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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영원한 넋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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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1-08-12 18:30 조회3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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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중대교양실에 경계근무성원만 내놓고 중대전원이 다 모였다. 신금성의 고향소식발표모임이 시작된것이다.

연탁에 나선 분대장 신금성은 호기심어린 눈들을 빛내이는 동무들을 둘러보며 선뜻 말머리를 떼지 못하였다. 고향에 머무른 날은 며칠되지 않았지만 받아안은 충격이 너무도 컸던것이다. 게다가 현실체험을 나와있는 만수대예술단 단장까지 들어서고보니 더욱 말문을 열기 힘들다. 단장은 지금 중대장과 함께 뒤자리에 나란히 앉아 이쪽을 생각깊은 눈길로 지켜보고있다.

중대정치지도원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격려해주었다.

《금성동무, 뭘 힘들게 생각할게 없소. 고향에서 보고 들은것을 있는 그대로 차례차례 쭉 이야기하면 되는거지.》

신금성은 그제야 정신이 펀뜩 드는듯싶었다. 하긴 그래, 그렇게 하면 되는거지. 그러자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하였다.

《동지들!…》

그는 비로소 입을 열었다. 정작 이야기를 시작하자 마음이 안정되여가기 시작하였다. 그의 눈앞으로는 고향땅에 첫 발을 내디디던 그 순간부터 자신이 직접 체험한 가지가지의 생활화폭들이 방불히 펼쳐지기 시작했다. 길거리에서 본 녀맹돌격대, 그들에게서 풍겨오던 진한 화장품냄새, 앓으면서도 직장에 나간 어머니, 밥상보를 젖혔을 때 보았던 가슴아픈 광경… 그다음 어떻게 했던가? 어머니를 찾아가볼 생각에 벌떡 일어났댔지!…

어머니를 찾아 문을 열고 나서려던 신금성은 주춤 그 자리에서 굳어졌다. 복도계단을 따라 올라오는 낯익은 모습을 가려보았던것이다.

그가 먼저 찾기도 전에 전지를 든 금주가 뽀르르 어머니를 마중하며 재깔댔다.

《엄마, 오빠가 왔어! 이자 방금! 금자라랑 내거 손거울이랑 가져왔다.…》

《오빠라니?!…》

금성은 어머니를 향해 몇걸음 마주 갔다.

《어머니!…》

《금성아!…》

그들은 서로 두손을 마주 잡으며 한동안 얼굴을 마주보았다.

금성의 가슴은 쇠쪼각으로 훑어내리는듯 아팠다. 푹 꺼진 볼, 잔주름이 더 많아진 얼굴, 정녕 이렇게까지 수척해질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군사복무의 나날 힘들 때에도 기쁠 때에도 늘 그려보군 하던 어머니의 은근한 눈길은 변함없었다. 아들을 만난 기쁨때문인지 더욱 그윽히 빛나고있었다.

《어떻게 된거냐, 이렇게?…》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끄당겨 마주잡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휴가왔어요. 어머니가 앓고있다는 사실을 알고 지휘관동지들이 1차로 보내주었어요.》

어머니는 짐작되는것이 있는듯 금주가 들어간 부엌쪽을 얼핏 보고나서 눈빛을 흐렸다.

《금주가 끝내 편지를 했더구나, 말렸는데도…》

《어머니, 무슨 말씀을… 그런데 앓으시면서 이렇게 직장에 나가면 어떻게 해요? 》

어머니는 아들과 마주앉으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내 병은 그저 그런거다. 약을 쓰고 휴식을 한다고 하여 나을 병은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직장에 나가면 아픔도 덜해지고 정신도 맑아지는것 같구나. 모두들 옆에서 도와주고… 금주는 아홉살이라고 하지만 밥도 잘 짓고 어머니의 일손을 제법 잘 돕는단다.》

그 말을 확인해주듯 부엌에서 금주의 쌀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금성은 그때에야 생각난듯 금자라가 든 버치를 끌어당겼다.

《금자라예요. 우리 중대장동지가 몸보신에 좋다면서 어머니에게 드리라고 보냈어요.》

《중대장동지가?!…》

어머니는 놀란듯 아들을 쳐다보았다.

금성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우리 지휘관동지들은 다 이렇게 인정이 깊어요. 친형들같아요.》

어머니는 옷자락을 들어 눈굽을 훔치고나서 한숨을 내쉬였다.

《내가 지휘관동지들한테까지 걱정을 끼쳤구나.》

어머니는 금자라들이 저저마다 머리를 추켜드는 버치를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정말 고맙구나. 너의 지휘관들의 마음에 보답하자구 해도 내가 일을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뿐이구나.…》

어머니의 얼굴에는 깊은 생각이 어려있었다.

