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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봄 문익환 목사 고향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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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minjok.c… 작성일02-06-24 00:00 조회1,6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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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 늦봄을 찾아 떠난 짧은 여행 - 고정호 2002-06-23
늦봄 문익환 고향을 찾아(5)


고정호(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사무국장)

문익환 목사님과 민족회의, 통일맞이하고는 뗄레야 뗄 수가 없는 존재이고, 현재 통일운동의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데 중요할 거라 생각하여 통일맞이 식구들과 함께 떠나기로 결정을 하였다. 가기 전날 문익환 목사님의 시집이라도 한 권 정도는 읽고 감직한데 내 사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민족회의 사업일정이 팍팍하다 보니 통일맞이에서 준비한 자료집 하나로 문익환 목사님의 자취를 따라가 보는 수 밖에 없었다.

19955_11.jpg▶일송정과 선구자 노래비 앞에선 고정호 사무국장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기자]

비행기안에서 문익환 목사님과 짧은 인연을 떠올려 보았다. 89년 현대중공업노동자들의 파업투쟁 속에서 문익환 목사님의 방북은 노동운동계 뿐만 아니라 민중운동 진영내에서도 그 평가는 분분하였다. 그 때 문익환 목사님의 방북에 대한 평가는 이후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되었지만......

전민련, 범민련결성. 전국연합결성. 새로운통일운동체(새통체)논쟁. 그리고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민족회의)결성. 하지만 민족회의가 결성되기 전 하얗게 눈 내린 날 당신은 우리 곁을 떠났고 나는 수유리에서 그렇게 당신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 다시 당신과 함께 당신을 찾아 당신의 고향을 찾아갑니다.

낯선 땅. 조용하기만 한 작은 시골 마을 한자리에 걸터앉은 연길공항은 우리들의 아늑한 고향마을 같았다. 옷차림뿐만 아니라 거리의 상점, 자동차, 주택 등은 어릴적 내 고향속에 들어 온 착각에 빠질 지경이었다.

늦봄과의 첫 번째 만남

새로 건설된 도로를 따라 간 곳은 중국과 북한의 국경인 도문이었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북한군인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우리들의 모습은 안중에도 없는 듯 웃통을 드러내고 열심히 밭작물에 쓰일 종자를 뿌리고 있는 중이었다. 철 모르는 소는 주인이 시키는 데로 열심히 밭을 갈고 있었다.

19955_12.jpg▶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북한의 국경이 갈리는 도문에서 바라본 북한 땅.인민군들이 농사를 짓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기자]

나는 돌을 들어 강을 향해 돌팔매질을 몇 번이고 해 대었다. 왠지 모를 답답함이었다. 처음으로 판문점을 찾았을 때 30cm도 않되는 콘크리이트를 보면서 심장이 멎는 것 같은 가슴 답답함이 다시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우리가 이곳에 왔음을 역사에 남기기라도 하듯.

목사님은 제가 느끼는 답답함보다는 심장이 거꾸로 솟는 분단의 아픔을 안고 바로 저곳 우리들 조국의 절반 인 땅 그리고 하나될 분단의 땅에 당신은 모든 것을 버리고 늦봄 당신은 가셨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다시 당신을 만나고 갑니다. 부족한 저희들이기에 저는 오늘 당신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갈렵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늦봄과의 두 번째 만남

문익환목사님이 태어나시고 자란 명동과 장재천을 돌아보았다. 일제치하 민족해방을 위해 터를 잡고 살아갔던 이곳에서 당신의 친구인 윤동주 시인을 만나고 갑니다. 역사의 수레바퀴속에 홀로 남겨진 사랑하나 찾아 떠난 당신의 모습을 저는 동생인 문동환 박사님의 얘기속에서 만나고 갑니다. 긴밤 홀로 새우며 당신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고민하며 생각하였고 당신이 투쟁현장 속에서 목놓아 외쳤던 한없는 조국사랑과 통일조국을 얼마나 바랬었는지 저는 그곳에서 당신을 만나고 갑니다.

19955_13.jpg▶복원되어 지금은 전시관으로 쓰이고 있는 명동교회 앞에서 윤동주와 늦봄이 자란 명동의 역사에 대해 문동환 박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기자]

다시 찾은 당신이 태어난 집에서 동생분과 함께 뛰어 놀고 물장구치던 모습을 저는 그곳에서 보았습니다. 그곳에 당신이 가장 사랑했던 아내 박용길 장로님과 동생분들, 그리고 막내아들, 조카들을 보면서 당신이 얼마나 행복하였는지 저는 알고 있습니다. 언제나 우리에게 그랬듯이 넉넉한 웃음으로 두손을 크게 벌리고 `그래 잘 왔어! 고생했다`라고 말하는 당신을 만났습니다. 당신이 가신 자리는 쓸쓸하고 외롭지만 남은 자리는 당신의 가족과 우리와 그리고 사랑하는 조국이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늦봄과의 세 번째 만남

돌아오는 길. 어느새 3박4일의 일정이 끝나고 우리는 서울로 몸을 실었다. 다행히도 내 자리는 창가옆이었다. 멀어져 가는 당신의 모습이 못내 아쉬워 자꾸 돌아보지만 당신은 저만치 서서 웃으면서 아무 말없이 손만 흔들고 계시더군요.

19955_15.jpg▶참가자들의 뒷풀이 자리에서도 단연 화제는 늦봄이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기자]

나는 잠시 당신의 웃음을 생각해 봅니다. 당신이 89년 방북해서 김일성 주석과 함께 논의해 합의한 내용이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지. 당신의 존재가 통일운동하는 사람들조차도 잊혀지지 않는가 제 자신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은 더욱 더 커지는 것이다`라는 것을 우리는, 나는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지. 우리에게 `여는 마음`이 얼마나 있는지. 당신의 그림자가 더욱 더 간절합니다. 당신과 떠난 짧은 여행속에서 제 자신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 통일조국의 그날을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습니다. 이제 당신과 이별을 할렵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님 비나이다.
밝고 싱싱한 꿈 한 자리,
평화롭고 자유로운 꿈 한 자리,
부디부디 점지해 주사이다」

- 늦봄의 `통일을 비는 마음`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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