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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전환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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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1-02-20 21:59 조회3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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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세봉은 가위를 집어들고 편지봉투의 한쪽 모서리를 갈라버리고 속지를 꺼내였다.

독자들한테서 보내오는 편지들이란 대체로 한본세로 서두에 장황한 문안이 있고 나중에 가서 각기 제나름의 용무를 적기마련이였다.

한데 이것은 종이의 겉부터 특이하였다. 눈이 부시게 흰 모조지에다가 또박또박 활자체로 박아썼는데 첫마디에 《위병이 좀 어떻습니까?》라고 하였다.

그래 봉투를 다시 보니 박명길이라고 적혀있지 않는가. 영천책방책임자였다.

년초에 위대한 수령님의 접견을 받기 위해 가있을 때 낯을 익히게 된 다재다능한 친구인데 앞으로 자기도 문학평론쯤 해보겠다는 포부를 가지고있다고 하였다.

그렇게 되자 천세봉은 올방자를 틀었던 무릎을 당겨놓으며 정신을 집중하였다. 단숨에 석장짜리 장문의 편지를 읽고난 그는 《으흠.》 하고 군소리를 지르며 담배를 붙여물었다.

명주실오리같은 푸른 연기가 이마전을 스치며 천정으로 피여오르는데 천세봉은 책상 한옆에 무둑히 쌓인 책무지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 책은 호화장정을 한 장편소설 《안개흐르는 새 언덕》 이였다.

생활이란 항상 이렇게 공교롭기마련인지 신간도서로 나온 자신의 책을 문학동료들에게 기증하기 위해 속표지에 이름을 적고있는데 영천에서 날아든 편지에 바로 그 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반영이 적혀있었던것이다.

배포도 빠르지만 읽기는 또 어느새 읽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저자로서는 그것이 기쁜 일이 아닐수 없는것이다. 그러나 편지내용을 분석해보면 간단히 스쳐버릴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입심도 좋고 박식가인 박명길의 해석이기때문에 그저 그러루한것으로 보아넘길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너무나 판이한 극단인것이다.

편지에는 우선 대장편을 내놓은 저자의 수고에 대해서 치하하는것과 아울러 지금 책에 날개가 돋친것처럼 오는족족 팔리고있는중인데 모두 밤을 새워가며 읽고 론의가 분분하다는것이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전에 없었던 현상이 벌어지고있는데 《좋다》 하는 사람과 《나쁘다》 하는 사람들이 두패로 갈라져 론쟁이 벌어지고있다는것이다.

한번 다시 편지를 읽고난 천세봉의 입가에 빙긋이 미소가 어리였다. 상아물부리가 거느적이 처질만큼 입모습에 긴장이 풀린것이다.

글쓰는 사람들이 바라는것이란 누구나 자기 글이 한줄기 봄바람이 지나가듯이 있으나마나한 그런것이 아니라 적어도 호수에 큼직한 돌덩이를 던진것만치 파문을 일으키는것이라고 말해온 그였던것이다.

그의 체험에 의하면 책마다 그 과정이나 정도는 모두 각이하였다. 초기작품들인 《흰 구름 피는 땅》, 《싸우는 마을사람들》은 서서히 반응이 있었고 《대하는 흐른다.》나 《석개울의 새봄》은 즉시에 파문이 일었다. 그러나 어느때든 독자들이 량극으로 갈라져 론쟁을 벌린적은 한번도 없었다.

이점이 리해되지 않았고 어느 정도 불안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그런데 안타까운것은 무슨 문제를 놓고 어떻게 론쟁하고있다는 내용이 적혀있지 않는 그것이다.

《아! 작가란.》 하고 그는 어깨를 들었다놓으며 긴 한숨을 내쉬였다.

얼굴에는 기쁨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어떤 비관이나 실망도 아닌 어중간한 색갈이 내비쳐있었다.

진한 눈섭, 덩실한 코마루, 기름한 턱, 일상시의 총체적인 인상은 어쨌든간에 지금은 평온하지 못한 그의 심리가 확연히 알리였다.

