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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넋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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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1-09-15 16:47 조회3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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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로명욱의 전사생활은 오늘에 비로소 끝나게 되였다.

중대장 리철은 이와 관련하여 상장과 교양실에서 마주앉았다.

로명욱은 자기의 전사생활을 성심성의로 도와준데 대하여 진심으로 되는 감사를 표하면서 뜻밖의 이야기를 꺼내였다.

《중대장동무, 우리 분대장동무 말입니다.》

상장은 전사생활기간의 자기 분대장을 지금 이 자리에서도 그렇게 불렀다.

《왜 금자라잡이를 했는지 아직 다는 모르고있겠지요?》

리철은 의아히 로명욱을 바라보았다. 그 일은 이미 전연규률에 대한 만성적이고도 자유주의적인 태도의 발현이라는 동지호상간 비판과 신금성자신의 심각한 반성으로 총화되였던것이다.

더우기 그때로부터 얼마후 련대장으로부터 자기에게 안겨주신 장군님의 커다란 고무와 격려를 전달받은 신금성은 어머니의 사망을 두고 일시나마 거칠어졌던 사업과 생활을 자책하며 지금 새로운 활기에 넘쳐 군사복무를 해나가고있었다. 얼마전에는 한생 총잡을 각오속에 군관학교로 갈것을 지망해나섰다. 그랬던것만큼 다시 화제에 오른 금자라잡이문제는 리철이에게 뜻밖이 아닐수 없었다.

로명욱은 생각깊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분대장동무앞에서 비밀에 붙일것을 약속하였지만 정작 중대를 떠나면서 보자니 그대로 갈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은 분대의 마지막전사 이 로명욱을 위하여 금자라잡이를 했던것입니다. 아버지벌되는 년로한 전사라면서 말입니다.

난 우리 분대장동무의 웅심깊은 마음에 목이 메여 금자라탕을 넘길수 없었습니다. 그저 이게 내 아들과 뭐가 다르랴 하는 생각만 들뿐이였지요. 이런 친아들과 같은 병사들의 생활에 무관심했으니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 금자라탕을 받을수 있단 말입니까?

그걸 느끼라고 우리 장군님께서 나를 중대로 보내주셨구나 하고 생각하니 더욱 눈굽이 뜨거워나는것을 어쩔수 없었습니다.》

리철은 갑자기 가슴을 쿡 찌르는듯 한 충격을 느꼈다. 그런줄도 모르고 만성적이요, 자유주의적이요 하는 비판만 들이댔으니 그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그것도 그렇지만 어머니사망으로 인한 고민속에 있으면서 금자라탕까지 생각했다는것이 더욱 놀랍기만 하였다.

로명욱은 안심치 않은지 거듭 부탁하였다.

《중대장동무, 나와 분대장동무사이에 한 약속을 꼭 지켜주시오.》

리철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상장동지, 사실을 알려주어 고맙습니다. 약속을 꼭 지키겠습니다.》

바로 그때 중대직일관이 들어와 련대정치위원이 도착하여 중대지휘부에서 기다리고있다는것을 알렸다.

중대지휘부로 걸어가는 리철의 마음은 그리 가볍지 못했다. 금성의 소행이 고맙게 느껴지는 한편 섭섭하기도 하였다. 왜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사실을 말하지 않았는가 하는것이다. 이거야말로 중대장이 아직까지도 그의 마음속깊이까지 들어가지 못했다는 증거로 되지 않는가! …

중대지휘부에는 련대정치위원과 함께 중대정치지도원도 이미 와있었다.

리철의 보고를 받은 정치위원 김윤범은 짐짓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중대장동무, 동무한테 귀한 손님이 왔는데 누구일것 같소?》

리철은 어리둥절하여 두사람을 번갈아 둘러보았다. 이 멀고 외진 전연에 올수 있는 귀한 손님이란 과연 어떤 사람인가? …

김윤범은 곧 정색한 표정을 지었다.

《중대장동무, 그 처녀가 동무를 다시 찾아왔소. 동무의 용서를 바라고 말이요!》

리철은 깜짝 놀라 정치위원을 쳐다보았다. 그 처녀가 다시 찾아오다니?! …

김윤범은 심중히 주의를 주기 시작하였다.

