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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전역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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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2-03-12 19:34 조회3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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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4 회

북방의 려명

김 성 금

2


무너진 집귀퉁이라는 류다른 환경속에서도 우리는 조심스레 일과를 집행하였다. 아침식사도 하고 짐정돈도 하였으며 지어 이 집 세식구의 새 거처지를 마련하는 일까지 토론해보았다.

기초가 흔들린 이런 집은 조만간에 무너질게 뻔했기때문이다.

우리는 박금주를 《우리 집》식구들곁에 남겨두기로 했다. 예산원인 그에게 그래도 시간적여유가 있어서였다.

나머지 인원들은 일찌감치 미래원으로 건너갔다. 그리고는 가자바람으로 평양과의 망통화부터 해보았다.

우리가 기동시켜놓은 설계지원프로그람환경에 표준설계도면들이 전송되기 시작했다. 평양으로부터 전송되여오는 연사땅의 선경 그 한개한개는 말그대로 환희를 자아냈다.

한편 우리가 표준설계도면들을 전송받던 긴장한 그 시각 박금주와 《우리 집》식구들은 읍사무소에 가서 천막감도 타오고 천막도 치느라 정말 수고가 많았다. 새벽 두시가 넘어 숙소에 돌아와보니 벌써 짐까지 말짱 옮겨놓은 상태였다. 네명의 녀인들끼리 그 모든 역사를 겪느라고 얼마나들 혼났을가. 한지에 금방 쳐놓은 천막안엔 바람이 선들선들 통했지만 조명에 비친 녀인들의 이마에는 그때껏 땀기가 번들거리고있었다.

우리는 다음날부터 맡은 세개 지구에 대한 현지료해에 전면적으로 들어갔다.

대자연이 빚어놓은 파괴상은 상상보다 처참했다. 어쩌면 이렇게까지 되였는가. 돌풍이 몰아온 억수가 골짝마다에서 사품치며 거목의 뿌리를 들어내고 물먹은 흙을 무너뜨린 모양이다. 거기에다 연면수까지 넘어나면서 웬만한것은 거의다 피괴하였다.

팔소리를 돌아보던 우리는 지붕만 빠금히 남아있는 기와생산기지를 가슴아프게 바라보았다. 혹시 물살이 덮쳐들던 그 시각 저안에 사람들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였겠는가 하는 상상에 나는 눈앞이 막 캄캄해졌다.

우리는 한동안 풀 한포기 남지 않은 드넓은 페허를 막연하게 바라보았다. 그곳은 너무도 번번해져서 마치 가상공간처럼 보이는 빈터였다.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이 자리에 건설될 건물의 표준설계도를 떠올려보았다. 그러자 식물이 싹터나는 순간을 고속화면으로 볼 때처럼 선경이 펼쳐지는 장면이 어렵지 않게 상상되였다.

하지만 상상과 실천사이에는 굉장한 거리가 있다. 그러니 재해를 입은 이 땅에 선경을 펼쳐놓자면 온갖 어려움을 꿋꿋이 이겨내야 할것이다. 자연과의 전쟁, 마음과의 전쟁, 시간과의 전쟁… 우리는 팔소리지역을 각별히 주의깊게 돌아보았다. 전선사령부를 떠나기 전에 들은바에 의하면 북부전역적으로 학교체육관건설대상은 둘뿐이며 그 두 대상이 다 연사군에 있었다. 그중 한 대상이 바로 우리가 맡은 팔소고급중학교 체육관인것이다.

250명의 아이들이 공부하는 산골의 이 고급중학교건물에는 종전에 건평 360㎡짜리 체육관이 달려있었다.

헌데 몹쓸놈의 큰물이 올망졸망하던 산골집들은 물론 그만하면 듬직한 건물이던 그 건물까지 반나마 쓸어버렸다.

학교운동장도 실개천으로 변해버린 상태였다. 축구꼴문대가 흙사태에 묻혀 유치원철봉대만치 낮아지고 모두가 최우등생이 되자는 내용의 대형벽보판골조도 외로운 섬의 페허처럼 출렁이는 물바다우에 비죽비죽 꼭대기만 드러나있었다.

피해현장은 경성군돌격대가 맡아 정리하고있었다. 그들은 체육관기초를 한창 파고있었다. 그런데 말뚝위치를 보니 암만 해도 규모가 작아보였다.

