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여름 13 -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 조선문학예술

본문 바로가기
영문뉴스 보기
2024년 3월 28일
남북공동선언 관철하여 조국통일 이룩하자!
사이트 내 전체검색
뉴스  

조선문학예술

50년 여름 13 -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06-22 07:05 조회766회 댓글0건

본문

2013-04-09-U01.jpg

(제 13 회)

7 장

운학은 철원읍에 들어서며 처음으로 포소리를 들었다. 그는 전방지휘소 참모진에 배속되여 보위상의 일행을 따르게 된것이다.

운학은 오늘아침 《반공격》이라는 소리에 온 참모부가 들썽해있는 시각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고 갔다온 강건총참모장이 그의 작업대앞에 이르렀을 때 전선에 보내줄것을 제기했다. 물론 최현장령에게 청탁했던 사실도 꺼들면서.

강건은 매우 놀라운 기색이 되여 운학을 쳐다보았으나 성은 내지 않았다.

《동문 지도작업에 재간이 있소. 다른 생각 말고… 내 고향도 남이요. 경상북도 상주를 아오? 상주.》

강건은 이렇게 말했지만 부탁은 들어준것이다…

《저것 보우.》

최용건의 부관이 손짓하였다. 둔덕진곳에 학교가 있었다. 흰위생복을 입은 군인들이 마당에 선 차에서 부상병들을 들어내리우고있었다. 아이들과 로인들, 밥함지며 국통을 인 녀인들이 그 주변에 몰켜서있었다. 그 학교를 지나 솔숲그늘이 드리운 골짝길로 들어서는데 세채의 담가가 마주오고있었다. 맨앞 담가병은 모자도 없이 얼굴이 온통 땀에 젖어 입을 벌린채 가쁘게 숨을 톺았다. 그런데 그뒤 담가의 백포가 풀썩하더니 소매가 찢어져 너덜거리는 팔이 쑥 삐여져나와 흔들거렸다.

보위상의 차가 그 담가앞에서 불시에 멈춰섰다. 예까지 오면서 한번도 차를 세운 일이 없던 보위상이였다. 최용건이 차에서 내려서자 제일 뒤채의 담가를 들고오던 키가 작달막한 군인이 담가를 놓고 달려와 《민족보위상동지! 조선인민경비대》 하며 규정영접보고를 하려 하였다.

최용건은 《수골 하오.》라고 하며 손을 내젓고 팔을 흔들고있는 부상병에게 다가갔다. 부상병의 왼쪽견장은 날아나고 바른편견장만 붙어있었다. 색갈구분을 할수없이 흙범벅이 된 바탕에서 노란별 하나만은 알아볼수 있었다. 목에서부터 머리까지 붕대로 칭칭 감긴 그 경비대군관은 이제 스물한두살 될가말가하게 어려보였다. 코밑과 눈언저리를 약솜으로 닦은듯 발기우리한 피부가 드러나고 뺨에는 온통 피와 흙먼지가 엉겨붙었는데 맑은 두눈이 희뿌연 하늘을 물끄러미 쳐다보고있었다. 최용건이 내려다볼 때도 그의 눈동자는 까딱않은채 무엇을 호소하는듯, 묻는듯 하늘만 쳐다보고있었다. 보위상은 분명 담가대 책임자인듯한 키작은 특무장에게 눈길을 돌렸다. 특무장은 바지혼솔에 두손을 딱 붙이고 기다렸던듯 재빨리 입을 열었다.

《이 소대장동지는 흙속에 절반 묻혀있는걸 찾아냈습니다. 정신을 잃고 계속 헛소리만 하고있습니다. 적의 새벽기습을 맨처음 겪은 경비초소의 소대장인것 같습니다. 초소전호는 포사격에 다 없어지고 그앞에 백여명의 적이 쓰러져있었습니다. 이 소대에는-》

부상병의 신음소리가 그의 말을 중단시켰다. 팔이 아까처럼 뻗쳐 흔들렸다. 최용건이 그 팔목을 잡았다. 그는 마치 부상병의 팔목을 잡고 맥을 세는듯 아무말없이 그 군관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보위상동지시오.》

특무장이 그가 알아듣도록 큰소리를 질렀으나 군관의 눈표정은 여전했다. 그러다가 잠시후 무슨 꿈에서 깨인듯 부상병이 속삭였다.

