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여름 42 -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 조선문학예술

본문 바로가기
영문뉴스 보기
2024년 4월 16일
남북공동선언 관철하여 조국통일 이룩하자!
사이트 내 전체검색
뉴스  

조선문학예술

50년 여름 42 -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07-24 09:29 조회695회 댓글0건

본문

2013-04-09-U01.jpg

(제 42 회)

16 장

7월 7일 새벽부터 아군의 제3차작전이 개시되였다. 3차작전방침은 패주하는 적들에게 숨돌릴 사이를 주지 않고 련속적인 타격을 가하여 금강과 소백산줄기계선을 유지하려는 미제침략군의 기도를 파탄시키고 적의 기본집단을 대전과 소백산줄기의 동남부에서 각개 포위소멸함으로써 남해와 대구방향으로 신속히 진출할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마련하는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작전방침을 받아안은 인민군련합부대들의 공격은 그 드센 타격력과 높은 속도로 하여 적을 전률케 하였다.

미군부대들과 새로 편성한 괴뢰군단들로 평택-장호원리-제천계선의 회복을 시도하던 맥아더는 그것이 실패로 끝나고 퇴각이 시작되자 백악관에 정식으로 5개사단의 증원을 요구했다. 그때는 이미 트루맨이 마지막주패장으로 쥐고있던 비상대책안을 유엔안보결정으로 정식화하게끔 하였을 때였다. 7월 7일 유엔은 조선대표는 물론 상임리사국인 쏘련과 중화인민공화국 대표의 참가도 없이 《유엔군》의 조선파견문제를 《결정》하였다. 그 시각부터 미제를 비롯한 15개국 추종국가들의 병졸들과 비행기, 땅크, 대포, 탄약이 해로와 항로를 통해 조선으로 밀려들었다.

세계는 《유엔군》조작《결정》에 대하여 원자탄의 첫 폭발때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에 열여섯개 나라의 무력이 들어간다는 사실에 공산주의와는 동거할수 없다고 생각하는 서방의 많은 신사들까지도 분격을 금치 못했으며 한 약소국가와 약소민족의 슬픈 멸망의 래일을 측은한 동정속에 주시하였다.

지구의 동반구와 서반구로 줄달음치는 전파속에 격분과 놀라움, 동정과 불안이 물끓듯 할 때 이 시련을 감당하게 된 주인들의 태도는 너무나 태연하였고 침착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7월 8일 방송연설을 통해 미제를 비롯한 서방국가 군대들의 침공에 맞서 전체 조선인민이 한결같이 떨쳐나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성전에 참가할것을 호소하시였다. 세계는 굴할줄 모르는 민족의 위대한 정신과 기백, 고결한 량심과 의지가 담긴 이 연설앞에 놀라움과 경탄을 금하지 못하였다.

인민군부대들은 질풍같은 공격속도로써 최고사령관동지의 호소에 응하였다. 7월 10일경에는 주타격사단들이 벌써 금강에 접근하였다. 후방에서는 7월 8일 하루동안에만도 수만명의 입대탄원자들이 군사동원부로 내달았다.

해방된 남조선의 모든 도시와 농촌들에서도 수만명의 인민군입대 탄원자들이 전선에 갈것을 희망하여 의용군부대들이 조직되였다.

《얘, 그 엉뎅이에 뿔난 생각 그만해라. 싸움이란 남정네들 하는것이지 계집애가 삐칠게 못돼. 그저 지금처럼 땅 나눠주는 일 하는게 천하 장한건줄 알아라. 장선생도 그러지 않더냐. 이 마을에 네가 온건 천상선녀강림 한가지라구… 괜히 그 분탕같은 몸이 으깨여져 대천들에 백골되면 늬애빈 어찌하며 난 또 어찌하냐? 더 말말고 이젠 나와 함께 예 살자. 땅도 탔겠다 세상 부럼없이 살아보자꾸나 》

련화의 등에서 부황단지를 하나하나 떼내는 이모는 또다시 그 수다스러운 신칙으로 들볶기 시작했다. 이럴 때면 련화는 입술을 꼭 다물고 생글생글 웃을따름이다. 이 며칠새 놀랍게 변한 이모를 새삼스럽게 보면서. 이모는 원체 말이 적었다. 자식낳이를 못하는것도 있겠지만 한뉘 남편과 함께 척박한 밭에 코박고 치여나는 통에 생의 활기마저 잃어버렸던것이다. 그런데 그저께 토지개혁법이 발포되고 이모네도 백주사의 땅으로 닭알 노란자위같은 논 l,000평을 분여받게 되였다. 이때부터 이모는 기쁨에 둥떠 갑자기 말이 다사한 녀인으로 되고말았다.

