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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조선은 구름, <<구름은 비에 젖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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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12-05-02 21:37 조회2,1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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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일 박사(전한신대학교 교수)는 "구름이 비를 만들지 비가 구름을 만들지 않기 때문에 구름은
비에 젖지 않는다. 미국은 제국주의란 우산을 만들어 그 밑에 기어드는 자들에겐 우산雨傘을 받혀 비를
안 맞게 해 주는 척한다. 그래서 ‘미국의 우산 산하에 under the umbrella of USA"란 말이 생긴 것이다.
미국의 우산 밑, 즉 산하傘下에 있는 대표적인 것이 대한민국이란 나라이고, 국제연합UN이란 국제기구다.
제 번지수도 못 찾는 주제에 ‘국제연합’ 이라 그럴 사 한 간판을 달고 있지만 이것이야 말로 미국의 산하에
있다". 그 전문을 소개한다.[민족통신 편집실]



[논단] 조선은 구름, <<구름은 비에 젖지 않는다>>




*글:김상일 박사(전한신대학교 교수)


<##IMAGE##>20세기 들어 미국이란 비, 미제국주의자란 산성비 맞지 않은 나라 손들어 봐라. 20세기 그리고 21세기 까지 지구촌에 미국의 독성비를 맞지 않는 나라는 거의 없다. 그러나 그 비를 맞지 유일한 한 나라, <<조선>>에 대해 오늘 말해보자.

그러면 어째서 어떻게 조선은 미국의 비를 맞지 않았는가? 그 이유는 구름은 비에 젖지 않기 때문이다. “비는 구름에서 생겨 구름 속을 흐는다. 그래서 구름은 비에 젖지 않는다.”
구름이 비를 만들지 비가 구름을 만들지 않기 때문에 구름은 비에 젖지 않는다. 미국은 제국주의란 우산을 만들어 그 밑에 기어드는 자들에겐 우산雨傘을 받혀 비를 안 맞게 해 주는 척한다.

그래서 ‘미국의 우산 산하에 under the umbrella of USA"란 말이 생긴 것이다. 미국의 우산 밑, 즉 산하傘下에 있는 대표적인 것이 대한민국이란 나라이고, 국제연합UN이란 국제기구다. 제 번지수도 못 찾는 주제에 ‘국제연합’ 이라 그럴 사 한 간판을 달고 있지만 이것이야 말로 미국의 산하에 있다.

다음으로 세계은행 World Bank 라는 것이 있다. 이것 역시 세계은행이 아니고 ‘미국 은행’이다. 미국의 산하에 있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구 IMF라는 것도 ‘AMF’ 이다. 구라파 EU라는 것도 제법 제 소리를 내는 것 같지만 미국의 삽살개 수준이다. 유엔사무총장과 세계은행장이 모두 남한사람들이다. 이것을 자랑이라고 한다. 미국은 자기들에게 돌아 올 화살을 모두 앞잡이한테 쏠려 총알받이 하려고 내세운 줄도 모르고 겁치고 설치고 있으니 얼간이 가운데 얼간이가 아니겠는가.

중국이다 일본이다 하면서 4대 강국 운운하지만 이것 들은 강대국이 아닌 결국은 미국 산하에 있다.

미국의 우산 밑에 들어가지 않는 나라, 순수한 의미에서 그러한 나라는 조선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조선만이 비를 만드는 구름이기 때문이다. 판문점 미류나무 사건, 푸에블로 호 사건, EC 정찰기 사건 등 만약에 조선이 미국의 산하에 있었다면 거들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조선만은 건들지 못한다. 이라크도 건들고 아프가니스탄도 건들었지만 조선은 못 건든다.
조선이 비에 젖지 않는 이유는 비는 구름에서 생겨 구름 속을 흐르기 때문에, 그래서 구름은 비에 젖지 않는다. 구름이 비에 젖는다고 해 보자. 이 말은 비가 구름위에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하늘과 땅이 뒤집혀 져야 한다. 이를 두고 천지개벽이라 한다.

그래서 하늘과 땅이 뒤집혀 천지개벽하기 전에는 조선은 미국의 비를 맞지 않는다. 그러면 어째서 조선만이 구름이란 말인가?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그 비결은 김일성주석이 백두산 북덕령 산언덕에서 상철이와 인섭 등 어린 꼬마 유격대원들한테 일러두었기 때문이다. 어떤 거창한 강의실을 만들어 인민들을 모아 놓고 강연과 연설을 통해 명연설로 일러 둔 것도 아니다.

고난의 행군 기간, 백두산 산자락, 사방은 흰눈으로 덮여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도 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에서 적들은 산 정상을 향해 개미떼 같이 밀고 올라오는 순간 오중흠, 박덕산, 오백룡 지휘관들과 꼬마 어린 대원들 앞에서 이 어려운 역경을 극복하고 이기는 방법을 일러 주었다.

