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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총대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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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12-29 20:03 조회5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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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향도》

장 편 소 설          총대

박 윤

( 제 43 회 )

제 6 장

5

왜서인지 바다는 고요해졌다. 사품치던 격랑도 잦아들고 찢어진 구름틈새로 희미한 별빛이 비쳐내린다. 바다의 푸른 빛이 드디여 그 은근하고 다채로운 빛발을 뿌려대자 박신철은 그동안 자기가 꿈속을 헤맸던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떠나온 뒤를 돌아보았다. 끝도 시작도 느껴지지 않는 아득한 바다만이 어둠속으로 잦아들었다. 불쑥 그는 불뭉치같은것이 가슴속에 치밀어오르는것을 감촉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떠나온 길, 그는 화염과 포연과 안개너머로 분명 그 장중한 폭음을 들었다. 적함의 포위환이 형성되기전에 그곳을 일정하게 빠져나오자 둔중한 포성과 폭음이 자지러진 기관총소리속에 어우러졌다. 미제침략군함선들이 드디여 공격을 개시한것이였다. 우리 함선쪽은 조금 잠잠해지더니 이윽고 가슴을 흔드는 우렁찬 만세의 함성같은것이 터져올랐다. 그러자 그 뒤를 이어 함선에서 거대한 불기둥이 바다의 상공으로 치솟았다. 박신철은 넋을 잃고 그 불기둥을 바라보고있었다.

그것은 죽음앞에서 굴할줄 모르는 최고사령관동지의 전사, 혁명앞에 다진 맹세를 피로써 지킬줄 아는 사상의 강자, 신념의 강자ㅡ 영웅적조선인민군 전사들이 터친 영생의 메아리였다. 박신철은 볼을 타고 비오듯 쏟아져내리는 눈물속에 그 자폭의 영원한 메아리, 자폭의 숭고한 서사시를 지켜보고있었다.

《동지들! 전우들…》

그는 분명 방금전의 그 격정의 웨침이 생과의 준엄하고 무자비한 작별을 선언하고 운명의 마지막순간에 전우들이 터친 심장의 목소리ㅡ 《김정일장군 만세!》라는것을 깨달았다.

불기둥이 사라지고 불타는 바다가 노호를 일으켰다.

그 거세찬 불기둥이 일으킨 물결에 떠밀려 그는 북을 향한 엄혹한 행군을 시작한것이다.…

차츰 구름이 걷히고 별빛에 더욱 밝아진 하늘이 검은 바다멀리 가물거리는 수평선까지 펼쳐졌다.

박신철은 아직까지도 두팔과 다리를 놀리고있었으나 어쩐지 온몸이 자기의것 같지 않게 여겨졌다. 병사시절엔 이보다 더 찬 겨울의 바다물에서도 백리를 서슴없이 헤여갔던 그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쩐지 그 억센 강철같던 팔다리에 마비가 오고 동상을 입은것처럼 몸이 얼어든다.

그는 분명 그것이 부상을 입은 목에서 피가 흘러내렸기때문이라는것을 깨달았다.

무조건 가야 한다. 기지로, 조국의 품으로 돌아가 동지들이 목숨을 바쳐 그에게 맡긴 귀중한 문건을 전해야 하고 그들 스물네명의 영웅적최후를 전해야 한다. 그래, 임무를 수행하기전에는 나에게 절대로 죽을 권리가 없어. 끝까지 이 소중한 문건을 가져가야 해.

아, 바다의 흐름아, 이 몸을 싣고 어서 빨리 가주렴. 나는 너의 아들이지? 네 품에서 잔뼈가 굵고 다정한 애인처럼 널 사랑했지?

단아, 단아동무! 내 쪽지편지를 받았겠지? 난 동무를 목숨처럼 사랑했어. 동무가 앵돌아질 때조차 그 사랑의 불길은 꺼지지 않았거든. 동무의 그 주근깨가 다문다문한 귀여운 얼굴, 그 정찬 도툼한 입술, 그 류다른 률동적인 걸음새, 그 나직하고 맑은 목소리… 그 섬세하고 예민하고 변덕많은 성격, 응, 동무는 변덕쟁이야. 칠면조처럼… 그래도 난 좋아. 동무의 아버지는 나를 아들이라고 다정히 불러줬어. 일찌기 아버지를 여윈 나에겐 그 부름이 좋아.