련화는 닷새전부터 양음리의 이 이모네 집에 와있었다. 로량진전투가 있은 그다음날 서울에 있던 인민군대들이 다 한강너머로 남진해나가자 옆집에 살던 전공처럼 정록주를 비롯한 감방동무들 거의다가 그 인민군대를 따라나갔다.

그러나 련화는 그들과 같이 가지 못했다. 전호근이를 쎄브란스병원에까지 후송한 그는 다음날부터 고열과 오한으로 병원침대에 쓰러졌다. 의사들은 헌병의 발길에 채인 옆구리의 어혈로 오는 후유증이라고 했다. 그러나 련화는 자기의 병이 그 어혈로 생긴 후유증이 아니라 보다 정신적타격에서 오는것임을 잘 알고있었다.

잠결에 그는 림운학이를 소리쳐 불러 다른 간호원들을 놀라게 했다. 열이 좀 떨어지자 그는 서울로부터 한 80리 떨어진 이 이모네 집으로 왔다.

이모는 수척해진 그의 얼굴보다 절망과 상심에 빛을 잃은 련화의 슬픔어린 눈동자를 보고 더욱 놀랐다. 련화와 아버지의 기막힌 신세와 팔자를 두고 한바탕 울음을 울고난 이모는 그 즉시로 련화의 병치료에 팔을 걷고 달라붙었다. 의학의 혜택을 입어보지 못하는 이고장 사람들은 웬간한 상처나 병은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민간료법으로 치료를 했고 그 기술을 전수받고있었다. 허나 련화의 병은 별로 차도가 없었다.

련화는 밭에 나가 이모부와 이모가 김을 매는것을 구경하다가는 자기도 호미를 들고 밭고랑에 들어섰다. 그러나 한 이랑도 못나가서 주저앉고말았다. 그런데 그저께 남반부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할데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결정이 발표되고 토지개혁위원회를 조직할 때 위원으로는 이모부도 뽑히웠고 어찌된 반연으로인지 련화가 서기로 추천을 받았다. 이모가 그를 굉장한 《사상가》며 《적색운동자》로 소문을 편탓도 있었다. 련화는 방에 누워있다가 이 소식을 전달받았고 북조선파견원의 방문까지 받았다. 자기는 농민이니 장선생이라 하지 말고 장동무로 불러달라고 하는 수더분하게 생긴 그 사람은 첫 대면에 《성춘향의 후손이 아니시오?》라는 말로 좀 싱겁다는 인상을 주었으나 더없이 소탈하고 성실한 태도로 련화의 마음을 당겼다. 그 사람은 떠돌이 머슴군으로 산 자기의 과거와 땅을 받고 성인학교를 거쳐 이제는 리농맹위원장까지 하게 된 일신사를 죽 털어놓은끝에 지금 이 동네에도 머슴살이와 소작부침으로 사람 못살 처지에 있는 농민이 그득하니 그들에게도 빨리 사람다운 생활이 차례져야 되지 않는가, 더구나 이 일은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하해같은 사랑이 빨리 가닿게 하는 중요한 사업이다, 더구나 동무야 지하투쟁까지 했다는 운동자가 아닌가, 그런 처녀로서 이에 무관심하는것은 죄악이다 하고 검질기게 달라붙는통에 련화는 더는 못한다고 할수 없었다.

그때부터 련화는 거의 밤낮없이 그 사람과 함께 토지대장을 만들고 분여명단을 작성하였다. 밭들을 돌아보기도 하였다. 그럴 때면 로인들과 아이들이 줄줄이 뒤쫓아다녔고 대접이 륭숭하였다. 어떤 날엔 몇십리를 걷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피곤을 몰랐다.