저녁식사를 한 후 그들은 한자리에 나란히 누웠다. 금주는 피곤한지 오빠의 팔을 베고 벌써 다랑다랑 코까지 가볍게 골며 꿈나락에 잠겨들었다. 그러나 금성은 쉬이 잠들수 없었다. 어머니도 역시 잠들지 못하고 자기쪽으로 돌아누워 그의 장알진 손을 꼭 잡고 어루쓰는것이였다.

문득 역에서 내려 집으로 오며 본 녀맹돌격대생각이 나 입을 열었다.

《참, 어머니, 오늘 기차에서 내려 집으로 오면서 보자니 녀맹돌격대원들이 화장냄새까지 풍기면서 건설장에서 돌아오는게 아니겠어요. 아, 거리가 들썩하게 웃고 떠들면서…》

금성의 이야기를 듣던 어머니는 즐겁게 웃었다.

《사실 그럴만한 일이 있었단다.…》

《그럴만한 일이라니요?》

어머니얼굴은 한결 더 밝아진듯싶었다.

《녀맹돌격대를 처음 무었을 때 사실 말이 아니였단다. 머리단장, 옷단장… 생활이 어렵다나니 몸치장을 할 생각을 잊었던거다.

녀맹돌격대장은 너무 기가 막혀 〈그래가지고 우리가 무슨 돌격대인가요. 오히려 사람들의 동정의 대상으로밖에 되지 못할거예요. 우리 돌격대원이 되기 전에 건설장의 꽃이 되자요.〉라고 호소했다누나.

대장은 그날로 아들결혼식을 위해 준비하여두었던 례장감을 모두 화장품으로 바꾸었단다.

그 다음날부터 모두 모여앉아 곱게 화장을 하고 가창대마냥 떠들썩 노래까지 부르며 거리를 돌아 건설장으로 갔단다. 그 모습들이 사람들에게 준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모른다. 그래서 지금도 녀맹돌격대에서는 새로 들어온 녀맹원들에게 화장품부터 안겨주군 한단다.

왜 그렇게 하겠니. 우리의 생활이 어두워진다면 좋아할건 놈들뿐이 아니겠느냐!》

금성은 컴컴한 천정을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헛나발을 일삼는 원쑤들에 대한 증오로 가슴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이놈들아, 뭐 우리 사회주의가 질식되여 마지막숨을 몰아쉰다구? 천만에, 비록 어렵고 힘들어도 내 고향 인민들은 네놈들의 머리우에 불벼락을 씌울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억척스레 투쟁하고있다! 고향사람들에 대한 뿌듯한 감정으로 가슴이 마냥 벅차올랐다.

이튿날 오후였다. 금성은 아빠트 뒤마당에서 얼마 안되는 석탄을 이겨 구멍탄을 빚었다. 그가 거의 일손을 끝내가는데 난데없이 경쾌한 노래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금성은 바삐 뒤거두매를 하고 앞마당으로 나왔다. 뜻밖에도 인민반사람들이 한데 모여 춤을 추고있었다.

앞가슴에 꽃을 단 청춘남녀들이 있는것으로 보아 누구네 잔치를 축하해서 춤을 추는것 같았다.

축전지를 끼운 록음기에서 쿵짝쿵짝 음악이 울려나오고있었다.

사회주의는 우리거야

사회주의는 우리거야

우리 당이 붉은기로 지키여주는

사회주의는 우리거야

팔을 번갈아 너펄너펄 올렸다내렸다하며 제멋에 겨워 흥취나게 춤을 추는 늙은이들, 사뿐사뿐 발놀림에 맞추어 팔을 가볍게 휘저으며 우아한 률동을 펼치는 젊은 녀인들, 여기에 합세하여 아기작아기작 어른들의 춤을 흉내내는 어린이들…

춤판을 둘러싼 구경군들이 분위기를 돋구었다.

《좋다!》

《잘한다!》

결혼식을 축하해주러 찾아오댔는지 꽃다발을 들고 마당에 들어서던 젊은이들이 서로 눈짓해가며 춤판에 뛰여들었다. 그들까지 섞여들자 춤판은 더욱 고조를 이루었다.

금성은 한동안 멀찌감치에서 그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굶주리고 쓰러져 다시는 일어서지 못한다던 적들의 궤변과 달리 얼마나 굉장한 랑만인가!… 사람들은 고난과 시련속에서 질식된것이 아니라 그것을 디디고 굳세게 일어서서 소박하지만 여유넘친 생활을 펼치고있는것이였다.

그때였다. 춤구경을 하던 한 늙은이가 금성을 알아보고 반색을 하며 다가왔다. 어머니와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40여년을 선반을 다룬다는 최아바이였다. 엊저녁 어머니는 그 아바이가 때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며 만가동을 하다나니 기대앞에서 쓰러져 낮에 집에 실려왔다고 몹시 걱정했었다.

