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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전역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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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2-02-26 18:45 조회3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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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1 회

세상에 부럼없어라

동 의 희

2


《윤화야, 네가 여기 있었구나!》

방안으로 들어선 송희는 오도카니 일어나 앉은 윤화를 알아보고 탄성을 내질렀다.

《너 나를 모르겠니?》

윤화가 동그래진 눈으로 찬찬히 올려다보더니 누가 일으켜세우기라도 한듯 발딱 일어났다.

《송희언니!》

가냘프지만 또렷한 그 애의 목소리가 작은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래, 내가 송희언니다. 윤화야!》

송희는 몸에 착 달라붙어서 바들바들 떠는 윤화를 바싹 끌어안았다. 이 애를 찾아 밤길 몇십리를 찾아온 고생이 이 순간에 산산이 흩어졌다. 곁에서 눈굽을 훔치던 할머니가 어느새 부엌으로 내려가 저녁상을 차려가지고 들여왔다.

《어서 나앉으라구. 언제 떠났는지 저녁이나 먹었을텐가.》

《할머니, 전 밥보다 먼저 물을…》

《그러라구.》

송희는 할머니가 주는 물사발을 빼앗듯이 받아가지고는 꿀꺽꿀꺽 마셨다. 단번에 물사발이 바닥이 났다.

《더 줄가?》

《예.》

찰랑거리는 물사발을 받아들고 거퍼 마시고나니 그제야 눈앞이 훤해지는듯 했다. 얼마나 마시고싶었던 물인지 숨이 다 나갔다.

이즈음 이 고장에서 제일 귀한건 물이였다. 물란리로 땅이 뒤집혀지고 집들이 주저앉아 형체도 없어지고 어디나 물이 흘러넘쳤지만 마실 물은 더없이 귀해졌다. 샘구멍이며 수도길이 막혀버렸던것이다. 날이 흐르는 사이 철길이며 길을 여는 일을 제일먼저 시작하는 속에서도 물문제를 푸는것을 급선무로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음료수는 긴장했다.

이윽고 송희는 할머니가 권하는대로 숟가락을 쥐였다. 그러나 밥먹을 생각은 아직 없었다. 그는 마치 윤화를 처음 보기라도 한듯 다시한번 눈여겨보고 말없이 그 애의 머리카락을 쓸어주었다.

송희는 타는듯 한 눈길을 떼지 못하는 윤화를 보며 속삭이듯 말했다.

《윤화야, 이 언니가 기쁜 소식을 안고 왔단다. 그걸 대주자고 이렇게 밤길을 왔어.》

《?》 윤화의 눈가에서 피끗 반디불같은것이 어리였다. 그것은 정녕 실날같은 기대였다. 송희는 그 애의 어깨를 감싸안은채 할머니에게 시선을 돌렸다.

《할머니, 이번에 윤화가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에 가게 되였습니다.》

《어디라구?》 할머니의 목소리보다 더 먼저 윤화의 몸이 앞으로 기울어졌다.

송희는 윤화를 더 바싹 감싸안으며 자기의 말을 계속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피해지역의 학생들이 한명도 빠짐없이 야영생활을 할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어요.》

《저런!》

할머니가 떨리는 소리로 덥석 송희의 손목을 부여잡는데 윤화는 눈이 둥그래서 뚫어지게 올려다보았다.

그러더니 살그머니 송희의 손목을 잡았다. 가냘프면서도 애리애리한 손가락이 바르르 떨고있었다. 송희는 그 애의 손을 꼭 싸쥐며 자기의 말을 계속했다.

《할머니, 우리 북부피해지역 소년단원들이 야영을 갔던 사실을 알고계시지요?》

《그랬지비. 알다마다.》 할머니가 무릎걸음으로 바투바투 다가왔다.

《할머니, 1차 야영생들은 윤화보다 한해 우인 3학년 학생들이였어요. 천명이나 됐지요. 그런데 야영소에 오니 계획했던 천명이 아니라 두명이 더 늘어난 천공 두명이였어요.》

《아니, 그건?…》 어리둥절해진 할머니의 눈이 커다랗게 흡떠졌다.

