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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총대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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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12-11 21:51 조회6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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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향도》

장 편 소 설 총대


박 윤

( 제 25 회 )

제 4 장

5

성악조장 문국지가 소식을 전달해주기 전에 벌써 최단아는 박신철이 찾아온것을 알고있었다. 습관처럼 창밖을 바라보다가 외등곁에 서있는 그를 발견했던것이다. 그가 사흘전에 출장지에서 돌아온만큼 분명 이 며칠새에 나타나리라고 심장은 조용히 속삭였었다. 그는 어수선한 상념속에 전달이 오기를 기다렸다. 자존심도 없이 서둘러 만난다면 그가 날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얼마전 아버지가 책벌받은 전후사연을 구체적으로 알게 된 최단아는 온밤 침대우에서 설음에 겨워 울었다. 옹졸하고 못난 자기자신이 한심하고 가엾어서 울었고 고집스럽고 덜퉁스러운 그가 원망스러워 울었다. 그토록 아름답고 진실하고 다정스럽던 사랑이 자기의 불찰로 깨진것이 아쉬워서 울었다. 이제 그 남자가 매정스럽고 속이 쪼물짝한 나의 행동을 용서할것인가. 아니, 난 그의 발치에도 못가는 한심한 녀자야.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받들고 부대의 싸움준비를 위해 그토록 헌신한 그 동무를 고무하기는커녕 찬물을 끼얹으며 모욕했으니 그가 나를 어떤 녀자로 보겠는가.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고 아버지는 과오를 범하고 그 딸은 그것을 변호했으니 얼마나 수준없는 녀자라고 비웃었겠는가.

차라리 그런 견실한 인간곁에 떳떳이 설수 없을바엔 이번 기회를 통해 깨끗이 물러서는게 나아. 나같은 맹꽁이는 그 진실한 남자의 길에 괜히 장애물이나 될수 있어.

한시간이 지나도록 누구도 전달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최단아는 새로 나온 도서에 정신이 팔려 침대에 엎드린채 중얼중얼 읽고있는 김성희가 눈치를 채지 못하게 슬며시 일어났다. 창턱의 화분에 물을 주는척 하고 창밖을 슬쩍 내다보았다. 박신철은 여전히 경비실곁의 외등밑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문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최단아는 화닥닥 놀라 출입문으로 다가갔다. 성악조장 문국지가 싱글거리며 복도에 서있었다.

《단아동무, 대경사요!》

《무슨 일이세요? 조장동지.》

최단아는 속이 간질거리는것을 참으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허, 이거 난 단아동무가 새침해할 때면 대번에 기가 질리거든.》

언제봐도 말이 걸고 락천적인 성악배우였다. 같은 익살군들은 그를 보고 흐들흐들하는 《문어》라고 부르기 좋아하였다. 최단아는 그 생각을 하며 웃음이 나왔으나 시치미를 뻑 따고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전달할것이 있으면 빨리 하세요. 난 바빠요.》

《챠, 이건 우물에 가서 숭늉 달라겠구만. 이제 말이요. 내가 경비실곁을 지나는데…》

《날… 찾아온 사람이 있지요?》

《응, 해군정찰병이요.》

《알겠어요.》

문국지는 유쾌한 재담이 너무 빨리 끝난것이 아수한듯 입을 우물거리다가 이마를 탁 쳤다.

《아참, 이런!… 오늘은 내가 최단아동무 련락병이 될 운순가봐. 같은 제대군인이니까. 제길, 이건 동무에게 오는 편지요. 뭐 백금산에서 김혜정언니로부터?》

최단아는 문국지가 높이 쳐든 편지봉투를 홱 나꿔챈후 방문을 닫아버렸다.

최단아는 방한복판에 서서 잠시 생각을 굴리다가 김성희의 눈치를 힐끔 살핀후 침대에 걸터앉아 편지봉투를 뜯었다. 김혜정의 활달한 글씨가 눈에 안겨들었으나 마음은 그냥 야외등곁으로 달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속으로 그냥 장승처럼 우두커니 서있는 박신철의 앞에 어떻게 나타날것인지를 궁리해보았다.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그토록 가시돋힌 말을 내뱉고 돌아선 내가 그 사람앞에 나선다면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가? 차라리 활짝 웃으며 아무일도 없었던듯이 마주 갈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머밋머밋 다가갈가? 아니면 가장 실무적인 태도를 지을가? 그 생각을 하자 최단아는 귀뿌리가 홧홧 달아오르는것을 느꼈다.

그럼 나를 얼마나 낯가죽이 두터운 녀자로 여길가? 아니면 변덕쟁이로, 수양이 부족한 녀자로 타매할지도 몰라. 차라리 나타나지 말자. 그게 지금 형편에선 나를 위해 옳을지도 몰라…

상념속에 김혜정의 편지 글줄을 기계적으로 훑어내려갔다.