《처녀가 걸음을 다시 했을 때야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겠소. 동무는 처녀의 그 심정을 리해해주어야 하오. 지금 정치지도원동무네 집에서 기다리고있으니 어서 내려가보오.》

정치지도원이 좋아서 들썩거렸다.

《중대장동지, 내 그때 뭐라고 했습니까? 그렇게 경솔한 처녀같지 않다구요. 제꺽 준비를 하십시오. 새 군복을 척 갈아입고 말입니다!》

리철은 정말 옷걸이에 가서 군복을 벗겨드는 정치지도원을 어이없는 눈길로 바라보다말고 정치위원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정치위원동지, 난 우리 정치지도원동무가 왜 저렇게 부산을 피우는지 모르겠습니다. …》

리철은 그러고나서 정치지도원을 아니꼽게 바라보았다.

《정치지도원동무, 당장 내 군복을 제자리에 걸어놓아줄수 없겠소?》

정치지도원은 두손으로 군복을 든채 엉거주춤 굳어졌다.

김윤범이 리철을 향해 눈을 흘겼다.

《몸단장을 시켜 내세워주자는건데 어째서… 선녀같이 아름다운 처녀가 찾아왔는데 정치지도원이라고 왜 기쁘지 않겠소!》

리철은 흔연히 웃었다.

《선녀같이 아름다운 멋쟁이처녀지요. 그런 처녀를 누가 마다하겠습니까? 하지만 나같은 전연군인한테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정치지도원은 정치위원을 돌아보며 그 말을 반박해나섰다.

《정치위원동지, 이건 미에 대한 모독이고 우롱입니다. 아름다우면 다 멋쟁이이고 그래서 자기한테는 어울리지 않는다! …》

《정치지도원동무! …》

리철은 정치지도원의 말을 밀막았다.

《손끝에 흙 한번 묻혀보지 못했을 그 처녀가 이 최전연초소에서 무엇을 할수 있단 말이요?》

김윤범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그들사이에 끼여들었다.

《그렇다면 중대장, 동무한테는 어떤 처녀가 어울린다고 생각하오?》

리철은 힐끗 정치지도원을 돌아보고나서 말했다.

《군인가족이라면 향수냄새보다 두엄냄새가 풍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우리 정치지도원동무의 안해같은 그런 녀성 말입니다.》

정치지도원은 어이없어했다.

《중대장동지, 이건 좀 섭섭합니다. 비교할데가 따로 있지 그래 우리 처가 두엄냄새나 풀풀 풍기며 다니는 녀자같습니까? 》

리철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쯤한 말도 리해 못하겠소? 난 근로성을 말하는거지 결코…》

김윤범은 그만에야 책상을 탕 쳤다.

《정작 찾아오니 속에 없는 투정을! … 그 처녀의 근로성을 알면 얼마나 알아서? 만나보면 처녀의 준비상태를 다 알것이 아닌가!

최전연군관답게 우선 자기를 찾아 불원천리 달려온 처녀의 자존심도 생각하고 마주 성의를 보여야지! 안 그런가?》

리철은 그제야 자세를 바로하였다.

《정치위원동지, 만나보겠습니다. …》

김윤범은 다소 성이 풀리는듯 느슨한 웃음을 지었다.

《진작 그랬어야지. 하지만 처녀가 다시 찾아왔다 해서 다 먹어놓은 떡이라고 생각해서는 오산이야. 이번까지 그 처녀를 잡아두지 못하면 그땐 아예 2제대로 돌려놓고말겠어. 내 군단정치위원동지한테서 받은 과업이 있단 말이야, 동물 빨리 장가보내라는…》

리철은 그만 어이없어 웃음을 터뜨리고말았다.

그 바람에 정치위원도 정치지도원도 따라웃었다.

중대지휘부를 나선 리철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일이 눈앞에 닥쳐왔을 때 그러하듯 벙벙한 기분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치지도원네 집앞에 이르러서야 갑자기 생각되는것이 있어 슬며시 걸음을 멈추었다. 어떻게 되여 그 처녀가 다시 찾아왔겠는가 하는것이다. 102련대정치위원을 하는 오빠의 거듭되는 권고로? … 분명 그랬을것이다. 그렇지 않다면야 그가 무엇때문에 이렇다할 인연도 없는 이름없는 한 중대장을 찾아 이런 힘겨운 걸음을 다시 할수 있단 말인가!