《야영 떠나는 웃학년이 너무 부러워 아래반 꼬마들 두명이 무작정 기차에 올라탔다는거예요.》

《저런, 그래서?》 할머니가 바싹 다가앉고 윤화는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어쩌겠어요. 너무 부러워 송도원까지 따라온 애들을 돌려보내겠어요? 할수없이 꼭같이 야영생활을 시켰다는군요.》

《아이구나. 억지가 사촌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더니, 하참…》

할머니가 무릎을 철썩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우리 북부지역 초급 2학년 학생들로 2차야영을 할데 대하여 말씀이 계셨습니다. 애들이 란리를 겪고 친척집에 가있다해도 한명도 빠지지 않도록 다 찾아내라고 하시였답니다.》

《저런, 그래서 정말로 우리 윤화도 그 송도원이란델 간단 말인가?》

《그래서 제가 윤화를 데리러 이렇게 온거예요. 윤화학생이 어디에 갔는지 못 찾아냈거던요. 모두 윤화를 눈이 새까매서 기다리고있어요. 그래 제가 생각해보았어요. 분명 윤화는 외할머니한테 갔을거라구 말이예요. 이젠 됐어요. 가만.》

송희는 가방에서 손전화기를 꺼내 날렵한 손가락으로 통보문을 만들었다.

손바닥만 한 손전화기에 이런 통보문이 새겨졌다.

《윤화를 만났음. 래일 제시간에 도착하겠음. 송희》

이윽고 그들은 밥상에 마주앉았다. 저녁을 설쳤던 윤화는 말할것도 없고 할머니까지도 곱배기하고싶은 생각에 다시 상에 마주앉았다.

윤화는 조잘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말없이 숟가락을 놀렸다. 이번에는 아무말없이 산천어도 씹어넘겼다. 방금 들은 희소식이 그의 굳어졌던 가슴에 새바람을 불어넣었던것이다.

식사후 래일 아침일찍 떠날 준비를 하고나자 윤화가 맥을 못 추고 졸기 시작했다. 그런 일도 이전에 없었던 처음보는 일이라며 할머니가 그 애에게 베개를 베워주고 담요를 덮어주었다. 오래간만에 쌔근거리는 숨소리를 내며 잠들자 할머니가 혀를 끌끌 찼다.

《처녀가 우리 집의 귀인이구만. 그런데 처녀는 어디에 있게 우리 윤화를 찾아왔나?》

《할머니, 전 대학을 졸업하고 군청년동맹위원회에 배치되였어요.》

《군이라구?》

송희는 말없이 방긋이 웃음을 지으며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원, 저런, 그러니 선생이구만. 그런것도 모르고 막 대했구만.》

《할머니두, 전 여전히 윤화의 언니예요. 이번에 윤화가 다니는 상창구고급중학교에서는 야영가는 선생님이 없고 다른 학교 지도원선생님이 간답니다. 그러나 걱정마세요. 저도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에 가니 윤화를 잘 돌보아주겠어요.》

《그러면 더 좋지. 오라, 이제야 우리 윤철이랑 여기에 왔던게 생각나. 그래서 이 할미 생각을 했겠구만. 자, 이젠 어서 눈을 좀 붙이라구. 아침에 일찍 떠난다는데…》

《일없어요. 래일 아침에 떠나는 차가 우리를 태워가기로 약속했어요. 참, 그동안 윤화는 어떻게 지냈는가요. 얼마나 울었겠어요. 아버지, 어머니를 다 잃었으니…》

《원 울기라도 하면 이 할미가슴이 좀 열리기라도 하지. 아예 벙어리가 됐다네. 아까 선생을 알아보고 찾은 말이 그 애의 입에서 처음으로 나온 말이야. 그저 오도카니 앉아서 저기에 일기란걸 쓰기만 하지.》

《이것 말인가요?》

송희는 할머니가 가리키는 책상우에 놓인 학습장을 펼쳤다.

그리 두껍지 않은 학습장은 거의나 빼곡이 차있었다. 폭우가 쏟아지던 참혹한 일이 바로 그 얄팍한 학습장에 또박또박 적혀있었다.