아버지… 박신철은 정신이 가물거리는속에 구명조끼에 의지하여 힘겹게 한치한치 바다물을 끌어당기고있었다.…

…박신철은 불현듯 이깔골에 들어선 자신을 발견하였다. 해묵은 노란 바늘같은 이깔잎이 북신북신 발에 밟혔다.

그것은 든든한 대지였다. 그는 비로소 자기가 《뭍》에 올라섰다는것을 깨닫자 마음이 푹 놓였다. 이깔골이 끝나는 울릉덕등판에서 아버지가 도끼질을 하고있었다. 박신철은 아버지가 벌써 나무를 다 잘라놓았다는것을 알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는 급히 달려가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끌고갈 나무를 한옆에 무져놓고 한숨돌리려는듯 《진달래》담배를 한대 피워물었다. 박신철은 바위우의 쇠줄을 집어들었다.

《아버지, 끌고갈 나무단은 내가 묶겠어요.》

《허, 녀석두, 그게 조련치 않아! 어디 해보아라.》

《체, 아버진 날…》

박신철은 후끈 달아 발목두께의 가쯘하게 다듬은 길다란 자작나무단을 한아름되게 가려놓고 가는 쇠줄로 밑둥을 설렁설렁하게 묶어놓았다.

《좀 더 조이지 않구.》

《체, 아버지, 그러다간 쇠줄을 비틀 때 끊어져요.》

박신철은 덤벼치며 묶은 쇠바줄앞에 도끼자루크기의 나무토막을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가늘고 단단한 후리채를 하나 골라 나무토막우로 쇠바줄에 꿰고는 닁큼 들어올렸다. 쇠바줄이 우지직하며 나무단을 조이기 시작했다. 자칫하다간 《지레대》의 힘에 줄이 끊어질수 있다. 운수좋게도 후리채는 쇠바줄을 조여 나무단을 단단히 묶으며 뒤로 넘어갔다. 박신철은 그 후리채를 나무단의 꼬리쪽에 든든히 비끄러맸다. 그리고는 바줄을 가져다 쇠바줄을 조이며 량쪽으로 소뿔처럼 나와있는 나무토막에 걸었다.

《어때요? 아버지!》

《흥, 제법인데…》

아버지는 대견한듯 웃음을 짓고 담배연기를 내뿜는다.

박신철은 그제야 마음이 놓인듯 바줄을 놓고 검푸른 이끼가 소담하게 희끗희끗한 바위우에 올라섰다.

《야, 그전엔 이 이깔골에도 머루, 다래가 많았댔는데…》

《녀석두, 사람이 느니 머루, 다래두 더 깊은 산속으로 피해 달아났지.》

《하긴 그래요. 이 울릉덕너머나 송동골막바지엔 아직 새까매요. 멀긴 하지만 다음 일요일엔 순남형님이랑 명환이, 준철이랑 한번 가볼래요.》

박신철은 바위우에 일어서서 골밑을 내려다보았다. 이곳에선 3부락너머 학교촌(4부락)이 빤히 내려다보인다. 뿌연 아연빛 북천물이 골안을 따라 굽이굽이 흐르는데 광산상점이며 어머니가 다니는 양복부 그리고 다리건너 광산합숙과 문화회관, 올망졸망한 단층집들뒤의 3층짜리 학교건물이 손바닥처럼 보인다. 길다란 삼각형같은 운동장이 어쩐지 볼품이 없다. 박신철은 그 어떤 아쉬움을 느끼며 머리를 돌렸다. 그러자 눈부신 백금산정이 금시 눈에 마주친다. 이제는 돈산과 4. 5산이 많이 확장되여 그가운데 자리잡은 금산은 별로 작아보인다.

《아버지, 저 금산꼭대기를 보시라요. 꼭 옛날장수가 서있는것 같아요. 그래서 광부아저씨들이 저 산을 캐다가 그만 두었을가요?》

《허허, 녀석두. 거긴 전차갱을 뚫지 않았니. 그밑엔 조쇄직장이 있구. 그래서 앞으로 저 산너머로 광구를 확장한단다.》

아버지는 눈을 쪼프리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하얀 마그네사이트가 빛나는 산정에 굴착기들이 딱정벌레처럼 붙어서서 꿈질꿈질 움직인다.

《야, 멋있네!》

문득 박신철은 곁에서 《응, 차!》하는 애된 소리가 나는 바람에 고개를 돌렸다.

