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은 선언한다 44 > 조선문학예술

본문 바로가기
영문뉴스 보기
2024년 4월 19일
남북공동선언 관철하여 조국통일 이룩하자!
사이트 내 전체검색
뉴스  

조선문학예술

평양은 선언한다 44

페이지 정보

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1-07-07 20:44 조회300회 댓글0건

본문

20210525210435_b688b794b6b2c74139004afd21fa3013_nlps.jpg

2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최고사령부작전실로 가며 하신 전화지시를 받자 강태혁비서는 곧 해당 부문 일군들의 협의회를 열고 나라의 선전수단들을 총동원하여 전민을 인민군대원호사업에 불러일으키기 위한 문제들을 의논하였다.

준엄한 정세의 요구에 맞게 인민군대를 더욱 성원하며 군민일치의 전통적미풍을 높이 발양할데 대한 령도자의 뜻은 수천수만갈래의 조직선을 통하여 하루이틀사이에 온 나라의 당세포들과 근로단체기층조직들이며 인민반들에 전달되여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였다.

어느 가정, 어느 세대에 속한 사람들이나 다 인민군대와 혈연적으로 련결되여있었다. 누구는 아버지나 형 혹은 삼촌이나 사촌이 전선에서 전사했거나 부상당한 영예군인이며 누구는 아들이나 손자가 피흘린 전 세대의 뒤를 이어 사회주의조국의 수호자로 천리방선에 서있었다. 꽃나이처녀들의 오빠나 동생 그리고 떠들썩한 중학시절 처녀애들을 곧잘 울리던 학급의 장난꾸러기들이 의젓한 추격기비행사로 되여 하늘을 날고 위훈으로 빛나는 함대의 해병으로서 파도를 헤가르며 포함을 몰아가고있었다.

소년단원들의 할아버지나 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전투영웅이거나 총탄이 스쳐지나간 어깨의 부상자리로 청년들이 선망과 경의의 눈으로 우러르는 로병이고 아버지나 어머니는 예비역군관이거나 제대병사, 형이나 누나는 락동강에서 이름떨쳤던 근위사단이나 포병려단의 대원들이였다. 이러한 혈연적뉴대로 하여 인민군대원호는 우리 인민들 누구한테나 자기 가정사였으며 제 살붙이를 보살피는 일이였다. 이 진실을 깊이 헤아리고계시는김정일동지께서는 당조직들이 군대원호사업에서 인민대중의 창발성을 존중하고 잘 조직해주며 모범적인 소행들을 높이 평가하도록 이끄시였다.

한편 전국의 모든 신문, 방송, 텔레비죤을 통하여 군민일치의 미거들을 크게 소개선전하도록 하시였으며 친히 모범적단위들과 개별적공민들에게 감사를 보내주시였다. 매일과 같이 신문과 방송, 텔레비죤으로 그 감사를 전달하는 모임소식들이 크게 보도되였다.

그이께서는 어느 부문 사업성과보다도 인민군대원호사업에서의 모범적소행을 첫자리에 놓고 높이 치하하여 련이어 감사를 보내주시였으며 《군민일치모범군》의 칭호까지 제정하도록 하시였다. 피여나는 군민일치의 화원에 감사, 감사, 감사… 령도자의 치하는 해빛처럼 쏟아져내려 온 사회가 군사를 중시하게 되고 군대원호는 공민의 의무이기전에 도덕으로, 가장 아름다운 공산주의적미풍으로 되였다.

그 사회적분위기속에서 우리 농장-우리 초소, 우리 초소-우리 농장이라는 대중운동까지 벌어져 군민이 고정적인 단위를 정해놓고 서로 오가며 아끼고 사랑하고 도와주면서 일심단결하여 사회주의를 지키자고 고무하였다.

마가을의 찬바람이 거리를 휩쓰는 어느날 류수진박사의 안해 하정녀는 보통강구역 과학자아빠트에 사는 서만복교수의 집에 나들이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무궤도, 궤도, 뻐스, 지하철, 어느편을 리용했으면 좋을지 몰라 갈림길에서 잠시 서성거리다가 《황금벌》지하역으로 꼿꼿이 걸어갔다. 지하철이 더 편리하고 조용할것이라는 타산이나 그 무슨 예감에 떠밀려 그렇게 된것은 전혀 아니였다. 그저 그렇게 되였다. 지하역은 언제나와도 같이 손님들로 붐비였다. 후렁후렁한 미색코트로 자신에게도 보기 싫은 뚱뚱한 몸매를 가리우고 바둑무늬머리수건을 삼각으로 접어 맵시나게 머리를 동인 그 녀자는 20대의 처녀처럼 날랜 걸음으로 사람들의 흐름을 헤가르며 홈에 나섰다.

