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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일에 사는 사람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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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2-05-07 17:49 조회3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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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제 2 편 청 년 조

5

진수현은 먼저 임창만을 제 방으로 데리고가 어떻게 된 일인가고 물었다.

창만은 증인격인 남웅을 만나야 소동의 내막을 알수 있다고 대답하였다.

《창만동문 잘 모르누만?》

진수현이 유감인듯 중얼거렸다.

《나한텐 조장이 곁을 주질 않습니다. 내가 상급에 자꾸 반영한다는거지요, 하하…》

그래서 진수현은 리남웅을 불렀다.

리남웅은 모든게 시끄럽다는 기색이였다.

《글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조장이 동무보고 〈증인〉으로 나서라고 했다던데?》

《이거야 무슨 재판마당도 아니지요.》

《내 생각엔 춘도동무가 한 계산이 틀렸던것 같소. 솔직히 말해보우. 남웅동무 보기엔 어떻소?》

남웅은 마침내 한숨을 지으며 수긍하였다.

《내 보기에도 그런것 같습니다.》

《둘이 다툴 때 동무가 그렇다고 판가름을 해줄걸 그랬소. 보우, 동무가 외면하니까 말다툼이 심해지지 않았소?》

《그렇게들 노는데는 끼여들기가 싫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들의 결함을 무시해버릇하면 큰일을 할수 없다고 생각하오. 남웅동무는 장차 한개 연구집단을 책임질수도 있고…》

《사람 다루는 일은 내 기질에 맞지 않습니다. 시간이나 빼앗길뿐이지요.》 심드렁한 소리였다.

《그럼 어떤 일이 자신에게 맞는다고 생각하오?》

《물론 연구사업이겠지요.》 리남웅이 마지못해 대답하였다.

진수현은 천천히 도리질을 하였다.

《동문 연구사업도 잘할것 같지 못하오. 새 세기에는 큰 두뇌집단을 움직이는 능력이 있어야 역시 큰 과제를 맡아할수 있는거요. 내 생각엔 남웅동무가 모든 면에서 좀 적극적이였으면 좋을것 같소.》

《…》

《이렇게 따로 만났던 기회에 뭐 제기할게 있으면 하오. 무슨 의견이라던가, 개인사정이라던가…》

진수현은 그 어떤 륙감에 따라 이런 질문을 던졌다. 아무리 보아도 남웅이가 수수께끼였던것이다.

순간 리남웅은 우울하고 착잡한 눈길로 진수현을 마주보더니 땅이 꺼지게 한숨을 지었다.

《없습니다.》

《가보오, 송동무를 좀 오라고 하오.》

진수현은 남웅이 나간 문을 쳐다보았다.

저런 청년이 어떻게 대학시절에 학위를 받았을가? 지형원교수의 극진한 도움으로? … 리윤덕이 말하듯이 사회에 나와서는 맥을 못추는형이 되여 저럴가? … 모를 일이였다. 어쨌든 열정도 기백도 정의감도 없는 시들한 청춘을 보는것은 서글픈 일이였다.

사람들이 진수현을 보고 대체로 랭정하고 침착한 사람이라고 말들을 하지만 그건 그의 자제력의 덕분이였고 사실 속에서는 강한 감정이 끓고있었다. 그가 제일 질색하는것은 무맥하고 아무런 주의주장도 없는 그런 인간들이였다.

송춘도가 나타나 사뭇 흔연한 기색으로 헛기침을 하였다.

진수현이 우선 주의를 주었다.

《조장을 존중해야지 다투면 되겠소?》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습니다. 정말 어처구니없이 감투를 쓸번 했습니다.》

송춘도편에서 도리여 개탄을 하였다.

《송동무, 세부회로설계와 요소정수계산이야 원래 동무와 남웅동무몫이 아니요?》

《물론입니다. 그런데 최동무가 휘젓고 나서면서…》

《누가 계산을 했건간에 그 부분에서 착오가 생긴데 대해선 담당자들이 먼저 가책을 느껴야 하지 않을가?》

《…》

송춘도가 곰곰히 돌이켜보느라니 문제의 그 요소계산을 정말 최일이 했던지 자기가 했던지 점점 아리숭했다. 본시 너무도 복잡하고 까다로운 회로인데다가 시키는 일이나 수동적으로 하다보니 어느 부분을 자기가 계산했던지 삭갈릴수밖에 없었다. 자기가 주인답게 그 일을 대하지 못했던것도 사실이였다.