까만 쎄라복을 입은 목이 상큼하고 허리가 개미같은 소녀가 자기의 나무단을 끌어내려고 무진 애를 쓰고있다. 박신철은 황급히 달려들어 소녀가 잡은 바줄을 나꾸어챘다.

《이건 뭐냐? 이건 내 나무단이야!》

《아니야. 내거야! 아저씨가 날 보고 가져가랬어.》

소녀가 얼굴을 돌리자 연한 주근깨가 다문다문한 해사한 얼굴에서 새별눈이 해빛에 반짝인다.

성이 독같이 났으나 소녀의 눈은 마치 새물새물 웃는것 같다.

박신철은 재미없게 어린 계집애와 다툴 생각이 안나 그냥 무작정 바줄만 잡아당겼다. 이악한 소녀는 도톰한 입술을 옥문채 바줄을 놓지 않는다.

《신철아, 놔두렴! 그 나물 가져다 학교호박굴에 쓴다면서 뭘 그러니?》

《아버지, 아니예요. 이 계집앤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니예요!》

그러자 소녀가 억울하다는듯이 그의 팔을 꼬집었다.

《얘, 왜 아니라구 그래? 갱장아저씨! 이 앨 혼내주세요!》

소녀는 박신철을 와락 떠밀쳤다. 박신철은 그만 골짜기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북천물이 얼굴에 확 닿는 순간 박신철은 눈을 떴다.… 박신철은 파도가 높아지면서 얼굴을 때렸다는것을 깨달았다.

박신철은 구명조끼에 몸을 의지한채 안깐힘을 썼다. 몸이 앞으로 나가는지 뒤로 밀리는지 전혀 알수 없다. 얼굴은 홧홧 달아오르고 팔다리가 점점 더 뻣뻣해진다.

그 소녀는 어쩌면 최단아가 아닐가? 아니, 그가 어떻게 백금산에 나타난단 말인가? 그러고보면 광산기술과 설계기사의 딸 리순금이 같기도 하고. 아니, 그앤 그렇게 이악쟁이도 아니고 또 주근깨도 없었지. 헛참, 최단아가 백금산 이깔골에 나타나 내 나무단을 빼앗다니…

아, 아, 고향아, 나를 좀 도와주렴. 그곳, 빨간 기와집, 작은 창문, 지금도 어머니는 이 아들을 그리고 계시겠지? 어머니, 벌써 온몸의 힘이 다 빠진것 같아요. 용서하세요. 어머니, 이해 가을쯤은 어머니를 평양에 모셔오려고 작정했댔는데… 어머니, 난 총멘 군인이예요. 어머니도 제가 입대할 때 말씀했지요? 널 나라에 바친셈 치겠다구. 어머니, 걱정마세요. 내가 돌아오지 못해도 이제 단아동무가 찾아갈거예요. 좋은 처녀예요. 그 동무가 날 대신해줄거예요. 난 인젠 안될것 같아요. 난 있는 힘을 다했어요. 벌써 백리는 헤여온것 같아요. 아, 나에게도 날개가 있었으면! 날아갈수 있다면! 급행렬차처럼 달릴수 있었으면! 역두, 다정한 학우들, 그래 그땐 순금이랑 소년단넥타이를 날리며 내게 꽃다발을 안겨주었지.

광산당비서 차원호아저씨는 나에게 만년필과 학습장을 주었어. 그 책을 아마 입당할 때까지 썼던것 같아. 그 친구 조용수는 갱부문당비서가 됐다지? 그리고 최명환이는 광산청년동맹 부원이구. 김해선이는 청진으로 시집갔다지. 김형활선생님은 아직 국어분과장을 하신다지, 아, 강응천선생님, 김화순선생님…

박신철은 의식이 가물거리는속에 기계적으로 천천히 팔을 휘저었다. 이젠 다다, 다야. 그저 이대로 잠이라도 들었으면. 그러면 넋이라도 남아서 저 바다우를 훨훨 날아갈걸! 그 모든것, 사랑도 추억도 고향도 부모도 벗들도 이제 더 그에게 힘으로는 되지 못했다.

그는 완강한 사나이였으나 그렇게 모든것이, 힘과 정열이 그리고 생명이 그에게서 서서히 떠나가려고 조용히 기회를 엿보고있었다. 이제는 그자신이 지쳤고 이 모든것을 실감하고있었다.

