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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고 강원진 선생 영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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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minjok.c… 작성일02-07-03 00:00 조회1,5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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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재캐나다 통일운동가 강원진 선생 별세

1970년대부터 캐나다와 미국에서 조국통일운동에 헌신해오신 강원진 선생께서 2002년 6월 9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별세하시었습니다. 장례는 6월 11일 토론토에서 엄수됩니다.

고 강원진 선생께서는 1970년대 초에 결성된 북미주지역 최초의 운동조직인 미주민주국민연합에 가입하셔서 활동하신 이후, 67년의 생애를 갑자기 마감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조국의 자주, 민주,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운동에 열성적으로 참가하시었습니다. 고인께서는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으로 우리 북미주지역의 운동을 뒷받침해주셨습니다.

고 강원진 선생은 비록 우리의 곁을 떠나갔지만, 자주, 민주, 통일을 실현하는 운동에 남긴 고인의 소중한 자취는 생전에 함께 투쟁해왔던 동지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며, 조국의 자주, 민주, 통일위업은 고인의 유지 그대로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고 강원진 선생의 영전에 삼가 명복을 빕니다.

2002년 6월 10일

자주민주통일미주연합 중앙위원회
---------------------------------------------------------------------

다음은 워싱턴 디씨에 거주하시는 통일운동가 정기열 목사님의 조시입니다.[민족통신 편집실]


통일운동가 고 강원진 선생님의 영전에 삼가 드립니다.


자주평화통일의 영광된 그 날을 앞당시기 위해
통일에 보탬이 되는 길이라면
거리와 시간과 돈과 건강을 마다 않으시고
그리도 분주히 한 생을
평생을
천지사방을 쉬지 않고 다니시고
뛰시고 달리셨던
선생님
통일운동가 고 강원진 선생님

마지막 우리 곁을 훌쩍 떠나 가시던
그 길 그 날 마저도
여전히
여전히 세상 어려운 이들의
어려움을 자신의 어려움으로 받아 안고
자원봉사의 길에 자신을 던져 일하시다가
그 것도 하루에 세 번씩을
새벽에 한번
낮에 한번
밤 늦게 한번 하셔서
사모님도 자식들도 동료들도 저도 모두
몸 돌보시면서 하시라고

그래도 막무가내 아니 이래야 건강하고 보람도 있고
몇 푼 안되지만 또 수고비로 나오시는 돈 모아
통일사업에 보태 쓰시겠다고
하시며
하시며
세상을 바르게 세워내는 일과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일에
나뉜 조국을 하나되게 하는 일에
그리도 그토록
자신을 던져 사시더니
던져 사시더니

앞으로도 최소한 10년 20년을 더 사시면서
일하셔야 한다고 부탁 말씀드렸는데
부탁 말씀드렸는데
그리도 훌쩍
그리도 훌쩍
우리 곁을 떠나시다니요….

조국이 분단되고 찢기고 나뉘어
칠천만 민족 남북해외 온 겨레가 온 몸으로
피멍이 시퍼렇게 겪어야 했던
분단의 오욕과 설움과 한의 피눈물을 삼키시며
척박한 해외통일운동의 주춧돌을 놓기 위해
앞 길을 헤쳐 가셨던 해외통일운동의 큰 어르신들
일본의 배동호 선생님도 떠나시고
미국의 임창영 선생님 이보배 어머님도 떠나시고
독일의 윤이상 선생님도 떠나셨는데

이제 그 분들의 후배로 남은 우리들
우리 후배들
가신 님들의 그 외길 걸음,
그 외길 그 큰 통일걸음에
부끄럽지 않게 살자고 그래서 통일에로 이르는 길을
활짝 열어나가자고
그 길을 여는데 남은 생애를 바쳐 가자고
토론토에서 12 시간 때로 16시간 걸리는
워싱턴 뉴욕 필라 시카고도 차로 훌쩍 떠나 내려오시고
나성 상항도 비행기로 훌쩍 날아 오시며
밤을 새워 길을 달려 왔으면서도 다음 날 새벽
나는 괜찮다고 그 환한 웃음으로
피곤도 수면부족도 다 털어내셨던
선생님
선생님

이제 한참 더 일할 나이라고
일찍 은퇴하셔서
이제 남은 생애 오로지
오로지
조국통일을 위한 그 길에
바쳐 일하시겠노라고
그래서 더더욱
저희들에게
주변의 동료들에게 운동의 큰 지맥이 되시고
큰 산이셨던
선생님
선생님
어찌 이리도
어찌 이리도
훌쩍 그리도 훌쩍
저희 곁을 떠나시나요

