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전역 36 > 조선문학예술

본문 바로가기
영문뉴스 보기
2024년 4월 25일
남북공동선언 관철하여 조국통일 이룩하자!
사이트 내 전체검색
뉴스  

조선문학예술

북부전역 36

페이지 정보

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2-03-14 19:14 조회318회 댓글0건

본문


20220206114351_2650964dc3cf20ede6aa2d8e9259718c_s1l3.jpg

제 36 회

결사대원

오 광 철

1


북변땅이 가까와오자 렬차는 굼뜨게 달리기 시작했다. 레루우를 굴러가는 차바퀴의 더디고 육중한 동음이 마치도 시름겨운 중얼거림처럼 들려왔다. 김윤혁은 화차벽에 몸을 기댄채 자기와 함께 가고있는 두사람을 바라보고있었다.

지난 8월말 조국의 북변 두만강류역에서는 해방후 기상관측이래 처음 보는 돌풍이 불어치고 무더기비가 쏟아져 무산군을 비롯한 6개의 시, 군이 혹심한 피해를 입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200일전투의 주타격방향을 북부피해복구에로 전환하도록 하시고 기적적승리를 안아오기 위한 거창한 작전을 펼쳐주시였다.

려명거리건설돌격대 철도성려단 려단장인 김윤혁은 철도성과 철도성 정치국에서 북부지역에 급파하는 수백여명의 일군들의 대렬에 섞여 이 렬차에 올랐다. 무산군 건설현지에 먼저 도착하여 실태를 료해하고 건설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와 함께 려단자재과장 김진명과 후방과장 리천룡이 함께 가고있었다. 후방과장 리천룡은 벌써부터 후방사업을 타산하느라고 이마에 왕주름을 짓고 앉아있었다.

《아마 제일 긴장한게 부식물일거구 그중에서도 남새일겁니다. 무산땅엔 원래 남새가 귀하다는데 큰물피해까지 입었으니… 난 이제 철도가 끊어지지 않은 곳까지 가서 남새부터 마련해놓겠습니다. 남들의 발길이 미치기 전에 한걸음이라도 빨리 가서 남새를 마련해놓고 철길이 열린 다음 실어다 먹으면 일도 빠르고 실속도 있을겁니다.》

사람들은 리천룡을 두고 악의없이 《세전토끼》라고 부르기도 한다.

산토끼는 일년에 한번씩만 자기가 다니던 길을 바꾸는데 그래서 설명절전의 산토끼는 계속 한길로만 다닌다는것이다. 영민하고 두뇌회전이 빠른데 비해서는 사업과 생활에서 일면적인데가 있는 리천룡에 대한 사람들의 밉지 않은 평가라고 해야 할것이다.

중앙지휘부에서 지원사업으로 들어온 식량을 가져가라고 하니 려단에 꼭 필요한 3톤만 가져오면서 그가 했다는 말이 명담이였다.

《인심좋은 이웃이 맛좋은 청무우를 나누어주는데 한개를 주니 이건 안해를 줘야겠구나, 두개를 주니 이건 아이를 줘야겠구나, 세개를 주니 이건 내가 먹어야겠구나 했는데 문득 욕심이 나서 네개를 달래고나니 이걸 장마당에 내다 팔아서 돈을 써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났다 이겁니다. 결국 이웃집인심도 빛이 없어지구 안해도 아이도 무우를 먹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났지요. 문제는 이렇게 욕심이 생기지 않게 사는거란 말입니다. 욕심은 사람을 위험한 길로 이끌지요.》

리천룡은 이런 사람이였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려단자재과장 김진명은 대체로는 입을 꾹 닫아두는 과묵하고 무뚝뚝한 사람이였다. 사람들은 저렇게 말을 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어떻게 자재사업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머리를 기웃거리군 한다. 지금도 그는 속내를 잘 알길이 없는 뚝한 얼굴로 리천룡의 옆에 앉아있었다.

이 순간 그를 지켜보는 김윤혁의 뇌리속에는 며칠전 그와 나는 말들이 불쾌하고도 흐리터분한 느낌으로 살아일어나는듯 했다.

《왜 그 애의 결혼식을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했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축하도 할수 없구 성의도 보일수 없게 한건 대체 무엇때문이요?》

《려단장동지, 미안합니다!》

그 한마디가 다였다. 사연을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고 리해와 량해를 구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인채 김윤혁의 시선을 피할뿐이였다. 김윤혁은 낯선 사람이라도 보듯 김진명의 얼굴을 여겨보았었다.