그가 늘 말하던대로 작가가 작품을 내놓는것은 흡사 산모의 불안에 비길수 있다. 산통이 없는 새 생명이란 있을수 없는것이다. 그러나 일단 낳아놓은 새 생명이 어떠한가 하는것은 산모와는 관계없이 세상사람들이 말하게 되여있다. 그런데 그것이 두패로 갈리여 온전하다, 온전치 못하다, 또는 병신이다 한다면… 필시 여기에는 어떤 약점이 있는것만은 사실이 아닐가. 약점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는 갑자기 등골로 랭수가 흐르는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눈앞에는 영천에서 뵈온 김정일동지의 영상이 떠올랐다. 새로운 혁명문학을 건설할데 대한 그이의 말씀이 있은후 그의 가슴속에는 약간한 불안이 생겨나기 시작했던것이다. 그후 집에 돌아와서는 어느 하루 마음편안한 날이 없었다.

《안개흐르는 새 언덕》이 과연 새로운 혁명문학과 전혀 무관계하단 말인가? 참으로 모를 일이다. 독자들속에 나타나는 불만은 그를 더욱 혼란에 빠뜨렸다.

여하튼간에 그것을 수습하기에는 때가 늦었다. 어떻게 할것인가?…

담배에는 불이 꺼지고 펜을 든 손이 알릴듯말듯 떨리기까지 하였다. 책속표지 뒤등에 이름과 년월일을 적고 《저자로부터》라는 필적을 남기는것이다.

작가로서 당대에 몇번밖에 차례지지 않는 기증본발송에 대한 흥취가 완전히 박산이 나고말았다.

출근시간이 되자 천세봉은 작가동맹에 전화를 걸었다. 오전은 집에서 일을 보고 오후에나 나가게 될것이라고, 하지만 외부에서 용무가 제기되거든 인차 알리라고 하였다. 조용한 시간이 요구되였던것이다. 동맹에 나가기만 하면 사람이 꼬리를 물고 찾아들어오고 연방 전화종이 울며 급히 읽어야 한다는 서류와 원고들이 산더미처럼 쌓이는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요새 하루는 씨붙임때 농사군처럼 그렇게 바쁘고 초조하였다. 영천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교시를 받아안았으며 그에 토대하여 친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는 새로운 혁명문학을 건설할데 대한 구상을 펼치시였던것이다. 직책상으로는 더 말할것도 없고 하나의 소설가로서도 여기에 혼신의 힘과 정열을 다 쏟아부어도 되나마나한 무거운 짐이였다. 우선 먼저 과심이 쏠린것은 새로운 혁명문학을 본격화하는데 있어서 자신부터 어떤 문학적주제를 세우며 어떻게 생활소재를 잡을것인가 하는것이였다.

그리고 여기에 망라되는 작가선정도 해야 한다. 준비정도에 관계없이 너도나도 쓰겠다고 해도 안되는 너무나도 숭고하고 방대한 주제의 령역이였다. 소재의 크기에 비한 작가적준비의 엄청난 부족, 그것이 간단없이 항상 그의 뇌리에 감겨돌아가는것이였다.

오전 10시가 되자 온몸에 벌써 피곤이 몰려왔다.

그는 작가들속에 제일 흔한 《려명형》에 속하였다. 각기 생활습성에 따라 《려명형》, 《백주형》, 《심야형》등으로 나뉘였는데 천세봉은 농촌출신중에 흔한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는 형이였다. 새벽3시나 4시 즉 려명에 일어나 글을 쓰거나 책을 읽군하였다.

그래 오늘도 새벽 4시부터 부시럭거리게 되였던것이다.

오후 3시가 좀 넘어 동맹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동맹으로 나오지말고 국립연극극장으로 직방 나가달라고 하였다. 무슨 일인가 물으니 전상환부부장이 만나자고 한다는데 그쯤 알고 나가면 무슨 일이 있게 될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서둘러 옷차림을 하였다. 바로 그 시각에 국립연극극장 2층동쪽에 위치한 응접실에 전상환이 앉아있었다. 왜 그런지 기분이 그닥 좋은편이 아니였다. 여기까지 안내한 연극단 단장 박승진이 《여기서 잠간 기다려주십시오. 관계자들이 거의다 모였는데 작가동맹위원장이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하고 말했다.

단장은 차를 가져오게 하더니 서둘러 방안에서 나갔다. 언제보나 단장은 령리하고 민첩한 사람이였다. 한데 요새는 그 기질이 더한층 도수를 높인다는것이 알리였다.