송춘도는 게면쩍은 소리로 수긍했다.

《그건 그렇습니다. 나한테도 책임이 없는건 아닙니다.》

《그럼 됐구만. 그대로 조장한테 이야기하면 될텐데 어째서 책임한계를 가르면서 그의 약을 올렸소?》

《솔직히 이 기회에 그 친구한테 자극을 좀 주느라구 그랬습니다. 약이야 쓸수록 좋지요. 지금까지 보자보자하구 참아오니까 이건 그저 안하무인이거던요. 사람을 아주 그냥 우습게 안단 말입니다. 걸핏하면 수공업자요, 뭐요 하면서… 형편없는 친굽니다.》

송춘도는 열이 올라 제 고향 말투가 튀여나왔다.

진수현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남을 깔보는건 좋지 않지.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런 신랄한 지적을 들어두는것도 자기 발전에 해롭지 않을거요.》

《하여튼 그 친구는 턱없이 교만해서 여기 사람들한테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건 그렇다치구 기판시험에서 자꾸 실패하는건 어떻게 보아야 하겠는가 하는겁니다. 두말할것없이 실력과 경험의 부족입니다. 대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대책이란…》

《그런 어려운 과제는 나많은분들한테 넘기는게 순서라고 봅니다.》

《그렇다…》

《아니면 D―3형장치개발을 과제로 다시 선정하던가…》

《그건 벌써 남들이 해본거지.》

《단계적으로 밟아올라가자는겁니다. 내가 주장하던거라고 해서 집착하는건 아닙니다. 실지 할수 있는것부터 하자는거지요.》

《난 송동무가 젊은 과학자로서 한번 세계최첨단으로 도약해보겠다는 포부를 가졌으면 좋겠소. 이건 조선사람의 자존심과 배짱과도 관련되는거요. 그러자면 높은데로 지향하면서 자질을 높여야 하오. 배짱도 아는데서 나오는거요.》

《내 경우엔 어쩐지 보다 현실적인 과제가 적합한것 같습니다. 공장들에 내보내주면 제 몫을 할수 있습니다. CNC장치들도 수리해주고…》

《동무넨 현지에 나가기 전에 더 준비해야 되오.》

《내 자질을 두고 하시는 말씀 같은데 최상의 훈련은 경기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송동무, 지금은 〈조종7호〉를 개발하는게 제일 현실적이고 실리가 있는 과제요. 좀더 채심해서 일했으면 좋겠소. 조장동무를 잘 도와주라구. 동무야 장치물계에도 남보다 밝다면서…》

《…》

《송동무가 먼저 조장한테 사과를 하고 맺힌걸 푸는게 어떻소?》

《그 친구는 이편에서 굽어들면 더 코대를 높일겁니다. 그런 실례는 허다합니다. 글쎄 한번은…》

그의 긴 이야기를 들으면서 진수현은 몹시 실망하였다. 이런 청년을 데리고 일하기가 헐치 않을것 같았다.

그런데 윤덕부소장은 어째서 송춘도를 그중 낫다고 평가했는가? 자기한테 고분고분하기때문에?… 그보다도 뭔가 좋은 점을 보았을수 있다. 하긴 이 자리에서도 춘도는 자기의 실수와 결함을 선선히 인정하지 않았는가…

진수현은 마음의 구김살이 없는 젊은 사람답게 인차 속을 터놓는 송춘도가 그닥 밉지는 않았다.

그래서 근기있게 그를 설복하였다.

《송동무, 자꾸 그러지 말구 서로 화해를 하오.》

《예, 노력해보겠습니다.》

송춘도를 돌려보낸 진수현은 여전히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조장인 최일이까지 부르지는 않았다. 일시 달아올랐던 그의 젊은 기분이 이어 뒤가 없이 가라앉으리라고 생각했던것이다.

이튿날, 진수현이 실험실의 분위기를 보니 조용하였다. 오전 10시쯤되여 그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최일은 창가에 서서 표표한 기색으로 밖을 내다보고있었고 송춘도는 코노래를 부르며 콤퓨터로 무언가 작은 인쇄기판을 그리다가 실장이 나타나자 얼른 다른 파일로 바꾸어버렸다. 리남웅은 자는지 조는지 두손으로 턱을 고이고 눈을 감고 앉아있었다. 그래도 임창만과 학준이가 이마를 맞대고 기판을 들여다보고있었다.