리철은 비록 처녀가 최전연을 외면하고 떠나갔지만 지금의 그 심정을 리해하고싶었다. 권고를 받아 결심했든, 어쨌든 이렇게 다시 찾아오지 않았는가! 그것으로 하여 처녀의 립장에 서서 생각을 더 많이 해보게 됨을 어쩔수 없었다. 그가 자라온 환경, 지금까지 해온 일을 두고볼 때 이 한적한 전연이 어찌 그의 앞으로의 생활과 이어질수 있겠는가? 마지 못해 이루어진 결합은 결코 그에게 행복으로 될수 없는것이다. …

때마침 부엌문이 열리며 정치지도원의 안해가 반가움에 넘쳐 밖으로 나왔다.

《처녀가 지금 빨래하러 개울가로 나갔어요. 어제밤 애아버지가 걷어가지고온 병사들의 발싸개를 버치에 담아놓고있었는데 자기도 빨래할것이 있다면서 함께 가지고나가는게 아니겠어요.

행동거지가 얼마나 차분하고 정들어보이는지. …》

리철은 넌지시 물었다.

《그래, 발싸개는 빨줄 안답디까?》

정치지도원의 안해는 호호 소리내여 웃었다.

《빨래를 할줄 모르는 처녀가 어디 있어요? 발싸개는 뭐 특별한 빨래인가요?》

리철이 잠시 서성거리자 정치지도원의 안해가 먼저 권고했다.

《여기서 이렇게 기다리지 말고 개울가로 찾아가봐요. 답답한 방안에서 만나기보다 시원한 개울가가 얼마나 좋아요, 경치도 좋고…》

리철은 그만 허거픈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빈방에 우두커니 앉아 기다리는것도 멋적은노릇같아 고개를 끄덕이였다.

《에라, 그럼 개울가로 나가보지요. …》

《가만…》

갑자기 정치지도원의 안해가 리철을 멈춰세웠다. 팔소매에 무엇이 묻었는지 가볍게 털어주며 당부했다.

《친절히 대해줘요. 처녀가 중대장동지를 만나길 몹시 걱정하던데…》

《젠장, 알았다는데두…》

리철은 짐짓 대수롭지 않은듯이 대답하고나서 집마당 맞은편을 흐르는 개울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봄은 한창 무르익어가고있었다. 개울가로 가는 오솔길 좌우에는 갯버들과 찔광이나무가 무성했다. 이름모를 들꽃을 찾아 벌들이 붕붕 오솔길우를 넘나들고있었다. 향긋하고도 씁쓸한 갯버들즙냄새를 느끼며 개울을 따라 걸어올라가던 리철은 주춤 걸음을 멈추었다. 맑은물이 소리없이 흐르는 고즈넉한 개울가에 무릎을 모두고앉아 빨래를 하는 처녀의 옆모습이 보였던것이다. 치마폭을 꼭 감싸고있었는데 빨래를 물속에 좌우로 헹굴 때마다 실팍한 무릎이 언뜻언뜻 드러나보이군 하였다.

리철은 오도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주춤거렸다.

불현듯 처녀는 그 무슨 기척을 느꼈는지 조심히 고개를 돌렸다. 리철을 알아본 그는 무척 당황해하며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리철은 처녀를 바라보았다. 지난해 봄 그 저녁 피로에 지쳐 해쓱했던 얼굴이 기억되여서인지 지금 생기에 넘쳐있는 처녀의 모습이 이미 생각했던것보다 더 아름다운데 대하여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밝은 해빛에 드러난 갸름한 얼굴은 희고도 맑았다. 검은 눈망울이 류달리 커보여서인지 약간 놀란 눈길을 더 웅심깊게 해주고있었다. 그것이 이곳 내가의 청신한 풍경과 어울려 처녀의 자태를 보다 싱싱하게 하여준다는것을 의식하지 못한채 그는 침착히 인사말을 건넸다.

