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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전역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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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2-03-24 22:47 조회3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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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6 회

밝은 미래

김 철

여러해동안 무산군 강선고급중학교 초급반에서 국어교원으로 일하고있는 김순옥에게는 소중히 여기는 한권의 시집이 있다.

그것은 대학졸업식날에 귀밑머리가 희슥한 담임선생이 기념으로 주었던 장편서사시 《전승의 서곡》이였다.


처음으로 울린 상학종도

터지지 않은 한톤짜리 포탄깍지였다

정녕 잊지 못하노라

창문도 책상도 없는

광솔불 가물거리는 반토굴이여!

45분 그 짧은 수업시간에만도

폭격과 포격으로 두세번 멈추던

네다섯 학년의 복식교수여!


첫머리부터 심금을 틀어잡는 서사시는 곧 교원생활의 거울과도 같아서 순옥은 특별히 애송하였다. 언제인가 교장인 김창남도 이 시집을 빌려보고는 참 시가 좋더라고 말한적이 있다.

순옥은 서사시에 나오는 녀교원 송화가 교과서를 나르는 길에서 적기의 기총탄에 피흘리며 쓰러지고 가쁜숨을 몰아쉬면서 장군님께서 기다리시는 상학종을 어서 치라고 부탁하는 장면에서는 절로 눈시울이 뜨거웠다. 그러면서 만약에 나에게도 준엄한 날이 오면 송화선생처럼 할수 있을가 하는 마음결을 가다듬군 했었다. …


1

2016년 8월말 무산땅에 이틀동안 구질구질 내리던 비는 31일 저녁에 이르러 창살같은 비줄기로 변하였다.

꽈르릉!

검푸른 하늘을 갈가리 찢어발기는듯 요란한 천둥소리가 간간이 울리고 집집의 창문유리에는 섬광이 번쩍이였다.

밤 9시 20분, 남편을 기다리다못해 따끈한 밥사발이 들어있는 가마안에 물을 조금 붓고 잠든 유성의 이불깃을 여미여준 순옥은 허리를 펴려고 누웠다.

이때 문두드리는 소리가 요란스레 들려왔다.

누군데 저렇게 문을 세게 두드린담. 아마 성미가 화약같은 사람인가봐. 혹시 유성이 아버지가?…

순옥이 지레짐작하며 문을 여니 물이 줄줄 떨어지는 비옷을 입은 보안원이였다.

《빨리 산으로 피하시오. 시간이 급합니다.》

《예?》

순옥은 눈을 삼박거렸다. 난데없이 나타나 밑도 끝도 없이 피하라는것은 무슨 소린가?

《지금 두만강수위가 형편없이 높아지는게 큰물이 날수 있다는 긴급통보요. 그리고 광산으로 뛰여가는 유성이 아버지를 만났댔는데 집에 올것 같지 못하니 순옥선생이 아들을 데리고 산등성이에 있는 명근이네 집에 피하라고 전해달라누만.》

드바쁜 걸음으로 옆집에 가는 보안원을 어리벙벙해 바라보던 순옥의 뇌리에는 번개치듯 남편의 부탁이 되새겨졌다.

세포위원장인 남편이 억수로 쏟아지는 비속을 뚫고 달려가는 모습이 언뜻 떠오르고 눈앞의 정황이 결코 심상치 않음을 깨닫게 된 그의 가슴 한귀가 뭉청 내려앉는것 같았다.

큰물이라니? 상상만 해도 끔찍한 큰물이 마을을 휩쓸게 된단 말인가?…

그는 다급히 방안에 되돌아왔다. 대문에서 방으로 오는 사이에 비를 맞아 옷이 흠뻑 젖었다.

창밖에서 요란스레 울려오는 비소리, 귀가 멍멍해지는 비소리는 순옥을 놀래우는 마음의 비상종이 되여 황급히 일손을 서두르게 했다.

우선 위대한 수령님들의 초상화를 안전하게 모실 준비를 끝낸 다음 셈평좋게 자고있는 유성을 흔들어깨웠다.

유성은 눈을 부비며 《엄마, 벌써 아침이나?》하고 생뚱같은 소리를 했다.

《큰물이다, 큰물! 제꺽 옷을 입어라.》

순옥은 잠눈을 채 못 뜬 아들의 팔에 소매를 꿰여주다말고 《엄만 바빠, 네절로 입어라.》하고 내버려두었다.

