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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학예술

영원한 넋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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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1-08-25 22:27 조회2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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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월내산발전소건설을 위해 소집되였던 당중앙군사위원회소식은 군단은 물론 해안 102련대장병들에게도 커다란 충격과 자각을 불러일으켜주었다. 기준돌파에 나선 남용일이 속한 중대도 례외로 될수 없었다.

희미한 달빛이 봄물이 오르기 시작한 진달래며 싸리나무며 조팝나무 등 갖가지 잡관목들에 제나름의 생기를 부여하고있는 한밤중이였다. 바로 그런 떨기나무들이 얽혀진 오솔길을 타고 한 행군대오가 산마루로 오르고있었다. 씩씩거리는 숨소리, 장구류들이 부딪치는 소리, 삭정이 부러져나가는 소리뿐 대오안에는 아무런 말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모두가 기세충천한 속에서 남용일만은 발이 닿는대로 휘청휘청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몸에는 총도 배낭도 아무것도 없었다. 총은 처음 분대장의 어깨에로 옮겨갔고 배낭은 그다음 정치지도원의 배낭우에 덧놓여졌다. 분대장이 처음 자동보총을 빼앗으려고 할 때만 하여도 자존심은 남아있었다. 다른 동무들한테 약골이라는것을 보여주고싶지 않았던것이다. 그래서 완강히 저항하다가 더는 행군속도에 자기 몸을 따라세울수 없게 되자 어쩔수없이 내주고말았다. 그다음 배낭은 어떻게 되여 잔등에서 벗겨졌는지 생각조차 잘 나지 않는다. 그만큼 온몸이 녹초가 되여버렸던것이다.

그는 지금 정치지도원의 팔에 매달려 겨우겨우 행군대오를 따라가고있었다. 눈을 뜰수 없게 온 얼굴과 잔등을 타고 줄줄 흐르던 땀도 이젠 동이 났는지 살가죽이 조여들고 입술은 바싹 말라터지는듯싶다. 산마루는 어디까진가? 그는 혼미해지는 의식속에서 고개를 쳐들었으나 별빛이 아물거리는 그곳은 뿌잇한 안개속에 잠긴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 왜 이렇게 약골일가.

올해 설날 텔레비죤에서 방영되는 당보, 군보, 청년보의 공동사설청취를 지켜내고 부상당한 그는 군단병원으로 실려갔었다. 예상외로 수술이 잘되여 골절된 부위는 제대로 이어져 한달만에 퇴원하였지만 원래 몸이 약했던탓에 그 후과를 완전히 가시지 못하고 일부 훈련에서 제외되고있었다. 하지만 련대지휘부로부터 시작하여 중대들까지 타번지는 대중운동의 세찬 소용돌이는 용일의 가슴속에 참을수 없는 조바심을 불러일으켰다. 병영의 곳곳에 세워진 가슴 툭툭 튀는 구호들, 특히 매일 매 시각 새로운 성과가 나붙는 속보판앞을 지날 때마다 그는 얼굴을 들수 없었다. 거기에는 이런 고정표어가 나붙어있었다. 《동무는 오늘의 오중흡7련대 대원으로 준비되였는가?》…

남용일은 안타까왔다. 병원에서 무슨 《딱지》를 붙여보냈는지 모르겠지만 힘든 공병작업과 강행군훈련같은데서 꼭꼭 제외시켜준다. 실지로 그는 그런 작업과 훈련과정에 빈혈을 일으켜 동무들의 부축을 받아 병실의 침대에 누운적이 있는것만은 사실이였다. 3월초부터는 련대장과 련대정치위원이 련이어 그를 찾아와 이것저것 다정히 물으며 관심해주기 시작하였다. 며칠후에는 군의소장이 나타나 상급의 지시라며 무작정 련대군의소에 입원시키려 하였다. 그때의 안타까움으로 말하면 발버둥질이라도 칠 심정이였는데 때마침 그 자리에 있던 중대장, 정치지도원이 용일의 건강상태는 군의소에서 치료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며 가볍게 거절하였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련대군의소 군의가 때없이 찾아와 진찰도 하고 각종 보약같은것을 두고 가기도 하였다. 그러지 않아도 중대에서는 삽주탕, 만삼탕 같은것을 자체로 만들어 보장하고있던 참이라 그것까지 처리하자면 보약으로 배를 불리워야 할 형편이였다.

