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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전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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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1-02-10 16:05 조회3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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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세봉은 옷을 다 갈아입고 머리를 빗은 다음에도 거울앞에 서서 여러번 자기 모습을 비쳐보았다. 검은색 제낀깃옷에 물방울무늬가 돋힌 진회색 넥타이를 매였다. 목은 성큼하고 얼굴륜곽은 대체로 세모가 졌는데 이마의 폭이 넓고 턱은 어지간히 뾰족한 편이였다. 안경을 꼈다벗었다하다가 아예 그만두기로 하였다. 어쨌든 정중성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안경을 걸친다는것은 좋지 않을것이라고 생각되였던것이다.

어쨌거나 총체적인 인상은 농민출이고 또 한생 농촌에서 살며 창작해오는 과정에 형성된 농민형체취가 온몸에서 진하게 풍기였다. 바로 이것 즉 어딘지 모르게 소박하면서 덜다듬어진것 같은 천연적인것이 천세봉이라는 한 인간을 만들어놓았는데 그 점을 남들이 찬양하고 부러워하고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인 그는 그것을 한사코 지워버리려고 애쓰고있는것이다.

거울에 비낀 기다란 얼굴이 빙그레 웃고있다. 언제한번 몸치장에 신경을 써본 일이 없는 그였다. 지방에서 평양에 올라올 때도 그러했고 평양에서 이러저러한 모임이나 또 면담 등 정중한 자리에 나서게 되는 경우에조차 입으니 입은대로 신으면 신은대로였지 언제한번 몸을 깐깐히 다듬어본적이 없었다. 필요치 않아서가 아니라 그래봤대야 진하게 슴배인 토색바탕을 지워버릴수 없다고 보기때문이였다. 그러나 이렇게 형성된것이 허장성세를 보이거나 간혹 웃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서 보게 되는 떼다붙인것 같은 이른바 위풍보다 훨씬 더 인품을 고상하게 만들었다.

온 얼굴에 기쁨을 담은 그는 활달한 걸음으로 현관을 나섰다. 구름 한점 없는 푸른 하늘이 머리우에 끝없이 펼쳐쳤다.

방금 앞에 보이는 지정된 그 장소까지는 150m도 되나마나한 거리였다.

새해를 맞아 인차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고 여기에 오게 되였던것이다.

수령님께서는 항일혁명투쟁시기의 이야기를 듣고싶다는 작가들의 절절한 소망을 20여년이나 미루어오다가 이번에야 드디여 결심을 내리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오래전부터 구상해오시던 이 일을 위하여 새해에 접어들어 작가들을 선발하고 적절한 장소와 시간을 정하는 등 세심한 조직사업을 하게 되시였다.

이렇게 되여 천세봉은 하루에도 몇시간씩 위대한 수령님의 생동한 체험담을 직접 들을수 있게 되였다. 그런데 어제저녁 전상환이 알려온데 의하면 김정일동지께서 따로 조용히 만나 문학건설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시였다는것이다.

천세봉은 걸음을 걸으면서 눈이 덮인 잔디밭이며 꽃나무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자기들의 신비경을 활짝 펼치게 될 봄계절이 오리라는 기대와 자부를 흠뻑 안고있는 앵두나무며 매화나무들을 정답게 바라보면서 노상 입가에 웃음을 짓고있다. 온갖 사물과 현상들을 어렵지 않게 모두 정서화할줄 아는 로련한 작가인 그는 자기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동화세계에서처럼 자기를 축하해주는것 같았다. 그럴만치 그는 기분이 들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접견을 받게 된 바로 그 첫날에 있은 일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천세봉의 손을 잡고 첫마디로 그동안 창작해오던 장편소설이 어떻게 되였는가고 물으시였다.

《아! 그 장편.》 긴장한탓도 있지만 원래 말이 류창하지 못했던 천세봉은 몇번 끙끙 갑자르고나서야 《작업을 다 끝내서 며칠전에 인쇄공장에 넘겼습니다.》라고 대답을 올리였다.