련화는 이 땅의 력사에 없던 밭갈이하는 모든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땅을 준다는 세기적사변의 적극적인 참여자로서 크나큰 긍지를 느꼈다. 땅을 받게 된 마을사람들이 《서울아가씨》로부터 《련화선생》으로 불러주며 존경과 감사의 따뜻한 눈길로 봐줄 때 련화는 삶의 행복은 마치 여기에만 있는듯 한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하였다.

이럴 때는 아버지와 림운학에 대한 생각도 가뭇없이 사라지고 그 생각에 멍들었던 마음속 상처마저 잊혀지군 하였다.

이모는 련화의 이런 돌변에 그저 혀를 차고 깜짝깜짝 놀랄따름이였다. 이곳 전답은 대부분이 채병덕의 장인되는자가 외눈백이 병신삼촌에게 맡겨 관활하고있었다. 련화는 장선생과 함께 매 소작인들의 토지증서들에 네모배기 각도장으로 찍혀진 백가라는 성을 볼 때마다 백정식에 대한 치떨리는 원한을 골수에 사무치게 느꼈으나 그것도 밝게 피여오르는 그의 기분을 흐리게 못했다.

그 토지증서들을 모아 불에 태울 때 련화는 말로는 다 못할 통쾌감을 느꼈다. 얇은 미농지가 거멓게 타들다가 바람에 날려가는것을 보며 그는 마치 백정식이라는 허울이 타버리는듯 한 기쁨에 휩싸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오늘아침 면으로부터 김일성장군님의 방송연설소식이 촌에까지 날아들었다. 그러자 마을청년들은 저마끔 인민군대에 나간다고 법석을 놀았고 련화마저 그런 뜻을 이모에게 비추었다. 다른 청년들이 군대에 간다는데 대해서는 《암, 그래야지. 오라질 외눈깔(백지주의 별명)이 오면 땅을 다 빼앗기겠는데 사내란 명색들이 그걸 기다리며 있겠느냐?》 하던 이모가 련화의 그 말에 대해서는 펄쩍 뛰며 막아나섰다.

《그래 네가 군대에 가 잘못되면 난 늬엄마를 무슨 낯으로 저승에 가 만난단말이냐. 늬아버님도 어데가 헤매는지 모르는판에.》

이모가 한 마지막 이 말은 련화의 가슴깊이 응어리로 박혀들었다.

(그래 너는 지금 누구편이냐?)

이런 질문을 띄워놓고 그는 몇번이고 생각을 굴리지 않을수 없었다. 자기는 응당 아버지편이여야 할것이였다. 이렇게 론거를 세워보면 군대에 가는것이 무슨 큰 불효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백정식이며 감옥에서 자기를 막아주고 죽은 녀인이며를 생각하면 군대에 가는것이 옳을것이라는데로 결론이 떨어졌다. 그 가장 중요한 원인에는 림운학이가 있었다. 자기는 림운학의 편에 서야 할것이였다. 그러나 지금의 처지에서 운학이가 과연 자기를 어떻게 볼가 하면 저모르게 얼굴엔 수심이 끼였다.

련화는 이불우에 뛰놀던 해빛이 가드러들고 문발그림자가 길게 누운 마루를 내다보며 서글픈 심경에 사로잡혔다.

이때 갑자기 삐그덕 하는 대문소리와 함께 누구를 찾는 녀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련화는 벗어놓았던 쎄라복을 입으며 문가에 다가갔다.

오골조골 주름살투성이의 키작은 녀인이 빌려입은듯이 후렁후렁한 연미색비단치마저고리를 어색스레 쓸어만지며 마당에 들어섰다. 부엌에 내려가 부황단지를 씻던 정화숙이 내다보고 환성을 올렸다.

《어휴, 무슨 진사마님인가 했구만. 어찌 왔소?》

마당에 선 녀인은 얼굴을 붉히며 얼른 절을 하였다. 련화는 순남이의 어머니를 알아보았다. 이번에 순남이가 백지주의 집에다가 2천평의 토지를 분여받자 딸집으로부터 아들한테 옮겨온 녀인이였다. 그는 정화숙이 벙글벙글 웃으며 신기스럽게 보는것에 어색해하며 입을 열었다.

