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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김상일 박사 ‘우리학교’ 우리가 도울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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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3-05-03 19:57 조회4,5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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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일 박사는 지난 4월 마지막 봄날 동경 북구에 있는 ‘동경조선중고급학교’ 를 방문하였다.  "생각보다 큰 규모의 건물과 파란 인조 잔디를 깐 운동장은 서울에서 보는 규모 크기의 중고등 학교였다. 과거 수 천 명에 이르던 학생 수가 지금 600 여명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더욱 걱정인 것은 앞으로의 학교의 운명이었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북조선에서는 있는 힘을 다해 우리학교를 돕고 있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일본 정부가 북으로부터 책하나 가져 올 수 없게 하는 상황에서 말이다".  "남북 모두가 함께 도와야 할 때가 왔다". 고 증언 한다. 그의글 전문을 소개한다. [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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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학교’ 우리가 도울 때이다!


*글:김상일 박사(전한신대학교 교수
)


4월 24일 첫 일본 동경 방문을 하였다. 여러 가지 방문 목적지 가운데 하나가 ‘우리학교’ 였다. 깜장 치마저고리 입고 하등교 하다 이젠 그것마저 못보게 된 ‘우리학교’ 학생들을 4월 마지막 봄날 동경 북구에 있는 ‘동경조선중고급학교’에서 직접 만나게 되었다.

시간은 11시 경 학생들이 마침 수업을 하고 있었다. 신길웅 교장 선생님의 안내로 거의 모든 교실 안을 들어 갈 수 있었다. 2층 첫 교실 방 문밖에서 선생님 한 분이 앉아 있고 여학생 하나가 시를 낭독하고 있었다. 국어 시간에 시낭송 시험을 치루고 있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시였다.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였다. 국어 교과서 첫 장에 나오는 시였다.

다음은 사회 시간에 해당하는 수업이었다. 박용호 교사가 ‘상월선생’이란 수업을 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토론 수업을 하고 있었다. 층을 달리해 밑으로 내려오니 소학교(초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온 중등학교 학생들 반이었다.
밖에서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학생들이 건강하고 표정이 밝아 보였다. 교장실에서 교원들과 대담 시간을 가졌다. 먼저 학생들 하나하나들의 표정이 명랑하고 밝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학생들의 성적은 점수로 매겨지나 그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한다. 집단 수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공부 잘 하는 학생은 못 하는 학생들에게 자기가 아는 것을 가르쳐 주고, 수학에서 점수가 낮은 학생이라도 다른 과목에서는 높을 수 있고, 그러면 학생들 각자의 재능에 따라서 그것을 개발해 주는 수업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서로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고 협동을 하여 ‘집단지성’을 함양해 나간다고 한다. 정치생명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남한에서 이런 수업을 두고 ‘열린 수업’이라고 하는 데 보수 언론은 이를 빨갱이 좌파식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이렇게 좋은 것은 북에서 다 가져가고 쓰레기 하치 장 같이 되어 버린 것이 오늘의 교육 현실이 아닌가 한다. 오늘도 한국에서는 성적을 비관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다는 소식을 들으며 이래도 한국 교육 그대로 둘 것인가 ? 종북 좌파가 하는 것이라도 좋은 것은 제발 받아 드려주기 바란다.

이러한 우리학교 안의 밝고 희망찬 보도와는 달리 밖에서는 큰 삼각파도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아베 정권이 무상 교육에서 우리학교를 제외한다는 보도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것 보다 황당한 것은 교장 선생님이 내 주는 한 장의 종이였다.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동포 가정에 보내는 문건이었다. 내용인 즉 우리학교를 경계하면서 북을 방문하게 되면 남북교류법 98조를 어기는 것이고 그 결과 자녀들이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서글픈 소식이었다. 아베 정권의 조치에 맞장구를 쳐 주는 행위였고, 궁극적으로는 한일 두 정부가 우리학교를 고사 시키겠다는 조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해방될 당시에는 우리학교가 남북 공동의 자산이었다. 1946년에 설립돼 1회 졸업을 할 때만 해도 좌우가 함께 졸업식을 치루었다고 한다. 그 이후 남쪽 정부가 외면하고 돌보지 않으니 자연히 우리학교는 김일성 주석의 배려로 지금까지 자라 올 수밖에 없었다. 금년에도 북은 200만불의 장학금을 보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와서 남한 정부는 그동안 해 준 것 하나 없으면서 98조를 내 세원 동포 사회를 분열 시키고 있다. 일본 우익들과 찰떡궁합 공조를 하면 우리 학교 파멸 작전을 함께 벌리고 있는 것이다.

생각보다 큰 규모의 건물과 파란 인조 잔디를 깐 운동장은 서울에서 보는 규모 크기의 중고등 학교였다. 과거 수 천 명에 이르던 학생 수가 지금 600 여명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더욱 걱정인 것은 앞으로의 학교의 운명이었다.

과연 아베 정권의 파고를 넘고 넓은 바다로 항해 해 나아 갈수 있을까?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북조선에서는 있는 힘을 다해 우리학교를 돕고 있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일본 정부가 북으로부터 책하나 가져 올 수 없게 하는 상황에서 말이다. 섬안의 섬 같은 말 그대로 낙낙고도와도 같은 우리학교을 남북 모두가 함께 도와야 할 때가 왔다.

치마저고리 입은 우리학교 학교 학생들이 동경 시내에서는 이제 찾아 볼 수 없다. 등학교 길에는 옷을 갈아입을 수밖에 없는 것이 상징적으로 오늘의 현실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학교에서 치마저고리 교복을 없애자고 하니 학생들이 모두 반대를 하여 교내에서 만 입고 등학교 길에서는 옷을 갈아입는다고 한다. 언제까지 갈지 모르지만 이 학생들이 나중에 커 어른 들이 되었을 때에 자기들의 이 사실을 무한한 긍지로 생각할 것이다.

그 무엇보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지금 학교 건물 부지는 학교가 동경시로부터 임대를 하고 있어서 매달 4500만엔을 지불해야 한다고 한다. 벌써 몇 개월 째 임대료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아마도 아베 정권은 이를 구실로 하여 학교를 폐교 조치할 순간이 경각에 달려 있다고 한다. 지난 지진 때 동북부 지역에 있는 우리 학교 가운데 하나가 지진으로 대파가 되어 지금 식당 안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언이 폐지하고 ‘우리학교’ 우리가 도울 때이다. 이념을 떠나서 우리학교는 일본 안에 있는 우리 민족의 공동의 자산이다. 이 자산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남북한 모두의 수치이다. 100년 후 우리 학교를 한 번 생각해 보자. 지금의 남북교류법 98조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인가. 6?15와 1004 선언이 그대로 살아남아 있는 한 우리 조국은 통일이 될 것이고 그 때에 우리학교는 그야 말로 남북 우리 모두의 학교가 될 것이 아닌가. 명실 공히 ‘우리학교’가 될 것이 아닌가. 그 때를 내다 보지 못학고 우리 학교가 만약에 지금 문을 닫는 다면 모든 자신이 일본으로 귀속되고 말 것이라 한다.

이렇게 생각할 때에 지금 우리학교를 지켜내지 못하고 학교가 영원히 일본 정부에 귀속 될 때에 그것을 다시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 일 것이다.

이런 착잡한 생각과 함께 학교 밖을 나올 때 까지도 교실에서는 학생들이 낭랑한 목소리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낭송하고 있었다. 봄은 내년에도 다시 오겠지만 우리의 들을 빼앗기지는 않을지 우려되는 마음이 앞섰다. 첫 방문한 동경의 봄은 이렇게 ‘찬란한 슬픔의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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