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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강자 13, 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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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1-01-17 18:28 조회41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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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말을 쓰다듬어주려다가 뒤발에 채운 격이 된 상배는 딸 정향의 반발에 속에 온통 화딱지가 들어찼다.

철딱서니없는년… 절 걱정하는 애비앞에서 뭐가 어쩌구 어쨌다구, 동주뽐프공장이 좋다?

이년아, 그 공장이 어떤 곳인줄 알기나 하느냐?

지난날 이 아버지가 떠나온 공장이고 오늘은 창창한 아버지의 앞길에 차단봉을 가로막으려는 공장이다.

상배는 뽐프수입문제로 상반되는 립장이 첨예화된것으로 하여 조만간에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모르는 그 공장에 딸이 있다는것이 시한탄을 안은것만큼이나 불안하였다.

뭐, 고양정뽐프를 만드는 일에 자기도 한몫 한다구?

잘한다, 아버지는 뽐프를 수입하고 딸은 그걸 만드는데 한몫 하고…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맹추같은년.

그 공장 사람들이 한사코 반대하는 고양정뽐프수입을 맡은 담당자가 다름아닌 너의 아버지라는걸 알면 가만있을상싶으냐.

부모가 미우면 그 자식도 미워한다지 않느냐.

희극에 눈물이 있고 비극에 웃음이 있다더니 아버지가 떠나온 공장에 자진하여 간데다가 승산도 없는 고양정뽐프생산에 머리를 들이민 딸때문에 아니할 가슴앓이를 하게 되였으니 생활이란 얼마나 복잡다단한것인가.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

평양기계대학을 졸업하고 동주뽐프공장에 배치받았던 윤상배가 2년후 평양에 닻을 내리게 된것은 안해인 선월의 공로였다.

그들의 인연은 모란봉청년야외극장에서 맺어졌다.

그때 대학졸업반이였던 상배는 청년야외극장에서 열린 평양시안의 대학생들의 웅변모임에서 류창한 언변과 세련된 배우적인 형상으로써 청중의 인기를 독차지하였다.

웅변이 끝나자 관람자들이 경쟁적으로 달려나와 상배의 앞가슴에 훈장이라도 달아주듯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그들가운데는 어느 호텔 의례원이였던 선월이도 있었다.

꽃처럼 환하게 웃으며 마주보는 처녀의 부드럽고 온화한 검은 눈동자에 상배는 그만 풍덩 빠지고말았다.

세상에 이런 아름다운 처녀도 있었는가.

처녀 역시 상배의 잘생긴 얼굴과 름름한 체구에 반한듯싶었다.

한송이 꽃으로 맺어진 인연은 인차 끌수 없는 사랑의 불길을 지피였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상배의 마음을 괴롭힌것은 고향이 지방인것으로 하여 졸업후의 배치문제였다.

대학시절 사회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내여 교원들과 학생들속에서 인기가 높았던 윤상배는 졸업후 배치는 먹어놓은 떡이라고 장담하였었다. 그런데 웬걸, 가만 보니 배치가 맘먹은대로 될것 같지 않았다.

윤상배는 고민을 하기 시작하였다.

평양처녀들은 지방에 내려가는것을 꺼려한다는데 이 처녀가 내가 지방에 배치된다면 날 따라오자고 하겠는가.

어떻게 할것인가. 이제라도 이 처녀와 헤여지는것이 옳지 않을가.

천야만야로 깊어지는 상배의 마음속 고민을 읽은 처녀는 어떻게 하나 이 미남자를 잃지 않으려고 모지름을 썼다.

부모들에게 애달픈 마음을 헤쳐보이며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어느 한 중앙기관에서 일하는 삼촌을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호소를 하기도 하였다.

상배라는 총각을 잃으면 강물에라도 뛰여들것만 같은 딸의 버둥질에 부모들까지 합세하여 앞날의 사위감을 위해 여기저기 문을 두드리며 동분서주하였다.

