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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전환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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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1-03-05 18:47 조회3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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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튿날 저녁이였다.

《가만, 여기서…》

김정일동지께서 차를 세우라고 손짓을 하시였다.

운전수는 급히 제동을 걸면서 돌아다보았다.

《좀더 갈수 있습니다. 저 골목을 지나서…》

《아니, 여기서 내리겠습니다.》

전조등불빛에 자동차 하나가 겨우 빠져나갈만한 길이 보이였다. 어데가서나 현관어구까지 차를 바투 들여대는것을 싫어한다는것을 잘 알고있는 운전수였지만 좀더 가도 된다고 보았던것이다.

《준비한걸 좀 들어다주시오. 그리고 차를 가지고 먼저 가시오. 갈 때는 혼자 걸어가겠습니다.》

그이께서는 어둑컴컴한 골목으로 들어가시였다. 언제인가 한번 여기를 지나다가 전상환이 자기 집이 저기라고 해서 알아두었던 기억을 더듬으시는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어제 우연히 수첩을 번지시다가 얼마전에 적어넣은 전상환의 생일을 띄여보게 되시였다.

《1월 24일 전상환 생일.》

이름밑에는 붉은줄이 그어져있었다. 이렇게 적어서 기억에 남게 하려는 생각은 허담이 전상환이와 의절한다고 격분해서 말하던 그때부터였다. 그때 허담은 생일이 5월이 되기도 하고 8월이 되기도 하는 이상한 점이 전상환에게 있다고 말한적이 있었다. 그래 전상환이 속해있는 세포에 물었더니 공식적으로 1월 24일로 통하고있다고 하였다. 생일이 분명치 않은것은 일찌기 부모를 잃은때문인데 50년대까지는 적당히 둘러대며 지내다가 입당청원서를 쓸 때 자기가 군대에 입대하던 날을 생일로 정했다고 말했다는것이다.

(우선 그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어야지. 생일날자마저 오락가락했다는 정도니까 지난날에 얼마나 쓸쓸한 생활을 해왔을것인가…)

그이께서는 성큼성큼 걸어서 골목을 벗어나 벽돌담장을 끼고 돌아가시였다. 마당에 들어서시면서 《계시오?》 하고 소리를 치자 잠시후 현관문이 드르륵 열리면서 뜨개옷을 걸친 녀인이 나타났다. 전상환의 안해 금순이다. 처음에는 누군지 몰라 두릿두릿하다가 《아유!》 하고 소리를 치면서 방안으로 되들어가는것이였다. 인차 안에서 웃옷에 팔을 꿰면서 전상환이 달려나왔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전상환은 인사를 하는 한편 그이의 팔을 잡은채 방안으로 들어갔다.

《오늘 이 집에 좋은 일이 있다기에 잠간 들려보려고 왔습니다.》

《좋은 일이라구요?》

더욱더 얼떠름해진다. 서재에 들어가 의자를 권하면서 전상환은 송구스러워 쩔쩔매고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책이 가득 꽂혀있는 서가를 둘러보면서 예고도 없이 밤중에 문득 나타나 미안하다고 하시였다.

《정말 어려운 걸음을 하셨습니다. 시내복판이긴 하지만 너무 외진데가 돼서 쉽게 들릴데가 못됩니다. 게다가 길도 좋지 않고…》

현관에서는 운전수가 지함을 들여놓는 소리가 났다.

《아니 이게 뭡니까?》 하는 녀인의 목소리가 방안에까지 들려왔다.

이윽고 금순이는 두 딸아이를 앞세우고 서재에 들어가 큰 아이 금옥이, 작은아이 은옥이를 차례로 인사를 시키였다.

《요 큰것은 음악대학부속 인민반에서 피아노반이구요 작은건 금년에 학교에 가게 되는데…》

전상환은 은옥이 입학문제를 내놓을가봐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도 그렇게까지는 되지않았다.