《제목이 <안개흐르는 새 언덕>이라지요? 항일혁명투쟁시기를 취급하고있다면서요?》

《네! 그렇습니다.》

천세봉은 대번에 정신이 번쩍 들어 미소를 띠고있는 그이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였다. 늘 같이 휩쓸려 돌아가는 동료들조차도 누가 무슨 작품을 어느정도까지 진척시키고있는가 하는것은 좀체로 알아두기 힘든 일인것이다.

《수고했습니다. 어느 한 문호의 수기를 읽어보니까 장편소설작업이라는것이 얼마나 큰 정신적, 육체적 부담을 주는것인가를 잘 알수 있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장편을 하나 끝낸다는것은 바다물을 단숨에 들이키는것만치 벅찬 일이라고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과장된 비유이긴 하지만 그 로고를 능히 가늠할수 있잖습니까… 부디 성공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천세봉은 보철을 해서 웃입술이 약간 벙글써해진 그 모습을 흐트리지 않으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작가의 창작적고충을 이토록 깊이 그리고 진심으로 리해해주시는데는 가슴이 흔들리지 않을수 없었다. 그래 천세봉은 고개를 숙여 몇번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같은 말을 반복하였다. 로고에 대한 위안, 결과에 대한 좋은 기대, 이것을 담고있는 그이의 말씀은 가슴속깊이에 정대로 쪼아박은것처럼 뚜렷이 새겨지게 되였다.

그와 함께 천세봉은 이때 온몸으로 불안과 위구가 쭉 뻗어나감을 느끼였다. 그이의 절절한 기대나 당사자의 로고가 설사 바다가 아니라 옹근 한개의 행성을 삼켰다 해도 그런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것이다. 이제 독자들의 입에서 거침없이 흘러나오게 될 《재미있다. 잘 썼다.》 혹은 《틀렸다. 읽을맛이 없다.》이것으로 무자비한 결판이 날것이기때문이다.

이날도 김정일동지께서는 우리 나라 문학발전에 대해 많은말씀을 하시였다. 그러신후에 우리 문학의 토양이 되고 사회주의사실주의문학의 전통이 될수 있는 항일혁명투쟁시기의 이야기를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직접 들을수 있게 되였다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던것이다.…

초대소현관에 이르자 기다리고있던 전상환의 안내로 천세봉은 아늑한 응접실에 들어서게 되였다.

나들문앞에까지 나와계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천세봉의 손을 잡고 해빛이 잘 드는 창가로 가시였다. 거기에는 보기에도 부드럽고 아늑해보이는 자주색 안락의자 두개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그이께서는 천세봉에게 자리를 권하고 자신도 옆자리에 앉으시였다.

《건강이 어떻습니까? 작품을 끝낸 뒤끝에 숨돌릴새 없이 들이대서 무리하시는것 같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탁자에 놓인 차를 권하면서 약간 굳어질사한 천세봉의 얼굴을 익혀보시였다.

《저는 건강합니다. 보람찬 나날을 보내고있으니까요.》

언제보나 소박하고 근엄한 표정이다. 먹을 듬뿍 묻혀 쭉 그어놓은듯한 진한 눈섭 그리고 약간 들릴사한 입술이 그의 소박한 인상을 잘 돋구어놓았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제 듣기에는 소화기가 좋지 않다는 말이 있던데요.》

《오래전부터 신통치 못한데 그건 그것대로 습관이 되였나봅니다.》

이때 천세봉은 번개불처럼 얼핏 스치는 그이의 시선을 온몸으로 감촉하게 되였다. 대번에 머리를 쩡 울리는것은 어쩌면 수령님의 그 안광, 그 체취가 그대로 옮겨졌을가 하는 느낌이였다. 항상 부드럽고 자애에 넘친 모습으로 보이다가도 그 어떤 계기에 의해 번쩍 빛을 발산하는 때이면 그 안광이 모든 사물을 투시하고 안속까지 꿰뚫어보는듯한 느낌을 주었다.

천세봉은 눈덕을 내리깔고 조용히 그러나 진정을 담아 말씀올리였다.

