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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남의 열풍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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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2-07-28 21:23 조회2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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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편

 

8

역전거리를 걸어가던 주혁민은 시가지에 흐르던 전등불이 일시에 꺼지자 반사적으로 우뚝 멎어섰다.

엊그제 공화국창건일을 맞아 장식등들이 울긋불긋 빛을 내던 밤거리가 한찰나에 침침한 어둠속에 묻히였다.

《정전이로군.》

그전날에는 도시주민들의 머리속에 정전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그러던것이 언제부터인가 밤이면 가끔 불이 가고 철도에서는 렬차들이 두세시간씩 연착되군 하였다.

어둠속에 형체없이 잠겨있던 아빠트창문들에 마치 하나, 둘 별이 돋듯이 가냘픈 불빛이 비치였다. 기름방등불들이였다.

전기불이 가기 바쁘게 집집마다 방등불을 켜놓는것을 보면 라남구역에서 정전의 시달림을 받기 시작한지도 오랜것 같았다.

기사장네 집은 역전동 12반이라고 하였다.

그가 역전광장을 건너가자 아직 창문을 달지 않고 벽체만 세워놓은 아빠트건물이 보이였다.

그앞으로 걸어가던 주혁민은 컴컴한 벽체안에서 울리는 기침소리에 흠칫하며 옆을 돌아보았다.

출입문을 달지 안은 벽체안에서 하나의 빨간 점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속에서 무엇인가 유리알같은것이 번뜩거리였다.

안경을 낀 사람이 담배를 피우고있는것 같았다.

주혁민은 건설대사람이 밤일을 하다가 정전이 되여 쉬고있는것으로 짐작하고 《역전동 12반이 이쪽입니까? 저쪽 길 건너편입니까?》하고 물었다.

《길 건너편인데 한참 더 가야 하오.》

건설에 관심이 많은 주혁민은 지나가려다가 한마디 더 건네였다.

《여기 건설대에선 밤에도 나와 일합니까?》

《뭐, 건설대요?》

벽체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코방귀를 뀌였다.

《건설대가 뭐가 안달아서 밤에까지 나와 일하겠소.》

굵직하고 거친 목소리였다.

《건설대가 아니면 왜 그 캄캄한 속에 앉아있습니까?》

《왜 앉아있겠소. 집을 꾸리다가 전기가 가서 앉아있지요.》

주혁민은 처음 그 사람의 말을 리해하지 못한채 덤덤히 서있었다.

얼마후에야 그 사람이 건설대사람들은 건물 뼈다귀만 세워놓고 계획수행보고를 한 다음 새 일터로 가버린다고 하였다. 그렇게만 하여도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격으로 집을 배정받은 사람이 자체로 창문도 달고 미장도 하고 부랴부랴 도배도 하여 집들이를 하게 된다고 하였다.

《보아하니 손님은 여태 집걱정은 한번도 해보지 못한것 같구려.》

주혁민은 어딘가 이죽거리는것 같은 그 사람의 말에 가슴이 뜨끔하였다. 사실 그는 새별군당비서로 있을 때도 그래 회령탄광기계공장에 있을 때도 그래 군안의 주민들과 공장종업원들의 살림집문제에 대해서 어지간히 관심을 돌리였지만 자기자신이 당장 집문제가 걸려 이렇게 한밤중에 안달이 나서 역사질을 해본적은 없었다.

이를테면 자기집문제는 해결된 조건에서 남을 걱정했었다.

《저는 회령에서 온 사람입니다. 회령에서는 건설대가 이렇게 건물뼈다귀만 세워놓고 달아나는 법이 없습니다. 집을 절반 지어놓구 가버리다니. 그리군 계획수행을 했다구 꽝꽝 소리치구… 왜 이런 문젤 간부들에게 신소하지 않습니까?》

주혁민은 어둠속을 더듬어 벽체안으로 들어갔다.

건설대에서 하는짓이 괘씸해서 그냥 지나갈수가 없었다.