전동차는 오지 않았다. 저쪽구석 전자벽시계의 빨간 점은 아직도 1∼2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그 몇분이 몇시간으로 느껴져 전동차가 미끄러져 들어올쪽과 전자벽시계를 번갈아 돌아보며 서성거리는데 무엇인가 뾰족한것이 처음에는 잔등, 다음에는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손기척이라도 하는듯 이상야릇하게 반복되는 그 감촉에 어느 친지라도 곁에 와 서있지 않는가싶어 돌아보니 당돌하게 생긴 웬 처녀가 들고있는 구호판이였다. 구호판에는 힘있게 쓴 붉은 글발이 가득차있었다.

군민일치

우리 공장-우리 초소!

우리 초소-우리 공장!

처녀의 부주의로 그 구호판의 모서리가 자기를 함부로 건드렸다는것을 알게 된 하정녀는 마음이 언짢았지만 입가에 너그러운 미소를 그려보았다. 구호판옆에서는 팽팽하게 부푼 배낭이며 꽃보자기, 손풍금, 장고며 꼬마북 같은것을 지고 든 한떼의 처녀들이 하나같이 들뜬 얼굴로 떠들어대고있었다. 어느 피복공장의 작업반이 교외의 인민군부대로 찾아가는 길인것 같았다.

하정녀는 구호판을 피하여 서너걸음 물러섰다. 그는 약간 허리를 구부정하고 전동차가 들어올쪽을 내다보다가 대여섯걸음 건너에서 이쪽을 여겨보는 흑곤색코트차림의 청년과 눈길이 마주쳤다. 순간 녀인도 놀라고 그 청년도 눈이 커지며 반색을 띠웠다. 송기선은 사람들속을 비집고 황황히 다가와 녀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어머니!》

《아니, 이게 얼마만이요!》

《정말 반갑습니다.》

《이런 일이 있자고… 어쩐지 지하철을 타고싶더라니까. 궤도나 무궤도를 탔더라면 어쩔번 했나. 아이, 하늘이 도왔지.》

《그랬습니까. 정말 무엇이 도운것 같습니다. 허허…》

하정녀가 그사이 집소식을 두서없이 엮어내리는데 언제 다가왔는지 그 뾰족한것이 또다시 잔등이며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정녀가 언짢은 기색으로 돌아보는데 송기선이 먼저 처녀한테 핀잔의 소리를 해주었다.

《동무, 그런걸 들었으면 조심해야지 손님들속에서 거치장스럽게 그러면 되나?》

그리고는 스스럼없이 녀인의 팔을 끼고 저쪽구석 전자벽시계밑으로 갔다. 청년은 전에없이 례절바르고 의젓해보였다.

《성희동무는 잘 있습니까?》

《그 맹꽁이… 그 청맹과니 얘긴 묻지도 말아요. 아이구, 속상해서…》

《그럴수도 있지요. 전 리해합니다. 그만한 자존심, 도고함이 없이야… 한다하는 박사의 따님이 아닙니까.》

《그런 소리 말아요. 아이구…》

처녀의 어머니는 한손으로 청년의 가슴을 긁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였다.

《그 맹꽁이 글쎄… 그전에 호수가에 갔다와서는 저도 후회되는지 말도 안하고 밥도 안먹더니 3일후에야 이불속에 기여들어와서는 아프리카항쟁투사들을 도운 이야기랑 하면서… 그래 콱 쥐여박았소. 넌 눈뜬 소경이라구.》

《아… 그 소리는 입밖에 내지 말아주십시오. 거짓으로 여기고… 제가 그날 분김에 공연한 소릴 해서…》 그리고는 누가 엿들을가봐 경계하며 뒤를 흘깃 돌아보고는 나직이 속삭였다. 하정녀도 눈을 흘기며 속살거리였다.

