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장애인 슈퍼맨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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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3-02-06 00:00 조회1,60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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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누구인가 - 서울대 장애인권연대사업팀
나는 서울대 장애인권연대사업팀에 참여중이다. 서울대의 장애인권연대사업팀은 지난 2002년 9월에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서울대 장애인 학부생 모임 이솝, 인권의 정치 사람세상, 장애문제연구회 손말사랑"이 뭉쳐 만든 장애인 학생 교육권 보장을 위한 연대모임이다.
얼마전부터는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와의 연대를 시작했다.

2. 서울대 법대의 장애인 합격자에 대한 미담성 기사와 우리의 분노
오늘 아침 일간지에는 일제히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한 한 50대 장애인 분에 대한 기사가 잔뜩 실렸다.
"두다리 잃은 50세 손위용씨 서울대 법대 합격, 이보다 기쁠순 없겠죠"<동아일보>
"세월도 장애도 훌쩍 뛰어넘은 꿈, 50세 중증장애인 손위용씨 서울법대 합격"<조선일보>
"50대 장애인 서울법대 합격, 고교 때 두 다리 잃은 손위용씨... 어려운 이웃 돕는 변호사가 꿈"<중앙일보>
"두다리 잃은 50대 장애인 서울대 법대 합격, 불굴의 꿈 우뚝 서다"<한겨레>
"장애도 나이도 뛰어넘은 만학열정, 양다리 잃은 50대 손위용씨 서울법대 합격"<한국일보> 2002년 서울대 장애인 특별전형 입학생들의 수업권은 무시당했는데...
서울대의 무책임한 장애인 학생 지원정책을 비판해 오던 우리는 얼마 전 회의에서 이번에도 미담성 기사만 실리면 안된다는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작년에 입학한 서울대의 장애인 학생들은 입학당시에는 비슷한 류의 찬사를 들었지만, 이동지원 서비스, 대필서비스, 강의자료 제공 등의 최소한의 수업권 보장을 위한 서비스를 전혀 받지 못했다.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맨땅에 헤딩을 했고, 그 결과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예를 들어 강의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 학생을 위한 대필서비스가 있었는가 ? 놀랍게도 전혀 없었다. 학교측의 다음에 실시하겠다는 거부선언에 개인적으로 친구나 자원봉사자를 구해 1~2과목에 대한 질낮은 대필서비스(경우에 따라서는 손으로 교수말을 옮겨 쓰는)를 시도한 장애인 학생이 몇 명 있을 뿐이다. 뇌성마비로 인해 필기속도가 비장애인의 반절에도 미치기 힘든 장애인을 위해 대필서비스를 지원하거나 강의자료를 제공하거나, 필기시험시간이나 레포트 제출기한을 연장해준 적이 있는가 ? 놀랍게도 전혀 없었다. 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이동보조서비스도 물론 없었다.
서울대는 장애인 학생 지원정책을 잘 준비중이다 ?
2002년 2학기에 서울대가 장애인 학생을 지원하겠다는 기사가 집중적으로 기사화된 적이 있다. 10월 18일에 기사화된 「내년(2003년) 중장애인 도우미 도입, 장애인지원센터 건립」 기사, 10월 22일에 기사화된 「장애학생 전용차 타고 이동하세요" 서울대 학내여건」. 이런 기사들만을 접하면 외부에서는 서울대 장애인 학생 지원 정책이 제대로 준비되고 있구나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나, 서울대가 뿌린 보도자료와는 다르게 현실은 그렇지 않다.
2003년 장애인 신입생도 선배들처럼 수업권을 보장받지 못할 처지
이번에 새로 입학하는 장애인 학생들도 2003년 서울대가 제대로 학습보조요원등의 제도를실시하지 않으면 똑같은 시행착오와 좌절, 불이익을 겪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장애인권연대사업팀이 1월 21일 서울대의 대학생활문화원과의 간담회에서 파악한 바에 서울대는 사실상 장애인 1인당 1~2과목에만 장애인 학습보조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장애인 학생의 수요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서울대 본부는 25~30명의 봉사장학생(한달에 30시간 일하고 12만원 보수를 받는)을 통한 서비스로 공급을 일방적으로 정하고, 거기에다가 장애인 학생의 끼워 맞추려고 하고 있었다. 장애인 신입생은 갈 수 없는 강의실로 혼자 이동해야 하고, 들을 수 없는 강의를 들어야 하고, 볼 수 없는 강의를 보고, 쓸 수 없는 노트를 혼자 써야 하는 슈퍼맨이 될 것을 강요받게 될 예정인 것이다. 보통 6과목을 듣는다면 4~5과목에서 서울대의 장애인은 슈퍼맨이 되어야 한다.

3. 서울대 기자실로 가서 기자들과 논쟁하다.
장애인권연대사업팀에 참여 중인 「서울대 장애인 학부생 모임 이솝」 대표인 정민이와 법대 대학원을 다니면서 사법시험을 준비중이던 나는 우리가 준비한 분노의 보도자료를 가지고 학교로 왔다.
