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green>자주민보 발행인 부인 김일심씨</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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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1-12-19 00:00 조회10,09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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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시인 홍치산(자주민보 발행인 이창기씨의 필명)은 6.15남북공동선언을 실천한 죄(?)로 지금 감옥에 있다. 4살짜리 어린딸 산하와 부인 김일심씨는 지금 어떻게 지나고 있을까. 통일뉴스가 이 가족과 특별대담을 갖고 근황을 알렸다. 이 소식을 전재한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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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일심 - `감옥에서 보낸 꽃잎 사랑`
김치관 기자(ckkim@tongilnews.com)
`홍치산`, 그의 이름은 이창기 보다는 홍치산으로 더 알려져 있다. 일찍이 대학시절 대학문학상을 휩쓸고 계간지 `노둣돌`을 통해 등단한 이후 `바보 과대표`(두리, 1993), `10분 사랑`(두리, 1996) 등 시집을 출간할 때도 그가 사용하던 필명이다.
그러나 그의 진면목을 말하기 위해서는 `자주민보`를 빼놓을 수 없다. 월간 잡지형식으로 발간되는 이 책자의 `발행인 이창기`는 10월 23일 동료기자 두 명과 함께 국가정보원에 의해 전격 구속되었다.
30일 이창기 발행인의 부인 김일심씨를 만나 최근의 상황과 지나온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통일뉴스 : 남편의 면회는 자주 다니시는지요.
■ 김일심 : 자주는 못가고 일주일에 한번 정도 가는데 다른 분들이 많이 다녀오세요. 편하게 잘 있다고 밖에 사람들에게 안부 전해달라고 하죠.
□ 지금 이창기 발행인의 법적처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요.
■ 이적표현물 제작배포, 회합통신, 고무찬양 등 국가보안법 위반인데 검찰조사는 다 끝나고 재판날짜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12월초나 중순이 될 것 같아요.
일본의 김명철씨 글을 실은 것을 회합통신이라고 국정원은 주장하는데 김명철씨는 조총련계도 아니고 일간신문이나 시사저널에도 글이 실렸는데 자주민보만 안된다니 우습지요. 재일교포에게 기자가 전화로 원고청탁을 한 것을 회합통신이라고 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해요.
변호사는 기자 두 명은 집행유예 가능성을 보고 있지만 이창기는 자신 못한다고 하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나올 것 같아요.
□ 갑자기 사건이 발생해서 어려움이 많으셨겠습니다.
▶서울구치소 소인이 찍힌 `풀꽃 옥중서신`. 왼쪽은 네 돌을 지난 산하에게, 오른쪽은 부인 김씨에게 `치산`이라는 이름으로...[사진 - 통일뉴스 송정미기자]
■ (자주)민보 할 때부터 도청, 미행, 계좌추적이 있었어요. 은행 실수로 계좌추적이 드러났거든요. 그래서 언제 한번은 이런 일이 있을거라 했었죠. 예전에 살림터와 인터넷 청춘이 조사받으면서 `다음은 자주민보`라고 수사관들이 공공연히 말했다고 해서 감지는 하고 있었다고 해요. 민보 전화가 지지직 거리고 통화가 잘 안되기는 했지만 근래에는 낌새를 못느꼈는데...
더구나 기자들까지 잡아가리라고는 생각 못했죠. 한 사람은 이미 3개월 전에 민보를 그만두고 새로 취직까지 했는데...
□ 남편이 구속된 이후 지내시기는 어떠신지요.
■ (남편이) 이런 일을 하고 싶어서 안달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생활비 얘기도 하고 반대도 하고 적당히 하라고도 하고, 그런 부인이었죠.
그러나 이번 일을 통해 민보가 소중하다는 것을, 하는 사람만큼 몰랐다는 것을 알았어요. 여러 단체와 여러분들이 꼭 필요한 일이라고 격려전화를 해주시고, 해외에서까지 연락이 오고, 남은 민보 식구들이 너무 열심히 일하고... 예전에 볼 기회가 없었는데 더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같이 들어간 가족들도 꿋꿋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예전에 구박했던게 미안해요.