직능으로 본다면 함흥극장에서 창작한 연극 《일편단심》이기때문에 국립연극극장에서는 그렇게까지 열의를 보이지 않아도 무방할것인데 박승진은 절대로 그렇게 무관심하지 않았다. 은근히 비치는데 의하면 자기도 갑산출신이기때문에 고향에서 배출된 연극의 원형에 대해서 애착을 가지고있다고 하였으며 적절한 기회가 생기면 박부위원장이 자기더러 《일편단심》의 진척정형을 알아본다는것까지 내비치군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기의 사업권외에 놓인 《일편단심》에 관여하는, 그것도 정도이상 적극적으로 관심하는 타당성을 보이려는것 같았다. 더구나 요새는 자기네 창작단의 연출가 리형걸이 그것을 방조하는 문제가 제기되자 그는 팔을 걷어붙이고 달라붙는것이였다.

전상환은 차를 마시면서 생각에 잠기였다. 요새는 《일편단심》을 놓고 미궁에 빠져 오도가도 못하게 되였다. 며칠전에 경애하는 김정일동지를 만나 사업을 토의하게 되였는데 그이께서는 문득 《요새<일편단심> 때문에 매우 고심하는것 같은데 그건 어떤 고려에 의해서 그러는겁니까, 아니면 진심으로 그것을 꼭 성사시켜야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그러는겁니까?》 하고 물으시였다. 왜 그런지 목이 꽉 잠겨 말이 인차 나가지 않았다. 잠간 망설이다가 그는 침착하게 대답하였다.

《특별히 어떤 고려에 의한것은 없습니다. 그것이 우에서 지시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배뱅이>나 <심청전> 같은것만 공연하는데 비하면 훨씬 혁명생활에 접근하고있다고 보기때문에 밀어보자는것입니다.》

《그렇습니까?》 하고나서 그이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그러나 그때 전상환은 마음이 개운치 못하였다.

무엇이라고 딱히 짚어댈수는 없지만 자꾸 《그렇습니까?》 하고 말끝을 흐리던 그이의 안색 그리고 그 어떤 고려에 의한것이 아니라고 표현했을 때의 자신의 그 어색하던 심정이 다시금 떠오르군하는것이였다.

안락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은 그는 지금 그에 대해서 상기하면서 자신에 대한 불만인듯 낯을 찡그리고있었다. 복도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나더니 박승진이 나타났다.

《다 모였습니다. 여기로 오게 할가요 아니면 지금 모인 제 방에서 그냥… 격식은 필요없으니까요.》

《왔다갔다 할게 있습니까. 나 하나가 가면 되겠는걸.》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부부장동지는 그저 가만 앉아만 계십시오. 모든걸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중요한건 작가와 연출가를 하나씩 방조 붙이는것이니까요.》

단장실도 어지간히 넓었다. 한쪽에는 안락의자가 놓이고 맞은켠과 앞탁에는 걸상이 10여개 놓여있었다. 창작가들이란 모두해서 10여명 되나마나하였다.

전상환이 복도에 나서는데 층계를 막 오르던 천세봉과 마주치게 되였다. 오래간만이라면서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박승진은 작가동맹에서 이번에는 결정적인 대책을 취할 결심으로 위원장동지가 친히 참가하게 되였다고 알려주었다.

천세봉은 불의에 당하는 일이라 무엇에 대해서 결정적인지 왜 자기가 연극에 관계자로 끼여들게 되는지 알지 못해 어리둥절해하였다.

그러나 전상환이 나타난것으로 보면 용무가 결코 단순하지 않은것이라는것만은 짐작할수 있었다.

자리에 모두 앉게 되자 박승진이 일어나 연극 《일편단심》을 단시일내에 성과작으로 수정완성할 안을 내놓고 토론하자고 제기하였다.

그 대책안이란 우선 극작가 한사람에게 떠맡기고 요행수를 바라지 말고 유능한 작가를 더 보충하자는것과 아울러 연출가도 그렇게 해야겠다는 안이였다.

시간이 얼마간 흘렀지만 누구도 선뜻 입을 열지 않았다. 숨막힐듯한 침묵이였다. 전상환은 바로 이 침묵이 작품을 《흔들레판》에서 끌어내지 못하는 원인이라고 보는것이다. 그러나 극적전환이란 어데나 있는것만큼 이제 그런 계기가 문득 나타나게 될것이라고 믿고있었다.

