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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총대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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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12-15 20:27 조회6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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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향도》

장 편 소 설 총대


박 윤

( 제 29 회 )

제 5 장

1

전선동부지구 군부대들은 최고사령부의 훈련명령을 받아안고 깊은밤 공격출발계선을 향하여 전진을 시작하였다. 집결구역을 벗어난 타격집단들은 강철의 무한궤도로 진땅을 물어뜯으며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찍어주신 시간에 결전진입하기 위하여 처음부터 무섭게 전진속도를 높이고있었다. 험한 준령과 사품치는 강, 《오염구역》을 통과하고 방어선과 공병차단물들을 일격에 짓부시며 나아가는 힘겹고도 거창한 행군이였다.

군부대들의 기동과 때를 같이하여 비가 억수로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은 비구름이 뒤덮여 별빛 한점 볼수 없고 이따금 둔중한 우뢰속에 퍼런 번개불이 번쩍일 때마다 비바람에 태질하는 재빛나무숲이 무한궤도의 옆으로 언뜩언뜩 비껴간다. 쏟아져내리는 비줄기에 내연발동기들이 뿜어내는 배기가스가 채 빠지지 못하고 땅바닥을 기여다니다가는 장갑차와 땅크, 자동차주위를 뜬김같은 뿌연 장막으로 덮어버리고 만다. 귀를 멍하게 하는 고르로운 발동기의 굉음과 철과 대지가 서로 격렬하게 쓸리는 소음만 들릴뿐 아직은 구호웨침, 말소리조차 없다. 조종간과 총창을 틀어쥔 병사들의 근엄한 얼굴은 긴장으로 굳어져있고 철갑모밑에서 번쩍이는 두눈은 펄펄 끓고있다.

리평해사령관은 야전지휘차안에서 비옷을 걸친채 지그시 머리를 숙이고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최고사령부의 명령대로 주타격방향의 기본집단은 비교적 자기 속도를 유지하며 진격을 계속하고있었다.

이런 속도면 결전진입을 위한 공격출발계선을 주어진 시간보다 앞당겨 차지할수 있을것 같다.

하지만 보조타격방향으로 진출한 부대앞에는 의외로 난관이 조성되여 전진속도가 굼떴다. 연습참모부 공병들이 어찌나 검질기게 장애를 놓는지 이건 걸음마다 걸림돌이다. 릉선굽인돌이를 때맞추어 폭파해버리군 하는데 그 버럭속에 미끈미끈한 통나무들까지 섞여있어 전진보장대의 진땀을 뽑군 한다. 통신장애대들의 방해 또한 머리털이 셀 지경이다. 강력한 전파장애가 조밀한 장벽을 이루어 통신병처녀들의 목은 쉬다 못해 거친 남성들의 갈린 음성처럼 되여버리고말았다. 부득불 련락군관들이 모터찌클을 타고 비발속으로 달려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리평해사령관은 손으로 꺼칠꺼칠한 턱수염을 습관적으로 매만졌다. 아침에 빤빤히 밀어버렸는데 벌써 수염이 손끝에 잡힐 정도로 삐죽삐죽 내밀었다. 이틀동안 작전일군들과 코를 맞대고 작전구상을 무르익히고 군부대결심을 채택하느라 고심하는사이에 온 정력이 수염에로 몰렸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텁석부리도 완성의 경지에 도달한 모양이다. 그 남보다 유표한 텁석부리가 젊은 시절엔 더러 유쾌한 일화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리평해가 서른전인 대대장시절이였다. 갓 부임되여온 부대장이 며칠을 지내보고나서 정치위원방을 찾아갔다. 그들은 한때 같은 포병중대에서 복무한적이 있는 각별한 사이였다.

《정치위원동무, 그 털보말입니다.》

《털보라니?》

부대선전원과 함께 속보를 보아주던 정치위원이 얼굴을 들었다. 부대장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정치위원의 볼에 묻은 색감을 지워버렸다. 그는 성미가 깐깐한 군관이였다.

