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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전환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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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1-03-11 18:11 조회3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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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저녁.

한창수는 외출복을 갈아입고 나섰다.

키가 후리후리하고 얼굴은 구리빛인데 잘된 주물품처럼 나무랄데 없이 체격이 쭉 빠졌다.

시커먼 눈섭, 빛나는 눈, 덩실한 코마루. 그 모든것이 남성미를 잘 나타내였다. 다만 다리의 상처가 이따금 마치였지만 그럴수록 그는 천연스레 시적시적 걸으려고 애를 썼다.

그는 생각에 잠기였다. 애정이란 이렇게도 복잡한것인가.

포기하자, 망각하자 하면 더욱더 검질기게 눈앞에 명옥의 모습이 떠오르군한다.

시계를 보니 아직 30분은 있어야 했다. 그는 일부러 마음의 안정을 보이느라고 슬슬 휘파람을 불었다. 《샘물터에 물을 길러 동이 이고 나갔더니…》

《여기 있어요.》

《?!》

한창수가 고개를 번쩍 들고 휘둘러보니 바로 한걸음뒤에 명옥이가 서있지 않는가. 처녀는 땅에서 솟은것처럼 나타나 그를 놀래웠다. 명옥이 사실은 벌써부터 와있으면서 한창수가 언제쯤 나타나는가하여 시계를 보고 재던중이였다. 약속시간 전인가 아니면 후인가. 상대방의 열정을 가늠하는 징표로 될수 있기때문이였다.

한창수는 놀라운 눈길로 처녀를 바라보았다.

어제저녁에도 불빛속에서 그새 변모된 명옥의 모습을 가려볼수 있었다. 쌍까풀진 눈, 오똑하니 들린 코, 도드라진 입술, 그것이 갸름한 얼굴과 신비로울만치 잘 어울리여 방금 망울을 터친 꽃송이같이 보이였다.

어째선지 그한테서는 무대에서 다스려지고 가꾸어진 인공미가 아니라 순수한 자연그대로의 미가 느껴졌다.

한창수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였다. 그들은 강기슭의 공원으로 나섰다. 살구나무가지들에는 이제 곧 피여날 꽃망울들이 연분홍색으로 부풀었다.

한창수가 장의자를 가리키며 자리를 권하자 명옥이는 그옆에 와 앉더니 웬일인지 손가방을 열고 봉투 하나를 꺼내였다.

한창수는 담배를 붙여물고 눈길을 피하며 멀리 강하구쪽을 바라보았다. 저녁안개가 뽀얗게 서려 강줄기는 멀리까지 보이지 않았다.

《이걸 읽어보세요.》

명옥이의 음성은 약간 떨리였다.

《그게 뭔데.》

한창수는 봉투를 받아들면서 저편의 눈을 쳐다보았다.

편지 겉봉에는 《한창수동무 앞》이라고 하였을뿐 보내는 사람의 주소도 이름도 적은것이 없었다. 편지치고는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한창수는 이리 뒤집고 저리 번지고 하였다. 명옥이가 입을 열었다.

《그 편지는 지금 보아도 되고 차츰 후날 보아도 됩니다. 우리 이모부가 창수동무를 도와주기 위해 보내는것입니다. 어머니가 아버지몰래 가지고가라 해서…》

여기까지 말한 명옥이는 그 편지로 하여 어떤 면구스러운 일이라도 당한듯 얼굴이 빨갛게 되였다. 그는 잠간 동안을 두었다가 고개를 돌려 말하였다.

《창수동무, 난 여기 와서 보고… 창수동무가 왜 나같은 녀자를 두고… 아니 그런게 아니라 왜 회답도 없이 있었는지 그걸 알게 되는것만 같아요.》

이렇게 조심스럽게 말을 해놓고는 뒤말을 잇지 못해 안타까이 숨을 몰아쉬였다.

《아니 그건 도대체 무슨 소리요?》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창수가 입을 열었다.

《난 사실 솔직히 말해서 명옥이한테 미안했소. 내 욕심만 부리는것 같아서말이요. 털어놓고말하면 명옥동무와 나는 서로 리상이 다른데 어떻게 내가… 그리구 이런 문제야 강박해서 되는것도 아닌거구… 사실 명옥동문 이제 가수로 무대에서 명성을 떨칠수 있는데 거기를 어떻게 떠날수 있겠소? 난 다 리해하오. 여기에는 명옥동무가 설 무대가 없단 말이요.》

《무대… 무대… 우리 어머니가 하던 말과 똑같은 말을 하는군요.》

그러면서 명옥은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난 이미 여기에 내가 설 무대가 있다는걸 발견하고도 남았어요. 여기에도 내가 설 무대가 있어요.)

한창수는 담배만 대구 갈아대면서 여느때의 그 류창하던 언변은 다 어디 갔는지 말을 못하였다.