드디여 박승진이 또 자리에서 일어났다. 50이 넘을 때까지 연극계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는 우선 방안을 쭉 둘러보고나서 담배를 피우며 사색에 잠겨있는 천세봉쪽으로 허리굽히며 말을 하였다.

《위원장동지, 작가동맹에서는 극작가 한사람에게만 맡겨놓고 모르쇠를 하는거야 아니겠지요. 우리는 이 작품에 대해서 위원장동지가 관심을 많이 가지고있다는것을 잘 알고있습니다. 그런데 위원장동지, 어떻습니까. 위원장동지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볼 생각은 없습니까! 그럼 어렵지 않게 걸작이 될수 있습니다. 이야기거리는 좋으니까요.

작가선생이 착안한 <일편단심>이란 제목이 대단히 좋습니다. 뜻이 깊고 부르기도 좋고 간결합니다. 저 작가선생은 연극 <해바라기>로 큰 파문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그건 참 좋은 작품입니다. 그런데 어째 그런지 이번에는 잘 안되는것 같습니다. 물론 매 작품마다 다 헐하게 된다면 그게 무슨 창작이겠습니까. 위원장동지, 우리를 좀 도와주십시오. 자신의 작품처럼 여기고말입니다. 위원장동지 생각엔 어떻습니까?》

이때 극작가 명보는 옆에 앉은 천세봉을 《그렇게 하겠다고 말해주시오.》 하는 눈길로 쳐다보았다.

수첩을 탁자우에 옮겨놓고나서 천세봉은 목이 꽉 잠긴 목소리로 말을 시작하였다.

《아시다싶이 나는 소설이 전문이기때문에 극을 잘 모릅니다. 모르는 사람이 백이 있으면 뭘합니까.》

말은 이렇게 하였지만 내심으로는 너무나 엄청난 문제에 그것도 돌연히 부딪쳤기때문에 저으기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더구나 그를 괴롭히고있는것은 《일편단심》은 혁명문학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순수 인정극으로만 보아지기때문이였다. 그는 옆에 앉은 전상환을 바라보았다. 부부장동무야 내가 이런 마당에 들어설 겨를이 없다는것을 잘 알지 않는가 하는 기분이였다.

그때 문기척소리가 가볍게 나더니 이곳 연극단 부단장이 30대의 젊은 사람 하나를 앞세우고 들어왔다.

《이동무가 연출가 리형걸입니다.》

제낀옷을 입은 키가 자그마한 이곳 부단장이 소개하고나서 리형걸한테 한쪽구석에 놓인 빈 의자에 앉으라고 손짓을 하였다.

그러나 젊은 연출가는 앉지 않고 그대로 한옆에 서있었다. 회의를 시작하기전에 부단장이 데리러 갔는데 자기는 《일편단심》과 아무런 관계가 없기때문에 참가하지 못하겠다고 거절하였다. 그런걸 부단장이 중앙당부부장이 동무를 데려오란다고 말해서야 그를 이자리에까지 오게 할수 있었다.

《이름이 리형걸이라고 했지요?》

전상환은 너그럽게 웃으며 수첩에 적어둔 이름을 한번 보고나서 말하였다.

《그래 동무는 연극영화대학 최우등생으로서 재능있는 연출가인데 <일편단심>에 붙으라는것을 왜 거절하오? 무슨 사연이라도 있으면 말해보시오.》

《저는 지금도 찬성하기 곤난합니다.》

《그 리유는?》

전상환은 너무나 뜻밖이여서 몸을 흠칫하며 허리를 꼿꼿이 폈다. 이쯤하면 대개는 숙어드는것이 례사로 되였던것이다.

《지금도 거절이란 말이지요?》

기분이 다소 뒤틀렸지만 온건한 말로 되물었다.

《네… 그 리유에 대해서는 단장동지에게 이미 여러번 설명했습니다. 저는 지금 제철소로동계급이 전후복구건설에서 발휘한 영웅성을 취급하는 작품을 하나 준비하는중입니다. 작가와 공동작업으로 말입니다. 그것을 중단할수도 없고 또 해방전 옛날생활을 전혀 모르기때문에…》

이렇게 서두를 떼놓고 그는 예술영화 《불길》에서 로동계급형상을 잘못한것을 연극으로 한번 반박해볼 속심이 있다는것을 첨부하였다.