《다시 만나니 반갑습니다.》

처녀는 그제야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리철은 시내가 한옆의 펑퍼짐한 바위를 가리켜보이고나서 자기도 그 맞은편의 바위에 걸터앉았다.

《앉읍시다.》

은순은 공손히 리철을 따라 자리를 잡고는 애써 치마자락을 무릎아래로 끌어내리고있었다.

리철은 그 태도를 지켜보다 말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였다. 처녀의 공손한 반응에서 이번 걸음에 자기의 운명을 전적으로 걸고있을 그의 마음이 어느 정도 리해되였던것이다. 그러자 중대지휘부에서 가졌던 회의적인 감정과 달리 일종의 동정심같은것이 솟구쳐오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자신에 대한 자존심이 그 어느 뭇처녀들보다 강했을 이 처녀가 무엇때문에 별로 이름도 없는 평범한 중대장을 찾아 그리고 그처럼 소중했을 꿈도 포부도 다 버리고 두번째 걸음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단 말인가? 앞으로 헤쳐야 할 생소한 길이 어떤것인가를 알고나 있는지. …

리철은 애써 그 감정을 누르며 침묵을 깨였다.

《난 동무가 이렇게 와준데 대하여 우선 고맙게 생각합니다.》

은순은 다소곳이 얼굴을 숙인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 그 인사를 받을 면목이 없습니다. …》

《아니… 그런게 아닙니다. 동무한테는 꼭 이곳을 선택하여야 할 리유가 없었습니다. 난 이미 그것을 리해하였고… 더우기 목석이 아닌 까닭에 동무가 이번 걸음을 얼마나 힘들게 결심하였겠는가를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

리철은 잠시 동안을 두었다. 이제 하게 될 말이 힘겨운 걸음을 한 그에게 오해를 준다면 그 이상 죄되는 일은 없을것이다. 그러나 본인을 위해서 꼭 해주어야 할 말이기에 진심을 터놓기 시작하였다.

《여긴 지난해나 지금이나 그전 그대로입니다. 갈대숲, 새초밭… 인가도 없으니 앞으로도 달라질것이 없습니다. 학교도 학생들도 없고… 그러니 자신이 어디에 더 필요하고 유익한가를 다시한번 심중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가요?

동무가 이렇게 왔다 해서 다시 돌아설수 없는 처지에 놓이는건 절대 아니라 생각합니다.》

은순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원망과 희망, 노여움과 같은 착잡한 감정의 불꽃이 아름다운 두눈에서 타일어번지고있었다.

《혹시 저에게서 미덥지 않은것이 있다면…》

리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서가 아닙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선택하고 걸어온 길을 그 누구의 권고에 의해 변경시킨다는것은 단순히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여기에는 언젠가는 반드시 후회가 따르기마련입니다.

나 역시 자신을 속일수가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여 이 자리를 넘긴다면 장차 그 이상 무거운 짐은 없을것입니다.》

《무거운 짐이요? …》

은순은 떨리는 목소리로 리철의 말을 되풀이하였다.

리철은 즉시 그 말을 시정하였다.

《솔직치 못한 내 량심이지요!》

은순은 눈길을 쳐들었다. 운명에 대한 순응만이 깃들어있는듯싶던 부드러운 눈망울에는 리철의 량심에 대한 말없는 질책이 숨김없이 비껴있었다.

《저는 사실 누구의 짐이나 되자고 여기로 오지 않았습니다. 또… 누구의 권고나 강요에 따라 중대장동지를 찾아온건 더욱 아닙니다.》

은순의 어조에는 누구도 감히 부정하지 못할 확신이 실려있어 리철은 그만 대꾸할 말을 잃고말았다.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은순의 목소리는 가볍게 떨리고있었다.

《이곳에서 되돌아선 후 지난 1년간 저의 생활에는 이상하게도 한 녀인이 때없이 비껴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도 한때는 평양처녀였고 후에는 그 어떤 인연도 없는 중대정치지도원을 만나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

은순은 목이 메는듯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리철은 놀란 눈길로 은순을 바라보았다. 그는 다름아닌 련대정치위원의 녀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있었던것이다.