김진명은 십여년전부터 평양철도국에서 함께 일하다가 순직한 일군의 세자식을 맡아키웠다. 그는 온 철도성의 자랑이였다. 그런데 김진명이 그 세자식들중의 맏이의 결혼식을 누구도 모르게 해버리는 일이 일어났다. 그자신도 일을 하다가 점심참에 슬그머니 없어져 맏이와 며느리의 술잔을 받고는 다시 공사장으로 나왔다고 한다.

모두가 아연해지고 노여워졌다. 인간은 누구나 다 훌륭해질 기회를 가지고싶어하는것이다. 구구한 뒤소리가 떠올랐다.

몇해전에 진행된 제4차 전국어머니대회에 김진명의 안해가 참가하지 못한 일이 생겼는데 그때부터 김진명에게서 무엇인가 이상한 점들이 나타났다는것이였다. 이전처럼 사람들이 아이들을 키우는 자기를 도와주기 위해 집에 찾아오는것을 극도로 싫어했고 그 세자식들도 정도이상으로 엄격하고 모질게 대한다는것이였다. 아버지에게 욕을 먹고 밖에 나와 울고있는 그 세 아이중의 막내인 딸애를 보았다는 사람도 여러명이나 되였다.

김진명의 안해가 영광의 대회에 참가하지 못한것은 사실이였다. 김진명의 안해가 살고있는 구역녀맹위원회에서 그를 대표로 추천하겠다고 철도성에까지 찾아갔던것 같은데 정작 대회가 시작된 다음 보니 김진명의 안해가 없더라는것이였다.

하다면 김진명은 그 일을 두고 당의 신임과 믿음을 저울질하면서 아이들을 키우는 일에 대한 회의와 거부감마저 품었단 말인가?

김윤혁은 이번 일을 놓고 그와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고싶었지만 끝내 기회를 마련하지 못한채 이렇게 북부지구로 함께 가고있는것이였다.

이제 뒤에 남은 참모장 조성묵이 려단을 이끌고 올것이다.

렬차는 여전히 굼뜨게 달렸다. 수첩과 원주필을 들고 무엇인가를 계산해보던 리천룡이 지친듯 한숨을 내쉬더니 잠을 청할듯 눈을 감는다. 그러나 김진명은 무표정해보이는 얼굴을 쳐든채 꼼짝없이 앉아있었다.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있을가? 결혼식을 소문없이 해버린 자기를 두고 언짢은 말을 한 나에 대하여 생각하고있을가?

오랜 렬차려행을 하고있는 지금 그와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눌수도 있었으나 김윤혁은 왜서인지 아무 말도 하고싶지 않았다. 사실 무산군이 큰물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들은 그 순간부터 그는 마음의 안정을 잃어버리고 우울해지고 조급해졌다. 마치 고향집에 닥친 불행을 전해들은듯 한 심정이였다.

그의 고향은 무산군과 나란히 이웃하고있는 부령군이다. 그리고 무산군은 안해 김선희의 고향이다.

김윤혁의 눈앞에 안해 김선희의 얼굴이 우렷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얼굴과 함께 무산군으로 향해가는 렬차를 맞받아 잊지 못할 회억이 마주오는듯싶어졌다.

30여년전, 25살의 부령객화차대 대장인 김윤혁은 자기가 새로 맡은 객화차대의 건물과 창고들을 일신하자고 청년들을 이끌고 이웃군인 무산군으로 벌목을 나갔다. 차유령 초입구의 자그마한 산을 림지로 받고 범이라도 때려눕힐듯 한 기세로 벌목을 해제꼈다. 산판이 순식간에 허우룩해졌다. 규정대로 하자면 나무를 베낸 산판에 나무모들을 심고 떠나야 했다. 그러나 시간과 일감의 촉박감에 쫓기던 김윤혁은 두명의 청년을 나무를 심고오라고 떨구고는 통나무를 싣고떠나는 마지막차에 올랐다. 바로 그앞을 그 산의 산림감독원이 막아나섰다.

《이 사람, 나무를 심고 떠나야 하네.》

김윤혁은 운전칸에서 내려섰다.

《나무를 심을 사람을 남기고 떠납니다.》

《그 두사람서 언제 나무를 다 심겠나?》

적재함우에서 청년들이 즐겁게 소리를 쳤다.

《아바이, 여기를 왜 무산이라고 하는지 알아요? 산이 무성해서 무산이라고 한단 말이예요. 이제 당장 나무를 안 심는다고 이 큰 산이 비겠나요?》

《어쨌든 그냥은 못 떠나!》

성미급한 객화차대 부대장이 몰풍스럽게 소리쳤다.

