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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넋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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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1-08-16 21:36 조회3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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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박진건대장은 북부지대의 야전숙소마당에서 서성거리며 김정일동지의 접견을 기다리고있었다. 얼핏보면 고즈넉하게만 느껴지는 산촌의 이 수수한 야전숙소는 은근한 긴장속에 붐비고있었다. 지금은 군수공업을 맡아보고있는 항일투사 김철만이 그이의 접견을 받고있었다.

마가을은 산천에 자기의 마지막흔적을 남기고있었다. 메마르고도 차거운 바람속에서도 소나무, 잣나무, 전나무들은 여전히 푸른 자태를 잃지 않고있지만 단풍나무, 밤나무, 참나무들은 울긋불긋 차려입었던 화려한 단장을 어느새 벗어버리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보이고있었다.

박진건은 미구에 닥쳐오고야말 겨울을 예감하며 이제 곧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 올리게 될 래년도 총정치국사업방향과 관련한 문건을 생각해보기 시작하였다.

최근 미제는 현대전에 관하여 새롭게 세운 전략을 공공연히 떠들고있다. 지난 시기 전쟁은 수백수천만의 쌍방군사인원이 피를 흘리며 벌린 대결이였다면 지금 전쟁에서는 상대측의 수뇌부를 제거하는것을 기본전쟁목표로 내세우고 거기에 총력을 집중해야 한다는것이다.

엄중한것은 적들이 최고사령관동지의 현지시찰일정과 단위들에 초점을 박고있는것이였다. 정찰위성, 정찰기를 포함한 최첨단수단들을 리용하는 동시에 요원들을 직접 파견하기도 하였다. 실례를 들어 최고사령관동지의 102련대에 대한 현지시찰후 외국인관광객의 탈을 쓰고 그곳 위수구역에 기여들었다가 체포된 첩자를 놓고도 말할수 있었다.

조성된 정세는 혁명의 수뇌부를 해치려는 적들의 책동에 대처하여 혁명적경각성을 더욱 높이며 모든 작전과 전투를 수령사수전으로 일관시키고 혁명의 수뇌부두리에 천겹만겹의 성새를 쌓을것을 절박히 요구하고있었다.

담화가 끝났는지 김철만이 밖으로 나오고있었다.

박진건은 투사에게 거수경례를 하였다.

김철만은 박진건을 알아보며 반기였다.

《참, 총정치국에서 장군님께 올린 문건을 나도 보았소. 정기휴가군인들의 반영자료 말이요.》

박진건은 군수공업을 맡아보는 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바람에 어리둥절하였다.

투사는 짐짓 웃음을 지었다.

《거 근위418련대에 있다는 사관 말이요, 어머니가 내가 아는 공장에 있더구만!》

박진건은 그제야 짐작되여 어설픈 미소를 지었다.

《예, 그런걸 난! …》

《어서 들어가보오.》

김철만은 곧 자기 승용차가 있는데로 걸어갔다.

박진건은 부관의 안내를 받으며 그가 조심히 열어주는 문을 지나 집무실로 들어섰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리를 권하시고나서 야전탁 한쪽에 놓여있는 문건을 펼쳐드시였다.

《동무들이 올려보낸 정기휴가를 갔다온 군인들의 반영자료입니다.

일부 일군들이 그처럼 우려하였지만 우리 군인들은 후방의 엄혹한 현실에 비관한것이 아니라 더욱 큰 신심과 적들에 대한 적개심을 안고 부대로 돌아왔습니다.》

박진건도 가벼운 마음으로 그이를 우러렀다.

《최고사령관동지, 이번 정기휴가문제는 적들의 심리전에 대처한 우리의 승리이기도 합니다.》

《옳습니다. …》

그이께서는 문건의 한곳을 가리켜보이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여기 강계에 고향을 둔 한 군인의 반영자료도 있습니다. 그 군인은 고향의 현실과 가정사정이 심각했음에도 불구하고 항일의 유격구정신으로 일떠선 그곳 공장 로동계급과 어머니의 모습에서 힘을 얻고 휴가도중 부대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박진건은 문건을 종합하며 이미 느꼈던 자기의 소감에 대해 말씀드렸다.

《병사도 병사이지만 어머니가 훌륭한 녀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찌기 남편을 잃은 외로운 몸이고 또 현재 건강도 좋지 못하지만 자기가 다루는 기대앞을 떠나지 않고있다고 합니다.》

그이께서는 수긍하시였다.