사실 송희는 배치되자마자 청년동맹의 이름으로 보내는 지원품을 가지고 삼지연지구건설장에 나가있었기때문에 고향땅에서 일어난 참변을 목격하지 못했다. 이번 수해때 윤화가 아버지, 어머니를 다 잃고 홀로 남아있은것도 며칠전 군에 와서야 알게 된 놀라운 소식이였다.

송희는 윤화가 일기를 쓴다는 학습장을 번졌다.


2016년 9월 4일


《할머니의 집에 온지 며칠이 됐는지도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들이치는 물속에 잠긴 집을 보며 목놓아 울던 일만은 방금 보기라도 한듯 생생합니다. 그렇게 무섭게 쏟아지던 비발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려옵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공부도 못하고 무서워서 오구구 모여 발을 동동거리고있을 때 선생님이 뛰여오시며 빨리 뒤산으로 오르라고 소리쳤어요. 그 순간 제일먼저 떠오른건 집생각이였습니다. 강기슭에서 멀지 않으면서도 옴폭한 골짜기에 있는 우리 집이 당장이라도 떠내려갈것 같아 마음이 조마조마해졌어요. 그러나 선생님은 대오에서 한발자국도 떨어지지 못하게 엄격히 단속합니다.

헐헐 숨을 내쉬며 미끌거리는 산턱길을 가까스로 올라 내려다보니 아니글쎄 이게 무슨 일입니까? 상급생오빠들이 씽 건너뛰기도 할만 하던 좁은 강폭이 언제 그렇게 넓어졌을가요. 사품치며 넘어나는 시누런 강물이 심술을 부리는듯 학교로 가던 다리를 뭉텅 넘어뜨리고도 성차지 않아 계속 넘실거리는게 아닙니까.

〈우리 학교가 물에 잠겨요-〉 우리가 아우성을 치는 사이 학교의 담장이 무너져서 떨어져나갑니다. 무시무시한 광경에 소리도 나오지 않아요.

사품치며 들이닥치는 강물속에서 돼지가 꿱꿱거리며 떠내려오고 통나무들, 문짝들, 바가지, 판자들 별의별것들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누구네 집이 무너진거예요. 우리 집은 어떻게 됐을가요. 가슴이 바싹바싹 졸아듭니다.

사방에서 터진 아우성, 누가 누구를 찾는 소리에 귀가 멍멍해집니다.

우리가 보는 앞에서 잠간사이에 또 어느 집이 무너져 떠내려갑니다.

모두 울음을 터쳤어요. 어떤 남학생은 그 자리에 서있지 못하고 냅다 언덕아래로 내리달립니다. 선생님이 당장 멈춰세울듯 다급하게 찾는데도 돌아볼념도 않고 죽으라고 뛰기만 합니다. 어쩌자고 그러는지. 아마 귀중한걸 둬두고 나왔는지 모릅니다. 우리 집도 이런 물살에 견뎌낼것 같지 않아 가슴이 조여들어요. 이럴줄 알았으면 아버지, 어머니가 아버지대원수님들의 초상화를 모심함에 정중히 보관할 때 재미나는 동화책이랑 화분들을 다 외할머니네 집에 가져갔을걸. 그 화분들은 우리 아버지가 시험사업을 하는것들입니다. 산림감독원인 우리 아버지의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된 소원이 있다는걸 난 언제인가 양묘장에 가서야 알았어요. 그때 아버지는 북산살구나무라고 하는 나무를 애지중지 관리하고있었는데 호기심이 나서 조그만 열매를 먹어보니 어찌나 쓰고 떫은지 그 자리에서 뱉아버리게 되였어요.

그런걸 왜 가꾸는가고 했더니 이 나무는 추위와 병에 잘 견디며 돌이 많은 산이나 메마른 곳에서도 끄떡없이 자랄수 있는 새 품종을 얻기 위한 출발재료로 쓸수 있다는겁니다.

