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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강자 45, 4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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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1-02-02 18:19 조회3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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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눈꽃이 날리였다.

공중에서 유희를 놀듯 자유로이 맴돌다가 땅바닥에 내려앉은 눈꽃들이 기다리고있은듯 덮쳐든 찬바람에 포로되여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 곤욕을 치르고있었다.

창가에 서서 물끄러미 그 모양을 지켜보는 리대철은 벌써 12월이로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도 그럴것이 설계가 완성되고 개량제가 완성되면 얼음에 박밀듯이 쭉 나갈것 같던 고양정뽐프제작이 이상할 정도로 더디여지고있었던것이다.

어제 두번째로 주물을 한 뽐프의 일부 부분품들이 가공과정에 흡입본체와 안내홈에 기포가 생겨 작업을 중지하였다.

원인은 다른데 있지 않았다.

용선로에 원료투입시 회수한 파철속에 기름이 묻은 기계부속품들이 섞여들어가면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것이다.

오작난 부분품들은 다시 용해하면 되지만 문제는 새로 시작한 날개바퀴목형가공을 빨리 끝내는것이였다.

사고이후 당비서한테 불리워가 눈물을 쏟으며 자신의 잘못을 심심히 뉘우친 창근이가 목형가공을 다시 맡았는데 며칠째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현장에서 침식하며 전투를 벌리고있었다.

제 말로는 죽으나사나 사흘내로 완성하겠다고 했다는데 그게 꽤 가능하겠는지…

이제껏 창근을 몹쓸놈이라고 욕만 하였고 지어는 공장에서 내쫓으려 했던 리대철은 뒤늦게나마 그를 만나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옷걸이에 걸어놓은 솜옷을 벗겨 입었다.

그때 그의 발목을 붙잡는 전화종소리가 울리였다.

얼른 송수화기를 집어드니 차부국장의 걸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배인동무, 잘있었소?》

《안녕하십니까, 부국장동지.》

리대철은 무등 반가와하며 전화를 받았다.

《듣자니 사고가 났다던데 어떻게 되였나?》

창근이때문에 제기된 사고를 념두에 두고 한 말이였다.

《예, 수습을 하고있습니다.》

《그럴테지. 내가 뭘 또 도와줄게 없겠나?》

《말씀만 들어도 고맙습니다. 부국장동지가 우리를 적게 도와주었습니까? 전번에 개천지구탄광들에 나가서 무연괴탄을 한방통이나 보장해주느라 고생을 하셨는데.》

아닌게아니라 차부국장은 고양정뽐프를 하루빨리 성공하라고 뒤에서 사사모사로 도와주고있었다.

선철이 부족하다는걸 알고 황철에 나가 끌어다주었고 요전날에는 용해용무연괴탄을 한방통이나 해결해주었다.

《2. 8비날론과 흥남가스화대상설비생산도 드티지 않고 내밀겠지?》

《예, 그건 사흘후이면 결속이 됩니다.》

《좋구만, 리대철이 누구라구. 허허허. 지배인동무, 내 말을 잘 듣소. 어제 말이요, 건설지휘부에서 사람이 왔댔소. 이름이 뭐더라. 전번에 동무네 공장에 실태료해를 내려갔던 무역부원 있지 않소.》

《윤상배 말입니까?》

《옳소, 윤상배.》

윤상배라는 소리에 예감이 좋지 않았다.

그가 왜 거기까지 찾아갔댔을가.

《그 사람이 무슨 용건으로 왔댔습니까?》

《그 량반이 신선이 되였더구만. 글쎄 동무네 공장에 중주파유도로를 해결해주겠다는거요.》

《중주파유도로요?!》

아닌밤중에 떡소리같은 소리에 리대철은 펄쩍 놀랐다.

《그렇소. 그 량반이 갑자기 그런 선심을 쓰는 목적이 무엇인지는 가늠이 가지 않았지만 욕심이 나더구만. 동무네 공장에서 언제부터 해결하려다가 끝내 못한 중주파유도로가 아니요. 그래 슬쩍 한마디 비쳤지.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는가고 말이요. 그랬더니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동무네 공장에서 고양정뽐프제작이 시작부터 애를 먹고있다는걸 다 알고있더구만. 저주파유도로에서 개량제를 뽑다가 실패한거랑 그리고 날개바퀴오작사고랑…》

리대철은 숨결이 거칠어졌다.