《그걸 모를라구? 우리도 재외에 나가 여러해 살았는데… 걱정말아요.》

《믿겠습니다.》

《저 맹꽁이를 어쩔가… 정말 철이 없어요. 너무 노엽게 생각말고… 일은 그렇게 됐지만 우리 집쪽으로 오는 일이 있으면 들려요. 낮에는 집에 나혼자만 있으니까.》

《고맙습니다.》

전동차가 홈에 들어왔다. 승객들이 내리고 손님들이 차안으로 우르르 밀려들어가는데도 청년은 아랑곳없이 그냥 서있었다. 하정녀는 문득 가슴이 들썩해지며 얼굴까지 화끈거렸다.

(이 사람이 혹시…)

《아이고… 호호… 거기서도 결함이 있지 뭐… 고까짓 고집을 비틀어놓지 못해? 남아장부가…》

《제가 그렇게 못난놈이랍니다.》

송기선은 어줍게 웃으며 뒤덜미를 쓸어만졌다.

《한번 만나요!》

《휴- 이제 만나 뭘하겠습니까.》

《그래도 그만큼 알고지냈는데 온다간다 인사말도 없이 훌 사라지는 법이 어디 있어요. 내가 단단히 오금을 박아놓을테니 한번 조용히 만나 이야기해보세요.》

《고맙기는 합니다만…》

하정녀는 그의 팔굽을 와락 잡아흔들었다.

《저희들은 이 엄마가 불쌍하지도 않는가? 응?》

《어머니, 죄송합니다. 친구들은 이 세상에 그 처녀 하나뿐인가, 단호하게 결별하라고 충고해온지가 오랍니다. 이제 또 만나면 모두 뭐라고 하겠습니까.》

《남이야 뭐라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이런 문제에서야 제 하고픈대로 하는거지.》

청년은 머리를 수굿하고 덤덤히 서있었다. 또 한대의 전동차가 지나간 다음에야 모두숨을 내쉬고는 생각해보겠노라고 가까스로 대답하였다. 그들은 30분동안이나 더 서서 이런저런 생활세태적인 이야기를 나누다가 전동차에 올랐다.

그날 하정녀가 집에 도착하여 전실에 들어서니 출입문곁 신발장에 낯선 신발 몇이 놓여있고 아래방쪽에서 조용조용한 말소리들이 흘러나왔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진 정녀가 그 말소리들에 귀를 기울이는데 딸 성희가 달려나왔다.

《엄마, 왜 이렇게 늦었어요?》

《누구들이냐?》하고 하정녀는 턱짓으로 아래방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할아버지랑 삼촌, 삼촌어머니랑 다 왔어요!》

《무슨 일로?》

《가족회의…》

《뭐?》

《할아버지가 소집했어요. 인민군대원호사업을 잘 못한다고…》

하정녀는 아무런 말도 없이 머리수건을 풀고 코트를 벗어 옷걸개에 걸고는 부엌으로 들어가 그 총각을 만난뒤로 화끈 달아난 속을 식히려고 랭수를 마시였다.

(아유… 극성스러워… 그만한 년세면 집에 가만히 누워계실것이지. 자식들이 어련히 다 알아서 하지 않으리…)

방안의 아래목에는 류한무가 엄엄한 얼굴로 앉아있고 그앞에 류수진과 류수명 두 형제가 심중한 안색으로 앉아있었다. 동서는 그들한테서 좀 떨어진 창턱밑에 고개를 숙일사하고 앉아있었다.

딸을 앞세우고 반색을 띠며 문지방을 넘어선 하정녀는 두손을 앞에 모아쥐고 숫저운 미소를 지으면서 할아버지한테 얌전하게 인사를 하였다. 류한무는 빙그레 웃으며 어디로 갔댔느냐고 묻고는 좀 의논할 일이 있어 왔다면서 거기 앉으라고 일렀다. 그 녀자는 치마폭을 한손으로 누르고 조심스럽게 걸어 동서옆에 가 앉고 성희는 문곁에 앉았다.

류한무로인은 하던 말을 계속하였다.