《금성아, 끌끌하게 번졌구나.》

최아바이는 인사를 하는 금성을 와락 끌어안으며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의 어머니가 가져다준 금자라로 보신탕을 끓여먹고 이렇게 기운이 뻗쳐 자리를 털고일어났다. 내가 쓰러지면 미국놈들밖에 좋아할 놈이 더 있겠다구? 고맙구나. 네 덕에 내가 다시 일어섰으니…》

금성은 놀랐다. 그러니 어머니가?…

금성은 아바이의 칭찬을 듣기가 몹시 거북스러웠다. 하루새에 무슨 약기운이 동했으랴만 최아바이는 부디 그것을 자기와 련결시키고있는것이다. 그랬어도 남을 도와주었다는 긍지로 마음은 거뿐해왔다. 그러다 문뜩 생각히우는것이 있어 부랴부랴 집으로 뛰여올라왔다. 금자라가 들어있는 부엌의 버치부터 찾아보았다.

금성은 다시한번 놀랐다. 다 어디로 갔는지 한마리의 금자라만이 외로이 물속에서 자맥질하고있었던것이다. 중대의 성의가 어머니에게 가닿지 못한듯 한 기분으로 하여 가슴이 무직해왔다. 그러나 늘 남을 위해 사는 어머니로서는 달리는 행동할수 없었을것이다.

금성은 아침에 어머니가 한 신칙도 있고 하여 공장을 찾아가보기로 결심하였다. 공장당비서부터 찾아갔다. 그동안 집안살림을 돌봐주느라 이럭저럭 왼심을 많이 쓴 그에게 인사를 드리는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던것이다.

문기척을 하고 들어서니 금방 무슨 모임을 끝낸듯 사람들이 자리에서 막 일어서는 찰나였다. 몸이 우람찬 공장당비서가 거수경례를 붙이는 금성의 인사를 반갑게 일어나 받았다.

《아, 우리 금성이가 왔구나. 동무들, 주옥순아주머니의 아들이요. 언젠가 이 동무의 부대에서 보내온 편지를 내 독보한적 있지.》

그러자 너도나도 그의 인사를 받으며 몹시 반가와들 하였다. 금성은 이들이 바로 직장장을 비롯한 공장일군들이며 방금전까지 3. 8절을 축하하여 자기 어머니를 비롯한 녀성혁신자들의 가정방문문제를 놓고 토론했었다는것을 다는 알수 없었다.

모두들 자리에 둘러앉자 당비서는 금성에게 웃음어린 눈길을 보냈다.

《그래, 고향에 와본 인상이 어떤가. 입대전하고는 다르겠지?》

《예, 다릅니다.…》

금성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조용하나 힘있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더 강해지고 더 억세여진것 같습니다.…》

《더 강해지고 더 억세여진것 같다!…》

당비서의 주름잡힌 눈가에 느슨한 미소가 실리였다.

《사실 엊저녁에 도착하였지만 벌써 받아안은 느낌이 큽니다. 우리 어머니모습을 보아도 그렇고 또 어머니가 말해주는 공장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그렇고 길거리나 아빠트현관앞에서 본 인민반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도 승리한 래일이 보이고 신심과 락관을 더 크게 가지게 되였습니다.

지금 적들은 후방인민들이 다 굶어죽어가고 완전히 주저앉은것처럼 개나발을 불어대고있는데 정말 격분을 금할수가 없습니다.

전 이 사실을 우리 중대군인들에게 그대로 다 들려주겠습니다.》

당비서는 만족스럽게 공장일군들을 돌아보았다.

《동무들, 우리 군대가 어떻소. 난 자기 고향에 대한 이런 믿음을 안고사는 우리 군대한테서 더 큰 힘을 받아안게 되는구만. 우리가 지금 보다 더 높이 일떠서야 하지 않겠소?》

한 일군이 일어나 불끈 틀어쥔 주먹을 힘있게 내흔들었다.

《우리야 이미 소왕청유격구 사람들처럼 살걸 결심한 자강도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때 소왕청형편으로 말하면 왜놈들이 2중, 3중으로 악착하게 봉쇄를 하고 비행기, 대포까지 동원해서 달려들었지요. 사람들은 굶다못해… 나중엔 개구리와 뱀까지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손에 보총과 작탄밖에 가지지 못한 소왕청군민은 기어이 왜놈들과 싸워이겼습니다.

지금형편이 아무리 어렵단들 어떻게 그때 같기야 하겠습니까? 문제는 정신에 있지요.》

《옳습니다.…》

당비서는 그의 말을 수긍하였다.