《신소요?》

그 사람은 어이가 없는듯 껄껄거리고나서 그런 배부른 흥정을 하다가는 일껏 배정받은 집을 떼울수도 있다고 하였다. 집을 배정받은것만 하여도 감지덕지하게 생각해야 한다는것이였다.

《사실이 그렇소. 일본에서는 웬간히 돈이 있는 사람도 이런 큰 집을 쓰고살지 못합니다. 그런데 제 오륙만 놀리면 두칸짜리 집이 공짜로 생겨나는데 무슨 흥정을 하고 타발을 하겠소.》

《일본에서 귀국했습니까?》

《예, 1961년에 귀국했습니다. 그때부터 오늘까지 5월10일공장, 아니 이젠 5월10일종합공장이지. 거기서 일합니다.》

《5월10일종합공장에 계십니까?》

주혁민은 일본 히로시마에서 원자탄의 피해를 입어 온 가족을 잃어버렸다는 창의고안명수 박준기계공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는 여기로 오기전에 채취기계총국 합숙에 며칠 있으면서 5월10일종합공장의 재간둥이 50여명을 료해했었다.

기억력이 좋은 그는 그들의 이름까지도 다 외워두었다.

《혹시 박준동무가 아니요?》

하고 물어보려고 하는데 문득 뒤쪽에서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저 건너집 김첨지 두 령감 로친네

아침을 먹을 때 김치깍두기 맛 참 좋시다

김치깍두기 맛 참 좋시다

 

술에 취한듯 한 사람이 가사도 곡조도 정확치 않게 제멋대로 부르는 노래였다.

《웬 사람입니까?》

주혁민이 뒤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나 거기도 캄캄한 어둠이 깔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 아들녀석이요.》

그 사람은 퉁명스레 대답하는데 뒤쪽에서 그냥 노래가 울리였다.

 

야, 맛 참 좋시다 좋시다

김치깍두기 깍두기

 

《야 이 자식아, 아가릴 다물지 못하겠니.》

그 사람이 소리를 지르자 노래부르던 아들이 《아버진 좀 가만있으라요. 왜 노래도 부르지 못하게 그래요.》하고 볼부은 소리를 하였다. 그리고는 딸꾹질을 하더니 죽은듯이 숨소리도 없이 잠자코있었다.

《사람구실을 못하겠으면 죽어버리기나 해라!》

한숨처럼 중얼거린 그 사람이 옷주머니를 뒤지는지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윽고 주혁민이와 두어발사이를 둔 곳에서 라이타불이 켜졌다.

널름거리는 라이타불에 담배를 붙이는 안경을 낀 사람의 얼굴이 얼핏 드러났다가 인차 어둠속에 묻혀버렸다.

그쪽을 지켜보던 주혁민이 불쑥 물었다.

《동무, 혹시 박준동무가 아니요?》

그 물음에 놀라는듯 어둠속 한점에서 빨갛게 피여오르던 담배불이 별안간 반원을 그리며 아래로 떨어졌다.

《그렇소, 박준이요. 한데 손님은 누구요?》

어쩐지 주혁민은 자기를 선뜻 소개하기가 게면쩍어 《음, 박준동무로구만.》하고 혼자소리로 뇌이였다.

밑으로 떨어져 희미하게 가무러져가던 담배불이 서서히 우로 떠올라 다시 빨간 동그라미를 그리였다.

그 작은 불빛에 반사되여 안경알이 번뜩이였다.

어둠속에서 반짝이는 한점의 불꽃과 안경알의 반사광은 이상하게도 주혁민에게 히로시마상공에 솟구쳐오른 원자탄의 붉은 버섯구름을 련상케 하였다.

수십키로메터의 아득한 공간에 비치는 눈부신 섬광, 날카로운 우뢰소리, 모든 생명체들을 태우면서 하늘로 솟아오르는 수천도의 둥근 불덩이와 버섯구름… 그 원자탄에 온 가족을 잃어버린 박준은 약소국의 설음을 당하지 않으려는 결심으로 기계발명을 한다고 하였다.

