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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남의 열풍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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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2-08-31 20:09 조회2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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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편

 

21

주혁민은 사무실책상을 마주하고 앉아 초점을 잃은 눈으로 한장의 사진을 들여다보고있었다. 사무실에 들어선지 반시간 남짓이 지났으나 그는 멍청히 앉아 내처 사진만 들여다보고있었다.

주혁민의 눈에서는 락수물처럼 굵은 눈물이 떨어졌다.

《전투를 끝내고 처녀의 이름을 대주겠다던 네가 이렇게 죽다니…》

그는 점점 더 크게 어깨를 떨며 사진을 쥔 손을 허우적거리였다.

《책임비서동지!》

지배인과 함께 쏘파에 앉아 책임비서의 동정을 살피고있던 기사장이 몸을 일으켜 책상앞으로 걸어갔다.

《이젠 그만 일어나십시오. 책임비서동지와 지배인동지가 이렇게 여기에 와 앉아 눈물만 흘리고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박준아바이네집으로 갑시다.》

(박준이네 집을?)

주혁민은 그 집을 그려보았다. 6년전 라남으로 부임되여온 첫날밤 건물뼈다귀만 서있는 집에서 박준이와 이야기를 나누던 일이 눈에 선하였다. 주혁민은 그때부터 그 집을 무시로 찾아다녔었다.

1층 5호실, 그 두칸방에 있는 가구들과 부엌세간들, 순진이 쓰던 수저와 공부하던 책상과 잠을 잘 때 깔고 덮던 이부자리들까지도 제집 물건처럼 눈에 익히게 된 책임비서였다.

외아들의 시신을 붙들고 울고있을 박준이네 부부를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였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주혁민은 지배인을 건너다보았다. 빚어놓은 사람처럼 쏘파에 까딱없이 앉아있는 지배인의 얼굴은 어찌나 창백한지 산 사람의 얼굴같지 않았다.

《내가 정신빠진 놈이였습니다.》

책임비서를 일으켜세우려던 기사장이 더는 어쩔수 없는듯 뒤로 한발자국 물러나며 중얼거리였다. 《중세기에 쓰던 유치한 작업방법을 생각해낸 내가…》

출입문을 두드리는 손기척소리에 기사장의 말이 중둥무이되였다. 당위원회 직일근무를 서던 부원이 상좌견장을 단 키가 성큼한 군관을 데리고 들어왔다.

《책임비서동지, 위대한 장군님께서 보내신 군관동집니다.》

부원의 말에 주혁민은 눈을 흡뜨며 일어섰다.

돌부처처럼 앉아있던 지배인도 흘쩍 몸을 일쿠었다.

군관은 절도있게 주혁민에게 거수경례를 하고 서둘러 말하였다.

《책임비서동지! 장군님께서 부르십니다.》

주혁민은 너무 뜻밖이여서 한순간 멍청히 군관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급합니다. 빨리 차비하고 떠납시다.》

군관의 독촉을 받은 주혁민은 허둥거리였다.

그는 급히 옷을 갈아입고 수첩과 원주필을 량손에 든채 군관을 따라나갔다.

마당에 풀색군용차 한대가 서있었다.

(장군님께서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어디서 나를 부르시는가? 아, 이제 라남의 로동계급들의 안부를 물으시면 무어라 말씀드리겠는가? 아니, 당중앙위원회 일군들로부터 벌써 보고를 받으셨는지도 모르지.)

군관의 뒤를 따라가는 주혁민의 머리에서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들이 뒤번지였다.

그는 승용차 뒤좌석에 앉았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오후 3시가 조금 지났다.

아침에 결사대원들과 함께 김치깍두기노래를 듣던 일, 청진바다가에 나가 페타르를 뜯고 내화벽돌을 줏던 일, 설태섭의 글쪽지를 읽고 단조직장에 들어가고 그 다음은 세멘바닥에 주저앉아 박순진의 눈을 감기던 일 그리고 강충현을 진정시키던 그 모든 일들이 오랜 시간을 거쳐 참으로 아득히 먼 세월을 거쳐 벌어진 일처럼 생각되건만 이제 겨우 오후 3시가 좀 지난것이다. 그것은 고작 8시간동안에 벌어진 일들이였다.