최일이 실장을 돌아보았다.

《좀 말씀드릴게 있습니다.》

《?》

진수현은 뭔가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며 그를 데리고 아예 현관을 나서서 공원으로 갔다.

장미계절이였다. 꽃들사이로 꿀벌들이 날았다.

공원은 한적한데 해볕에 벌써 의자들이 따스해졌다.

《앉아서 이야기하지.》

《괜찮습니다. 내 말은 길지 않습니다. 난 조장사업을 계속할것 같지 못합니다.》

《그건 어째서?》진수현은 의자에 앉았다.

《첫째 리유는 내 자질이 낮은겁니다.》

《최동무답지 않은 소리구만.》

《비웃는겁니까? 실장선생도 평소에 내가 자고자대한다고 보시는가요?》

최일이 까다롭게 걸고들었다.

《아니요, 자기자신을 존중하고 자신에게 기대를 많이 거는 사람은 많은 일을 할수 있다고 생각했소.》

《난 자신이 없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기판틀거리는 얼추 만들어놓은셈인데 이건 설계프로그람도구가 있으니까 누구나 머리를 좀 쓰면 할수 있는 일이였지요. 문제는 기판의 결함의 원인을 찾아내는겁니다. 그 원인은 한가지가 아닌것 같습니다. 난 요즘 내 경험이 부족하다는걸 확실히 느꼈습니다. 이제부터는 책에도 없는 노우하우(비결)를 터득한 오랜 경험자가 필요합니다. 경험많은 년장자들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갈바에야 청년조 조장자리에 젊은 사람을 허수아비처럼 계속 놔둘 필요가 뭔가 하는겁니다.》

최일은 지금 자기 반성이 아니라 자기의 무능으로 하여 사람들앞에서 망신했다고 생각하면서 자기를 학대하고있었다.

그러나 거기선 진정이 느껴졌다. 진수현은 솔직한 그의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그건 리유가 못되오. 오유에서 배웁시다. 최동무에겐 분명 재능이 있소. 그다음 둘째 리유도 있소?》

《저 사람들 데리군 아무 일도 못치겠습니다. 한가지 묻고싶은데 실장선생이 어제밤에 춘도를 만나서 그의 행동에 리해를 표시했습니까? 물론 그 친구가 헛소릴 한거겠지만…》

《그건 무슨 말이요?》

《그 친구가 오늘 출근하자바람으로 날보고 사뭇 대범하게 하는 말이 실장까지 이 춘도를 리해하고 인정하는데 조장은 뭘 자꾸 꼬부장해서 그러는가고, 이젠 남아답게 풀자는겁니다. 내 기가 막혀서… 수치감이란 개념부터 모르고있습니다. 그가 처음에 계산상오차를 냈는데 그런 실수는 있을수도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 우리끼리 처리하려던건데 그는 자기 책임을 남한테 전가시키면서… 참 입에 올리기도 뭣한 일입니다.…》

《나도 좀 알아보았소.》

《그래 이런 인물을 청년조에 용납할수 있습니까?》

《송동무에게 결함이 있소. 하지만 그의 행동이 어느 정도 리해는 되더군.》

《오― 그러니 송춘도 그 친구가 노상 근거없는 소릴 한건 아니군요?!》

최일이 비양조로 말꼬리를 끌었다.

진수현이 진지하게 말했다.

《조장이 동무들앞에서 송동무가 납득할수 있게 충고를 주었더라면 그는 첫번째 실수로 그쳤을수도 있었을거요.》

《그러니 잘못은 나한테 있다 이겁니까?》

《조장으로서 책임을 더 느껴야지. 조원들이 설사 계산을 잘못했다 해도 동무가 검토단계에서 그 결함을 제때에 잡아냈어야 했소. 이런 관점에서 자기부터 먼저 반성하고 조원들을 일깨워주면서 널리 포섭해야 할게 아니요. 상대의 우점을 먼저 보면서…》