허나 운명은 그들을 외면했다.

상배가 동주뽐프공장에 배치받았던것이다.

고향이 덕천인 상배에게 있어서 그 공장은 너무도 생소한 곳이였다.

허허벌판이나 같은 그 공장에 가서 어떻게 한단 말인가.

상배는 그만 절망에 빠지고말았다.

평양을 떠나던 날 작별의 아픈 마음을 흔들며 울리는 기적소리에 이어 미련을 버리라는듯 길게 울리는 애어린 처녀안내원이 불어대는 호각소리를 듣는 순간 처녀는 상배의 두손을 움켜쥐며 흐느끼였다.

《희망을 잃지 마세요. 삼촌의 말이 공장에 가서 기술창안이나 발명을 한건만 하면 정정당당하게 소환을 하겠다고 했어요.》

《?!》

선월의 속삭임은 절망으로 하여 음울한 미소를 짓고있던 상배의 가슴에 화살처럼 박히였다.

생기를 잃었던 눈에 불꽃이 튕기였다.

선월의 따스한 입김은 꺼져가던 불무지안의 작은 불씨에 불길이 확 일게 하였다. 온몸에 기운이 쫙 퍼져가는것을 의식하였다.

흥분한 상배는 식어가던 심장에 온기를 준 선월을 힘차게 포옹하였다. 렬차가 서서히 움직이였다. …

공장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공장생활에 몸을 폭 잠그었다.

우선 사람들의 신망을 얻기 위해 있는 열성을 다하였다.

남보다 먼저 출근하여 청소를 하고 기대를 닦았고 남들이 퇴근한 후에야 공장을 나서는 상배를 보며 사람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집단을 위하여 헌신하는 상배의 이름이 자주 종업원총회에서 불리워져 공장사람들치고 그를 모르는 사람은 출장자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였다.

당시 가공직장장이였던 리대철은 온 공장이 칭찬하는 상배를 두고 여간만 기뻐하지 않았다.

같은 대학 졸업생이라는 친근감으로 하여 합숙생활을 하는 상배를 자주 집에 데려가기도 하였고 생활상 애로되는 일에는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었다.

그들은 잠간사이에 형님, 동생사이가 되였다.

어느새 2년이라는 세월이 눈 껌벅할 사이에 지나갔다.

기술창안이나 발명을 한건만 하면 평양으로 소환하겠다던 선월의 삼촌의 말이 그사이 삼사월 고드름녹듯 하여버렸다.

그것은 상배 자기능력으로는 기술혁신이나 발명을 할수 없었기때문이였다. 남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목적을 이루어보려고 애써보았지만 도저히 마땅한 상대가 나서지 않았던것이다.

에라, 푼수에 맞지 않는 기대는 버리자.

남의 덕에 호강을 하겠다는 인간만큼 어리석은자가 없다는데…

대범하게 생각을 고쳐먹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남은것은 한주일이 멀다하게 전화를 걸어오는 선월과 헤여지는것이였다.

성사도 되지 못할 일때문에 공연히 처녀의 애간장을 말리는것이 남자로서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련인들의 리별의 아픔이 생초목도 태운다지만 어찌하랴.

한동안 가슴이 아플테지만 세월이 흐르느라면 아물겠지.

그런데 어느 하루 처녀한테서 걸려온 전화는 상배를 미칠 지경으로 만들었다.

기다리기에 지친 선월이가 아예 공장으로 내려오겠다는것이였다.

천만뜻밖의 처녀의 결심에 상배는 속이 새까매졌다.

오죽이나 속이 탔으면 처녀가 그런 결심을 하였겠는가.

그런 결심을 하게 된데는 필경 자기로서는 상배를 평양으로 끌어올릴 자신이 없기때문이 아니겠는가.

안돼, 화려한 도시생활에 습관된 처녀가 지방에서 어떻게 생활한단 말인가. 어쩌면 자기때문에 선월을 일생 고생을 시킬것만 같은 죄스러움에 마음이 무거웠다.