□ 부인께서는 함께 사회운동을 하지 않으셨는지요.
■ 학교 다닐 때만 했어요. 제가 90학번인데 90년부터 92년 그때는 거의 전교생 50%까지 집회에 참석하고 그랬는데 학교 다닐 때는 열심히 했어요.
□ 그러면 이창기 발행인과는 어떻게 만나셨는지요.
■ 91년 강경대 열사 투쟁 때 창기형은 고대 풍물패고 저는 중대 풍물패였는데 연합풍물패를 만들어 한달 정도 계속 집회를 하면서 알게 되었죠. 창기형은 88학번이라 까마득한 선배였죠.
91년 8월 경희대 범민족대회 때 수정과 한번 사다주고 봉숭아 물들여주고 그랬죠. 2박 3일간 대회를 하는데 풍물패 숙소가 있었고 친구들과 학교에 있는 봉숭아로 손톱에 물을 들이고 있는데 창기형이 지나가길래 불러서 손가락에 물을 들여줬죠. 그후 연락이 없었는데 자작시에 그동안 투쟁적인 것에 비해 서정적인 구석이 등장하고 봉숭아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제가 먼저 좋다고 했어요. 너무 멋있어 가지고. 성조기 불태우고, 워낙 춤을 잘 추거든요. 전사같은 전투적인 모습이 멋있어 보이고, 전형적인 사람이죠. 좋아하는 여학생들이 학교마다 한두명씩 있었어요.
□ 그런 모습이 좋아 결혼하시고 나중에 남편이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을 불평했다니 조금 모순되는 것 같군요.
■ 결혼을 하면 생활을 돌보고 가족 생활도 배려해 시간도 투자해야죠.
그리고 제 주변과 형 주변의 선배나 동지들 중에 창기형처럼 전념해서 운동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운동은 한때 하나보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노선도 많은 데 괜히 헛고생 하나 싶기도 하고 열정은 알겠는데 우려가 많았죠. 더구나 잘 모르는 통일운동 쪽이니 알고 지지해 줄 수는 없었죠.
많이 싸웠죠. 신혼초에는 i아내고...
□ 남편이 감옥에 간 뒤 생활상에 변화는 어떠한지요.
■ 생활의 큰 변화는 없어요. 워낙 각자 자기 일이 있고, 이래 안들어 오나 저래 안들어 오나 마찬가진데 그래도 어디 있는지는 알잖아요.(웃음)
민보와 변호사와 통화하고 대책위 시위가 있을 때 나가고 그래요. 민가협 목요집회 399회와 400회 두 번 나가 발언도 했어요.
□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시나요.
■ 97년에 태어나 네 돌이 지난 딸 하나가 있어요. 잡히기 전날이 산하 네 돌 생일이었어요. 그날도 늦게 들어와 아침에 유치원 가기 전에 산하를 본다고 왔는데 못 본 채 아침에 잡혀갔죠.
아이에겐 아빠 글쓰러 어디 갔다고 말했어요.
□ 평소 이창기 발행인의 생활은 어떠했는지요.
▶아이에겐 아빠는 글쓰러 가셨다고 말했지만 시어
머님 건강이 걱정이다. [사진 - 통일뉴스 송정미기자]
■ 개인적인 것을 떠나서 온통 통일운동 뿐이었어요. 애한테도 소원이 조국통일이고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이라고 말하곤 했어요. 전혀 의심을 할 수 없는 사람이에요. 돈 만원만 있어도 밥한끼 못 먹어도 사무실 사람들과 나누어 썼죠. 형님이 의류회사를 해서 옷을 가져오면 한철 지나면 거의 대부분 입혀주고 벗어주고 해서 없어지고 겨울에 여름바지를 입고 다니곤 했어요.
□ 주변 가족들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 시어머님이 간암이세요. 올해 발견돼 한달에 한번씩 색전도 수술을 받고 계신데 다른 형제들은 산하 아빠가 너무 속을 썩인 탓이라고들 하죠. 이번 일을 계속 숨겨왔는데 아들한테 전화가 안 와 눈치를 채셔서 결국 말씀드렸어요. 대학교 운동할 때부터 시작해서 계속 군대영장이 날아오고 출두요구서가 집으로 오고... 군대 안간다고 끝까지 우기는 아들을 간도 안좋으신 어머님이 농약병을 들고 억지로 군대를 보냈죠.