《금성이 어머니도 지금 그런 정신으로 살고있소. 아들이 생각하는것보다 더 강한분이지. 이제 후날 알게 되겠지만 어머니는 나라의 국력을 과시하는 사업에서 정말 중요한 몫을 맡아안고있소.

이런 어머니에 대한 긍지를 가지고 군사복무를 잘하라구!》

금성은 산악같은 믿음을 안고 공장의 여기저기를 돌아보았다.

그날 저녁 금성은 어머니와 마주앉았다. 공장을 돌아본 소감을 이야기한 후 그는 금자라를 두고 자기의 섭섭한 감정을 표현했다.

《그런데 어머니, 마지막금자라까지 없어졌더군요.》

《…》

《어머닌 정말… 거기엔 저뿐이 아니라 빨리 병을 털고일어나길 바라는 우리 중대군인들의 진정도 어려있단 말이예요. 그런데 어쩌면…》

《용서해라, 금성아! 난 그저 그 마음만으로도 병을 다 고친 기분이구나.

사실 그래서 마지막 한마리만은 내가 먹자구 했다만… 그걸 손질하자구보니 자꾸만 아버지의 친구였던 송기사가 생각나지 않겠니? 그는 지금 수자식조종기계를 설계하고있는데 요즘 점심밥도 못 싸가지고 출근하고있다. 공장에서는 하루빨리 그 설계를 기다리고있고… 헌데 그 기사의 건강이 지금 여의치 않다. 그래서 너와 토론없이 그렇게 한거란다.

금성아, 최아바이랑 송기사랑 왜 그 어려움을 참아가면서도 일감을 놓지 않겠니. 그건 사탕알이 없이는 살수 있어도 총알이 없이는 살수 없다는 각오가 있기때문이란다. 난 우리 금성이가 이 엄마의 심정을 충분히 리해해주리라 믿는다.》

《어머니!…》

금성은 뜨거움에 젖은 눈길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그제서야 화제를 돌렸다.

《참, 금성아, 적들이 전연에서 그런 거짓선전까지 해댄단 말이냐?》

《그런 심리전만이 아니지요. 올해에 와서는 더 많은 땅크와 대포, 비행기까지 끌어들여가지고 우리를 어째볼 전쟁연습을 미친듯이 벌리고있답니다.》

어머니는 깊은 생각에 잠기더니 신중한 눈길로 아들을 마주보았다.

《금성아, 난 어쩐지 네가 집에 와있는것이 편하지 않다. 너두 아까 말했지. 당비서동지랑두 이야기했다지만 여기서는 모두 항일의 유격구정신으로 사생결단하고있단다. 그런데 네가 휴가왔다고 여기서 할일없이 시간을 보낼걸 생각하니 어쩐지 이 어미때문에 초소의 한 구간에 공간이 생긴것 같아 걱정이 되는구나.》

금성은 그만 웃었다.

《어머니두 참, 할 일이 없다니요. 당장 구들수리부터 해야겠어요. 연기가 빠지지 않아 불이 자꾸 죽구 구들이 차다구 금주가 막 야단이예요.》

《사내가 가정일에 신경을 쓰면 큰일을 못하는 법이다.

장군님께서는 지금도 나라를 지키시느라고 매일이다싶이 위험한 전선길을 걸으시지 않느냐. 그런데 장군님을 보위해야 할 네가 제 집 아래목걱정부터 해서야 되겠니?

여기 형편도 그렇고 거기 정세도 그러니 난 네가 래일 부대로 돌아갔으면 하는 생각이다.》

금성은 깜짝 놀라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래일이요?》

어머니는 따뜻이 아들의 무릎에 손을 얹었다.

《너도 다 보았지만 공장에서 돌봐주고있는데 집에 더 있어서는 뭘 한다는거냐? 이렇게 서로 만나 얼굴을 봤으면 된거지.

직장에서도 요즘 긴장한 전투를 벌리고있는데 네가 옆에 있으면 나도 일에 전념할수 없을것 같구나.》

금성은 그 절절한 눈길을 그냥 마주볼수 없어 고개를 돌리다가 어머니곁에 앉아 타는듯이 애끓는 눈빛으로 자기를 바라보며 피나게 입술을 깨물고있는 금주의 눈물고인 까만 두눈에 시선이 못박혀버렸다.…

다음날 금성은 어머니와 동생 금주의 바래움을 받으며 렬차에 올랐다. 멀어져가는 역홈에 그린듯이 서있는 어머니와 동생을 향해 손을 젓다말고 입속으로 부르짖었다. 아, 어머니! 훌륭한 나의 어머니!…

신금성의 눈가에는 물기가 번뜩이였다.

《동지들! 그래서 나는 그 이튿날 사랑하는 어머니와 동생과 작별하고 고향땅을 떠나왔습니다.