영일실장곁에 서있던 나는 말뚝사이길이를 재여볼셈으로 걸음을 세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등뒤에서 울리는 무뚝뚝한 억양에 걸음을 멈추었다.

《자, 좀 비킵시다.》

작업에 지장을 준것 같아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고 몸을 돌리던 나는 눈길이 굳어졌다.

《저, 읍에서 만났던… 맞지요?》

반가운김에 나는 무작정 그를 부둥켜안으려고 했다. 하지만 맞들이를 들고있던 그는 내 손을 맞잡을수 없었다.

《하, 이거, 평양손님들이군요.》

그 사람도 나를 알아보겠던지 맞들이를 제창 내려놓으며 몸을 툭툭 털었다.

알고보니 그는 《우리 집》 큰딸 송연이의 외삼촌이였다.

내 딸과 이름이 같은 처녀 진송연. 열일곱살 잡힌 그 애는 원래 《우리 집》 이웃이였는데 2년전에 어머니를 잃고 이번 재해때 아버지까지 희생되여 이제는 식구중에 혼자 남았다고 한다.

송연이의 아버지가 바로 지붕만 남은 기와생산기지안에 남아있던 사람이였다. 다른 종업원들은 재앙이 닥치기 전에 모두 대피하였지만 일터에서 근무를 서던 그 애 아버지는 새벽 3시경에 갑자기 덮쳐든 흙사태에 묻히우고말았다. 엎친데 덮친다고 송연이가 대피했다가 돌아와보니 집까지 무너져있었다.

과연 아무것도 남지 않았단 말인가.

송연이는 자기 집에 모셨던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초상화를 품에 안은채로 아버지의 직장이 있던 팔소리쪽으로 달려갔다.

《가지 말아. 이미 늦었단다.》

동네사람들이 눈물을 머금고 말렸지만 송연이는 아버지가 세상떠났다는것을 도무지 믿을수 없었다. 이틀전까지만 해도 위대한 수령님들의 초상화를 정히 싸주며 절대로 다른 사고를 내선 안된다고 신신당부하던 아버지가 아니던가.

팔소리에 들어선 송연이는 먼발치에서부터 지붕만 남은 아버지의 일터를 알아보았다. 처녀는 무릎을 치는 감탕에서 힘겹게 한발한발 뽑아가며 정문이 있던쪽에도 가보고 뒤문이 있던쪽에도 가보았다. 하지만 물기 번뜩이는 감탕밖엔 보이는게 없었다.

시신도 찾을수 없는 아버지를 소리쳐 부르던 송연이는 비통하기 그지없었지만 눈물조차 흘리지 못했다. 마을에서 혼자 당한 불행이 아니여서 자기가 먼저 울기 시작하면 볼행당한 모두가 한꺼번에 울음을 터칠가봐 두려워서였다. 모두가 울고 앉아있다고 이 불행이 저절로 가셔지는것도 아닌데.

통곡도 들어주는이가 있어야 하는짓인줄 꿈에도 생각해본적 없던 처녀, 이처럼 억이 막히는 정황에서는 눈물도 당치 않았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혼자서 어떻게?

막막하여 입술을 깨물던 송연이는 문득 품에 안고있던 위대한 수령님들의 초상화모심함에 눈길이 갔다. 한없이 소중한 그것을 더욱 꼭 그러안으며 그제서야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바로 그렇게 눈물흘리던 송연이가 《우리 집》녀인의 눈에 띄였다고 한다.

《에그, 송연아, 마음 든든히 해라. 이제야 뭐 더 무서울게 있니. 우린 그저 원수님만 믿자. 이제 곧, 이제 곧 원수님의 손길이 와닿을게다.》

송연이는 이왕 터친 울음을 더 세차게 터치며 녀인의 어깨에 얼굴까지 묻어버렸다. 그리고 그날부터 《우리 집》의 큰딸로 되였다.

진송연이. 지금에 와서 동그스름한 얼굴에 박힌 그 애의 사슴같은 눈동자에서 눈물을 담았던 흔적같은것은 찾아볼수 없다. 다만 누구와도 눈길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 저가락 떨어뜨리는 소리만 듣고도 까르르 웃음터칠 나이였지만 기쁨도 아픔도 전혀 내비칠줄 모르는 처녀로 돼버린것이다.

평양에 두고온 내 딸 송연이를 보는듯 다정히 대하고싶었던 처녀의 가슴아픈 래력을 듣고나니 마음이 막 서글퍼졌다. 하지만 그렇게 슬픈 생각만 하고있을 겨를이 없었다. 당장은 기초파기가 진행되는 건설현장이 눈앞에 있었다.