련인을 위하여 자기를 바치려는 선월을 위해서라도 내 어떻게든 솟구쳐오르리라.

선월이, 기다려주오. 내 기어이 그대에게로 돌아가겠소.

단념하다싶이 하였던 평양행에 다시금 발동을 건 상배는 어떻게 해서든지 기술혁신이나 발명을 하여 목적을 이루리라 강심을 먹었다.

드디여 기회가 생기였다.

탄광들에서 리용하는 뽐프들의 수명이 짧아진다는 의견들이 제기되자 공장에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기술혁신조를 조직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였다.

그것을 알게 된 상배는 그 문제를 해결하는것이 그 어느 개인에 한한것이 아니라 집단의 지혜를 모아야 하는것만큼 거기에 끼우면 덕을 보고 선월이가 기다리는 평양으로 날아갈것 같았다.

두번다시 없는 기회라고 판단한 상배는 즉시 리대철을 찾아가 기술혁신조에 망라시켜줄것을 제기하였다.

상배의 속심을 알리 없는 리대철은 이번 기회에 실력을 보이라고 풍구질까지 해주었다.

어느 한 탄광으로 간 기술혁신조 성원들은 갱막장들에 들어가 뽐프들의 운영을 구체적으로 관찰하였다.

여러날동안 뽐프들의 가동을 주시하였지만 수명이 짧아지는 원인을 찾을수가 없었다. 모두 속들이 탔다.

그러한 때에 윤상배가 기막힌 발견을 내놓았다.

상배의 말인즉 뽐프의 수명이 짧아지는 원인이 탄광지하수에 탄가루가 섞이여들어가 뽐프가 가동할 때 과부하를 받기때문이라는것이였다.

고심과 탐구가 엿보이는 상배의 발견에 기술혁신조 성원들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라도 만난듯 환성을 올리였다.

이튿날 그들은 일반용수와 탄광지하수를 퍼올리는 뽐프를 따로따로 설치하고 비교실험을 해보았다.

며칠간의 가동끝에 뽐프들을 분해해보니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지하수를 퍼올리는 뽐프는 물속에 섞이워 올라오는 탄가루에 의하여 균형판의 마찰이 심하다는것을 확정하였다.

원인이 명백히 밝혀진 이상 해결방도는 어렵지 않았다.

진지한 토론끝에 균형판이 없는 쌍원심뽐프를 리용하면 뽐프의 수명을 늘일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공장으로 돌아왔다.

공장에서는 그들이 제기한 안을 심의하고 쌍원심뽐프를 제작하였다.

그 과정에 이전에 마찰을 극복하기 위해 사용하던 귀한 합금강을 쓰지 않으며 베아링도 수지메달로 교체하였다.

새롭게 개조한 뽐프는 탄광들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그 일로 하여 상배는 일약 수재로 떠받들리게 되였다.

그도 그럴것이 그의 발견이 아니였더라면 갈이성매질이 뽐프수명을 줄이는 근본원인이라는것을 알수 없었을것이다.

기술혁신조의 성과는 발명권으로 평가되였다.

상배도 발명권을 받았다.

그뿐아니라 그들이 달성한 성과가 도일보에 모두의 사진까지 받쳐 큼직하게 소개되였다.

드디여 평양소환장이 떨어졌다.

지방에 묻어두기는 아까운 인재라며 소환한다는것이였다.

윤상배의 뜻밖의 소환은 공장사람들의 아쉬움을 자아냈다.

리대철은 공장을 위해 큰일을 할만 한 아까운 사람을 곶감 뽑아먹듯 하는 웃사람들에게 로골적인 불만을 터뜨리였다.

상배가 평양으로 떠나던 날 역전까지 따라나온 리대철은 헤여지기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정이 들만 하니까 리별이라더니. 정말 섭섭하구만… 하긴 우에서도 자네가 더 큰일을 할수 있다고 보고 소환장을 떨구었겠지. 올라가서 꼭 성공하라구.》

고지식하기 그지없는 리대철의 당부에 윤상배는 마음에 걸리는것이 없지 않았지만 짐짓 섭섭한 표정을 지으며 목메인 소리를 하였다.

