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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은 선언한다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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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1-06-23 21:18 조회3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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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조건물인 대학교사는 세월의 비바람에 벽체들이 좀 검스름해졌을뿐 옛 모습을 고스란히 보존하고있었다.

류수진은 울렁이는 가슴으로 차에서 내렸다.

성장을 하고 교정에 모여서있던 사람들이 그에게로 우르르 밀려왔다. 그들속에서 라옙쓰끼와 포멘꼬의 웃는 얼굴이 유표하게 눈에 띄였다. 그밖의 사람들도 모두 동창생들이건만 첫눈에는 누가 누구인지 알아볼수 없었다. 그저 로씨야, 우크라이나, 그루지야, 도이췰란드, 웽그리아, 중국, 윁남이라는 민족별, 나라별 식별이 겨우 될뿐이였는데 포멘꼬가 소개해서야 알아보고 떠들썩하게 환성을 터뜨리며 손도 잡아 흔들고 얼싸안고 돌아갔다. 로씨야동창생들속에 리지야 꾸즈네쪼바는 보이지 않았다.

이제 도착하겠지 하고 수진이 얼결에 교문쪽을 돌아보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체구가 우람차고 얼굴인상이 엄엄한듯 하면서도 훤한 사람이 앞으로 다가왔다. 포멘꼬가 부학장 우와로브동지라고 다급히 소개하였다.

우와로브는 수진의 손을 으스러지게 잡아쥐고 흔들더니 이전에 막역한 사이였던듯이 머리를 뒤로 젖힐사 하며 실눈을 짓고 얼굴을 여겨보았다.

《아니… 아니… 그다지 늙지 않았어. 듣던 소리하구는 달라. 공학은 버리고 뭐? 국제로동운동사? 에키, 변절자같으니라구!》 하고 우와로브는 큰손으로 그의 어깨를 슬쩍 밀치였다. 그리고는 인차 얼굴빛이 진중해졌다.

《리해되네. 조선은 어느 나라보다도 복잡한 국제적환경에 놓여있지. 전과가 리해되구말구. 이렇게 와주어 정말 고맙네. 페쇄적인 나라라구 중상하는 작자들도 있지만 보라구, 왔거든 왔어!》

그리고는 덮치듯이 수진을 와락 포옹하였다. 겹겹으로 둘러선 동창생들이 박수를 치며 환성을 터뜨렸다.

《환영!》

《환영!》

포멘꼬가 흥분에 상기된 얼굴로 손을 높이 쳐들고 입장하자고 웨쳤다.

동창생들은 그가 이끄는대로 두석줄로 적당히 렬을 지어 중앙현관쪽으로 향하였다. 우와로브는 민주도이췰란드에서 온 웨베르와 손을 잡고 앞에서 천천히 걸었다.

현관앞에서 눈부시게 흰 달린옷차림의 녀대학생 십여명이 미소를 날리며 달려나와 30여년만에 모교로 찾아온 선배들에게 빨갛고 하얀 장미꽃을 안겨주었다. 그들은 장미꽃송이를 양복저고리 웃주머니에 꽂거나 혹은 손에 들고 후배들인 그 처녀들에게 악수도 청하고 롱말도 던지며 걸어나가 중앙현관에 들어섰다. 현관안, 복도, 층계에도 대학생들이 늘어서 선배들에게 박수를 보내는가 하면 처녀총각들이 서넛씩 혹은 다섯여섯씩 팔을 끼고 몸을 좌우로 흔들며 《나의 모스크바》라는 옛노래를 불렀다. 희망과 랑만에 넘쳤던 학창시절의 갖가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노래였다.

인생의 서리가 내려 하나같이 머리가 희슥한 동창생들속에는 손수건을 꺼내 눈에 가져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였다. 떠들썩한 환영을 받으며 2층에 오른 동창생들은 포멘꼬의 안내로 첫번째 강실로 들어갔다.