《박준동무, 통성을 합시다. 내가 이번에 5월10일종합공장 책임비서로 임명되여온 주혁민이라는 사람이요.》

박준이 앉아있는 자리에서 갑자기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가 놀라서 일어서는 바람에 옆에 쌓여있던 무슨 블로크장 같은것이 무너지는것 같았다.

《책임비서동집니까? 하마트면 큰 실수를 할번 했습니다. 목소리는 굵지만 말씨가 빠르고 힘이 있어서 그저 그러루한 젊은 사람인줄 알았습니다. 실례했습니다.》

《왜 갑자기 말투가 달라지오. 박준동무같지 않구만. 내가 동무보다 두살 아래인데 지금까지 우리가 서로 하던것처럼 이랬소, 저랬소 합시다.》

《책임비서라는걸 알고야 어떻게 그러겠습니까.

책임비서동진 내 나이까지 다 알고있습니까?》

박준은 깍듯이 경어를 썼지만 벌써 아무런 구속도 없이 자연스럽게 이야기하였다.

《나이뿐이요? 성격까지도 다 알고있지요. 채취기계총국사람들한테서 동무의 이야기를 수태 들었습니다.》

《성격이 괴벽하다고 뒤소리들을 많이 하겠지요.

무서운 자유주의자라고 하지 않습디까?》

《동무에 대해선 칭찬하는 사람들이 더 많소. 인공위성도 띄울수 있는 수재형의 발명가라고 소문이 대단하오, 하하하.》

주혁민은 연방 크게 웃으며 떠들었다.

《내가 반롱담으로 타산없이 한마디 한 일이 그렇게 됐습니다. 그러나 노력하면 못띄울것두 없지요.》

박준의 목소리가 그 무엇에 도전하듯 성칼지게 울리였다.

《그렇소. 그래서 어버이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도 동무같은 재간둥이들을 믿고 우리 공장에 〈HM기〉를 개발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지 않았소. 그런데 한다하는 창의고안명수, 발명가가 이렇게 집을 꾸리는 일에 시간을 빼앗겨서야 되겠습니까. 건설대사람들이 정말 량심이 없소. 집을 절반 건설해놓고 집주인에게 넘기다니… 우리 공화국에 이런 법이 없소. 공장간부들이 이 실태를 알고있습니까?》

《알고 모르고 관계있습니까. 바깥에선 이 박준에 대한 소문이 굉장하지만 공장안에선 존재가 없습니다. 나같은건…》

이죽거리며 열을 올리던 박준은 불시에 주변이 대낮처럼 환히 밝아지는 바람에 《아, 전기가 왔구만.》하고 환성을 올리며 천정밑에 림시로 줄을 끌어다 매달아놓은 40촉전구를 올려다보았다. 주혁민이도 눈이 부시여 속눈섭을 슴벅이면서 앞에 서있는 키가 크고 골격이 굵직한 사나이를 지켜보았다. 선명하고 시원한 박준의 얼굴륜곽은 넓은 이마너머로 비낀 둥근 번대머리와 잘 어울려 풍채좋은 학자와 같은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여겨보니 검버섯이 돋은 살갗, 거친 볼편이며 광대뼈며 쇠독에 삭은듯 한 성근 이발들이 눈에 띄워 건강이 좋지 못한 로동자라는것이 분명히 알리였다.

《박준동무, 통성을 했는데 이전 손이나 잡아봅시다.》

주혁민은 굵은 피줄이 얼기설기 불거져나온 박준의 흙묻은 손잔등을 내려다보며 손을 내밀었다. 박준은 성근 이발을 드러내며 주혁민의 손을 스스럼없이 잡아쥐였다.