은순은 눈가에 물기를 머금은채 가까스로 뒤말을 잇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녀인의 남편이 희생되였습니다. 하지만 그 녀인은 모진 슬픔을 이겨내고 최전연에 남을것을 결심하였습니다. 그 녀인이 받아안은 충격이 저의 충격으로 이어질줄은 미처 몰랐어요. 아마 이것이 저를… 여기로 다시 찾아오게 한 동기로 되였나 봅니다.》

리철은 은순의 뜻밖의 고백에 놀랐다. 그 중대정치지도원이 발휘한 소행에 대해서는 이미 출판물에 소개되여 전군이 다 알고있다. 그러나 그의 놀라움은 한 녀인의 소행이 누구도 아닌 이 처녀를 여기로 오게 한 리유로 되였다는데 있었다.

리철은 저도 모르게 눈길을 내리깔았다. 그러자 처녀가 신고있는 구두가 눈가에 언뜻 비껴들었다. 헛망치질하여 뒤축가죽면에 낸 자그마한 흠집이 아직 그대로 남아있는 1년전의 바로 그 밤색구두였다.

리철은 문뜩 처녀를 마주한 이 자리가 꿈같이 생각되기 시작하였다.

은순이가 도착한 다음날, 최홍훈군단정치위원이 중대로 내려왔다. 자기 야전승용차의 뒤의자를 다 들어내고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보내주신 한쌍의 우량품종염소를 싣고왔다.

중대에 경사가 났다. 집짐승우리옆에 우량품종의 염소가 들 우리를 짓는다, 햇풀을 뜯어온다 하며 병사들은 기뻐 돌아쳤다.

리철은 직접 자기가 마치를 들고 염소우리를 짓는데 달라붙었다. 우량품종의 염소 한마리가 한해 1톤가량의 젖을 생산한다니 그게 어딘가, 재래품종의 염소와 교잡을 해도 젖생산과 고기생산에서 실리가 대단하다니 성수가 나지 않을수 없었다.

중대정치지도원이 그를 찾아왔다.

《중대장동지, 그만큼 말했는데도 염소우리에 붙어있으니…

군단정치위원동지가 찾습니다!》

리철은 그제야 마치를 정치지도원에게 넘겨주고 중대지휘부로 들어갔다.

중대지휘부에는 군단정치위원과 함께 련대장, 련대정치위원 그리고 뜻밖에 은순이까지 올라와있었다.

최홍훈장령은 짐짓 리철을 향해 엄포를 놓았다.

《처녀가 홀로 있기 적적하다며 동무를 찾아 중대로 올라왔소. 이럴 때 처녀한테 저기 유럽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우량품종염소도 보여주고 중대도 돌아보게 하면 안된다던가?》

은순은 그게 아니라는듯 리철을 난처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최홍훈은 이미 나누던 이야기인듯 은순에게 부드럽게 물었다.

《그래 부모님들하고는 어떻게 토의하고 왔소?》

은순은 다시금 리철의 눈치를 보며 수집어했다.

《중대장동지를 먼저 만나보라고 했습니다. …》

《음, 총각의 의향을 알아야 하니까. …》

최홍훈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련대장, 련대정치위원을 둘러보았다.

《내 생각엔 그렇소. 마음씨 곱고 인물 고운 평양처녀를 맞이하는건 우리 부대 기쁨이고 경사인데 련대가 결혼식을 맡아주었으면 하오.

동무들이 초청해준다면 나도 기꺼이 참가하겠소. 물론 부조도 준비해가지고 말이지.》

황명걸은 기다린듯 그 말을 받았다.

《정치위원동지, 고맙습니다. 신랑, 신부가 일생동안 추억할수 있게 준비를 잘하겠습니다!

살림집도 지금부터 준비하고 가장집물도 우리가 다 맡겠습니다.》

최홍훈은 이어 은순의 의향을 물었다.

《어떻소? 처녀생각에는! …》

은순은 그저 어찌할바를 몰라 얼굴을 활딱 붉힐뿐이였다.

최홍훈은 걸걸하게 웃었다.

《우리모두의 심정이 그럴진대 부모님들이라고 반대하겠소. 부모님들에게 우리 심정을 잘 전해주오.》

김윤범이 자기 의견을 말했다.