《고질병에 너무 시달리다보니 이제는 체념하고 포기상태에 들어갔더랬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요사스러운데가 있어서 요새는 다시한번 입원치료를 해볼가 생각도 가지고있습니다.》

《치료를 적극적으로 해야지요.》

김정일동지께서는 병색이 완연한 천세봉의 얼굴을 쳐다보고나서 계속하시였다.

《우리가 듣기에는 아스피린을 계속 복용한다는데 위병에 해롭지 않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고원에 살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먹은것을 다 합치면 되박으로가 아니라 몇말은 실히 될것이라고 합니다.》

《몇말이라고요?》 무의식중에 받아외운 천세봉은 그 량에 놀란것이 아니라 그런 생활세부까지 이렇게 속속들이 꿰들고있는가 하는것때문에 경탄한것이였다.

《아스피린이 몸에 해롭다는것은 모를 소리입니다. 어림짐작으로 계산해도 한 20년동안에 매일 한두알은 먹었으니까 그것만 해도 어지간한 량입니다. 그렇지만 말로 될만치 먹었다는건 과장입니다. 그런데 딱한건 그걸 먹어야만 오륙이 쑤시는것을 멈출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아편쟁이 비슷하게 된셈입니다.》

그는 삐여져나온 앞이를 드러내놓으며 웃었다. 그 모습이 어떻게나 천연스레보였던지 김정일동지께서는 소리를 내여 웃으시였다. 그 바람에 호수처럼 고요에 잠겼던 방안에 밝고 명랑한 기운이 물결치기 시작하였다.

《혹시 이전에 낚시질이나 사냥을 해본적은 없습니까? 위병은 약도 좋지만 일정한 정도 운동도 하고 섭생을 잘해야 한답니다. 필요하시다면 성능이 좋은 사냥총을 하나 구해드릴수 있습니다.》

《원래 저는 몰취미한 인간이다보니 그런데는 전혀 문외한입니다. 그런데다가 산과 강을 다같이 낀곳에 살다보니 사냥이나 낚시질 같은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반두를 들고 앞강에 나가 한두시간 훑으면 붕어나 종개새끼를 한말이나 뜰수 있었습니다. 여름철에 덕지강의 송어잡이가 얼마나 요란했던지 지금도 눈에 얼른얼른합니다. 방망이를 차고 강기슭을 어슬렁어슬렁 오르내리면 강아지새끼만한 송어가 물속에서 느릿느릿 움직이지요. 그러면 벌써 그것은 내것입니다. 방망이로 대가리를 한개 치면 그놈은 허연 배때기를 드러내놓고 나가눕습니다. 잘 잡을 때는 하루에 한가마니 정도는 문제없습니다. 그리고 짐승을 잡는것은 사냥이라고까지 할수없는 원시적방법이였지요. 눈내리기전에 강철선을 한타래정도 구해놓으면 한겨울 육류문제는 완전히 해결입니다. 옹노를 놓고 이튿날아침 슬슬 놀음삼아 산기슭을 돌아보노라면 꿩이요, 노루요, 메돼지요 하는것들이 주인을 기다립니다.》

《하하하…》

김정일동지께서는 방안이 찌렁찌렁 울릴만치 크게 웃으시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고기잡이나 사냥같은데서는 완전히 도통해버린 높은 수를 가진 사람이 모르쇠를 하고있는것이다.

그이께서는 자리를 떠서 천세봉의 손을 잡으시였다.

《결국은 모든것이 명백해졌습니다. 바로 그런 생활이 없이 하루종일 콩크리트바닥이나 주단우를 걷고있으니 소화가 잘 될리 있습니까? 사냥이나 낚시질로 말하면 그쪽에서는 가장 리상적인 방법으로 이미 해왔고 그것이 몸에 푹 배였습니다. 알만합니다. 무엇때문에 아스피린에 매달리게 되는지 그 까닭이 해명되였습니다. 그러니 고원에서 하던 방법으로 할수는 없으니까 그대신 렵총을 들고나서든지 활차가 달린 낚시대라도 들고나가는수밖에요.》

사전에 생활경위를 알아보고 그에게 도움이 되게 무엇인가 해주고싶었는데 그 구상이 한치의 드팀도 없이 들어맞았던것이다.