《거 1대대장말입니다. 리평해라던가?》

《예-》

《좀 긴장하더라도 대대장에게 집을 배정합시다.》

《아니, 왜요?》

정치위원은 리해 안된다는듯 눈을 크게 떴다.

《거, 나이지숙한 사람이 홀아비처럼 독신군관침실신세를 지는게 꼴사납습니다.》

정치위원은 그제야 껄껄 웃었다.

《아니, 그럼 부대장동문 그를 가정이 있는 군관으로 알았습니까?》

이번에는 부대장의 눈이 커질 차례였다.

《그럼 진짜 홀아비요?》

《허허, 참 그는 알짜 숫총각입니다. 아직 서른이 채 안된!》

《뭐라구?!…》

부대장의 눈의 크기가 한계점에 이르렀다.

정치위원이 한숨을 쉬였다.

《하긴 수염전진속도가 남보다 몇배되니 나이들어보일수밖에. 몇번 시도는 했는데 번마다 실패했지요. 한번은 기무참모가 중매격으로 나섰는데 처녀가 당자와 단둘이 만나자 뭐랬는지 아오?

<소좌아바이, 이제 올 총각은 성격이 어떻나요?>》

《그래 우리 부대엔 처녀나부랭이가 하나도 없단 말이요?》

부대장이 격분하여 소래기를 질렀다. 정치위원은 비죽이 웃었다.

《하나 있긴 한데… 녀군의가 한명 있습니다. 미인이구 오목눈이요!》

《음. 오목눈! 알겠소. 오목눈이면 됐소.》

그 오목눈도 이제는 쉰을 넘어 할머니가 되여버리고말았다.

지금 리평해는 그 텁석부리를 주억거리며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우회임무로 파견한 부대와 유인기만대들의 활동이 비교적 원만했기때문이다. 강무전이 웃기관으로 소환되고 강평조에 의해 부대장이 《부상》당한것으로 해서 우회하여 적을 타격할 임무를 한철준 신임부대 참모장이 맡게 되였다. 부대는 가상적인 전선을 돌파한 후 타격지점의 배후를 향하여 급속히 진출하였다. 벌써 절반길을 넘어섰는데 이제부터는 비교적 기동조건이 좋은 안전한 지대가 앞에 놓여있었다.

《동문 최고사령부의 지시로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파견되여왔는데 이런 땐 어디 강평원의 립장에서 평가해보오. 그만하면 최동무도 만족하겠지?》

비로소 담배갑을 꺼내든 리평해가 최남호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야전지휘차가 덜컥 들추는바람에 리평해는 담배갑을 차바닥에 떨어뜨렸다.

《로영진동무가 무섭게 다그어대는걸 보면 마음이 놓입니다. 상대측이 눈치채지 못하게 전략도로를 장악하기 위해선 빨리 다리목으로 접근해야 할것 같습니다.》

최남호는 떨어진 담배갑을 주어주며 온화한 눈길을 빛냈다.

《허허허, 이건 내가 사령관인지 동무가 사령관인지 모르겠소. 하여간 좋소. 동문 방금 주타격방향을 맡은 로영진동무한테서 왔는데 그가 뭐라하지 않습데?》

《전술방안말입니까?》

리평해는 라이타를 켰다. 불길이 일자 텁석부리의 약간 찌프린 얼굴빛이 선명히 드러났다.

《말두 마시오. 그 동무가 최고사령관동지앞에서까지 제 주장을 고집해서 날 곤경에 빠뜨리더니 이번 작전계획을 놓고도 의견이 많았소. 강무전동무가 말렸기망정이지 내 성격에 겨우 참았소.》

《로동무의 대응전술이 연구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봅니다. 예상치 않았던 불의의 정황이 수없이 발생할수 있는 현대전이 아닙니까.》

최남호는 시계를 슬쩍 들여다보며 여유있는 미소를 지었다.

《헛참, 말마오. 이러단 내가 때이르게 사령관자리를 로영진에게 넘겨주어야 할가보오. 어떤 땐 버릇없게도 생각된단 말이요. 아마 그가 코밑이 노래서 신입병사훈련을 할 때 난 당당한 대대장이였을거요.》

리평해는 이마를 세괃게 문지르며 빙그레 웃었다. 웃을 때면 그의 텁석부리도 가쯘한 이와 부드럽게 조화를 이루어 얼굴전체가 마음좋은 아바이로 변한다.