그러나 전상환은 실망의 빛을 전혀 나타내지 않고 머리만 가볍게 끄덕일뿐이였다. 그러고보면 절반 승낙은 되였기때문에 부서에서 강하게 내밀면 숙어들것이라는 박승진의 말은 완전히 뜬소리였다는것이 명백해졌다.

이제 이 실태가 박승진을 통해서 상부에 낱낱이 알려지게 될것이다.

그러면 재능있는 신진연출가인 리형걸은 싹도 틔여볼새 없이 무자비하게 짓밟힐수도 있다.

그래 전상환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순조롭게 해결해볼 생각을 하게 되였다.

그는 박승진한테 고개를 돌려 조용히 물었다.

《저 동무 아버지는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무슨 학자라고 했던것 같은데.》

박승진이 제꺽 말을 받았다.

《종합대학 정치경제학 교수이고 박사입니다.》

《그렇소? 가정형편은 좋구만요… 나라형편이 어려울 때 공부를 시켰는데? 유감입니다. 동지들이나 집단이 권고할 때 적극적으로 응하는게 좋을것 같은데…》

《형걸동무, 나가보시오.》

박승진이 눈치코치 없는 한심한 사람이라는 시선으로 흘겨보며 손짓을 하였다. 그때 서둘러서 전상환이 끼여들었다.

《형걸동무, 방에 가서 좀 기다리시오. 개별적으로 내가 할 이야기가 좀 있소.》

리형걸은 걸음을 떼다말고 잠간 뒤를 돌다보다가 나가버리였다. 리형걸이 나가자 단장은 성급하게 재촉하였다.

《토론합시다. 어떻게 하면 수정본을 빨리 끝내고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겠는지…》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하는수 없이 단장은 개별적으로 만나자고 말하고 모두 헤쳐가라고 하였다.

이윽해서 응접실에는 한쪽에 전상환, 그옆에 단장이 앉고 맞은켠에 천세봉이와 명보가 앉게 되였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말할 필요가 없을만큼 서로의 의도를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한쪽은 과제를 내려먹이자는것이고 다른쪽에서는 받아무는것처럼 하면서 흔들레판에서 빠져나가자는것이였다. 침묵은 끝없이 흘렀다. 나중에는 고함을 치고싶을만치 가슴이 답답해났다.

천세봉은 직접 담당자인 명보에게 눈짓을 하였다. 무슨 말이든 꺼내라는것이다.

그러나 명보는 《나는 할대로 다했다. 희곡을 쓰라고 해서 썼고 고치라는대로 고치지 않았는가. 그런데 합평과정에 복잡한 의견이 많이 제기되였다. 나는 더이상 어떻게 할 재간도 없고 그것을 감당할만한 기운도 없다. 내가 이제 할 일은 시키는대로 하는것뿐이다.》 그는 분명히 이렇게 말하고있었다.

천세봉은 물끄러미 전상환을 바라보면서 《아까 공개적으로 발언한 외에 더 보탤것도 더 덜어낼것도 없다. 나는 지금 내 발등의 불도 미처 끌새가 없다는것을 당신이 잘 알것이 아닌가. 그것이 전부이다.》라고 속말을 하고있었다.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서 제일 심각한 심리적고통을 겪고있는 사람은 전상환이였다.

《한가지 좋은 대안이 있습니다.》

천세봉이 전상환이쪽에 대고 넌지시 말을 하였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결국에 있어서 혁명가의 안해를 하나 형상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안세창동무가 <안해>라는 소설을 쓰고있습니다. 그러니 그 초고를 가져다보고 각색하면 좋은극이 될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전상환은 낯을 찌프리였다. 침체상태에 있는 무대물공연에서 혁신의 바람을 일쿤다고 함흥에 펴놓았던 《일편단심》을 평양에 올려오지 않았던가.

《명백히 말해두지만 그렇게는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현재것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성과적으로 완성해내겠는가 하는것이 과제로 되여야 합니다

그런데 위원장동무, 위원장이 극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관계할수 없다, 그렇게 될수는 없습니다. 명실공히 위원장이기때문에 직무상 책임으로 해서 당적과업으로 받아들여야 할것입니다.…》

《알고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저는 이미 담당한 이 작가가 끝까지 완성하면 된다는것입니다. 창작은 작가의 머리수에 의해 해결되는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부부장동무도 잘 알겠지만 1개월짜리 임신부 10명을 모아놓고 당장 온전한 아이를 하나 낳아달라고 할수야 없잖습니까.》

웃음이 나갔다. 원래 말재주가 없기로 유명한 그였던것만큼 자기자신도 놀라운 기지가 발휘되였다고 느껴졌다.