《용서해주십시오.》

너무나 예상외의 말에 모두가 흠칫하며 숨까지 멈추었다.

운학은 긴장하여 그 군관의 입을 지켰다. 그 군관은 여전히 같은 눈표정이였으나 마치 정신이 돌아선듯 또렷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초소를 사수… 못했습니다. 무조건 사수하라는… 명령을… 못지켰습니다. 한시간을 견뎠습니다. 그러나 포사격에 전원… 그리고 대대가… 밀려들었습니다. 제가… 정신잃고 쓰러졌을 때… 적의 장갑차가… 우리 초소를 깔고 지났습니다… 우리는… 퇴각한것은 아닙니다. …그저 죽었고… 나는… 보았으나… 몸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 하지만 용서받을수 없었지요. … 소대는 희생되였습니다. 그러니 조국땅을 잃고… 전사도 잃고… 내가 왜 살겠습니까… 죽어야지요… 허나 용서해주십시오.》

《군관동지!》

특무장이 격하게 불렀다.

《소대는 다 죽지 않았습니다. 열세명이나 살았습니다. 그리고… 초소를 다시 탈환했습니다. 인민군대가 나왔습니다. 괴뢰군은 38°선너메로 쫓겼습니다.》

특무장은 목메여 웨치고는 보위상에게 어줍은 얼굴을 쳐들었다.

《아까부터 계속 이렇게 헛소리를 칩니다.》

최용건은 얼른 그의 눈길을 외면하며 낯을 찌프린채 꾸중하듯 말했다.

《헛소리가 아니요. 이 동문 듣지 못하고… 시신경장애로 잘 보지 못하오. 빨리 후송하오… 그리고 군의들에게 말하오. 이 동무가 회복되는 즉시… 잘 싸웠다는 나의 감사를 전해주게 하시오.》

차에 오른 최용건은 엄한 눈길로 앞을 쏘아보며 짧게 말했다.

《갑시다!》

차가 떠났다. 운학의 모터찌클에 탄 소좌는 담가대를 뒤돌아보며 매우 통절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한개 소대에서 열세사람이 남았단말이지… 저 소대장동문 두다리가 다 부서졌소… 애국자들이요…》

운학은 아무 말도 못했다.

그는 이제껏 별로 생각 못했던 전쟁의 한 단면을 보았다. 그것은 비장하고 준엄한 세계였다. 한때는 농가들이였으나 오늘아침부터 전방지휘소 건물들로 된 초가와 동기와집들이 몰켜있는 산기슭으로 운학이네가 들이닥친것은 이때로부터 30분 못미쳐서였다. 보위상이 부관들과 함께 전화선묶음들이 빨래줄처럼 늘어진 동기와집으로 들어간후 운학은 사단급에서 온 군관들속에 끼여들어 두서없이 오가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기가 새벽에 지도작업을 하면서 보았던 전선이 6~7시간 사이에 얼마나 크게 변하였는가를 커다란 놀라움과 경탄속에 들었다. 52사는 벌써 38°선을 넘어서 적을 춘천쪽으로 압박하고있고 53사는 포천을 향해 905땅크려단과 협동하여 내닫고있으며 54사는 동두천에 이르렀다는 믿기 어려운 기적같은 공격이였다. 바지가랭이가 온통 흙투성이이고 겨드랑과 잔등에 비맞은 자욱이 아직 마르지 않은 소성 네알을 단 군관이 화제의 중심이 되였다.

그의 이마에는 무언가 스쳐놓은듯 갈퀸 상처자리가 나있었고 채 마르지 않은 피자국이 붙어있었다. 분명 본인은 그것을 알련만 씻을념을 않고 주변의 좌급 군관들까지 너나들이 동무가 된듯 허물없이 친근하게 말했다.