윤상배가 그걸 어떻게 알고있을가. 혹시 정향이가…

아니, 정향은 이미 아버지와 상반대는 리해관계로 하여 거의나 상대를 하지 않고있지 않는가.

제길, 별걸 다 신경쓰는군. 그가 어떻게 알았든 상관이 뭔가.

《그러면서 하는 말이 처음 해보는 일이여서 애를 먹을거라며… 그래서 자기네 사장과 토론하고 동무네 공장을 도와주기로 했다오. 지배인동무를 책임자로 해서 뽐프제작공업이 발전된 나라에 보내여 첨단급뽐프제작기술을 배워오도록 말이요. 갔던김에 중주파유도로도 사오고…》

유혹적인 그 말에 리대철은 가슴이 활랑거렸다.

이런 횡재라구야. 중주파유도로라?

언제부터 해결하지 못해 속을 태웠는데 이렇게 쉽게 해결되다니?…

《내 보기에도 잘된것 같소. 이 기회에 발전된 나라의 기술도 배워오고 좀 좋소. 어쨌든 동무넨 떡함지에 앉게 되였소.》

마음을 가라앉히며 차부국장의 말을 다시금 음미해보는 리대철은 어째서인지 윤상배가 연출하려는 《작품》의 종자가 아리숭하였다.

《부국장동지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나야 꿩먹고 알먹는격이라고 생각하지. 발전된 나라의 기술을 배워오는거야 좋은것이 아니겠소, 중주파유도로도 해결하고… 한번 믿어보는게 아니요?》

리대철은 한동안 망설이지 않을수 없었다.

가만, 좀 생각해보자. 그들이 우리에게 사다주려는 중주파유도로의 값은 어디에서 생긴것일가.

제 주머니를 털어서 우리에게 주는것은 아닐것이다.

분명 국가의 자금에서 떼낼것인데 나라에 도움을 주자고 일을 시작한 우리가 오히려 나라에 부담을 주면서 제 목적을 이룬다는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여기까지 생각한 리대철은 강잉히 머리를 흔들었다.

《부국장동지, 우린 그 사람들에게 중주파유도로를 해결해달라고 손을 내민적도 없으며 또 거저 준다고 해도 받지 않을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나라의 귀한 자금을 가지고 낯내기를 하고 생색을 하려고 하는데 그건 죄악입니다. 그리구 우리에게도 뽐프제작공업이 발전되였다는 나라들과 당당히 어깨를 겨룰수 있는 자력갱생의 공장이 있는데 뭐가 부족해서 기신거리겠습니까?》

칼로 물베듯 하는 리대철의 결단성에 차부국장이 환성을 올렸다.

《하하하, 역시 동문 어쩔수 없는 사람이로구만. 옳소, 그것 참 결심 잘했소. 허, 그걸 보면 내가 떨떨했구만. 윤상배의 말에 귀가 항아리만 했댔으니 말이요.》

《그럴수 있지요. 저도 처음 귀가 버룩해졌댄걸요. 그런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사람이 어데 있겠습니까. 문제는 제정신을 가지는거지요.》

《그런것 같소. 이번에도 지배인동무한테 단단히 한꼴 먹는구만, 허허허.》

《그런 말씀 마십시오.》

《알겠소, 윤상배동무에게 동무의 의사를 전하겠소.》

전화를 끊은 리대철은 당장 윤상배에게 맞불질을 걸고싶었지만 꾹 참았다.

속담에 친구와 나누는 술은 천잔으로도 모자라지만 비렬한자와 나누는 말은 한마디라도 많다고 하지 않았는가.

윤상배는 메사해졌다.

리대철이 제아무리 곧은 목이라고 해도 공장에 목이 멘 중주파유도로라는 《고기덩이》는 덥석 받아물리라 타산하였던것이다.