나는 이 자리를 통하여 우리모두 고향의 간곡한 부탁대로 수령결사옹위의 제1선인 여기 최전연초소를 철옹성같이 지켜가자는것을 호소합니다!》

요란한 박수소리가 터져올랐다.

신금성은 그 박수소리에 휩싸여 자기 자리로 돌아와앉았다.

1분대 부분대장이 자리에서 일어서고있었다.

《동지들, 나는 적들이 전연방송에서 우리 인민들의 생활형편을 두고 어쩌고저쩌고 할 때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두고온 고향의 부모형제들을 은근히 걱정하게 되는것을 어쩔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자 분대장동지의 고향소식을 듣고보니 새로운 힘과 용기가 생기고 부모형제들이 겪는 곤난을 두고 우리 병사들의 마음을 흔들어보려는 원쑤놈들을 한시바삐 죽탕쳐버릴 불타는 적개심을 금할수 없습니다.

우리의 존엄을 헐뜯고 우리 부모형제들을 우롱하는 원쑤놈들과는 오직 총대! 총대로 결산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사탕알이 없이는 살수 있어도 총알이 없이는 살수 없다면서 유격구정신으로 싸우고있는 고향의 부모형제들앞에 총쥔 우리는 무엇으로 대답하여야 하겠습니까?

항일의 오중흡7련대가 발휘했던 사령부보위정신으로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결사옹위하며 원쑤들의 제재와 봉쇄를 총대로 기어이 끝장내는 여기에 고향과 부모형제들앞에 떳떳이 나설수 있는 우리 총쥔 아들들의 대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지들! 우리모두 항일의 7련대정신으로 오늘의 고난의 행군에서 기수가 되고 돌격대가 됩시다!》

늘 사관들의 정기휴가를 부럽게 생각하던 중대의 《막냉이》가 벌떡 일어섰다. 그는 정치지도원쪽을 흘끔 바라보고나서 자기 속생각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동지들, 나는 정기휴가가 시작되자 손가락을 꼽아가며 하루빨리 내 차례가 되여 고향의 부모형제들을 만날 날만 기다려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나는 이 자리에서 떠나온 고향과 약속하렵니다. 고향아! 내 기어이 여기 최전연에서 위훈을 세우고 사랑하는 네 품에 안기리라!…》

열렬한 박수소리가 터져올랐다.

신금성은 중대군인들과 어울려 박수를 치다말고 깜짝 놀랐다.

만수대예술단 단장이 연탁이 있는 앞쪽으로 걸어나오고있었던것이다.

박영순은 연탁옆에 서서 호인다운 부근부근한 얼굴에 웃음을 담고 특유의 웅글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이런 훌륭한 모임에 참가하고도 인사 한마디없이 나가버린다면 그건 옳은 처사가 못된다고 생각되였기에 이렇게 나왔습니다.

나는 이 모임이 열리는 오늘 아침에야 다시 시작된 정기휴가에 깃든 깊은 사연과 우리 전연군인들에게 돌려진 위대한 장군님의 은혜로운 사랑과 믿음을 새롭게 알게 되였습니다.

그래서 고향을 그리며 다진 동무들의 맹세를 축하하여 노래 한곡 부르겠습니다.》

가벼운 환성과 함께 박수소리가 터져올랐다.

신금성은 기쁨속에 단장을 바라보았다. 지휘관들한테서 들은데 의하면 단장은 빠리, 로마, 런던, 도꾜 등 여러 나라들을 다니며 노래로 명성을 떨치던 배우였다고 한다. 그런데 손풍금반주도 없이?!…

박영순은 그 무대들에 나섰던 자세, 감정을 초월하듯 천천히 숨을 들이키고있었다. 그러자 풍만하면서도 은은한 성량이 교양실을 메우기 시작하였다.

전호속의 나의 노래 고향으로 울려가라

조국땅을 보위하려 총을 멘지 삼년석달

신금성의 눈앞으로는 봄날의 고요한 장자강반이 펼쳐지면서 거기에서 피여오르는 물안개가 금시 페부로 흘러드는듯싶어 숨이 꺽 막히는것만 같았다.

적탄알이 비발치는 격렬한 싸움에도

공세우라 하신 말씀 명심하여 싸웠네

공세우라 하신 말씀 명심하여 싸웠노라

노래에 심취되여 숨죽은듯 하던 병사들이 일제히 노래를 받아부르기 시작하였다.

빛난 훈장 가슴팍에 내 집으로 돌아가면

사랑하는 부모처자 두팔로써 안기리

노래를 따라부르는 신금성의 눈가에는 그날 역전에서 작별하던 어머니의 모습과 금주의 모습이 또다시 우렷이 떠올랐다.

