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green>황석영 작가, 미주순회 강연</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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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minjok.c… 작성일02-10-24 00:00 조회1,48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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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작가로 활약해 온 황석영 작가는 지난 1일부터 9일동안 미국 서부지역 대학들을 대상으로 한국문학을 소개하는 순회강연을 마치고 10일 독일 후랑크후르트로 떠났다.
그는 하와이 대학에서 가진 첫 강연을 비롯 아리조나 주립대, 캘리포녀 버클리대, 사립명문 남가주대, 캘리포녀 로스엔젤레스대 등에서 한국문학의 발자취와 현주소를 조명해 주며 특히 이른바 <세계화>에 휩쓸려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지 못했던 문학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한편 동아시아의 문명을 대안으로 하는 문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목을 모았다.이날 순서에는 시인 강은교 교수(현 동아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김승희 교수(서강대 국문학과)등도 발제자들로 참여해 자신들의 시, 소설 일부를 소개하기도 했다.
한국의 대산문화재단이 마련하여 이뤄진 이번 순회강연 마지막 날인 9일 행사는 로스엔젤레스 소재 유씨엘에이(UCLA) 로이스 홀에서 진행됐다. 이날도 황석영 작가는 자신의 작품 일부를 소개한후 참석자들의 질의응답에서 한국문학의 한계점을 지적하면서 동아시아양식을 문학의 내용에 담은 새 방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그의 최근 작품, <심청>과 <손님>이 그러한 작업의 일환들이라고 설명해 주며 이것은 서구문화의 위기의식을 주체적 자세로 창조해 가는 노력의 과정이라고 풀이했다.
이 같은 작업을 구상하는 과정으로서 그는 중국, 일본, 한국 작가들 모임을 통해서 동아시아 문명을 이 시대의 중심문화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도 술회했다.
분단시대에서 통일문학을 지향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그의 관심은 지대했다. 이북방문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1993)를 통해 반국시각적 문학조류를 온국시각적 문학으로 승화시키려고 실험했던 그는 그러한 노력 때문에 감옥생활로 오랜 시련을 겪기도 했다.
작년에도 평양서 개최된 8.15민족통일대축전 행사에 참가하여 북측 문예인들과 만나 통일문학에 대한 방향과 사업들을 의논하여 남북문예인들의 공동행사를 추진하려고 하였으나 당초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아 이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피력하기도 했다.
황석영 작가는 1943년 중국 장춘에서 태어났다.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한 학력을 갖고 있다. 그의 문학적 자질은 이미 경복고등학교에 재학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1962년 <입석 부근>이란 소설로 "사상계"신인문학상을 받으면서 문단에 등단했고, 1970년 <탑>이라는 작품이 일간신문 신춘문예작품으로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70년대의 소설 <객지> 등 3권의 중단편집과 1984년 대하소설 <장길산>(전 10권) 등 리얼리즘(그는 현실주의라고 번역함) 미학의 정점에 이른 걸작들을 발표하면서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부상했다. 월남 전쟁에 종군하고 70~80년대의 군사독재체제에 대한 저항적 문화운동과 관주민중항쟁에 참여한 실천문학가로 활약했다.
그는 1989년 이북의 <문학예술총동맹>초청으로 방북했고 이후 독일 미국 등지에서 망명생활을 보냈다. 1993년 4월 귀국하여 방북사건으로 7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하던 중 5년 만인 1998년 3월에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작품들로는 <객지>(1974), <부망, 멀고도 고적한 곳>(1975), <심판의 집>(1977), <가객>(1978) 등과 장편소설 <장길산>(1984), <무기의 그늘>(1988), 희곡집 <장산곶 매>(1980), 광주항쟁 르포 <죽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이북방문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1993), 월남전쟁을 그린 <무기의 그늘>(2000), <손님>으로 대산문학상(2001) 수상. 그의 작품집들은 일본, 중국, 대만, 미국, 그리고 프랑스에서 출판되어 소개되어 왔다.
[민족통신 노길남 편집인 10/09/2002]

한국의 대산문화재단이 마련하여 이뤄진 이번 순회강연 마지막 날인 9일 행사는 로스엔젤레스 소재 유씨엘에이(UCLA) 로이스 홀에서 진행됐다. 이날도 황석영 작가는 자신의 작품 일부를 소개한후 참석자들의 질의응답에서 한국문학의 한계점을 지적하면서 동아시아양식을 문학의 내용에 담은 새 방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그의 최근 작품, <심청>과 <손님>이 그러한 작업의 일환들이라고 설명해 주며 이것은 서구문화의 위기의식을 주체적 자세로 창조해 가는 노력의 과정이라고 풀이했다.
이 같은 작업을 구상하는 과정으로서 그는 중국, 일본, 한국 작가들 모임을 통해서 동아시아 문명을 이 시대의 중심문화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도 술회했다.

작년에도 평양서 개최된 8.15민족통일대축전 행사에 참가하여 북측 문예인들과 만나 통일문학에 대한 방향과 사업들을 의논하여 남북문예인들의 공동행사를 추진하려고 하였으나 당초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아 이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피력하기도 했다.
황석영 작가는 1943년 중국 장춘에서 태어났다.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한 학력을 갖고 있다. 그의 문학적 자질은 이미 경복고등학교에 재학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1962년 <입석 부근>이란 소설로 "사상계"신인문학상을 받으면서 문단에 등단했고, 1970년 <탑>이라는 작품이 일간신문 신춘문예작품으로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70년대의 소설 <객지> 등 3권의 중단편집과 1984년 대하소설 <장길산>(전 10권) 등 리얼리즘(그는 현실주의라고 번역함) 미학의 정점에 이른 걸작들을 발표하면서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부상했다. 월남 전쟁에 종군하고 70~80년대의 군사독재체제에 대한 저항적 문화운동과 관주민중항쟁에 참여한 실천문학가로 활약했다.
그는 1989년 이북의 <문학예술총동맹>초청으로 방북했고 이후 독일 미국 등지에서 망명생활을 보냈다. 1993년 4월 귀국하여 방북사건으로 7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하던 중 5년 만인 1998년 3월에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작품들로는 <객지>(1974), <부망, 멀고도 고적한 곳>(1975), <심판의 집>(1977), <가객>(1978) 등과 장편소설 <장길산>(1984), <무기의 그늘>(1988), 희곡집 <장산곶 매>(1980), 광주항쟁 르포 <죽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이북방문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1993), 월남전쟁을 그린 <무기의 그늘>(2000), <손님>으로 대산문학상(2001) 수상. 그의 작품집들은 일본, 중국, 대만, 미국, 그리고 프랑스에서 출판되어 소개되어 왔다.
[민족통신 노길남 편집인 10/09/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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