자못 통쾌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이께서는 즉시에 화제를 다른데로 돌리시였다.

《그건 그렇다치고 어제는 수령님께 발을 좀 보여줄수 없겠는가고 말씀드렸다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외람되게 말씀을 올렸댔습니다.》

《그래서요.》

《그래 양말까지 벗으신걸 보았습니다. 이 손으로 직접 만져도보았고요.》

《그러니 감상이 어떻습니까?》

《감상말입니까. 한두마디로 그것을 다 표현할수 없을 정도입니다.》

가뜩이나 맑지 못한 그의 음성이 갑자기 흐려지고 숨결이 거칠어졌다.

《사람은 누구나 나서자라 한생을 살아가는동안 수많은 길을 걷게 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수령님께서는 전인미답의 숲속, 진펄, 앞을 가려볼수 없는 가시덤불길 말그대로 길아닌 길을 몸소 헤치며 그것도 하루이틀도 아니고 십여년간 대오의 맨 앞장에서 수천수만리길을 걸으시였습니다.》

그는 어느덧 작가로서의 본능에 사로잡혀 수사학적표현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 특이한 생활이 인체에 끼친 영향은 너무나 가혹하고 무자비하였습니다. 성한데없이 흠집이 많이 나있었습니다. 그러나 선대에서 넘겨받은 본바탕은 우리모두와 꼭같은것이였습니다. 다문 얼마만이라도 다른 사람과 차이가 있었던들 저는 그렇게까지 놀라고 그렇게까지 감격하지 않았을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상상초월입니다.》

《그렇습니까? 이야기를 듣고보니 감동이 큰것 같고 생각도 매우 깊어진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에는 무엇을 보았고 무엇에 대해 물어보았습니까?》

《그다음에는?》 천세봉은 약간 의문이 실린듯한 시선으로 쳐다보며 말하였다. 《저는 발 하나로써 충분했습니다. 거기에서 저는 모든것을 다 읽을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니 다른것을 더 볼 필요도 없었고 더 물을것도 없었습니다.》

《그렇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하나의 관찰을 통해서 열, 스물을 헤아리고 추리할수 있는 작가이기때문에 십분 그럴수도 있겠지만 발보다 더 중요한것은 수령님께서 당시에 지니고계시였던 정신과 감정상태가 아니겠는가? 그것이 없이는 수천수만리의 간고한 로정이라든가 남다른 우여곡절이라는것들은 사실상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하는것이다. 이렇게 놓고볼 때 천세봉의 작가적체질에 대해서 고려하지 않을수 없으시였다. 체질상으로 작가들을 대체로 두가지로 갈라볼수 있다. 하나는 정치를 알고 그다음에 문학을 알게 된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그와 반대로 문학을 알고 그 다음에 정치를 알게 된 사람이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천세봉은 그 후자에 속할수 있었다. 때문에 천세봉류의 작가는 문학에서 정치사상적우위성에 대해서 항상 념두에 두고있어야 한다. 만약 그것을 등한히 여기게 될 때에는 본의아니게 창작이 왕청같은데로 빗나갈수도 있다.

때문에 앞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렇지 않으면 우정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그를 도와주어야 할것이다.

당면해서는 수령님께서 주시는 말씀에서 창작적알맹이를 빨리 발견하도록 도와주는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믿음어린 시선으로 천세봉을 쳐다보며 말씀하시였다.

《위원장동무, 다음번에는 한걸음 더 깊이 들어가 수령님의 당시 정신생활과 감정상태를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을것 같습니다. 그래야 사색이 더 깊어지고 작품에서 제기할 문제점도 의의있는것을 발견해낼수 있을것입니다. 발을 보고 느낀것처럼 전인미답의 수천수만리길도 그 의의에 의해 효과적으로 조명될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실상 작가란 임의의 현상과 사물에 대해서도 그 의의를 밝혀내는 정신기사니까요.》

《문학적 사색이나 발견, 그런것은 제가 가장 빈곤을 느끼고있는 문제입니다.