그 말 한마디는 이것이었다. “적들의 피동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하는 이 말 한마디가 오늘의 조선이 구름이 되게 한 비결이다.
피동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피동은 능동의 반대 말이다. 수동과 동의어이다. 전투에서 피동에 빠지면 백전백패한다는 것이 김일성 장군의 전법 1호이다.
북덕령 산자락에 가면 80 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산바람 소리와 함께 그이가 한 말이 남아 있다. 거짓말인가 가 들어 보아라. 고난의 행군 100여 일 동안 그들이 지나간 자리를 지나가면 피동이 무엇이고 능동이 무엇인지 산 공부를 한다.

“내 오늘 보니 적의 지휘관이란 놈이 여간 교활하지 않소. 화력 구성도 괜챦습니다. 아마 우리와 결판을 내자고 꽤 많이 긁어모은 모양이요. 1년 동안 이나 내한 훈련을 했다고 떠벌이지만 그것은 별것 아닙니다.”
“그놈들 집적거리는 데 걸려들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다가는 <<피동>>에 빠집니다. 그놈들은 우리를 기껏 지치게 하자는 것이 기본전력이니깐 거기에 대처해서 우리가 하고 싶을 때에 전투를 하고 우리가 하기 싫을 때에는 그 놈들을 질질 눈 속으로 끌고 다니면서 오히려 그놈들의 맥을 기껏 빼놓아야 합니다”(<<고난의 행군>>, 370쪽)

이 말은 고난의 행군 기간 중 북덕령에 포위된 유격대원들이 포위망을 빠져 나가는 방법으로 부대를 셋으로 분산 할 것이란 사령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오중흡, 오백룡, 박덕산 지휘관들과 대원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한 말이다.

이는 손자병법의 허실편에 나오는 말과 같아 보인다. “전투에서 승리의 비결이란 아군의 실로서 적의 허를 찌르는 것이며, 그 전술은 적에게 조종당하지 않고, 오직 적을 조종하는 데 것이다.” 적의 실을 피하고 허를 치는 것이 허실편의 요지이다.
허실편 첫 구절, “싸움을 잘 하는 자는 사람을 조종하고, 사람에게 조종당하지 않는다”(善戰者 致人而不致於人)
오대시대의 일이다. 후주가 돌궐을 사주하여 후제를 공격하니 후제의 장군 단소가 이를 맞받아 공격하려는 진을 쳤다. 마침 큰 눈이 내린 뒤였는데 주나라 병졸들은 몰려와 성벽 2리 까지 육박하였다. 후제의 여러 장수들은 역진공을 주장하였으나 단소는 반대였다. “지금은 눈이 많이 내려 공격을 하게 되면 병졸들이 기력을 잃게 된다. 진중에 머물러 가다리게 하라. 적이 피로에 빠질 때 까지 가만히 있기만 하라”고 한다. 적들은 오랜 행군 끝에 쉬지도 않고 성벽을 기어오르다가 전멸 하고 만다. 이 전쟁 일화를 손자는 허실편의 예로 든다.

알렉산더 대왕은 기원전 331년 10월 1일 페르시아 다리우스 왕과 가우가멜라에서 벌린 전투에서도 같은 전법을 구사했다. 적이 지쳐버려 전의를 상실케 하는 전법을 구사해 페르시아를 멸망시킨다. 326년에 있었던 인도와의 히다스페스 전투에서도 동일한 전법을 사용하였다.

이를 두고 손자병법은 “승리는 만들 수 있다”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전쟁에서 승리는 능동적으로 만드는 것임을 의미한다. 피동에 빠지면 백전백패이다. 피동이다 싶으면 아예 전쟁을 하지 않고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김일성장군은 이런 전법의 예를 이순신 장군의 해전에서 찾고 있다. 원균은 쓸데없는 싸움을 벌이다가 칠천량 전투에서 자기도 죽고 몰살당하고 말았다. 적이 파 놓은 피동에 걸리고 만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적을 끌고 다니면서 필요한 경우에만 싸움을 하였다. 그래서 부하들의 희생을 줄이고 백전백승, 싸우는 전투 마다 승리할 수 있었다. 조정에서는 왜 싸울 전쟁에서 싸우지 않느냐고 성화였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끌려가 옥살이 까지 했고 백의종군하였다.

김일성장군은 명량 대첩의 예를 들어 설명하면서 동지들을 격려하고 내키지 않는 마음들을 돌려 고난의 행군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적의 진영 앞에서 밤새도록 북을 치고 횃불을 울려 적들이 잠을 자지 못하게 해 기진맥진토록 했다. 그러나 김일성 부대는 그럴 수 없었다. 작은 유격부대로서 대부대에게 종적을 알린다는 것은 자살 행위이다. 김일성부대는 적을 달고 눈구덩이 속 사방을 휘젓고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고생이 따르겠는가?