출발재료가 뭔가고 물었더니 이다음 크면 다 안다면서 이것이 있어야 우리 집에서도 김일성화나 김정일화를 피울수 있다는게 아니겠어요. 연구사업을 하는 아버지가 하늘만큼이나 돋보였습니다. 요즘은 늘 책만 들여다보는 아버지를 보며 왜 점점 말이 없어질가 했더니 아니글쎄 우리 아버지가 학자들처럼 연구사업을 하고있다는겁니다. 곁에 있던 어머니가 그런 사람들을 보고 일하면서 연구하는 로동자과학자라고 한다면서 환히 웃었어요. 아버지가 하는 일을 두고 엄마가 제일 좋아했어요. 이 순간 우리 학급애들한테 자랑하고싶은 생각이 부쩍 듭니다. 한책상에 앉는 봄이한테 자랑할 일이 있다는 생각을 하니 그 북산살구나무가 제일 진귀하게 여겨졌답니다. 봄이에게는 자랑거리가 참 많아요. 혜산농림대학에 다니는 최우등생 오빠의 자랑, 어머니가 제4차 전국어머니대회에 참가했던 자랑, 며칠후면 아버지에게도 자랑감이 생긴다고 소곤거렸어요. 이제부터는 나도 그 애에게 지지 않고 아버지자랑을 할수 있게 된다는 생각에 얼른 샘터로 달려갔어요. 내 손으로 물을 주고싶어서입니다. 어느날 아버지는 그 북산살구나무를 집에 가져와서 커다란 오지화분에 심었어요. 그전날 보았던것보다 작은 그 나무는 집에서 관찰할거래요. 그 오지화분은 온 집안의 관심이랍니다. 아버지나 엄마보다도 내가 도맡아서 물도 주고 애지중지 관리할 생각입니다. 그런데 그 화분들이 이 물란리에 무사할가요. 지금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안타까와할가요. 그게 있어야 김정일화를 피울수 있다고 했는데…

비발이 부슬부슬 가늘어져서야 선생님은 우리에게 집으로 갈것을 승인했습니다.

어떻게 산언덕을 내려왔는지 생각이 안 납니다. 비옷을 입었다는 말뿐이지 펄럭이는 바람에 흙탕이 게발리고 홈빡 젖어든 몸으로 집이 있는 강변으로 내리달렸습니다.

〈엄마야! 아버지- 〉 목이 터져라 웨쳐대며 정신없이 뛰여갑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멈춰섰습니다. 길이 막혀버린겁니다. 무슨 집인가를 짓느라 기다란 팔을 내뻗치고있던 기중기가 밀려오는 물살에 자빠지는 통에 집 한귀퉁이가 무너져내린 곳으로 지금 흙탕물이 콸콸 소리를 내며 번져지고있습니다. 그밑으로 다람쥐처럼 빠질수 있어도 언제 물살에 밀려갈지 몰라 허둥대기만 했습니다. 누군가가 어느 건물 담장밑으로 달려가는것을 보고서야 무턱대고 따라갔어요.

별안간 둔중한 소리가 나는 바람에 돌아보니 방금 지나왔던 담장밑이 뭉텅 잘라져 물속에 휘말려들고있는게 아니겠어요.

하마트면 무너져내리는 담장밑에 깔릴번 했다는 생각에 아뜩했습니다. 다리가 매시시해나서 그 자리에 폭 주저앉았다가 인차 또다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억수로 쏟아지는 폭우속에서 늘 오가던 길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모조리 쓸려나갔습니다. 어디서나 사품치는 누런 강물만 기세를 올렸고 돌모래무지와 넘어진 나무들뿐입니다. 어디서 그렇게 많은 모래무지와 감탕이 생겼을가요. 그 너머로 떠내려오는 집들을 보니 자꾸만 무서운 생각이 커져서 연방 엄마를 부르기만 했습니다. 그리고는 또다시 물탕을 튕기며 뛰여갔습니다.