《저…오늘저녁 우리 집에 와줍소.》

《무슨 일인데?》

《오늘 순남이 잔치 차려주자고 했습니더.》

《아휴 그런… 백죄… 소문도 없다가.》

《가출개 또순이와 정분이야 있었습지요. 그 집에서 우리 머슴애가 맘있으나 매인 몸이라 싫다꼬 하다고… 이번에 허락을 했음. 길일을 봐달라고 웃골 큰무당댁에 물었더니 오늘이 좋다고 해서…》

《약혼식도 안하고 하오? 아니, 방에 좀 들어와 얘길 하오. 야, 경사다 경사다 해도 순남이네 같은 경사가 없고마.》

《글쎄 내 말이 그 얘기 아니오.》

녀인은 눈이 게슴츠레해지며 눈물방울이 찔끔 솟았다.

그는 누데기차림의 그전 습관으로 치마자락을 들어 눈물을 훔치다가 련화를 띠여보고 《서울아재 계셨군…》 하고 허리를 구부려 절을 하며 뒤따라 말을 이었다.

《아무것도 차린거 없지만 서울아재랑 꼭 와야 됩니다.》

하고 애잔한 미소를 보낸다.

《그런데 준비는 좀 됐소?》

정화숙이 못내 감동된 얼굴로 걱정스레 물었다.

《준비란 뭐, 그저 신랑신부 무릎이나 맞추려고 합니다. 북에서 오신 강선생님이 주체를 서주겠다고 했습니다.》

《난 뭘하라우?》

《에그 무슨 소릴, 순남이가 이만만 한게 뉘덕이요? 그저 오기만 하소. 서울아재도… 약속했소 잉?》

녀인이 돌아간다음 정화숙과 련화는 순남이를 두고 한참동안 흥띤 이야기를 벌렸다.

련화도 순남이를 잘 알고있었다. 미쏘공동위원회가 최종적으로 깨여진 얼마후 순남이가 미군놈의 차에 다쳤을 때 련화도 몇번이나 그가 입원한 병원으로 갔댔고 이 양음리로 내려올 때 아버지가 얻은 말달구지에 그를 태우고 왔었다. 그때까지 련화가 알고있던 순남이는 사람이 너무 좋아 어리무던한것이고 흰것을 검다고 해도 믿을 정도의 고지식한것이였다.

이번에 인민군대가 이 마을에 들어설 때 순남이는 실로 희비극의 주인공이 되였다. 백주사는 가족과 함께 도망치면서 일체 재산의 위임권을 순남에게 맡겼다. 그 값으로 보리 반성에 입쌀 한말을 남겼다. 순남은 쿵쿵 울리는 포소리를 들으며 《에라 죽기전에 밥이나 실컷 해먹고 죽자.》 하고 보리쌀에 입쌀을 약간 섞어 한 함지 실히 될 밥을 지었다. 밥이 잦아 퍼들고 한술 뜨려고 할 때 인민군대가 널대문을 두드리며 주인을 찾았다.

순남은 벌벌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끌고 대문빗장을 열었다. 바깥마당에는 낯설은 이북군대들이 꽉 들어차있었다. 이마에 《뿔》을 찾았으나 그런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순남이는 한숨 놓았으나 어깨마다 번쩍이는 총을 보며 연신 우들우들 떨었다.

《동무가 주인이요?》

한 군인이 물었다. 순남은 어망결에 《아니》라고 했다가 백주사가 일러준대로 《그럽지유.》라고 고쳐 대답했다.

《정말 주인이란 말이요?》

《그럽지유.》

똑같이 울리는 말에 군인은 의아한 표정으로 머리를 기웃거리다가 집을 좀 보자고 하였다. 순남은 죽이지는 않는다는 생각에 한숨 놓여 《그럽지유.》 하며 뛰여들어갔다.

(성송암어른이 나같은건 죽이지 않는다더니 과연 고명한 선생님이야.)

안마당에 들어와 집안을 둘러보던 군대들중에서 한사람이 그가 먹으려던 보리밥을 넌지시 들여다보고는 낯을 찡그렸다.

《여보, 당신 정말 이 대궐같은 집의 주인이라는게 사실이요?》

《예… 저…》

순남이는 우들우들 떨며 더 말을 못했다. 군인은 한쪽구석에 삼베등거리를 덮어놓아둔 밥소랭이를 열어보고는 (보리밥우에는 파리가 까맣게 달라붙어있었다.) 눈빛이 무섭게 변했다.