이때 전상환은 리형걸을 생각하였다. 천세봉과의 담화는 적당히 끊어버리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방에서 기다리고있는 리형걸을 불러들이였다.

옆자리에 앉게 하고 한동안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군가지 하나 없이 다듬어지고 세련된 청년이였다. 며칠전에 이미부터 잘 알고있는 엄한정을 만났을 때 사위감이 착실하다고 하였는데 능히 그럴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형걸은 대학졸업후 세편의 단막극을 연출하여 무대에 올렸는데 그것으로 하여 연극계에서 촉망되는 신진으로 지목되고있었다.

《형걸동무! 다시 잘 생각해봤습니까? 이런 기회가 쉽게 차례지는것이 아닙니다.》

전상환의 음성은 여전히 높지 않았다.

앞길이 창창한 한 예술가의 미래를 진심으로 기대하는바도 있었지만 어쩐지 너무나도 천진스레 제 주장만 내세우는 리형걸이 측은하기도 했다.

《어떻습니까?》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맡아서 꼬나낼 능력이…》

박승진이 불쑥 그의 말을 잘랐다.

《동무! 그렇게 너무 엇나가지만 말고 깊이 생각해보시오. 동무가 나이도 젊고 전도유망한 사람이기에 동무의 장래를 위해 하는말이요.》

《념려해주는것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정말 자신이 없습니다.》

박승진이 어처구니없다는듯 전상환이쪽을 얼핏 보고나서 시선을 리형걸이에게 돌리였다.

《여보 동무, 인생이란 그런게 아니요. 곧추 갈 때도 있고 좀 에돌 때도 있는거지.》

전상환은 인생타령까지 하는 박승진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박승진이 또 성급히 뭐라고 하려는것을 전상환은 손을 들어 제지시키고 리형걸에게 조용히 말했다.

《물론 남이 하는 작품에 중도에 끼여드는건 내키지 않을수 있습니다. 그리구 로동계급물연극을 하나 야심작으로 해보려고 하였다니까 더욱 그럴것입니다.… 한데 과연 근본리유가 거기에 있는것인가 어디 한번 솔직히 말해보시오.》

전상환이 거의 안타까운 어조로 말하자 리형걸은 큰숨을 한번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저는 작품이 문학으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어째서? 혁명적인 생활내용인데… 왜 마음에 들지 않는단 말이요?

난 정치적으로 문제시하려는건 아니요.》

《녀주인공이 하는 몫이 크게 없습니다. 생활자체가 단조롭고 평범하고 극성도 약하고…》

《형걸동무, 난 그렇지 않다고 보는데. 난 이 작품의 주인공이 아주 민족적인 색체가 짙고 괜찮게 형상되였다고 보오.》

《녀성혁명가라면 몰라도 남편의 옥바라지나 하는 얘기가 너무나 상식적이 아닙니까?》

그러자 박승진이 주먹으로 책상을 탕 하고 울리였다.

《동무! 소총명을 부리지 마오. 하기 싫으면 싫다고 할게지 작품이 어떻소 저렇소…》

하지만 전상환은 침착한 어조로 물었다.

《형걸동무, 한가지 물읍시다. 연극무대에 혁명적인 생활을 올리려는 우리의 의도는 리해가 가오?》

《거야 옳은 시도라고 봅니다.》

《한데?》

《혁명적인 녀주인공이라면 적어도 <락천적비극>의 녀성정치위원쯤이나 되여야 하는건데 그렇다면 한번 해볼수도 있습니다.》

박승진이 곁에서 또 께끼였다.

《동문 한심한 소리만 하누만. 갖다댈데다 갖다대야지.》

전상환이 말했다.

《형걸동무, 그 녀성주인공은 혁명가이지. 한데 이 녀성은 직접 혁명에 참가한 혁명가는 아니지 않소? 그러니 같이 볼수가 없는거지. 우리 연극의 주인공은 외유내강한 조선녀성의 전형으로 형상되였다고 볼수 있지 않겠소?》

그러자 리형걸이 버쩍 얼굴을 쳐들었다.