《아니 이런줄 몰랐는데 이 집에 후대들이 착실하게 자라고있습니다. 인물도 좋고 둘이 다 건강한것 같습니다.》

그이께서는 얼굴이 갸름한 큰 아이를 오른쪽에 그 다음은 신통히도 둥글둥글한 어머니를 닮은 작은아이를 다른쪽팔에 끼더니 량쪽에 번갈아가며 볼을 비비시는것이였다. 아이들은 너무 좋아 해죽거리고있다. 금옥이의 얼굴에는 금시 함박꽃같은 웃음이 어리였다. 하지만 전상환은 그런것에 관심할 여유가 없이 담배를 권한다 방석을 내놓는다 하며 당황해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지함을 터쳐 술병을 꺼내고 통졸임이며 당과류들을 내놓았다. 두리반에 주안상이 차려졌을 때 그이께서는 삼로주병마개를 뽑고 유리잔에 손수 술을 부으시였다.

《자! 한잔 듭시다!》

그이께서는 잔을 들어 전상환이 앞으로 내드시였다. 전상환이도 잔을 들어올리기는 하였지만 어떻게 인사를 차려야 할지 몰라 손이 알릴락말락 떨리기까지 하였다. 간혹 있을수 있는 가정방문정도인줄 알았는데 술까지 권하는것을 보면 아무래도 무슨 곡절이 있을상 싶었다. 전상환은 덮어놓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면서 술잔을 찧었다.

《별스럽게 생각할건 없습니다. 오늘이 부부장동무의 생일이라기에…》

이건 또 무슨 말씀인가. 실성한 사람처럼 멍청해진 전상환은 얼결에 한마디하게 되였다.

《저는 생일이… 없습니다.》

《생일이 없다니요.》 하고 그이께서는 머리를 저으시였다.

《당세포비서동무한테서 들으니 분명 오늘이 맞습니다.》

《네?…》

마치 허탈상태에 빠진 사람처럼 전상환은 긴 한숨을 내쉬면서 그이께서 하시는대로 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순간 눈굽에서 이슬이 떨어지면서 술잔을 때렸다. 뒤이어 목이 꺽 막혔다가 후욱 내불리면서 마치 비틀어짜는것 같은 숨소리를 내였다.

《부부장동무! 왜 이럽니까. 이렇게 되면 저의 립장이 난처해지지 않습니까. 웃으십시오. 유쾌한 마음으로 몇잔 듭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술병을 들어 억지로 잔을 비우게 하고 또 한잔 부어주시였다.

전상환은 상우에 놓인 술잔을 붙잡은채 머리를 숙이고있었다.

이야기판이 벌어져 고향이나 생일 이야기가 나오는 때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싶던 전상환이였다. 나서자란 고향이 어데이고 언제 어데서 태줄을 끊었는지를 모른다고 해서 그 당사자인 전상환이 잘못은 아닐테지만 그래도 그는 그럴 정도로 기구했던 자기 운명을 감추어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래 여기저기 적당히 고향을 둘러대기도 하고 생일같은것은 때에 따라 얼버무려 넘기군했었다.

그런데 빠질 구멍이 전혀 없게 된것은 전쟁시기 입당을 할 때였다. 그래 입당청원서에 군대에 입대한날 즉 전쟁이 터지기 전해 1월 24일을 생일로 정해버리고말았었다.

결혼한후에도 안해되는 사람이 생일을 차리자고 하면 공민증에 잘못 올렸다고 하고 음력이기때문에 잘 맞지 않는다고 두루 핑게를 대서 대강 넘겨버리군했었다.

며칠전에 안해가 은옥이 입학문제를 걸고 생일에 한턱 잘 내겠다고 롱을 할 때도 화증을 내서 거절해버린것이 그런 사연때문이였다.

그것이 바로 오늘이였다. 감감 잊고있던 아픈데를 불시에 헤쳐놓게 되였다고 보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잠간 생각에 잠기시였다.

기분을 돌리자면 시간이 좀 걸릴것이라고 보신 그이께서는 앞에 앉아 눈이 올롱해 쳐다보고있는 아이들의 팔을 잡아일으키시였다.

