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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전역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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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2-03-19 20:31 조회3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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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1 회

리 국 철

2

정복은 나라가 고난의 행군을 하던 그때 박윤식과 가정을 이루었다.

어려운 때였지만 주부는 이악하게 집을 꾸려나갔다. 도배도 산뜻한 색으로 골라사서 다시 붙이고 장판도 품을 들여 했다. 부엌의 찬장, 가마, 그릇가지들도 다 정복이가 애를 써 갖추어놓은 소중한것들이였다.

짬만 있으면 쓸고닦고 먼지 한점 묻어날세라 늘 신경을 썼다. 휴식날만 오면 오금이 저린줄도 모르고 집안팎을 팽이처럼 돌아갔다.

아들 남철이 태여난 그해에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윤식이 퍽 섭섭해했으나 고집을 부리는 정복을 설복해내지 못했다.

류수처럼 흐르는 세월이라더니 어느덧 다 자란 아들 남철이 군대에 나갔다. 귀밑머리가 희슥해지고 얼굴에 잔주름이 덮여갔지만 생의 희열에 가슴은 마냥 벅차오르기만 했다.

가구들도 그쯘하게 갖추어놓고 텔레비죤이며 록화기도 좋고 멋있다는것으로 사다놓았다.

정복은 누런 도금을 한 번들번들한 집열쇠를 늘 목에 걸고다녔다. 목에 걸려 데릉거리는 그 열쇠를 보며 인민반녀인들이 혀를 찼다.

《아유, 그 열쇤 얼마짜리요?》…

그렇게 꾸려가는 집이였다. 문제는 천정도 현대감이 나게 장식미장을 하고 부엌과 전실도 류행을 따라 활 터치고싶은데 세대주란 사람은 영 관심이 없다.

정복은 그것이 안타까왔다. 가구들이나 번쩍거려서는 뭘한담.

《고티나는》 집이여서 남보기 창피한 생각도 들었다. 내 혼자 살자고 집을 꾸리나, 이제 몇년후면 아들 남철이 제대되여오고 또 장가를 들여야 할텐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정복이 방아래목에 앉아있는데 그만에 정전이 되였다.

배전소에서 전기사고가 날가봐 정전을 시켰을거라고 생각하며 충전등을 켜려다가 생각을 고쳐했다. 저혼자 있는 휑뎅그레한 방안에 불이나 환히 켜선 뭘하나. 가뜩이나 썰렁해진 방안에…

밖으로 뛰여나가 대문을 닫아매고 집문도 든든히 걸었다.

새로 단 문은 일단 닫으면 밖의 소음이 들려오지 않는다. 전실과 부엌을 지나서 들어와 방문도 꼭 닫았다. 조용히 있고싶어서였다.

부엌에 물이 어느만큼 찼는지 걱정됐으나 으스스 몸이 떨려 눌러앉았다. 또 다른데로 걱정이 뻗어간다. 아들 남철이 생각이다. 그곳에도 비가 올가? 이렇게 비가 올 땐 고향집아래목이 오죽이나 그리워날가… 본체 아버지를 닮아 건강체라고 하지만 혹시 알랴.… 이런 비에 혹 감기를 만나 고열로 앓기라도 하지 않는지… 자기에게서 제일 귀중한것은 바로 아들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래목에 앉아있느라니 졸음이 솔곳이 밀려와 어느새 턱방아를 찧어댔다.

그가 꿈의 내가를 한참이나 첨벙거리며 열심히 옳소, 그렇소 턱방아를 찧을 때 읍거리의 도로로는 방송선전차가 물을 헤가르며 마을에 대고 닥쳐오는 위험을 숨가쁘게 전하고있었다.

《주민여러분, 주민여러분, 빨리 대피하십시오. 빨리 대피하십시오, 다시 알립니다. 다시 알립니다.…》

인민반장내외가 마을돌이를 하며 소개하라고 알려주고있는것도 알지 못했다. 반장녀인은 우뢰소리와 요란한 비소리에 사람들이 찾는 소리를 듣지 못할가봐 안타까이 궁리를 하다가 함께 나선 남편의 잔등에 단지만한 종을 지웠다. 오래전에 읍중학교 교장을 하던 시아버님이 집에 가지고 들어와 유물처럼 보관한것이라고 자랑하던 그 종이였다.