그리고는 오똑 서서 방안을 빙 둘러보았다.

무엇을 가져갈가? 다 가져갈수는 없는것이고 꼭 필요한 쌀하고 그 다음은?…

순옥은 급하게 옷장을 뒤적였다. 여러벌의 속옷을 껴입고 양복에 외투까지 껴입었다.

마찬가지로 아들에게도 옷을 더 입혔다.

유성은 볼편을 찡그리며 투덜거렸다.

《엄마, 옷을 왜 많이 입히니? 뚱뚱한거 싫어.》

《엄마 하라는대로 해라.》

순옥에게는 속구구가 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여벌옷이라도 남기려면 이렇게 하는 방법밖에 없는것이다.

작은 보따리를 꾸린 순옥은 아들의 손목을 잡고 황급히 집을 나섰다.

질척질척한 길가에는 벌써 야산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줄을 지었다.

그는 아픈 눈매로 흘깃 집쪽을 돌아보았다.

정말 큰물이 들이닥치게 될가? 진짜 그렇게 되면 우리 집은?…

하기야 사람이 살고야 집도 있는것이지.

그는 지그시 이를 악물고 걸어나갔다. 옷을 많이 입은 유성은 뚱기적거리며 끌려오다싶이 했다.

번쩍! 꽈르릉!

심술궂은 하늘이 지상을 위혁하듯 노호소리를 터치였다.

《엄마!》

유성은 질겁하여 애된 소리를 지르며 어머니의 손을 놓칠세라 감아쥐였다.

《유성아, 무서워말아. 엄마가 있잖니.》

대줄기같은 비살은 순옥의 부푼 머리칼들로 미끄럼타며 락수물처럼 뚝뚝 떨어졌다. 연신 비물을 훔치며 걷던 그는 무춤 걸음을 멈추었다.

앞길을 비치던 전지불이 그만에야 방향을 잃고 허둥거렸다.

(가만, 내 정신봐. 우리 학교는?)

순옥의 뇌리에는 학교에 대한 걱정이 뒤늦게 갈마들었다.

스스로 자신을 질책했다. 집근심에만 옴해 교원의 자각을 망각하다니…

《엄마, 아직 멀었나? 나 추워.》

순옥은 칭얼거리는 아들애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유성아, 너 명근아저씨 집을 알지?》

《응.》

《엄마 학교 갔다가 인차 따라갈테니 너 먼저 그 집을 찾아가거라. 우리 유성이 이젠 다 컸는데 혼자 갈수 있지?》

《싫어, 난 엄마하고 같이 갈래.》

유성은 머리를 저으며 고집을 부렸다.

《너 정말 엄마말 안 듣간? 엄만 학교 가야 돼.》

순옥이 안타까이 소리치는데 옆으로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멈춰섰다.

《순옥선생 아닌가? 왜 안 가구 서있나?》

창남교장의 안해였다.

순옥은 반가운 기색을 짓고 말을 건넸다.

《교장선생은 학교로 나갔겠지요?》

《그럼, 아까 나갔지 뭐.》

더이상 시간을 끌수 없다고 단호히 결심한 순옥은 그에게 유성을 맡기고 학교길로 달려갔다.

《엄마야-》

유성의 애처로운 부름소리가 마음을 허비였다. 그랬어도 순옥은 돌아볼념을 안하고 종주먹을 틀어쥐였다. 두볼로 비물인지 눈물인지 막 흘러내렸다. 아주머니가 유성을 명근이네 집에 책임적으로 데려다줄것이라는 위안감을 안고 처벅처벅 진탕길을 밟아갔다.

길가에서 학교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어느새 학교에 헐금씨금 들어선 순옥은 다급히 분과실문부터 열었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초상화를 모셨던 벽면을 올려봤다.

벽면은 비여있다.

(벌써 다른 선생들이?…)

그는 옆의 교실에 들어갔다. 역시 그 교실도 수령님들의 초상화를 안전하게 옮겨모신 뒤였다. 그래도 빈구석이 있을가 하여 그는 2층까지 한바퀴 방들을 훑어보았다. 후날 알고보니 수직섰던 교원들과 학생들이 교장의 지휘밑에 수령님들의 초상화들을 안전하게 모신것이였다.