《자! 우리 노래 하나 불러볼가요? 금옥이가 먼저 불러야지요. 언니니까. 무슨 노래 부를가요.》

신통히도 아버지를 닮은 계집애는 사과알같은 볼에다가 손가락을 눌러대고있다가 일어나 발을 모아 자세를 바로하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내가 입은 저고리 색동저고리

    아롱다롱 무지개 정말 고와요

    공장에서 돌아오신 아빠앞에서

    …

그이께서는 먼저 박수를 쳐주고는 팔을 끌어 무릎우에 앉히시였다.

그다음은 은옥이 차례였다. 어머니 품에 안겨있던 은옥이는 서슴없이 일어나 유치원에서 배운 동요를 읊었다.

    노랑나비 날아와 꿀 좀 주세요

    안됩니다 안됩니다…

    잉 잉 울다가…

뜨개옷소매밑으로 포동포동한 팔이 내놓였는데 그것으로 재롱스럽게 형용까지 하고있다.

또 박수가 일어났다.

그이께서는 다른쪽무릎에 은옥이를 또 앉히고 칭찬을 해주시였다.

그러는사이에 한껏 격해졌던 전상환의 기분이 얼마간 누그러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박수도 치고 그윽한 눈길로 아이들과 한껏 기뻐난 자기 안해를 둘러보기도 하였다.

다시 술을 붓기 위해 전상환이 병을 들고 그이앞으로 허리를 굽히였다.

《제가 한잔 붓겠습니다.》

그는 술병을 두손으로 받쳐들고 잔을 향해 기울이였는데 몇번이나 전주어서야 겨우 잔을 채워낼수 있었다.

《저는 오늘 세상에 태여나서 처음으로 진짜 생일을 쇠게 되였습니다. 오늘은 꿈에도 생각할수 없었던 영광을 받아안았습니다.》

《아! 아 왜 이럽니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전상환은 또 넘어나는 눈굽을 손끝으로 훔치면서 당황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예민하게 전상환의 마음속을 지켜보고계시였다. 이런 때 약간이라도 자극을 가하면 엉엉 울음이라도 터질수 있었다. 그래서 또 분위기를 돌려세우려고 하시였다.

《자! 그럼 이번에는 피아노반이라는 언니의 독주를 하나 들어볼가요?》

피아노소리가 나오자 아이들은 물론 금순이의 눈이 대뜸 빛을 뿌리였다.

《야 금옥아, 그거 있지. 요새 련습한거 한번 쳐봐!》

빨간세타를 입은 금옥이는 사뿐히 일어나더니 사이문을 열고 웃방에 올라가 피아노에 마주앉았다. 약간 주저하는 눈치를 보게 된 금순이는 손수 옆에 붙어서서 악보를 번져주며 부추기고있다.

《어서!》

금옥이는 고개를 숙였다가 률동적으로 들어올리며 건반을 두드리였다. 한소절이 지나가자 《봄노래》라는것이 인차 알리였다.

     푸른 산 기슭에 기름진 들가

     황철나무 한그루 비껴선 마을에

     …

김정일동지께서는 곡을 따라 노래를 부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피아노옆으로 다가가시였다. 눈부시게 하얀 건반우에서 포동포동한 아이의 손가락이 춤을 추고있다. 마치 잔잔한 물결우에서 뱅어무리가 뛰노는듯하였다. 온몸이 률동적으로 움직이였다. 그것이 음향과 어떻게나 잘 어울렸던지 피아노라는 악기에서가 아니라 한줌만한 아이의 온몸에서 울려나오는것처럼 보이였다.

그이께서는 박자에 맞추어 손을 들어 흔드시였다.

방안에 음악이 가득차게 되자 방금전까지 격해서 눈물을 흘릴번하던 전상환이와 그의 안해 그리고 아이들도 모두가 흥겨운 기분에 잠기였다.

음악이 끝나자 모두 박수를 쳤다. 계속해서 또 다른 곡이 연주되였다.

금옥이가 의자에서 내려 인사를 하자 김정일동지께서는 기분이 흐뭇해지시였다.

《잘 쳤다. 참 잘했어!》

새별같은 눈을 반짝이며 금옥이는 그이의 목을 꼭 그러안고 방글방글 웃고있다.