《그래서 이자 김철만투사동지를 만난 자리에서 그 녀인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건강도 관심해줄데 대해 부탁했습니다. 그런 성실한 로동계급이 있어 우리 군수공업이 억세게 전진하고있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럼 총정치국사업을 들어봅시다.》

《최고사령관동지, 공훈합창단에서 노래 〈오늘도 7련대는 우리앞에 있어라〉를 형상하였습니다. …》

그이께서는 무척 기다리신듯 반색하시였다.

《그러니 공연준비가 다되였다는겁니까?》

《예, 합창 〈오늘도 7련대는 우리앞에 있어라〉를 포함하여 여러 종목들로 공연을 준비하였습니다. 창작가들과 배우들은 한시바삐 최고사령관동지를 모셨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그이께서는 쾌히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안변청년발전소건설중간총화에서 제기된 문제와 여기 군수공장들의 생산문제를 처리하고는 곧 평양에 올라가겠습니다.

참, 일전에 가사를 고쳐주었는데 선률과 밀착이 잘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박영순동무와 배우들의 반응은 어떤지…》

박진건은 잠시 창조현장에서 박영순을 만났던 때를 돌이켜보며 말씀드리였다.

《박영순동무는 장군님께서 자기의 노래를 시대의 나팔수인 공훈합창단에서 형상하도록 해주신데 대해 감격을 금치 못해하였습니다. 그리고 노래가 안고있는 주제사상의 심오성으로 하여 형상수준도 여느때없는 높은 열의속에서 보장되였습니다.》

《한번 만나봤으면 좋겠는데…》

무엇을 그려보시는듯 하는 그이를 우러르느라니 박진건은 예술의 최전성기가 펼쳐지던 1970년대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만수대예술단은 김정일동지의 예술외교전략에 따라 우리와 친선적인 나라들뿐아니라 서방과 지어 적대국에까지 들어가 공연활동을 벌렸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은 만수대예술단을 가리켜 일명 《움직이는 대사관》이라고 하였다.

우리와 우호적이며 쁠럭불가담운동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있던 알제리에 가서 공연할 때였다.

우리의 예술단이 파문을 일으키고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 나라 국가수반이 공연을 볼 결심을 내렸다.

이 소식을 전해오자 박영순은 국가수반인 후아리 부메디엔에 대한 노래를 창작하여 공연무대에 올릴것을 제의하였다.

일부 지휘성원들이 고개를 기웃거리였다.

시간은 하루저녁밖에 없는데 그것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하는것이였다.

그러나 박영순은 단숨에 《후아리 부메디엔의장에게 영광을 드리네》라는 가사를 훌륭히 창작하였다.

여기에 힘을 얻은 작곡가가 곡을 붙여 노래는 하루밤사이에 나무랄데없이 형상되여 그 이튿날 공연무대에 올랐다.

공연이 성공적이였다는것은 더 말할나위 없었다. 그 나라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것이다.

이처럼 박영순은 김정일동지의 구상과 뜻을 받드는데서 자기의 재능과 정열을 남김없이 바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도 그런 박영순을 돌이켜보신듯 생각깊은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형상도 높은 수준에서 진행되였다니 됐습니다. 최근에 나온 노래들중에서 가장 큰 성과작의 하나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박영순동무가 오늘의 시대정신을 잘 반영하였습니다. 현실체험을 떠나보내길 잘했습니다.》

박진건은 비로소 박영순의 노래창작동기와 함께 김화준중장과 련결된 현실체험경위를 말씀드렸다.

《…그때 박영순동무가 현실체험지를 418련대로 택한데도 리유가 있었습니다. 418련대 정치위원이 김화준중장동무의 아들이였습니다.》

그이께서는 반가움을 금치 못해하시였다.

《중장동무에게 그런 아들이 있습니까?》

박진건은 마음이 즐거워져 덧붙여 말씀올렸다.

《예, 최전연에 시집간 딸도 한명 있습니다. 바로 언젠가 보고드렸던 대성요업공장의 세명의 처녀들중의 한사람이였습니다.

저도 후에 안 일이지만 그때 최고사령관동지께서 해맞이초소에서 만나주신 중대정치지도원이 중장동무의 사위라는겁니다.》

《음! …》

그이께서는 못내 감복하신 표정이시였다.

《오늘날 새 세대들의 지향과 소행은 저절로 이루어지는것이 아닙니다. 로명욱동무한테서도 보고받았지만 418련대에서 오중흡7련대를 따라배우는 사업이 그 어디보다 활발히 진행된데는 중장동무가 자식들에게 준 영향도 있었을것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무엇인가 생각하시다가 박진건에게 이르시였다.