《…조쇄직장은 말로는 표현못할 거창하고 억센 혁명적군인정신이 나래치는 로동계급의 현장이야. 거의 3층건물만한 파쇄기가 우렁차게 돌아가면 땅이 막 흔들리는것 같아. 락광정에서 흘러온 집채같은 광석들을 한입에 삼키고는 와작 깨물어 잔돌로 만들어 선별기로 척 보낸단다. 이런 웅장한 일터에서 난 순금이와 함께 일해. 이 고장은 산도 크고 기계들도 크고 사람들의 성격도 큼직큼직해. 정말 좋은 사람들이야.

며칠전엔 신철동무 어머니를 찾아갔댔어. 친어머니처럼 살뜰하고 사려깊은 녀인이야. 그저 입만 떨어지면 단아 네 얘기를 한단다. 너의 그 연한 주근깨까지 다 알고있어. 신철동무 아버진 이 광산의 존경받는 공훈광부였고 갱장이였대. 갱이라는게 보통갱이 아니구 수천명의 로동자가 일하는 큰 기업소나 같아.

단아, 난 이 광산에 와서 정말 많은걸 느껴. 이 땅은 어디가나 우리 장군님을 받드는 견실하고 억센 당원들이 말없이 자기 초소를 지키고있구나 하는 긍지와 자부심에 막 가슴이 부풀어올라.

어제저녁 광산당비서동지가 내게 뭐랬는지 아니?

〈이보우 혜정이, 내 광산생활 수십년에 이런 생각을 한적이 있지. 철따라피는 꽃도 열매를 남기는데 내 한생에 남길것이 무엇이겠는가. 당앞에 실적으로 이룩해놓은것이 없다면 그게 무슨 우리 시대삶인가. 명성을 날리는 인물들은 각 분야에서 후세의 찬양을 받는 로동당시대의 공적들을 세우지. 누구는 박사, 누구는 인민배우, 누구는 체육명수, 하다면 말없이 한생을 자기에게 맡겨진 평범한 초소를 수걱수걱 지켜가는 우리 광부들의 인생의 열매는 무엇인가, 그들이 창조해내는 열매야말로 생각해보면 얼마나 거대한것인가. 그것이 모여 내 나라의 군력과 국력을 이루는것이 아니겠는가.〉

단아, 그는 제대군인출신 로동계급형의 당일군인데 얼마나 철학이 있니. 이제 네가 신철동무와 함께 이 백금산을 찾으면 몹시 반가와할거야.…》

비방울이 후둑후둑 창문을 때리며 지나갔다.

최단아는 화닥닥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편지를 높은 가슴앞에 모아쥐고 얼핏 옆침대의 김성희를 건너다보았다. 그는 정신없이 책을 읽는척 하고있었다. 속이 여물대로 여물고 쇨대로 쇤 그의 속을 모르는바가 아니다. 최단아는 원탁우의 물주전자를 들고 머밋머밋 창문쪽으로 다가가 수국화화분에 물을 주며 창가림짬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억수로 쏟아져내리는 비속에 그는 그대로 서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굴 한번 돌리지 않는다.

최단아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것을 간신히 억제하며 주전자의 물을 화분에 정신없이 쏟고있었다.

《야 단아동무, 무슨 물을 자꾸 줘! 그러단 뿌리가 썩는다는데…》

김성희가 발딱 일어나 최단아의 손에서 물주전자를 와락 빼앗더니 고개를 돌려 넌지시 창밖을 내다본다. 최단아는 얼굴에 모닥불을 뒤집어쓴 기분이 되여버렸다. 그는 수국화잎을 의미없이 만지작거렸다. 평양교외 비행군부대에서 비행사를 하는 성희아버지가 지난봄에 손수 가져온 화분이였다. 성격이 침착하지 못한 나이찬 딸에게 비행사다운 인내성과 섬세성을 부여해주려는 부성애가 깃든 아름다운 꽃이였다.

김성희는 아예 창턱에 팔을 짚고 밖을 재미있게 내다보다가 한숨을 푹 내쉰다.

《참, 저 불쌍한 소좌동지는 언제면 자기 보초소를 철수할가?…》

《?!》

《나같으면 그렇게 애먹이는 맹꽁이처녀를 그저 와락!》

김성희는 두손으로 무엇인가를 비트는 시늉을 해보이다가 제풀에 깔깔 웃어댔다. 최단아도 억지로 따라 웃었다.

그 웃음으로 해서 두사람사이에는 말없는 리해와 합의가 이루어졌다.

《성희동무, 어찌겠니. 나대신 나가줘요. 구실은 네 스스로에게 맡기겠어.》

《흥, 족제비도 낯짝이 있다는게지? 좋아, 내가 나가요. 이건 호박쓰고 돼지우리에 들어가긴데…》

《이 비옷을 입고 나가.》

《말 말아요. 상대방은 비에 홀딱 젖었는데 저만 척 쓰고나가면 어떻게 해!》

《정말 미안해요.》

《야ㅡ 아버지가 비오는 날엔 밖에 나다니지 말라고 했는데…》

김성희는 몸에 착 붙은 까만 련습복우에 체육복을 걸치고 률동적인 걸음새로 방을 빠져나갔다.