계단을 내려온 순옥은 긴장감이 풀려서인지 몸이 나른했다.

그러다가 아들의 행처에 대한 생각에 소스라친 그는 《유성아.》하고 부르며 밖으로 뛰여나갔다.

꽈르릉- 마치 기다린듯이 우뢰가 더욱 요란하고 큰물이 시누런 갈기를 치솟구며 무섭게 마을을 덮치였다.

골짜기들에서 터진 골개물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빠르게 흘러내리고 와당탕- 돌들이 무섭게 구울렀다. 두만강의 지류인 성천수는 삽시에 물량이 불어나 몸통이 굵은 구렝이마냥 사납게 꿈틀거렸다. 그 서슬에 성천수를 가로지른 여러개의 다리들이 뭉청 끊어졌다.

순식간에 평온하던 생활의 리듬이 깨져버렸다.

순옥은 점점 차오르는 물살을 헤치고 아들이 가있을 산등성이집으로 나아갔다.

가야 한다! 기어이! 우리 유성이가 애타게 엄마를 찾으며 기다리겠는데…

굳센 맘을 벼리며 비물에 움푹 패인 올리막길을 강잉히 올라간 그가 끝내 명근의 집에 이르니 집식구들이 마중하고 《엄마야-》하고 울먹이는 유성의 목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순옥은 아들을 꼭 품안고 드세게 방망이질하는 마음을 가까스로 가다듬었다. 골안을 진감하는 천둥소리에 화뜰 놀란 유성은 《엄마, 나무서워.》하며 어머니의 품안에 더 파고들었다.

《일없다. 엄마가 오지 않았니.》

순옥은 아들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각근히 달래였다.

얼마쯤 있어 방문이 벌컥 열렸다. 잠간 밖에 나갔던 명근이 어머니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들어서는 동시에 휙- 맞바람을 치며 문이 쾅 닫겨졌다.

그는 풀썩 주저앉으며 기겁한 소리를 내질렀다.

《유성이 엄마, 이걸 어쩌면 좋아? 엉?》

《무슨 일이예요?》

《야단났어, 이자 보니 비물이 토방 절반가량 차올랐잖아. 이젠 오도가도 못하고…》

《예?》

순옥은 심장이 푸드득 뛰였다. 그는 용수철 튕기듯 일어나 황급히 문을 열었다. 순간 비바람이 얼굴에 귀쌈치듯 휘뿌려졌다. 토방을 넘어서려고 키를 솟구는 물을 보게 되니 매운 연기라도 삼킨듯 숨길이 꺽 막혔다.

산등성이에 위치한 집이여서 마음놓았건만 결국은…

머리칼이 쭈뼛이 일어서는 공포감이 엄습했다.

여기까지 물이 차오를 정도라면 낮은 지대에 있는 우리 집은…

순옥은 저도 모르게 몸을 우뜰 떨었다. 단 하루밤새에, 그것도 몇시간동안에 집어삼킬듯 들이닥친 재난의 난파도로 졸지에 집을 잃고 생명을 위협당하는 엄청난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여보.》

그 말에 순옥은 《예.》하고 고개를 기린처럼 빼들었다. 그러다가 쑥스럽게 움츠리였다. 애타게 기다리는 남편이 아니라 물참봉이 된 명근이 아버지였다.

《마침 유성이 엄마도 있구만.》

명근이 아버지는 인사하기 바쁘게 안해를 불러세웠다.

《여보, 빨리 다락으로 모두 올라가야겠소. 좀있으면 물이 토방을 넘을것 같애. 어물어물하다간 큰일이야.》

잠시후 수령님들의 초상화를 품에 안은 명근이 아버지의 뒤를 따라 나머지사람들이 사다리를 타고 비좁은 다락에 엉금엉금 올라갔다.

지붕을 세차게 때리는 소연한 비소리가 귀아프게 들리고 쭈르륵 비물이 새여나와 목깃을 홍건히 적시였다.

《아유, 저걸 어쩌나?》

다락문을 열고 빠금히 내려다보던 명근이 어머니가 아부재기를 쳤다.

《유성이 엄마, 밑을 좀 봐. 물에 몽땅 잠기누나, 몽땅!》

명근이 어머니와 교대하여 밑을 내려본 순옥은 흠칫 놀랐다.