《…놈들이 된찌를 갈겼지. 글쎄 우리가 이렇게 쎌줄이야 꿈엔들 알았겠습니까? 그저 다리야 날 살려라 하고 줄행랑인데 뭐 평양에 가서 먹자던 도시락은 물론 총이건 모자건 다 집어치고 들구뺐지요. 들에는 그놈들이 줴버리고 간 물건짝들로 쫙 깔렸지요. 참 이런걸 봤습니까? 전리품인데 한대들 피워보십시오.》

그 군관은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여 매 사람에게 담배를 권했다.

운학은 해방직후 서울에서 미군들한테 붙은 장사군들이 내다 팔던 《럭키 스트라이크》를 알아보았다. 그 군관은 한쪽켠에 우두커니 서있는 깨끗한 군복차림으로 유표한(여기 군관들의 옷은 죄다 비맞아 험상궂은데다가 위장망을 풀단처럼 쓰고있었다.) 운학이에게까지 너그러운 태도로 그러면서도 어딘가 약간 깔보는듯한 태도로 담배를 권했다.

《고맙습니다.》

운학은 이 군관들이 모두가 전투에 참가하여 어려운 첫 세례를 이겨냈다는 그 한가지 리유로 자기가 몹시 주눅이 드는것을 느끼며 담배를 공손히 받아쥐였다. 바로 그때에 보위상의 부관인 소좌가 그를 찾았다. 소좌는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보위상으로부터 54사의 전선형편을 직접 보고 오라는 과업을 받았다고 하면서 필요한 경우에 현장에서 지도작업까지 하여야 되기때문에 운학이도 가자는것이였다. 운학은 보위상 부관이 한갖 전선을 돌아보는것뿐만아니라 주요한 명령서들도 동시에 가지고 갈것이라는것을 알았으나 더 알려 하지 않고 반갑게 응했다. 안내 및 호위로 두 자동총수가 탄 모터찌클 한대가 나타났다. 자동총수들은 옷이 찢긴것으로 보아 새벽부터 이 싸움판에 뛰여든 군인들같았다.

운학은 모터찌클에 다시 올라탔다.

차가 오불꼬불한 산길을 돌아 골짜기를 빠져 언덕에 올랐을 때 운학은 두대의 자동차에 열댓명의 군인들이 붙어 법석이는것을 보았다. 가까이 가보니 두대중 한대는 자동차가 아니라 《U. S. A AR MY》라는 영어문자가 또렷이 찍힌 장갑차였다. 한쪽바퀴가 떨어진채 볼성없이 찌부러진 그 장갑차에 쇠바줄을 걸고 화물차가 끌고 그뒤에서 공병견장을 단 군인들이 나무토막과 쇠장대로 장갑차바퀴에 든장을 먹이며 떠밀고있었다.

《엠-8형 장갑차로군.》

보위상 부관이 중얼거리며 모터찌클을 멈춰세우고 누구에게라없이 물었다.

《동무들, 뭘하고있소?》

《박물관에 가져가렵니다.》

웃통을 벗어붙이고 장갑차바퀴밑에 든장질을 하던 군인이 웃으며 대답할 때 공병하사관이 나타났다. 그는 경례를 하고 기름이 발린 손으로 얼굴의 땀을 닦으며 근심낀 기색으로 말했다.

《이놈의 장갑차가 길을 막아서 굴려치우려 하는데 끄떡않습니다. 우릴 먹겠다고 달려들어올 때는 몹시 빨랐겠는데 깨진 다음에는 영 바위산입니다.》

《뭣에 맞았소?》

《반땅크수류탄에 주저앉았습니다.》

《허허, 반짜리에 너부러졌군. 저쪽 바위밑을 파고 좀 끌면 도랑으로 굴러떨어질것 아닌가.》

부관의 말에 공병하사관은 활기있게 대답하였다.

《네. 지금 그렇게 하고있는중입니다. 근데 밭곡식이 손해봅니다.》

그는 파아랗게 밭을 덮은 콩포기들을 손짓하였다.

《어쩌겠소. 놈들한테 그 값까지 받아내면 되겠지. 아니… 저놈은 전쟁이 끝난 다음 놈들이 어떻게 쳐들어왔는가를 알리는 증표로 그대로 밭에 두면 멋지겠군. 동무들, 수고하오.》

부관은 매우 유쾌한 표정이였다. 언덕을 내려 다시 골짜기에 들어섰을 때 그들은 근 한개 중대가량의 푸른 군복차림과 부딪쳤다.