《그만하십시오. 그렇게 두리뭉실하게 해가지고 우리 청년조의 단합과 발전이 이루어질것 같습니까? 이전 실장도 무턱대고 송춘도를 싸고돌더니… 송춘도뿐이 아니지요. 부정을 외면하고 몸을 사리는 리남웅이를 보십시오. 그건 부정인물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혐오스러운거지요. 18세기에 한 계몽주의자는 사회에서 주대없는 사람만큼 위험한것은 없다고 말한바 있습니다. 그리구 실험공이나 하던 임창만이, 그의 실력은 실장선생이 잘 아실테니까 더 말하지 맙시다. 남은건 풋내기 학준이뿐입니다. 이런 인물들을 데리고는 고급한 수자조종장치는 고사하고 단순한 기판 하나도 만들어내기 힘듭니다. 애초에 내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최첨단CNC장치개발은 연구소적인 사업인만큼 청년조를 뭇겠으면 다른 연구실들에서 수재급들을 뽑아다가 강력한 조를 꾸려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전엔 절대로 안됩니다, 절대로! …》

《최동무,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보오. 그렇게 되면 우리 실 청년들은 발전할 기회를 잃게 되질 않소?》

《아, 천분을 타고나지 못한 인간들이야 어쩔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 생각은 옳지 않소, 누가 동무한테 사람들의 우렬을 그렇게 평가할 권리를 주었소?》

《그러게 난 조장자격이 없습니다. 유명무실한 연구조의 조장노릇은 더구나 못하겠습니다.》

《최일동무! …》

최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어져갔다.

진수현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최동무!―》

《거기 서라구!》

최일에게 소리친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리윤덕부소장이였다. 그는 청년조일을 보아주러 왔다가 걱정이 되여 이 공원까지 따라나온 모양이였다.

최일은 걸음을 멈추고 옆으로 돌아서서 리윤덕을 마뜩지 않게 쳐다보았다.

리윤덕이 대머리까지 붉히며 격노해서 소리쳤다.

《동문 왜 점점 그 모양이요? 실장한테까지 떡떡 맞서면서, 엉? 실장이 그래두 기대를 가지구 조장으로 내세우니까 이젠 아예 방자해졌거던. 그야말루 천상천하유아독존이야. 동무가 뭐이길래 기고만장해서 그래! 하겠다, 못하겠다― 못하겠으면 그만두란 말이야. 워낙 동무한테 무슨 자격이 있어서 조장을 시킨건 아니야.》

최일은 낯이 해쓱해졌다.

《옳은 말씀입니다.…》

그는 돌아서서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리윤덕은 분이 삭지 않는지 그뒤에 대고 몇마디 더 소리를 질렀다.

멀찍이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진수현은 앞이 막막해졌다.

이전에 여러 연구실들을 맡아오면서 실사업을 춰세우고 젊은 연구사들도 이끌어주느라 애도 어지간히 썼지만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었다. 지나간 일이니 다 헐해보이는걸가? 어쨌든 그 연구실들에는 청년들이 많았고 그속에 핵심들이 한둘씩은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맥없이 서있는 진수현에게 리윤덕이 씨근거리며 다가왔다.

《저게 바로 최일이요. 매번 룡두사미란 말이요. 헛참… 이젠 청년조를 어떻게 한다?》

《…》

《끝내 이렇게 될것 같더라니!》 리윤덕이 쩝쩝 입맛을 다셨다.

《할수 없지, 수현동무, 이젠 혁신과제를 김승길동무같은 경험자들에게 맡기오. 그래야 나도 마음을 놓겠소. 어려운 과제인만큼 그 개발기한도 몇년간으로 넉넉히 잡고… 일이야 되도록 해야지. 후비문제는 너무 걱정말라구, 중심실 아닌가. 소적으로 력량을 집중해주겠소.》

진수현은 오후 한겻 울적해있었다.

그는 리병섭과 김승길을 만나 청년조문제를 상론했지만 신통한 출로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정말 혁신과제요 청년조요 하면서 되지도 않을 일을 무리하게 내민건 아닌가? 이러다간 국가과제도 부서일도 다 놓칠수 있다. 그래, 순탄한 길도 있지 않은가. 형편을 봐가면서 점차 높은 과제도 제기하고 후비문제에도 관심을 돌린다고 누가 나를 탓하겠는가?! …

마음은 여전히 편안치 않았다.