《소문에 책임비서동지도 발명권을 많이 가지고있는 유명한 기계기사라더니 기계쟁이의 손이 옳긴 옳구만요. 크고 꺼칠꺼칠한게 쥘맛이 있습니다.》

《손을 쥘맛이 있단 말이지요, 하하하…》

주혁민은 큰소리로 웃고나서 자기한테 발명권이 많다는 말은 어디서 들었는가고 물었다.

박준은 회령탄광기계공장에서 온 후방부지배인과 생산부기사장한테 들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무슨 말인지 후방부지배인이 다른 공장으로 소환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도당엘 자주 다닙니다.》

《그래요?》

주혁민이 시꺼먼 눈섭꼬리를 치켜올리며 이마살을 찌프리였다. 그러나 마침 박준의 아들이 신음소리를 내여 그의 시선이 그쪽에 돌려졌다.

세멘몰탈이 담겨있는 철판옆에 신통히 아버지를 닮은 박준 제2세가 시꺼먼 방수포를 깔고 누워서 입술새로 거품을 푸푸 내불며 자고있었다.

주혁민은 방수포밑을 짚어보았다. 눅눅하고 산뜩산뜩했다.

《이렇게 찬바닥에 누워자다가 탈이 나면 어찌겠소. 깨워서 집에 보내오.》

《놔두십시오. 이미 속병이 단단히 든 녀석입니다. 밤낮 술만 처먹으니 간이 견디겠습니까. 죽겠으면 죽구 귀찮습니다.》

《간이 나빠지면 안되는데… 여 친구, 일어나게!》

주혁민이 덩치큰 젊은이의 잔등을 건듯 들어 앉혀놓고 손바닥으로 건들거리는 머리를 세네번 쳐서 잠을 깨웠다.

《김치깍두기… 맛참 좋시다… 저 건너집… 령감 로친네.》

아들은 술에 노그라져 꼴기를 못차리는 속에서도 김치깍두기타령을 하였다.

《하하하, 김치깍두기 맛 참 좋시다… 이 녀석 일어나라! 집으로 가!》

주혁민은 손바닥으로 이번에는 그의 볼편을 세네번 치고 강짜로 일쿼세웠다.

《이건 뭐야?》

잠에서 깨여난 그는 눈을 두부럭거리며 주혁민과 아버지를 번갈아보더니 뭐라 중얼거리며 비칠비칠 밖으로 걸어나갔다.

《저 애가 몇살이요? 같이 가야 되지 않소?》

《일없습니다. 아는 주정을 합니다. 나이가 적습니까. 스물두살입니다.》

박준은 설계도면같은 종이장들을 접어서 야전가방형식으로 만든 방수포가방안에 집어넣었다.

《그건 무슨 도면들이요?》

《이거 말입니까?》

박준은 가방안에서 종이장들을 도로 꺼내여 펼쳐보이였다. 그것은 요즘 그가 새로 창안하고있는 새 형식의 드릴을 축적에 관계없이 그려놓은 모형도들이였다. 박준은 드릴회전틀의 련결부를 조금 개조하면 구멍파기속도를 2배이상 높이면서도 공구의 수명을 4배로 늘일수 있다고 하였다. 앞으로 좀 더 연구를 하면 그보다도 더 능률이 높은 드릴을 만들어낼것 같다고 하였다.

《거 참 대단하오. 그러니 동문 건설장에 나와있지만 생각은 여기에만 가있는것 같구만.》

주혁민은 여러 형태로 안을 잡아서 드릴의 모양을 그려놓은 창안모형도들을 손으로 두드리였다.

《사실 그렇습니다. 나는 기계밖에 모르는 기계미치광이고 쇠도깨빕니다. 그러다보니 아들을 저꼴로 만들고 별난 비판을 다 받습니다.》

그는 평생 기계창안에 미쳐 돌아가다보니 아들녀석이 나쁜 친구들을 만나 길을 잘못 드는것도 모르고있었다는것이였다. 한창 기계창안에 몰두할 때에는 시간이 가는지 오는지도 몰라 출근시간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자본주의 자유로동생활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무정형의 자유주의자라는 말을 듣고있고 심지어는 개인리기주의와 공명주의가 많은 인간으로 치부되여 비판을 받는다는것이였다.