용일에게 있어서 이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내가 무슨 영웅이라도 된단 말인가? 누구나 그런 정황에 맞다들면 다 그렇게 행동했을텐데… 그리고 내가 입원치료를 받고도 맥을 추지 못하는거야 어디 부상당한 후과인가? 나야 원래 학교때부터 체질이 약하지 않았던가!

남용일은 이런 심리로 하여 이번 강행군은 절대로 빠질수 없다고 생각했던것이다. 그러나 그처럼 굳은 각오를 안고 따라섰던 행군인데 이렇게 또다시 락오자로 되다니… 기가 막혔다. 아무리 이를 사려물고 따라서려 하였지만 몸이 움직여주지 않는다. 가슴은 숨이 차다못해 빠개지는듯싶었고 눈앞은 가물거려 앞사람의 형체도 분간하기 어렵다. 고개는 점점 뒤로 젖혀지고 가슴만은 무작정 앞으로 쏠리는데 두다리는 물먹은 솜처럼 자꾸만 주저앉으려 한다. 자기의 팔을 껴안은 정치지도원의 놀란 목소리가 귀전에 들려왔다.

《용일이, 왜 그래? 힘을 내! 고개는 앞으로 숙이고… 그렇지! 숨은 코로 쉬고! …》

용일은 입을 다물고 힘껏 코로 공기를 들이켰다. 그러나 이 골짜기의 공기가 다 새여버린듯 대번에 숨이 꺽 막혔다. 급기야 입을 벌리고 숨을 들이켰으나 가슴은 여전히 열리지 않는다.

갑자기 대오앞에서부터 《뒤로 전달.》구령이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뒤로 전달, 속도 빨릿! …》

《뒤로 전달, 속도 빨릿! …》

그 소리가 자기 앞사람에게 거의 이르렀을무렵, 용일은 마지막힘을 모아 걸음을 크게 내짚었다. 순간 그는 온몸을 비칠하며 정치지도원의 팔에 매달려 헉헉 느껴울었다.

지인선의 급한 목소리가 울렸다.

《위생지도원! 위생지도원! …》

남용일은 드디여 지인선의 팔에서 풀려나와 그 자리에 쓰러졌다. 숨구멍이 꽉 막혀버린듯 한 답답함, 어지러움, 목구멍에서 무엇이 울컥 쏟아져나오는듯 한 메스꺼움…

용일은 그 고통에 이리저리 태질하며 땅바닥에 딩굴었다. 정치지도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용일이, 정신차려! …》

남용일은 그 소리와 함께 그만 의식을 잃고말았다. …

용일을 진찰하고 밖으로 내보낸 군의소장은 정치지도원 지인선을 향해 화를 냈다.

《그때 내가 말했지? 입원시켜야 한다고… 그런데도 동문 군의소에서 회복시킬 병이 아니라고 했지? 결국 오늘과 같은 일을 치고말았소!》

지인선은 용일이가 앉았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할말이 없습니다. 우린 그저 용일동무의 몸상태는 다시 째고 꿰매는게 아니니 별일 없을거라고 단순하게만 생각하고… 몸보신만 잘하면 되는줄 알았던겁니다. 그래서 보약은 물론이고 닭곰이랑 토끼곰이랑 자꾸 들이댔지만 도무지 위에서 받지 못합니다.》

련대계선치고 퍼그나 나이 지숙해보이는 군의소장은 그 말에서 어떤 동정심이 생겨났는지 꿋꿋한 얼굴표정을 풀었다.

《심장을 비롯한 모든 장기들이 무력한 상태니까. 그 병사가 군단병원에 입원하고있던 당시 나도 볼일이 있어 거기에 갔다가 좀 알아보았던적 있소. 담당군의가 하는 말이 수술시에 피를 많이 흘렸다는거요.》

《피를 많이 흘렸다구요?》

《그만큼 수술이 어려웠다는거요. 여러명의 간호원들과 군의들까지 피를 바쳐가며 수술을 끝냈지만 그 후과야 어디 가겠소.

동무도 아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전과 달리 수혈용피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고있소. 우리 군의소사정도 다를바 없소. 올해초 지뢰사고로 중상을 당한 병사를 긴급처치할 때도 군의소전원이 떨쳐나서 자기의 피를 바쳤소. 물론 이런 문제는 군의국에서도 심각히 론의되고있으니 곧 대책이 취해질거요.》

지인선은 한동안 잠자코 있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듣고보면 우리 용일동무한테는 절대적으로 피가 모자란다는 소린데… 군의소장동지, 이제라도 피를 보충해주면 되지 않습니까?》

군의소장은 놀란듯 지인선을 마주보았다.