그것은 수물학강의들이 진행되던 계단식강의실이였는데 천정이나 벽, 교탁… 그 어디에나 동창회라고 하는 유난스럽고 경사로운 모임의 분위기를 돋구기 위한 장식이란 하나도 없었다. 모교를 찾아온 졸업생들에게 옛강의실의 모양이며 정서를 고스란히 안겨주어 감회깊은 추억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인것 같았다.

단지 출입문 오른쪽벽에 붙여세운 커다란 장방형게시판이 눈길을 끌뿐이였다. 거기에는 졸업생들이 1학년시절에 찍은 사진들이 크게 확대되여 석줄로 붙어있었다.

동창생들은 게시판앞에 몰켜서서 인생이 푸르게만 보이던 애젊은 시절의 자신과 동료들의 모습을 여겨보며 술렁거렸다. 껄껄 웃는 사람도 있고 얼결에 한숨을 짓는 사람, 묵묵히 자기 청춘을 지켜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 게시판에도 리지야 꾸즈네쪼바의 사진은 없었다.

방금전 모교로 달려오는 차안에서도 이제 곧 만나겠지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조급해졌던 수진은 가슴이 서늘해지며 분명히 무슨 곡절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곁에 서있는 백발이 성성한 동창생녀자에게 물으니 모르겠다고 랭담하게 대답하였다.

포멘꼬가 게시판앞에서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빨리 수강생좌석으로 가서 1학년때 많이 앉았던 자리에 앉아달라고 하였다. 모두 흥분된 얼굴로 두리번거리다가 자기 자리들로 찾아들어갔다. 수진은 앞줄가녁 라옙쓰끼옆에 앉았다.

자리들이 정돈되자 출입문으로 부학장 우와로브와 세명의 교수들이 들어와 교단에 놓인 의자들에 차례로 앉았다. 텔레비죤촬영가들과 7∼8명의 기자들이 뒤따라 밀려들어와 우와로브와 주석단을 서둘러 촬영하는가 하면 동창회 참가자들에게 렌즈를 돌려대였다. 그들이 이구석, 저구석으로 물러가자 포멘꼬가 연탁에 나와 동창회를 개최하기전에 출석을 부르겠다고 하면서 1학년에 입학하여 처음으로 이 강의실에 들어와앉았을 때의 기분으로 돌아가 호명하면 씩씩하게 응해달라고 하였다. 모두 그 시절로 돌아간듯 숙연한 자세를 취하였다.

그는 명단을 들여다보며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내리기 시작하였다.

호명된 사람은 엉거주춤 일어나며 대답하기도 하고 앉은자리에서 손을 들기도 하였다. 그 호명이 많은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칼 웨베르는 애젊은 시절의 장난기가 되살아난듯 벌떡 일어서며 《옛!》 하고 챙챙한 소리로 대답하였다.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났다. 주석단의 우와로브도 빙그레 웃다가 곁에 앉은 교수와 무엇이라고 수군거렸다. 라옙쓰끼는 팔굽을 책상에 붙인채 손만 약간 들어올려보였다.

수진은 팔을 쳐들었다.

호명이 끝난 다음 포멘꼬가 명단에 따라 참가자들을 차례로 불러세우고 그의 현 직위며 학위학직, 발표한 저서, 세계적권위가 있는 상을 받은데 대하여 소개하였다. 장내에는 자주 박수소리가 터져올랐다.

그다음 포멘꼬는 엄숙하면서도 구슬픈 표정으로 이 동창회에 오지 못한 사람들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열한명의 졸업생들이 오지 못하였는데 그중 병사한 사람이 셋, 사업상 관계로 오지 못한 사람이 둘… 나머지 여섯명은 앙골라에 기술고문으로 파견되였다가 우니따의 무장력에 사살된 사람, 아프카니스탄에 나가 경제복구를 돕다가 이슬람교세력의 포사격에 사망한 사람, 윁남에서 전사한 사람, 정치투쟁의 와중에서 자살한 사람, 서방세계에 망명한 사람 등이였다.