《나는 요새 전쟁때 적후투쟁을 하던 일을 자주 생각한다. 그때 강원도인민들은 우리 제2전선부대들을 헌신적으로 도와나섰다. 폭격의 참화에 생활이 령세해졌지만 마을마다 식량을 모아 우리들 식사보장을 해주고 이불을 뜯어 솜동복, 솜버선을 지어 부대로 지고왔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숱한 군대가 동상을 입어 전투력을 상실했을게다. 내가 왜 이런 소리를 하는고 하면… 그때보다 우리가 너나없이 모두 얼마나 잘사냐? 그런데 인민군대를… 자기 군대를 얼마나 성원하고있는가 하는거다. 남들보다 양말 한짝, 장갑 한컬레 더 보낸것이 있는가? 그 군대덕에 평양에서 편안히 잘살면서… 수명이, 너는 명절같은 때 인민군대병사한테 편지 한장 써보낸적이 있느냐, 엉?》

류수명은 귀까지 벌개져 어줍게 웃어보이며 대답하였다.

《4. 25명절에 위문편지를 보냈는데 전연초소에 있는 한 병사가 받아보고 회답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음…》

류한무는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아마 그 병사는 당중앙위원회 일군의 축하편지를 받은걸 일생을 두고 잊지 못할것이다. 그래 회답을 했냐?》

《인차 쓴다는것이 그만… 이제 쓰겠습니다.》

《써야지. 제 살붙이한테서 편지가 왔다면 그러구있겠느냐?》

《옳습니다. 인차 쓰겠습니다.》

《만약 그 병사가 회답편지까지 받았다면 얼마나 큰 고무를 받겠느냐.》

류수명은 바지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를 씻었다. 그리고는 존경어린 눈으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형인 류수진은 다음차례의 매는 자기한테 떨어지리라고 예감하는지 목을 약간 움츠러뜨리고 방바닥만 내려다보고있었다. 성희는 처음에는 할아버지의 기상에 겁을 먹었다가 차차 무엇이 재미나고 우스운지 장난기 어린 눈매로 삼촌이며 아버지를 번갈아 돌아보았다.

류한무로인은 사회적지체가 제일 높은 둘째만 답새기고 어느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다. 그는 인차 얼굴빛이 부드러워져 의논조로 말하였다.

《나는 우리 가정이 군민일치에서도 모범이 되자는게다. 우리 가정이 인민군대를 어떻게 성원하겠는가 잘 궁리해보고 창발적인 의견들을 내놓아라.》

모두 머리들을 수굿하고 생각에 잠겼다. 방안에 침묵이 흘렀다. 류한무로인이 담배를 피워물고 연기를 조용히 내불며 지혜가 번쩍이는 눈으로 자식들을 흘끔흘끔 둘러보았다. 둘째며느리가 선참으로 입을 열어 털실로 한개 소대분의 양말을 떠서 전연초소에 보내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맏며느리가 한개 소대분의 세면도구도 장만해서 함께 위문품으로 보내주자고 하였다. 로인은 머리를 끄덕이며 기특한 생각들이라고 하다가 몸을 뒤로 젖히며 빙그레 웃었다.

《사실은 내가 안을 하나 가지고왔는데 들어보겠느냐? 우리 온 가족이 애들까지 다 데리고 부대를 찾아가자는거다. 공화국기발도 크게 만들어가지구 위문품도 가지구… 가서 군인들앞에서 가족예술소품공연도 하구. 잘 준비해서… 어때? 엉?》

《그거 참 좋은 생각입니다.》하고 수명이 환한 얼굴로 호응하고 수진이도 공감하여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러나 며느리들은 좀 난처해하는 기색이였다.

둘째며느리는 묻는듯 한 눈길로 맏며느리를 돌아보고 맏며느리는 놀란 눈으로 시아버지를 빤히 여겨보았다. 로인은 인차 호응이 없자 좀 게면쩍은듯 얼굴이 벌개졌다.

《우리 가정이야 당의 신임과 배려를 얼마나 크게 받고있느냐. 그래서 군대원호를 해도 좀 크게 해보자는거다. 성희애비만 해도 지도자동지 사랑을 얼마나 크게 받았느냐…》

《좋기는 좋은데요…》하고 하정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모두 직장사정이 달라 시간을 맞추기 힘들것 같아요.》

《그러게 어느 일요일을 택해서 가자는거다.》

《아유, 저 삼촌이야 일요일이 있나요? 우리 가내반만 해도 생산과제가 얼마나 바쁜지 몰라요.》

《허, 내가 타산을 잘못했는가…》하고 로인은 웃으며 말했으나 얼굴빛이 달라졌다.