사랑하는 부모처자 두팔로써 안기리라

×

 

박영순은 예상치 않던 감기로 사흘을 신고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비오는 날 실탄사격장에 나가 병사들과 어울려 직접 사격까지 해보다나니 온몸을 흠뻑 적셨던것이다.

오늘 저녁따라 중대장, 정치지도원은 박영순이 있는 침실로 식사를 날라왔다. 두개의 접시에는 달래가 섞인 고기볶음까지 수북이 담겨있었다.

박영순은 의아히 리철과 정치지도원을 쳐다보았다.

《이건 웬거요? 혹시 우리만 몰래 특식을 먹는건 아니요?》

리철은 박영순의 손에 저가락을 쥐여주며 나직이 웃었다.

《아닙니다. 비무장지대에서 이따금씩 노루, 메돼지들이 초소쪽으로 넘어오는데 한마리 걸렸습니다. 아마 단장동지 몸보신에 도움을 주고싶었던 모양입니다.》

《동무들도 참, 이젠 다 나았다는데 자꾸 이러면 내 옹색하지 않소.》

정치지도원이 웃으며 말했다.

《옹색해하실건 없습니다. 대신 단장동지에게서 우리가 바라는것이 있지 않습니까. 전번에 단장동지의 노래를 들은 병사들의 반영이 대단합니다. 〈전호속의 나의 노래〉가 그처럼 심금을 울리긴 처음이라는겁니다.》

《아니요.…》

박영순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내 노래에 앞서 분대장동무의 고향이야기가 병사들의 심금을 울렸기때문이요. 나도 그 감흥에 젖어 노래를 부른거고…》

리철은 재차 고기볶음을 박영순에게 권했다.

《단장동지, 식기 전에 어서 드십시오.》

《그러지. 참, 동무들은 뭘하고있소. 다같이 들자구.》

박영순은 마주 권하며 고기볶음을 한점 집어 입에 넣었다. 향긋한 달래냄새와 함께 고소한 느낌이 들었다.

리철이가 물었다.

《맛이 어떻습니까?》

《좋구만, 무슨 고기요?》

정치지도원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사실 이건 너구리고기입니다. 혹시 단장동지가 마다할것 같아 미리 알려주지 않았는데 맛이 좋다니 이젠 됐습니다.》

너구리고기?… 박영순은 눈이 둥그래졌다. 고기점을 씹던 입을 꾹 다문채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고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그 찰나, 문이 열리며 뜻밖에도 정치위원 김윤범이가 무엇이 들어있는 보자기를 들고 나타났다.

《허, 벌써 시작했군요!…》

그 바람에 박영순은 채 씹지도 못한 고기점을 꿀꺽 삼키며 반색을 했다.

《아니, 정치위원동무가 어떻게!…》

《아무래도 단장동지가 걱정되여 왔습니다. 감기에 드셨다기에…》

《원 참… 별치 않은 감기가 정치위원동무에게까지…》

《별치 않다니요. 단장동지야 우리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귀한분이 아닙니까.》

박영순은 가슴이 뭉클해져서 후더운것을 삼켰다.

김윤범은 박영순을 마주하고앉다가 고기료리에 시선을 주었다.

《무슨 고기요?》

《너구리고기입니다.》

《너구리고기?!…》

《예, 이자 단장동지가 평가했는데 맛이 아주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 바람에 김윤범은 한바탕 소리내여 웃고나서 짐짓 정색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렴, 맛도 맛이지만 령리한 너구리라고 사람의 뇌기능에도 대단히 좋을겁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박영순은 놀란듯 물었다.

《오소리나 너구리는 다 식용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김윤범은 그제야 중대장과 정치지도원을 돌아보고는 가져온 보자기를 펼쳤다.

《우리 집사람이 단장동지에게 보낸 토끼고기볶음인데 맛보십시오.》

《참, 정치위원동무두, 뭘 이렇게!…》

《지금은 어려운 시기이니 식찬이랑 구미에 맞지 않을수 있습니다.

더구나 감기후유증이…》

《아니, 아닙니다.》

박영순은 서둘러 리철과 정치지도원을 둘러보았다.

《이 동무들이 극진히 관심해주어 아무런 불편도 없습니다. 초소에도 나가보고 훈련장에도 나가보니 내가 현실체험을 오길 얼마나 잘했는가를 거듭 생각하게 됩니다. 수뇌부를 옹위하기 위한 투쟁이 최전연에서부터 시작된다는것을 현실로 느꼈습니다.》

김윤범은 그 심정이 리해되는듯 고개를 끄덕이였다.