장내에는 무거운 공기가 떠돌았다.

주석단의 우와로브가 문득 입을 열었다. 약간 석쉼한 목소리였다.

《우리 졸업생들의 운명에도 쏘련과 사회주의나라 인민들이 당한 재난과 그 재난을 빚어낸 지도부의 과오가 반영돼있습니다. 아프카니스탄에서는 우리 청년들이 광신적 이슬람교도들의 반격으로 어떤 무리죽음과 치욕을 당했는가, 포로되여 짐승떼처럼 끌려다니고 침략자로 규탄받고… 군부나 어느 누가 단독결심으로 군대를 해외전쟁에 내몰수 있는가? 국가의 최고립법기관이 허울뿐이고 법적인 제어장치를 가지고있지 못하여 이런 대범죄가 자행되였습니다. 이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개편>의 필요성이 론박할 여지없이 증명됩니다.》

류수진은 여기까지 듣고 종이를 꺼내여 《리지야 꾸즈네쪼바는 어떻게 되였는가?》라고 쪽지에 써서 라옙쓰끼에게 슬그머니 넘겨주었다.

라옙쓰끼는 쪽지를 읽어보더니 회답도 안써보내고 한손으로 이마를 고이고 무슨 생각인가 골똘히 하다가 움쭉 일어났다. 그리고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연탁으로 곧바로 걸어나가 포멘꼬에게 그것을 주었다.

쪽지를 읽어본 포멘꼬는 모욕감이라도 느끼는지 낯색이 해쓱해지는듯 하더니 태연하게 얼굴을 들어 라옙쓰끼를 지켜보다가 좌중을 둘러보았다.

《이런 질문이 제기되였습니다. 리지야 꾸즈네쪼바는 어떻게 되였는가… 리지야 꾸즈네쪼바는 우리모두가 기억하고있는 매력있는 녀성입니다. 학창시절 우리들 가슴에 아름답고 고상한 인상을 남긴 존재입니다. 아마 1학년때였지요. 설맞이가장무도회에서 그가 부른 노래가 생각납니다. 이제는 머리들에 서리가 내리고 인생의 파란곡절도 다 겪고나서 터놓고 말할수 있지만 그날밤 리자를 두고 가슴설레이지 않은 친구가 있었습니까. 3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 그의 운명에 관심을 두는 기사들이 있다는건 리해할만 한 일입니다. 허허…》

포멘꼬는 라옙쓰끼쪽을 흘깃 보고나서 웃었다. 라옙쓰끼는 서늘한 눈빛으로 말없이 그를 지켜보았다.

《리자웨따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기어코 알고싶은 동지가 있다면 저를 개별적으로 만나주십시오.》

《무얼 그렇게 자꾸 의문표를 달아놓소. 무엇이 있는것처럼…》 하고 우와로브가 싱그레 웃으며 말했다.

《다 터놓고 말할것이지. 가정사정으로 좀 늦어지는건데…》

《그렇습니다. 친근한 벗들, 가정사정입니다. 인차 올것입니다!》

《그런데 어째 저 게시판에 리자의 사진만 없습니까?》 하고 웨베르가 큰소리로 물어 장내가 술렁거렸지만 포멘꼬는 흔연하게 대답하였다.

《칼! 그건 나한테도 참 유감스러운 일이요. 확대할만 한 사진이 한장도 없었소.》

그리고는 연탁을 짚고있던 손을 내리고 자세를 바로가지며 이제부터 부학장 우와로브동지가 개회를 선언하며 연설하겠다고 말하였다.

우와로브는 자리에서 무겁게 일어나 연탁으로는 가지 않고 두어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는 엄숙하면서도 위압적인데가 있는 눈길로 장내를 둘러보며 병석에 누워있는 학장과 대학평의회의 위임에 의하여 커다란 과학기술적공헌으로 세계에 알려진 영광찬란한 대학의 동창회에 모여온 당신들을 축하한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오늘 모스크바의 여러 대학들에서 동시에 이런 동창회들이 열린다고 꼬리를 달았다.