전상환은 코마루가 찌르르해났지만 억지로 참았다.

《다음은 우리 은옥이!》

금순이는 때를 놓치지 않았다.

《이 애는 지금 창광유치원 높은반인데 피아노를 좋아한답니다. 개별수업도 좀 받았습니다.》

나이보다 일찌기 몸이 나기 시작한 금순이는 풍만한 몸을 잽싸게 놀려 아이를 들어 피아노앞에 앉히였다. 그러면서 남편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 얼핏 돌아다보며 눈치를 살피였다.

《어서쳐봐!》

아이는 어리둥절해서 어머니를 쳐다본다.

《어서, 그거 있잖니, 그거!》

오래전부터 입학시험때 쓰려고 준비한것이였다. 잠시 얼떠름해졌던 아이는 준비자세를 취했다가 힘을 주어 건반을 누르기 시작하였다.

       인민군대아저씨 안녕하세요

       길가다가 만나서 인사했더니

       …

재롱스러운 곡이 흘러나왔다. 고개를 까딱까딱하며 부르는것이 무척 귀여웠다.

이번에는 동생인 은옥이가 그냥 앉은채 피아노를 타고 그옆에는 금옥이가 서서 함께 노래를 불렀다. 청아한 목소리에 맞추어 어른들이 손벽장단을 쳤다.

       …

       우리의 아버진 김일성원수님

       우리의 집은 당의 품

       …

이렇게 되여 한동안 방안에는 흥겨운 노래와 음악이 흐르고 박수와 감탄이 어울려서 집안에는 전에 볼수 없었던 단란한 분위기가 흘렀다.

《부부장동무! 제 생각에는 이애도 피아노반입학시험을 쳐보게 하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한집에서 음악가가 둘이 아니라 세넷이 나와도 나쁠거야 없잖습니까? 그러지 않아도 후비육성이 강하게 나서고있는데…》

전상환은 고개를 들고 그이를 쳐다보았다. 언제나 그러한것처럼 인자한 미소를 짓고계시였다.

그이께서 언제나 음악을 중시하고 음악에서 남다른 재능이 있으시다는것을 그는 잘 알고있었다. 혁명은 노래와 함께 시작되고 노래를 부르며 전진하고 승리의 상상봉에 올라 노래를 부르게 된다고 한것은 널리 알려진 그이의 명언인것이다. 지어 노래없는 생활은 인간생활이 아니라고까지 하시였다.

《부부장동무는 음악가의 후비를 키울 직책상의무도 있잖습니까?》

《알겠습니다.》

이렇게 되자 얼굴이 활짝 밝아진것은 금순이였다.

오래 끌어오며 말썽이던 은옥이 학교문제가 풀릴것 같았다. 그래 녀인은 흡족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아래방으로 내려갔다.

조용히 말씀하실 기회를 주기 위하여…

다시 술을 붓게 되였다. 전상환은 막혔던 가슴이 열린것처럼 헌헌해져서 붓는족족 술을 마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전상환이한테서 뜨거운 정을 느끼시였다.

《하나 물어봅시다. 부부장동무는 고향도 생일도 모른다고 할 때가 많다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그럴만한 무슨 사연이 있을게 아닙니까.》

《사연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말하자면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 일없겠습니까?》

《어서 시작하십시오. 밤을 새는 한이 있어도 듣겠습니다.》

전상환은 잔을 들어 천천히 마시고나서 입을 열었다.

×


《별로 들어볼만한 얘기는 못되지만 모처럼 들어보시겠다고 하시기에 신통치 못한 저의 과거사이지만 좀 말해보겠습니다.》

전상환은 이렇게 서두를 떼는것이였다.

《아버지는 갓난애인 저를 둘쳐업고 보따리를 인 어머님과 함께 만포선철도공사판을 찾아다녔다고 합니다.》

첫대목에서부터 목이 꺽 막혀 말이 잘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전상환이 단호한 결심을 하였다. 생활자체가 무엇을 반영하고있건 관계없이 사실그대로 말해볼 결심을 한것이다.