먼저 장애인 인터넷 신문인 위드뉴스(http://withnews.com/)의 홍미진 기자와 만나 얘기를 나누었고, 확인한 결과 아래와 같은 기사가 나갔다.
"서울법대 합격 50대 장애인 성공담" 뒤엔 서울대 장애학생 기만정책, 앞에선 홍보자료 뿌리고 뒤에선 수업권 막막...
그 후 나와 정민이는 서울대의 기자실로 향했다. PC방 같은 구조의 기자실에는 기자 몇 분이 컴퓨터를 하고 계셨고, 우리는 우리 소개를 하고 보도자료를 드린 다음 얘기를 부탁했다. 나는 오늘 집에서 들고 나온 한겨레 신문을 꺼내어서 이런 식의 미담성 기사만 나가서 유감이라는 얘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그 기사를 써서 제공한 연합뉴스 기자분이 계셨고, 오랫동안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가 기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입장임에도 연합뉴스의 기자분은 오랜 시간 진지한 자세로 대화를 해 주셨다. 열린 자세에 대해 정말 감사드린다.
미담기사보다는 실제 장애인 학생의 수업권 보장을 위한 비판기사를...
하여튼 우리는 그 분께 장애인 신입생이 실질적으로 제대로 수업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이, 왜 장애인권연대사업팀의 얘기를 전혀 들어보지도 않고 왜 미담성 기사로 도배했느냐고 따졌다. 2002년 작년의 주요일간지에는 이정민(함께 따지러 간 바로 그 친구다) 학우의 합격담이 미담기사로 실렸고, 그 미담기사의 주인공인 정민이는 나와 함께 올해 또 다시 반복된 서울대 장애인 합격생 관련 미담기사에 대해 따지고 있었다. 실제로 장애인 학생의 수업권 보장을 위해 도움이 될 기사를 쓰는 게 아니라, 신문이 잘 팔리기 위해 장애인 서울대생을 상업적인 기사소재로 이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그에 대해 기자분은 공식적인 자료, 구체적인 기사꺼리가 될 중요한 사건, 확정된 사실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 그런 식의 자료와 사건을 장애인권연대사업팀이 제공해 주지 못한 점을 지적해 주셨다. 나는 그런 지적에 감사드리고 앞으로 참고하겠지만, 서울대 본부는 학생들에게 책임질 만한 공식적 답변을 2002년 내내 회피해 왔고, 공식적인 문서로 답변을 하는 걸 계속 거부해 왔다고 얘기를 덧붙였다.
정민이는 장애인의 수업권 보장은 해주고, 안 해주고의 시혜적 문제가 아니라, 권리로서 당연히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했고 나는 서울대 1년 예산이 3~4천억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한달에 300만원~360만원의 장애인 학습보조요원 예산은 너무 작은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4. 서울대여, 세계수준의 대학, 세계일류대학의 꿈속에 장애인 학생을 넣어달라.
서울대는 5년전에 편의시설을 확충해 장애인특별전형을 실시하겠다고 했으나, 별 준비없이 장애인 특별전형을 2002년에 실시했고, 1년 동안 장애인 학생들의 요구를 무시하는 무책임함을 보였다. 그리고 또다시 1년이 학습보조요원을 1~2과목에만 비치할 수 있을 거라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서울대가 학교 홍보 홈페이지에서 선전하는 "세계수준(?)의 교육, 세계수준(?)의 사회봉사, 세계수준(?)의 연구". 거기에 장애인은 없는 듯 하다. 서울대는 세계일류(?)대학에서 장애인 학생들을 어떻게 지원하는지 좀 알아봐 주기를 요구한다. 장애인 학생도 서울대의 학생 아닌가.
5. 언론개혁을 말해야 하는가 ? - 기자실을 벗어나 현장속으로 -
그 정도까지 나갈 필요는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자분들이 서울대 장애인권연대사업팀이 협조를 구할 대상이면서 동시에 싸워서 바꿔나갈 대상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서울대 장애인 입학생에 대한 미담성 기사의 후속기사로 서울대의 열악한 장애인 학생 수업권 보장 실태를 짚어주는 기사를, 1~2과목에만 장애인 도우미를 제공하려는 본부의 태도를 비판하는 것을 중심으로 해서 써줄 것을 부탁했다. 설날이 지나고 기사화가 될 지는 모르겠다. 기자분들이 출입처 기자실을 벗어나 현장 속의 소외받는 자에게로 달려와 주기를 기대해 본다.
처음 대면한 기자실과 그곳의 기자. 오늘 정민이와 상당히 큰 좌절감을 맛보았고 기분이 하루종일 우울했다. 그러나 희망을 포기할 수는 없다.
차성안 (법대 대학원 02학번)
기사제공:SNUnow
서울대에는 장애인 슈퍼맨이 있을 뿐이다?
서울대 법대에 합격한 한 장애인의 미담기사에 부쳐
차성안 기자
2003년 1월 31일 22:15
[출처: 유뉴스200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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