《정치위원동지, 소뿔은 단김에 빼랬다고 부모님들과 합의도 볼겸 처녀를 오늘 제창 평양으로 떠나보내는것이 어떻습니까?》

《오늘? …》

《전사생활을 끝마친 인민무력부 부부장동지를 위해 오늘 평양에서 승용차가 내려오지 않습니까!》

《아, 그렇지! …》

최홍훈은 가볍게 책상을 쳤다.

《그 차에 따라보내면 되겠군! …》

최홍훈은 자기의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더니 리철이와 은순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참, 점심시간이 되였구만. … 동무들은 나가봐도 좋소. 오후 첫시간에 출발하니 그동안 단란한 시간을 보내야지!》

리철은 급히 거수경례를 붙이고 은순이와 함께 중대지휘부를 나섰다.

그들은 어깨나란히 정치지도원네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리철은 땅바닥에 눈길을 둔채 먼저 말을 꺼냈다.

《은순동무, 동무에게 한가지 부탁이 있소. …》

은순은 리철을 향해 눈웃음을 지었다.

《어서 하십시오, 무슨 부탁인지. …》

《이건 우리 중대 한 분대장의 가정문제인데 은순동무도 기억날거요. 지난해 봄 정기휴가를 가는 길에 은순동무를 간리역까지 동행해준 그 분대장이요.》

은순은 다시금 미소를 지었다. 금자라가 든 배낭임자, 중대장을 자랑하지 못해 안달이 나하던 분대장의 모습이 생각났던것이다.

리철은 여전히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아버지는 이미전에 사망하고 어머니마저 얼마전에 병으로 돌아갔소. 학교에 다니는 녀동생만 홀로 남아있는데 지금 공장과 학교에서 돌보고있소. 매우 감사한 일이지.

은순동무에게 하자는 부탁은 그 녀동생을 우리 부모님들한테 좀 맡겨주고 왔으면 하는거요. 고적하게 지내고있는 우리 부모님들한테는 무척 반가운 일일거요. 떠날 때 공장과 학교에 보내는 나의 편지를 가지고 가오. 만나자부터 이런 부탁을 해서 안됐소.》

은순은 리철의 심정이 충분히 리해되였다. 분대장의 어머니병치료를 위해 금자라까지 보내주며 각근히 마음을 써온 그가 아니였던가. 더구나 홀로 남은 분대장의 녀동생에 대해서는 은순이도 역시 동정심을 금할수 없었다.

《중대장동지, 꼭 가겠습니다. 저도 이미 분대장동무의 가정사정을 전번에 려행을 함께 하면서 어느 정도 알고있었습니다. 될수록 빨리 강계로 떠나겠습니다.》

《그런데 말이요. …》

그는 문뜩 걸음을 멈추고 은순을 향해 짐짓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은순동무한테도 내가 중대장이요? 리철이란 이름이 더 좋을것 같은데! …》

은순은 얼굴을 붉혔다.

《리철동지, 미안합니다! …》

그들은 서로 마주웃으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

중대앞마당에 로명욱상장의 승용차가 대기하고있었다.

전사복장을 장령복장으로 갈아입은 로명욱은 전사생활 그때처럼 중대장 리철이와 정치지도원앞에 다가와 거수경례를 했다.

《중대장동지, 정치지도원동지, 전사생활을 통하여 귀중한것을 체험하고 배우도록 성심성의로 도와준데 대하여 인사를 드립니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결사옹위하는 최전연초소를 더 굳건히 지켜주기를 바랍니다!》

리철은 마주 거수경례를 붙인채 절절히 부탁했다.

《상장동지, 평양에 돌아가면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몸가까이에서 더 잘 모셔주기를 중대 전체 군인들의 간절한 마음을 담아 부탁합니다!》

로명욱은 그 다음차례로 최홍훈과 황명걸, 김윤범과도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로명욱은 그동안 정든 중대를 다시한번 둘러보고나서 승용차곁에 고개를 소곳이 숙이고 서있는 은순을 향해 환한 웃음을 지었다.

《은순이라 했던가? 은순인 참 좋은 중대장과 좋은 중대를 만났어!

자, 그럼 떠나자구. …》

로명욱은 친딸마냥 은순이를 먼저 차에 오르게 하고 그옆에 자리를 잡았다.

승용차는 천천히 중대앞마당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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