승용차는 곧 남쪽길을 달리였다. 차창으로 많은 물체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전선대, 살림집들, 가로수와 철길, 수림과 바위츠렁들, 또다시 아빠트, 가로수, 공장건물들… 승용차는 두시간 남짓이 달리였다.

험준한 산발들과 깎아지른 벼랑들이 성벽처럼 둘러친 산골길에 이르렀을 때 주혁민은 진록색군용차 한대가 산기슭을 누비며 이쪽으로 마주 달려오는것을 보았다.

《장군님을 모신 승용차입니다.》

앞좌석에 앉은 군관이 뒤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주혁민은 불시에 숨이 가빠졌다.

드디여 두 군용차는 10여메터 간격을 두고 멎어섰다. 한쪽엔 시꺼먼 현무암바위들이 늘어서고 다른 한쪽은 절벽밑으로 골개강이 흐르는 좁은 산길이였다.

주혁민은 련락군관을 따라 얼른 차밖으로 뛰여나와 옷매무시를 바로 하고 서있었다.

맞은편 승용차문이 열리였다. 그 문으로 급히 나오시는분은 분명 김정일동지이시였다.

주혁민은 자기가 어떻게 그이께로 달려갔는지 알수 없었다.

《경애하는 장군님!》

주혁민은 그이를 불렀을뿐 목이 잠기여 인사말을 울리지 못했다.

《주혁민동무로구만!》

주혁민은 바른팔을 움켜쥐시는 그이의 억센 손아귀에서 뜨거운 열기를 느끼였다. 주혁민은 그 순간에 돌부리에 채이고 긁히여 껍질이 벗겨진 그이의 구두코숭이며 색이 바랜 잠바옷을 보았다.그이의 바지에는 콩알만큼씩한 새파란 가시열매들이 붙어있었다. 그이께서 얼마나 멀고 험한 길을 걸으셨는가를 말해주는 야전복이였다. 그는 낮이나 밤이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리지 않고 전선에서 전선으로, 고지에서 고지에로 길을 이어가시는 장군님께 가슴아픈 소식을 안고 찾아온 자기가 더없이 저주스러웠다.

《경애하는 장군님! 저의 불찰로 오늘 아침 라남탄광기계련합기업소에서는…》

《됐소, 됐소. 내 다 알고왔으니 됐소.》

그이께서는 손을 저으시고 앞뒤 량옆에 아찔하게 솟아있는 험한 산발들을 둘러보시였다. 안개인지 구름인지 알수 없는 몽롱한 기체를 허리에 둘러감은 높은 산발에 날카로운 바위너설들이 창살처럼 내돋히고 장검으로 내리친듯이 수직으로 깎아지른 절벽밑으로는 푸른 물이 흘러나왔다. 그 물은 골개강으로 내리떨어졌다.

그이께서는 길가에 나와 서있는 사람들을 가까이 오라고 이르시였다.

《동무들! 오늘 아침 스물일곱살되는 라남탄광기계련합기업소의 한 청년이 사회주의를 지키는 기계전선에서 결사전을 벌리다 희생되였습니다. 우리 다같이 이 청년을 추모하여 그리고 〈고난의 행군〉길에서 희생된 우리의 사랑하는 모든 동지들을 추모하여 잠시 묵도합시다.》

주혁민은 신음소리를 내며 눈을 감았다.

더운 눈물이 속눈섭짬으로 비오듯이 흘러내리였다.

흐느끼며 묵도하는 그 시간이 짧았던지 길었던지 주혁민은 알수 없었다. 그것이 순간처럼 짧아도 보이도 장구한 력사가 흐른것처럼 아득히 길어도 보이였다.

《책임비서동무, 이젠 머리를 드시오.》

주혁민은 고개를 들었으나 뿌연 안개가 서리여 그이의 얼굴표정을 알아볼수가 없었다.