《어디서? 받아올데라도 있소?》

《저의 몸에는 뭐 피가 없습니까?》

군의소장은 어이없어 픽 웃었다.

《사실 그때 우리가 동무네 중대까지 찾아간건 그 병사의 건강문제가 련대당위원회에서까지 토의되였기때문이요! 하지만 동무가 때늦게나마 군의소를 찾아온 이상 우리를 믿소. 한 두어달 입원시키느라면 아무렴 우리가 그 병사의 몸상태를 회복시키지 못하겠소?》

《두어달이라구요? …》

지인선은 갑자기 펄쩍 뛰였다.

《단 하루라도 입원시킬수 없습니다!》

《아니, 이 동무가?! …》

《우리가 7련대칭호쟁취운동에 들어간걸 군의소장동지도 알고있지 않습니까! 기준을 돌파하기 위해 하루가 급한데 두어달이 다 뭡니까?》

군의소장은 그만 아연해하였다.

《이 동무 이젠 생각을 좀 고쳐먹었는가 했더니 안되겠구만! 환자를 이 상태로 만들어놓고 무슨 할 말이 있는가? 보자보자하니 7련대칭호쟁취운동을 동무네만 하는줄 아오? 군의소도 7련대군의관처럼 준비할 자기의 목표가 있단 말이요!》

《그렇다면 7련대군의관처럼 결심을 내려야지요. 혁명군대원들이 전투에서 쓰러진 전우를 위해 단지법을 쓸 때 그래 군의관이 훼방을 놓았단 말입니까? 통졸임통을 가지고 만든 쇠톱으로 썩어들어가는 다리를 자를 때 군의관이 안된다고 막아나서기라도 했는가 말입니다! 다 옆에서 도와…》

《동무! …》

군의소장이 더 참지 못하고 고함을 쳤다.

《동무 그런 식으로 이 군의소장을 걸고들 작정인가? 그때에는 그만한 약재가 없고 치료기구가 없어서 그렇게 한거지. 그래 그때 환경하고 지금이 같은가?》

지인선도 지려 하지 않았다.

《물론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명백히 말할수 있는건 우리가 그때와 꼭같은 고난의 행군을 하고있다는겁니다. 군의소장동지도 이자 수혈용피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고있는 오늘의 사정을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단지법과 같은 방법을 생각해냈다? …》

군의소장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동문 정치일군이고 난 군의일군이니 말로썬 안되지! 난 이 문제를 정식 정치부에 상정시켜 판결을 받을테요!》

지인선은 불에 덴 사람처럼 와들짝 놀라 의자에서 일어섰다. 막 방을 나서려는 군의소장의 두팔을 부여잡고 애걸하기 시작하였다.

《군의소장동지, 제가 지나쳤다면 제발 용서하여주십시오. 저의 말을 끝까지 들어달란 말입니다!》

《들어봐야 뻔하지, 동무하군 말로 안된다는데! …》

《군의소장동지, 제가 피를 뽑을 결심을 할 때에야 무슨 사정인들 없었겠습니까. 그 사정을 듣고 죽일놈, 살릴놈 하고 정치부에 상정시키란 말입니다!》

지인선의 사정이 하도 간절했던지 군의소장은 주춤거렸다. 성이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씨쁘등히 의자에 도로 주저앉았다.

《그래 무슨 사정이요?》

지인선은 군의소장과 마주 앉으며 한숨을 내쉬였다.

《군의소장동지도 알고계시지만 남용일동무는 우리 초소를 찾으신 최고사령관동지와 기념사진을 찍은 병사란 말입니다. 그 영광을 가슴에 품고 장군님만 그리던 병사이기에 새해 설날 그런 소행을 발휘할수 있었던것입니다.

오중흡7련대칭호쟁취운동이 선포된 후 온 련대병사들이 남용일동무를 알게 되였고 자기들도 그런 정황에서 그렇게 행동할것을 다짐하고있습니다. 그런데 그처럼 모범으로 평가된 병사가 부상당한 후과로 기준돌파에서 뒤꼬리를 차지하고있으니 이게 어디 그 동무 일개인에 한한 문제입니까!