어느새 흙탕물이 방안에 넘어들어 출렁출렁 흔들대는것이 아닌가. 텔레비죤탁이며 선풍기 등이 꼴깍 잠겨들었다.

다락에는 침묵이 흘렀다. 저마끔 닥쳐온 위기를 두고 생각에 골몰하는듯싶었다.

순옥은 두눈을 껌벅이였다. 자연히 추억의 문고리가 벗기여졌다.

길지 않은 서른다섯해의 인생길, 어린시절 어머니가 갖다준 단편소설 《우리 선생님》을 읽으며 녀교원의 무지개를 아름답게 그렸고 사범대학입학통지서를 받고 너무 기뻐 잠 못 들었던 그밤…

드디여 교원의 꿈을 이루고 삼촌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게 되여 고향을 떠나 여기 무산땅에 옮겨온 지난 나날들…

순옥은 마음이 서글퍼졌다.

이제 물이 사정없이 차올라 다락까지 삼킨다면…

찰칵찰칵- 최후의 초침소리가 무섭게 다가드는것 같은 전률에 자연 몸서리쳤다. 온몸에 바늘같은 소름이 쫙 돋았다.

(사람이 한번 태여나 죽기는 매 한가지이지만 이렇게 나의 짧은 인생에 때이른 죽음이 닥쳐올줄 어이 가늠할수 있었으랴.

그래도 나는 서른다섯해를 살았다지만 내 아들 유성이는 열두살 꽃망울, 아직 산 날보다 살 날이 더 많은 너무도 아까운 어린 생이 아닌가. …)

순옥의 눈귀에서는 눈물방울이 도르르 흘러내렸다.

그는 오돌오돌 떠는 아들애를 꼭 껴안고 한결 부드럽게 일렀다.

《유성아, 두눈을 지그시 감고 한잠 자렴.》

다락밑에서는 야속하고 무서운 물이 출렁이였다.

방안의 네벽에 삼분의 일가량 물이 슴배였다.

물, 생명을 노리는 사나운 물이였다. …


×

이것을 삶의 기적이라고 표현해야 정확한것인지 한순간에 모든것을 쓸어버린 폭우와 광풍속에서도 순옥의 가정은 무사했다. 순옥이 아들을 품안았던 명근의 집에서 다행히도 벽체를 따라 층층 올라오던 탕수가 맥이 진한듯 멎어버렸던것이다. 이제는 자신이 죽음의 문턱을 넘어 살게 되였음을 비로소 의식했을 때 순옥은 가까스로 유지하던 인내력의 지탱점이 뽑아진듯 《아- 》하고 푹 꼬꾸라졌었다.

악몽같은 하루가 지나 속을 박박 긁으며 기다렸던 남편도 돌아왔다.

어디에서 상했는지 코등에 상처자국이 또렷하고 바지가랭이가 축축한 철진을 만났을 때 순옥은 억이 막힌듯 《여…보》 하고는 피방울같은 눈물부터 흘렸다.

마을을 통채로 삼켰던 큰물이 찌기 시작하자 순옥은 남편과 함께 집에 가보았다.

그의 집은 피해를 적게 입은 편이지만 방안에까지 감탕이 거의 1메터가량 쌓이여 엉망진창이였다. 감탕칠을 한 가정용품들은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이제부터 집수리를 하자고 해도 세멘트 한그람마저 구하기 어렵고 일손도 모자란다는 엄청난 타산에 눈앞이 아뜩했다.

마치 칼벼랑에 쫓기여 늠실대는 바다밑을 내려다보듯…

철진이 순옥의 연약한 어깨에 손을 얹었다.

《여보, 락심마오. 사람이 살았는데 이까짓 집수리가 대수요. 집손질은 내가 다 맡겠으니 당신은 학교에 가보오. 당신이야 선생님이 아니요.》

《…》

순옥의 눈이 슴뻑이였다. 《선생님》이라는 남편의 한마디가 마음의 수면에 돌을 던진듯 파문을 일으켰다. 이 시각 그의 가슴속에서는 시련을 뚫고 용감히 일어나라는 비상한 자각이, 직업적혁명가인 교원의 책임을 잊지 말라는 마음의 종소리가 땡땡 울리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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