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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으로 고발된 민간인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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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2-07-16 00:00 조회1,4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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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증언대회가 우리 역사에 진실을 밝혀내고 서러운 한들이 풀
려 화해와 평화를 도모하는 그 시발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범국민위원
회」(아래 범국민위) 이해동 상임공동대표의 대회사로 4일 "2002 한국
전쟁전후 피학살자 유족증언대회"(아래 유족증언대회)는 시작됐다. 이
날 유족증언대회는 그 동안 알려지지 않은 피학살 사례들이 새롭게 증
언돼 눈길을 끌었다.

거창에서 올라온 신용은 씨는 할아버지로부터 전해들은 아버지의 죽음
을 눈물로 증언했다. 신씨의 집안은 4대째 항일운동을 해 왔으며, 특히
신씨의 아버지는 해방 후 친일파로부터 양식을 빼앗아 굶주리고 있는
귀국동포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이러한 신씨의 아버지를 정부는 보
도연맹에 가입시켰으며, 어느날 경찰서로 불러 다른 보도연맹원들과
함께 학살했다. 당시 5세였던 신씨는 "아버지를 따라가겠다"던 자신에
게 깨엿을 주면서 "내 빨리 갔다 올께"라고 달랜 후 집을 나가는 아버
지의 뒷모습을 생생히 기억했다.

보도연맹은 49년 좌익인사의 교화 및 전향을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다.
주로 사상적 낙인이 찍힌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제적으로 가입시켰지
만, 지역별 할당제가 있어 사상범이 아닌 경우에도 등록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는 본인도 모르게 보도연맹원 명단에 올려진 경우도 있
고, 일부 사람들은 보도연맹이 무슨 좋은 단체인 줄 알고 돈을 주고
가입하기도 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정부와 경찰은 보도연맹원들이
인민군에 동조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무차별적으로 즉결처분을 단행
해 민간인 학살을 일으켰다.

거제에서 온 서철안 씨는 경찰이 7백50명 정도의 보도연맹원들을 50년
7월 25일부터 열흘간 매일 70여명씩 수장시킨 사실을 고발했다. 당시
서씨의 둘째 형도 보도연맹에 억지로 가입돼 죽임을 당했다. 서씨의
둘째 형은 죽기 전 큰 형과 면회할 때 "어제 밤에 옆 방에 있던 사람
들의 구두발자국 소리가 났고 이후 뱃소리가 들렸다"며 "나도 오늘 죽
을 것 같으니 앞으로 면회오지 마라"고 자신의 죽음을 미리 전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서씨는 "큰 형에게 그 말을 듣고 나도 막 죽고 싶었
다"라며, "재판도 없이 물에 빠뜨리는 게 사람으로 할 일입니까?"라고
울분을 토했다.

완도지역 유가족 김보희 씨는 한국전쟁 당시 국군이 인민군 복장을 하
고 들어와 환영하는 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했다고 증언했다. 그때 완도
전역에서 학살된 수만 해도 1천여 명. 남원의 김덕초 씨는 "나는 인민
군이나 빨치산이 양민을 학살하는 것은 못 봤지만 국군이 학살하는 것
은 직접 봤다"고 말했다. 김씨의 증언에 따르면, 50년 11월 17일 군인
들이 마을 사람들을 6백평 정도의 논에 모아놓고, 17∼35세 청년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간 후 40분 정도 뒤에 총성이 들렸다고 한다. 그외
나주 봉황면 철야마을 학살, 단양 괴개굴 미군폭격에 의한 학살 등이
새롭게 증언됐다.

유족증언대회에서는 그 동안 잘 알려진 노근리 사건의 최근 현황이 소
개되기도 했다. 노근리 사건 대책위의 정구도 씨는 "한국과 미국 정부
가 공동조사한 보고서가 나왔지만 진상을 심각하게 왜곡·조작하는 것
이어서 (대책위에서) 반론서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 정부는
추모비를 건립해 주겠다고 하면서 한국전 당시 미군에 의한 희생자 전
체에 대한 추모비를 건립하려 하고 있다"고 폭로하고, "이는 노근리
사건을 계기로 다른 사건까지 덮어버리겠다는 의도"라며 현재 추모비
건립에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했다.

진도문화원장 박문규 씨는 올해 2월 "갈매기섬"이라는 진도 앞 무인도
에 뼈가 즐비한 것을 확인하고 처음으로 진혼제를 올렸다고 보고했다.
유골들은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후퇴하던 해남경찰들이 보도연맹원
2백60여 명을 갈매기섬에서 집단처형한 결과. 박씨는 "침묵과 망각의
세월이 50년이었다"며, "이제는 통합특별법을 제정해 국가권력으로 진
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을 하고 국비로 위령제를 지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날 증언대회에는 1백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3시간에 걸쳐 19명의
유족 증언이 이어졌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는 인민군에 의한 학살만
이 과도하게 부각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학살의 90% 이상이 한
국군이나 경찰에 의한 것임이 밝혀지면서 민간인학살 문제는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범국민위 김동춘 사무처장은 "전쟁상황은 "적과 아"라는 이분법을 강요
하는 상황"이라며, "인권개념이 없는 국가공권력은 전쟁시 적에게 동
조할 우려 때문에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한다"고 밝혔다. "왜곡된 역사
를 꼭 바로잡아 달라는 것 밖에 할 말이 없다"는 유족들의 통한은 50
년간 강요당한 침묵을 조금씩 깨고 있었다. [범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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