명옥이 흥분된 어조로 말하였다.

《난 어제 유상철아바이한테서 많은 얘기를 들었어요. 친애하는 김정일동지께 결의다진대로 여기서 강철기둥이 되겠다고 한 그 영원한 맹세 하나만으로도 창수동무가 나같은 녀자를 따라 평양에 훌쩍 올라갈수 없다는것쯤은 나도 알수 있었어요. 아무리 미련한 녀자라 해도 그것을 모르겠나말예요. 화상을 당하고도 나한테는 말한마디 없이… 전화 한통이면 되는데 평양이 천리인가요 만리인가요.》

명옥은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였다.

창수는 당황해났다.

《아니, 왜 이러우. 왜 이래?》

명옥은 얼굴을 가리운채 흐느끼며 도리머리를 하였다. 이윽고 명옥이는 두손을 내리우고 창수를 곧바로 쳐다보았다. 명옥이의 긴 속눈섭에 매달린 눈물이 원망과 함께 그 어떤 분노로 하여 번쩍이는것만 같았다.

《어쩜 그럴수 있어요? 남의 마음에 불을 달아놓고는 제편에서… 그것도 모르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으니… 머저리처럼…》

《아니요. 명옥이, 난 명옥이를 위해 물러나려고…》

《그만둬요. 그렇게 물러나는 남자라면 난 애당초 여기에 오지도 않고… 창수동문 그런 사람이 아니예요! 그렇게 될수 없어요!》

《명옥이, 진정하오. 진정해.》 그러면서 한창수는 자기가 쥐고있던 편지겉봉을 뜯고 속지를 읽기 시작했다.

한창수동무 앞

나는 명옥의 이모부되는 사람이요. 내가 동무에게 도와줄수 있는것은 평양의 어느 대학을 지망하는 경우 입학할수 있게 극력 떠밀어주겠다는거요. 공장대학을 다닌다는 말을 들었으나 아무래도 주간대학을 나오는것이 자질도 그렇고 발전의 길도 빠를것이요. 단연! 이제 한두달후면 추천사업이 있겠으니 만약 희망하면 알려주기 바라오.

김 인 도

한창수는 뜨적뜨적 읽고나서 속지를 다시 천천히 봉투에 밀어넣었다.

《걱정해줘서 고맙긴한데…》

《됐어요. 그걸 저한테 주세요.》

《왜?》

《글쎄요…》

명옥은 편지를 두손에 받아들고 머리높이까지 올렸다가 북- 소리가 나게 찢어버렸다. 눈살은 매섭게 꼿꼿해지고 입술은 어떻게나 세게 사려물었던지 하얗게 이발자리까지 났다.

《아니 건 왜?》

한창수는 얼떠름해서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내가 어리석었어요… 우리 어머닌 이것으로 동물 옴짝 못하게 할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어머니들이란 그럴수 있지요… 편지를 들고온 제가 어리석었어요. 끝없이 어리석었지요.》

침착하고 거침없는 목소리였다.

한창수는 한손으로 명옥의 손을 잡았다.

명옥은 손을 빼지 않고 애절한 눈길로 한창수의 얼굴만 쳐다본다. 떨어져 앉아있던 그들사이 간격은 어느새 좁혀지고 장의자우에 나란히 붙어앉아있었다. 그러는동안 날이 어두어왔다.

한창수가 말하였다.

《난 사실 유화판 세우는것이나 준공되면 한번 평양에 다녀올가도 생각했댔소. 전상환부부장이 전화로 동무네 집엘 갔댔다면서 그 사연을 나한테 말했고… 명옥동무도 아까 말했지만 친애하는 김정일동지를 만나뵙고 나는 여기서 우리 당을 받들려는 결심이 더욱 확고해졌소. 강철로 우리의 향도의 별이신 그이를 받들겠다는 그 결심말이요.…

명옥이, 우린 참 행복한 세대요… 오늘은 꼭 얘기해야만 하겠소… 전상환부부장이 전우의 의리를 다해 우리들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게 된건 친애하는 김정일동지의 뜨거운 인정때문이였소.》

《네?》

명옥은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이런 사실은 이제는 다 얘기해도 될것 같아서 말하는거요. 알겠소?》

명옥은 눈물이 가랑가랑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러다가 창수의 큰 가슴에 얼굴을 와락 묻었다.

잠시후 창수가 입을 열었다.

《명옥이, 우리는 그이의 축복을 받고있소. 향도의 별이 우리를 축복하고있단 말이요.》

한창수는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찬란한 별들이 하늘에 금싸래기처럼 한벌 쫙 깔리였다. 명옥이도 고개를 쳐들었다.

유독 강렬한 빛을 뿌리는 별이 하나 머리우에 떠서 그들을 내려다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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