의 소리를 한번도 맞추지 못한채 사람들앞에서 협연을 하게 되였다.

《멘델스죤의 8중주가 원래 30분을 넘는 작품인데 우리가 보건대는 미국사람들이 처음 만난 사람끼리 하는것이니 아마도 소리가 맞지 않을뿐더러 자꾸만 멈추고 연주를 되풀이하게 될것이다, 그러니 자기들에게 주어진 시간내에 한개 악장이라도 다 하면 잘 된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나선것 같습니다.》

미국사람들의 선입견이 변칙적인 악장구성을 낳았다. 먼저 1악장을 연주해보더니 중단없이 나갔는데 연주가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제한되여있었다. 8중주 다음에는 뉴욕교향악단의 로린 마젤 지휘자가 국립교향악단을 지휘하기로 되여있었다. 그래서 미국측 연주가들의 제안으로 2악장을 빼고 3악장이 연주되였다.

멘델스죤 8중주의 3악장은 다른 나라에서도 가끔 단독으로 연주되는 《유명곡》인데 3악장도 완벽한 연주가 이루어지니 미국측 연주가들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였다. 빼놓았던 2악장을 연주하고 가장 어려운 4악장에 림했다. 8명의 현악기소리가 멋진 화음을 울렸다. 1-3-2-4로 흘러간 비정상적인 악장구성과 연주가 끝난후 모란봉극장 관람석에서 터져오른 기립박수는 시행착오를 통해 이루어질 조선과 미국의 호상리해를 그대로 상징하는것만 같았다.

《연주가 끝난후 무대뒤에서 요란했습니다. 흥분한 미국의 연주가들이 우리 연주가들을 부둥켜안고 처음 만난 사람끼리 이렇게 연주하는것이 기적이라고 감탄을 터뜨렸습니다. 일반적으로 클락식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아시아를 깔보는 경향이 있는데 특히 북조선이라고 하면 전문교향악단이 있는줄도 몰랐던것 같습니다.》

《세계속의 조선》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로린 마젤씨가 지휘한 곡목은 바그너의 《마이스터진거》와 차이코프스키의 《로미오와 쥴리에트》, 악보는 얼마전에 미국측에서 보내온것들이였다. 마젤씨는 연주가들에게 요구와 지시를 제때에 주면서 음악을 다듬어나갔다. 연주를 지켜보던 김병화지휘자에 의하면 마젤씨는 처음 악보에 있는것과 다른 박자로 지휘봉을 흔들었다고 한다. 첫 대면한 조선의 연주가들이 얼마나 반응력이 있는지 시험한것이다.

《마지막에는 완전한 지휘와 연주가 있었는데 로린 마젤씨가 상당히 기분이 좋았던것 같습니다. 그는 나를 보고 조선의 교향악단이 세계적인 수준에 있다, 자기가 여러 나라를 돌아보았는데 조선에 와서 세계음악계의 재보를 하나 더 발견한 심정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미국정부가 승인을 하게 되면 조선의 국립교향악단을 미국에 초청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세계속에 조선이 있다. 그것은 교향악의 분야도 례외가 아니다. 김병화지휘자도 자기들의 목표가 《세계를 향해 나가는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국립교향악단이 국제적판도에서 활약을 하여도 《우리의 교향악은 바뀌지 않을것》이라고 확언한다.

《장군님의 령도하에서 이루어진 주체적인 교향악, 조선의 독특한 배합관현악을 들고나가도 충분히 자랑을 떨칠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 음악가들은 조선의 민족악기와 양악기의 배합으로 이루어지는 음색을 상당히 신비스럽게 생각하는것 같습니다.》

그는 평양에서 진행되는 국제음악제인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의 실례를 들면서 조선의 정부가 다른 나라들과의 문화교류를 장려하고 적극 추진하고있다고 강조한다.

《조선이 문을 닫아건다고 말하는것은 악의에 찬 선전입니다. 우리에게는 자기의것에 대한 긍지와 자부가 있지만 주체를 세운다고 하여 다른 나라의것을 거부하지는 않습니다. 이번에 미국의 교향악단과 좋은 만남을 하였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지휘자, 연주가들과 협연을 해나가는것이 필요하고 또 그렇게 되여나가리라고 생각합니다.》

(김지영기자 j-kim@korea-np.co.jp)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부고]노길남 박사
노길남 박사 추모관
조선문학예술
조선중앙TV
추천홈페이지
우리민족끼리
자주시보
사람일보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한겨레
경향신문
재도이췰란드동포협력회
재카나다동포연합
오마이뉴스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재오스트랄리아동포전국연합회
통일부


Copyright (c)1999-2025 MinJok-TongShin / E-mail : minjoktongshin@outl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