《에잇!》

그 군인은 더 말 않고 군화소리를 요란히 내며 나갔다. 순남은 그가 무엇때문에 성을 내는지 몰랐다. 무릎맥이 빠져 주저앉은 그는 이제 들이닥칠 《무서운 일》을 그려보며 여기에 강제로 떨궈둔 백주사를 원망했다. 그런데 《무서운 일》을 저지를 군대도 오지 않았고 쌀을 가지려도 오지 않았다. 자기를 잊어먹고 다른데로 갔는가 생각할 때 례의 그 군인이 나타났다.

《이리 오우.》

순남은 푸주간에 끌려가는 소꼴이 되여 절뚝거리며 그의 뒤를 따랐다.

《주인님이 오시오!》

활기찬 웃음들에 끌려 고개를 드니 마루와 마당에는 밥식기를 든 군인들이 한가득 둘러앉아 그를 쳐다보고있었다.

《나두 왜정때 머슴질을 했습니다만 이 사람같진 않았소다. 세상 둘도 없는… 자, 앉소.》

그를 데리고 온 군인이 누구에게라없이 말하고는 순남의 손목을 잡아당겨 가마니우에 앉혔다. 그의 앞에는 남들보다 곱이나 되게 담긴 이밥그릇과 고기국이 놓여있었다. 순남은 그 군인이 쥐여주는 숟가락을 억지다싶이 받아들며 눈길을 쳐들다가 흠칫 놀래였다. 그 군인의 눈에는 물기가 배여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따뜻한 정과 사랑이 스민 서글픈 눈길이였다. 둘러보니 다른 군인들의 눈에도 그 비슷한 빛이 갈마돌았다.

《동무, 어서 드오. 인민군대는 다 동무와 같이 고생하던 사람들이요.》 하고 누군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따뜻하게 일깨워줄 때 순남은 불시에 눈물이 솟구쳐올라 고개를 푹 숙이였다.…

련화가 이모와 함께 서울서부터 내내 품고온 돈 얼마와 쌀독밑굽에서 퍼낸 입쌀 몇되박을 함지에 이고갔을 때는 백지주의 대청마루와 마당이 로인과 아이들로 빼곡이 찼을 때였다.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차렸는지 웅기중기 놓인 상들에 떡그릇과 막걸리동이들이 즐비하게 차있었다. 땅을 탄 기분들에 마음들이 후해져 부조가 크게 들어왔기때문이였다. 주름살마다에 웃음이 핀 순남이 어머니가 지짐그릇과 수저를 들고 그 사이를 새처럼 날아다녔다.

《평생 백지주 입치거리를 받던 순남이네 호사났구나.》

얼근히 취한 로인들속에서 이런 부르짖음이 튀여나올 때 련화는 눈허리가 시큰해졌다. 일생 백지주의 부엌데기로 있던 그가 오늘은 자기의 아들을 위해 전을 부치고 음식을 만들고 술상을 나르고있는것이 아닌가.

련화와 정화숙은 귀빈으로 지목되여 신랑신부가 있는 중방에 안내받았다. 그러나 련화는 동리 처녀들이 몰켜있는 한쪽구석의 돗자리에 가 자리를 잡았다. 거기서는 신랑신부의 머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늘 귀바퀴를 덥수룩하게 내리덮던 머리를 시원스럽게 깎아버린 순남은 낯이 벌개서 이따금 주변을 살펴보다가는 사람들의 웃음어린 눈길과 부딪치면 벌씬 웃었다. 그옆에 틀지게 앉은 장선생은 백세루양복에 넥타이까지 받쳐 련화에게 마치 서울 동대문구 은행사장같이 보였다.

해가 아직 한발가웃 남아있고 갈구랑달이 이마치기나 하듯 허연 하늘에 삐죽이 솟구쳤을 때 식이 시작되였다.

술잔들이 오고가며 흥띤 이야기들이 련줄 터져나왔다. 백주사의 집과 전답을 분여받은 순남이네의 경사를 두고 하나같이 축하를 했다.

순남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신랑신부 잔을 돌릴 때 련화 앞에 이른 순남은 눈물이 그렁해 청원하듯 말했다.