《허허허, 사령관동지두 참, 그래서 멈출수 없고 무자비한것이 세대교체가 아닙니까.》

야전지휘차가 또 장마에 패인 홈채기를 넘는지 덜컹 한옆으로 쏠린다. 두 사람은 몸을 기우뚱거리다가 저도모르게 의지하느라 부둥켜안았다.

리평해의 거센 턱수염이 최남호의 목덜미를 찔렀다. 두 사람은 부둥켜안은채 마주보며 호탕한 웃음을 터쳤다. 리평해는 최남호의 대답에 면박을 주려던 좀전 생각을 가뭇 잊어버리고 또 담배갑을 열었다.

《최남호동무, 어떻소? 이런 밤이! 얼마나 좋은가? 비내리는 전선을 달린단 말이요. 이게 군인의 행복이거든. …최남호동무도 랑만가지? 우리가 한 부대에서 생활할 때가 좋았소. 내가 동물 되게 다그던게 생각나누만.》

리평해는 갑자기 최남호의 등을 철썩치며 혼자서 좋아하였다. 최남호는 시무룩이 미소를 지었다. 리평해는 구분대장시절에도 완력이 대단했고 작풍때문에 더러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천성이 고지식하고 사람됨이 진실하여 부하들과 흉허물없이 지냈다. 저렇게 좋아하는걸 보면 이번 타격작전이 비교적 마음놓이는 모양이다.

야전지휘차앞칸에서 통신결속을 보장하느라 통신병처녀들을 엄히 다루던 통신참모가 눈이 둥그래져서 문을 열고 리평해를 바라보았다.

《사령관동지,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전화를 걸어오셨습니다.》

《뭐?!…》

리평해사령관은 급히 습관적으로 야전복깃을 바로잡고 송수화기를 정중히 들었다.

《사령관 대장 리평해 전화받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오. 사령관동무요? 목소리가 왜 그렇소? 비가 그치지 않으니 감기라도 든게 아니요?》

김정일동지의 청청한 음성이 명료하게 들려왔다.

《최고사령관동지, 전 일없습니다. 전파장애가 돼서 그럽니다. 연습참모부 통신계통이 어찌나 이악을 부리는지 지금은 모든 지휘를 련락군관들을 통해서 진행하고있습니다.》

《허허, 사령관동무가 의견이 많구만. 하지만 그건 약과요. 실전이라고 가상해보오. 그런 정도겠는가. 내리는 폭우도 사실은 내가 바라던거요. 어디 한번 악조건에서 동무네 군부대의 전투력을 검열해보기요. 그래 지금 형편이 어떻소?》

《최고사령관동지, 타격집단들은 지금 자기 속도를 유지하고있습니다.》

리평해의 침착한 대답에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 사이를 두시였다. 리평해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였다.

《동무네 주타격방향에서 행동하는 동무들이 고생을 좀 할거요. 병사들이 찬비속에서 행군하는게 마음놓이지 않누만. 그래 식사보장대책은 면밀히 세웠소?》

《최고사령관동지, 안심하십시오. 가마차들이 종대에 바투붙어 이동하고있습니다.》

리평해는 한순간 뜨거운것이 목을 치밀어올라 말끝을 겨우 맺었다. 지금 이 시각까지도 그는 작전형편에만 온 신경이 가있었지 병사들의 생활에까지는 관심을 미처 못 돌리고있었던것이다.