《나도 형님하고 떨어지기가 아쉽군요. 그리고 공장사람들과도… 어데 가도 잊지 않겠어요.》

그때로부터 아득히 흘러간 세월은 상배한테서 동주뽐프공장에 대한 추억이 흘러간 물처럼 다시 돌아오지 않게 할줄 알았는데 고양정뽐프로 하여 원래대로 돌아오게 하였으니 세상에 이런 기묘한 일이 또 어데 있겠는가. 그래서 아마 생활은 반복의 련속이라고 하는지.…

거기에 딸 정향이까지 끼여들었으니 장차 일이 어떻게 번져질지 상배자신도 바이 가늠할수가 없었다.

답답한 마음을 잠재우지 못하는 상배의 머리속에서는 빨리 대방과 약속한 뽐프를 들여와야 한다는 생각이 고패쳤다.



14

 

이설이 기본적으로 끝난 주물직장에서는 한쪽으로는 생산을 보장하면서 한쪽으로는 건설직장을 동원하여 새로 제작하는 천정기중기를 설치할수 있게 중간보와 레루를 설치하는 작업을 하고있었다.

흥남가스화대상에 보낼 대형뽐프주물형타를 만들고있는 송화의 눈길은 자주 건설직장사람들이 일하는 곳으로 갔다.

창근의 얼굴이 보이지 않기때문이였다.

그 동문 무슨 일을 하길래 여기에 동원되지 않았을가.

또 후방사업을 턱대고 제볼장을 보러간게 아닐가.

송화는 창근에 대한 불만으로 속이 바글바글했다.

왜 남들처럼 떳떳하게 일을 못할가. 지금쯤 어느 개인집에 박혀 주문받은 가구를 제작해주느라 땀을 흘리고있을것이 뻔했다.

만나기만 해봐라.

요즘 창근은 송화를 슬슬 피해다니는것 같다.

사회와 집단의 리익을 외면하고 제 리속을 채우려는 사람은 떳떳치 못한탓에 자연히 남의 눈치를 보게 되고 비굴해지기마련이다.

그것이 자신의 존엄과 자존심을 스스로 허무는 처신이라는걸 몇번이나 말을 해주었는데도 왜 채심을 못하는가.

속이 앙앙해진 송화의 마음을 눅잦히듯 점심시간을 알리는 고동소리가 울리였다. 사람들이 하나둘 흩어져갔다.

송화가 다짐봉을 사형무지에 내려놓고 작업장갑을 벗는데 누군가가 큰소리로 말하였다.

《송화! 뻐꾸기가 널 찾는대.》

귀거슬리는 소리였다. 순간에 신경이 팩 돋아 고개를 돌리고보니 함께 일하는 금녀아주머니가 저만치 걸어가고있었다.

뻐꾸기란 창근을 두고 하는 소리다.

이름을 부를게지 하필이면 뻐꾸기가 뭐람.

밸이 난걸 생각하면 그를 불러세워 한바탕 화풀이를 하고싶었지만 꾹 참고 바람에 밀리듯 밖으로 향하였다.

직장 맞은쪽 수삼나무아래에 창근이가 서있는것이 보였다.

무슨 기분좋은 일이라도 있는지 히죽히죽 웃으며 송화를 향해 어서 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를 보는 송화의 눈에 불이 일었다.

뻔뻔스럽기란, 남들은 한창 땀흘리며 일하는데 어델 싸다니는거야? 가만두지 않을테다.

창근을 혼쌀내울 화약에 심지를 다지며 다가간 송화가 매몰차게 쏘아붙였다.

《동무, 지금 제정신이예요? 일은 안하고 어델 갔댔어요?》

했으나 창근은 뜨끔도 하지 않고 능글거렸다.