만약 남용일동무가 장기치료를 받는 경우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기력이 왕성한 병사도 기준을 돌파하기 위한 훈련을 두고 하루를 급해하는데 남용일동무의 경우에는 도저히 다른 동무들을 따라잡을수 없게 됩니다.

군의소장동지, 남용일동무에게 장기치료를 요구한다는건 오중흡7련대칭호쟁취운동의 명단에서 제명시키라는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 후과를 생각해보십시오. 온 련대병사들의 선망의 대상으로 된 군인이 만약 오늘의 7련대대오에 서지 못한다면 모두들 얼마나 실망하고 섭섭해하겠습니까. 또 그런 병사 하나 일으켜세워주지 못한 이 정치지도원은… 무슨 낯으로 사람들앞에 나설수 있고 무슨 자격으로 오늘의 7련대대렬에 들어설수 있겠습니까. 지휘관이 있어 병사들이 있는것이 아니라 병사들이 있어 지휘관이 있다는 장군님의 당부는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군의소장동지, 제발 부탁인데 소문을 내지 말고 저에게서 한 2백그람만 뽑아주십시오. 저의 피형은 용일동무와 꼭같은 B형입니다. 수혈도 해주고 온 중대가 달라붙어 보양도 해준다면 군의소에 입원시키지 않고도 얼마든지 회복시킬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군의소장은 한동안 아무말없이 고개를 수굿하고 앉아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무뚝뚝히 입을 열었다.

《나도 뽑겠소. 정치지도원이 나서는데 군의일군이 가만 있을수 없지. 사실을 말한다면 그 병사의 몸상태에선 수혈이상 더 좋은 방법이 없소!》

지인선은 그만에야 군의소장의 두손목을 덥석 부여잡았다.

《군의소장동지, 고맙습니다! 하지만 군의소장동지까지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야 힘이 넘쳐나는 몸인데 한번 뽑았다고 무슨 일이 나겠습니까.

군의소장동지, 당장 시작합시다!》

군의소장은 무슨 생각때문인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런 일은 급하게 시작하는게 아니요. 군의들이 협의도 하고… 그러니 래일 이 시간에 그 병사와 함께 다시 와주오.》

지인선은 미심쩍은 눈길로 군의소장의 거동을 살폈다.

《혹시 정치부에 상정시켜 날 난처하게 만들자는건 아닙니까?》

군의소장은 너그럽게 웃었다.

《아까 한 말은 취소요. 동무의 심정을 잘 모르고 한 소리니 널리 리해해주오.》

지인선은 그만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고마와 군의소장의 손을 다시한번 덥석 잡았다.

《군의소장동지, 그렇게 리해해주니 무어라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소릴, 환자들의 건강을 책임진 이 군의소장이 오히려 어떻게 인사를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소!》

지인선은 가벼운 마음을 안고 밖으로 나왔다.

야외휴식장의자에 풀기없이 앉아있던 용일이가 터벅터벅 걸어왔다.

지인선은 용일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용일이, 래일 한번 더 오자구.》

《예? …》

《동무 건강회복같은건 점적 한번이면 대번에 알아본다는거야.》

용일의 두눈이 놀라움으로 빛났다.

《그게 정말입니까?》

지인선은 싱긋 마주 웃었다.

《그런거 있다누만. 공연히 중대에서 걱정만 했어!》

그들은 군의소마당을 나와 중대로 향했다.

얼마쯤 걸었을 때 용일이가 주저주저하며 말을 건넸다.

《정치지도원동지, 앞으로 중대가 모인데서 절 너무 내세우지 말아주십시오.》

《그건 왜?》

《강행군에서 졸도한 제 처지에 자꾸 내세워주면 동무들이 뭐라 하겠습니까?》

지인선은 그만 소리내여 웃었다.

《동무들이 뭐 어쩐다는거야. 그 몸으로 강행군에 참가할 결심을 내린것만 해도 대단한거지. 동무가 판정기준을 돌파하기 위해 아글타글 애쓰는걸 옆에서 모르는줄 알아?

련대에서 조직한 월판정결과를 놓고봐도 그렇지…》

지인선은 용일의 개별성적을 놓고 신심을 주기 시작하였다.