그가 그런 타산을 하게 된데는 어떻게든 수입안을 견지하리라 기대하였던 리석민이 주대가 없이 리대철이 잡아끄는대로 끌려다니는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때문이였다.

그전에는 일처리에서 결패가 있고 강단이 있어 함께 호흡이 잘 맞았는데 이번에는 왜 좌왕우왕하는지 리해가 안되였다.

리석민이 자기 권한으로도 주무르지 못하는 리대철을 자기가 중주파유도로로 유화시켜보려고 했었는데 일도 참 맹랑하게 되였다.

리석민이 그걸 알면 앙천대소할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중주파유도로소리를 비쳤을 때 반신반의했던 리석민이였다.

《그게 가능할가? 안돼! 그만두오. 리대철지배인과의 회계는 그들이 만든 뽐프를 놓고 해야 하오.》

했건만 윤상배는 리석민의 충고를 무시하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배심으로 리대철에게 미끼를 던졌었다.

그런데 웬걸… 주먹맞은 감투격이 된 윤상배는 자신의 처신이 경솔했음을 후회하지 않을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리석민의 애매한 태도에 대하여 머리를 기웃거리게 되였다. 혹시 그 어른이 동주뽐프에 기대를 걸고있는것이 아닐가.

십분 그럴수도 있다.

동주뽐프가 성공하는 경우에는 리석민이 자력갱생의 옹호자로 평가를 받을것이요, 설사 실패한다고 해도 수입안을 배제한것으로 하여 추궁을 면할수 있을것이다.

하다면 수입안을 기어이 성사시키려던 나는 어떻게 될것인가?

사대주의에 푹 절은 너절한 인간으로 타매될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윤상배는 이제라도 수입안을 뒤집어엎고 동주뽐프공장의 편에 서는것이 현명한 처사가 아닐가 하고 망설이게 되였다.

그것은 딸 정향이가 바라는것이였다.

그 고양정뽐프라는 《신령스러운 물건》에 현혹되여 금이야 옥이야 하던 딸과 수화상극이 되다싶이 된걸 생각하면 기가 막힌 일이다.

별안간 상념의 우물에 깊숙이 빠져 허우적거리는 상배를 놀래우며 전화종소리가 귀따갑게 울리였다.

얼른 팔을 뻗쳐 송수화기를 집어드니 국제통신국이였는데 대방으로부터 확스가 왔으니 어서 와서 받으라는것이였다.

그 소리에 윤상배는 고개를 기웃거리였다.

이제껏 자기가 거래대방을 찾기 전에는 그쪽에서 먼저 찾은적이 없었기때문이였다.

대체 무슨 일때문일가?

혹시 계약된 뽐프전량을 들이밀자고 그러는게 아닐가.

수수께끼같은 의문을 풀지 못한채 몇번이나 발동이 죽어 애를 먹이는 승용차를 끌고 국제통신국에 가니 아닐세라 언제 뽐프전량을 가져가겠는가 하는 물음과 함께 약속대로 요구한 서유럽산 승용차기관을 구입해놓았다는것이였다.

학수고대하고있던 승용차기관을 구입해놓았다는 소리에 흥분한 윤상배는 좀전에 기연가미연가하였던 모든 생각이 바람처럼 사라지고말았다.



46

며칠동안 품을 들여 날개바퀴목형을 완성한 창근은 소학교학생이 시험지 검열을 받듯 긴장해서 서있었다.

창근의 그 자세는 그 어느 조각가가 품들여 완성한 조각품같은게 옆사람들까지 긴장시켰다.

도면과 실물을 자로 재여보며 대조해보는 리대철의 눈길은 매눈처럼 예리하였다.

보고 또 보기를 그 몇번…

리대철의 옆에 꺼꺼부정해 서있는 목형반장은 숨도 크게 못 쉬는것 같았다.

그 어떤 흠집이라도 잡을듯 목형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하던 리대철은 허리를 펴며 창근이쪽을 띠여보았다.

《처음부터 이렇게 품을 들일노릇이지.》

합격이라는 소리였다.

시험점수를 기다리는 학생처럼 속을 조이고있던 창근은 안도의 숨을 내그었다. 어찌나 긴장했던지 이마에선 땀이 흘렀다.