《아, 이런, 만나자바람으로 성은 왜 내는거야. 곱게 말해도 되겠는데… 야, 이 땀 좀 봐!》

오히려 제편에서 너덜거리는 판이다.

땀을 닦아주려고 다가오는 손을 참지 못하고 꽉 움켜잡았다.

《아가가!》

창근이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쳐댔다.

송화는 그 소리에 혹시 사람들의 눈길이 미칠가봐 겁이 나 얼른 놔주고말았다.

《야, 팔목뼈 부스러지겠다야. 얼굴은 고운데 무슨 녀자 손이 이렇게 매워? 제대군인이라는거 다 알아. 앞으로 같이 살면서도 세대주한테 주먹세례를 안기면 야단인데… 그래두 난 송화가 좋아.》

아유, 살갑다는건. 웃지 않을수 없었다.

송화에게 시틋한 웃음을 지어보인 창근은 웃옷주머니에서 두겹으로 접은 종이를 꺼내 내밀었다.

《자, 받아.》

《이건 뭐예요?》

《펴보라니까.》

종이를 받아들고 펼치던 송화의 눈이 꼿꼿해졌다.

시뻘건 공인명판이 찍힌 식료공장 로력조절의뢰서였다. 기가 막혔다.

《내가 그걸 해결하느라고 얼마나 품을 들였는지 알아? 로력이 다 찼다는걸 손이야 발이야 빌며 겨우 그 공장 로동과장을 설복시켰거던. 처음에는 값을 올리던 로동과장이 송화의 경력을 듣더니 입이 터진 팥자루가 되지 않겠어. 송화를 자기네 공장 직맹해설강사로 쓰겠다나. 어때, 괜찮지?》

큰일이라도 해제낀듯 잔뜩 기분이 떠서 하는 창근의 말에 송화가 갑자기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였다.

《호호호! 직맹해설강사?》

《그럼. 거기 가면 쭉 때벗이를 하지. 편안하겠다, 먹을 알이 있겠다, 좀 좋아? 여기처럼 먼지 먹을 일도 없고…》

웃음이 사라진 송화의 얼굴에 싸늘한 랭기가 풍기였다.

서리를 품은 눈가장자리가 파르르 떨리였다.

분하였다. 창근의 동정의 대상이 된것이 참을수 없이 분하였다.

《뭐예요?》

송화는 윽벼르며 창근이에게 다가섰다.

창근이 비실비실 뒤걸음쳤다.

《자 이런, 또 또… 말루 하자, 말루…》

송화의 손에서 종이장이 발기발기 찢어졌다.

《내가 언제부터 정창근이라는 인간의 동정의 대상이 됐어요?》

그것을 창근의 발치에 내던지는 송화의 눈가에 분노의 눈물이 가랑가랑하였다.

가랑잎처럼 흩날리는 종이쪼각들을 보는 창근의 눈이 뒤집혔다.

《정신있어? 그걸 찢으면 어떻게 해?》

창근을 노려보는 송화의 눈은 성냥가치를 가져다대면 금시 불이 당길듯 하였다.

《그래 그따위걸로 내 비위를 맞추자고 남에게 굽신거렸다는거예요? 시라소니처럼…》

《뭐, 시라소니? 정말 말 다했어?》

귀뺨을 얻어맞기라도 한듯 볼을 실룩거리는 창근의 얼굴은 화로불을 마주한듯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호랑이라는 말을 듣고싶거든 처신을 바로해요. 자존심, 존엄이라는 말은 다 잊어버렸지요? 몇번이나 말했어요. 그래 엎드려 빌어야 말 듣겠어요? 눈물을 쏟으며 통곡을 해야 말 듣겠어요?》

다시는 상대를 하지 않을듯 팩 돌아선 송화가 찬바람을 일구며 걸음을 내짚었다.

《서라!》

역정에 가까운 창근의 성이 난 목소리가 잔등을 때리였으나 송화는 못 들은체 그냥 걸음을 옮겼다.