그 무거운 종을 지고 남편이 앞서달리고 뒤에서는 반장이 그 종을 두드리며 집집에 소리를 쳐댔다.

뗑, 뗑…

《모두들 대피하세요. 빨리요, 빨리! 물이 쓸어들어요. 빨리 뛰세요. 영남이 엄마, 영남이 엄마! 얘, 철범아!…》

정복이네 집대문도 두드렸다. 허나 문을 닫아건 집안에서 점점 깊은잠에 빠져드는 정복의 귀청을 두드리기에는 그 소리가 너무도 작았다.

《남철이 어머니, 남철이 어머니, 누구 없어요?》

인민반장녀인은 불까지 꺼져있는 집을 담너머에서 발돋움하고 안타까이 바라보며 목이 쉬도록 소리쳤다.

종을 때리며 찾고 문을 두드리며 소리치고…

《소개한게 아니요?》

《그랬을가요? 남철이 엄마! 누구 없어요?》

《여보, 빨리, 다른 집두 알려주어야지.》

반장내외는 다른 집으로 뛰여갔다.

뗑, 뗑, 뗑…

집을 나선 사람들은 마음을 울려주는 그 종소리를 들으며 인민반장 내외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다.

《대피 하세요. 빨리요!》

그때로부터 퍼그나 지나서야 정복은 우릉우릉 하는 소리와 함께 집이 흔들리는것 같은 진동에 소스라쳐 눈을 버쩍 떴다.

충전등을 켜려고 주변을 손더듬해가던 정복은 그 순간 혼비백산했다.

쩌정! 하는 소리와 함께 방바닥 한가운데가 쩍 갈라지며 분수같은 물기둥이 솟구쳐올랐다.

악! 비명을 질렀을 때에는 이미 반정신이 나가 문이 부서져라 열어제끼고 뛰쳐나온 뒤였다.

지진이다! 누군가 웨쳐대는듯 한 소리를 들은듯 정복은 부엌으로 엉금엉금 기여내리다싶이하며 머리를 틀어박았다.

머리카락이 쭈빗 일어섰다. 온몸에 심장만 남은듯 쿵쿵거리는 소리가 머리를 텅텅 울려났으나 한동안 허둥거리기만 했다. 어떻게 할지 몰라 그저 죽음에서 벗어나려는 그 한생각에 필사의 몸부림으로 부엌문을 떠박질렀다.

열리지 않는다. 물의 격랑이 문을 안으로 밀어내고있었다. 이제 몇초후면 그 문을 박살내며 사품치는 시꺼먼 물이 덮쳐들것이다.

얼혼이 나간 정복은 뒤로 밀려났다.

어떻게나 뒤걸음질을 쳤는지 잔등에 쿵 무엇인가 부딪치며 이어 유리가 박살나는 소리가 고막을 찢어놓는듯 했다. 가시장미닫이문유리가 깨여지는 소리였다.

이를 어쩌나, 어쩌나… 저도 모르게 남편을 찾는 소리가 튀여나갔다. 제 목소리같지 않은 떨리고 새된 부르짖음이였다.

《여, 여보… 남철이 아버지…》

그러다가 펀뜻 정신이 들어 다시 방안으로 뛰쳐들어갔다. 이불장을 와락 열어제꼈다.

정신이 오락가락할 그런 창황중에도 누군가의 말이 귀가에 울렸기때문이였다. 날이 꺼멓게 흐려가던 비오기 썩 전날부터 재삼 당부하던 남편의 그 목소리였다.

《여보, 소개지시가 오면 먼저 수령님들의 초상화를 모심함에 모시고 꼼꼼히 비닐박막을 감아야 하오. 그다음엔 알지?》

물은 벌써 허리에서 넘실거린다.

와들와들 떨리는 두손으로 이불을 마구 끄집어내고 깊숙이 간수하였던 함을 꺼냈다.

그때 창유리가 박살나며 창문이 벌컥 열렸다.

그 요란한 소리에 악 하고 또 비명을 내지르는데 방안으로 세찬 바람이 순간에 쓸어들어온다.

그 바람을 타고 날아든듯 한 사람이 고함을 쳤다.