《포로병이다.》

누군가 웨쳤다. 비와 흙탕에 범벅된 포로병들의 몰골은 말이 아니였다. 피로한 겁먹은 눈길들이 힐끔힐끔 운학이네를 견줘보았다. 앞 모터찌클에 탄 두명의 자동총수들은 《여! 맛이 어때?》 하고 놈들을 향해 소리치며 그대로 옆을 지나갔다. 부관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모터찌클병에게 차를 세우라고 하였다.

맨앞에 서서 피발이 선 눈으로 흘끔 쏴보는 괴뢰군대위를 향해 큰소리로 물었다.

《공격출발진지를 몇시에 차지했댔소?》

대위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외로 틀었다.

《아침은 먹었소?》

대위는 그 물음에도 침묵을 지켰다.

《흠.》

부관이 쓰겁게 웃을 때 대위의 바로 뒤에서 불평에 찬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낯이 파랗게 질린 괴뢰군 사병 한명이 대위를 밀어젖힐듯하며 나와 섰다.

《이놈은 먹었을지라우. 그러나 우리는 못먹었습니더. 궁평리를 점령하면 아침을 먹을것이라고 했는데 궁평리에 오니 장수면소재지까지 가서 먹자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총으로 몰아대는데 어쩔수 없었습니더. 한데 장수면으로 쳐들어가다가 인민군대 포위공격에 걸려 대대가 다 포로됐습지요. 인민군님들이 점심밥을 주어 고맙게 먹었습니더. … 이놈은 지주자식입니더.》

《닥쳐!》

대위가 돌아서 꽥 소리치자 갑자기 그놈한테 서너명의 포로가 때릴듯이 달라붙었다.

《늬 이놈아, 아직도 장교나. 이젠 늬나 내나 다 포로다. 이 옴뚜께비 대대장아.》

호송병이 말리지 않았으면 란투극이 벌어질번하였다. 부관이 역스러운 연극이나 본듯 찌프린 얼굴로 《가기요!》 하고 말을 떼고 운전수가 기야를 밟을 때 문득 《림형!》 하는 소리가 울렸다. 키가 껑충한 괴뢰군장교가 운학이를 향해 오른팔을 내밀고 주춤주춤 걸어나왔다. 대모테안경이 해빛에 번쩍거렸다.

공포와 비굴, 아첨과 수치 이 모든 저속한 감정이 환을 그린듯 이지러지고 창백해진 대모테안경은 울상이 되여 운학이를 쳐다보았다.

운학은 숨이 딱 멎는것 같았다. 그앞에는 성련화의 언니 성계화의 남편인 리영준이가 서있었다. 해방전 서대문감옥에 다닐적에 알게 된 인연으로 해방후에도 만나면 문안정도는 나누군 하던자였다. 더구나 성련화의 형부라는것으로 그뒤의 더러운 배경을 애써 보지 않으려 하며 비록 경원하고 멸시하면서도 타매하지는 않았던자였다.

해방직후 미국에 공부하러 간다던 저자가 이날 도적고양이처럼 밀려든 적군의 무리속에 섞여 나타날줄이야 상상이나 했던가.

《너도?》

운학은 공기를 뽑듯이 말을 하였다.

《림형!》

영준은 운학의 싸늘한 시선안에 눈길을 내리깔았다가 다시 쳐들며 애걸하듯 말했다.

《나를 도와주오.》

운학은 자기가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보병총을 멘 두줄배기 호송병의 시선이 의혹과 멸시를 담고 자기의 얼굴을 일별하고 부관과 운전수가 호기심에 차 자기를 본다는것을 알았을 때 괜히 자기가 무슨 나쁜짓을 하다가 들킨듯한 당황함과 모욕감을 동시에 느끼며 얼른 이 자리를 떴으면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운학은 그의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에 풀물이 퍼렇게 든것과 바지무르팍에 온통 흙투성이인것을 보며 이자가 살려고 몹시 애를 썼다는 생각을 하며 구슬픈 조소를 머금었다. 그에 용기를 얻었는지 아니면 반발을 느꼈는지 영준은 방금전의 절망적인 기색을 버리려 애쓰며 한결 고집어린 태도로 입을 열었다.