《원, 아바이두! 다같이 일을 하자는 사람들끼린데 이럴 때야 나이든 분이 좀 뒤로 물러서주는 맛도 있어야지. 아, 나무나 심는게 뭐 그리 큰거라구 그다지 사람을 바쁘구 딱하게 조여댄단 말입니까?》

그러자 산림감독원의 눈가에서 세찬 빛이 번뜩였다.

《이봐,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엔 단 두그루의 희귀한 나무를 구원하자구 인민군전사들이 결사대를 못구 전투에 나갔어. 나무가 무엇인지 알구 나무가 얼마나 귀한것인지 알기 전에는 아무리 주먹을 내흔들구 다녀두 큰일을 할수가 없어.》

《좋습니다! 그럼 내 이 나무들을 부리우고는 사람들을 데리고와서 나무를 심겠습니다.》

김윤혁을 지켜보는 산림감독원의 눈에 곡진한 기운이 떠올랐다.

《그럼 믿구 기다리겠네. 하지만 나무를 심는것두 절기가 있다는걸 잊지 말게. 절기를 놓치면 안돼! 나두 오늘부터 이 산을 떠나지 않구 나무를 심겠네.》

산림감독원은 몸을 돌려 산으로 올랐다. 왜서인지 힘겨워보이고 위태로와보이는 걸음새였다. 다소 난감하여 서있던 김윤혁은 자기를 지켜보고있는 대원들의 눈길을 감촉하며 다시 운전칸에 올랐다. 인차 되돌아와 나무를 심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건설을 벌려놓은 객화차대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그것을 가뭇 잊고말았다. 그런데 다음날 나무를 심으라고 떨궈놓은 두 청년마저 돌아왔다.

《원, 피가 설설 끓는 젊은것들이 나무나 심구있자니 어디… 그리구 그 산림감독원이 얼마나 잘게 노는지 그 요구대로 하자면 1년이 걸려두 나무를 다 못 심겠습니다.》

김윤혁은 건설을 와닥닥 끝내고 나무를 심으러 가리라고 생각했다.

무산군산림경영소에서 몇번이나 다시 와서 나무를 심으라고, 그 산에서 지금 영예군인인 산림감독원이 혼자서 나무를 심는다고 련락해왔으나 래일래일 하며 떠나지 못하고말았다. 그런데 어느날 가슴이 철렁해지는 소식이 객화차대로 날아왔다. 산림감독원이 그 산에 나무를 심다가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는것이였다. 뼈저린 후회와 공포를 안고 정신없이 무산군으로 달려갔다.

방안에 떠도는 파릿한 향연기속에 웃고있는 산림감독원의 낯익은 얼굴, 그앞에 무너지듯 주저앉아 울고있는 외태머리처녀의 가냘픈 어깨… 손이 후들거려 제술조차 바로 부을수가 없었다. 귀전에 수군수군하는 동네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젊은이가 승진이 그 사람을 쓰러지게 한 젊은이라는구만.》

《정말 한심한 녀석이로군.》

《젊은이만 탓할것 있소? 나이두 있구 몸두 성치 않은 사람이 어쩌자구 그렇게 때식도 건네구 애면글면한단 말이요? 다 남은 사람들 가슴 허비구 어미없는 외동딸 울리자는거였지. 후-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만!》

《선희가 너무 울며 매여달려서 이번에 산림감독원 그만두고 좀 편한 일로 돌겠다고 약속을 했댔다는구만.》

《이제 선희가 어쩌겠소?》

《저 젊은이가 책임져야 해!》

《그건 무슨 소리요?》

《선희한테 부모정을 대신해주어야지.》

《그럼 함께 산다 그 소리요?》

《악연두 인연이라고 했어!》

온 객화차대사람들이 달려와 눈물을 흘리며 그 산에 나무를 심었다.

장례식이 끝난 다음 김윤혁은 차마 떠나지 못한채 산림감독원의 딸앞에 서있었다. 동네늙은이들이 하던 말이 귀전에 그냥 울려왔다. 죄스럽고도 안타까운 느낌으로 숨을 태우다가 불쑥 물었다.

《우리… 객화차대에 와서 일하지 않겠소?》

그러나 처녀는 천천히 도리머리를 저었다. 그 순간 처녀의 눈에서는 가느다란 섬광이 이는듯 했다. 처녀는 나직하나 휘파람소리같이 부르짖었다.

《싫어요! 난 어디든 다 가도… 동지가 있는 곳에는… 안 가겠어요!》

김윤혁은 흠칫하여 굳어졌다. 처녀는 홱 돌아서 가버렸다. 처녀는 그후 라선시에 있는 이모네 집으로 가버리고말았다. 거기서 체신소 교환수로 일한다고 했다.