《사격에서 〈우〉, 이건 대단한거야. 기계체조에서는 〈급〉, 이건 수술자리가 결리여 올려채기를 바로 못했기때문이지. 지형학은 필답시험에서 합격, 역시 좋아. 대렬동작과 수기신호도 〈우〉, 수영, 강행군, 장애물극복은 몸이 회복된 다음 따라잡으면 되는거구. …

이건 뭘 말해주는가! 몸만 정상상태로 돌아서면 모든 조항에서 〈우〉의 성적을 쟁취할수 있다는거야. 그러자면 어떻게 해야 하겠나. 동무들이 정성들여 만들어준 삽주탕, 만삼탕 같은것도 꼭꼭 제시간에 먹고 스스로 신체단련을 해야 하는거야.

문제는 꼭 회복하고야말겠다는 결심이지. 래일 점적까지 하고나면 동무의 몸은 얼마든지 정상상태로 돌아설수 있어!》

갑자기 등뒤에서 들려오는 승용차경적소리에 그들은 도로 한옆으로 비켜섰다. 련대장의 승용차임을 알아보며 약속이나 한듯 거수경례를 했다.

승용차는 바로 그들옆에서 멈춰섰다.

차문이 열리며 련대장의 얼굴이 불쑥 나타났다.

《타라구! …》

지인선은 용일이와 함께 승용차뒤좌석에 올랐다. 승용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조무진련대장은 처음 남용일을 돌아보더니 다음은 지인선에게 물었다.

《군의소에 갔다오는 길이요?》

《예. …》

《군의소에서는 어떤 대책을 취하겠다오?》

《우선 래일 점적을 하기로 했습니다. …》

《점적? …》

순간 지인선은 아차, 실수했구나 하는 생각이 펀뜩 들었다. 자기가 내뱉은 점적이란 용어에 서둘러 상표를 달기 시작하였다.

《군의소에서는 1차적으로 포도당을 점적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다음엔? …》

련대장이 뒤로 고개를 돌렸다.

지인선은 모든것을 꿰뚫어보는듯 한 그 눈길에 황황히 입을 열었다.

《우선 포도당을 점적하고 그다음 상태를 보기로 했습니다!》

련대장은 무엇인가 불만스러운듯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 포도당이란게 상태를 관찰할만큼 효력을 가져온다던가? 그것도 래일로 하기로 했다. 하는 노릇이란! …》

×

지인선은 군의소침대우에 반듯이 누워있었다. 점적관을 타고 자기의 피가 보존용액이 들어있는 수혈병으로 흘러들어간다는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만큼 그의 마음은 안정되여있었다.

간호원과 함께 치료대앞에 앉아있는 군의가 이따금 그에게 별다른 증상이 없는가고 묻군 하였다. 지인선은 그때마다 가벼운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 이미전에 이걸 생각 못했던가. 그랬더라면 지금쯤 용일은 건강한 몸으로 훈련대오에 섰을게 아닌가! …

별안간 군의소앞마당으로 들어서는 군용승용차동음이 들려왔다. 군의소장인듯 차를 마중하여 급히 복도를 걸어가는 발자욱소리가 뒤따라 들렸다. 이어 밖에서 서로 주고 받는 말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왔다.

지인선은 저으기 긴장해지기 시작하였다. 혹시?! …

두사람이 복도를 따라 이쪽으로 걸어오는 발걸음소리… 아닐세라 문이 가볍게 열리며 조무진련대장이 군의소장과 함께 들어섰다.

순간 지인선은 황급히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우려했던 일이 끝내 닥쳐오고야말았던것이다.

조무진이 군의에게 무뚝뚝히 물었다.

《얼마를 뽑았소?》

《90그람을 조금 넘어서고있습니다.》

《중지하시오!》

지인선은 항변하듯 련대장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련대장의 눈길은 간호원에게 가있었다.

간호원은 군의의 얼굴을 얼핏 훔쳐보다가 련대장의 눈길과 다시 마주치자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지인선의 팔에서 주사기바늘을 뽑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약솜을 가져다대고는 팔을 굽히게 하였다.

지인선은 치료대우에서 벌떡 일어나앉았다.

《련대장동지, 이건 뭡니까?》

조무진련대장은 빈정대듯 웃었다.

《포도당을 점적한 다음 상태를 본다? 어쩐지 치료방법이 궁여지책이다 했더니. … 이 련대장이 그런 수낮은 거짓말에 속아넘어갈것 같은가!》

지인선은 그만 저도 모르게 허구픈 웃음을 웃었다. 생각만 해도 기가 막힐노릇이였던것이다.

조무진은 지인선의 그 거동에 더욱 화가 난듯싶었다.

《울어도 씨원치 않겠는데 웃어?