《친근한 벗들! 존경하는 동지들! 당신들은 아득히 흘러간 청춘시절 10대, 20대의 나이에 우리 대학에 입학하여 바로 이 강의실에서 같은 책상들에 나란히 앉아 과학의 진리를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의 배움의 길, 함께 걷는 탐구의 길에서 벗들에게 린색함이 없이 서로 돕고 떠밀어주고 보살펴주었으며 그 과정에 아름답고 고상한 우정이 깊어졌습니다. 당신들은… 아니 우리모두는 그 시절에 벌써 같은 형제였으며 한 대가정의 성원으로 되였습니다. 그 우정과 친선의 혈연적인 뉴대는 세월의 흐름이나 세기의 파란곡절과 동란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생생하게 살아있다는것을 이 동창회에 모여온 당신들의 미거가 웅변으로 증명해주고있습니다. 나는 오늘 당신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가 리념을 같이하고 힘을 합치면 이 행성의 궤도도 바꾸어놓을수 있다는 신심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들의 머리에는 이미 서리가 내렸지만… 아닙니다. 지성인의 강력한 정신력으로 하여 누구도 늙지 않았습니다. 열정과 정력이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나는 당신들의 모습을 보며 시인 쓰쩨빤 쉬빠쵸브의 시 한구절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눈을 지그시 내려뜨며 조용히 읊조리였다.

우리는 갓 서른에 머리 세였어도

예순살에 늙지 않았다고…

장내가 설레이며 박수소리가 터져올랐다.

우와로브는 계속하였다.

《친근한 벗들, 이번 동창회는 <개편>시기에 열린것으로 하여 더욱 의의가 크며 바로 그것으로 하여 학계와 사회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있습니다. 대중보도수단들도 관심을 돌리고있습니다. <개편>은 오늘 세계를 진감하고있는 거창한 변혁운동입니다. 화석처럼 굳어진 정치적교리와 죽음같은 경제적침체, 곰팡이내 풍기는 진부한 모든것을 들부시고 수억만사람들을 이데올로기적편견에서 해방하고 인도주의와 민주주의, 번영에로 이끄는 변혁입니다. 때문에 수많은 인테리대표자들이 오늘 이 운동의 앞장에 나서고있는것입니다. 실천은 사회적영향력이 큰 인테리전문가들, 고급한 두뇌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것을 보여주고있습니다. 친근한 벗들, 나는 당신들이 우리 준비위원회가 작성한 일정에 따라 유쾌한 나날을 보내며 과학기술적성과와 경험도 나누고 <개편>에 대한 허심탄회한 의견도 충분히 교환하여 우리의 거창한 위업에 충격을 주고 도움을 줄수 있는 창발적이며 지혜로운 의견들을 많이 내여주기를 충심으로 바랍니다…》

우와로브는 흐뭇한 얼굴로 동창회의 일정을 발표하였다. 수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지켜보았다. 평양에서 이 동창회의 취지를 예상하면서 동창생들의 비정치적성격의 상봉모임형식으로 진행될것이며 학창시절의 즐거운 추억과 순결한 우의를 불러일으키는 다채로운 서정적행사들에서 《개편》의 사상을 은근히 고취하리라고 예견했지만 막상 당하여 개회연설까지 들으니 몸과 마음이 더욱 긴장됨을 어찌할수 없었다. 그는 혼자속으로 생각했다.

(저 우와로브의 기세만 봐도 <개편>에 대한 우리 당의 견해와 립장을 표명하면 격한 반발을 불러일으킬것이다. 그런 경우 우리를 지지할 사람이 여기에 몇이나 있겠는가?)

그날밤 《우크라이나》호텔의 화려하고 아늑한 식당에서 환영연이 있었다. 인차 온다던 리지야 꾸즈네쪼바는 그때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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