아직은 이렇다하고 잡히는것이 없지만 앞으로는 꼭 그것이 눈에 띄게 될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시재당장 초보적으로 말할수 있는것은 그토록 위대한것이 그토록 평범한것과 결합되였다는 그것입니다. 알기 쉽게 말하면 조국과 인민에 대한 사랑이 한분의 몸에서 그렇게도 많이 그렇게도 심오하고 진하게 흘러나왔다는 기적적인 사실입니다. 생각할수록 경이적이고 격동적입니다.》

여기까지 말한 천세봉은 자기 지체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화려한 표현을 한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좀 어색한 낯을 지었다. 그러나 말이 모자라 그렇지 그보다 더한것을 내놓지 못한것으로 하여 얼마간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그에 대해서 저도 역시 동감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천세봉이 담배를 집어들기는 하였지만 불을 달지 못하는것을 보시고 성냥을 그어 권하고나서 계속하시였다.

《한걸음 더 깊이 들어가는것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는데서 이런것이 혹시 참고가 되지 않겠는지요. 위대한 사업에는 위대한 사상이 요구되는 법입니다. 그런데 위대한 사상은 그 어떤 지식이나 지혜에서만 아니라 위대한 사랑에서 나옵니다. 사랑말입니다. 수령님께서 조국광복을 위하여 활동하신 그 준엄한 혁명투쟁은 말그대로 위대한 사랑에 의한것이였습니다. 인간을 사랑하다보니까 조국과 인민을 사랑한것입니다. 그 과정에 인간중심의 주체사상이 창시되지 않았습니까. 이것을 볼 때 조국광복의 그 력사적위업은 인간을 존중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그 위대한 사상에 의하여 앞길이 밝혀졌던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옳습니다.》

천세봉은 환성을 올리다싶이하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였다.

《바로 그거라구 생각됩니다. 참으로 우리는 알찬 문제를 하나 골라잡았습니다. 기쁩니다. 이렇게 되면 창작의 령감은 나래를 활짝 펴고 대공을 자유롭게 날게 되는것입니다.》

《그렇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팔걸이우에 놓인 천세봉의 손을 잡으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 점에서는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그러고보면 제가 구상한 이번 일이 잘되였다고 볼수 있겠습니다. 제가 오늘 위원장동무와 토론하자던 문제도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벌써 상당한 정도로 론의를 진척시킨셈입니다. 이번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작가들에게 들려주신 이야기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문학으로 형상해내겠는가 하는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우리는 이제 종전과는 다른 새로운 혁명문학을 건설해야 할 력사적과제앞에 나서게 되였습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천세봉은 고개를 숙이였다. 방금전까지 흥분되여있던 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였다. 일반적인 문학론의에서는 그토록 신심이 있어하던 그가 새로운 높은 단계의 문학, 그것이 또한 력사적과제라는 숭고한 요구앞에 자신을 비쳐보게 되였을 때 너무나 크고 엄청난 거리를 발견하게 되였던것이다. 과제에 비한 자기자신의 준비는 형편없이 왜소하다고 생각되였다.

김정일동지께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당에서 지금 <새로운 혁명문학을 건설하자!> 이렇게 구호를 제기하자고 합니다.》

천세봉은 고개를 들더니 약간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당에서 제기하는 뜻을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자신의 준비가 너무 약하다보니…》

말꼬리가 약간 떨리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결연한 어조로 뒤를 이어대였다.

《그러나 당에서 이끌어주고 또… 이 숭고한 사명앞에 주저할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가만…》

김정일동지께서는 문득 손을 들어 천세봉의 말을 제지시키고나서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말씀도중에 안됐습니다. 오늘 바깥날씨도 좋은데 방안에서 이러지 말고 시원한 바람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것이 어떻습니까? 저는 아직 보따리의 끈도 미처 풀지 못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천세봉은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던것처럼 좋아하면서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딴 방에 있던 전상환이도 따라나섰다.