《어쩜 성선생아버님두 모르시는것 있었이유. 아, 이 좋은 정치를 모르고 떠나가다니요. 내 같은건 무색해서 그렇지만 아 성선생 어른이시야… 왜 모르실란지유. 여기 계심 내 큰잔 올리였을지라우. 그 어른님이 지금 얼마나 객고가 심하겠이유.》

련화에게 붙어 순남이 긴 사설조로 이야기할 때 장선생을 둘러싼 로축들은 전쟁이 언제면 끝날것 같은가. 북에서는 어떻게 사는가, 현물세가 무엇인가. 마지막에는 양복차림에까지 말이 오갔다.

《장선생이 농사를 했다는데 참말인갑쇼? 옷이랑 우리 고을 백지주것보다 히야번쩍합니다.》

옆에서 술을 처 권하는 사람의 그 말에 장선생은 싱긋이 웃다가 《자 내 손을 보시오.》 하고 마디마디 소나무굽처럼 튕겨난 크고 거친 농사군의 손을 보였다. 그리고는 웃음을 거두고 감회깊은 눈길로 자기의 옷을 내려다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이 옷은 김일성장군님께서 주신것입니다.》

그 말은 폭탄과 같은 반응을 일으켰다.

《장군님께서?! … 대포를 놓은것이 아니시유?》

《장군님께서 주신것입니다. 제가 낟알생산을 많이 했다고 표창으로 주신것입니다.》

《아니, 제 농사를 잘 지었는데 공으로 주셨단말이요.》

《그렇습니다.》

진지한 얼굴빛을 한 장선생의 그윽한 말소리에 좌중은 한동안 얼어붙은듯 굳어있다가 감탄의 소리들이 연방 터졌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요.》

《과시 해님이라고 하시더니-》

웅성거리는속에서 어떤 사람은 장선생에게 다가가 그 옷을 만져보기까지 했다.

잔치가 한고비 오르자 너도나도 일어나 춤을 추었다. 장선생도 추었고 련화의 이모도 했다. 춤을 못추는 사람들은 병신시늉도 내고 짐승울음소리라도 내서 흥을 돋구었다.

달이 떠오르자 흥은 더욱 고조되였다.

할머니들까지 일어나 양산도를 추고 노들강변을 불렀다. 박수가 일고 웃음이 물결쳐갔다. 련화는 한폭의 그림을, 환상적인 무릉도원을 보는것 같은 기분속에 잠겨 열광어린 환희에 잠긴 모습들을 보았다. 많은데서 미지수로 그려져있던 새 세상의 전모가 이들의 모습에 구가되여있는상싶었다.

(그래, 이 생활을 위해서라도 운학동무가 선 대오에 들어서야 한다.)

다음날 련화는 네명의 마을청년들과 함께 서울로 떠났다.

련화는 함께 떠난 청년들을 데리고 종로행전차를 타고가다가 부민관앞에서 백색상의에 푸른 스카트를 입은 날씬한 몸매의 녀군인의 아릿다운 모습을 반한듯 보다가 그가 학교연예대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던 동무임을 알아보았다. 련화는 너무나 반가와 동행한 청년들에 대한 자기의 체면도 잊고 달리는 전차에서 뛰여 내렸다.

《옥금아!》

《련화!》

둘은 많은 사람들이 본다는것도 잊고 두손을 맞잡은채 빙빙 돌아갔다. 숨돌릴만 하게 되자 옥금은 그간의 련화 일을 묻고 군대에 입대하려는 말을 듣자 손벽까지 쳤다.

《잘됐어, 우리 단장동지한테 가자.》

《단장이라니?》

《아이, 내 정신 봐, 소개가 늦었구나. 난 인민군협주단에 들어갔어. 우리 단장동진 기막힌 쏘프라노인데 글도 쓰고 노래도 짓는 예술의 대가야. 지금 사람을 더 받는중인데 반동이 아니고 웬간한 실력이 있으면 다 받아. 북에서 온 남동무들은 다 멋쟁이야. 기량도 보통 높잖아. 너는 절대 환영할거야. 인물 곱고 노래 잘하니 그 남동무들이 다 너한테 반할걸.》

련화가 별로 내켜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자 옥금이는 다른 각도로 말을 번졌다.