《나는 오늘 군부대를 돌아보던 길에 리명국비서한테서 뜻밖에 라남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시간이 없어 라남까지는 갈수 없고 그래서 동무는 남으로 달리고 나는 북으로 달려 길가에서 이렇게 만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주혁민은 목으로 메여오르는 오열을 참아낼수가 없었다.

《장군님! 당에 걱정만…》

주혁민은 드디여 어깨를 떨며 흐느껴 울었다.

《책임비서, 그러지 마오. 동무가 그러면 내 가슴이 더 아프지 않는가.》

그이께서는 주혁민의 어깨를 지그시 누르고 잠시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말씀하시였다.

《순진동무의 사진이 있소? 사진이 있으면 좀 봅시다.》

주혁민은 《고난의 행군길》에서 백년사랑을 약속하며 찍은 그 사진을 그이께 드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고 뒤면을 번지시였다. 주혁민은 사진을 쥐신 그이의 손이 가늘게 떨리는것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 청년이 박준동무의 아들이라지?》

《그렇습니다. 장군님!》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잃고 그가 얼마나 괴롭겠소. 돌아가면 내 인사도 전하고 잘 위로해주시오.》

그이께서는 주혁민에게 사진을 돌려주고 말씀하시였다.

《히로시마에서 원자탄에 부모와 형님을 잃은 박준동무가 외아들까지 또 잃었으니 참 가슴이 아픕니다.

박순진이와 같이 찍은 그 처녀는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 처녀요?》

《우리 기업소 선반공입니다. 강옥순이라고…》

《잘 보살펴주시오. 인생시련을 겪어보지 못한 어린 처녀이니 갑자기 받은 마음의 상처를 이겨내기가 어려울거요. 그리고 동무가 보증인이 되여 박순진동물 조선로동당에 입당시키도록 하시오. 당원자격이 있다고 봅니다.》

주혁민은 손수건을 얼굴에 대고 세차게 어깨를 떨었다. 아무리 울음을 참아내자고 해도 참아내기가 어려웠다.

《혁민동무! 그만하오.》

그이께서는 눅눅한 모래땅을 밟으며 비감에 젖은 목소리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동무가 라남에 와서 많은 일을 했소. 큰 일들을 수태 해제꼈지.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도 공장같은 작업장을 두개나 건설하고 해마다 대상설비생산계획을 넘쳐수행했소. 이것은 대단한 성과요. 그러나 〈고난의 행군〉을 처음 하다보니 이러저러한 편향이 나타나기도 했소. 가슴아픈 일도 많이 겪고… 주혁민동무, 그러나 락심하지 말고 힘을 내시오. 지금 어려운 일들이 겹쳐들고있지만 당조직을 잘 발동시키면 어떤 곤난도 능히 헤쳐나갈수 있소. 조직! 그렇소. 조직을 강화해야 합니다.》

주혁민은 웃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였다.

《수령님께서는 생전에 늘 조직은 생명이고 어머니라고 하셨소. 조직을 강화하고 그 힘을 빌면 이 세상 못해낼 일이 없소. 우리의 일심단결도 조직의 주추돌우에서 이루어진게요.》

갑작스레 휩쓸어든 바람이 길바닥의 검부레기들을 말아 휘돌리며 공중으로 솟구쳐올라갔다.

그이께서는 승용차 전조등갓에 날아와 붙은 나무잎사귀를 집어들고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책임비서동무, 힘을 내시오. 어려운 때일수록 조직을 어머니의 사랑을 지닌 조직으로, 생명과 힘을 주는 조직으로 튼튼히 꾸리고 모든 애로와 난관을 조직을 발동시켜 풀어나가면 됩니다. 라남에서도 식량고생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식량문제도 조직을 통해 풀어나가야 합니다. 일부 일군들은 식량문젠 어쩔수 없다고 하며 자체로 해결하라고 한다는데 그러면 안됩니다. 그러면서 조직을 어머니로 믿으라고 하면 믿겠소? 믿지 않습니다. 또 그런 조직은 필요도 없습니다.》

주혁민은 얼굴이 화끈거리였다. 그는 식량문제를 당위원회의 제1차적인 사업으로 보아야 한다고 하신 김정일동지의 말씀이 상기되였다.