《헌데 내 보기엔 기초면적이 작아보이니 웬일입니까?》

송연이 외삼촌은 자기가 바로 경성군돌격대 시공참모라고 우리에게 정식 소개했다.

《그러지 않아도 설계력량을 기다리던중입니다. 암만 해두 현조건으로는 표준설계대루 시공할것 같지 못합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는 물론 팔소리를 맡은 김영일실장과 부소장도 모두 펄쩍 놀라게 되였다.

《글쎄, 평화로운 나날이라문 몰라두 이 란시에 어디 가서 그 굉장한 강철트라스를 구해오겠습니까? 42톤씩이나 들어야 한다니 말입니다.》

《자재보장단위가 어디게요?》

《내각에서 직접 맡아 뛰고있기는 하지만 애초에 계획밖의 일이니 생산해놓은것도 없고 또 있다 해도 수송이 불가능하지요. 지금 실정에선 목조트라스를 올려놓을수 있는 설계가 필요합니다.》

바로 이런 실태도 있기때문에 우리가 직접 현장을 밟지 않으면 안되는것이다.

표준설계안에는 이 학교체육관규모가 세로길이 22. 5m에 가로길이 36m로 규정되여있었다. 실내배구장과 롱구장을 갖출것을 타산한 면적이였다.

그런 정도의 건물을 짓자면 불가피하게 지붕트라스를 강철로 제작해야 했다. 건설공법상 목조트라스를 리용할수 있는 건물의 최대길이는 15m이하였기때문이다.

《그래서 설계력량이 온 다음에 해결받기로 하고 우선은 종래의 크기대로 세로 12m에 가로 30m크기로 기초를 파고있는중이지요.》

《그러면 실내배구장을 꾸릴수 없지 않습니까? 또 그런 정도의 건물을 체육관이라구 할수두 없구요. 운동실이라문 몰라두 말입니다.》

그러자 경성군 시공참모는 대뜸 《아, 롱구나 배구야 운동장에서 해두 되지 않습니까.》 하고 말했다.

우리는 그 말에 아연해졌다. 그의 말에는 분명 이런 산골학교 체육관에 무슨 실내배구장까지 갖추어주겠는가 하는 속대사가 깔려있었다.

우리 부소장도 그런 그의 속내를 들여다본것 같았다. 단호한 어조로 그루를 박아 말하기 시작하는것이였다.

《그건 안됩니다. 래일의 행복상을 놓고 어떻게 흥정할수 있겠습니까. 우린 여기에 체육관다운 체육관을 지어놓아야 합니다.

물론 경성군에두 아직 이 정도루 현대적인 체육관을 갖춘 학교가 없을겁니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 나라의 모든 학교들엔 이보다 더 훌륭한 체육관이 갖추어지게 될겁니다. 그게 바루 우리 원수님의 뜻이니까요.

그러니 우리는 여기 연사땅에다 반드시 그런 래일을 앞당겨 펼쳐놓아야 합니다. 물론 제 기일안에 말이지요.》

《그건 표준설계를 수정할수 없다는 뜻인가요?》

부소장의 열변에 실망하였는지 시공참모는 시들한 어조로 이렇게 물었다.

《그건 절대 아닙니다. 설계는 수정하겠습니다. 물론 목조트라스를 올려놓을수 있게 말입니다. 체육관규모는 조절해야겠지만 실내배구장만은 갖출수 있게 해야 한다는거지요. 우리 집단이 지혜를 짜내보겠습니다.》

현장 첫걸음부터 제기되는 이런 난관앞에 우리는 모두 바싹 긴장해졌다.

그날 밤 미래원에 모인 우리 설계집단은 고개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보았다. 읍지구와 남작리조 동무들까지 시일을 다투는 팔소고급중학교 체육관규모를 놓고 궁리를 거듭했다. 나중에 구조설계가인 김원일이 이런 제의를 해서야 격렬한 론쟁이 중지되였다.

《이렇게 하는게 어떻습니까? 배구장길이가 18메터니까 세로가 18메터는 넘어야 할게구 그러자면 트라스 한길이룬 어림두 없습니다. 그래서 트라스 두길이루 구조설계를 고치잔 말입니다.》

김원일의 제의를 듣자 나도 흥분되였다.