두손을 썩썩 비비며 허리를 펴고 일어선 리대철이 목형반장에게 무뚝뚝하게 일렀다.

《주형에 넘기라구.》

《알겠습니다.》

칭찬의 말이라도 한마디 얻어들을줄 알았던 창근은 리대철의 처사가 섭섭하기 그지없었다.

《쳇, 잘했다고 칭찬 한마디 해주면 체면이 깎이는가.》

응석부리듯 게두덜거리는 창근을 보며 리대철이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뭐?! 칭찬? 야! 소잃고 외양간 고친 주제에 칭찬을 바래?》

《됐어요. 그걸 바란 내가 어리석었지.》

《허허허, 어쨌든 수고했다.》

그 말에 창근의 얼굴에 씩 하는 황소웃음이 스치였다.

사기가 난 목형반장이 창근의 손을 잡아흔들었다.

《창근이, 수고했네.》

《뭘요. 괜히 저때문에 반장동지가… 정말 미안합니다.》

리대철이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창근에게 일렀다.

《가다가 집에 들렸다 가거라.》

《거긴 왜요?》

《자식, 들렸다 가라면 들렸다 갈게지 까박은…》

찔 눈을 흘긴 리대철이 돌아섰다.

창근은 겅정겅정 걸어가는 리대철의 잔등에 대고 두덜거렸다.

《그저 떽떽거린다니까. 좀 곰살궂게 말하면 안되나?》

《허허허, 버릇없이… 지배인이 듣겠다.》

《들으라는거예요.》

《이보라구, 오늘은 일찍 들어가 쉬라구. 며칠째 밤을 밝혔는데.》

《알겠어요.》

아닌게아니라 창근은 며칠째 작업장에서 살다싶이하며 일하였다.

원래 사고이후 날개바퀴목형제작을 다른 사람이 하게 되였었다.

그런걸 창근이가 자기가 저지른 잘못은 자기가 보상하겠다고 우겨대서 맡아안았다.

창근이가 작업장을 뜨지 않으니 어머니도 오고 이모도 왔다갔다.

어머니는 창근이가 온 정신을 기울여 일하는걸 보고 너무도 대견스러워 올 때마다 오래동안 작업장을 뜨지 못하였다.

정향이는 새앙쥐 풀방구리 드나들듯 하루에도 몇번씩 작업장에 나타나서 경제선동을 한다며 한참이나 재잘거리다 가군 하였다.

작업장을 나선 창근의 마음은 풍선처럼 붕 떴다.

공장에 입직한 이후 오늘처럼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날이 있은것 같지 않았다.

사람이 어떻게 사는것이 보람있고 긍지스러운것인가를 이제야 안듯 싶었다.

키높이 자란 수삼나무우듬지에 한쌍의 까치가 재간스럽게 앉아 무슨 다정한 이야기를 주고받고있었다.

큰일을 해제낀 창근을 칭찬해주는듯 싶었다.

기분이 좋아 활개짓을 하며 정문으로 걸어가던 창근은 왼쪽에 있는 대형속보판앞에서 붓을 쥔 속보원청년이 자기가 쓴 글이 잘되였는지 확인하듯 속보판을 들여다보고있는것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길이가 거의 20여메터나 되는 속보판은 다른 공장에서처럼 멋들어진 제목에 혁신의 주인공들을 소개하는것이 아니라 월별로 계획완수자의 이름과 함께 계획수행프로수를 공개한다.

그것은 당비서 박영식이 발기한것으로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누구는 월에 계획을 몇프로 수행했는데 사회주의경쟁순위는 몇등이라는것을 공장종업원들이 다 알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것을 놓고 분기마다 총화사업을 하는데 등수에 따라 평가도 하고 경쟁상품을 수여한다.

12월 중순도 안되였는데 벌써 월계획완수자들의 이름이 대문짝만 하게 걸려있었다.

부러움에 차서 눈이 시도록 속보판을 들여다보는 창근은 자기 이름도 한번 올라보았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까짓거 나라고 속보판에 못 오른다는 법이 있는가.

오를테다, 온 공장이 다 보게 오를테다.