그는 어떻게 토론했고 어떻게 밥상에 마주앉았는지 알지 못했다. 안해가 무슨 번역자료때문에 오늘도 늦어지고 맏딸 정임이가 저녁을 차렸다는것도, 둘째딸 정선이가 3점을 맞은 수학시험지에 아버지의 수표를 받기가 두려워 쭈밋거리는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저녁을 몇술 뜨다가 수저를 내려놓고 여느때없이 아래방에 멍청하니 앉아있었다. 머리속이 텅 빈것 같았다. 아무런 의욕도 없었다. 청년조가 저 모양이 되였으니 밤작업을 나갔대야 헛수고일것이다.

허공에 머물렀던 그의 눈길이 우연히 창문에서 경대에로, 경대우의 장식완구― 인조털로 만든 우습강스러운 코끼리와 곰《뿌―》에게로 가닿았다. 도이췰란드의 리흐터할머니가 몇달전에 기념품으로 준것이였다.

어째서 오늘따라 저 코끼리와 곰이 눈길을 끄는것인가?

진수현은 그 할머니와 손자 파울과 13년전부터 아는 사이였다.

…그때 파울은 10살 나는 금발머리소년이였다. 그는 본 교외에서 살고있었는데 이따금 시내 복판에 자리잡은 할머니네 집으로 놀러오군 하였다.

그 집 2층 남쪽방에서 류숙하고있던 진수현은 소년과 낯을 익히게 되였다.

그들은 뜨락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아저씬 여기 와서 무얼 연구해요?》

《조종학이다.》

《조종학이란건?…》

《한마디로 말하기는 힘들다.》 그는 소년이 알아듣게 설명하느라고 애를 썼다.《가령 내가 손으로 돌멩이를 집어든다고 하자. 이때 뇌수가 신경계통을 거쳐서 팔과 손, 손가락의 운동을 조종하게 되는데 이건 눈과 손끝의 감각으로 얻어진 정보를 해석하면서 유도되는것이다. 콤퓨터는 사람의 뇌수를 닮았다고 할수 있다. 그래서…》

《알만 해요. 아저씨는 콤퓨터로 기계를 조종한다는거지요. CNC란 말은 나도 들었어요.》

《옳다, 콤퓨터보다 사람의 뇌수는 더 복잡하지. 뇌수에서는 감각자료나 자체의 경험들뿐아니라 이전에 기억한 정보들 그리고 예감과 욕망들도 동시에 작용한다. 조종학은 기계를 움직이는 콤퓨터를 점차 사람의 수준에 접근시킨단다.》

《학자는 어떤 사람이 될수 있나요?》 소년이 물었다.

《그거야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하고…》

진수현은 말꼬리를 흐리며 고개를 가로젓는 소년을 의아해서 쳐다보았다.

《난… 난 학자가 될수 없대요. 내 운명은 결정되였대요.…》

소년의 주근깨투성이 두볼에 느닷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수업시간에 지구가 달을 돈다고 우기다가 동무들의 웃음거리가 되였다는 가엾은 소년이였다.

담임교원은 소년에게 미리 일러주었다고 한다.

-파울, 너는 이제 6년 지나면 직업학교에 입학해야 한다. 거기서 숙련된 기술과 직업도덕을 겸비하게 될것이다. 창조적소수에 속하지 못한다고 실망할건 없다. 직업교육이야말로 우리 도이췰란드의 경제발전의 토대이기때문이다.-

《지구가 달을 어떻게 도니? 한번 이야기해보렴.》

진수현이 울먹거리는 소년을 달래였다.

할머니가 뜨락으로 나왔다.

《파울, 학자선생의 시간을 빼앗으면 안된다.》

《괜찮습니다. 할머니, 우리 함께 파울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소년은 진수현의 두리를 돌며 설명하였다.

《아저씬 지구예요. 난 달이구요. 달은 이렇게 지구를 줄곧 쳐다보면서 그 주위를 돈대요. 그러니 지구도 달의 주위를 돌게 되지요.》

《또 그 엉터리 소리구나!》

《할머니, 좀 생각해보라요. 달은 한달에 지구를 한바퀴 돌면서 한번 제돌이를 하니까 그가 늘 쳐다보는 지구도 달을 한바퀴 도는셈이죠, 안 그래요?》

《파울은 지금 달을 위주로 천체들의 운동을 보고있습니다. 이건 남다른 고찰방법입니다.》

진수현이 할머니를 납득시켰다.