《한가지만 말해주오. 우릴 죽이오? 살리오?》

운학은 영준의 허리춤에 매달려있는 권총갑을 바라보았다. 그 권총갑은 순간적으로 그의 눈앞에 중상당한 경비소대장의 피기 잃은 얼굴과 눈동자를 그려주었다.

《림형, 거기서는 포로에 대한 국제법을 적용하오?》

재차 묻는 영준의 비굴한 목소리에 운학은 치솟는 격분을 느꼈다.

《여보, 날강도로 쳐들어온 당신네가 무슨… 법이라는 공정성을 론할 자격이 있소?》

《림형, 난 통역이요. 난 누구도 죽이지 않았소. 림형은 나를 알지 않소.》

《알지, 그러나 나는 총을 찬 당신이 아니라 학생이던 당신을 알고있었을따름이요.》

《림형, 나를 도와주오.… 난… 난… 그래도 림형의 련화씨를 구원해주려 했소!》

《련화?》

《그렇소. 련화는 〈빨갱이〉로 륙군형무소에 수감되였소. 내가 그를 빼내게끔 했소. 륙군형무소에서 놓여나왔을것이요. 정말이요. 내 동료가 아… 림형도 잘 아는 백정식군이 빼낸다고 장담했소. 난 어찌되오?》

《우린 교형리가 아니요.》

운학의 가슴은 뭔가 무거운것으로 지지눌리운듯 가빠났다. 그 중압을 뿌리치듯 그는 운전수를 향해(이 순간 자기의 상급이 옆에 있다는것도 잊고) 소리쳤다.

《뭘하고있소. 떠나지 않고.》

운학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를 악물었다.

《아는 사이요?》

차가 얼마간 달렸을 때 보위상 부관은 낯이 컴컴하게 질려있는 운학이를 보며 물었다.

《네.》

《그런데 성련화란 누구요?》

《저의… 녀동무입니다.》

운학은 태연하게 대답하느라고 했으나 목소리가 떨렸다. 불현듯 심장이 옥죄여들었다.

(과연 사실인가?)

련화의 신상에 끔찍한 불행이 닥쳐들었다는 생각에서 그는 헤여날수 없었다. 한편 백정식이가 그앞에 어두운 망령처럼 나타나 마음을 어지럽혔다. 련화를 억지로라도 데려오지 못한것이 또다시 아픈 후회로 살아올랐다. 련화는 한생 운학이만을 알고 살겠다고 하였다.

(과연 그는 어떻게 변했을가?)

38선을 넘자 길에는 남으로 나가는 포차며 보병행군대렬이 꽉 차있었다. 경무관완장을 끼고 자동총을 앞가슴에 걸멘 군관이 갈림길목에서 대렬을 좌우로 뽑고있었다.

그 경무관에게 앞의 자동총수들이 뭐라 말할 때 운학은 경무관뒤에 한쪽 널판이 톱에 잘린듯 떨어져나간 리정표가 있는것을 보았다. 《서울-32km》라는 글자가 확 안겨왔다.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54사참모부에 들렸을 때 운학은 서울해방이 결코 먼 꿈이 아니라는것을 실감했다. 54사 선두구분대는 벌써 동두천쪽으로 진격해나가고있었다. 운학은 작전참모방에서 정황지도를 펼쳐놓고 사단의 진출계선을 그려넣다가 이 진출계선을 확정한지 몇분이나 지났는가고 물었다. 작전참모는 30분전에 보고된 자료에 기초하여 작성한것이라고 하면서 개별적중대들은 더 나갔을지 모른다고 하였다. 운학은 보위상부관이 사단장을 만나고나온 후 그에게 지도를 넘기며 정색하여 제기했다.

