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일씨, 5일 만기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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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minjok.c… 작성일03-03-13 00:00 조회1,58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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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밤 정대일 한국청년단체협의회 사무처장이 서울구치소에서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었다가 만기출소돼 동료들과 친지들이 환영을 받았다. 이 소식에 대해 전국연합 자료를 소개한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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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5일 밤 11시, 아직은 꽃샘 추위의 매서운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시간, 서울 구치소앞에는 청년들 60명이 모여 밝은 웃음으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어 만기로 출소하는 정대일 한국청년단체협의회 사무처장을 축하하기 위해 서울과 인천에서 모여든 청년들이었다. 정대일 사무처장이 교도소 문을 박차고 나오려면 아직도 한 시간이나 남았지만, 청년들은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쁨과 설레임으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늦었다면 부랴부랴 오는 청년들의 택시와 자가용 행렬도 지속됐다.
11시 30분 경, 청년들은 “청년의 패기와 열정으로 정대일 동지를 맞이하자”며 대열을 이루어 환영집회를 시작했다. 김근래 한청 정책위원장의 사회로 인사를 나누고, 힘찬 구호와 투쟁가로 서울 구치소의 밤은 쩌렁쩌렁 울렸다.
만기 출소 시간이 자정이 지나도 정대일 사무처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청년들은 서서히 구치소측에 항의를 하기 시작했고,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청년들은 추위도 녹이고, 정대일 동지를 빨리 내보내라는 시위도 할 겸 대열을 지어서 서울구치소 앞 도로를 뛰기 시작했다. 물론, 힘찬 노래와 구호를 내지르면서.
12시 50분이 다 되도록 정대일 사무처장이 나오지 앉자, 청년들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며 서울구치소 정문 문을 흔들며 구호를 외쳤다. 한 청년은 교도소 담에 올라가 항의하기도 했다. 당황한 교도관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하면서도, 정당한 제기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 때, 멀리서 정대일 사무처장이 당당한 걸음걸이로 손을 흔들며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분노와 항의의 구호는 금새 기쁨과 환영의 구호로 바뀌었다.
그리고, 곧바로 정대일 사무처장의 출소를 환영하는 환영식이 개최되었다. 환영사는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정광훈 공동의장님께서 해주셨고, 인하대민주동문회 대표와 한청 비상대책위위원장이었던 이상규 동지가 축하와 결의말을 이었다.
정대일 사무처장이 출소의 소감과 앞으로의 결의를 밝힐 때 청년들은 큰 함성과 뜨거운 박수로 열광했다. 한청 전상봉 의장의 축하말로 환영식을 마치고서도 청년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재회의 기쁨과 투쟁의 결의를 다지기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대일 사무처장 출소 환영을 마치고 돌아가는 청년들의 가슴에는 개운치 않은 무거움이 있었다. 지금도 양심수 석방투쟁을 위해 전국의 교도소에서 목숨 건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 동지들이 있고, 각 교도소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며 투쟁하는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구치소 앞에서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양심수 가족들을 보며, 청년들은 다시 한번 힘차게 구호를 외쳤다.
“국가보안법 철폐하고 모든 양심수를 즉각 석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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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5일 밤 11시, 아직은 꽃샘 추위의 매서운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시간, 서울 구치소앞에는 청년들 60명이 모여 밝은 웃음으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어 만기로 출소하는 정대일 한국청년단체협의회 사무처장을 축하하기 위해 서울과 인천에서 모여든 청년들이었다. 정대일 사무처장이 교도소 문을 박차고 나오려면 아직도 한 시간이나 남았지만, 청년들은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쁨과 설레임으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늦었다면 부랴부랴 오는 청년들의 택시와 자가용 행렬도 지속됐다.
11시 30분 경, 청년들은 “청년의 패기와 열정으로 정대일 동지를 맞이하자”며 대열을 이루어 환영집회를 시작했다. 김근래 한청 정책위원장의 사회로 인사를 나누고, 힘찬 구호와 투쟁가로 서울 구치소의 밤은 쩌렁쩌렁 울렸다.
만기 출소 시간이 자정이 지나도 정대일 사무처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청년들은 서서히 구치소측에 항의를 하기 시작했고,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청년들은 추위도 녹이고, 정대일 동지를 빨리 내보내라는 시위도 할 겸 대열을 지어서 서울구치소 앞 도로를 뛰기 시작했다. 물론, 힘찬 노래와 구호를 내지르면서.
12시 50분이 다 되도록 정대일 사무처장이 나오지 앉자, 청년들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며 서울구치소 정문 문을 흔들며 구호를 외쳤다. 한 청년은 교도소 담에 올라가 항의하기도 했다. 당황한 교도관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하면서도, 정당한 제기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 때, 멀리서 정대일 사무처장이 당당한 걸음걸이로 손을 흔들며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분노와 항의의 구호는 금새 기쁨과 환영의 구호로 바뀌었다.
그리고, 곧바로 정대일 사무처장의 출소를 환영하는 환영식이 개최되었다. 환영사는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정광훈 공동의장님께서 해주셨고, 인하대민주동문회 대표와 한청 비상대책위위원장이었던 이상규 동지가 축하와 결의말을 이었다.
정대일 사무처장이 출소의 소감과 앞으로의 결의를 밝힐 때 청년들은 큰 함성과 뜨거운 박수로 열광했다. 한청 전상봉 의장의 축하말로 환영식을 마치고서도 청년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재회의 기쁨과 투쟁의 결의를 다지기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대일 사무처장 출소 환영을 마치고 돌아가는 청년들의 가슴에는 개운치 않은 무거움이 있었다. 지금도 양심수 석방투쟁을 위해 전국의 교도소에서 목숨 건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 동지들이 있고, 각 교도소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며 투쟁하는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구치소 앞에서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양심수 가족들을 보며, 청년들은 다시 한번 힘차게 구호를 외쳤다.
“국가보안법 철폐하고 모든 양심수를 즉각 석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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