《특사》가 사라지자 그를 대신하여 갑자기 어쩔새없이 불안과 고독이라는 《손님》이 문득 찾아들었다. 최단아는 앉지도 못하고 방안을 서성거리다가 또다시 물주전자를 집어들었다. 김성희가 방안에 없건만 조심스럽게 창턱으로 다가가 화분에 물을 주기 시작했다. 그는 또다시 와뜰 놀라며 보라색창가림을 제끼고 정신없이 밖을 내다보았다.

두 남녀가 비오는 야외등밑에 마주 서있었다. 김성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먼 빛으로도 박신철의 얼굴이 굳어지는게 알린다.

심장이 가슴밖으로 튀여나올듯 쿵쿵 뛴다. 최단아는 높뛰는 가슴을 부여안은채 침대에 쓰러져 흐느꼈다. 눈물이 비오듯 쏟아져 베개잇을 적신다.

아니야. 사람은 진실하고 솔직해야 해. 잘못을 저질렀다면 량심적으로 용서를 비는게 녀자고 인간이야. 그럼 그인 용서해줄거야. 그 무엇을 가릴 필요도 가식이나 체면으로 보잘것없는 자존심을 치장할것도 없어.

단아, 용기를 내. 앞에 깨진 얼음장이 있어. 구원의 기슭이 널 불러. 넌 용감한 녀자지!

최단아는 소스라쳐 놀라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원탁우에 놓인 비옷을 와락 덮쳐가지고 허둥거리며 밖으로 달려나갔다.

어느새 5층계단을 나는듯이 내려섰다. 빨래감이 든 비닐소랭이를 들고 식당곁의 세목장을 나서던 문국지와 하마트면 부딪칠번 했다.

《아니, 이건 뭐야? 그 유명짜한 해군정찰병을 아직까지 비속에 세워두었소?》

문국지의 목소리에는 익살이 아니라 진정한 비난이 어려있었다.

비발이 날리는 야외등밑에는 박신철을 대신하여 김성희가 그린듯이 홀로 서서 망연히 어둠속을 바라보고있었다.

김성희가 최단아를 돌아보았다. 눈물인지 비물인지 가려보지 못할것이 그의 얼굴을 적셔버리고있다. 아니, 최단아는 륙감으로 그것이 눈물이라는걸 알았다.

《단아동무, 우리 조장동지가 말했지? 녀자들은 누구나 속에 맹꽁이를 몇마리씩 가지고있다고. 나에게도 한마리는 있을거야. 하지만 단아에겐 한 열마리는 있어!》

《?!…》

《사랑이 뭐 전쟁이나? 이건 공격과 방어가 다 있거든. 전번엔 여기서 공격하더니 이번엔 해군정찰병쪽이! 어디 힘껏 방어해봐요. 자!》

김성희는 떨리는 손으로 비에 푹 젖은 수첩장을 최단아에게 내밀고 급히 숙소로 들어가버렸다.

최단아는 눈으로 흘러드는 비물을 훔치며 겨우 박신철이 막 갈겨쓴 글발을 들여다보았다.

《단아!

아버지는 그렇게 값 싼 동정이나 받을 사람이 아니라고 나는 확신했소. 동무가 진실을 외면하고 결별을 선언한다고 내가 자존심때문에 쉽게 돌아서는 용렬한 인간이라면 영원히 피해도 좋소. 사랑이 우리 시대의 원칙을 벗어난다면 그건 정말 한푼의 가치도 없소!

난 총 잡은 군인이요! 그리고 동무도 그 총대를 받드는 일원이라는걸 잊어선 안돼!

우린 모두 장군님의 전사들이기때문이요. 먼길을 떠나며 동무가 걱정되여 들렸소. 시간이 급해서 이만 철수하오.

남자들은 정말 모든것에 대해서 마음을 놓을수 없구만.

안녕, 해군정찰병으로부터.》

최단아는 편지를 붙안고 정신없이 지하철도역쪽으로 뛰여가다가 그만 그 자리에 멈춰서버렸다.

신철동지, 신철동지! 절 용서하세요.

전 동지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녀자입니다.

전 가슴에 맹꽁이가 열마리나 도사리고있는 아둔한 녀자입니다.

어디 있어요? 당신의 마음은 바다였군요. 큰 바다였군요! 어디에 있어요? 그리운 님, 저도 그 총대의 부혁이 되렵니다!

비는 억수로 쏟아붓고있었으나 마음의 하늘은 활짝 열리고있었다. 그 푸른 창공으로 해살이 비쳐내렸다.

최단아는 비물과 눈물속에 미소를 짓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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