그는 김동철지배인과 오성오부기사장이 만장판에서 자기를 개인리기주의자, 공명주의자로 락인하고 망신을 주었기때문에 4년전부터 그 사람들하고는 말도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김동철이, 오성오가 뭐라고 내가 그 사람들한테 머리숙이고 살겠습니까.》

《그들이 어떻게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4년째 말을 하지 않으면 됩니까? 우선 사내답지 못하구만.》

《예, 사내답지 못하지요.》하고 조용히 이죽거리는 박준의 안경에서 갑자기 불빛이 번쩍 하였다.

《책임비서동지, 그럼 털어놓고 좀 말합시다. 나는 나이 스무살이 훨씬 넘도록 남조선, 일본에서 돌멩이처럼 굴러다닌 사람입니다. 원자탄에 부모형제 다 잃었구 소, 말처럼 천대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내가 귀국하여 사람대접을 받게 됐습니다. 당에선 나한테 〈공훈기계제작공〉칭호를 수여했습니다. 나는 그게 고마와 자나깨나 어떻게 하면 나라에 조금이라도 보탬을 줄것인가 그것만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쇠도깨비가 되고 쇠미치광이가 된거지요. 그런데 뭐 공명주의? 개인주의?》

《아. 됐소, 됐소. 박준동무, 그만하오. 지배인이나 기술부기사장도 귀신이 아닌 이상 몰라서 그런 실언을 할수 있지 않소. 그런데 그걸 삭이지 못하고 원쑤처럼 말도 하지 않고 지내면 되는가.…》

주혁민이 주먹으로 박준의 넓은 잔등을 허물없이 철써덕 갈기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내심으로 칼에 맞은 상처는 아물어도 혀끝에 입은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는 말이 옳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책임비서동진 이 박준을 속통 좁은 놈이라고 나무라시는것 같은데 그렇게만 생각지 마십시오. 됐습니다. 이젠 그만하고 갑시다. 책임비서동진 어디로 가시던 길같은데 나도 그만 가겠습니다.》

박준이 주변에 널린 물건들을 대충 걷어모으고 나갈 차비를 하였다.

《가더라도 이겨놓은 몰탈이야 없애고 가야지.》

주혁민은 세멘몰탈이 무드기 담겨있는 철판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철판옆에 있는 바께쯔물을 꾸득꾸득해진 몰탈에 뿌린 다음 흰 남방샤쯔를 벗어 박준의 아들이 누워있던 방수포에 내던지고 삽자루를 쥐였다. 그가 삽날을 번개처럼 돌려 몰탈을 골고루 뒤번지자 꾸득꾸득하던 몰탈에 찰기가 돌기 시작하였다.

《자, 몰탈을 섬기시오. 내가 미장을 할터이니.》

주혁민은 삽자루를 던지고 미장흙판과 미장손칼을 량손에 들고 벽옆에 세워놓은 덕대우에 훌쩍 날아올랐다.

《자, 몰탈!》

주혁민은 미장손칼로 흙판을 두드리였다.

박준이 삽으로 몰탈을 섬기자 주혁민은 능숙한 솜씨로 흙판에 담긴 몰탈을 손칼로 두어번 뒤번진 다음 바람벽에 쭉 문다지였다.

《자, 몰탈!》

주혁민은 박준이 미처 몰탈을 뜨기도전에 미장흙판을 내밀며 소리쳤다.

《책임비서동지, 미장솜씨가 정말 대단합니다.》

《내가 건설을 얼마나 많이 했다고… 창광원식목욕탕을 두동이나 지었소. 우리 로친넨 〈건설준기사〉에 미장〈7급〉공이요.》

주혁민은 박준이 떠주는 몰탈을 매번 손칼로 번개처럼 뒤번져 일격에 문다지는데 바람벽이 매츨하게 미장되였다.