《그럼 좋소. 훈련의 주인은 군인대중이라는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이번 훈련이 혁명무력의 위력을 높이고 미제의 악명높은 독수리연습을 역공격하는 싸움이라는걸 명심하시오… 참, 로영진동무가 주타격방향을 맡았다지?》

《그렇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최고사령부의 의도대로 기본전략도로를 타고앉기 위해 지금 무섭게 전진하고있습니다. 유인기만대가 북산강중류에서 허위도하를 시도하면서 상대측 기본집단을 견제하는 가운데 전격적으로 북산강다리를 점거하고 공격출발계선을 차지하게 됩니다. 한편 한개 부대가 타격대상의 뒤통수를 갈기게 됩니다. 예비대는 작전수행을 지켜보다가 인입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군부대의 각 타격집단들이 최고사령부가 지적한 시간내에 결전진입하려고 전진에 최대의 힘을 돌리고있습니다.》

《음, 그만하면 작전계획이 빈틈이 없구만. 하지만 연습참모부도 대응전술을 철저히 세우고있다는걸 잊지 마오. 수령님께서 일찌기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아오? 수령님께서는 나에게 전쟁이란 작전지도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하시면서 지휘관은 부호는 좀 잘못 그려도 지휘에 림기응변하고 정황에 맞게 전술을 잘 써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소. 사령관동무, 마음을 놓아선 안되오! 어떤 예상치 않았던 정황이 생길지 몰라?》

《최고사령관동지의도를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리평해는 김정일동지의 말씀에서 무엇인가 암시를 받은듯싶어 다소 불안해지는 마음을 어쩔수 없었다.

《됐소, 됐소! 그러단 내가 동무에게 훈련비밀을 다 대줄수 있겠구만. 한번 지휘관들의 배짱과 머리싸움을 지켜봅시다. 이번 기동타격훈련은 우리가 품을 넣어 준비한거요. 올해의 싸움준비완성에서 이번 훈련이 절정이거든! 다시한번 말하지만 미제침략군이 지금 남조선에서 최대규모의 합동군사연습을 벌린만큼 경각성을 높여야겠소. 겉으로는 유화정책이요 뭐요 하지만 제국주의본성이야 어디 가겠소. 총대가 흔들려선 절대로 안되오.》

《명심하겠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통화가 끝나자 리평해는 이마의 땀을 씻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는 또 담배갑을 꺼내들었다. 어쩐지 속이 불안하였다. 연습참모부에 틀고앉아 강평원들을 엄하게 다루고있는 유진성장령의 희멀건 얼굴이 떠오르면서 속이 쓰거워났다. 그는 담배대를 성급히 입에 물었다.

(사람두 참, 옛 전우라는게 왼새끼를 밸밸 꼬다니… 헛참. 그래두 제딴엔 군사엔 통달했노라고 늘 날 업수이본단 말이야. 이거야 속이 조마조마해서 견딜수가 있나?…)

야전지휘차가 멈춰서자 비바람소리가 갑자기 세차게 들렸다. 차문이 벌컥 열리더니 찬기운과 가스와 먼지내가 섞인 비내가 훅훅 밀려든다. 리평해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다부진 몸매의 강무전소장이 씩씩거리며 들어섰다. 부사령관의 야전복은 온통 흙탕물이 게발려 말이 아니였다. 리평해는 강무전의 벌겋게 상기된 굵은 목과 험악하게 이그러진 얼굴을 마뜩지 않은 눈길로 흘겨보았다.

《부사령관동무, 꼴이 그게 뭐요? 앉소.》

강무전은 네모진 철빛얼굴이 더 컴컴하게 죽어가지고 걸상에 털썩 앉았다.

《사령관동지, 저에게 책벌을 주십시오. 제 불찰입니다. 만사가 다 뒤틀렸습니다. 피장파장입니다. 제기랄!》

《부사령관동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요? 왜 우거지상을 해가지고 그러오?》

《문제가 생겼습니다. 방금 연습참모부에서 우리가 올려보낸 결심보고문건이 탈취당했다는 정황을 제기해왔습니다.》

《뭐라구?!…》

리평해는 자리에서 벌떡 튕겨났다. 그는 강무전의 어깨를 부여잡고 마구 흔들었다.