김윤혁은 근무의 여가시간이나 휴식일이면 기차를 타고 처녀가 사는 이모네 집으로 찾아가군 했다. 물론 처녀는 피했고 처녀의 이모는 다시는 이 집 대문을 넘어서지 말아달라고 소리치군 했다.

객화차대사람들은 억대우같은 사나이인 자기들의 대장이 왜 연약하기 그지없고 평범해보이는 처녀를 두고 그렇게 애간장을 태우는지 리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기웃거렸다.

어느날 저녁이였다. 김윤혁은 또다시 처녀가 사는 라선시를 찾아갔다. 하늘은 비를 품고 낮추 드리워져있었다. 그런데 처녀의 집은 비여있었다. 모두가 어디론가 나간 모양이였다. 김윤혁은 되돌아갈 생각을 못하고 마당가에 굳어진듯 서있었다.

날은 인차 어두워졌다. 그러더니 후둑후둑 비방울이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김윤혁은 토방에 올라선채 어쩔바를 모르고 서있었다. 비는 그냥 내렸다. 비바람과 함께 비스듬하게 몰아쳐내린 비물이 김윤혁의 아래도리를 적시고 이어 온몸을 적셨다. 그래도 김윤혁은 움직이지 못하고 서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어마?!》

사립문을 열고 들어서던 처녀가 토방우에 장승처럼 버티고 서있는 윤혁을 알아보고 숨을 삼키며 멎어섰다.

심장을 그러쥐는듯 한 침묵, 쭈룩쭈룩하는 락수물소리, 목안이 타들어오는듯 했다. 무엇인가 헌헌하고도 의미깊은 말로 침묵을 깨버리고싶었으나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윽고 흐느낌처럼, 한숨소리처럼 처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혁동지, 제발 이러지 말아주십시오! 돌아가주십시오!》

김윤혁은 대답처럼 그냥 서있었다. 처녀는 더 견딜수 없는듯 몸을 떨며 집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온 천지에 비소리만이 가득 찬듯 했다. 하지만 김윤혁은 엷은 방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방안에 서있는 처녀의 체취를 똑똑히 느끼는것만 같았다.

비는 점점 더 세차게 쏟아져내렸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끝에야 주춤주춤 문이 열렸다. 짜내듯 토막토막 끊기는 처녀의 목소리가 거기서 들려왔다.

《들어와서… 비라도 …》

김윤혁은 말없이 방안에 들어섰다. 처녀는 김윤혁의 무릎앞에 수건을 놓아주고는 웃방으로 도망치듯 들어가버렸다.

밤은 소리없이 깊어갔다. 어인 일인지 이모는 돌아오지 않았다. 젊은 남녀는 웃방과 아래방에 서로 갈라져 앉아 다같이 꼼짝을 하지 못했다.

알길없는 거북함과 부끄러움에 입이 얼어붙어버린채 그러면서도 서로가 움죽거리는 사소한 소리마저 다 듣고 가슴을 조이며 한시각이 천년인듯 앉아있었다. 온 집안에 서린 침묵에 목덜미라도 잡힌듯 허덕거리면서도 그것을 선뜻 깨칠수 없는것이 이상하고도 달콤했다.

그들은 온밤 꼼짝을 못하고 앉아있었다. 이른아침 방안에 들어서던 이모가 조각상처럼 앉아있는 윤혁을 알아보고 앗 하고 비명을 올렸다.…

그들은 결혼하였다. 행복했다. 하지만 그 행복속에 때때로 차유령기슭의 산그림자가 비끼군 한다는것을 김윤혁은 놀라움과 당황함속에 깨닫군 했다. 아들 창식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였다. 력사학을 전공하는 그 애가 19세기 지리학자 김정호가 서술한 책인 《대동지지》를 읽다가 말했다.

《어머니의 고향이 무산군이라고 했지요? 무산군에 이런 자료가 있군요. 숙종때 북병사 장한상이 건장한 무관 한정필을 거느리고 강을 건너가 나무를 찍어오게 허락하였더니 강건너의 청나라관리 목극등이 와서 경계비를 세우고 돌아가는 사변이 있었다.》

김윤혁도 안해도 한순간 흠칫했다. 그들은 저도 모르게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 순간 김윤혁은 안해에게서 30여년전 그날의 눈빛을 다시 본것만 같이 생각되였다. 그것은 차유령기슭에 아버지를 묻던 그 외동딸의 눈빛이였다. 그것은 세월의 주름살에 가리워져 다소 희미해졌을수 있을지라도 영원히 지워버릴수는 없는 아픔과 원망의 빛이였다. 결국 비내리던 운명의 그밤에 행복을 바라고 결합을 바라는 이성의 본능에 졌을망정 안해는 그를 용서하지 못했고 그는 용서받지 못한것이였다.