《그러니 이 애의 생각이 옳다는건가요?》

《그렇게 말할수 있습니다.》

진수현은 파울의 지능에 주의를 돌리기 시작하였다.

그는 주말이 오면 소년을 방에 불러들여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배워주기도 하였다. 진수현이 공동연구를 하고있는 이곳 연구소도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 휴식하였지만 그는 여전히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는 그 짬에 소년을 위해 그리고 가정의 분위기를 맛보고싶어 학습담화시간을 내는것이였다.

소년은 학자될 꿈을 안고 학습진도를 뛰여넘어 줄달음치기 시작하였다.

또다시 주말이 왔다.

토요일이면 진수현은 이 나라 주재 우리 나라 대사관으로 가서 오전 한겻을 보냈다. 조국의 소식도 듣고 새 노래도 배웠으며 대사관 직원들의 일손을 도와 정원을 가꾸기도 하고 탁구도 쳤다. 그는 대사관구내에 들어서면 별로 수다스러워졌다. 이 반나절동안은 모국어로 말하고 들을수 있었던것이다.

그는 때로 대사관 직원들의 집에서 차린 오찬에 초대되기도 하였다. 국수, 김치, 고추장…

그날 점심에 문화참사네 집에 이끌려가서야 그는 자기의 생일인줄 알게 되였다.

그는 오후에 숙소로 돌아가 콤퓨터와 마주앉아 일을 했다. 약속한 오후 5시에 파울이 나타나지 않았다. 오늘이 분명 토요일인데 그 애한테 무슨 일이 생겼을가? 매번 시간을 정확히 지키더니…

벌써 7시가 되였다. 창밖의 가로등과 장식등들이 부옇게 켜졌다.

시계를 쳐다보며 저녁식사를 하러 거리로 나갈가 말가 하고 망설이는데 뜻밖에도 파울과 할머니가 나타나 상을 차린 1층 식당으로 초청하였다.

할머니와 손자는 조선에서 온 학자의 34번째 생일을 축하하였다. 진수현은 생일상에 둘러앉은 할머니와 손자에게 멀리 두고온 조국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토요일은 한달에 대체로 4번씩 찾아온다.

그날도 토요일이였다. 1994년 7월 9일…

오후에 파울이 할머니네 집으로 경황없이 달려왔다.

손자와 할머니는 뜻밖의 충격적인 비보에 접한 조선의 학자를 만나 슬픔을 나누려고 그를 기다리고기다렸다.

진수현은 그날 하숙집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였다. 어버이수령님을 잃고 온 조선이 대성통곡하는 모습을 연구소의 텔레비죤에서 보게 된 진수현은 하늘땅이 거꾸로 도는것 같았다.

그는 비청거리며 우리 대사관으로 달려갔다.

어버이수령님의 초상화앞에 화환을 진정하고 호상을 섰다. 슬픔에 싸여 대사관으로 찾아오는 외국의 조객들을 맞이하였다.

텔레비죤화면에 비치는 영결식장에서 수척해지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모습을 뵈왔을 때 진수현은 다시금 가슴이 찢기는듯 아팠다.

장군님!… 너무 상심마시고 건강에 류의하여주십시오, 장군님의 건강은 우리 조국의 운명입니다.

저희들은 이제부터라도 더 분발하고 채심하여 장군님을 잘 받들어모시렵니다, 과학자의 본분을 다하여 조국의 앞날을 열어나가겠습니다.…

진수현은 역시 그곳에 공동연구를 하러 조국에서 온 다른 한 과학자와 함께 불타는 맹세가 담긴 편지를 경애하는 장군님께 삼가 올리였다.

그후 장군님께서는 해외에서 두 과학자가 올린 편지를 받으시고 감사의 친필회답서한을 보내주시였다.

진수현은 공동연구에서 가치있는 결실을 마련해가지고 귀국하게 되였다. 실험설비들과 최신과학기술자료들을 짐으로 꾸리니 퍼그나 무거웠다. 우리 대사관 일군들이 그 짐을 석달후에 조국에 보내는 짐함에 넣어주겠다고 하였지만 그는 비행기에 함께 싣고 떠났다. 이 최신자료들이 한시바삐 조국에 가닿기를 바랐던것이다.

