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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금선 교사의 아름다운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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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2-02-15 00:00 조회1,9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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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서울 봉천동 고개 골목골목을 종횡무진 달리는 미니소방차.소방차의 운전자는 양금선.봉천동 봉원중학교 국어교사다.달려가는 곳은 불난 집이 아니라 여학생들의 집.양선생님은 매일 아침 학교로 출근하기 전에 서너 곳에 들러 학생들을 소방차에 태운다.빨간색 라노스 승용차가 아침마다 아이들을 태우기 위해 소방서 앞에서 불법 U턴을 감행해야 하는 모습이 마치 불끄러 가는 소방차 같다고 해서 미니 소방차로 이름붙여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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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자가용을 모는 양선생님의 심정은 소방차를 모는 소방수의 마음과 다를 게 없다.

“하나님,이 아이들의 가슴이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불타고 있습니다.불 좀 꺼주세요”

#1.소방차의 탄생

양선생님이 소방차 운전자가 된 것은 지난해 11월.그렇잖아도 결석이 잦았던 수영이(가명)가 2주일간이나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수영이 아빠를 학교로 불렀다.아빠도 수영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지친 마음에 아빠를 다그쳤다.

“그렇게 책임도 못지실거면 보육원에라도 보내세요”“면목이 없습니다.제가 포기하는 게 차라리 나을지 모르겠네요”

고개를 푹 숙이고 얼굴도 못든 채 수영이 아빠는 돌아갔다.돌아선 양선생님의 마음도 아팠다.수영이의 빈자리를 지켜만 보고 있을 순 없었다.부모도 모른다는 아이의 행방을 수소문했다.봉천동 쪽방에 가출한아이들이 모여있다는 걸 알게 됐다.좁은 골목을 돌고돌아 찾아간 쪽방.방문을 여는 순간 온갖 잡동사니 속에서 쪼그리고 앉아있던 수영이가 “선생님”하고 불렀다.양선생님은 그만 수영이를 부둥켜안고 엉엉 울고 말았다.아흔아홉마리의 양을 두고 잃은 양 한마리를 찾으신 예수님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수영이도 인숙이도 은아도 보영이도 내일부터 학교에 잘 나오기로 다짐했다.

다음날 아침.수영이의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쪽방에 다시 찾아갔다.4명의 소녀들은 하얀색 블라우스에 물색 교복 재킷을 입고 가망을 맨 채 이불 속에 쪼그리고 앉아있었다.서로 얼굴만 바라볼 뿐 아무도 방문을 나서지 못하고 있었던 것.양선생님은 소녀들에게 호통을 치며 모두 밖으로 끌어내 빨간색 라노스에 태웠다.

#2.하이라이트

이렇게 해서 매일 아침 소녀들과의 동행이 시작됐다.쉽진 않았다.출근시간보다 30분 일찍 고단한 몸을 이끌고 봉천동 고갯길을 달려왔지만 아이들은 이불 속에서 꿈나라를 헤매고 있기 일쑤였다.부모를 대신해 아이들을 깨우며 험악한 소리를 하기도 했다.인숙이네 집에서 수영이네 집으로 가는 골목길은 너무 아슬아슬해 소방서 앞에서 불법 U턴을 할 수밖에 없었다.아이들은 망을 보며 ‘공무수행’을 도왔다.

며칠 잘 나오던 아이들이 몽땅 사라지기도 했다.부모가 없어 아이들이 잘 모이는 은아네 쪽방으로 찾아가 걸어잠근 문을 억지로 열게 했다.은아가 쭈그리고 앉아있었다.수영이는 옷장에서,보영이는 이불장에서 찾아냈다.

주저앉아 울기도 여러번.교사휴게실에 혼자 앉아 기도한 것이 몇번인지 모른다.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셨는지 아이들은 차츰 등교길에 익숙해졌다.

오고가는 시간도 유용했다.어느새 친해진 아이들은 어머니가 집을 떠난 얘기며 아버지가 새엄마와 동생들을 데려온 얘기,남자친구와 다툰 얘기를 스스럼없이 털어놨다.얼르고 전하고 타이르다 보면 선생님이 아니라 왕언니가 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들,칭찬 한번 받아보지 못한 소녀들에게 “예쁘다,잘한다,착하다”는 말은 낯설었겠지만 싫진 않은 모양이었다.

마지막으로 보영이까지 태우고 나면 학교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지만 종종 지각을 할 때도 있다.“고개숙여!”를 외치며 토끼뜀하는 지각생들 옆을 유유히 지나는 스릴은 아이들과 함께 맛보지만 교직원 회의에 늦어 민망하게 교무실로 들어서는 일은 혼자 감수했다.

양선생님이 아침마다 기다려야 했던 아이들은 이제는 먼저 양선생님을 기다리게 됐다.

#3.에필로그

양선생님이 ‘교육열 때문에 땅값이 오를 정도’인 대치동의 학교에서 이곳 봉천동 학교로 전근온 것은 1년전.학교를 처음 찾아오는 길에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쌓인 눈 위에 갖가지 쓰레기가 뒤엉켜있는 시장통이었다.이런 곳에 학교가 있다니,한숨을 쉰 것도 잠깐,여기가 하나님께서 예비해주신 곳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학교 정문 바로 옆에 교회가 떡 버티고 서 있었던 것.“아이들을 교회로 인도할 수 있게 근처에 교회가 있는 학교로 가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던 양선생님에겐 마음에 딱 맞는 학교였다.

국어를 가르치는 양선생님은 수업시간마다 윤동주 이해인 용해원 등 기독교적인 정신을 가진 시인들의 작품을 학생들에게 읽힌다.학생들을 통해 부모까지 교회로 전도한 것도 여러번이다.

“대치동에 있었을 때도 깨끗한 학생들과 교양있는 부모님들이 많아 배울 게 많았지만 여기 와서 더 많은 걸 배우고 교사로서의 소명도 더욱 뜨겁게 느껴요.아이들이 착하고 순수하죠.어려운 환경속에서 아이들을 제대로 키워보려는 부모님들의 노력도 눈물겹습니다.왜 예수님이 가난한 사람,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하셨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 양선생님을 왜 이곳으로 보냈는지,그 이유도 알 것 같다.


수영이는 이제 가끔 늦게 올망정 결석은 안한다.하지만 여전히 수업에 적응하긴 쉽지 않은 모양이다.그래도 시 쓰기 수업시간엔 수영이의 눈이 반짝거린다.이해인 시인의 ‘후회’라는 시를 읽고 자신도 같은 제목의 시를 썼다.

후회는

욕심의 흔적

이기적인 미련



후회는

작은 상처

모두 등지고 걸어간다



시간은 무정히

혼자 걸어간다

째깍… 째깍…



가까이 있지만

잡을 수 없는

등뒤의 후회



지금도 후회한다

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짊어진다면 알까?



하지만

후회는 옥돌이다

후회를 맛본 사람들은 안다

후회 뒤의 깨달음을…



후회는 두 얼굴의 시간



양금선 선생님은 ‘소녀들에게’라는 시로 화답했다.시로 주고받는 사제간의 대화다.



너희들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헤어지면 다시 보고 싶은

그리움을 한없이 그리워하게 한

고운 이름의 너희들을 만난 건

신이 주신 선물이었다.



소망이 없는 세상에

거울이 되어준 너희들

세상은 아직

향긋한 개나리들의 꽃밭임을 믿으며

소명의 꽃삽을 든다.

김지방기자 fatt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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