저희 친정 집에서는 창기형이 워낙 성격이 좋아 나쁜 짓 안한다고 믿죠. 식구들 힘드니까 적당히 했으면 하지만 집이 가까이 있어 드나들며 자주 봐서 민보에 대한 소신을 잘 알고 있어요. 미리 대비해서 나를 바깥으로 내보내 돈을 벌게 해둘 정도로 준비성있는 사람이예요.
□ 8.15 평양행사에서 앓은 것으로 아는데 이창기 발행인의 평소 건강상태는 어떤지요.
■ 요즘 건강이 안 좋아졌어요. 술을 되게 못 먹어요. 간이 안 좋은가 봐요. 주량이 (맥주) 500cc 한잔, 소주 한두잔 정도죠. 담배는 조금 하는데 그보다는 잠을 못 자고 바쁘게 돌아다녀서 그런 것 같아요. 먹는 것도 돈이 있어도 자기밥은 안 사먹고... 입이 잘 헐고 코가 막혀있고 목이 잘 잠기고 하는데 몸이라도 건강해서 나와야죠.
▶남편은 돈이 있어도 밥을 사먹지 않고 나누어 썼고 옷가지도
남들 가져다 주기 바빴다고 한다. [사진 - 통일뉴스 송정미기자]
김일심씨가 보여준 앨범에는 놀랍게도 사진이 아니라 모두 이창기 발행인이 모으고 보내주었다는 마른 풀잎과 꽃들이 빼곡했다. 그 풀잎과 꽃들에 곁들여 김씨가 이 발행인의 시나 편지구절을 써넣어 `작품`을 만든 것들이다.
이 발행인은 연애시절부터 김씨에게 편지를 많이 보냈고 후배들에게도 자상한 편지를 자주 보냈다고 한다. 김씨는 남편이 감옥에서도 풀잎과 꽃을 모아 말린 것들을 붙인 종이에 글을 적어 보내고 있다며 구치소 소인이 찍힌 편지를 기자에게 보여주었다.
산하야
예쁜 우리 산하야
너는 꽃봉오리란다
너는 어린 새싹이란다.
무럭무럭 자라나서
민족을 위하는
큰 일꾼이 되거라.
2001.11. 아빠가.
옥중에서
[출처:통일뉴스 2001-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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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일심 - `감옥에서 보낸 꽃잎 사랑`
김치관 기자(ckkim@tongilnews.com)
`홍치산`, 그의 이름은 이창기 보다는 홍치산으로 더 알려져 있다. 일찍이 대학시절 대학문학상을 휩쓸고 계간지 `노둣돌`을 통해 등단한 이후 `바보 과대표`(두리, 1993), `10분 사랑`(두리, 1996) 등 시집을 출간할 때도 그가 사용하던 필명이다.

30일 이창기 발행인의 부인 김일심씨를 만나 최근의 상황과 지나온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통일뉴스 : 남편의 면회는 자주 다니시는지요.
■ 김일심 : 자주는 못가고 일주일에 한번 정도 가는데 다른 분들이 많이 다녀오세요. 편하게 잘 있다고 밖에 사람들에게 안부 전해달라고 하죠.
□ 지금 이창기 발행인의 법적처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요.
■ 이적표현물 제작배포, 회합통신, 고무찬양 등 국가보안법 위반인데 검찰조사는 다 끝나고 재판날짜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12월초나 중순이 될 것 같아요.
일본의 김명철씨 글을 실은 것을 회합통신이라고 국정원은 주장하는데 김명철씨는 조총련계도 아니고 일간신문이나 시사저널에도 글이 실렸는데 자주민보만 안된다니 우습지요. 재일교포에게 기자가 전화로 원고청탁을 한 것을 회합통신이라고 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해요.
변호사는 기자 두 명은 집행유예 가능성을 보고 있지만 이창기는 자신 못한다고 하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나올 것 같아요.