파울과 할머니도 비행장에서 진수현을 바래웠다. 작년 12월에 진수현은 다시 도이췰란드로 갔다. 베를린기술종합대학 연구소에서 몇달기한으로 공동연구를 하던 그는 그 대학구내에서 연구원생인 파울 리흐터를 만났다. 그는 름름한 청년으로 자란 파울이 장래가 촉망되는 재사임을 다시금 확인할수 있었다. 몇달간의 연구를 마친 진수현은 귀국직전에 파울과 함께 본으로 가서 그의 할머니를 만나보았다.

그리고 파울의 안내를 받으며 시내를 돌아보다가 베토벤의 생가에도 들렸다. 회칠한 2층건물의 웃층 창문가에 제라늄이 붉게 피여있었다.

《운명은 이와 같이 문을 두드린다- 참 시적인 문구지요?》

파울이 감동에 젖어 말했다.

《난 이제야 교향곡〈운명〉이 조금씩 리해되는것 같습니다.》

진수현의 마음속에서도 그 교향곡 1악장 1주제의 첫 동기가 큰 진폭으로 울리였다.

그는 깊은 음악세계를 다는 알수 없었지만 이 시각 운명에 대하여, 귀국을 앞두고 조국과 이어진 자신의 운명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그것은 어제와 오늘보다도 래일에 대한 생각이였다.…

아, 그때는 희망에 넘쳐 귀국했는데 지금은…

그는 자책에 잠겨 서재로 들어갔다.

오늘따라 책상 맞은편 밝은 벽의 액틀속의 글자들이 깊은 감회를 불러왔다.

온 나라가 대국상을 당하고 모진 시련을 겪을 때 해외에서 두 과학자가 올린 맹세의 편지를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감사를 표하신 친필서한이였다.

그때 우리는 장군님께 과학자의 본분을 다하여 조국의 앞날을 열어나가겠다고 맹세하지 않았던가.

그 앞날이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였다. 최일이네들의 앞날이며 우리 연구실, 우리 연구소의 앞날이였다.…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겨 밤길을 더듬으며 다시 연구소로 나갔다.

어두운 실험실에 불부터 켜놓고 문제의 기판을 들여다보고싶었다.

연구소청사의 여러 창문들에서 불빛이 비쳐나왔다. 저 연구실들에서는 오늘밤도 전투를 하고있을것이다. 수행장치실, 로보트실, 유연체계실창문들도 환했다.

저건 우리 실험실의 불빛이 아닌가?! 최일이 나왔을가? 아니면 임창만이? …

들어가보니 임창만이였다.

벌써 판을 차려놓고 오씰로그라프로 기판시험을 하고있었다.

진수현은 가슴이 뭉클하였다. 저 사람이 이젠 몰라보게 자랐구나, 이번에는 도리여 나를 돕자고 여기로 따라왔지.

그는 뜨거운것을 삼키며 창만이와 나란히 앉아 파형들을 지켜보았다.

창만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실장선생님.》

《음…》

《최동무는 이제 돌아설겁니다. 지내보니 그는 시시한 청년이 아닙니다. 일단 탐구에 들어가면 자기를 잊고 열중하는 좋은 기질도 있구요.》

《그 말이 옳은것 같소. 난 그렇게까지 좋게 보지는 못했댔소.》

《그래두 실장선생님이 최동무를 내세우지 않았습니까?》

《아니요. 난 그의 실력만 보았지 인간됨됨을 창만동무처럼 믿지는 못했댔소. 그의 자립성만 생각하면서 그저 감싸주는 식으로 대해왔소.》

진수현은 그를 진정으로 믿고 가깝게 여겼더라면 자기가 그만큼 강한 요구를 제기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연구소의 밤이 깊어가고있었다.

불빛이 비쳐나오는 조종장치실창가를 바라보며 연구소 마당을 홀로 거니는 사람이 있었다. 김정태초급당비서였다.

그는 조종장치실의 사업을 놓고 고심하고있었다. 청년조를 이끌어주는데서 행정실무적방법만 가지고는 부족하다는것을 심각히 느끼는 그였다.

(사상을 발동해야 한다. 세계 일류급수준에 올라서야 한다는 야심 하나로는 청년들을 불러일으킬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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