《박준동무, 이따 검정공 윤박람동물 불러다 내가 미장한 자리를 손으로 만져보라구 하오. 정확히 0.01미리의 정밀도가 보장됐을거요. 하하하… 자 몰탈!》

《윤박람동문 귀신같은 사람입니다. 그 동무의 얘기도 들은 모양입니다. 그 사람은 순전히 손의 감각으로 0.001미리의 정밀도를 알아냅니다.》

박준이 몰탈을 섬기며 하는 말이였다.

《자, 이젠 말할새도 없소. 또 몰탈!》

주혁민은 날렵하게 미장칼을 휘두르고 또다시 흙판을 내밀었다. 박준은 이마의 땀이 안경밑으로 굴러내려 쩔쩔매며 허둥거리였다.

주혁민은 순식간에 바람벽 절반을 미장해버리고 몰탈이 떨어져 덕대우에서 내려왔다.

《책임비서동지… 특급미장공입니다.》

주혁민의 미장솜씨에 진정으로 감탄한 박준은 삽자루를 놓고 손수건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번듯한 바람벽을 희한하게 올려다보았다.

주혁민은 손을 털고 남방샤쯔를 입으면서 박준에게 말하였다.

《래일부턴 여기로 나오지 마오. 건설대가 한주일안으로 미장뿐아니라 장판, 도배까지 다 한 다음 입사시키도록 대책을 세우겠소. 다음주 금요일엔 이사할 준비나 하오.》

《그게 정말입니까?》

박준은 진담인지 롱담인지 알지 못해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였다.

《그럼 책임비서가 오자마자 박준동무한테 허풍을 치겠소. 지금은 동거살이를 합니까?》

《예, 61년도 7월 귀국해서 받은 집이 철거대상이 되여 2년째 동거살이를 하는데 좀 괴롭습니다.》

《우리 공장에 집때문에 고생하는 동무들이 많습니까?》

《더러 있지요. 탁석준이라구 한몫 단단히 하는 성실한 설계가인데 그 사람도 이 뼈다귀아빠트를 받아가지고 고생합니다. 바로 우리 집 웃층입니다.》

《그래요?》

주혁민은 탁석준을 만나보려고 웃층으로 올라갔으나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탁석준은 성실하고 마음씨도 무던한 사람입니다.

우리 공장에서 〈HM기〉를 개발하게 되는데 탁석준, 윤현덕, 설태섭 이 세사람이 설곌 맡는다는것 같습니다. 해낼겝니다. 다 한다하는 설계가들이니까… 자 이젠 나갑시다.》

박준은 미장도구와 삽, 방수포 등속을 한곳에 모아놓고 전기줄의 한개 선을 떼놓았다.

밖으로 나온 박준은 가로등에 손목시계를 비쳐보고 《책임비서동지, 아까 역전동 12반을 찾는것 같던데 뉘집을 찾아갑니까?》하고 물었다.

《기사장네 집으로 가댔소.》

《기사장은 없습니다. 평양에 올라가 페암수술을 했는데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그를 경성료양소에서 치료하도록 배려해 주셨다고 합니다.》

《알고있소. 난 가족을 만나러 가오. 박준동무의 집은 어딥니까?》

《전 반대쪽입니다. 그럼 살펴가십시오.》

박준은 흘러내린 가방끈을 어깨우에 추어올리고 깍듯이 허리를 굽혔다.

《예, 래일 아침 또 만납시다.》

주혁민은 손을 흔들고 돌아섰다. 얼마쯤 걸어가다 뒤를 돌아보니 그때까지 박준은 건설장 벽체앞에 서있었다.

외등에 비친 그의 모습, 가방을 어깨에 걸메고 서있는 그 모습이 마치 길가에 세운 조각상처럼 보이였다.

(내가 저 사람들을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뜻대로 이끌어갈수 있을가?)

주혁민은 그것을 장담할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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