마당에 나선 김정일동지께서는 허리에 손을 짚고 대공을 향해 고개를 뒤로 제치시였다.

그이의 일거일동을 주의깊게 지켜보고있던 천세봉은 눈을 크게 뜨고 그이의 영상을 우러러보고있었다. 어쩌면 그리도 수령님과 신통히 같으실가 하는 생각이 또 들었다. 멀리에서는 먼것으로 해서 총체적인상이 같았고 가까운데서는 또 가까와서 눈에 띄는 모든 세부들이 다 그렇게 느껴졌다.

천세봉에게 있어서 바로 이 점이 그 무엇보다도 매혹적이였다. 그에게 미쳐온 같은 점이라고 할 때 그것은 외형만이 아니고 인간적풍모전체를 통털어 의미하는것이였다. 그중에서도 한생 인간을 연구하고 매번 개성적성격창조를 업으로 삼았던 작가 천세봉을 매혹시킨 가장 뚜렷한 특징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그이들 두분께서 똑같이 가지고계시는 감정과 정서에서의 순결성이였다. 자주 호탕하게 웃으시였고 또 때로는 분노하거나 기쁨에 잠기시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그때의 정서는 색갈이 모두 명백하였고 그 무엇과 혼탁된것이 전혀 없고 순결한것이였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을 무한정 끌어당기는 견인력인것이다. 이 힘이 수천수만 나아가서는 우리 인민, 우리 민족을 모두 하나의 지향으로 이끌어나가는 위대한 힘으로 된것이다. 마치 천체가 조화로운것이 만유인력에 의한것처럼 그렇게…

바람은 쌀쌀하지만 해빛은 눈부시고 따사로왔다.

《위원장동무!》

김정일동지께서 친근하게 부르고나서 뒤를 이으시였다.

《수령님께서 이번에 들려주신 회상담에서 크게 감동을 받았다고 하는데 우리 독자들도 바로 그렇게 감동될수 있게 쓰면 되겠습니다. 새로운 혁명문학이라고 해서 어렵게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알겠습니다. 해보겠습니다.》

정원 한끝에 이르자 하얗게 눈이 덮인 늪이 나졌다. 늪이라고 하지만 자그마한 물웅뎅이만한것이였다. 본래는 밀물때 바다와 합쳐지군하던 개바닥이였는데 그것을 파내서 낚시터로 만들어놓은것이다.

《이걸 보십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손을 들어 늪을 가리키시였다.

《별로 쓸모없는 물주머니같은것인데 이것이 있다보니 정원의 면모와 풍치가 완전히 달라지고 계절변화를 직접 느낄수 있게 하고있습니다. 저것이 모두다 얼음강판같이 보이지만 벌써 군데군데 구멍이 뚫렸습니다. 겨울이 얼마 못갈것은 뻔합니다.》

온 얼굴에 미소를 담으신 그이를 바라보면서 천세봉은 가슴에 새로운 그 무엇이 자리잡기 시작했다는것을 느끼였다.

《아니 이게 노루발자국이 아닌가?》 눈판우를 들여다보시던 김정일동지께서 언덕에서 훌쩍 건너뛰여 늪에 들어서시였다.

《위험합니다. 꺼질수 있습니다.》 여태까지 따라오면서 줄곧 침묵을 지키고있던 전상환이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거나말거나 그이께서는 구멍이 뚫린 늪의 한복판을 향해 급히 들어가시였다. 전상환은 천세봉의 앞으로 나서서 발을 텅텅 굴러보며 거듭하였다. 《위험합니다. 금이 갔습니다.》

하지만 김정일동지께서는 고개를 수굿하고 무슨 흔적을 쫓아서 한참이나 나갔다가 돌아서시였다.