무산군이 큰물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김윤혁에게는 안해의 그 눈빛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래서인지 무산군으로 떠나면서도 그는 집에 들릴수가 없었다. 안해의 그 눈빛을 다시 보게 될가봐 두려웠다. 그는 전화로 자기가 떠난다는것을 알렸다. 안해는 긴말을 하지 않았다.

김윤혁은 눈앞에 어른거리는 안해의 얼굴을 느끼며 멍하니 앉아있었다. 문득 렬차가 멎어섰다. 화차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큰소리로 웨치며 지나갔다.

《모두 내리시오! 여기서부터는 렬차가 가지 못하오.》

리천룡이 흠칫 놀라는것이 알렸다. 그가 다짐한대로 한다면 그는 여기서부터 남새를 마련해야 하는것이다.

그들은 말없이 렬차에서 내려섰다. 서쪽하늘에서 저녁노을이 불타고있었다. 그 순간 김윤혁은 렬악한 북방의 높은 산을 구불구불 흘러가고있는 류다른 대오를 보았다. 그것은 북부의 전역에로 행군해가고있는 인민군군인들의 대렬이였다. 도로와 철길이 파괴된 지금 군인들이 산을 꿰지르며 피해지역으로 강행군을 다그치고있는것이였다.

그들의 머리우에 최고사령관기와 공화국기 그리고 붉은기가 펄펄 휘날렸다. 모두가 잔등이 활등처럼 휘도록 무엇인가를 지였다. 누군가가 구호를 웨치면 화답하는 소리가 북변의 산발로 울려갔다. 북방의 산은 그 메아리를 안고 무겁고 야릇하게 웅웅거렸다. 군인들의 발길아래서 자욱한 먼지가 떠올라 산정수리로 떠오르고있었다. 저물녘의 해빛속에 그것은 피빛의 운무처럼 퍼져가고있었다.

김윤혁은 쩌릿해오는 가슴으로 결사적인 행군을 다그치고있는 군인들의 대렬을 바라보았다.

《렬차는 여기서 더 가지 못합니다. 지금 저앞에서 각 철도국에서 달려온 결사대가 파괴된 철길을 열고있습니다. 그러니 모두가 여기서부터는 도보로라도 자기가 맡은 단위들로 가야겠습니다.》

철도성정치국의 한 일군이 하는 말이였다. 김윤혁은 말없이 서있었다. 결사대라는 그 말이 왜서인지 가슴속에 쩌릿하고도 비장한 기운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자기를 지켜보고있는 리천룡과 김진명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이렇게 합시다! 천룡동무, 동문 자기 계획대로 여기서부터 남새를 비롯한 후방물자들을 마련해서 뒤따라오는 렬차에 싣고오기 위한 사업을 해야겠소. 여기 철도사람들의 도움을 받을수 있을거요. 그리고 진명동문…》

김윤혁은 자재과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대신 도보로 무산군에 가주오.》

김진명은 다소 놀라며 김윤혁을 바라보았다.

《무산군에 가서 중앙지휘부와 련계를 가지고 우리 려단의 건설대상과 부지를 확정하고 가능한껏 자재준비를 해주오. 난… 여기서 철길을 여는… 결사대에 참가하겠소. 난 철길을 열고 첫 렬차를 타고 무산군으로 들어가겠소.》

두사람은 침을 삼키며 김윤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온몸에서 풍겨오는 비장한 기운에 만류할 생각도 할말도 잊어버린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김윤혁은 그들의 손을 하나하나 꽉 그러잡았다.

《자, 무산군에서 다시 만나자구!》

김진명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섰으나 리천룡은 눈물이라도 떨굴것 같은 얼굴로 김윤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힘을 내오, 천룡동무!》

리천룡은 김윤혁의 손을 놓지 못한채 고개를 끄덕였다. 목이 멘듯 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결국 려단장동진 우리 려단에서 첫 결사대원이 되는구만요.》

김윤혁은 그 말의 뜻을 채 느끼지 못한채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은 벌써 결사대가 철길을 열고있다는 저 멀리 앞쪽을 더듬고있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부고]노길남 박사
노길남 박사 추모관
조선문학예술
조선중앙TV
추천홈페이지
우리민족끼리
자주시보
사람일보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한겨레
경향신문
재도이췰란드동포협력회
재카나다동포연합
오마이뉴스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재오스트랄리아동포전국연합회
통일부


Copyright (c)1999-2024 MinJok-TongShin / E-mail : minjoktongshin@outl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