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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약의 나래 5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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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1-05-18 19:16 조회3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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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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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쁘찌히국제시장이 열리는 봄철이 눈앞에 다가왔다. 석홍범네 연구집단은 몇달동안 초고압유압프레스에 콤퓨터에 의한 자동조종체계를 도입했다. 희천공작기계공장에서 수자조종식자동선반을 생산한 기술을 자동화연구소의 도움밑에 창조적으로 적용했다. 첨단전자공학기술을 적용하여 보다 훌륭히 완성된 프레스를 국제렬차로 라이쁘찌히에 실어보냈다.

그로부터 한주일후였다. 석홍범과 양명심은 도이췰란드로 떠나려고 평양교외의 비행장으로 나갔다. 그들을 배웅하려고 림수봉과 양영복이 한발 먼저 기다림칸에 와있었다. 손녀의 련락을 받은 양영복은 어제 평양으로 왔던것이다. 나란히 쏘파에 앉아서 줄곧 출입문을 지켜보던 림수봉과 양영복은 기다림칸으로 들어서는 두 청춘의 모습에 눈앞이 황홀했다. 그들의 용모와 차림이 몰라보리만큼 우아했던것이다. 흰 샤쯔에 자주빛넥타이를 매고 연회색봄외투를 입은 석홍범은 보기 좋은 용모가 한결 더 준수하게 돋보이였다. 그도 그렇지만 평소에 수수해보이던 양명심은 완전히 딴 처녀처럼 보이였다. 봄철의 정취가 어린듯 한 보라빛양복에 려행용트렁크를 들었다. 솜씨있는 미용사의 손을 빌려 단장을 한 머리와 연하게 화장을 한 얼굴은 옷차림과 조화되여 처녀의 세련된 미를 한껏 자아냈다. 그들은 청춘시절에 살고있었지만 지난 몇해동안 몸을 가꾸거나 화려한 차림을 하는데 관심을 돌려본 일이 없었다. 게을러서도 아니였고 푸수한 차림을 좋아해서도 아니였다. 탐구의 낮과 밤을 이어가며 매일같이 기름을 다루다보니 자연히 옷에 시커먼 기름이 게발리게 되였다.

네사람은 길다란 쏘파에 자리를 같이하였다. 양영복이 손녀를 자기옆으로 이끄는 통에 석홍범은 림수봉의 옆에 앉았다. 명심의 옆쏘파에 앉은 금발머리외국인청년은 처녀의 아름다운 자태에서 눈길을 뗄줄 몰랐다. 몸을 명심의 곁으로 기울인 그는 기회만 있으면 무슨 말인가를 건늬여보려는 눈치였다.

양영복은 조국을 떠나 멀리로 날아가게 될 손녀가 걱정되여서 다심히 당부를 하였다.

《얘야, 외국려행을 한다고 마음이 들떠서 실수를 하는 일이 없도록 해라. 우리 나라처럼 다른 나라 사람들의 정신생활이 건전할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의 탕개를 풀었다가는 랑패를 볼수 있다. 거기 사회풍조가 나날이 어지러워진다고 하더라.》

《알고있어요.》

명심은 지난 며칠동안 려행준비를 하면서 그 나라의 최근사회정세에 대해 깊은 리해를 가지였다. 굳이 깨우침을 주지 않아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잘 알고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로파심을 가지고 타이름을 계속했다. 그곳의 기후풍토가 우리와 다를테니 탈이 나지 않도록 하여라, 호텔에 들어서 잠을 잘 때에는 안으로 걸쇠를 단단히 걸어라.…

《할아버지, 절대로 실수를 하지 않을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명심은 이마를 찌프리며 할아버지의 자심한 타이름을 밀막았다. 그냥 있으면 언제까지나 계속될상싶었다. 옆에서는 림수봉이 석홍범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근년간에 외국려행을 여러번 하였고 라이쁘찌히국제시장에도 다녀온바 있는 그의 이야기는 반드시 필요한 내용이였다.

명심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였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어깨를 두드리며 주의를 자기한테로 이끌었다.

《내가 연구소를 떠나올 때 말이다, 박치영이가 너의 소식을 듣더니 나더러 축하의 인사를 꼭 전해달라고 하더라.》

《그래요?》

명심은 가볍게 놀라며 할아버지의 낯색을 살폈다. 할아버지자신도 까맣게 잊고있던것을 비로소 떠올린듯 한 표정이였다. 아직은 자기들 사이에 얽혀졌던 복잡한 관계를 모르는것 같았다.

《그 동무가 연구소에 돌아온 후 연구사업을 잘하나요?》

어쩔수없이 관심이 가는것이여서 그렇게 물었다. 한때는 영원히 머리속에서 그를 지워버리려고 했으나 그럴수가 없었다.

