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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green>권영길 후보 부인 강지연 여사</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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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3-01-15 00:00 조회1,5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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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연. 본명은 강정자. 동방생명(현 삼성생명) 창업주 강의수의 무남독녀. 이화여중.고와 이화여대를 나왔다. 그야말로 금지옥엽처럼 자랐다. 그런 그녀가 만난 남자는 빨치산의 외아들. 총살당한 아버지의 아픔을 갖고 사는 남자. 신발 살 돈이 없어 "똥구두"란 별명을 듣던 사람이었다. 두 사람의 결혼은 극과 극의 만남이었다."

263-188772_1[2].jpg11월 26일 고려대 정경대 208호 강의실. 고려대 함성득(행정학) 교수는 권영길 후보의 부인 강지연(59)씨를 소개하기에 앞서 11월 25일 <중앙일보> "이연홍의 정치보기"에 실린 칼럼 일부를 읽었다.

강지연씨는 학생들에게 인사를 하고 "큰딸도 고려대 사회학과 87학번이고, 권영길 후보 동생 아들 두 명이 고려대를 다녔다"며 고려대와의 인연을 소개했다.

이날 강씨의 강연 주제는 "진보정치를 꿈꾸며". 노무현 후보 부인인 권양숙씨나 정몽준 후보 부인 김영명씨와는 달리 남편 이야기보다는 인간 강지연이 권영길을 만나 어떻게 변화된 삶을 살게 됐는지를 소개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저는 동방생명 창업주의 무남독녀였습니다. 학교에도 차를 타고 등교할 정도로 정말 공주처럼 지냈습니다. 세상 어려움 모르고 살았죠. 보이는 게 세상의 전부인줄 알면서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대학1학년 때 아버지가 갑자기 간경화로 돌아가셨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 하고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했습니다. 권 후보와 만난 건 외사촌오빠 때문이었습니다. 외사촌오빠가 권 후보와 경남고 동창이었는데, 서울에 올라와 저희 집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 때문에 권 후보가 저희 집에 자주 놀러왔었죠. 오빠와 권 후보를 통해 세상 보는 시각을 키웠습니다."

강씨는 권영길 후보와의 결혼 과정에서의 우여곡절도 소개했다.

"친정어머니가 정말 "억수로" 반대를 많이 하셨습니다. 빈농출신에 홀시어머니에게 어느 어머니가 딸을 주고 싶겠습니까. 하루는 친정어머니가 서울역에서 기다렸다가 권 후보를 만나 "헤어져라, 딸 못 준다"고 포기 압력을 넣기도 하셨습니다. 반대할수록 정이 깊어진다고 둘이 붙들고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4년 연애 끝에 결혼을 했지만 결혼 생활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강지연씨는 혼자된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를 한집에 모시고 살아야 했다.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 사이에서 강씨의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한게 아니었다.

"두 분이 식성도 아주 다르셨습니다. 시어머니는 담백한 음식을 좋아하셨는데 비해 친정어머니는 미원도 들어가고 약간 간간한 음식을 좋아하셨죠. 김치를 담그면 한 어머니는 시원하게 갈치를 넣자고 하시고, 한 어머니는 갈치가 넣은 것은 속이 미식거려 못 먹는다고 하시고...아마 권 후보가 섭섭하게 했으면 못 견뎠을 겁니다. 권 후보가 이해해주고, 위로해줘서 힘이 많이 됐지요."

12년 그렇게 시집살이를 하면서 지낸 강씨는 권영길 후보가 서울신문(현 대한매일) 파리 특파원이 되면서 한국을 떠나 프랑스로 갔다. 그 곳에서 강씨는 평소 하고 싶었던 그림 공부도 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지만 파리에 갔다고 해서 마음이 아주 편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권 후보가 기사를 쓰면서 고민을 참 많이 했습니다. 기사를 보내면 서울에서 자신들의 입맛대로 다시 쓰라고 요구를 했으니까요. 그런 요구가 있으면 권 후보는 밤을 꼬박 새웠지요. 그러면서 권 후보는 우리 언론이 많이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남편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권영길 후보는 파리 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출세길을 포기했다. 그리고 아내인 강지연씨에게 언론노조 운동을 해야 하겠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지금까지 살아온 날 보다 많지 않다면서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꼭 언론노조 운동을 하고 싶다고요. 그 길을 가지 않으면 남편이 행복해하지 않을 것 같아서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언론노조 초대 위원장을 지낸 권영길 후보는 다시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을 맡게 된다. 그리고 96년 12월 노동법 날치기 통과가 진행되자 총파업을 진두지휘하는 역할을 맡는다. 강지연씨는 96, 97년 총파업 당시 어려웠던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남편은 수배를 받은 몸이 돼 명동성당에 갇혀있었지만 큰딸은 시아버지가 암에 걸리셨기 때문에 결혼식을 치러야 했습니다. 아버지가 그런 상황이라 딸에게 신경도 잘 쓰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로서 두고두고 마음에 걸립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권영길 후보는 전혀 과격하지 않은 사람이며, 본인 일은 본인 스스로 하는 모범적인 남편"이라며 "남편을 만나서 한번도 고생을 한다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른 후보 부인과 달리 정치적 색깔 뚜렷

△강지연씨 강연을 듣고 있는 고려대 학생들

50여명의 학생들은 강지연씨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했다. 강연이 끝나고 진행된 학생들의 질문에도 강씨는 침착하고 조리 있게 답변했다.

-노무현 후보로 단일화 된 이후 사표방지 심리가 발동하고 있다
"지난번에도 많이 나온 이야기다. DJ 때도 그랬다. 그러나 DJ가 노동자의 희망이었나. 목요일 양심수 석방을 요구하는 민가협 어머니들 집회에 갔다. 조금 개혁적인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적당히 타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거주지가 강남 일원동이다. 강남에 사는 것을 두고 논란이 있는데. 혹시 이사가실 생각은 없는지.

"특파원 시절 신문사 후배가 조합아파트 신청을 대신 해줘서 아파트에 10년 살다가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를 하고 싶지만 시어머니가 노인정을 못 떠나신다고 하신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가장 심각한 노동문제가 무엇이라고 보는지
"염려스러운 점은 비정규직이 전체노동자의 70% 이상이라는 것이다.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있다. 그 비정규직 가운데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70%다."

강연을 들은 홍석표(20, 행정 2학년)씨는 "언론에서 접할 수 없는 색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었다"면서, "다른 후보 부인들과는 달리 활달하고 진취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느낌을 설명했다.

최연주(22,행정3)씨는 "강지연 씨는 권양숙씨나 김영명씨와는 달리 정책이나 정치적 입장이 뚜렷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수원 기자 won@ohmynews.com
[출처;오마이뉴스 2002/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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