김일성 사령관의 말을 다 들은 오중흡과 삼인의 지휘관들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헤어지자 서로 딴 방향으로 분산돼 헤어지지만 이것이 적을 피동에 빠뜨리는 작전이다. 다시 말해서 적에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니고 적을 끌고 여기 저기 다니면서 기진맥진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이미 총선에서 야당이 진 이유는 조중동과 박근혜의 피동에 빠졌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말 한 마디가 떨어질 때 마다 한명숙은 사시나무 떨 듯이 떨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김용민 사건이다. 김용민 ‘막말’이란 것이 조중동에서 보도 되는 순간, 한명숙은 “큰일 났다. 잘 못 됐다”고 했다.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피동에 빠진다고 한다. 다음 대선에서도 만약에 이렇게 야당이 끌려 다니면 지는 것은 불을 보듯 하다.

고난의 행군 행로를 보면 일직선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고 마치 달팽이 집 모양으로 돌고 돌아가면서 행군한다. 보통 5-6일이면 끝낼 수 있는 행군 길을 무려 100 여일이나 넘게 이어지는 행군을 한다. 이것은 적을 끌고 다니면서 피동에 빠지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적을 피동에 빠뜨리고 아군이 능동적으로 되자면 그 대가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 대가가 바로 ‘고난의 행군’이었다. 김일성 사령은 왜 하필이면 그 칼날 같이 추운 동지섣달 그 한 복판에서 그것도 북위 45도의 험산 준령을 택해 행군 행로를 정했단 말인가. 양말도 속옷도 없이 홑바지 맨발로 눈 구등이 속을 그것도 나이 어린 소년들, 그리고 심지어는 강철구와 채옥이 같은 여성 대원들을 당가에 메고는 갈지자 행로를 따라 행군을 했다.

적을 피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적이 따라오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적들은 피동에 빠지고 말았다. 그렇게 하기에는 강인하고 간고한 정신력이 일본 토벌대를 능가하고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 없이는 불가능 하다.

김일성 주석이 1990년대 제 2 고난의 행군을 택한 이유도 그 날 그 때 불굴의 정신력이 인민들 속에 살아 있다는 확신감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열 백번 바뀌어도 변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수령님과 장군님을 그대로 닮은 우리 인민군대의 혁명적 본태이며, 노동당의 붉은 깃발을 제일군기로 높이 들고 나가는 백두산 혁명 강군의 투쟁방식입니다”(2012년 김정은 최고사령관 열병식 연설문 중에서)

답이 나왔다. 조선이 미국의 비를 맞지 않는 답이 나왔다. 미국이 집적거릴 때에 피동에 빠지지 말아야 하고, 질질 끌고 다니면서 맥이 빠지도록 해야 한다는 적을 피동에 빠지게 하는 허실 전법이란 답이 나왔다.

조국을 건국한 이후에도 조선은 근 한 세기 동안 미일 제국주의를 피동에 빠뜨리고 말았다.
그야말로 1990년 이후 지난 20 여년은 조선이 미국의 진과 맥을 다 빼버리는 시기였다. 이제 미국은 탈진 상태이다. 다시 살아 날 기력이 남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구름이 능동적으로 비를 다 뿌렸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기들이 피동에 빠진 줄도 모르고 조선에 끌려 다녔다. 그 꽁무니에 졸개들을 달고는 말이다. 미국이 끌려가니 졸개들도 죽자 살자 끌려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졸개들은 미국의 산하에서 비를 안 맞고 있는 줄로 착각하고 있었다.

이제 구름이 비를 더 이상 만들어 내지 않기 때문에 미일 제국주의자들은 뿌릴 비도 없다. 그런데도 남한은 미국이 받히고 있는 우산 산하에 스스로 기어들고 있다. FTA다 한미 동맹이다 하면서 미국의 우산 산하에 때도 철도 모르고 기어들고 있지만 조선은 더 이상 비를 만들지 않는다.

이제 조선은 서운瑞雲을 만들어 단비를 뿌릴 준비를 하고 있다. 온 인류가 평등하게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사람중심’의 살 맛 나는 지구촌을 일구어 나갈 감우甘雨를 뿌릴 준비를 하고 있다. 우산이 필요 없다. 너도 나도 산에로 광야에로 나가 단비를 흠뻑 맞아 얼싸안고 춤이나 덩실 덩실 춤추리라. 드디어 감우 뿌린 구름 걷힌 하늘에 붉은 태양 붉게 떠올라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

조선은 구름, 구름은 비에 젖지 않는다. 구름이 비를 만들지 비가 구름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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