□ 갑자기 사건이 발생해서 어려움이 많으셨겠습니다.

■ (자주)민보 할 때부터 도청, 미행, 계좌추적이 있었어요. 은행 실수로 계좌추적이 드러났거든요. 그래서 언제 한번은 이런 일이 있을거라 했었죠. 예전에 살림터와 인터넷 청춘이 조사받으면서 `다음은 자주민보`라고 수사관들이 공공연히 말했다고 해서 감지는 하고 있었다고 해요. 민보 전화가 지지직 거리고 통화가 잘 안되기는 했지만 근래에는 낌새를 못느꼈는데...
더구나 기자들까지 잡아가리라고는 생각 못했죠. 한 사람은 이미 3개월 전에 민보를 그만두고 새로 취직까지 했는데...
□ 남편이 구속된 이후 지내시기는 어떠신지요.
■ (남편이) 이런 일을 하고 싶어서 안달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생활비 얘기도 하고 반대도 하고 적당히 하라고도 하고, 그런 부인이었죠.
그러나 이번 일을 통해 민보가 소중하다는 것을, 하는 사람만큼 몰랐다는 것을 알았어요. 여러 단체와 여러분들이 꼭 필요한 일이라고 격려전화를 해주시고, 해외에서까지 연락이 오고, 남은 민보 식구들이 너무 열심히 일하고... 예전에 볼 기회가 없었는데 더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같이 들어간 가족들도 꿋꿋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예전에 구박했던게 미안해요.
□ 부인께서는 함께 사회운동을 하지 않으셨는지요.
■ 학교 다닐 때만 했어요. 제가 90학번인데 90년부터 92년 그때는 거의 전교생 50%까지 집회에 참석하고 그랬는데 학교 다닐 때는 열심히 했어요.
□ 그러면 이창기 발행인과는 어떻게 만나셨는지요.
■ 91년 강경대 열사 투쟁 때 창기형은 고대 풍물패고 저는 중대 풍물패였는데 연합풍물패를 만들어 한달 정도 계속 집회를 하면서 알게 되었죠. 창기형은 88학번이라 까마득한 선배였죠.
91년 8월 경희대 범민족대회 때 수정과 한번 사다주고 봉숭아 물들여주고 그랬죠. 2박 3일간 대회를 하는데 풍물패 숙소가 있었고 친구들과 학교에 있는 봉숭아로 손톱에 물을 들이고 있는데 창기형이 지나가길래 불러서 손가락에 물을 들여줬죠. 그후 연락이 없었는데 자작시에 그동안 투쟁적인 것에 비해 서정적인 구석이 등장하고 봉숭아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제가 먼저 좋다고 했어요. 너무 멋있어 가지고. 성조기 불태우고, 워낙 춤을 잘 추거든요. 전사같은 전투적인 모습이 멋있어 보이고, 전형적인 사람이죠. 좋아하는 여학생들이 학교마다 한두명씩 있었어요.
□ 그런 모습이 좋아 결혼하시고 나중에 남편이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을 불평했다니 조금 모순되는 것 같군요.
■ 결혼을 하면 생활을 돌보고 가족 생활도 배려해 시간도 투자해야죠.
그리고 제 주변과 형 주변의 선배나 동지들 중에 창기형처럼 전념해서 운동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운동은 한때 하나보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노선도 많은 데 괜히 헛고생 하나 싶기도 하고 열정은 알겠는데 우려가 많았죠. 더구나 잘 모르는 통일운동 쪽이니 알고 지지해 줄 수는 없었죠.
많이 싸웠죠. 신혼초에는 i아내고...
□ 남편이 감옥에 간 뒤 생활상에 변화는 어떠한지요.
■ 생활의 큰 변화는 없어요. 워낙 각자 자기 일이 있고, 이래 안들어 오나 저래 안들어 오나 마찬가진데 그래도 어디 있는지는 알잖아요.(웃음)
민보와 변호사와 통화하고 대책위 시위가 있을 때 나가고 그래요. 민가협 목요집회 399회와 400회 두 번 나가 발언도 했어요.