모욕을 당한것만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사람을 어떻게 보고 그따위 흥정판에 날 올려세우는거야.

뭐, 식료공장? 편안하고 먹을 알이 있다, 먼지 먹을 일도 없고…

정창근이, 인간이 어쩌면 그렇게도 달라질수가 있는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만 하여도 푸른 하늘처럼 쾌청하고 샘물처럼 맑던 창근이가 언제부터 리기심이 머리속에 꼴깍 찬 속물로 되였는지 리해가 안되였다.

사람이 그렇게도 변하는가.

송화와 창근은 어릴 때부터 콩깍지안에 나란히 들어앉은 콩알처럼 다정하게 지내며 자랐다. 그것은 아마도 아버지들이 한직장에서 일하며 형님, 동생처럼 자별하였던 까닭이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유치원과 인민학교를 거쳐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한번도 떨어진적이 없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그들은 인민군대로 탄원하였다.

군대에 나가도 한부대에서 복무하기로 약속하였었다.

구김살없이 소박하고 열렬하였던 그들의 꿈이 창근이가 철봉훈련을 하다가 떨어져 팔을 다치는 바람에 광주리채로 뒤집어져 박살이 난 닭알처럼 될줄 어찌 알았으랴.

대공을 날으려던 푸른 꿈이 깨여진 창근은 너무 분하여 어린애처럼 소리내여 울었다.

운명의 장난같은 창근의 불행에 송화도 울었다.

군복을 입은 송화가 초소로 떠나던 날 자신의 처지가 서글퍼난 창근은 눈물이 글썽해서 푸른색뚜껑의 수첩을 내놓았다.

《송화, 이걸 받아. 여기에 내가 송화에게 하고싶은 부탁을 적었어.》

가슴이 뭉클하여 수첩을 펼치니 거기에는 창근이가 품들여 또박또박 쓴 노래가사가 적혀있었다.

심장을 바치자 어머니조국에

행복한 나날엔 다 모른 그 사랑

시련의 나날에 가슴에 새겼네

눈비에 젖을가 찬바람 맞을가

한몸에 막아준 그대의 넓은 품

심장을 바치자 어머니조국에

한생을 바치자 위대한 내 조국에

자식들 얼굴에 웃음꽃 필 때에

그대의 어깨엔 더 큰 짐 놓였네

철들어 마음에 그 짐을 져보니

키워준 그 은정 눈시울 뜨겁네

심장을 바치자 어머니조국에

한생을 바치자 위대한 내 조국에

그대를 지키는 성스런 이 길에

후대들 누려갈 행복도 있어라

값높이 바치는 오늘의 애국은

내 나라 번영의 초석이 되리라

심장을 바치자 어머니조국에

한생을 바치자 위대한 내 조국에

이미 머리속에 환한 노래였지만 새로운 의미로 가슴에 새겨졌다.

송화는 작별의 그 순간 창근이가 하고싶은 말이 많고많으련만 왜 노래의 구절을 새겨주는지 잘 알았다.

《고마워, 동무의 부탁을 잊지 않겠어.》

그들은 이렇게 헤여졌다.

군사복무의 나날 송화는 창근의 부탁을 새겨안고 조국을 위하여 충정의 발걸음을 걸었다.

군대에 나온지 두달만에 송화는 아버지가 보낸 편지를 읽다가 그만 졸도할번 하였다.

창근이 아버지가 작업도중 동지들을 구원하고 희생되였다는것과 구원된 사람들중에 자기의 아버지도 있었다는것이였다.

제정신으로 돌아온 송화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울면서 창근이가 수첩에 적어준 그 노래구절을 입속으로 불렀다.

그 노래를 부르며 창근을 그려보았고 그의 아버지를 생각했다.

송화를 만나면 친딸을 만난듯 반가와하던 창근의 아버지였다.