《틀림없소. 틀림없다니까.》

손을 흔들며 큰소리로 웨치시였다. 그이께서는 기윽자형으로 각도를 꺾어서 이번에는 산기슭에 잇닿은 솔밭으로 달려나가시였다. 한참만에야 다박솔이 군데군데 서있는 서쪽산등으로 돌아나오시였다. 그이의 얼굴은 붉게 물들었고 대단히 만족해서 손을 흔들기까지 하시였다.

《짐작이 맞아떨어졌습니다. 계절로 보아 지금쯤 노루새끼가 나오리라고 보았는데 자국을 따라가니 물을 마시고 꼿꼿이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저기를 보시오. 눈이 녹으니까 밀밭이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저 말라버린 가을잎새들을 뜯어먹고나니 목이 말랐던 모양입니다.》

그제서야 천세봉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전상환은 아무 응대도 할념을 못하고 덤덤히 서있기만 한다.

《더 미룰것 없이 당장 오늘저녁에 한번 거사를 해봅시다. 몸이 허약한데는 노루가 좋다고 하잖습니까. 천세봉선생! 하루밤 새울셈치고 산발을 타봅시다. 그러면 머리도 시원해지고 기운이 날것입니다.》

천세봉은 만면에 웃음을 짓고 고개를 끄덕여 동의할뿐이였다.

《저녁을 먹고 어슬어슬해진담에 떠납시다. 제가 알릴테니 산발을 달릴수 있게 허름한 옷을 갈아입으십시오. 추울수 있으니 솜저고리도 가지고가는것이 좋습니다.》

늪가에서 얼마간 시간을 지체한후 일행은 다시 면담실로 돌아왔다.

면담실에 이르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담화요지를 적어둔 수첩을 꺼내더니 이미 다 이야기되였기때문에 몇마디 보태고말겠다고 하시였다.

천세봉은 격식을 갖추지 않고 평범하게 이루어지는 이 담화가 우리 나라 문학발전에서 큰 전환을 가져오는 하나의 계기로 될것이라는것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그이의 말씀을 빠짐없이 받아적었다.

숙소로 돌아온 천세봉은 어쩐지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다. 그이의 말씀을 듣고보니 어버이수령님께서 무엇때문에 작가들을 불러 10여일간이나 말씀을 주셨는지 그 의도를 더욱 똑똑히 알수 있었다. 정치위원회에서 수령님의 건강을 념려하여 휴식을 하시도록 권고했는데도 어찌하여 고스란히 작가들을 위해 시간을 바치셨는지 잘 알수 있었다.

흥분이 지나쳐 담배를 끼운 손이 알릴듯말듯 떨리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가슴속 한구석에서는 왕청같은 번민의 싹이 하나 옴질옴질 자라나고있었다. 그것은 방금 공장에 넘기고 온 장편소설《안개흐르는 새 언덕》때문이였다.

왜 그런지 위구와 불안이 안타깝게 뇌리에 감겨돌아갔다.

그것은 수령님의 교시를 받고나서, 더구나 김정일동지의 새로운 혁명문학건설에 대한 가르치심을 받을 때부터 시작되였다. 장편소설 《안개흐르는 새 언덕》이 지금까지 여러날에 걸쳐 받아안은 항일혁명투쟁이야기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있다면 무엇이 어느 정도 있는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지어 어떤 험구쟁이친구가 제목부터가 안개가 뿌옇게 흐려있으니 보나마나 신통치 못하다고 한 말까지 뇌리에 칭칭 감겨돌아갔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인쇄기를 멈추게 하고 원고를 찾아내온다 어쩐다 소동을 피울수야 없지 않는가…

불안과 위구의 환영은 시선이 미쳐가는곳다마에 나타나군하였다.

번들거리는 벽장에도 하늘이 내다보이는 창유리에도 담배를 끼운 손끝에서도 얼른거리였다.

시간이 흘렀다.

저녁을 먹고나서 오늘 있었던 일을 대강 추려 일기에 적고있는데 《천선생! 준비가 다됐습니까?》 하는 소리가 나들문쪽에서 들리였다. 급히 일어나 문을 열어보니 털모자를 쓰고 뚱뚱하게 솜동복을 껴입어 흡사 북극사람같아보이는 전상환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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