마침내 우리 집이 있던 동네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어디로 갈지 모르고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우리 집이 안 보인겁니다. 다른 집도 물속에 가라앉아서 겨우 지붕이나 굴뚝만 보이는 정도입니다. 골짜기에 박혀있는 우리 동네가 무너지는 흙속에 묻혀버린겁니다. 아는 사람, 처음보는 사람들로 끓어대는 속에서 모두다 정신없이 찾고 부르며 뛰여다닙니다. 누군가는 서로 부둥켜안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찾고찾는 아버지, 엄마는 어디서든지 보이지 않아요.

어디서 내 이름을 찾는 소리가 들립니다. 우리와 한채에서 살던 쌍둥이엄마가 찾는 소리였어요.

물속에서 방금 건져냈다는 쌍둥이형제를 안고있던 그가 우리 집소식을 들려줍니다. 폭우가 쏟아지는 때 갑자기 어디에서 나타난 아버지가 집안으로 뛰여들어갔다는겁니다. 우리 어머니를 부르면서요.

아니, 엄마는 집안에서 왜 빨리 나오지 못했을가요?

〈저런, 집안에 귀중품이 있은게구나.〉 쌍둥이엄마가 혀를 찹니다.

귀중품? 아, 그제야 생각납니다. 어머니는 바로 그 화분을 안고나오느라 늦어진거예요.

아버지가 시험사업을 하자 제일 좋아한 우리 엄마니까요. 그것을 안 아버지가 집안에 뛰여들어갔구요. 당장 물살에 집이 떠내려가는지도 모르고 말이예요.

〈있어요, 화분.〉

〈화분이라니?〉 쌍둥이엄마의 눈이 동그래집니다.

〈울아버지가 그 화분은 아주 귀중한거라고 했어요. 그 나무는…〉 갑자기 아버지가 뇌이던 말이 생각나지 않았어요. 인차 출발재료라는 말이 생각났지만 그만 설음이 왈칵 터지는 바람에 무슨 말이든 나오지 않아요.

아, 그러니 여기 이 감탕속에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묻혀있다는건가요.

〈아버지! 엄마야- 〉 정신없이 물속에 엎어져서 감탕을 긁어내기 시작했어요.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이 턱으로 굴러내려오는것도 알지 못하고 헤치고 또 헤쳤습니다.

무슨 화분이길래 물속에 뛰여든단 말인가고 쌍둥이엄마가 나를 붙잡았지만 나는 우리 아버지와 엄마의 마음을 압니다. 얼마나 귀중한 아버지의 소원인가요.

그 생각을 하니 또다시 눈물이 쏟아졌어요. 그래도 내 손으로 아버지, 엄마를 찾아내자고 감탕속을 헤치고 또 헤쳤습니다. 온몸이 감탕투성이가 되고 모지라진 손가락에선 피가 흘러 매닥질이 됐지만 아버지도 엄마도 보이지 않아요.

〈엄마야-〉, 〈아버지-〉 …

〈애야, 너 왜 그러니?〉 누군가가 내 어깨를 잡아흔듭니다.

돌아보니 군복을 입은 인민군대였어요. 아니, 깜짝 놀라 소리치며 매달렸어요.

〈삼촌! 왜 이제야 왔나요. 삼촌이 있었으면 아버지가…〉

〈얘야, 좀 차근차근 말해라.〉 내 어깨를 세차게 잡아흔드는 바람에 그제야 자세히 보니 우리 삼촌이 아니였습니다. 지나가는 군대를 우리 삼촌으로 삭갈렸던거예요. 우리 삼촌도 인민군대니까요.

〈네 이름이 뭐냐?〉

〈윤화야요, 김윤화. 여기 이 감탕속에 우리 아버지랑 엄마랑 있어요. 집에 화분을 가지러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하고 여기에 묻혔어요.〉

〈화분? 웬 화분이냐?〉

〈울아버지는 우리 집에서도 김정일화가 피여나게 하는 연구를 하댔어요. 그 화분을 건지려고… 아버지야 - 〉 그만 눈물이 쏟아져 더 말을 못하고 왕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알만 하다.〉 그러더니 그 군대삼촌이 대렬을 멈춰세웠어요.

군대아저씨들이 와 달라붙어서 감탕을 파헤쳤습니다. 동네사람들도 같이 달라붙으려고 하자 군대삼촌은 우리를 멀찍이 물러나게 했습니다.

