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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미국의 만행자료 새로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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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minjok.c… 작성일02-07-26 00:00 조회1,4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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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감행한 미제의 만행자료들 새로 공개
 (평양 7월 17일발 조선중앙통신)보도에 의하면 미제가 조선에서 감행한 만행자료들이 최근 새로 공개되였다.
 우선 195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 미국이 공화국북반부에 파견한 <무장공작부대>의 진상이 공개되여 론의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1950년부터 1956년사이에 미중앙정보국 남조선지부가 창설한 <한미합동고문단첩보부대>가 훈련을 주어 북에 투입한 무장악당들은 약 3,000명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1956년이후부터는 이 첩보부대의 활동자체가 비밀에 붙여 져 있다.
 이러한 사실이 북반부지역에 잠입하여 군사시설의 파괴,살인,랍치,정보수집행위를 감행한 자들에 의하여 폭로되였다.이들의 유가족들이 진상해명과 보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한다.
 한편 미제의 사촉밑에 남조선군 해당기관이 북반부에 파견한 무장악당들의 수는 확인된것만 하여도 수천명에 달한다.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소속된 한 <민주당 의원>은 2000년 10월 20일에 있은 한 <국회>회의에서 정전후 1953년부터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될 때까지 파견된 무장인원들가운데서 돌아 오지 못한 자들이 7,726명이라고 하면서 그중 366명의 명단을 공개하였다.
 남조선<국회>에서 <대북무장공작부대>에 관한 사실이 밝혀 진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그후 여러건의 자료들이 더 공개되였다.
 그에 의하면 남조선군은 미군과는 별도로 1952년부터 <고등첩보부>에서 테로분자들을 훈련시켜 대부분은 륙지로,일부는 해상과 공중으로 북반부지역에 들이 밀었으며 1954년 3월부터는 <민간인>의 신분으로 침입시켰다.
 이 첩보부의 대호는 <륙군 4863부대>이며 그 당시에는 30개 대가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서울시 정릉의 제1교육대,남조선강원도의 첩보대훈련소의 규모가 제일 컸다.
 1967년부터 <륙군첩보부대>로 그 이름을 고치고 1978년까지 훈련과 파견을 계속하였다.
 륙군뿐아니라 해군에도 <수중파괴부대>라고 불리우는 <무장공작부대>가 있었다.1954년 제1기생으로 훈련을 받고 20년동안 근무하면서 수십번이나 북에 침입하였던 75살난 박 아무개는 <1970년대에도 이북에 침투했다>고 증언하였다.
 이때까지 이에 대해 침묵을 지켜 오던 남조선당국은 최근에 <무장공작원>들의 생사확인과 보상을 요구하는 단체들이 결성되고 <국회>에서도 론의되기 시작하자 2000년 10월 3일에 <국방부>관계자회의를 가지고 토의하였다.또한 그해 11월 2일 서울에 있는 <정보사령부>앞에서는 생존자 70여명이 보상을 요구하여 처음으로 공개적인 시위를 단행하였다.
 다음으로 지난 조선전쟁시기 미군이 공화국북반부지역의 주민들을 학살하고 생물무기를 사용하였다는것을 폭로하는 자료들이 최근에 미국내부에서 많이 공개되고 있다.
 미국의 조선문제연구사 쎄리그 해리슨은 <미군은 북조선에서 생물무기를 사용하였다>고 하면서 <로근리사건에 대하여 미군당국은 북조선게릴라가 피난민을 방패로 침투한 혼란에서 일어 난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미국인의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관련이 있다>고 폭로하였다.
 미 제24사단의 전쟁기록에 의하면 공화국북반부지역으로부터 철수하는 길옆의 마을을 모조리 파괴하라는 명령이 있었다 한다.미 제1기갑사단의 전쟁기록에도 평양,흥남,원산을 초토화할데 대한 명령이 있었다.또한 다른 공식문서에도 전쟁초기부터 <적>이 숨어 있다고 판단하면 나팜탄으로 마을을 불 사르고 피난민행렬을 공격하였다고 씌여 있다.해리슨은 신천땅에서의 집단학살에 대해서도 자료를 공개하였다.
 1998년에 인디아나대학에서 출판한 도서 <미군과 생물무기전쟁-조선반도에서 랭전초기의 비밀>에서는 미군이 세균에 감염시킨 벼룩,진드기,거미를 평양을 비롯한 북반부지역에 뿌려 병을 퍼뜨리였다고 씌여 있다.또한 카나다의 요크대학에서 아시아력사와 군사력사를 연구하고 있는 두 교수들도 미군의 생물전쟁자료들을 공동으로 연구하여 그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 자료들에 의하면 조선전쟁에서 생물무기사용계획의 작성자는 당시 미국방장관이였던 죠지 마샬로서 그는 1950년 10월 27일에 세균무기개발계획을 세웠다.
 1951년 12월 31일에 마샬의 후임으로 부임한 로버트는 세균무기를 실전에 투입할 준비를 다그칠것을 명령하였으며 미공군참모부에서는 <지금까지 실전에 사용한적이 없는 강력한 공격무기>의 개발에 착수하였다.
 미공군의 요청을 받은 연구진과 군수기업체는 콜레라,적리,티브스와 같은 전염병과 농작물오염을 확대하는 세균을 개발하였다.또한 세균을 옮기는 곤충과 이 곤충을 산포하는 방법,심리전을 목적으로 하여 뿌리는 삐라에 유독성포자를 묻혀서 일종의 <분사포탄>으로 리용하는 계획 등이 연구되였다.
 세균무기는 1952년 3월부터 전투부대에서 사용하였는데 핵무기와 생물무기를 동시에 사용하는 연구도 진행하였다.
 조선과 중국의 과학자들은 그 지역에서는 볼수 없는 해충이 미군용기의 항로를 따라 집중적으로 발견되고 그때까지 있어 보지 못한 전염병이 발생하였다는것을 밝혔다.일부 전염병은 이미전에 조선반도에서 근절된것이였다.1952년 3월 조중국경지대에서 뇌염이 류행한것도 그 한가지 실례이다.
 미국은 만주에 있던 일본군 세균전부대(731부대) 요원들의 전범을 면제한다는 조건으로 그들을 손에 넣어 미군의 생물무기연구에 합류시켰다.
 미국은 핵무기를 연구할 목적으로 방사능가스를 주민지대에 산포하거나 방랑자,정신병환자들에게 방사능물질을 주사하는 인체실험을 감행하였다.이와 마찬가지로 생물무기를 연구할 목적으로 주민지대,비행장 등에 세균을 산포하거나 마약,환각제를 먹이는 인체실험을 하였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미행정부는 오늘까지도 조선전쟁에서의 생물무기사용을 부인하고 있다.그러나 트루맨대통령이 1953년에 쓴 편지에서 <태평양전쟁이 1945년 8월에 끝나지 않았으면 미국은 생물,화학무기를 사용하였을것이다>라고 한것은 미국의 생물무기개발이 조선전쟁이전부터 시작되였다는것을 의미한다.
 카나다의 두 교수는 <생물무기전쟁은 미국의 군사전략과 떼놓을수 없는 부분이며 조선전쟁은 그 실험무대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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