이번 가을 카나다대표단을 이끄시고
전민특위 국제진상조사단으로 조국을 방문하시겠다고
다 계획해 놓으시고
이번 주말 (6월 15일) 토론토에서 작년 뉴욕에서 개최했던
역사적인 코리아국제전범재판을 함께
치루며 고생하고 수고했던 카나다 동지들과
전범재판 1주년 기념행사와 통일정세 강연회를 열자고
하시며 강연회 준비와 행사에 그리도 분주히 뛰어 다니셨던
선생님
선생님

그러니까 목요일 6월 6일 저녁 선생님께서
갑자기 저희 곁을 떠나셨던 금요일 바로 전날
다음 주말 비행 도착시간을 확인해서 연락하라고 부탁하시며
주셨던 전화를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어찌 이렇게 이모든 일을 두시고
그리도 온 몸을 온 몸을 던져 사셨던 통일의 영광된 그 날을 보지 못하시고
그리도 훌쩍
그리도 훌쩍
떠나시나요

아무도 감히 자주통일 소리를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살았던
그 시절에
그 엄혹한 시절에
그 참으로 엄혹하고 어려웠던 시절에
조국과 민족에 대한 높은 긍지와
흔들림 없는 신심과 의지로
꿈에도 잊지 못했던 조국을
어머니 조국을
그 어머니 조국을
조국을
심장에 깊이 깊이 담으신채
자주통일의 삶을 앞 당겨 사시려 애쓰셨던
선생님
선생님

겨레가 하나됨을 위해 거리도 시간도 돈도 건강도 마다 하지 않으시고
오직 한 길을
그 외로운 외길을
그렇죠 몹시도 외로우셨던 그 외길을
묵묵히 걸으셨던
선생님
선생님
외길을 걸으셨던 이유로
그 하나 이유로
겨레가 하나되고 겨레가 제 땅에서 주인되고
겨레가 삼천리 강토 방방골골에서 번영하는 꿈을
자주통일에의 꿈을 가지셨다는 이유로
다니셨던
교회에서도 동창회에서도 친구들과 이웃에서도
때로 감당키 어려우셨던
어려움을 헤어짐의 어려움을 생이별의 어려움을 버림받고 배척받고 오해받았던 어려움을
조국의 남녘방문이 대표적인 반한/반정부인사로 되어
1966년 카나다 이주 뒤 단 한번도 조국의 남녘 땅을 밟지 못하셨던
그 어려움을 그 외로움을
나 개인만의 어려움이 아니라고
나 혼자 만의 외로움이 아니라고
전체 겨레의 아픔이라고 분단의 아픔이라고
받아내시고 삼키시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때로 피눈물을 흘리시고
감당키 어려웠던 외로움을 이기시고 달래셨던
선생님
선생님
그 분단의 상처를 당신 자신은 물론이고 사모님과 자식들까지도
겪으셔야 했지요

그런데
이제 세상에 우뚝 통일의 이정표로 솟은 6.15가
통일을 먼저 사신 그 모든 이들의 피와 땀으로 밑거름되어
밝은 빛으로 분단의 어두움을 거두어내는 밝은 해로
6.15가 우리 곁에 다가 왔지요
그래서 그날 한잠 잠을 못 주무셨지요
바로 그 날 6.15 소식에 가슴을 설레시며 눈물을 흘리시며
한잠 잠을 못 주무시며
가슴을 설레시며
밝은 새날을 이제 보게 되었다고
통일의 그 날을 보시게 되었다고
그리도 좋아하셨던
선생님
선생님

노근리미군학살만행 소식 이후 연이어 세상에 알려지고 밝혀졌던
전쟁 때 3백50만 민간인 학살만행 소식에
하시던 일 모두 다 접으시고 오직 진실규명 사업에
바로 그 민간인 학살만행 진상규명사업에
반세기 만에 왜곡되고 조작되고 파묻혔던 진실을 밝히시는 일에
그래서 짓밟힌 민족의 존엄을 다시 세워내는
자주통일사업에
미군학살만행진상규명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 결성사업에
뉴욕에 코리아국제전범재판을 세워내는 사업에
한 평생 사시며 외롭게 갈고 닦으셨던 모든 것을 던져
동지들을 규합하고 친구를 사귀고 만들어 그들과 함께
분단 이후 최초로
카나다 동포사회 최초로
카나다 사람들을 포함해서 40여명이 넘는 대표단을
뉴욕 워싱턴 전범재판에 참가시키셨던
선생님
선생님