□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시나요.
■ 97년에 태어나 네 돌이 지난 딸 하나가 있어요. 잡히기 전날이 산하 네 돌 생일이었어요. 그날도 늦게 들어와 아침에 유치원 가기 전에 산하를 본다고 왔는데 못 본 채 아침에 잡혀갔죠.
아이에겐 아빠 글쓰러 어디 갔다고 말했어요.
□ 평소 이창기 발행인의 생활은 어떠했는지요.
▶아이에겐 아빠는 글쓰러 가셨다고 말했지만 시어
머님 건강이 걱정이다. [사진 - 통일뉴스 송정미기자]
■ 개인적인 것을 떠나서 온통 통일운동 뿐이었어요. 애한테도 소원이 조국통일이고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이라고 말하곤 했어요. 전혀 의심을 할 수 없는 사람이에요. 돈 만원만 있어도 밥한끼 못 먹어도 사무실 사람들과 나누어 썼죠. 형님이 의류회사를 해서 옷을 가져오면 한철 지나면 거의 대부분 입혀주고 벗어주고 해서 없어지고 겨울에 여름바지를 입고 다니곤 했어요.
□ 주변 가족들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 시어머님이 간암이세요. 올해 발견돼 한달에 한번씩 색전도 수술을 받고 계신데 다른 형제들은 산하 아빠가 너무 속을 썩인 탓이라고들 하죠. 이번 일을 계속 숨겨왔는데 아들한테 전화가 안 와 눈치를 채셔서 결국 말씀드렸어요. 대학교 운동할 때부터 시작해서 계속 군대영장이 날아오고 출두요구서가 집으로 오고... 군대 안간다고 끝까지 우기는 아들을 간도 안좋으신 어머님이 농약병을 들고 억지로 군대를 보냈죠.
저희 친정 집에서는 창기형이 워낙 성격이 좋아 나쁜 짓 안한다고 믿죠. 식구들 힘드니까 적당히 했으면 하지만 집이 가까이 있어 드나들며 자주 봐서 민보에 대한 소신을 잘 알고 있어요. 미리 대비해서 나를 바깥으로 내보내 돈을 벌게 해둘 정도로 준비성있는 사람이예요.
□ 8.15 평양행사에서 앓은 것으로 아는데 이창기 발행인의 평소 건강상태는 어떤지요.
■ 요즘 건강이 안 좋아졌어요. 술을 되게 못 먹어요. 간이 안 좋은가 봐요. 주량이 (맥주) 500cc 한잔, 소주 한두잔 정도죠. 담배는 조금 하는데 그보다는 잠을 못 자고 바쁘게 돌아다녀서 그런 것 같아요. 먹는 것도 돈이 있어도 자기밥은 안 사먹고... 입이 잘 헐고 코가 막혀있고 목이 잘 잠기고 하는데 몸이라도 건강해서 나와야죠.
▶남편은 돈이 있어도 밥을 사먹지 않고 나누어 썼고 옷가지도
남들 가져다 주기 바빴다고 한다. [사진 - 통일뉴스 송정미기자]
김일심씨가 보여준 앨범에는 놀랍게도 사진이 아니라 모두 이창기 발행인이 모으고 보내주었다는 마른 풀잎과 꽃들이 빼곡했다. 그 풀잎과 꽃들에 곁들여 김씨가 이 발행인의 시나 편지구절을 써넣어 `작품`을 만든 것들이다.
이 발행인은 연애시절부터 김씨에게 편지를 많이 보냈고 후배들에게도 자상한 편지를 자주 보냈다고 한다. 김씨는 남편이 감옥에서도 풀잎과 꽃을 모아 말린 것들을 붙인 종이에 글을 적어 보내고 있다며 구치소 소인이 찍힌 편지를 기자에게 보여주었다.
산하야
예쁜 우리 산하야
너는 꽃봉오리란다
너는 어린 새싹이란다.
무럭무럭 자라나서
민족을 위하는
큰 일꾼이 되거라.
2001.11. 아빠가.
옥중에서
[출처:통일뉴스 2001-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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