《그건 무슨 아닌 밤중에 홍두깨같은 소리요?》

《오늘 결심보고문건을 급히 연습참모부에 올려오라는 불같은 지시가 오지 않았겠습니까?》

《누구한테서?》

《연습참모부에 가있는 유진성대장입니다.》

《그래서?》

《모터찌클을 타고 무장한 경비분대의 호위속에 떠난 책임련락군관이 도중에서 강평원의 그런 정황을 받았습니다!》

리평해가 흔드는대로 몸의 탄력을 푼 강무전이 소리지르듯 대답하는 말이였다.

리평해는 성이 독같이 올라서 강무전을 와락 밀어제치며 최남호쪽으로 돌아섰다.

《부국장동무, 이거야 훈련계획에 완전히 어긋나는게 아닌가? 너무하지 않은가 말이요!》

강무전을 따라 들어선 강평원 김한경대좌가 두 사람을 번갈아보았다. 최남호 역시 은근히 기다리던 소식이였으나 일이 이렇게 엄청나고 돌발적인 방향으로 꺾어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만큼 당황한 표정이였다. 전진도상에 큰 장애가 조성되거나 정황이 역전되여 애를 먹일 정도의것으로 생각하고있었던것이다.

《?!…》

리평해는 우리속에 갇힌 범처럼 분격이 꼭두까지 치밀어올라 안절부절을 못했다.

생각할수록 기가 딱 막혔다. 결심보고문건이 《탈취》정황에 처했다면 이번 작전계획이 통채로 드러났다는것을 의미하였다.

결심보고문건의 글자 하나하나가 다 귀중한 정보원천으로 되여 누구든지 전반적작전구상을 예측하는것은 식은죽먹기였다.

그는 앞이 아뜩하였다. 지금까지의 간고한 작전진행과정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것이다. 전혀 예상하지 않은 문제는 아니였으나 작전이 절정에로 치달아갈 때 발생한만큼 큰 산을 걸머진 기분이였다. 그는 착잡한 생각에 잠겨 속으로 이리저리 타산을 굴리였다. 하지만 분한 감정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는다.

최남호가 무거운 걸음으로 그의 곁에 다가왔다.

《시간이 없습니다. 사령관동지, 결전진입시간은 한순간도 에누리할수 없습니다.》

최남호의 침착한 어조에 리평해는 피끗 정신을 차렸다. 그는 한순간 깊은 사색에 잠겼다. 섬광이 번개쳤다. 그것은 한찰나였으나 중대한 생각이 바뀌는 운명적인 기회였다. 그는 강무전을 돌아보았다. 그는 입가에 강의한 미소를 지으며 말에 그루를 박았다.

《급히 <ㅌ>문건철을 가져오시오. 제2전술방안으로 넘어갑시다! 좀 힘들고 새롭게 시작하더라도 일어서야 하오.》

강무전의 퍼렇게 언 입술이 푸들푸들 떨렸다.

그는 지꿎은 눈길로 리평해를 바라보았으나 군인다운 강직한 성격이 그 어떤 격정을 눌러버렸다.

《알았습니다.》

강무전은 홱 돌아서서 차문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패기있는 자세는 걸으면서 다소 헝클어졌다.

리평해는 땀과 비에 푹 젖어 얼룩진 강무전의 등을 보자 영문모를 화가 치밀었다.

《부사령관동무, 서시오. 무슨 의견이 있소?》

강무전이 성급히 돌아섰다. 굵은 목이 붉어지고 눈빛이 빛났다.

중떠보는듯 한 그 눈빛에는 격렬한것과 침착성이 서로 부딪쳐 불꽃을 튕기고있었다.

《제2작전방안으로 넘어가는 경우 시간을 보장할수 있겠는지가 우려됩니다. 2방안이라면… 로영진동무가 주도한것이 아닙니까.》

리평해는 지꿎게 쏘아보는 최남호의 눈길을 피하며 짧은 한숨을 내쉬였다.