언젠가 창근의 아버지는 송화를 보며 최금석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형님! 이담에 송화가 크면 다른데 시집보내선 안되우다. 이 앤 우리 며느리요.》

그때 아버지는 싱글벙글하며 뭐라고 하셨던가.

《그야 이를 말인가. 난 이미 동생네 아들 창근이를 내 사위로 점찍어놓은지 오래다네.》

송화는 자라면서 아버지들이 주고받은 말이 술좌석에서 나는 객담이 아님을 느끼게 되였다.

송화가 열일곱살 잡히던 해의 생일날 창근의 아버지는 숫눈처럼 하얀 한쌍의 비둘기가 들어있는 장을 가지고 집으로 찾아왔다.

타원형으로 된 비둘기장은 창근의 아버지가 직접 제 손으로 만들었다는데 어떻게나 섬세하게 가공을 하였는지 한다하는 목수재간을 가진 사람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팥알처럼 빨간 눈을 삼빡거리며 자기를 빠금히 쳐다보는 한쌍의 비둘기를 보는 송화는 창근의 아버지가 왜 이것을 가져왔을가 하고 생각해보았다.

비록 설명은 없었어도 자기와 창근의 마음이 한쌍의 비둘기처럼 다정하고 깨끗하기를 바라는것임을 느꼈을 때 아직은 이성에 대해 눈이 채 트이지 않은 송화였지만 별스레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그 마음을 엿본듯 한 아버지가 히죽이 웃으며 한마디 하였다.

《허허허, 비둘기란 한번 정을 붙이면 일생 떨어질줄 모르지.》

그래서 아마도 제대되여온 후 청천강의 방천에서 창근을 만났을 때 주저주저하며 하는 그의 사랑의 고백에 거절없이 응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내보니 창근은 오늘의 벅찬 시대를 빛내이기 위해 청춘의 슬기와 용맹을 떨쳐가는 청년들처럼 훌륭한 인간이 아니라 벌레먹은 콩처럼 아무 쓸모도 없는 속물로 변한 정신적인 약자였다.

오한을 만난것처럼 속이 떨리였다.

전쟁보다 더 어려웠던 시련의 나날 눈비에 젖을가, 찬바람 맞을가 애지중지하며 키워준 어머니조국을 위해 심장을 바치겠다고 할 때가 언제인데 저 하나를 위해서 사는 너절한 인간으로 되였는가.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아버지를 잃은 다음부터 창근이가 이지러지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돈맛을 들인때문인듯도싶었다.

공장에서 일한 대가와 개인들의 가구주문으로 얻은 보수의 차이는 창근이로 하여금 저도 모르게 제 주머니를 채우는 일에 성수가 나게 하였고 그것이 재미가 붙어 점차 집단생활에서 탈선하게 하였다.

그것을 가늠 못하는 건설직장장과 일부 사람들은 창근이가 때때로 직장을 위해 《후방사업》을 하는것을 잘한다, 잘한다 하며 추어주니 자기도 집단을 위해 뭔가 기여한다고 우쭐해졌다.

그런 창근을 바로잡아주자고 충고도 하고 사정도 해보았지만 송화 자기 말은 먼산의 우뢰만큼도 여기지 않는다.

창근이가 그런 인간인줄 모르는 송화 아버지는 일흔돐생일날 창근이가 힘에 부치게 지고 나타난 음식감들과 옷감들을 보고 사람이 진국이라고 입에 침이 마를새없이 칭찬을 해댔다.

아버지는 지금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창근의 소리다.

뭐 , 사위감이라구?

창근의 곁에 자신을 세워보는 송화는 기가 막히였다.

안돼! 어제날의 창근이로 되돌아오기 전에는 절대로 곁에 설수 없어.

절대로 죽은 심장과 어깨를 나란히 할수가 없어.

갈팡질팡거리는 생각에 빠져 발길 가는대로 걸음을 옮기던 송화는 자기 집을 지나쳤음을 깨닫고 황황히 되돌아섰다.

생각해보니 허망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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