이제 세상이 변화되어 정말 세상이 많이 변화되어
아니 세상을 변화시키시어
그래서 조선이 카나다를 비롯 이태리 영국 독일 등 유럽국가들과 국교도 맺고
한 해 조국의 북녘 땅을 찾는 우리나라 사람 다른 나라 사람 수십 수만을 헤아리게 되어 이제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가고 오는
아리랑 축제로 세상 사람 모두 갈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끊긴 남과 북의 혈맥을 잊기 위해
감히 디디지 못했던
통일방북의 걸음을 70년 대 중반부터 무수히 다니셨던
그래서 통일에로 이르는 길을 갈고 닦고 넓히는데 자신을 던지셨던
그래서 세상을 바꾸는 일에 앞장섰던
그래서 세상이 많이 바뀌어 많이 변화되어
그래서 이제 사모님도 교회대표로 초청되어 한국교회여성대회에 초청받아
아니 40여년 가까이 못 갔던 조국의 남녘 땅 이제는 갈 수 있겠는가 확인이라도 하는 기회가 되자고 해서
세상이 변화가 되어 서울을 방문하셨던 때에
그래서 사모님도 댁을 비우시고 자녀들도 출가하여 벤쿠버에 있을 때
홀로 집 지키시며 자원봉사하신다고
새벽에 한번
낮에 한번
저녁 늦게 한번 씩 도움 필요한 분들 도우신다고
나가셨던 그 날 6월 7일
그 새벽에 집을 나가신 뒤 그 길로 영영 이 세상을 떠나
우리 곁을 떠나신 길이 되셨나요
선생님
선생님

오늘 선생님의 영결식장에
선생님
선생님
모인 우리 모두를 보시죠
여기 가족들과 친구들 토론토 지역 교민들은 물론이고 선생님과 뜻을 같이 했던
카나다 동지들도 그리고 남북해외 각지에서 보내온 화환과 조사를 듣고 보고 계시죠 듣고 보고 계시죠 그렇죠
그런데 선생님 한 가지 기쁘게 참으로 기쁘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선생님 걸으셨던 그 통일방북의 걸음들이
겨레가 하나되게 하기 위해 고집스럽게 외길을 걸으셨던 그 걸음 걸음들이
오늘 이 선생님과 작별하는 이 자리에
아름다운 하나의 결실로 되어 이렇게 우리 앞에 와 있습니다
남북해외 겨레가 하나로 되어 와 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그리도 꿈에도 못잊으셨던 조국의 북과 남에서 그리고 해외에서
동지들이 동료들이 선배 후배들이
선생님의 삶과 일을 기려
진심을 보내 왔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선생님 선생님 조국의 북녘에서만이 아니라
조국의 남녘 정부를 대표해서 이곳 카나다에 와 계시는 대한민국 영사관에서도
화환을 보내오셨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도 화환을 보내오셨답니다
선생님 대한민국 영사관에서도 말입니다
선생님 영결식장에서 우리는 그래서
조국의 환한 미래를
어두웠던 나뉨과 상멸의 죽음을 넘어
통일조국의 밝고 희망찬 상생의 미래를
내다 보게 됩니다
선생님
선생님

온 몸 던져 닦으시고 세워 오셨던
가시밭길이고 좁은 문이었던 통일에로 이르는 길이
넓어지고 탄탄해지고 많은 이들이 오가는 대로로 바뀌었습니다
선생님 걸으셨던 그 외길이 이제 외길이 아닌 대로로 많은 이들이 오가는 길로 바뀌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한 몸 던져 뿌리신 씨앗들이
이제 크게 자라 뿌리 깊은 나무로 되어 가고 있습니다
민족의 자주권을 되 찾고
잘린 겨레의 허리를 다시 이어
살기 좋고 평화로운 통일세상이 오는 날
선생님
선생님
꼭 다시 부활하실 것입니다
아름다운 통일의 넋으로 소생하실 것입니다
통일 조국의 영광이 한/조선반도 삼천리 방방골골에 꽃 필 때
선생님
통일운동가 강원진 선생님 이름이
길에도 돌에도 꽃나무에도 하늘에도 대지를 촉촉히 적시는 단비에도
통일운동가 강원진 선생님 이름으로
후대에 자랑스럽게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선생님 편히 잠드십시요
선생님 사셨던 자주통일에의 삶과 정신과 넋은
이제 선생님 뒤를 쫏아 가고 오는 이들에 의해 영생하실 것입니다
영생하실 것입니다

부디 편히 잠드소서
부디 편히 잠드소서

선생님 가신 길 사신 삶 통일에로 향한 그 방향과 뜻을
이제 살아 남은 저희들
부끄럽지 않게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렵니다
최선을 다해 그 길을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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