《젠장, 문은 왜 잠그고있는거요?》

욕설이였으나 귀에 익은 소리였다.

남편이였다! 온통 공포로 얼어든 마음 한구석에서 파란 불꽃이 벙긋 일었다.

《당신이예요?》

목이 꺽 메여 울음이 내밴 정복의 소리가 화답했다.

공장으로 다시 나간 윤식은 기계설비들을 안전한 곳에 옮기는 전투를 하던중 당위원회로부터 수해를 입을수 있는 집들의 세대주들과 로동자들은 빨리 집소개부터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경황없는 속에서도 어느새 명단까지 만들었는지 평시에 사람좋다던 당위원희사람들이 왝왝 고아대며 《위험지역》에서 사는 사람들만을 딱딱 골라내여 막무가내로 공장에서 《쫓아》냈던것이다. 공장에서부터 줄곧 헐떡이며 내달려온 윤식은 걸려있는 문을 쾅쾅 두드리다가 안해가 이미 소개한줄로 알고 돌아섰다. 하지만 미타한 생각이 들어 집뒤로 돌아가보았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방안에서 전지불이 어른거리고있는것이 아닌가.

그때는 와글대며 흐르는 물이 어느새 허리를 휘감고있을 때이다.

하여 윤식은 무작정 어깨로 창문을 들이받으며 방안으로 뛰여들었던것이다.

《먼저 나가오. 빨리!》

《여보!》

《빨리 나가란데! 당신 그새 뭘했소? 물이 이렇게 차도록 뭘했나 말이요!》

버럭 소리지른 윤식은 책상에 모심함을 내려놓고 벽에서 초상화들을 정히 모셨다.

그 행동이 얼마나 침착하고 조심스러운지 태질하는 돌풍이 쓸어들고 소름끼치는 감탕물이 차들어오는 방안에 서있는 사람같지 않았다.

정복은 남편의 그 모습에서 힘을 얻은듯 했다. 정신을 차리고 방안을 둘러보다가 웃방으로 물을 헤치며 달려들어갔다. 다문 무엇이라도 건지고싶었다. 어떻게 마련한 재산들이라고 졸지에 잃는단 말인가.

하단옷장을 열어제끼고 허우적거리며 닥치는대로 뽑아내여서는 배낭을 찾아쥐고 이것저것 쓸어넣느라고 헤덤볐다.

몽땅 젖어버려 걸레처럼 돼버린 옷가지들을 들춰내여 배낭에 쑤셔넣다가 혀를 차며 다시 활 뒤집어 쏟아버렸다. 이번에는 옆방으로 뛰쳐 들었다. 군대나간 아들 남철이 있던 방이다.

엎어질듯 앞으로 쏠리는 몸을 바로잡으며 와들거리는 손으로 먼저 벽에 걸려있는 권투장갑부터 벗겨냈다. 배낭에 넣으려다가 아구리가 채 열리지 않아 끈을 목에 걸었다. 이번에는 첨벙거리며 책상쪽으로 몸을 돌리고 아들이 애용하던 휴대용콤퓨터를 넣으려고 했다. 그러다 흠칫했다. 전실에 나선 남편의 찌르는듯 한 예리한 눈길이 자기를 지켜보고있었던것이다. 불과 몇초였지만 못할 일을 하다 들킨것처럼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모심함만을 꽉 안은 남편의 기색을 살피며 죄스러운 심정을 금할수 없었다. 물을 헤가르며 전실에 나오면서도 정복은 눈물이 그렁해가지고 웃방안을 둘러보았다. 그러는 정복에게 윤식은 떠듬거렸다.

《여보, 당신 마음 알아. 하지만…》

바로 그때 뚝이 터져 쏟아지는 세찬 물줄기처럼 창문을 꽉 메운 물이며 감탕과 돌들이 뒤섞여진것이 사태처럼 짓쳐쓸어들었다.

윤식과 정복은 그 물의 압력에 거의 대포알처럼 휘뿌려졌다.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이번에는 창문과 마주한 방문이 떨어져나가며 거기서도 왁살스런 물이 파도처럼 덮쳐들었다. 부부는 다시 방안쪽으로 나딩굴었다.