《소요산을 공격하는 5련대의 진출계선을 정확히 알기 위해 제가 그쪽으로 나가야겠습니다.》

운학은 자기가 전투에 참가해보지 않고는 아무 일도 손잡히지 않으리라는것을 알았기때문이였다. 보위상 부관은 그의 이글이글 타는 눈을 보다가 한숨섞인 소리로 말했다.

《우린 이이상 나갈 권한이 없소.》

《여기에 무슨 권한이 있습니까. 보다 정확한 보고를 하자면 전방에 나가보고… 》

《동무!》

부관은 억이 막힌 웃음을 짓고는 타이르듯 말했다.

《동문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 그래 난 뭐 지도작성을 할줄을 몰라 동물 데려온줄 아오. 그리고 공격하는 부대의 진출계선을 우리가 와서 그려가지고 가 보고한다는것이 19세기도 아닌 현대전쟁에서 말이 되오. 전화도 있고 무전도 있는데. 다만 동무가 이리로 온것은 아바이의 교육학적배려지. 아바인 화약내를 못맡은 참모부 군관들에게 전선바람을 쐬여야겠다고 했소. 그래서 내가 동물 데려온것이요. 나도 이렇게 여기까지 나온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일거요. 정식 련락군관제가 생길테니까. 동무가 오늘같은 행운이라도 계속 얻자면 빨리 가서 전방지휘소 련락군관자리라도 하나 버젓이 따는게 상책이요.》

《화약내를 맡으라면 전방에 가야 하지 않습니까. 정 안된다면 전 도망치겠습니다. 부탁합니다.》

운학은 그의 팔을 꽉 붙잡았다. 부관은 물끄러미 그를 보았다. 동정어린 눈빛이였다.

《동무 심정은 알만해. 그런데… 아니, 가보오. 그러나 게서 머무를 생각은 마오.》

《고맙습니다.》

사단 경비중대군인을 안내로 태운 모터찌클은 미국제 대형트럭과 포들이 어지럽게 널린 사이를 날새처럼 빠지며 쏜살같이 달렸다. 소요산을 언덕 하나로 사이둔 길목에는 완전전투준비를 갖춘 한개 대대가 엎드려있었다. 경적을 울리며 그대로 길목을 벗어나려 하자 중성 한알을 단 군관이 성이 독같이 나 권총을 빼들며 소리쳤다.

《미치지 않았소. 서라!》

운학의 군인증을 보고 《전방에 나가보라는 보위상동지의 지시집행중》이라는 과장된 변명을 듣고나서도 그는 성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저 동무들까지 자꾸 내닫겠다는걸 겨우 막고있는데 알만한 동무까지 이러면 어떻게 하오.》

《그래도 전 나가봐야 합니다. 저앞에는 두개 중대가 전개하지 않았습니까?》

《전개했소. 하지만 화력이 어찌나 심한지 고지기슭에 붙어 더 움직이지 못하오. 그래도 전사들이 마구 나가 희생이 많았소. 련대지휘부에 안들렸댔소? 련대에선 더 돌격하지 말고있다가 나팔신호가 울린 다음 일체 돌격을 하라고 했소. 무슨 우회전술을 쓰는 모양이요.》

《그러면 이 대대도 좀 더 접근했다가 앞의 중대를 지원하면 안됩니까?》

《저길 보오.》

언덕을 가리켰다. 뽕나무들이 빗살처럼 촘촘히 서있었다. 마치 센 우박이 쏟아질 때처럼 나무이파리들이 나폴나폴 날아떨어졌고 나무아지들이 문질러져나갔다.

《쫓겨간놈들이 몽땅 모여서 미친듯 쏴갈기오. 저기로 내닫는것은 무모한짓이요.》

그의 마지막말에 운학은 불쾌감과 함께 그 어떤 의분을 느꼈다.

《전… 최전방을 가보게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모터찌클병에게 그대로 여기 대기하라는 말을 하고는 군관에게 거수경례를 하고 돌아섰다.

언덕우에 오르자 발밑에서 흙덩이들이 뿌리쳐날았다. 총탄이 비오듯 쏟아지는것이였다. 그는 숲으로 뛰여들어 아카시아가시에 얼굴이 찢기는것도 모르고 내달았다. 첨벙! 하고 파아란 모가 들어찬 논판에 뛰여들었을 때 총탄에 모자가 벗겨져 달아났다.