그것은 지난해에 큰물과 가물로 전국의 농촌이 큰 피해를 입었을 때 전화지시로 강조하신 문제였다.

그이께서는 기계생산을 위한 가장 중요한 필수원료도 식량이고 필수자재도 식량이라고 하시였다. 당원들과 종업원들이 나에게 먹을것이 아니라 일감을 달라고 해도 책임비서는 그들의 먹을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하시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원료난, 자재난, 전기난을 타개하기 위한 토론은 여러번 하였지만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한 토론은 별로 해보지 않았다. 그것을 당위원회의 첫째가는 사업으로 보지 않았었다.

《책임비서동무, 수령님께서는 생전에 먹는문제를 특별히 중시하시였소. 그래서 〈량정〉이란 이름이 붙은 기관도 나왔습니다. 항일혁명시기 고난의 행군을 승리하게 한것은 〈한홉의 미시가루〉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시계를 들여다보시였다.

주혁민은 지금 그이께서 시간의 촉박감으로 마음을 조이고계신다고 생각하였다.

《동무네 기업소에서 파석기같은건 얼마든지 만들수 있지? 돌분쇄기말이요.》

《예, 그런건 우리 기업소 경로동직장에 맡겨두 만들수 있습니다.》

주혁민은 그이께서 무슨 일로 갑자기 파석기를 알아보시는지 영문을 모린채 대답을 올리였다.

《하긴 동무네 기업소에서 파석기같은건 아무것도 아니지. ОО회사에서 파석길 요구하는데 그걸 좀 만들어보내주고 식량문젤 풀어보시오. 내가 말해줄테니 계약을 맺소.》

주혁민은 정신이 번쩍 들어 수첩에 《파석기!》라고 썼다.

《지배인은 지금 〈HM기〉때문에 속이 까매서 돌아가고있을테니 어디 짬이 있겠소. 책임비서가 직접 틀어쥐고 식량문젤 풀어보시오. 후방사업을 틀어쥐시오. 식량문젤 풀어야 해. 그게 중심고리요!》

주혁민은 막혔던 길이 탁 트이는것 같았다. 한편 이런 일에까지 그이께 일일이 마음을 쓰시게 하는 자신이 죄스럽고 부끄러웠다.

《지금 자강도에서 〈고난의 행군〉의 돌파구를 열어제끼는 포성을 쾅쾅 울리고있는데 동무네도 소리를 내야지.》

김정일동지께서는 주먹을 머리우로 높이 들었다가 장검을 내리치듯이 사선으로 허공을 힘있게 내리그으시였다.

《동무네 기업소의 위치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원래 수령님께서 라남에 기계공장을 내오실 때에는 김철, 무산광산, 성강, 검덕광산 등 조선북부지구에 집중되여있는 중공업기지들을 생각하고 내오셨습니다. 그후 석탄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동무네 기업소를 채탄기계생산기지로 꾸렸습니다. 결국 동무네 기업소가 우리 나라 경제발전의 생명선인 금속공업과 채취공업의 명줄을 쥐고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라남의 로동계급이 나라의 생명선을 지키고있으니 얼마나 귀중한 사람들이요. 더없이 귀중한 그들 한사람 한사람을 당조직이 따뜻이 보호해주고 더 강한 인간이 되도록 키워야 합니다.

우리 당 조직의 본질은 사랑이요. 그래서 우리 당이 강한거요. 자, 이젠 헤여져야 하겠소.》

김정일동지께서 주혁민의 손을 잡아쥐고 승용차에 오르시였다.

주혁민은 깊이 허리를 굽혀 작별인사를 올리였다. 그리고 전선지구로 향하시는 그이의 야전차가 아득히 먼 산굽이로 사라질 때까지 길가에 서있었다. 그는 온몸에서 새로운 힘이 신비하게 솟구쳐오르는것을 느끼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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