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green>김길민 옹 향년 88세로 별세</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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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minjok.c… 작성일01-11-16 00:00 조회1,45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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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투병을 하면서도 명동성당에서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을 위해 천막농성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통일운동가 김양무 선생(범민련 남측본부 전 상임부의장)의 부친 김길민 옹이 7일 오후7시20분께 운명했다. 향년 88세.
이 소식은 고인의 손녀인 김진경양(고등학생)이 민족통신 자유계시판을 통해 알려왔다. 그 내용을 전재한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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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보다 어려워진 수능시험을 치르고 나서 피곤한 나머지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되었습니다. 그 소식에 일어나 꿈을 꾼 것 같아 다시 잠을 청했습니다. 하지만 꿈이 아니라는 것을 다음날 아침 엄마의 말 한마디에 알게되었습니다. 손녀가 수능시험이 끝나고 나니까 편안한 마음으로 눈을 감으셨던 것입니다. 할아버지(김길민, 88세)는 7일 오후 8시 20분에 돌아가셨습니다.
8일 아침에 학교에 가야하는데 엄마가 선생님께 전화를 해주셔서 할아버지가 계시는 전북대 병원 장례식장에 갈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를 뵙고싶어 찾아오는 친척들이 많아서 접대실이 꽉 찼습니다. 그 중에서도 아빠와 함께 조국통일을 위해 열심히 투쟁을 하고계시는 분들이 서울에서 도착하셨을 때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강희남 목사님,최진수 선생님,권오혁 선생님, 박해전 선생님 그리고 대전에서 오신 선생님들과 함께 늦은 시간까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통일애국열사 김양무 정신계승사업회,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가 씌여진 조화가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주었습니다.
상주인 작은아빠(김양규)는 "김양무"이름이 쓰인 꽃이 제일 아름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촌들과 조카들과 함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아주다보니 아침이 되어버렸습니다.
9일 아침 일찍 전북대 병원을 출발하여 아빠 고향인 남원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남원 광한루 뒷산에 있는 함파에 할아버지를 눕혀드렸습니다.
그곳은 할머니가 20년 전부터 계시던 자리입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란히 주무시고 계십니다. 할머니가 덮으셨던 뗏장을 떠서 광주로 가지고 왔습니다. 할아버지 영정을 장식했던 꽃도 함께 가지고 와서 망월동으로 바로 갔습니다.
아빠가 장례식에 참석 못했으니까 엄마가 아빠 생각이 나서 할아버지 머리카락도 함께 가지고 왔습니다. 아빠께 할머니가 덮었던 흙을 덮어드렸습니다. 할아버지 머리카락도 아빠께 드렸습니다.
아빠는 정말 효자였습니다. 날마다 할아버지께 전화를 드리고 틈만 나면 할아버지가 계시는 남원에 갔습니다. 할아버지는 남원 샛터에서 일생동안 사셨는데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는 남원을 떠나서 다시 샛터에 가고싶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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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il : kodai@hanmail.net
Homepage : http://www.me2u2.co.kr/hcy2002/
이 소식은 고인의 손녀인 김진경양(고등학생)이 민족통신 자유계시판을 통해 알려왔다. 그 내용을 전재한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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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보다 어려워진 수능시험을 치르고 나서 피곤한 나머지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되었습니다. 그 소식에 일어나 꿈을 꾼 것 같아 다시 잠을 청했습니다. 하지만 꿈이 아니라는 것을 다음날 아침 엄마의 말 한마디에 알게되었습니다. 손녀가 수능시험이 끝나고 나니까 편안한 마음으로 눈을 감으셨던 것입니다. 할아버지(김길민, 88세)는 7일 오후 8시 20분에 돌아가셨습니다.
8일 아침에 학교에 가야하는데 엄마가 선생님께 전화를 해주셔서 할아버지가 계시는 전북대 병원 장례식장에 갈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를 뵙고싶어 찾아오는 친척들이 많아서 접대실이 꽉 찼습니다. 그 중에서도 아빠와 함께 조국통일을 위해 열심히 투쟁을 하고계시는 분들이 서울에서 도착하셨을 때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강희남 목사님,최진수 선생님,권오혁 선생님, 박해전 선생님 그리고 대전에서 오신 선생님들과 함께 늦은 시간까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통일애국열사 김양무 정신계승사업회,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가 씌여진 조화가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주었습니다.
상주인 작은아빠(김양규)는 "김양무"이름이 쓰인 꽃이 제일 아름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촌들과 조카들과 함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아주다보니 아침이 되어버렸습니다.
9일 아침 일찍 전북대 병원을 출발하여 아빠 고향인 남원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남원 광한루 뒷산에 있는 함파에 할아버지를 눕혀드렸습니다.
그곳은 할머니가 20년 전부터 계시던 자리입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란히 주무시고 계십니다. 할머니가 덮으셨던 뗏장을 떠서 광주로 가지고 왔습니다. 할아버지 영정을 장식했던 꽃도 함께 가지고 와서 망월동으로 바로 갔습니다.
아빠가 장례식에 참석 못했으니까 엄마가 아빠 생각이 나서 할아버지 머리카락도 함께 가지고 왔습니다. 아빠께 할머니가 덮었던 흙을 덮어드렸습니다. 할아버지 머리카락도 아빠께 드렸습니다.
아빠는 정말 효자였습니다. 날마다 할아버지께 전화를 드리고 틈만 나면 할아버지가 계시는 남원에 갔습니다. 할아버지는 남원 샛터에서 일생동안 사셨는데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는 남원을 떠나서 다시 샛터에 가고싶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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