박신철은 육체보다 정신이 먼저 모든것을 포기하려고 한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따뜻한 곳을, 밝은 곳을 그의 넋이 못견디게 갈구하고있는것이였다. 그는 몸부림치며 그 유혹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것은 헛된 노력이였고 마음은 벌써 산산이 흩어진 그의 육체를 벗어나 자유론 새마냥 가없는 바다우의 깃을 찾아 훨훨 날아가고있는것이다. 또다시 정신이 가물거리고 온몸의 맥이 탁 풀려내린다.

그는 구명대우에 턱을 걸고 검푸른 바다끝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밝은 별들이 눈부시게 그의 눈에 안겨들었다. 그는 눈을 크게 떴다.

그것은 검은 바다에서 초불처럼 타오르는 별이였다. 그 별은 북극성이였다. 박신철은 그 북극성을 따라 눈길을 돌렸다. 령롱한 일곱개의 별이 확 마주오는듯 눈가를 비쳤다.

북두칠성! 별안간 가슴속에 밝고 따뜻한 그리움같은것이 강렬하게 비쳐든다. 박신철은 넋을 잃은채 그 별들의 영원한 흐름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가슴속에서 샘줄기같은것이 꿈틀거리며 소리쳐흐르기 시작했다.

달아오르는 가슴속에서 아름다운 불멸의 노래의 가사가 마치 화창한 봄날의 무지개처럼 솟아오른다. 박신철의 터갈라진 입술이 푸들푸들 떨며 움직이자 가슴속, 아니 심장속으로부터 노래소리가 터져나왔다.

북두칠성 저 멀리 별은 밝은데

아버지장군님은 어데 계실가

박신철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아,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 지금 어데 계십니까. 전사는 지금 장군님의 품을 찾아 망망대해를 홀로 헤쳐가고있습니다. 지금도 그 먼 최전선길을 걸으십니까, 어느 험한 령길을 넘으십니까.

이 전사들이 일을 쓰게 못하여 이 밤도 쪽잠에 드신채 야전승용차를 달리십니까. 더는 위험한 길을 가지 마십시오. 저는 기어이 임무를 수행하고 장군님품에 안기겠습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부신 북두칠성의 별빛이 비쳐내리고있었다. 그는 자기의 얼어든 몸안에 별안간 뜨거운 열정과 강렬한 힘이 북받쳐오르는것을 느꼈다. 그것은 신비하고 초인간적인 의지와 신념의 억셈이였다. 박신철은 힘껏 헤염치기 시작했다.

장군님, 장군님의 품속에 고향도 어머니도 그 동무도 있습니다.

장군님의 그 품을 지켜 동지들은 작렬하는 자폭의 불보라로 영생의 노래를 남겼습니다.

박신철은 힘차게 앞으로 전진해갔다. 그 어떤 억세고 완강하고 강렬한 열정이 온몸에 넘쳐 흐르면서 힘이 솟는것이였다. 그는 조금도 주춤거리지 않고 북두칠성을 향하여 헤염쳐갔다.…

바다의 빛때문인가, 아니면 별빛인가, 하늘이 검보라빛으로 변하며 물결이 설렁거리기 시작한다. 어쩐지 하늘이 보다 환해진것 같다.

어디선가 갈매기의 울음소리같은것이 들려온다. 박신철은 또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바다우에 새날의 숨결이 깃들기 시작한것이다. 이윽고 바다는 검푸른 빛을 띠고 설레이기 시작했다.

문득 푸르끼레한 운무속에 멀리 불빛같은것이 보이고 그것이 점차 커지기 시작한다. 아츠러운 비행기발동소리가 귀가를 가볍게 울려준다. 불빛의 흐름속에 검은 동체의 함선이 천천히 다가온다. 박신철은 더운 눈물을 뿌리며 그 불빛을 향하여 마주 헤염쳐갔다.

푸른 새벽빛속에 람홍색공화국기가 펄럭이는것이 금시 눈에 보이는듯 하다.

《동무들!ㅡ》

그는 소리질렀으나 그것은 자신의 귀에도 가닿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는 한손을 내뻗치며 그냥 정신없이 소리지르고있었다.

《최고사령관동지!ㅡ》

바다우에 새벽이 깃들고있었다. 이제 장엄한 해돋이가 시작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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