《단장동지는 앞으로 더 많은것을 체험하게 될겁니다. 어제밤에 적들은 총알이 장탄된 권총과 함께 금품이 들어있는 지함을 주민지대에 투하하였습니다. 인민들이 그것을 발견하고 우리한테 가져왔는데 적들이 꾀하는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결코 수뇌부옹위와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참, 할 이야기는 많은데 음식을 들면서 이야기를 계속합시다.…》

김윤범은 토끼고기볶음을 박영순의 가까이 옮겨주다말고 잊은듯 정치지도원을 돌아보았다.

《병사들이 단장동지의 노래를 그렇게 좋아했다지?》

《예, 우리 병사들은 단장동지의 독창회를 한번 조직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박영순은 뜻밖의 요청에 두눈을 휘둥그레 떴다.

《독창회?…》

김윤범이 맞장구를 쳤다.

《옳습니다. 그러면 우리 병사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이 친구들이 왜 너구리고기를 대접하는가 했더니 다 속꿍꿍이가 있었구만. 하하!》

박영순도 따라 웃었다.

《이런 수고를 안한들, 허허. 최전연을 지켜가는 병사들의 수고를 생각하면 내 노래가 다 뭐겠습니까.》

《그럼 됐습니다.》

김윤범이 자기 무릎을 철썩 치는 바람에 리철과 정치지도원도 좋아라 서로 마주 웃었다.

식사가 끝나 단둘이 남자 김윤범은 박영순에게 물었다.

《그때 평양에서 만났을 때 피끗 들은 이야기이지만 가사의 제목은 어떻게 달았습니까?》

박영순은 주춤거렸다. 또 가사의 제목이다. 중대에 도착한 다음날 가사의 제목을 듣고 무엇인가 석연치 않아하던 중대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문제는 거기에만 있는것이 아니였다. 솔직히 말해서 가사의 틀거리는 평양을 떠나올 때부터 머리속에 가지고 왔었다. 그러나 감시소를 내리던 날 그것을 두고 어떻게 생각했던가! 치명적으로 제목에서부터 시대성, 호소성이 반영되지 않았다는것을 자인하지 않을수 없었다. 더우기 고향소식발표모임까지 참가하고나서는…

지금까지 성공한 가사들을 꼽아보면 제목부터 좋았다. 《눈이 내린다》, 《수령님 밤이 퍽 깊었습니다》, 《어서 가요 먼저 가요》…

박영순은 거의 자신없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빨찌산의 련대장〉, 이렇게 달가 하고 생각했댔는데… 생각되는것이 있으면 이야기해주시오.》

김윤범은 빙그레 웃었다.

《제가 감히 말해도 될가요?》

《그러지 않아 나도 모대기던중이니 서슴지 말아주시오.》

김윤범의 눈빛이 저으기 심중해지기 시작하였다.

《〈빨찌산의 련대장〉하면 련대장 그자체에 머물고마는듯 한 허전한감이 듭니다. 오중흡7련대를 따라배우려는 우리 군인들의 지향과 호소가 제목에 반영되였으면 어떻겠는가 하는것입니다!》

박영순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드는듯싶었다. 이것은 시점문제이다. 작가 일개인의 시점이 아니라 군인대중의 시점에서 볼 때만이 군가의 생명이라고 할수 있는 시대성, 호소성, 전투성이 반영되는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명백하고도 단순한 리치를 내가 왜 포착하지 못했는가!…

박영순은 김윤범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어쩌면 그런 생각을 다!…》

김윤범은 오히려 난처해하였다.

《사실 제목에 대한 의견은 나의 당정치사업에 대한 의견이기도 합니다. 오중흡7련대를 따라배우는 사업을 온 부대적인 사업으로 부글부글 끓게 하지 못하고있으니까요. 하지만 한편의 훌륭한 시가 천만자루의 총검을 대신하듯이 좋은 노래도 같지 않을가요.

난 단장동지를 믿습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박영순이 면구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힘을 주니 정말 고맙소. 내가 여기로 오지 못했더라면 이 가사는 언제까지도 빛을 보지 못했을거요.》

《그래서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단장동지의 현실체험을 몸소 지지해주신것이 아니겠습니까!》

불시에 가슴이 후더워올랐다. 정말 그랬다. 만약 장군님께서 이번과 같은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지 않았더라면 자기는 아직까지도 책상머리에서 헤매고있을지도 모른다.