그때 전실쪽에서 야무진 전화종소리가 들려왔다. 하정녀는 마음에 짚이는데가 있어 얼른 나가 송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십시오, 류박사선생님댁입니까?》

《예, 누구야요?》

《기선입니다.》

《오… 바꿀가?》

《괜찮습니다. 닷새후 장기출장을 떠납니다. 그전에 한번 만났으면 해서…》

《그래 그러자구.》

《고맙습니다.》

하정녀가 전실에서 돌아오니 그사이 무슨 말들이 오갔는지 방안공기가 달라졌다. 남편도 삼촌도 동서도 하나와 같이 얼굴빛이 긴장되였는데 할아버지는 자식들을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좀 짧게 생각했구나. 좋아. 그럼 나는 먼저 옛 련대부터 찾아가볼가 한다. 내가 쓴 글을 보고 련대에서 보내온 편지를 보았지? 그들은 나를 잊지 않고있어…》

《련대로는… 날이 추워오는데 그 몸으로 어떻게 가십니까. 벌써 해소가 나기 시작했는데… 가셔도 래년봄 따뜻해진 다음에 가십시오.》

《그렇게 미루면 세월이 없어. 련대에서도 내가 가면 무척 반가와할게다.》

《할아버지, 제가 따라가겠어요.》하고 성희가 눈을 빛내이며 끼여들었다.

로인은 손으로 무릎을 내리쳤다.

《과시 내 손녀로다. 성희는 간호원이겠다 약이랑 가지고 떠나면 문제없겠다!》

그바람에 하정녀는 얼굴이 해쓱해졌다.

《애한테는 개인문제가 제기되여있습니다. 며칠안에 하든지 안하든지 판가름을 해야 돼요. 일생의 문제가 아닌가요?》

류한무로인은 애써 너그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으음… 이전부터 말이 있던 그 청년이냐?》

《…》

하정녀는 대답을 안했다.

《혼인이야 운명적인 중대사인데… 나는 혼자 가겠다. 군대에도 어디 가나 군의소가 다 있다.》

《할아버지, 난 따라가겠어요.》 성희가 눈살이 꼿꼿해서 부르짖었다.

하정녀는 딸을 돌아보았다.

《너 정신 나갔니?!》

《엄마!》

《넌 좀 가만있어라.》

《가겠어요.》

《못가!》 하정녀는 팩해서 소리치며 발까지 굴렀다. 그 발짓이 시동생 수명이와 동서의 얼굴에서 피기를 앗아갔다.

《어험-》 류한무로인은 큰 기침소리를 내고는 움쭉 일어나 방안에서 나갔다.

성희는 얼굴을 싸쥐고 흑흑 느끼고 수명은 너무 기막혀서인지 머리를 수굿하고 아무 말도 없었으며 그의 안해는 얼굴이 해쓱해서 두손가락끝으로 장판바닥을 꼭꼭 누르고있었다.

수진은 동생보다도 제수를 보기 부끄러워 그쪽에 눈길을 돌리지 못하고 벽에 붙어서서 씨근거리는 안해를 쏘아보며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들어오지 않아 아주 가버린것이 아닌가싶어 황황히 일어나 전실로 나갔다. 구두가 없었다… 수진은 아빠트모퉁이에서 아버지를 따라잡아 불러세울수 있었다.

류한무는 범접할수 없는 무서운 기상으로 아들을 돌아보더니 불이 황황 이는 눈에 비양조의 미소같은것이 어리고 거멓게 죽은 입술의 한쪽귀부터 열리였다.

《박사선생, 부인님이 훌륭하오. 훌륭해!》

《아버지!》

《야, 난 네가 달라진줄 알았다. 헝, 달라지기는 뭐가 달라져. 량심이 있어?!》

그리고는 돌아서 활개를 크게 저으며 억척스럽게 걸어갔다.

수진은 대여섯걸음 따라가다가 그만두고 돌아오다가 현관에서 나오는 동생과 제수와 마주쳤다. 제수는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옆을 지나가고 수명은 걸음을 멈추었다.

