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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평양은 선언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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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1-05-25 21:05 조회3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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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1

바다가 백사장에 세워진 차일의 서늘한 그늘밑에 로년기에 이른 한 사나이가 앉아있었다. 그는 두다리를 퍼더버리고 앉아 해수욕장을 시름없이 바라보고있었다.

하늘에서는 백열로 타는 해가 이따금 새파란 빛을 눈부시게 뿜으며 이릉거리고 바다에서는 싯허연 갈기를 날리며 달려드는 파도와 헤염치는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왁작 끓어번지고있다.

그러나 저 멀리 수평선쪽은 고요하다. 조으는듯 까딱 움직이지 않는 수평선우로는 눈같이 희디흰 뭉게구름이 층층을 이루며 소리없이 부풀어오른다. 뭉게뭉게 피여난 그 구름은 어느덧 대양에 떠도는 얼음산같이 보이며 가녁이 온통 은백색으로 번쩍이더니 별안간 신기한 움직임이 생긴다. 밑에서 무서운 폭발이 인듯 구름덩이들이 산산 부서져 어마어마한 눈사태처럼 허물어져내리면서 흩어지고 그속에서 여러갈래의 구름회오리가 솟구쳐오른다.

사나이는 그것이 기류의 조화로만 여겨지지 않아 한숨을 조용히 내쉬였다.

그는 사회과학원 한 연구소의 부소장으로서 국제로동운동사 전문가이고 일찌기 전공부문의 심도깊은 저술들로써 력사학박사의 학위도 받은 류수진이다.

사치와 향락을 멀리한 한생의 학구적인 사색과 집필의 나날이 이마와 미간, 눈꼬리에 그려놓은 주름살들탓인지 쉰몇이라는 나이에 비하면 좀 겉늙어보이는 얼굴이다. 다른 과학분야에 비하여 론쟁도 적고 성공과 실패의 파동이 심하지 않은 분야에 종사하는데다가 나이를 먹으면서 학술적인 권위도 생기고 생활토대도 든든해져 그의 생활은 비교적 평온하게 흘러왔다. 깊은 강물의 유유한 흐름처럼…

두달전 류수진은 인민경제대학에 초빙되여가 졸업을 앞둔 당일군반 학생들앞에서 쏘련과 동유럽나라 당들의 최근 동향에 대하여 강연을 하였었다.

그때 한 청강생으로부터 신랄한 론박을 당한 일이 있었다.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서 제시간에 잠들지 못하고 서재에서 서성거리다가 쏘파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래일 그 청강생을 다시 만나볼가 하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복강안에서 바늘로 찌르는듯 한 아픔과 함께 불쾌한 전률을 느꼈다.

이전에도 이따금 있었던 일이여서 순간적인 신경발작이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밤이 깊어갈수록 아픔은 점점 더 심해졌다. 자정이 지나 그는 온몸을 비트는듯 한 무서운 동통을 이기지 못하여 안해를 부르고 말았다. 그다음은 구급차, 수술대… 그때 일들이 악몽처럼 떠올랐다… 낮게 드리운 외과수술조명등의 차거운 백광, 에텔마취, 아, 이렇게 죽는가? 함성을 내지르고싶은 공포… 수술대곁에 둘러서있는 집도의사, 마취의사, 보조의사, 간호원들의 긴장한 얼굴들, 이마와 미간에 맺힌 땀방울들, 그들뒤에 나란히 서있는 외과과장과 기술부원장이라는 사람은 위생모를 눈섭까지 눌러쓰고 마스크를 끼였는데 엄엄하면서도 크게 뜬 눈으로는 자기의 배쪽만 지켜보고있었다. 이 지식인의 내장장기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하고싶은 심술궂은 호기심이라도 들었단 말인가. 서서히 회오리치는듯 한 은회색 안개바다… 그속에서 소곤소곤 주고받는 이상야릇한 말소리들이 다른 행성의 언어처럼 들려왔다.

환자는 라틴어상식도 좀 있어 종물이 악성이 아니라 양성이라는 말을 알아들었다. 세상에 다시 태여난듯 한 환희가 북받쳐 환성을 터뜨리고싶었다.

그는 수술후 기적적으로 회복이 빨라 여기 바다가 료양소로 실려왔었다…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있으며 사람들의 생활에 어떤 곡절이 있는지 아랑곳없이 행복에 한껏 취하여 바다물속에서 희희락락하는 청춘남녀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는 차일의 그늘밑에 번듯이 드러누웠다.

습관대로 뜨거운 모래를 한줌 또 한줌 복부의 수술자리에 덮었다. 따끈하면서도 상쾌한 기운이 수술자리로 짜르르 슴배여들고 불모래찜질에 목덜미며 잔등, 다리가 시원하게 풀리며 온몸이 노근해졌다. 그는 눈을 감았다. 선선하게 불어드는 해풍과 싱그러운 해당화의 향기, 파도소리, 청춘남녀들의 환성… 이 바다가 대자연의 교향곡속에서 화려한 장식음처럼 들려오는 갈매기들의 부드러운 울음소리는 그를 혼곤히 잠들게 하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가,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 못할 비몽사몽간에 풀향기 같은 싱그러운 기운이 풍겨오고 다정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듯… 아버지… 아버지…

눈을 떴다. 파도소리, 쪽빛하늘에 날아예는 흰갈매기…

딸 성희가 곁에 무릎을 꿇고앉아 방긋이 웃는 얼굴로 내려다보고있었다.

딸의 손목을 잡아보고서야 꿈이 아닌것을 알았다.

《아니 네가 어떻게?…》

《그저 보고싶어서… 엄마가 아버지 좋아하는거랑 잔뜩 꾸려주며 가보라고 했어요.》

류수진은 그제야 생시라는것을 깨닫고 일어나 앉았다. 성희는 아버지의 잔등에 붙은 보석가루같은 모래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아이적말투로 물었다.

《좀 나아? 아이. 잔등이랑 어깨랑 멋있게 익었는데…》

《허, 네가 이렇게 나타나다니, 정말 꿈같구나. 허허…》

《휴가날자에서 이삼일 앞당겨 떼냈지요.》

《오면서 고생은 안했니?》

《길에 나서면 난 언제나 일이 잘돼요. 이쪽으로 오는 승용차로 대도로를 따라 씽씽 날아오니 시간도 얼마 안걸려요. 료양소에 오니 바다가로 나갔다지요. 아버지 호실에 짐을 두고 해수욕복만 가지고 뛰여왔어요.》

바다바람에 윤이 흐르는 향긋한 머리칼을 날리며 밀려드는 파도를 바라보는 처녀의 눈에서는 대자연에 안긴 희열이 불꽃처럼 타올랐다.

《얘, 들어가서 시원하게 해수욕부터 하려무나.》

《야, 바다! 바다! 아이, 어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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