《부부장동지, 솔직히 말해보랍니까?》

《이제야 속에 있는 말을 하려나보군. 어떤 말이라도 좋으니 어서 말해보오.》

《사실 전… 암만 생각해봐야 이 작품의 녀성주인공은 봉건사회에서… 유교에서 말하는 삼강오륜, 말하자면 녀자가 지아비를 무조건 섬겨야 한다는 그런것과 별로… 용서하십시오. 제 견해를 털어놓았을뿐입니다.》

《뭐라구?》

박승진이 놀라서 부르짖었다.

전상환은 랭정한 눈길로 고개를 짓숙인 리형걸을 바라보았다.

《단장동무, 좀더 들어봅시다… 형걸동무, 삼강오륜이라는 근거는?》

《딱히 그렇다고는 할수 없지만 어쨌든 봉건적인 냄새가… 그런 의미에서 제목도 마음에 들지 않고…》

박승진이 참지 못하고 나섰다.

《여보 동무, 그럼 그 주인공한테 총을 쥐여주어야 되겠소? 지하투쟁사건을 주겠소? 주어진 생활소재에 맞게 이야기해야지 이거야 어디… 그래 그 작품 하나를 가지고 혁명이라는 큰 문제를 다 담아야 한단 말이요? 동무의 론거는 정말 엉터리요.》

그러면서 전상환이한테로 목을 돌리였다.

《이렇단 말입니다… 난 이 동무가 근본 돼먹지 않았다구 봅니다. 머리에 병이 들었습니다. 이 동무의 행동은 말그대로 <창작의 자유>를 부르짖는 망동이 아닐수 없습니다.》

리형걸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의 눈빛은 분노와 경악으로 번뜩이였다.

전상환은 얼핏 그의 시선과 부딪치자 웬일인지 등골이 싸늘해지는것을 느꼈다.

그는 박승진을 돌아보며 《단장동무, 무슨 그런 감투까지 씌우면서 그럽니까?》 하고 말했다.

박승진이 부부장앞이라는것을 그제야 채심했는지 《미안합니다. 제 좀 지나쳤습니다. 어쨌든 이 동문 정말 앉을자리 설자리를 모르는 한심한 동무입니다.》 하고 말했다.

전상환은 더는 그자리에 앉아있을수가 없었다.

《한번 더 생각해보우.》

전상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도에서 전기종소리가 났다. 낮근무 퇴근시간을 알리는 동시에 밤공연에 대한 준비신호이기도 하다. 전상환은 박승진에게 작가를 잘 도와 우선 작품수정작업을 끝내라고 오금을 박고는 자리를 떴다…

한편 전상환이와 헤여져 련광정쪽으로 나온 천세봉은 너무나 머리가 복잡하여 강바람이라도 쏘여보려고 했다. 유보도에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있었다. 언덕밑에는 낚시군들이 주런이 앉아있고 나무그늘마다에 사람들이 앉아 쉬고들있었다.

    장성 일면에 용용수요

    대야 동두에 점점 산이라

기둥벽에 걸어놓은 7언대구시가 눈에 띄였다.

어쩐지 답답한 가슴이 좀 열리는것 같았다.

석양이 비낀 대동강은 신비롭다고 할만치 마음을 안정시켜주었다. 희다고 보면 붉고 붉다고 보면 푸르기도 한 잔잔한 물결이 천만가지 무늬를 돋구어놓았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있노라니 별의별 생각이 다 났다. 인생이 저 강물과 같다면 얼마나 살기 편안하고 자유로울것인가. 그런데 인간이란 스스로 문제를 제기해놓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한생 모지름을 쓰고있는것이 아닌가.

하긴 그것이 없다면 그게 무슨 인간생활이고 그 어데서 생의 보람을 찾을수 있을것인가.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그 누군가가 말한것처럼 인간이란 바지를 입고 직립보행하면서 동종을 몹시 괴롭히는 잡식동물인가, 아니면 《사색하는 갈대》인가? 그런 존재일수는 없다. 그렇다면?

천세봉은 덧이가 보이게 입술을 들어올리며 빙긋이 웃었다.

생활은 이토록 복잡다단하지만 그속에는 저절로 진한 향기를 풍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일부러 자기 존재를 나타내려고 없는 냄새를 한사코 피우려는 그런 사람도 없지 않다. 그러나 어쨌든 그들모두는 저 강물처럼 바다로 바다로 흘러가고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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