《너희들이 오래간만에 집에 왔는데 미안하다.》

《아버지 성미를 알면서… 맞추는건데… 형수도 그렇고…》

《가만두지 않겠다! 뭐나 분질러놔야지!》

《아 아 조용조용 타이르오. 우리 다시 오겠소.》

층계를 오르다가 총총히 걸어내려오는 성희를 만났다. 할아버지를 찾아가 엄마대신에 빌겠다고 하였다. 기특한 딸의 그런 모습까지 보니 가슴에서 불길이 활활 일어나는듯 하여 목안이 말라들었다.

안해는 방구석에 돌아앉아 고개를 떨구고있었는데 숨도 쉬는것 같지 않았다. 장판바닥에 누구한테서 떨어진 손수건이며 머리수건, 편지봉투 같은것이 널려져있는데다가 밖에서 불어치는 바람소리가 흘러들어 방안이 전에 없이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수진은 분격에 주먹을 부르쥐고 안해뒤쪽으로 다가서며 목청껏 소리쳤다.

《일어서오!》

하정녀는 결혼후 처음 듣는 그 위혁적인 고함소리에 화닥 놀라 뛰여일어났다.

《여태 참아왔어. 오늘은 죽으나사나 결판을 내자!》

그 녀자는 얼굴을 싸쥐고 돌아섰다. 수진은 안해의 어깨를 와락 거머쥐였다가 속을 썩이며 살아온 가냘픈 인생의 흔적이 문득 안겨들어 가슴이 쩌릿해졌다. 그것은 머리에 보이는 흰머리칼과 귀방울뒤에 패인 주름살이였다. 부다뻬슈뜨로 처음 왔을 때의 윤이 흐르고 칠흑같던 머리칼 그리고 맑고 부드럽던 살결은 어디로 갔는가… 부실한 남편때문에 내내 속을 태우며 살아와 마음도 이그러지지 않았는가싶으면서 분이 누그러졌다. 수진은 안해를 눌러앉히고 자기도 그옆에 앉았다.

《여보, 할아버지앞에서 그게 뭐요, 응? 제수까지 와있는데 내 얼굴이 어떻게 되오?》

《…》

《그게 어디 성희한테 화를 낸거요? 할아버지한테 그런거지.》

《…》

《련대로 찾아가시겠다는데 맏며느리로서 누구보다도 정성껏 도와드리고 보살펴야 할 립장에서 이게 뭐요?》

《로망이야요. 나이가 어떻게 됐는데… 구역동원부장이 련대가 있다고 한것도 모를 소리예요. 그저 좋게 말하느라고 그랬겠지요. 설사 련대가 있다 해도 세월이 얼마나 흘렀나요. 생판 모를 군대들이겠는데 반가와나 하겠어요?》

《당신이 군대물계를 어떻게 아오?》

《로망이야요.》

《그래서 그런 망발을 부렸소?》

《아유, 인민군대원호도 젊은것들한테 맡기지 나이가 몇인데 나서서 저래요! 성희까지, 성희까지 끌고가겠다면서… 혼사문제가 제기된 애를…》

《의견이 있으면 차근차근 조리있게 말할것이지 쌍스러운 아낙네처럼 발까지 구르면서… 그게 뭐요? 할아버지앞에서…》

하정녀는 얼굴이 해쓱해져 남편을 돌아보았다.

《내가 언제 그랬어요?》

《이거야… 그럼 할아버지가 왜 일어선것 같소?》

《아니 내가 정말?…》하고 안해는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웠다.

《발을 구르는 버릇은 언제 생겼소, 응?》

《모르겠어요. 무슨 정신에 그렇게 되는지, 여보, 너무 성내지 말아요. 이제는 절대 안그러겠어요.》

《휴- 우리 집안이 신임과 배려를 얼마나 받고있소.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뜻을 받들고 모두 인민군대원호사업에 떨쳐나섰는데 우리 집안은 이게 무슨 꼴인가!》

《…》 안해는 공손히 머리를 숙이고 죽은듯이 잠자코 있었다.

류수진은 정녀의 잔등에 손을 얹으며 시름겨운 한숨을 내쉬였다.

《휴-》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부고]노길남 박사
노길남 박사 추모관
조선문학예술
조선중앙TV
추천홈페이지
우리민족끼리
자주시보
사람일보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한겨레
경향신문
재도이췰란드동포협력회
재카나다동포연합
오마이뉴스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재오스트랄리아동포전국연합회
통일부


Copyright (c)1999-2024 MinJok-TongShin / E-mail : minjoktongshin@outl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