《트라스 두길이? 그렇다면 22. 5m를 보장할수 있을가?》

《그건 불가능합니다. 좋기는 세로 19. 5m에 가로 36m 규모루 축소하자는겁니다.》

《그럴듯하기는 한데… 자, 동무들, 그럼 그 정도크기에서 구조를 어떻게 정할지 다같이 토론해봅시다.》

《두길이짜리루 하려면 경간을 줄여야 합니다.》

《지붕재료는 가벼운 색철판을 쓰는게 좋을겁니다.》

우리의 토론은 점점 더 열기를 띠였다. 집체심의에서 통과된 방안들은 그밤으로 설계수정작업에 반영되였다.

그러느라니 모두 숙소에 갈념을 못했다. 또 숙소에 들어가지 못하다보니 누구도 식사를 못했다. 하지만 그것을 감각하는 사람마저 없었다. 다만 시간이 흐르자 한명두명 눈을 슴벅이다못해 책상우에 엎드리기 시작했다.…


쪽잠이 고소하긴 더 고소했다. 엎드린채 10분쯤 잔것이 때로는 편히 누워 대여섯시간 자고났을 때보다 더 거뜬하니 말이다.

잠결에 웬 처녀애들 말소리가 간간이 들리는것 같길래 눈을 떠보니 아침 7시전이였다.

둘러보니 의자에 대충 걸어놓았던 젖은 옷가지들도 없어지고 책상우에 없던 밥곽들도 놓여있었다. 분명 박금주든 송연이든 왔다간 자세였다.

나에겐 그것이 꼭 송연이의 소행인것처럼 생각되였다. 누구에게나 곁을 잘 주지 않던 그 애가 그래도 박금주를 친언니처럼 따르는게 기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나는 우리를 위해 이처럼 극성스레 구는 그애에게 점점 더 정이 갔다.

송연이의 지성은 우리가 몸가까이에서 느낄수 있는 북방인민들의 후더운 인정이였다.

라선땅에서 전해진 위대한 사랑의 전설이 이제 얼마후 이 연사땅에서도 꽃펴날것이라고 굳게 믿고있는 사람들. 그들은 이런 천변속에서도 모두를 지켜주시는 원수님의 품에 명줄을 걸고있었다.

자연재해로 아이들의 마음에 그늘질세라 경치좋은 바다가궁전으로 불러주신 어버이. 그 은정속에 《우리 집》막내도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로 떠나갔다.

흔히 이처럼 번번해진 빈터에서라면 누구나 절망감부터 느꼈을것이다. 하지만 태양의 하늘가에 떠오르는 구름이며 노을엔 온통 사랑과 열정, 보답의 감정같은것만 비껴있었다.

평양과 연사는 물론 온 나라가 북방의 선경을 고대하고있었다.

우리 《류경》조는 예정대로 3개 소조로 나뉘여 맹활동을 벌리기 시작했다.

미래원에서 거리가 먼 김영일실장네 팔소리조는 아예 현장으로 숙소까지 옮겼다.

내가 맡은 조에서도 맡은 대상에 대한 표준설계를 장악한 다음 미래원과 현지사이를 분주히 오갔다. 이렇게 매일 80리이상 오가면서 우리는 표준조건에서 설계된 설계도면들을 현장수정완성하는 작업을 다그쳐나갔다.

그러자니 이틀이고 사흘이고 숙소에 들어갈새가 없었다. 정황이 제기되면 밤이건 새벽이건 주저없이 현장확인을 나가야 했기때문이다. 새벽길에 이슬이란 이슬을 모조리 묻혀 가랭이를 푹 적신 바지도 벗지 못한채 우린 아침녘에야 쪽잠에 깜박 들군 했다. 그래서 입술이 말라터지고 혀바늘이 뾰족뾰족 돋아나 밥 한술 제대로 뜨기도 어려웠다. 이런 우리에게 식사를 시키겠다고 박금주와 송연이도 진땀을 뺐다.

《제발 이런걸 들고다니지들 말어. 배고프면 들어가지 않으리. 먹을 새가 있으면 차라리 한숨 조는게 낫지.》

겉으로는 시끄러운듯 투정하면서도 우리는 사실 그들의 따뜻한 인정이 막 고마왔다.

이렇게 애쓴 보람이 있어 10월초에 현장수정완성을 끝낸 모범설계도들이 일제히 건설주들에게 전해졌다. 내가 맡은 남작리에서는 234세대의 살림집과 8개 대상의 공공건물들이 수정완성된 설계대로 작업할수 있게 되였다.