《연구사업을 잘하지. 그전하고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였다.》

《모르지요. 세월이 흐르면 그 허영심이 또 나타날는지…》

《아니다. 그도 사람인데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을거다! 연구소에 다시 돌아왔을 때 그 사람이 우리 집에 왔댔다. 내앞에서 용서를 빌며 자기 심정을 터놓았다. 쓰라린 체험을 거쳐 새롭게 느끼고 깨달은바를 고백하는 그 심정이 어찌나 진실하고 절절하였던지 내 눈시울이 다 뜨거워지더라. 워낙 령리하고 사리도 밝은 사람이여서 자기를 돌이켜볼줄 알더구나. 부업농장에 나가서도 연구사업을 계속해서 매우 귀중한 발견을 하였다.》

명심은 더 묻지 않고 차분히 눈시울을 내려깔았다. 박치영이 새로운 출발을 한다니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노여운 감정은 깨끗이 가셔지지 않았다.

기다림칸의 고성기에서 표찍는 시간이 되였다고 알리였다.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이 일어서며 실내가 뒤설레였다. 모두가 활짝 열려진 나들문들로 나갔다. 배웅을 하던 사람들은 전송대쪽으로 향했고 석홍범과 양명심은 나들문으로 나갔다.

활주로에 들어선 대형려객기는 사다리가 다가오자 객실문을 열었다. 다른 손님들과 함께 비행기에 오른 석홍범과 양명심은 오른쪽 세번째 좌석에 앉았다. 미구하여 려객기는 동체를 떨며 뢰성같은 동음을 울리더니 활주로를 따라 살같이 내달렸다. 그들은 타원형기창으로 밖을 내다보았지만 전송대에서 손저어주는 사람들을 가려볼수 없었다. 창공을 향해 솟구쳐오르는 무서운 속도에 땅우의 모든것은 혼잡을 이루며 순식간에 아득히 멀어져버렸다. 고도를 잡은 비행기는 어느결에 조국의 령공을 벗어났다. 눈아래로 동북아시아의 대평원이 흘러갔다. 비행기는 얼마후부터 광활한 씨비리의 천리수해를 횡단했다. 그들은 노보씨비리스크비행장과 모스크바비행장을 거쳐서 이틀만에 라이쁘찌히에 도착했다.

석홍범과 양명심은 도착한 다음날에 시내를 구경했다. 동부베를린에 주재하는 우리 대사관의 한 일군이 그들을 안내하였다. 통역을 겸한 그 일군은 젊은편이였는데 라이쁘찌히의 유구한 력사와 시내의 고적들을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석홍범과 양명심은 조국을 떠날 때 이 도시에 대한 초보적인 리해를 가지였다. 그러나 정작 현지에 와보니 느낌과 인상이 새로왔다.

라이쁘찌히국제시장이 열리게 된 때로부터 200년의 력사가 흘렀다. 현대에 이른 이 국제시장은 단순한 상품교류의 성격을 벗어나 과학기술의 교류와 보급의 거점으로 되였다. 현대의 상품경쟁은 곧 과학기술경쟁이라고 할수 있으니 그럴수밖에 없었다. 제품에 도입된 과학기술의 높이에 따라 체육경기에서처럼 순위가 결정되고 해당한 상과 증서가 수여되기 시작했다. 국제시장에 부여된 과학기술경쟁의 새로운 성격은 날을 따라 짙어갔다.

워낙 라이쁘찌히는 오래전부터 과학문화가 발달된 도시로 알려졌다. 다른 나라 학자들의 행적도 이 도시에 수없이 남아있다. 로씨야의 학자 로모노쏘브도 이 도시를 다녀가면서 후세에 길이 전해오는 하나의 일화를 남기였다. 그는 어느 골목의 맥주집에 들려 맥주를 마셨는데 그 값을 물지 않고 가버렸다. 맥주를 마시면서 과학적사색에 깊이 빠져버렸기때문이라고도 하고 맥주맛이 하도 좋아서 만취되여버렸기때문이라고도 한다. 어느 설이 진짜인지는 알수 없지만 그 맥주집에는 어느때 로모노쏘브가 맥주를 마셨다는 간판이 오늘까지도 자랑스럽게 걸려있다. 유명한 명사들의 행적을 말해주는 이러한 간판은 흔히 이 도시의 오랜 건물들의 정면에 나붙어있다. 과학자들뿐이 아니였다. 괴테와 하이네, 슈벨트와 바하… 각이한 력사적시대에 살면서 인간을 아름답고 고상한 세계에로 이끈 유명한 작가, 예술인들의 발자취도 거리와 골목들에 찍혀져있었다. 괴테가 손님들에게 《파우스트》의 한구절을 읊어주던 다방은 유구한 세월의 비바람속에 석조벽체가 거멓게 그을렸지만 중세기부터 문화의 거점으로 이름높던 도시의 력사를 그대로 말해주고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세계적판도에서 인류의 지혜를 높이 자랑해온 라이쁘찌히, 과거의 력사와는 대비할수없이 눈부신 속도로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오늘에 자기들의 창조적지혜의 산물을 안고 찾아온 조선의 청년과학자들은 이 도시에 어떤 흔적을 남기게 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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