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다녀온 윤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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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minjok.c… 작성일02-10-18 00:00 조회3,036회 댓글3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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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내레 고저 놀새떼 아니갔어?" 이산가족 부모 생각에 공연 중 눈물
민주노동당기관지 ㅣ진보정치ㅣ
이지안 mulu@kdlpnews.org
‘남쪽‘의 ‘록밴드’로서는 첫 평양공연이어서 그랬을까. MBC ‘2002 평양 특별공연’을 마친 윤도현 씨는 서울로 되돌아온 지 이틀이 지나서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목소리였다.
‘오 필승코리아’로 국민가수가 된 ‘윤도현밴드’는 지난 29일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무대에서 ‘오 통일 코리아’, ‘뱃노래’ 등의 록을 선사해 또다른 ‘문화 충격’을 줬다는 평을 들었다.
“윤도현밴드의 공연이 북한 주민들이 남한 젊은이들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윤도현 씨를 지난 2일 전화로 만나봤다. 그는 애초 28일로 예정돼 있다가 이번 평양 방문으로 연기된 대구공연을 위해 김포공항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강행군이다. 피곤하지 않나.
= 인천공항에 도착하면서 시간의 흐름이 달라졌다. 시간이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진 것처럼 마치 딴 세상이라도 다녀온 느낌이다. 여기저기에서 인터뷰 요청도 많이 들어온다.
△ 조선중앙TV에서 생방송된 공연실황이 시청률 90%를 넘었고 청중 반응도 폭발적이었다던데.
= 90분간의 정규공연과 마지막 커튼콜까지 96분간 공연했다. 특히 이번 콘서트는 조선중앙 TV를 통해 편집 없이 그대로 생방송 됐다. 북한에는 조선중앙 TV를 비롯해 총 3개의 채널이 있는데 조선중앙 TV만 매일 방송하고 나머지 두 채널은 주말에만 방송한다. 우리 공연은 마침 주말에 열려 3개의 채널에서 동시에 생방송 됐다. 북한에서는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한다.
△ 청중 반응은 어땠나.
= 그동안 북한에 초청된 가수들은 대부분 북한 가요와 형식이 비슷한 트로트 가수인 터라, 우리는 음악적으로 ‘이방인’이었다. 노랑으로 물들인 염색머리에 힙합바지를 입은 록밴드의 모습을 처음 본 북쪽 관객들도 우리를 낯설어하는 것 같았다. 공연 처음에는 객석의 청중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장했었다. 중간에 내가 “남쪽의 놀새떼(오렌지족)라고 생각하시고 편안하게 우리를 봐달라”는 말을 하자 무표정하던 청중들이 환호와 박수로 격려해줬고, 나도 조금씩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 후로는 뜨거운 공연이 진행됐으며 청중들 반응도 대단했다. 공연 후 북한 동포들을 만날 때면 “고저 놀새떼 아니갔어, 고저”라면서 반갑게 맞아줬고 숙소인 고려호텔의 여성 종업원들도 “감동적이었시오”라며 아는 체 해왔다.
△ 공연 도중 윤도현 씨가 흘린 눈물이 장안의 화제다. 왜 울었는지 궁금하다.
= 마지막 곡으로 아리랑을 부를 때다. 느린 버전이었는데 객석 앞에 앉은 할머니가 정겨운 눈빛으로 공연을 즐기고 계시는 모습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때 우리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외할머니 친척들이 이북에 산다. 명절 때만 되면 으레 나를 붙잡고 친척들을 찾아달라고 말씀하시곤 했었다. 6.25 때 피난 오면서 파주에 정착한 우리 부모님들도 황해도 출신인데, 우리 가족과, 지척에 친지를 두고도 만날 수 없는 이산가족들, 그리고 그러한 한반도의 현실을 생각하니까 갑자기 뜨거운 기운이 가슴에서부터 치밀고 올라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 공연 소감은.
= ‘이런 걸 언제 다서 와서 하나’, 커튼콜 받고 나니까 만감이 교차했다. 할 수만 있다만 다음에 꼭 다시 와서 북한의 젊은이들과 한바탕 어울려보고 싶다. 5박6일의 평양 체류기간 동안 노래도 하나 만들었다. 그 노래를 평양에서 부르고 싶다. 러시아의 빅토르 최나 중국의 최건처럼 북쪽에도 락발라드 밴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 조인트콘서트도 할 수 있을 텐데.
