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식박사 모친별세 추모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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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minjok.c… 작성일02-05-13 00:00 조회1,47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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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식 박사(범민련 재미본부 상임의장) 모친 리진실 여사의 별세와 관련 추모회 모임이 28일 오후4시 로스엔젤레스 시내 재미동포연합서부연합회에서 개최됐다.
백승배목사(민족통신 편집위원) 집례로 열린 이날 추모회는 통일의 날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고인의 한맺힌 지난날들을 되새겨 보는 자리가 되었다. 집례자는 고인의 삶과 죽음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조선의 어버니들이 걸어온 길이라고 설명하면서 리진실여사는 통일의 날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자신이 약속한 100살을 넘기지 못하고 8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박천흠 장로의 기도, 집례자의 말씀, 김동석교수의 단소독주, 그리고 양박사의 부인 서정숙박사의 추모사, 김하림씨의 추모가, 양박사의 인사말, 허선규 목사의 축도순으로 이어졌고 준비된 만찬을 나누며 참석자들은 유가족을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특히 고인의 며느리가 되는 양박사의 부인 서정숙 박사는 4장이나 되는 추모사를 읽으며 말을 잇지 못해 여러차례 눈물을 삼키느라고 순간순간 남편에게 대독을 부탁하기도 했다.
추모회 순서지 맨뒤에는 양은식 박사가 어머니를 그리며 쓴 글이 있다. 이 글을 싣는다.
[어머니 단상]
2002년 4월13일 평양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 향년 88세이셨다.
어머니를 두고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꽃다운 나이에 무거운 장사 보따리를 이고 약 10리 길을 아침마다 걸어가가곤 하시던 모습이다. 40년 2차대전이 터지고 45년 해방을 거쳐 50년 6.25전쟁이 일어나기까지 가장 어려운 시대를 매일같이 어렵게 사셨다. 어머니의 반생은 유독히 어려운생이었다. 어머니는 유복자로 태어나셨고 형제 없이 혼자이셨으며 19살에 결혼하셨으나 26세에 아버지와 사별하셨으며 외아들마저 전쟁때 잃어버리고 말았다. 조선의 어버니들에게 이런 고통스런 삶이 어디 한둘일까 마는 기구한 생애를 산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민다.
전쟁 속에서 두딸을 데리고 전전하시다가 평양에 다시 정착하셨다. 1976년 27년만에 극적으로 아들을 만나셨다. 아들 앞에 나타난 어머니의 모습은 건장한 체구는 어디로 가고 반쪽이 되어 있었다. 전쟁과 건설 속에서 또 얼마나 고생스러우셨겠는가...
그 후 80년대 90년대에는 거의 해마다 가 뵈었는데 얼마나 손꼽아 가며 기다리고 계시던지...
말년에는 평양 광복거리에 거주하셨는데 손녀부부가 돌보아드렸다. 12명의 손자녀, 8명의 가족들이 모이고 가족음악회가 열리곤 했는데 어머니는 외증순자의 피아노 연주를 특히 좋아해서 나를 즐겁게 해주려고 애를 쓰셨다. 딸, 사위, 손자들이 모임녀 "나라의 통일 위해 일하라" 일장 훈시하시는 것을 보았다. 일천만 이산가족이라는데, 모시고 살지는 못했으나 해마다 O아 뵐 수 있었던 것을 하늘에 감사한다.
어머님은 이름대로 평생을 신실하고 곧은 성품으로 사신 분이다.
[아들 양은식]
.....................................................................
*양은식 박사 연락처는 (310)375-6244

박천흠 장로의 기도, 집례자의 말씀, 김동석교수의 단소독주, 그리고 양박사의 부인 서정숙박사의 추모사, 김하림씨의 추모가, 양박사의 인사말, 허선규 목사의 축도순으로 이어졌고 준비된 만찬을 나누며 참석자들은 유가족을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특히 고인의 며느리가 되는 양박사의 부인 서정숙 박사는 4장이나 되는 추모사를 읽으며 말을 잇지 못해 여러차례 눈물을 삼키느라고 순간순간 남편에게 대독을 부탁하기도 했다.
추모회 순서지 맨뒤에는 양은식 박사가 어머니를 그리며 쓴 글이 있다. 이 글을 싣는다.
[어머니 단상]
2002년 4월13일 평양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 향년 88세이셨다.

전쟁 속에서 두딸을 데리고 전전하시다가 평양에 다시 정착하셨다. 1976년 27년만에 극적으로 아들을 만나셨다. 아들 앞에 나타난 어머니의 모습은 건장한 체구는 어디로 가고 반쪽이 되어 있었다. 전쟁과 건설 속에서 또 얼마나 고생스러우셨겠는가...
그 후 80년대 90년대에는 거의 해마다 가 뵈었는데 얼마나 손꼽아 가며 기다리고 계시던지...
말년에는 평양 광복거리에 거주하셨는데 손녀부부가 돌보아드렸다. 12명의 손자녀, 8명의 가족들이 모이고 가족음악회가 열리곤 했는데 어머니는 외증순자의 피아노 연주를 특히 좋아해서 나를 즐겁게 해주려고 애를 쓰셨다. 딸, 사위, 손자들이 모임녀 "나라의 통일 위해 일하라" 일장 훈시하시는 것을 보았다. 일천만 이산가족이라는데, 모시고 살지는 못했으나 해마다 O아 뵐 수 있었던 것을 하늘에 감사한다.
어머님은 이름대로 평생을 신실하고 곧은 성품으로 사신 분이다.
[아들 양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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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식 박사 연락처는 (310)375-6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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