이후 우리는 연사군의 피해를 가시기 위해 파견되여온 시공단위들인 인민군대의 여러 구분대들과 함경북도돌격대안의 성강군대대와 명간군, 경성군, 경원군, 김책시, 어랑군대대들, 황해남도물길건설사단과 618건설돌격대의 작업구간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시공지도를 하게 되였다. 이 사업은 낮에 밤을 이어 진행되는 건설작업과정에 수시로 제기되군 했다.

우리는 읍과 현지사이를 분주히 오갔다. 12mm철근이 떨어지면 8mm철근을 두대씩 묶어 대용하도록 했고 현지에 도착한 건재의 선별과 작업방향을 재빨리 정해주어 건설작업이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기동적으로 대책하여나갔다. 말그대로 작전적보장을 철저히 맡아나선것이다.

공사진척정형은 소조마다 매일 집계하여 단위별로, 대상별로 전선사령부에 주보하였다. 연구소와도 전화와 콤퓨터망을 통하여 자주 련계하였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연사땅 각처에 흘어져있던 우리에게 어쩌다 화기애애한 기회가 생겼다. 박금주가 제 생일이라고 말을 《흘리》는 바람에 부소장과 사관장이 올리뛰고 내리뛰고 하여 그만하면 풍성한 식사를 마련하였던것이다.

그날 밤 11시이후부터 모여들기 시작한 동무들이 12시를 전후하여서는 거의다 둘러앉게 되였다. 헌데 청진에서 걸려온 통화때문에 모처럼 달아오르던 화기가 대뜸 식어버렸다. 한가하게 연사까지 내려올수 없었던 황철남이 부소장에게 《끔찍한》 사실을 고발하였던것이다.

《오늘이 금주동무의 생일이라는게 무슨 소립니까?》

《무슨 소리긴 무슨 소리야. 됐소. 우리께 별미가 다 있는데 좀 이따 사상은 전달해주지. 전화를 바꿔줄테니 동문 생일을 축하한다구 인사라두 짭짤하게 해주라구.》

《아니, 그 동무야 4월생인데 생일축하라니요?》

《뭐, 뭐라구?》

손전화기의 증폭단추를 누르고 한 통화여서 좌중이 모두 이 말을 들었다.

박금주에게 생일선물로 주려고 털양말을 들고왔던 류지성은 앉은자리에서 이마를 탁 치기까지 했다.

《맞다. 올해 4월에 철남동지가 금주동무 생일이라구 필기도구일식을 들고왔던 생각이 납니다.》

《?》

《헌데 그런 처녀가 저렇게 시치미를 뚝 따구 농마국수를 말구있단 말이요?》

《예, 제 생일에 우리를 푸짐히 먹이고싶다면서…》

부소장의 얼굴엔 노기까지 비끼는것 같았다. 하긴 재해전역에서 이런 성대한 자리를 마련하자니 간단치 않았을것이다. 내려다보니 이깔나무 판자우엔 정말 산해진미가 펼쳐져있었다. 대홍단에서 걸어왔다는 돼지뒤다리고기와 서두수에서 뽑혀왔다는 5kg짜리 잉어회, 주인집녀인의 지성이 깃든 꿀을 바른 감자떡이며 고산지대에서 보기 드문 남새무침과 평양에서부터 감춰가지고 왔다는 대동강맥주…

너무도 어이없어 잠잠해진 좌석으로 영문을 모르는 세 녀인이 올라오며 웃음발을 날렸다. 소반에 먹음직한 농마국수를 말아든 《우리 집》 어머니는 각별히 느슨하게 낮춘 북쪽말투로 좌중을 축하했다.

《자, 평양아지미생일에 우리 고장 농마국수나 얼벌벌하게들 맛보기요.》

그뒤로 들어오던 박금주가 짝질세라 이렇게 동을 달았다.

《그러문요. 생일날에 농마국수면 평양에서두 별미루 치지요. 안 그렇습니까, 부소장동지.》

《그렇긴 하지.》

나는 저도 모르게 긴장해져가지고 좌중의 눈치를 살피였다. 딸애의 생일이후로는 생일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목구멍이 깔깔해지는 나였다.

국수그릇들을 놓아주고 송연이와 주인녀인은 부엌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부소장이 박금주의 옷자락을 조용히 당기며 남아있으라고 눈짓했다.