《이 협주단은 서울시민들앞에서 공연을 마치고 이제 전선으로 나간다나. 그리고 대우랑 참 좋다. 옷도 공짜, 먹는것도 공짜 그저 <대원 손옥금 만날수 있습니까?>, <외출할만합니까?> 이런 규정보고 몇자만 알면 돼.》

련화는 마음 한구석에서 손저어부르는 그 유혹에 솔깃했으나 과연 현재의 자기가 노래부르고 춤출수 있겠는가를 생각하고 서글피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근데 난 전선부대에 입대하려고 해.》

《응, 그렇구나. 하긴 그전 우리 반에 있던 숱한 애들이 군대에 탄원했어. 참 오늘아침엔 의용군에 입대한 학생들의 시위행진까지 있었어.》

련화는 옥금의 안내로 군대초모소로 쓰이는 안성중학교에 갔다. 입대탄원자들이 어떻게 많은지 옥금이만 아니였다면 저녁까지 기다려도 수속할수 없었을것이였다.

두눈에 안경을 낀 소성 한알의 군관이 학생용책상에 앉아 입대자들의 이름, 주소를 적었다. 분명 사람들의 끊임없는 출현에 지친듯 한 그는 고개들 들지 않고 이름, 나이, 주소, 직장을 적은 후 역시 보지 않은채 《부모들의 승인이 있었습니까?》라고 좀 딱딱한 어조로 물었다. 련화는 여기서 장황한 사연을 말한다는것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네》라고 짤막히 대답했다.

군관은 련화를 유심히 보다가 안경을 다시 낀 후 문건에 무언가 적어놓고 《좋습니다. 그런데 신원보증을 할 동무가 있습니까?》 하고 정색해 물었다.

련화가 마당 한구석에서 웬 녀학생과 말하는 옥금이를 소리쳐 부르자 군관은 《아, 알겠습니다. 저 협주단 동무가 동물 데려왔지요.》 하고는 문건 맨밑에 날자와 제 이름자를 쓰고 그 아래에 멋을 부려 수표를 하였다.

그리고는 문건을 쥐고 다시금 유심히 련화를 보다가 상냥하게 말했다.

《우린 동무를 믿겠습니다.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는 략하기로 하고… 동무를 특별취급으로 조직에서 추천해보낸 대렬에 편입시키겠습니다.》 하며 그는 종이장을 련화에게 쥐여주며 찾아갈 방을 가리켜주었다.

《잘 싸우시오.》

그는 마지막에 악수까지 청했다.

련화는 그 군관의 말대로 특별취급대상이 되여 저녁에는 벌써 군복까지 타입고 다음날 아침에는 규정학습을 했다.

오후 한겻은 가족들과 친척들을 만나는 외출이 승인되여 련화는 계동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은 떠나던 때 그대로였다.

련화는 방에 걸린 거미줄들을 털어내고 방바닥에 물걸레질 한 후 한바탕 울고나서 아버지에게 남기는 편지를 썼다. 집에서 입고간 옷과 이모가 준 행리중에서 불필요한것들을 보자기에 싸놓고 그우에 편지를 찔러놓았다.

새벽 두시에 련화는 그 군관의 인솔밑에 30명의 신입병사들과 함께 평택쪽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매칸마다 련화처럼 새 군복을 떨쳐입은 사람들로 초만원이였다.

사단대렬참모라고 하는 그 군관은 다섯명씩 조를 짜서 매 칸으로 데리고 가서는 《의용군동무들입니다.》 하고 소개를 하고는 자리를 양보해줄것을 말하였다.

그러면 그의 말이 무슨 절대의 군령처럼 되여 박수갈채가 왔고 여기저기에서 자리들을 권했다.

차칸마다 땀내와 열기로 화끈화끈하였으나 무엇이라 이름찍지 못할 가슴설레이게 하는 환희와 랑만의 공기가 차넘치고있었다.

련화는 도릿한 얼굴에 역시 동그스름한 두눈이 무척 귀인성스러운 녀성군인옆에 앉았다.

《성련화라고 불러주세요.》

련화가 자리를 내준데 대한 사의로 머리를 수그리며 자기를 소개하자 그 녀성군인은 숫저운 웃음을 지으며 일어설가말가 망설이다가 《리복심이라고 해요.》 하며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하고나자 복심이라는 녀인은 먼저 인사차림을 못한데서 오는것인지 약간 헤덤비는 태도로 사과며 복숭아가 담긴 구럭을 열었다.