…개천을 지나서 향산으로 들어가는 짜부라진 골짜기에 야마무라라는 청부업자가 만포선철길에 다리를 놓고 차굴공사를 벌리였다. 인부는 무한정 요구되였다. 그리하여 안주, 개천, 정주, 선천 등 벌방에서 모집인부들이 보짐을 이고지고 공사판으로 몰려들었다. 그가운데 아직 한돌도 되지 못한 피덩이같은 아이를 업고 젊은내외가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사나이는 갓 서른인 전상환의 아버지였는데 여윌대로 여위여서 목이 한줌이나 되는데 눈에는 흰자위만 번쩍거렸다. 얼마간 가다가 기침을 터뜨리게 되면 땅바닥에 주저앉아 끝없이 가래를 톺아올렸다. 그옆에서 시중을 드는것은 가리마를 타고 머리를 서툴게 쪽진 스물셋인 그의 안해였다. 람루한 옷을 대충 걸치였지만 젊기도 하고 또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그 용모는 가리워내지 못하였다. 며칠동안 강가에서 혹은 바위밑에서 쟁개비를 끓이면서 참을성있게 걷고 또 걸어 마침내 공사판에 이르게 되였다. 아버지는 어렵지 않게 흙을 파제끼는 토목인부로 채용되였고 어머니는 함바집 맨끝에 대충 가마니로 바람가림을 한 부엌에서 밥을 끓이였다.

얼마간 숨이 나가는가 했더니 일이 고된데다가 찬바람까지 터지고보니 아버지는 기침이 더 심해져서 공사판에도 나가지 못하고 자리에 털썩 드러눕게 되였다. 어머니는 아이를 앓는이의 옆에 눕혀놓은채 산에 올라가 끼니에 보탤만한 산열매와 기침에 좋다는 약초를 캐오군하였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한가지 락이 있었으니 그것은 아들 바우가 날이 다르게 자라는것이였다.

시간은 빨리도 흘러 바우가 죽이나마 받아먹게 되고 어떤 때는 담벽을 의지해 한참씩 서있게 되였다. 그런것을 보는 때면 피가래를 톺고있는 아버지도 그렇고 언제나 말이 없기마련인 어머니는 한가닥 위안속에서 눈물짓는것이였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보잘것 없는 이 집을 두고 공사판에서는 벌써 두가지 소문이 동시에 퍼졌다 한다.

그 첫째가 페병환자인 전두석은 오래 살지 못하리라는것과 다음에는 그의 처 곱단이는 보기 드문 절색이라는것이다. 워낙 인심이 거칠대로 거칠어진 공사판이기때문에 잠간동안에 두가지 소문이 하나로 합쳐져 그 미인의 운명은 이제 어떻게 될것인가 하는데로 쏠리게 되였다.

상서롭지 못한 이 소문은 소문으로 그친것이 아니라 가련한 바우네 집으로 사정없이 들이닥치였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뻥가오리》를 쓰고 개화장을 짚은 젊은 안경쟁이가 나타나더니 페병에 좋다는 약과 얼마간의 돈을 주고갔다.

이집 내외는 감지덕지해서 안경쟁이를 신주모시듯하게 되였다. 그런 일이 있은 며칠후부터 이집에 낯선 사나이 하나가 저녁마다 나타나군하였다. 집안공기는 하루가 다르게 싸늘하니 식어갔다. 낯선 사나이는 바우를 무척 사랑하는척하였다. 어떤 때는 사탕봉지를 내놓는가 하면 또 어떤 때는 양말이나 오또기와 같은 놀이감을 사오기도 하였다. 사나이의 출입이 잦아지는것과 동시에 바우 아버지 전두석의 병은 급속히 악화되여 더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되였다. 피가래를 토하면서도 어째선지 녀편네한테 큰소리로 욕설을 퍼붓군하였다.

바우가 첫돌을 쇠고난 다음 아이어머니는 약구하러 간다고하고는 돌아오지 않았다. 소문에는 그놈의 꼬임에 빠져 어데인가 팔려갔다고 하였다. 그런대로 매일 아침저녁으로 가느다랗게 연기가 피여오르던 널판자굴뚝도 숨을 죽이였다. 바우는 밥달라면서 아버지를 흔들어깨우건만 전두석은 아무 대꾸도 없이 천정만 쳐다보고있었다. 하루밤자면 사탕을 한보따리 사온다던 어머니는 이틀, 닷새, 열흘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온 공사판에 소문이 또 퍼졌다.