△ 평양의 시설이 공연하는 데 불편하지는 않았나.
= 전력이 약해서 극장주변 주택가들의 전원을 끄고 공연을 했지만, 극장 시설 자체는 훌륭했다. 일단 북쪽 사람들은 가사가 들리지 않으면 노래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악기소리는 줄이고 목소리는 높였다. 그리고 전체 볼륨을 낮춰 록밴드의 충격을 완화시켰다. 공연에 필요한 장비는 서울에서 가져갔다.
△ 평양 얘기를 좀 해보자.
= 평양거리는 거대한 영화세트장 같았다. ‘남남북녀’라는 말처럼 평양여성들은 깔끔하고 세련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북한 사람들은 아주 친절했는데 그 중 생맥주집 ‘접대원’ 아가씨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영업마감 시간인 11시를 넘겨 새벽3시까지 술을 마셨는데 접대원 아가씨는 싫은 내색 없이 “봉사하려면 끝까지 해드려야죠”라고 얘기했었다.
△ 평양 방문 이후 통일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 북쪽 젊은이들이 남쪽 젊은이들보다 통일에 대해 더 적극적인 것을 보고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통일에 대해 얼만큼이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적으로 우린 통일에 대해 큰 관심이 없질 않나. 이번 평양 공연은 한민족이라는 뜨거운 핏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햇볕정책은 문화적·정서적으로 동질성을 회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돼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만국의 언어인 ‘음악’이 남북간 이질감을 해소하고 한민족의 동질감 회복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고, 이번 윤도현 밴드의 공연도 북한 주민들이 남한 젊은이들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
[출처; 참세상 뉴스 10-9-02]
민주노동당기관지 ㅣ진보정치ㅣ
이지안 mulu@kdlpnews.org
‘남쪽‘의 ‘록밴드’로서는 첫 평양공연이어서 그랬을까. MBC ‘2002 평양 특별공연’을 마친 윤도현 씨는 서울로 되돌아온 지 이틀이 지나서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목소리였다.
‘오 필승코리아’로 국민가수가 된 ‘윤도현밴드’는 지난 29일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무대에서 ‘오 통일 코리아’, ‘뱃노래’ 등의 록을 선사해 또다른 ‘문화 충격’을 줬다는 평을 들었다.
“윤도현밴드의 공연이 북한 주민들이 남한 젊은이들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윤도현 씨를 지난 2일 전화로 만나봤다. 그는 애초 28일로 예정돼 있다가 이번 평양 방문으로 연기된 대구공연을 위해 김포공항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강행군이다. 피곤하지 않나.
= 인천공항에 도착하면서 시간의 흐름이 달라졌다. 시간이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진 것처럼 마치 딴 세상이라도 다녀온 느낌이다. 여기저기에서 인터뷰 요청도 많이 들어온다.
△ 조선중앙TV에서 생방송된 공연실황이 시청률 90%를 넘었고 청중 반응도 폭발적이었다던데.
= 90분간의 정규공연과 마지막 커튼콜까지 96분간 공연했다. 특히 이번 콘서트는 조선중앙 TV를 통해 편집 없이 그대로 생방송 됐다. 북한에는 조선중앙 TV를 비롯해 총 3개의 채널이 있는데 조선중앙 TV만 매일 방송하고 나머지 두 채널은 주말에만 방송한다. 우리 공연은 마침 주말에 열려 3개의 채널에서 동시에 생방송 됐다. 북한에서는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한다.
△ 청중 반응은 어땠나.
= 그동안 북한에 초청된 가수들은 대부분 북한 가요와 형식이 비슷한 트로트 가수인 터라, 우리는 음악적으로 ‘이방인’이었다. 노랑으로 물들인 염색머리에 힙합바지를 입은 록밴드의 모습을 처음 본 북쪽 관객들도 우리를 낯설어하는 것 같았다. 공연 처음에는 객석의 청중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장했었다. 중간에 내가 “남쪽의 놀새떼(오렌지족)라고 생각하시고 편안하게 우리를 봐달라”는 말을 하자 무표정하던 청중들이 환호와 박수로 격려해줬고, 나도 조금씩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 후로는 뜨거운 공연이 진행됐으며 청중들 반응도 대단했다. 공연 후 북한 동포들을 만날 때면 “고저 놀새떼 아니갔어, 고저”라면서 반갑게 맞아줬고 숙소인 고려호텔의 여성 종업원들도 “감동적이었시오”라며 아는 체 해왔다.