《그렇소. 부득이하게 시간을 떼우게 되오. 하지만 뭐 우물거릴게 없소. 시급히 대응전술을 세워야 하오. 로영진동무네의 일부 구분대가 허위행동으로 <적>을 유인하고 보조타격방향에서 신속히 강행도하를 진행해야 하겠소. 이미 예견은 한것이므로 계속 전진하면서 전투서렬을 다시 편성하여야겠소.》

리평해는 이마살을 찌프리고 엄격하게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우회임무를 받은 부대입니다. 그 동무들은 이미 간고분투하여 비파령을 넘고 배후타격방향으로 출발했습니다. 병사들이… 지쳤습니다.》

강무전은 이 순간 자기가 얼마전까지 지휘하던 부대에 대한 애착과 근심으로 얼굴이 이그러졌다.

리평해의 얼굴표정이 한결 누그러졌다.

《어디요?》

강무전이 급히 지도우의 한 지점을 찍었다. 리평해는 잠시 들여다보고 굵은 손가락으로 선을 벅 그었다.

《이 지름길을 타서 바로 북산강다리쪽으로 진출시켜야겠소. 여기서 결전진입시켜야겠소. 그럼 상대방이 우리의 허위행동기도를 믿을거요. 비밀이 샌만큼 믿지 않을수도 있지만 속은자가 속인자를 업고가는 경우가 있으니까.》

강무전은 아연해진 눈길을 들었다.

《아니 그럼 사령관동지는 우리 부대를 미끼로?…》

《우리? 우리가 뭐요? 동무가 군부대 지휘성원이 맞는가? 아직도 전직관념에서 본위주의를…》

리평해는 작전탁을 탕탕 두드렸다.

《?!》

《그래 실무가인 동무가 아직도 조성된 정황에서 다른 길이 없다는걸 모르겠소?》

강무전은 눈을 감았다. 눈시울이 가볍게 떨렸다. 배짱이 세고 고집불통인 그였지만 용케 자제력을 회복하였다.

《사령관동지, 지금 병사들은 지쳤습니다. 그리고 이 신발고지를 아시지요? 이 폭우속에 기재들이 넘을수 있겠는가가 문제입니다.》

《넘어야 하오!》

《지금까지 땅크가 넘은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새로 임명된 한철준참모장은 아직 경험이 부족한 지휘관입니다.…》

《그래 동무생각은 뭐요?》

리평해는 무뚝뚝하게 직판 물었다.

강무전의 굵은 목이 더 검붉어졌다.

《사령관동지, 우회하고있는 부대가 아니라 바로 이런 때 예비대를 써먹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비대?》

리평해의 눈빛이 번쩍하고 빛났다.

《예비대는 절대로 안되오!》

《사령관동지!…》

《절대로!》

리평해는 오금을 박듯 부르짖고나서 생각에 잠겼다.

사실 결승선가까이에 이른 병사들을 험한 골안으로 또다시 돌려세운다는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였다. 그야말로 우회속의 또 우회였다. 그렇다고 안일하게 쉬운 길을 택할 권리가 자신에게 있는가? 군부대작전의 승리를 위해서는 병사들을 피치 못하게 그 길로 떠밀어야 할 리평해였다.

그는 강무전을 흘끔 올려다보았다.

《거기… 리만순정치위원이 있지?》

《처음부터 자기 대원들과 함께 있습니다.》

풀이 죽은 강무전의 목소리가 차안을 울렸다. 곁에서 최남호가 머리를 끄떡이였다. 한때 최남호는 리만순이와 함께 부대를 이끈 일이 있었다.

《그 동무라면 믿을수 있소. 한철준동무를 잘 떠밀어줄거요. 부사령관동무가 직접 그들에게로 가서 정황을 료해하고 대책을 세워주오. 더 긴말을 하지 맙시다. 시간이 없소! 그 부대에 우리 작전의 승리의 열쇠가 달려있소.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집행하느냐 못하느냐가 그들에게 달려있단 말이요!》

강무전이 번쩍 얼굴을 들었다. 두 사람의 눈길이 센 탐조등마냥 서로의 표정을 훑었다.

《알았습니다.》

리평해는 강무전의 손을 으스러지게 잡았다.

《믿겠소!》

이윽고 모터찌클발동소리를 누르며 직승기의 프로펠라 돌아가는 소리가 야전지휘차상공을 드세게 흔들었다. 결전진입시간까지는 이제 다섯시간정도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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