정치위원을 바래주고난 박영순은 조용히 병실뒤뜨락을 홀로 거닐었다. 김윤범의 목소리가 그냥 여운이 되여 귀전에서 감돌았다. 우리 군인들의 지향과 호소가 반영된 노래를!…

그는 북받치는 흥분을 한껏 터치려는듯 걸음을 멈추고 하늘가를 향하여 고개를 젖혔다. 씻은듯 한 밤하늘에 올찬 별들이 반짝이고있었다. 저 무수한 별들은 언제 생겨나 언제까지 저렇게 반짝이는것일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지향과 념원, 삶의 무게가 저 별에 실렸던가? 밀영의 밤, 저 하늘의 별이 되여 사령부가 있는 곳을 그리며 찾던 그날의 7련대 대원들의 순결한 마음들이 오늘도 그대로 어려있어 저렇게 반짝이는것이 아니랴!…

이튿날 오후 중대에서는 무장강행군훈련이 있었다. 그러나 체험에 대한 욕망이 아무리 크다 한들 수키로 전구간을 내처 달려야 하는 행군대오를 60나이 가까이하고있는 박영순이 어떻게 따라나설수 있으랴!

출발전 군인들의 기세는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결의모임이 진행되고 백두의 행군길을 끝까지 이어가리라는 구호며 철천지원쑤 미제침략자들을 소멸하라는 웨침이 병영을 진감하였다.

행군대오를 바래우고난 박영순은 침실로 돌아왔다. 원고지를 펼쳐놓았으나 마음은 안착되지 않고 불안하기만 하다. 무엇때문일가? 그것이 행군대오를 따라설수 없었던 아쉬움이라는것을 절감한 그는 그만에야 손에 들었던 펜을 놓고말았다.

그 허전함에 무심히 고개를 돌리던 그의 눈에 불현듯 커다란 보온병이 바라보였다. 중대정치지도원이 집에서 가져온 보온병에는 그의 안해가 만들었다는 오미자단물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박영순은 더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이 보온병을 부여안고 침실을 나섰다. 행군대오를 마중가리라 결심했던것이다. 갓 입대한 신입대원들에게 오미자단물을 한모금씩이라도 마시게 해준다면 얼마나 힘이 나하랴!

그는 중대병영을 지나 야산굽이를 돌아섰다.

드넓은 고원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그러나 높고 낮은 구릉들과 깊은 계곡으로 복잡한 기복을 이룬 그곳에서는 행군대오가 어디에 종적을 감추었는지 찾아볼수 없었다.

박영순은 별수없이 길옆에 앉아 행군대오를 기다리기로 결심했다.

초복날의 미풍과 함께 풀잎냄새가 싱그럽게 풍겨왔다.

거대한 대지의 훈향을 페부깊이 들이키느라니 온몸에 이루 말할수 없는 생기와 열정이 솟구치는듯싶었다.

그는 거뜬한 기분속에서 어제 저녁의 생각을 하나하나 정리해나가기 시작하였다.

갑자기 인적없는 고즈넉한 고원의 정적을 깨치며 어디선가 구령소리 같은 웨침이 들려왔다.

박영순은 얼른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였다.

저 멀리 계곡에서 솟구치듯 행군대오가 달려나오고있었다.

그는 저도 모를 반가움에 벌떡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행군대오가 점점 이쪽을 가까이 하고있었다.

선두에서 휘날리는 붉은 기발은 저녁녘의 불덩어리같은 태양의 빛발을 받아 더 강렬한 색조를 이루며 그의 시야에 비껴들었다.

박영순은 부지중 탄성을 올렸다. 붉은기… 세대를 이어 오늘도 저렇듯 대오의 앞장에서 힘차게 휘날리는 붉은기! 어제 저녁의 창작적흥분이 다시금 되살아나며 그의 가슴을 격동시켰다. 저 기폭이야말로 사령부를 보위하며 백두의 눈보라, 포연탄우를 선두에서 헤치던 7련대의 기발이 아니겠는가!

발구름소리, 장구류 부딪치는 소리, 급한 숨소리와 함께 행군대오가 그의 앞을 지나고있었다.

박영순은 품에 안고있는 보온병을 잊은채 환희에 넘쳐 대오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중대장이며 낯익은 병사들이 숨겹게 달리는 경황속에서도 박영순에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중대정치지도원이 그에게로 다가왔다. 품에 안고있는 보온병을 알아보며 웃음을 지었다.

《마중나오셨군요. 단장동지, 고맙습니다!》

박영순은 손을 내저었다.

《가만, 나도 한번 달려볼가요?》

《아니, 단장동지두요?》

《7련대붉은기가 우릴 부르고있지 않소!》

중대정치지도원이 기쁨을 금치 못해하며 수긍했다.

《옳습니다. 7련대붉은기가 우리를 부르고있습니다.》

박영순은 한손을 내미는 정치지도원의 손을 맞잡고 행군대오의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마음속으로 웨치기 시작하였다. 그래, 그 기발이 그때처럼 우릴 부르고있는데 7련대가 어찌 우리곁을 떠났다 하랴. 아니, 7련대는 살아있다. 세기의 준령을 넘어 백두산혁명강군의 척후대로 변함없이 가고있는것이 아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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