△ 공연 도중 윤도현 씨가 흘린 눈물이 장안의 화제다. 왜 울었는지 궁금하다.
= 마지막 곡으로 아리랑을 부를 때다. 느린 버전이었는데 객석 앞에 앉은 할머니가 정겨운 눈빛으로 공연을 즐기고 계시는 모습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때 우리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외할머니 친척들이 이북에 산다. 명절 때만 되면 으레 나를 붙잡고 친척들을 찾아달라고 말씀하시곤 했었다. 6.25 때 피난 오면서 파주에 정착한 우리 부모님들도 황해도 출신인데, 우리 가족과, 지척에 친지를 두고도 만날 수 없는 이산가족들, 그리고 그러한 한반도의 현실을 생각하니까 갑자기 뜨거운 기운이 가슴에서부터 치밀고 올라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 공연 소감은.
= ‘이런 걸 언제 다서 와서 하나’, 커튼콜 받고 나니까 만감이 교차했다. 할 수만 있다만 다음에 꼭 다시 와서 북한의 젊은이들과 한바탕 어울려보고 싶다. 5박6일의 평양 체류기간 동안 노래도 하나 만들었다. 그 노래를 평양에서 부르고 싶다. 러시아의 빅토르 최나 중국의 최건처럼 북쪽에도 락발라드 밴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 조인트콘서트도 할 수 있을 텐데.
△ 평양의 시설이 공연하는 데 불편하지는 않았나.
= 전력이 약해서 극장주변 주택가들의 전원을 끄고 공연을 했지만, 극장 시설 자체는 훌륭했다. 일단 북쪽 사람들은 가사가 들리지 않으면 노래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악기소리는 줄이고 목소리는 높였다. 그리고 전체 볼륨을 낮춰 록밴드의 충격을 완화시켰다. 공연에 필요한 장비는 서울에서 가져갔다.
△ 평양 얘기를 좀 해보자.
= 평양거리는 거대한 영화세트장 같았다. ‘남남북녀’라는 말처럼 평양여성들은 깔끔하고 세련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북한 사람들은 아주 친절했는데 그 중 생맥주집 ‘접대원’ 아가씨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영업마감 시간인 11시를 넘겨 새벽3시까지 술을 마셨는데 접대원 아가씨는 싫은 내색 없이 “봉사하려면 끝까지 해드려야죠”라고 얘기했었다.
△ 평양 방문 이후 통일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 북쪽 젊은이들이 남쪽 젊은이들보다 통일에 대해 더 적극적인 것을 보고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통일에 대해 얼만큼이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적으로 우린 통일에 대해 큰 관심이 없질 않나. 이번 평양 공연은 한민족이라는 뜨거운 핏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햇볕정책은 문화적·정서적으로 동질성을 회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돼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만국의 언어인 ‘음악’이 남북간 이질감을 해소하고 한민족의 동질감 회복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고, 이번 윤도현 밴드의 공연도 북한 주민들이 남한 젊은이들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
[출처; 참세상 뉴스 10-9-02]
댓글목록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언젠가는 우리나라의 아이돌가수들과 유명뮤지션들이 평양공연을 했으면 좋겠고 그 공연을 조선중앙TV에서 생중계로 보여줬으면 좋겠다! 물론 우리나라의 꽃미남 아이돌가수들과 북녘의 꽃미남 방송원인 문진혁방송원이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아차 북녘에서 최초로 공연한 록밴드로는 1991년도에 뉴스데스크에서도 방송했는데 일본의 여성하드록그룹 쇼야라고 1981년도에 결성된 그룹으로 음악공연보다 이들의 옷차림이 북녘예술단들 입장에서는 완죤 쇼크였다고~!!!! 그이유가 다리가 훤하게 드러대는 미니스커트랑 강렬한 화장 그리고 노랗게 물들인 염색머리였다나? 참고로 최초로 북녘에서 공연한 외국인예술인들은 1982년 4월15일 김일성주석의 70회생일때 첫공연한 4월친선예술축전때 공연한 예술인들로 그전에는 단한번도 외국인예술인들을 초청해 공연한적이 없었을정도라니 짐작이 간다~!!!!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윤도현밴드가 평양에서 공연했을때 문진혁방송원은 만12세의 중학생인 어린소년이었고 김윤심방송원은 만18세의 평양연극영화대학 방송과에 재학중이었다는거 몰랐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