입이며 코며 귀로 온통 물이 들어찬다. 정복은 마구 허우적거렸다.

그러다가 죽음앞에 선 인간의 본능과도 같은 절망적인 비명을 내지르며 엉겁결에 이불장문을 꽉 부여잡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남편을 고래고래 찾았다.

순식간에 집을 삼켜버린 물은 이미 정복의 목을 거머쥐고 얼굴을 철썩철썩 때렸다. 마치 거대하고 사나운 짐승들의 혀가 제마끔 얼굴을 핥는것만 같이 느껴지며 소름이 쫙 돋았다.

윤식이가 바로 앞에서 불쑥 솟구쳤다.

그때까지도 모심함을 꽉 그러안고있은 박윤식은 정복에게 턱짓을 하며 고함을 쳤다.

《빨리 문쪽으로! 빨리!…》

허우적거리고 휘청거리며 전실을 간신히 벗어나 밖에 나서니 온통 암혹인데 어디가 어딘지 통 분간할수가 없다.

마치 망망대해에 선듯 했다.

다행히도 지붕수리를 한다며 기대놓았던 사다리가 있어 부부는 지붕으로 올라왔다.

하늘과 땅이 꽉 막혀버린 캄캄한 어둠, 어둠…

아, 이젠 어쩐단 말인가.…

정복은 멍해졌다. 놀라움과 공포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죽음을 앞에 둔 그런 급한 순간에는 눈물도 잦아버리는것이다.

중풍을 만난것처럼 그저 사지가 마구 떨리기만 했다.

곁에 선 윤식은 한숨을 후- 내쉬였다.

자기 혼자몸이라면 모심함을 안고 죽기를 각오하고 헤염을 쳐나가보고싶었다. 하지만 옆에는 사랑하는 안해가 있다. 20여년세월 웃음과 눈물도 함께 나는 귀중한 사람이 있다. 심장이 띠금거리며 속이 쓰려 났다. 눈귀로는 눈물이 슴배여올랐다. 움켜쥔 주먹을 더 꽉 그러쥐였다. 살아야 한다, 나는 못산다 해도 안해만은… 내 심장같이 소중한 정복이만은 살려야 한다.

실성한 녀자처럼 우두커니 서서 떨고만 있는 안해를 측은한 눈길로 건너다보던 윤식은 안해의 목에서 권투장갑을 천천히 벗겨냈다. 손이 떨리였다. 태연해지려 애썼다. 정복은 남편의 행동을 지켜보기만 했다.

윤식은 권투장갑을 매였던 끈을 풀어 장갑은 던져버리더니 자기 가슴안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끄집어내서는 그것을 끈에 매달더니 정복의 목에 걸어주었다. 손바닥보다 좀 작은 무슨 패쪽이였다.

윤식은 강직이 온듯 꽉 모아쥔 안해의 손에서 빈 배낭도 천천히 뽑아냈다.

정복은 초점잃은 눈빛으로 남편의 행동을 멍하니 보기만 했다.

안고있던 모심함을 배낭에 정히 넣고 등에 조심히 진 윤식이 이번에는 안해의 손목을 잡아끌어 곁에 앉혔다.

그때 집이 움찔했다.

정복은 남편의 목을 와락 그러안았다.

그의 입에서 설분인지 푸념인지가 쏟아졌다.

《이게 뭐요? 여보, 도대체 이게 뭐나요? 하늘이, 물이 왜 이러는가요? 왜 모두 미쳐버렸나 말이예요? 우리가 살가요? 살수 있을가요?》

반정신이여서 말도 제대로 번지지 못한다.

다시 와- 하는 바람소리와 와글거리는 탁류의 소란스러움만이 사방을 꽉 메였다.

잠시 소용돌이를 하며 끓어번지기만 하던 물이 또 어디를 터뜨렸는지 무섭게 사품을 치며 밀려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서 끄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쩍- 무엇인가 혼을 빼는듯 한 소리도 났다.

허연 물기둥이 솟아오르기도 한다. 말그대로 죽음의 물바다였고 넋을 잃게 하는 소용돌이였다.

후날 무산사람들의 표현그대로 그것은 정말로 물의 지진이였다. 홍수와는 대비할수 없는 처참한 물의 대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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