《엎디시오!》

논뚝밑 물탕에 한사람이 엎디여있는것이 보였다. 그의 얼굴은 흑인처럼 시꺼맸다. 흙물이 튀여 그런것이였다. 특무장의 견장을 단 그 군인의 량옆에는 늄밥통 두개가 놓여있었다. 밥통은 둘 다 흙탕에 버물러지고 우그러진것이 처참할 정도였다. 한쪽 밥통의 쭉 터갈라진 짬새기로는 팥밥알들이 비죽비죽 내밀려있었다. 온몸을 뜨스한 논물에 잠근 운학은 불시에 웃음이 나갔다. 밥통마저 이처럼 된탕을 겪는 때에 자기는 조금도 상하지 않았으며 주요하게는 자기가 겁먹지 않고 탄우속을 달려왔다는 자긍심때문인것 같았다.

《이건 점심입니까?》

운학은 헌헌한 태도로 특무장을 향해 물었다. 무엇때문인지 내처 얼굴을 찌프리고있던 특무장은 그의 말에 매우 찔리는 표정이였다.

《중대는 아침도… 점심도… 못… 먹었습니다. 〈기상, 전투!〉 한 다음부터 계속 나가는판인데… 국은 끓였으나 국통은 포격에 잃었습니다. 국통을 지였던 전사도 죽고…》

운학은 속이 뜨끔해 자기가 웃은데 대하여 후회를 하였다.

《하여튼 잘됐습니다. 난 이걸… 어떻게 고지까지 가져갈가 했는데…》

운학은 그의 입술이 파란 빛을 띠고있음을 놀라움속에 보았다.

《어데 아프오?》

《배에 맞았습니다.》

《뭣이-》

운학은 황급히 기여가 특무장의 어깨를 잡아돌려 눕혔다. 상처는 보기 끔찍할 정도였다. 확 헤쳐진 옷자락밑 배꼽옆에 펑하니 뚫린 구멍이 나타나고 희끗희끗한것이 보였다. 개인붕대포를 풀어 상처를 동일 때 특무장은 《음음》 하고 앓음소리를 쳤다.

《꽤 견디겠습니까?》

운학은 이 특무장을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망설였다. 특무장은 담배진이 누렇게 앉은 이를 드러내며 비죽이 웃어보였다.

《난 됐수다. 이제… 담가대가 오겠지요. 그저 저 식사를… 부탁합니다. 지금 중대원들은 이 특무장을… 뭬라 하겠습니까. 이런 때 제구실 해야 되는데…》

《몇중대요?》

《…3중대…입니다.》

운학은 특무장의 손을 꽉 잡았다놓고 밥통을 량팔에 하나씩 끼였다. 그는 속으로 뜨거운것을 삼키며 무릎걸음으로 기여나가기 시작하였다. 논배미 하나를 넘어 얼마간 더 나갔을 때 갑자기 나팔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나팔소리는 고지를 둘러싼 사방에서 련이어 울리고 고지기슭으로 수많은 군인들이 내달리는것이 보였다.

운학은 열들이밥통을 그대로 껴안은채 벌떡 일어서 내닫기 시작했다. 너무 덤벼치는통에 감탕판에 꼬꾸라지기도 했다. 그러나 밥통은 어떻게 해서든 붙안고 떨구지 않았다.

고지중턱에 이르러 자지러진 총성과 만세소리를 들었을 때는 밥통을 훌 팽개치고 다문 몇놈이라도 제껴버려야겠다는 생각이 꼭뒤까지 치밀어올랐으나 특무장의 어줍은 눈길과 간절한 말이 떠오르며 그것을 밀막았다.

온몸이 그대로 땀자루가 되여 고지에 올랐을 때는 이미 전투가 끝난 뒤끝이였다. 적들의 새까만 무리가 행길과 논밭으로 하여 동두천시가지쪽으로 몰려가는것이 육안으로도 빤히 보였다. 운학은 밥통을 껴안은채 연기 자욱한 고지우를 오가며 《3중대!》를 소리쳐 찾았다. 열댓명의 포로를 꿇어앉힌 앞에서 백골표식이 그려진 흰 기발을 가리키며 뭔가 연설을 하던 군관과 마주쳐 그가 3중대장인것을 알았다. 운학은 특무장을 만나본 사연을 짤막히 말하고 밥통을 인계하였다. 중대장은 몹시 반가와했다.