간호원, 이 정치지도원을 치료대에서 끌어내오!》

지인선은 거의 애원에 가까운 눈길로 조무진을 마주보았다.

《련대장동지! 거짓말한건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너무합니다!》

《그래도 무슨 할말이 있다구! 간호원, 못 들었는가?》

간호원이 부드럽게 지인선에게 말했다.

《정치지도원동지, 어서 치료대에서 내리십시오!》

지인선은 간호원과 련대장을 번갈아 바라보다말고 어쩔수 없이 치료대에서 내렸다.

련대장이 군의소장을 흘겨보고있었다.

《갓 살림을 펴고 재미를 보는 사람인데 동무넨… 힘이 딸리면 색시가 좋아하겠소?》

조무진은 와락와락 군복상의를 벗어 간호원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는 누가 어쩔사이 없이 치료대우에 닁큼 올라 반듯이 누웠다.

《나머지는 나한테서 뽑소. 정치지도원이 병사들을 위해 피를 바치는데 머리 큰 련대장이 보고만 있어서야 안되지.》

군의소장이 당황히 치료대앞에 다가섰다.

《련대장동지, 련대장동지가 이러면 우리 군의일군들이 뭐가 됩니까?》

조무진은 누운채로 웃었다.

《동무말대로 한다면 련대장은 또 뭐가 되겠소? 피형이 O형이길 다행이지. 련대장이 맹랑하게 다시 일어난다면 그때에야 련대장이 아니지. 뽑소. 그리고 저기 서있는 서투른 거짓말쟁이는 어서 빈방에 데리고 가서 안정시키시오!》

누구도 까딱하지 않자 조무진은 버럭 어성을 높였다.

《못 들었소?》

군의소장은 간호원에게 지인선을 눈짓해보였다.

간호원이 지인선의 곁으로 다가왔다.

《정치지도원동지, 어서 가십시다.》

지인선은 또 어쩔수 없이 간호원을 따라 방을 나섰다.

간호원은 그를 침대 하나만 있는 어느 빈 방에 데려다주었다.

홀로 남자 지인선은 침대에 벌렁 누웠다. 련대장까지 피를 뽑게 했으니 이게 어디 된 일인가! 더 생각하고싶지 않아 두눈을 감고있느라니 온몸이 노근해지며 졸음이 오기 시작하였다. 오전까지 훈련에 참가하였던것이다. …

지인선이가 그 무슨 기척에 두눈을 떴을 때에는 천정의 전등이 켜져있고 창문쪽은 캄캄하였다. 너무 오래 잤다는 놀라움에 벌떡 일어나 앉으니 출입문쪽에서 군의소장이 다가오고있었다.

《깨여났구만! …》

《저, 련대장동진? …》

《피를 뽑자마자 인차 떠나갔소. 동무를 집까지 태워다주라고 승용차는 마당에 세워두었소.》

지인선은 거퍼 물었다.

《우리 용일동문 어떻게 되였습니까?》

군의소장은 빙그레 웃었다.

《수혈이 성과적으로 진행되였소. 방금전까지 여기 앉아있다가 나갔소.》

《그럼? …》

《구태여 숨길것도 없지. 병사도 다 알고있소. 눈물까지 흘리더군.

그런데 말이요. …》

군의소장은 지인선의 동의를 바랐다.

《이왕 군의소문턱을 넘어선바엔 그 병사를 일주일간만 입원시킵시다. 우리도 좀 더 노력해보겠소.》

지인선은 그 요구마저 거절할수 없어 침대에서 내려섰다.

《군의소장동지, 고맙습니다. 그럼 전 돌아가겠습니다.》

그가 밖으로 나오자 승용차곁에서 서성거리던 운전사가 반기며 마주왔다.

《아까 들어가보니 어찌나 깊이 잠들었던지. 하지만 련대장동지가 절대로 먼저 깨우지 말라고 당부했기에 지금까지 기다렸습니다.》

지인선은 미안한 웃음을 지었다.

《안됐구만, 하지만 이젠 가보오. 난 걸어가겠소.》

운전사가 펄쩍 뛰였다.

《정치지도원동지, 저의 생각도 해주어야지요. 그랬다간 련대장동지한테 혼납니다!》

뒤따라 나온 군의소장이 운전사의 편을 들었다.

《지금까지 기다려온 그 성의를 봐서라도 타고가야지.