《좀 들라요. 달다니깐요.》

련화는 귀설은 함북사투리의 독특한 억양에 방긋 웃었다.

복심이라는 녀성도 련화가 왜 웃는지 깨달은것 같았다. 그는 웃으며 물었다.

《내 말이 우쁘게 들려요?》

《네…》

련화는 대답하고나서 《호호.》 하고 소리내여 웃었다. 그에게는 복심이라는 녀자가 북에서 온 녀자라는것으로 호기심이 들뿐아니라 첫 인상에서부터 호감이 갔다.

그들은 인츰 친숙해져 일신상의 이야기를 조용조용 나누기 시작하였다.

7월 5일 그처럼 경모하여마지 않던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뵌 복심은 집에 가려던 당초의 생각을 싹 잊고말았다. 그는 폭격현장에 나온 인민군중앙병원 간호원들을 도와 무너진 집들에서 시체들을 꺼내고 부상당한 사람들을 날랐다. 몸매는 체소하나 담차고 영악스러운 그의 일솜씨에는 오랜 군의들도 혀를 둘렀다. 그는 야전병원에 가서 비편제간병원자격으로 부상자들을 돌보았다. 그 병원에는 전선에서 온 부상병들이 많았다. 그 부상병들은 낮이고 밤이고 침상을 지켜 궂은 일, 마른 일 가리지 않으며 전투이야기가 나올 때면 해면이 물빨아들이듯 귀기울이면서 54사에서 온 사람이 없느냐고 묻기도 하는 온순하면서도 암팡진 이 녀성에 대하여 한결같은 사랑과 동정을 기울였다. 회복된 몇명의 부상병들이 전선으로 나가게 되였을 때 복심이도 따라가겠다고 하였다.

병원일군들은 사민인 녀자가 어떻게 갈수 있느냐고 했지만 복심은 막무가내였다. 퇴원하는 부상병들 역시 그의 편이 되여주었다.

이렇게 되여 복심은 의례적인 규정을 뛰여넘어 서울까지 나왔고 여기서 정식 군복을 타입고 전방사단 간호원으로 배치를 받았다. 그는 어느 한 싸움터에서건 송기덕이앞에 보란듯이 나타나고 싶은것이 하나의 소원이기도 했다.

《나 역시 조국을 위해 한몫 했어요.》

이 말만 자랑차게 할수 있으면 더 원이 없을것이였다. 그래도 자기를 깔본다면 그때에는 결단코 돌아설것이다. 그리고 작별시 값눅은 동정으로 남기고간 로임봉투를 그앞에 던져버릴것이다.

복심은 군복을 바꿔입을 때 예전의 옷을 다 싸서 집에 부치면서도 그 돈봉투는 기덕이 주던 그대로 꽁꽁 싸서 안주머니 깊숙이 감추었다. 때로 젖가슴우에 놓인 그 돈을 감촉하느라면 눈굽이 쩌릿해오기도 했으나 그때마다 그는 마음을 모질게 도사려먹군하였다.

기차는 평택에서 더 못나갔다. 그다음부터 자동차를 타고가게 되였다. 복심은 련화와 함께 한차를 탔다.

푸름푸름하게 동터올무렵에 그들은 포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얼마 안가서부터 마사진 포와 자동차며 철갑모따위들을 보게 되였다. 한 갈림길에서 붉은 완장을 두른 군인들이 차를 멈춰세웠다.

《이 길로 가면 안됩니다. 적들의 반돌격으로… 점령당했습니다.》

푸르무레한 새벽빛속에 모두의 얼굴이 희푸른 조각상처럼 굳어졌다.

따르락 따르락…

산발적으로 올리는 중기사격소리가 가까이에서 울려왔다. 최현 장령의 52사가 싸우는 전투지대였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부고]노길남 박사
노길남 박사 추모관
조선문학예술
조선중앙TV
추천홈페이지
우리민족끼리
자주시보
사람일보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한겨레
경향신문
재도이췰란드동포협력회
재카나다동포연합
오마이뉴스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재오스트랄리아동포전국연합회
통일부


Copyright (c)1999-2024 MinJok-TongShin / E-mail : minjoktongshin@outl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