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성씨 프락치공작 증거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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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2-05-10 00:00 조회1,48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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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 11월 강제징집당한 후 6개월만에 의문사한 이윤성 씨가 군 복무 중 프
락치 활동을 강요받았다는 새로운 증거가 뒤늦게 밝혀졌다. 지난 24일 고
이윤성 19주기 추모제에서 "이씨가 사망 한달 전쯤 사회에 나와 부모에게
알리지도 않고서 학교 앞 술집에서 운동권 친구인 최모 씨를 만난"
사실이 확인된 것.
이에 민주화운동정신계승 국민연대(상임대표 권오헌 등, 아래 계승연대)는
최씨와 함께 29일 오후 1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 아래 규
명위) 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곧바로 의문사위에 제보했다.
간담회에서 최씨는 "83년 3월말, 4월초 정도에 당시 운동권들이 자주 가는
술집에서 1시간 정도 윤성이를 만났"으며, ""너희 써클은 잘 되냐, 다들 뭐하
냐"는 등 알맹이도 없이 일상적인 안부만을 묻다가 "누구 또 만나야 한다"면
서 바쁘게 자리를 떴다"고 증언했다.
최씨는 "당시 윤성이와 같은 과이기는 했지만, 친한 사이도 아니고 써클도
달랐기 때문에 윤성이가 왜 나를 만나자고 했는지 의아했었다"고 밝혔다.
또 "사복을 입고 표정이 아주 밝아 보였다"며, "당연히 집에서 사복을 갈아
입고 나온 줄 알았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이에 대해 이씨의 매형 박정관 씨는 "가족들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
다"며, "우리는 처남이 (82년 11월) 집에도 못들어 온 상태에서 강제징집 당
한 후 (83년 5월) 보안부대에서 죽어서 돌아온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고 반
응했다. 당시 이씨의 집은 서울 성내동 장미아파트였으며, 이는 이씨가 마음
만 먹으면 학교(성균관대)에서 1시간 안에 갈 수 있는 거리.
계승연대 이은경 사무처장은 △군 관계자들에게 확인한 결과 당시 최전방에
배치된 지 6개월만에 휴가로 나오기란 거의 불가능했고 △정상적인 휴가라
면 당연히 집에 연락했을텐데 그렇지 않았다며, ""이는 정상적인 휴가가 아
니라 당시 보안사의 강요에 의한 프락치 활동이 아니었나"라는 의혹을 강하
게 제기한다"고 주장했다.
규명위 이재범 조사관은 "이번 제보에 의해 녹화사업이 단순한 특별정훈교
육이었다는 군의 주장은 무너졌다"며, "지금까지 의혹으로만 제기됐던 프락
치 공작의 개연성이 확인됐다"고 평했다. 이제까지 군 당국은 녹화사업에
대해 "특별정훈교육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프락치 공작은 없었다"는 답변만
반복해 왔다.
한편, 이날 간담회에선 비슷한 시기 발생했던 또 다른 의문사 김두황 씨 사
건이 이씨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시경존안자료에 의
하면, 당시 경찰은 김씨가 학습했던 "아방과 타방"이라는 문건의 작성자에
대해 집중 수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문건의 작성자가 바로 최씨의 써클 선배였던 것. 이
에 대해 이 사무처장은 "이씨가 (자신과 써클도 다른) 최씨를 만난 것은 "아
방과 타방"이라는 문건 작성자를 찾기 위한 프락치 활동의 일환이었을지 모
른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로써 향후 규명위의 조사활동이 보다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되며, 군 당국
이 계속해서 똑같은 답변만 반복하며 관련자료 제출요구를 거부하면서 진상
규명 활동에 비협조적으로 나올지 여부가 주목된다. [범용]
락치 활동을 강요받았다는 새로운 증거가 뒤늦게 밝혀졌다. 지난 24일 고
이윤성 19주기 추모제에서 "이씨가 사망 한달 전쯤 사회에 나와 부모에게
알리지도 않고서 학교 앞 술집에서 운동권 친구인 최모 씨를 만난"
사실이 확인된 것.
이에 민주화운동정신계승 국민연대(상임대표 권오헌 등, 아래 계승연대)는
최씨와 함께 29일 오후 1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 아래 규
명위) 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곧바로 의문사위에 제보했다.
간담회에서 최씨는 "83년 3월말, 4월초 정도에 당시 운동권들이 자주 가는
술집에서 1시간 정도 윤성이를 만났"으며, ""너희 써클은 잘 되냐, 다들 뭐하
냐"는 등 알맹이도 없이 일상적인 안부만을 묻다가 "누구 또 만나야 한다"면
서 바쁘게 자리를 떴다"고 증언했다.
최씨는 "당시 윤성이와 같은 과이기는 했지만, 친한 사이도 아니고 써클도
달랐기 때문에 윤성이가 왜 나를 만나자고 했는지 의아했었다"고 밝혔다.
또 "사복을 입고 표정이 아주 밝아 보였다"며, "당연히 집에서 사복을 갈아
입고 나온 줄 알았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이에 대해 이씨의 매형 박정관 씨는 "가족들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
다"며, "우리는 처남이 (82년 11월) 집에도 못들어 온 상태에서 강제징집 당
한 후 (83년 5월) 보안부대에서 죽어서 돌아온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고 반
응했다. 당시 이씨의 집은 서울 성내동 장미아파트였으며, 이는 이씨가 마음
만 먹으면 학교(성균관대)에서 1시간 안에 갈 수 있는 거리.
계승연대 이은경 사무처장은 △군 관계자들에게 확인한 결과 당시 최전방에
배치된 지 6개월만에 휴가로 나오기란 거의 불가능했고 △정상적인 휴가라
면 당연히 집에 연락했을텐데 그렇지 않았다며, ""이는 정상적인 휴가가 아
니라 당시 보안사의 강요에 의한 프락치 활동이 아니었나"라는 의혹을 강하
게 제기한다"고 주장했다.
규명위 이재범 조사관은 "이번 제보에 의해 녹화사업이 단순한 특별정훈교
육이었다는 군의 주장은 무너졌다"며, "지금까지 의혹으로만 제기됐던 프락
치 공작의 개연성이 확인됐다"고 평했다. 이제까지 군 당국은 녹화사업에
대해 "특별정훈교육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프락치 공작은 없었다"는 답변만
반복해 왔다.
한편, 이날 간담회에선 비슷한 시기 발생했던 또 다른 의문사 김두황 씨 사
건이 이씨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시경존안자료에 의
하면, 당시 경찰은 김씨가 학습했던 "아방과 타방"이라는 문건의 작성자에
대해 집중 수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문건의 작성자가 바로 최씨의 써클 선배였던 것. 이
에 대해 이 사무처장은 "이씨가 (자신과 써클도 다른) 최씨를 만난 것은 "아
방과 타방"이라는 문건 작성자를 찾기 위한 프락치 활동의 일환이었을지 모
른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로써 향후 규명위의 조사활동이 보다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되며, 군 당국
이 계속해서 똑같은 답변만 반복하며 관련자료 제출요구를 거부하면서 진상
규명 활동에 비협조적으로 나올지 여부가 주목된다. [범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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