《아침에 건빵 한쪼각씩 씹은것밖에 없지요. 그리구 세차례의 전투를 치르며 예까지 장 달려왔습니다. 무엇때문이겠습니까.

바로 이때문이지요. 놈들은 우리 땅을 백골로 뒤덮자는것이 아니요. 특무장이 안됐군. 글쎄 무슨 귀신인들 식사보장을 할수 있겠습니까. 우린 계속 내달려가지.》 하면서 중대장은 특무장이 어떻게 좋은 사람이였는가를 한창 말하다가 운학에게 식사를 함께 하자고 했다.

《무어니무어니해도 배가 든든해야지요. 참모동무 아니면 어쩔번했습니까?》

개인밥통에 밥을 담아들고 모여앉은 전사들도 특무장에 대하여 평소에 인정이 많았다거니 힘이 세고 용감했다거니, 이제 나으면 꼭 중대에 다시 오게끔 해야 된다거니 하며 떠들다가 운학에 대해서도 들으라는듯 수군거렸다.

《특무장동지의 상태를 알고 저 총참모부 군관동지가 직접 식사를 날라왔어.》

《대단한데.》

《이젠 서울까지 죽 달릴수 있구나.》

운학은 이들과 함께 있었으면 하는 끈질긴 유혹을 간신히 털어버렸다.

중상을 당한 상태에서도 식사보장때문에 논판에까지 기여온 특무장의 인상이 더욱 그렇게 했는지 모른다.

(나도 빨리 전투임무를 받아야 한다.)

그가 전방지휘소에 도착했을 때는 밤 9시 30분이였다. 운학이 부관을 찾아 늦게 온것을 사죄하고 목격했던 싸움에 대하여 말하려 하자 부관은 그까짓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듯 희색이 만면해 말하였다.

《여보, 53사와 905땅크려단은 벌써 포천으로 들어가고있소. 서부의 51사도-》

그는 이 말을 끝맺지 못했다. 찦차 한대가 불을 죽였다 켰다 하며 맹렬한 속도로 들이닥쳤다. 보초선을 통과하여 보위상의 지휘처로 쓰는 동기와집앞에 와멎은 차에서는 비옷을 입은 장령 한명이 뛰여내렸다. 그는 보위상의 호위군관에게 신분증을 보이고는 아무말없이 방문으로 사라졌다.

《누굽니까?》

운학이가 귀속말로 묻자 부관 역시 속삭이듯 말했다.

《52사 사단장 위청동지요.》

그리고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계속했다.

《52사의 전투보고는 없었는데-》

부관은 입을 다물었다. 최용건의 방 양피지를 바른 창문이 드르릉 울리며 무섭게 노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던것이다.

《뭣이?… 한개 대대나?… 그따위 싸움이 어데 있소? 〈돌파교범〉이 싸우는가. 머리가 싸우지.》

운학이와 부관은 거의 동시에 흠칫 하였다.

《아바이요.》

《왜 저럴가요?》

《글쎄 방금까지는 기분이 대단히 좋으시였댔는데-》

운학은 여기 더 있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하였다. 부관실에서 나오는 그의 머리에는 현훈증에 걸릴만 한 승리적인 작전이 벌어지고있는 이때에 무엇때문에 보위상이 저처럼 성을 낼가 하는 의문이 줄닿게 뻗쳐올랐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부고]노길남 박사
노길남 박사 추모관
조선문학예술
조선중앙TV
추천홈페이지
우리민족끼리
자주시보
사람일보
재미동포전국연합회
한겨레
경향신문
재도이췰란드동포협력회
재카나다동포연합
오마이뉴스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재오스트랄리아동포전국연합회
통일부


Copyright (c)1999-2024 MinJok-TongShin / E-mail : minjoktongshin@outl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