그때 누군가가 깃을 펴고 나래치는 꿈을 깨뜨리였다.

《뭘 그렇게 부럽게 쳐다봐요?》

아쉬움을 금치 못하며 돌아보니 언제 왔는지 정향이가 새물새물 웃으며 빤히 쳐다본다.

《야! 간떨어지겠구나.》

《호호! 속보에 나고싶어 그래요?》

《헤, 나같은게 어떻게 속보에 난다고 그래.》

목을 움츠리는 창근을 보며 정향은 재미있다는듯 깔깔거렸다.

《거짓말을 곧잘하는군요, 그 얼굴에 다 씌여져있는데…》

속이 켕긴 창근은 얼굴을 붉히였다.

《정향이 눈은 못 속이겠구나. 맞았어. 나도 언제면 저렇게 혁신자들과 나란히 설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어.》

《그럼 내가 가서 창근동지이름을 큼직하게 써달라고 해볼가?》

《큰일날 소리, 써달라면 써주니? 실적이 없는데.》

《왜 실적이 없다고 그래요? 며칠동안 밤잠을 미루어가며 노력해서 날개바퀴를 완성한건 뭐 속보감이 아니나요?》

창근은 놀랐다.

《너 그 소릴 어디서 들었니?》

《좀전에 송화동지한테서요.》

《송화한테서? 정말?!》

송화소리가 나오자 창근은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응.》

《송화가 뭐라고 하던?》

며칠째 그림자도 보지 못한 송화였다.

창근은 귀를 항 열고 호감어린 눈길로 정향의 얼굴을 더듬었다.

정향은 눈을 깜빡거리며 종다리 삼씨까듯 종알거렸다.

《송화동지가 뭐라고 했는가 하면… 창근동지가 제 손으로 날개바퀴목형을 완성했다면서 눈굽을 찍지 않겠어요.》

창근은 가슴이 뭉클하였다.

송화가 얼마나 기뻤으면 큰일도 아닌걸 놓고 눈굽을 찍었겠는가 하고 생각하던 창근은 정향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방금 한 소리가 진짜야?》

정향은 창근이가 눈을 흡뜨고 따지는 바람에 그만 당황해졌다.

《아니, 그건… 해해, 용서해요. 그건 사실 내가 지어낸 소리예요.》

솔직한 정향의 고백에 효모빵처럼 부풀었던 창근의 마음은 졸지에 김빠진 공처럼 되고말았다.

《에이, 그런 말도 지어내니?》

《미안해요. 난 둘사이가 다시 가까워지기를 바래서…》

애절하게 울리는 정향의 말을 듣는 창근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였다.

정향이가 바라는대로 다시 송화와 가까와졌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그것은 그림의 떡이나 같았다.

송화는 실 끊어진 연이나 같았다.

매혹의 선풍을 불러일으키는 정향의 눈빛이 우울해진 창근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실망하지 말아요. 지금 송화동지는 창근동지한테로 오는중이예요.》

창근은 허거픈 웃음을 지었다.

《야, 너 누굴 놀리는거야?》

《놀리긴요. 내 말을 마저 들어보고 성을 내든 때리든 하라요.

사랑에는요 쓴맛, 단맛, 시큼한 맛, 쩝쩔한 맛이 있는데 그 맛을 다 보아야 진짜래요. 지금 둘 다 그 맛을 다 못 보았거던요.

뭐랄가, 송화동지는 지금 쩝쩔한 맛을 보고있고 창근동지는 매운 맛을 보고있거던요. 왜 그렇게 말할수 있는가.

그것은 서로가 절대로 다른 사람을 넘겨다볼수 없기때문이예요.》

제법 경험자연 하며 훈계를 하는 정향을 보는 창근은 터지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동에 닿지 않는 소리같았지만 멍이 든 마음을 풀어주려 애쓰는 정향이가 고마왔다.

《고맙다, 정향아. 그렇다는 의미에서 내 오늘 정향이가 좋아하는 사과랑 내지, 어때?》

《아이, 좋아!》

《가자.》

창근은 손을 내밀어 정향의 손을 잡았다.

그들은 다정한 오누이처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공장정문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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