《야마무라네 식모로 뺐겼다누만.》

《강계쯤 끌고가서 술집에 넘겨주면 황소 한마리값쯤이야 못받을라구.》

《그러니 언제나 고운 녀잔 제것이 아니라니까.》

주색잡기가 란무하는 공사판이지만 그래도 인정은 얼마간 남아있어서 근처사람들이 환자를 극진히 구완하였지만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 전두석은 공사판 맞은편 양지바른 언덕에 묻히고 의지가지없이 된 바우는 함바집 식모칸에서 먹고 자게 되였다.

철도공사판이다보니 작업장이 자주 옮겨지게 되였다. 바우는 여섯살나는동안 함바집을 무려 다섯번이나 옮기였는데 어느날 문득 《은인》이 하나 나타났다. 강계에 집을 두고 목재상을 한다는 50이나 된 《당꼬바지》사나이가 자기 아들로 만들겠다면서 바우를 달라고 하였다. 눈치가 빠르고 엉뎅이가 갑삭한 바우를 데려다가 자기집 심부름군으로 만들자는것이다. 《당꼬바지》는 결코 사람을 빗보지 않았다. 그럭저럭 열살을 넘기게 되자 강계읍안에는 물론 몇십리 거리가 뜬 화전마을이나 산판에까지 잘 다녀오군하였다. 《당꼬바지》는 약간 시간을 지체하거나 기분이 거슬리면 가차없이 매질을 하였다. 《바우야!》 해서 몇초어간에 나타나지 않으면 주먹으로 뺨을 후려치군하였다. 하여 아이의 얼굴에는 늘 시꺼멓게 멍이 지고 퉁퉁 부어있었다. 한때 일본군대 용달업무를 보았다는 《당꼬바지》는 추운 겨울에도 바우에게 랭수욕벌을 주면서 《노기다이쇼두 이렇게 단련해서 큰 인물이 됐던거야.》 하군하였다. 이렇게 되여 어린 바우는 고양이처럼 민감하고 날렵한 동작을 익히게 되였으며 고용살이식, 절대복종의식이 형성되게 되였다.

8.15해방이 열다섯살난 바우의 운명을 휘딱 뒤집어놓았다. 강계읍거리 한복판에도 붉은 기발이 나붓기게 되였다. 바우는 자청해서 밀가루풀을 쑤어가지고 공산당부에서 써준 구호들을 큰 널판자나 굴뚝에 올라가 붙이였다. 그때 들리는 소문에는 읍에 김일성장군부대가 많이 와있는데 거기에는 최현이라고 이름난 장수도 있다고하였다.

시간은 빨리도 흘렀다.

전쟁 3년을 겪고 군대에서 제대되여서는 장자강발전소 건설장에서 일하게 되였다.

… 장자강발전소 건설장에 온지 한돐이 되는 해 봄에 사택마을에 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였다. 나이는 아직 50이 못되였다는데 머리카락이 하얗게 된 마귀할미같은 녀인이 저녁해질녘이면 전상환이 퇴근하는 길목을 지킨다는것이다.

바위틈에 숨어서 전상환이 지나가는것을 본 다음에는 어데론가 사라지군하는데 이것은 필경 전상환을 노리는 마귀일수도 있다고 하였다. 세월이 갈수록 전상환의 가슴속에서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걷잡을수 없이 싹터 올랐다. 화냥년이라도 좋고 악마라도 좋았다. 어머니얼굴을 한번만이라도 보고싶었다. 그래 한번은 휴가를 받고 강계와 만포 근방을 돌아다니며 그럴듯한 사람을 찾아다니기도 하였다. 자나깨나 머리속에 감돌던 수수께끼인 어머니는 멀리 있지 않았다. 해수로 2년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들의 퇴근길을 지켜 먼발치에서라도 바라보군하던 머리가 하얀 녀인은 지팽이에 의지해서 다니다가 끝내는 길바닥에 드러눕게 되였다.