《금주동무, 우리한테 더 해줄 축사가 없나, 엉?》

원래부터 얼굴색이 불그레한 부소장이 억양을 야릇하게 하자 박금주의 인상도 긴장해졌다.

《사실은 모두들 바빠하길래 미처 말씀드릴새가 없어서…》

《저런?》

좌중은 다같이 부소장의 엄포에 보조를 맞추어 박금주의 《엄중한》 행위를 부각시켰다.

《말해. 왜 속였지? 지금이 어떤 때인지 모른단 말이요?》

박금주는 얼굴이 발갛게 익어가지고 부소장의 등뒤로 가서 뭐라고 사정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웬 영문인지 부소장의 세모눈이 둥그래졌다.

《그래? 진작 말했어야지.》

대뜸 노기를 가신 부소장은 좌중에 속삭이듯 사연을 알렸다.

《이거 우리가 오해했구만. 글쎄 오늘이 송연이 생일이라지 않소. 금주동무 말이 송연이가 달리 생각지 않게 자기와 생일이 겹친것처럼 처리해달라누만. 자연스럽게 말이요.》

모두가 그 말뜻을 리해하고도 남았다. 불행이 지나간 직후여서 생일같은것은 생각도 하고싶지 않을 송연이, 한편 서럽기도 할 그 애의 기분을 고려하여 우리 동무들은 자연스레 처신했다.

《자, 부엌에서들두 올라오십시오. 이젠 시작들 합시다.》

부소장이 책임자답게 좌석을 정돈시키니 분위기가 한결 자연스러워졌다.

《자 동무들, 이제는 오늘의 두 주인공을 위해 성의들을 발표하겠습니다. 송연아, 이리 오너라.》

부소장은 참 능청스럽게 영문을 몰라하는 송연이를 앞으로 잡아끌었다.

《송연이가 금주동무와 생일이 같다면서? 그래서 오늘 아니, 이젠 어제로구만.》

이미 새벽 1시가 가까와오는 벽시계를 얼핏 바라보며 부소장은 다음말을 이었다.

《읍과 팔소리조는 금주동무에게 기념품을 주구 남작리조는 송연이에게 기념품을 주기로 결정했다.》

《아니, 전 아닙니다.》

《안다. 헌데 몽땅 너에게만 주겠다는걸 어찌겠니. 금주동물 봐서라두 분위기를 지키자. 자 동무들, 어서.》

어떤 동무는 털양말을, 어떤 동무는 솜장갑을 송연이에게 내밀며 그의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송연아, 변변치 못하지만 이 오빠들의 성의이다. 앞으로 시집을 가거든 자랑하거라. 평양에 너의 오빠들이 산다고 말이다. 네 본가집은 평양이야.》

평소엔 전혀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던 송연이가 우리 동무들의 이 롱담에는 눈시울을 붉혔다. 그 애는 그 말속에서 진짜로 가슴찌르르한 육친의 진정을 느낀것이였다.

순간 나의 꽉 막혀있던 다른쪽 세계도 서서히 열려졌다. 여직껏 엄격히 격페되여있다고 여기던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에 자연스러운 통로가 생겼다고 할가.

나의 미적지근하던 심장도 마침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전우들과 한방 가득 둘러앉아 송연이가 외롭지 않게, 슬프지 않게 위해주고 힘을 주고싶어졌다. 나는 품안에서 사랑하는 딸애가 보고싶을 때마다 만져보군하던 구슬빈침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그 예쁜것을 송연이의 줌안에 슬그머니 쥐여주었다.

《생일을 축하한다, 송연아. 이 구슬처럼 너의 앞날이 반짝이길 바란다.》

송연이는 엄혹한 주위세계에 구애됨이 없이 평화롭게 반짝이는 그 진주빛구슬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나도 그 애의 우울해보이던 눈가에서 분명 애틋한 그 무엇인가를 읽을수 있었다. 북방의 그늘속에서도 번쩍이는 희망의 섬광이랄가.

누가 먼저 선창을 뗐는지 우리는 모두 가슴을 젖히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동무들 다같이 노래를 부르자

손풍금소리 맞추어

천리마 나래펴는 내 조국

백화가 만발하였네


우리의 하나같은 마음이 울려퍼지자 어둠을 담아싣고 야경을 지키던 북방의 떼구름도 때이르게 새벽하늘을 떠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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