드디여 감탕속에서 사람들의 형체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아버지와 좀 떨어진 곳에서 우리 엄마도 찾아냈습니다. 우리 아버지의 가슴엔 정말 화분이 안겨있었습니다. 어찌나 소중하게 끌어안았는지 오지화분은 깨지지도 않았어요. 내가 그 오지화분을 끌어안고 우는 사이 군대삼촌이랑 군대아저씨들이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를 우리 집이 내려다보이는 산언덕에 묻어주었어요. 그러니 이젠 이 세상에 우리 아버지와 엄마가 없다는건가요? 다시는 우리 아버지와 엄마를 볼수 없다는건가요. 두두룩하게 솟은 무덤을 보자 다시 그 흙을 파헤치고 엎어지며 아버지를 찾고 엄마를 찾으며 슬피 울었습니다. 이제는 이 세상에 나혼자 남았나요? 너무 울고울어 목이 다 쉬였습니다.

〈너의 집에 누가 있니?〉

나를 일으켜 세운 군대삼촌이 물어봅니다. 또다시 눈물이 솟구칩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없고 두 오빠는 인민군대에 나갔는데 누가 있단 말인가요?

〈그럼 친척두 없니?〉 군대삼촌이 떨고있는 나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물었어요.

〈문암에 외할머니가 있어요.〉

〈오, 문암?〉

군대삼촌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손목을 잡고 산길을 내렸습니다.

〈윤화라고 했지. 울지 말아라. 내 이제 차를 태워 할머니에게 보내주지.〉

그리고는 한손으로 화분을 안고 다른 손으로는 내 손을 꼭 잡고 걸어갔습니다.

이렇게 할머니네 집에 온 납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고마운 군대삼촌의 얼굴을 새겨두지 않은게 제일 후회됩니다. 이름은 더구나 모르고요.

난 정말 맹꽁입니다. 그 생각을 하니 밥도 먹고싶지 않고 말도 하기 싫은데 할머니는 자꾸자꾸 물어봅니다.》

송희는 윤화의 일기장을 더 번질 생각이 나지 않았다.

눈길을 들어보니 책상우에 커다란 오지화분이 있었다.

《아니글쎄 여기다 심은걸 살리겠다구…》

눈굽을 닦으며 혀를 차는 할머니를 보며 송희는 생각이 깊어졌다.

《할머니, 그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가요. 우리 사는 매 집에서도 김정일화를 피우겠다는 그 마음이 말이예요.》

《내 사위가 그렇게 직심스럽다우. 한다면 꼭 하군 했지라우. 이젠 어쩌우.》

방바닥이 내려앉게 한숨을 내쉬는 할머니를 보며 송희는 장담했다.

《이제 윤화가 아버지의 소원을 꼭 풀거예요.》

《그럴가. 하긴 지금처럼 독한 마음이면 세상에 못할게 없지비. 난 이번에야 우리 윤화를 잘 알지 않았소. 불쌍한게 그런 불행을 너무 일찍 겪어 그렇게 독해졌지비. 어이구, 기차라. 열세살짜리가 벌써 그리되면 어찌겠수.》

할머니의 말을 들으며 송희는 말없이 윤화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옛날부터 어린 나이에 불행을 겪으면 일찍 철이 든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도 없어지고 눈물도 말라버린것을 두고 철이 일찍 들었다고 해야 할가. 아니, 그럴수 없다. 놀랜 이 애의 가슴을 진정시켜주어야 한다. 내가 그의 친언니가 되여주자, 윤철동무가 올 때까지만이라도.

사실 제일 난처한건 초소에 있는 윤화의 오빠에게 집안의 소식을 전하는 일이였다. 그에게 어떻게 이런 참변을 쓴단 말인가. 아니, 초소를 지키는 병사에게 절대로 이런 실태를 전할수는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가.

송희는 윤화의 가방에 일기장을 넣어주며 생각에 잠겼다. 그 애에게 웃음과 기쁨을 안겨줄 생각을 하느라, 또 초소에 보낼 편지생각을 하느라 오래동안 잠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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