병원에 실려간 녀인은 마지막소원이 하나 있는데 숨이 끊어지기전에 전상환을 한번 만나게 해달라는것이였다. 직장에서 알아본데 의하면 그 녀인은 여기서 시오리 떨어진 발전소건설장 제2공구합숙취사원이라고 하였다.

림종에 이른 녀인은 구급차에 실려 전상환의 집으로 가게 되였다. 방바닥에 반듯이 누운 녀인은 벌벌 기여다니는 이집 젖먹이 딸애를 끌어당기더니 가까스로 몇마디 하였다.

《바우가 딱 이애만해서였지. 난 바우 애비를 살려보려고 몸을 버렸던거란다. 그다음에는 야마무라한테 넘어갔다가 술집에 팔려갔었구! 바우야, 용서해라. 나를 용서해다우. 이 에미를 용서해다우.》

기저귀를 차고 방바닥에 기여다니는 아이에게 이러루한 말을 얼마간 남기고 헉헉 숨을 들이긋기만 하였다. 애기어머니인 전상환의 처는 처량하게 울리는 녀인의 말소리를 토 하나 틀리지 않게 기억해두었다. 전상환이 나타났을때 어머니는 입이 굳어져 말을 하지 못하였다. 다만 눈굽에서 눈물이 솟아오르더니 그것이 드르르 굴러 베개밑으로 떨어졌다.

《어머니!》 전상환은 녀인의 가슴우에 엎어지면서 울부짖었다.

《왜 이제야 나타났어요, 어머니!》 녀인은 잠간 눈살이 꼿꼿해지더니 이윽해서 그것이 아늑한 빛으로 변하였다. 한평생 듣고싶던 어머니라는 부름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야 그것도 단 한번 뇌리를 흔든것이다. 그와 함께 한생을 바쳐 죄를 빌어온 보답으로 자식의 너그러움을 샀다는것을 의식하였다.

《내 아들아!》

《어머니!》

어머니와 아들은 이렇게 만나자마자 영영 헤여지게 되였다.

…방안에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전상환이 당황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전 이렇게… 부모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당의 품속에서 제 운명은 비로소… 그렇습니다. 수령님은 친어버이보다 더 귀중한분입니다. 수령님은 진정 저의 아버지이십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옳습니다. 정말 수령님은 친어버이이십니다. 아까 금옥이와 은옥이도 노래부르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아버진 김일성원수님 우리의 집은 당의 품이라고… 우리는 다같이 수령님을 어버이로 모시고 살고있습니다.》

전상환이 깊이깊이 고개를 숙이였다.

말로 위안하기에는 너무나도 처절했던 전상환의 운명이였다. 이 순간에 김정일동지께서는 동정만을 느끼신것이 아니였다. 전상환이란 한 인간을 깊이 알게 될수록 그에 대한 어쩔수 없이 끓어오르는 정을 체험하시였다.

그는 결코 버릴수가 없는 사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함께 가야할 동행자, 동지로 되여야 한다고 믿고싶으시였다.

수령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참다운 의미에서 동지를 얻는것은 천하를 얻는것이다.

전상환은 결코 비탄에 잠기기 위해서 기구한 운명을 털어놓은것이 아닐것이다. 사람이란 인생의 교훈을 찾을 때면 과거를 돌이켜보기도 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전상환의 집을 나와서 만수대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캄캄한 그믐밤, 결코 밤길이 어둡게만 보이지 않았다. 먼발치에서 인적기가 나서 뒤를 돌아보시였다.

집앞에 바래우며 서있던 전상환이 뒤따라오고있었다. 마주 가서 돌려세울가 생각하다가도 그만두고 내처 걸으시였다. 얼마후에 다시 돌아다보았을 때도 전상환은 역시 어둠속에서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있었다. 문득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슴뜨거운 생각이 드시였다. 전상환은 이때 누구를 바래우러 나온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리고 어디이건 같이 걸어가려는 사람의 비장한 결의에 가득차있는것 같았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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