《이렇게 합시다. 이번 공훈합창단공연에 김화준중장동무와 그의 아들인 418련대 정치위원을 초대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들은 응당 초대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박진건은 그이의 뜻밖의 말씀에 감동을 금치 못해하며 각 부서간 협의회를 걸친 문건을 드렸다. 그이께서는 문건을 받아 주의깊게 한장씩 펼치기 시작하시였다. 어떤 대목에 가서는 줄곧 시선을 옮길줄 모르시던 그이께서는 마침내 마지막장을 덮으시였다.

방안에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박진건은 초조히 그이를 우러렀다.

그이께서는 무엇때문인지 문건을 다시 끄당겨 표제를 읽으시였다.

인민군대에서 오중흡7련대의 사령부보위정신으로 무장시키기 위한 지도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고개를 드시였다.

《이 지도서가 1970년대에 오중흡동지를 따라배우기 위해 만들었던 문건과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어떤 혁신적인것이 있는가 하는것입니다.》

박진건은 한순간 당황하였다. 이런 질문은 전혀 예견 못했던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고개를 가로저으시였다.

《내용상 수뇌부옹위의 요구만을 높이 제기한것뿐입니다.》

박진건은 침착히 말씀드리기 시작하였다.

《최고사령관동지! 최근 현대전에 관하여 미국이 새롭게 세운 전략은 우리로 하여금 보다 경각성을 높이지 않을수 없게 하고있습니다. 적들은 이미 체험을 통하여 전면적인 제재와 봉쇄로는 우리 제도를 전복킬수 없다는것을 자인하고 수뇌부에 대한 군사작전으로만이 저희들의 목적을 달성할수 있다고 보면서 군사연습도 은밀히 이 방향으로 나가고있습니다.

때문에 총정치국은 모든 장병들을 수뇌부옹위에 관한 사상으로 각성시키고 작전조직과 전투행동을 포함한 군사사업을 여기에 지향시킬 필요가 있다고 보면서 이 문건을 작성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랬다? …》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겨 문건을 다시 보시다가 박진건의 견해를 부정하기 시작하시였다.

《바로 되자면 동무는 우리의 투쟁사에서 전형으로 될수 있는 오중흡7련대를 두고 어느 한 국면이 아니라 전반적인 인민군대사업을 추켜세울수 있는 하나의 시대정신을 창조하는데로 문제를 끌고갔어야 했을것입니다. 더우기 인민군대를 혁명의 주력군, 사회의 본보기로 내세우고있는 오늘의 시점에서 시대정신을 창조하는 문제는 혁명의 중요한 요구로 나서고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건을 보면 인민군대의 전반적현실을 떠나 사상사업을 국면적인 문제에 인위적으로 복종시킨듯 한감을 금할수 없게 합니다. 실무화되였다고 할가? 방법론도 없고…》

그이께서는 박진건을 바라보시였다.

박진건은 더 말씀드릴수 없었다. 자인하지 않을수 없는것은 요구는 크게 내세웠지만 사상사업의 견지에서 볼 때 방법상 혁신적이 못되는것이다. 더우기 엄중한것은 우리의 투쟁사에서 전형으로 내세울수 있는 오중흡7련대를 따라배우기 위한 사업을 실무화하였다는것이다.

그이께서는 거의 질책에 가까운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박진건동무는 이젠 나와 함께 일한지도 퍼그나 되였는데 사상사업에서 형식주의… 언제면 그 틀에서 벗어나겠습니까?

동무들은 쩍하면 옹위요 사수요 하며 만세를 부르고 구호를 웨치기를 곧잘 하는데 이렇게 하는것이 사상사업이라면 박진건동무의 사업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런것을 제일 싫어한다는것을 동무는 이미 잘 알고있기때문입니다.

오중흡7련대에 대해서는 이미 102련대시찰때 이야기된바 있으니 일을 전개하겠으면 그 방향에서 더 연구하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그이의 마지막말씀의 어조는 거의 엄하다 할 정도로 단호하시였다.

평양으로 돌아오는 승용차안에서 박진건은 홀로 한숨을 쉬였다.

돌이켜보면 나이 60고개를 넘어선 오늘까지 줄곧 인민군대 정치일군으로 일해왔다. 자기에게 사상사업에 대한 남다른 기질이 있었던가? 아니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를 자주 몸가까이 불러주시고 사상사업의 묘리와 방법을 걸음걸음 일깨워주시였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까지 그이께서 바라시는 높이에 따라서지 못하고있다. 그것은 과연 무엇때문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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