중대에 가서도 며칠간은 몸조리를 잘하고…》

지인선은 곧 군의소장과 작별인사를 하고 승용차에 올랐다.

승용차는 인적없는 길을 거침없이 달려 잠간사이에 그의 집앞까지 왔다.

운전사와 헤여진 지인선은 천천히 집마당으로 들어섰다. 가져다놓은지 보름밖에 안되는 강아지가 낑낑 반기며 그의 다리에 감겨돌아갔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부엌문이 열리며 선희의 밝은 얼굴이 나타났다.

《강아지가 얼마나 귀엽게 노는지 몰라요. 헌데 우리 녀자들 보고만 짖어서 야단났어요. 군복입은 사람이면 무턱대고 졸졸 따르고요.》

《허허, 그래?》

지인선은 강아지를 쓰다듬어주고나서 집안으로 들어섰다.

선희는 아무것도 모르는지라 남편의 군모며 군복을 받아 옷걸이에 걸며 흥에 겨워 말했다.

《우리 가족들이 쌓은 로에서 소석회가 나왔어요. 얼마나 잘 구워졌는지. 석비레에 섞어 블로크를 찍어보았는데 점성도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그렇소?! …》

지인선은 반색을 했다.

《그럼 이제부턴 마음놓고 병영을 개조하게 됐군. 선희, 고맙소! …》

《아이참, 인선동지두! …》

선희는 얼굴에 웃음을 머금은채 부엌으로 나갔다.

지인선은 또 한가지 문제가 풀렸다는 기쁨으로 하여 어깨가 홀가분해지는듯싶었다. 판정조항에는 병영을 일신시키기 위한 사업도 들어있었는데 제일 걸리는것이 세멘트였다. 그 걱정으로 골머리를 앓고있을 때 선희가 병영주변에 흔한 석회석을 구워 석비레와 섞으면 2층집도 능히 지을 강도높은 블로크를 찍을수 있다고 장담해나섰다. 2층집을 지을 일은 없지만 그것이 성공되고보니 건설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대성요업공장에서 일해온 안해에 대한 긍지감을 어쩔수 없었다.

선희가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

《오늘 저녁엔 이런 떡을 좀 만들어보았어요.》

그 소리에 밥상을 내려다보던 지인선은 저으기 놀랐다. 밥대신 수수떡이 놓여있었던것이다.

《수수쌀이 어데서 났소?》

선희는 송구스러운 눈빛으로 남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건 송기떡이예요. …》

《송기떡? …》

지인선은 다시금 떡그릇에 눈길을 주었다. 지금까지 송기떡을 먹어본적이 없다. 말로만 들어온 송기떡이다. 언젠가 어머니는 전후복구건설시기에 쌀이 귀해서 소나무껍질에 밀가루나 강냉이가루를 섞어 떡을 만들어 먹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고보면 요 며칠사이 선희와 함께 밥상을 마주앉는 일이 드물어졌다는 생각이 피끗 들었다. 출근이 바쁠테니 먼저 하라느니 혹은 퇴근을 기다리다 먼저 했다느니 하며 선희는 함께 앉을 기회를 피했었다. 혹시 집에 쌀이 떨어진게 아닐가?

선희가 조심히 그 생각을 깨쳤다.

《인선동지, 이런 떡을 좋아하지 않는게 아니예요?》

지인선은 서둘러 고개를 가로저었다.

《선희, 그런건 아니요. 하지만 사실대로 말해주오. 우리 집에 쌀이 떨어졌지?》

선희는 곱게 눈을 할겼다.

《남자들은 그런데 신경을 쓰는게 아니예요.》

지인선은 그만 면구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선희가 저가락에 꿰여 입에 넣어주는 떡을 뭉텅 베여물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쉽게 물러가지 않았다. 쌀이 떨어진것이 분명했다. 요즘은 군인들에게 공급되는 쌀도 3일내지 2일에 한번씩 실어온다. 그러니 군인가족들의 경우에는 그 보장이 더 늦어질것은 뻔하였다.

인선은 우물우물 씹은 떡을 꿀떡 삼키고나서 섭섭한 어조로 말했다.

《선희, 앞으로 죽을 먹어도 함께 먹고 설사 굶는다 해도 함께 굶자구. 지금 온 나라가 고난의 행군을 하며 허리띠를 조이는데 내가 그걸 리해하지 못할가.》

선희는 그만에야 고개를 숙였다. 소리없이 흘리는 눈물이 한방울, 두방울 밥상우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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