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여름 11 -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 조선문학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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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여름 11 - 총서 [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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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06-20 09:47 조회7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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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9-U01.jpg

(제 11 회)

5 장

운학은 창문이 삐걱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여났다. 솨-하고 바람치는 소리와 함께 비방울이 날아들어 이마에 선뜩선뜩 부딪쳤다. 창턱우에 놓아둔 음식꾸레미가 생각나 얼른 일어났다.

음식꾸레미는 퍼그나 젖어있었다. 엊저녁에 집을 떠나올 때 어머니가 부득부득 싸안겨주던것이였다. 침대밑에 그 보따리를 내려놓고 자리에 누웠으나 피곤한 폭에 비해서는 잠이 오지 않고 집에서 있었던 일들이 이것저것 되밟혀왔다. 그를 가장 난처하게 했던것은 색시를 당장 하나 들여앉혀야 한다고 우겨대던 친척들의 지궂은 독촉이였다. 동생의 죽음에 눈물을 뿌리던 동네녀인들까지 앉은자리에서 확답을 받아낼듯 마을처녀들을 비추어 댔다.

다행스럽게도 어머니가 그 일은 좀 두고보자고 한풀 눌렀으나 운학은 그 분위기속에 그냥 버티고 앉아있을수 없었다. 하여 그는 휴가기일이 더 있었지만 토요일밤 직일근무라는 핑게로 집을 나오고말았다.

컴컴한 천정을 쳐다보는 그의 눈앞에는 음식보따리를 꾸려가지고 동구밖에까지 따라나왔던 어머니의 모습이 삼삼히 서려왔다.

《내 걱정은 말고 근무를 잘하거라.》

바람에 날리는 머리칼을 빗쓰다듬던 어머니의 관자노리에 흰머리카락 몇오리가 섞여있던것이 가슴을 찔렀다. 언제나 마음고생에 시달리는 어머니… 여느 동무들처럼 장가를 들어 며느리와 함께 산다면 어머니의 마음고생은 한결 없어질것이 아닌가. 차라리 아무데고 장가를 드는것이 낫지 않을가.

운학은 뼈무르는 생각에 눈을 감고말았다. 그러자 련화의 얼굴이 으스름속의 하현달처럼 비껴왔다. 그는 지금 무얼하는가. 내가 지금 괜한 미련으로 그를 생각하는것은 아닐가. 다른데 시집갔을지도 몰라. 내가 왜 억지로라도 그를 끌어오지 못했던가.

좌락좌락 락수물소리는 그의 심회를 더욱 북돋궜다. 잠을 청하려고 돌아누웠을 때 다급한 발자국소리와 함께 병실문이 열렸다.

《기상! 폭풍!》

전등불이 확 켜지며 눈알을 꼿꼿하게 만들었다. 비옷도 없이 달려온 직일군관의 검스레한 모습을 보며 운학은 무슨 비상소집인가 하고 생각하며 습관된 동작으로 재빨리 일어나 바지를 꿰였다. 웃옷을 입으며 시계를 얼핏 보니 시침이 네시쪽에 가있었다. 쏟아지는 비속을 뚫고 청사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여러명이 나와있었다. 그의 상관은 인사도 받지 않고 긴장된 얼굴로 《지도를 꺼내오.》라고 짤막히 일렀다. 뭐라 이름할수 없는 긴장되고 엄숙한 분위기였다.

《무슨 훈련입니까?》

운학이 얼굴에 비물을 닦으며 묻자 부장은 거의 애처로운 빛으로 보다가 나직이 말했다,

《리승만괴뢰군이 38선을 넘어섰소.》

운학은 숨이 딱 막혀들었다. 온몸의 피가 싹 밑으로 빠져내리는듯 하였다. 떨리는 손으로 지도철함을 열고 《백지도》들을 꺼냈다.

산발과 강하천들이 희미한 무늬로 얼룩져있는 책상넓이보다 더 큰 지도들을 한장한장 간종그려 쌓고있는데 부장이 옆에 와 그 지도들을 두루말이하며 말했다.

《총참모장동지방으로 가야겠소. 저기 색연필통과 부호자들을 가지고 따라오우.》

운학이 색연필통과 부호자를 찾아들자 벌써 부장은 지도말이를 옆에 끼고 문을 나서고있었다. 그때에야 운학은 총참모장 부관을 알아보았다. 부관을 따라 가운데 복도계단으로 올라간 그들은 방음장치가 된 문앞에 이르자 걸음을 멈췄다. 운학은 자기가 세수를 못했음을 상기하고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던 부관이 의아한듯 뒤돌아보았다.

《왜들 섰습니까, 빨리 들어오시오.》

주춤거릴새가 없었다. 부관의 눈길에서 운학은 여느때면 먼발치에서 보고도 몸이 꼿꼿해지던 총참모장을, 한번 만나려면 의복단장을 하고 모표의 위치며 목달개상태까지 깐깐히 검열해봐야 하는 평상시의 의례적규칙이 지금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것을 알았다. 부관이 두번째 문을 열자 벽에 걸린 지도앞에 두 장령이 서있는것이 눈에 띄였다. 긴탁끝에는 총참모장 강건이 한손에는 전화기를 다른 손에는 고무지우개가 달린 연필을 들고 앉아있었다.

문가에 굳어져 서있는 운학이와 그의 상관을 본 강건은 연필쥔 손을 쳐들어 오라고 손짓하다가 갑자기 이마살을 찡그리며 낮으나 엄한 소리로 웨쳤다.

《해주시당에까지?… 곡사포로 때린다?…》

강건참모장은 수첩에 뭔가 재빨리 적고는 운학이와 부장더러 의자에 앉으라고 다시 손짓했다. 운학은 몸이 오싹오싹 떨리는것을 느끼며 의자를 조심스레 뒤로 당겨놓고 앉았다.

강건은 수화기를 왼손에 바꿔쥐고 앞에 펼쳐놓은 지도를 그들앞에 내밀었다.

《동무네 가져온 그 지도에 옮겨그리시오.》

연필로 표기한 정황지도에는 무수한 적의 푸른색 공격화살표들이 38°선을 찔러들어왔다. 서부로는 평천, 금천쪽으로, 중부로는 련천, 김화를 향해, 동부로는 양구, 양양으로 그 창끝같은 화살표들이 뻗쳐들어와있었다. 운학은 연회색으로 희미하게 그려진 지형도우에 자신의 손으로 그려지는 무수한 톱날과 화살표를 보며 입술이 말라들었다. 몸은 점점 더 떨렸다. 손도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때로 낮으나 날카로운 웨침이 《뭐이, 두 밀렸다고? 한개 사단으로 예상된다?》 하고 울릴 때면 저도 모르게 흠칫하면서 총참모장의 강파로운 얼굴을 훔쳐보군하였다. 육중한 발걸음소리와 함께 기척도 없이 문이 불쑥 열리였다.

최용건보위상이 들어섰다. 그의 짧게 깎은 관자노리며 머리칼들에는 비방울이 이슬알처럼 매달려 반짝거렸다.

《여전하오?》

보위상의 무거운 눈길은 송수화기를 그대로 든채 일어서는 강건의 얼굴을 그러잡고 움직이지 않았다. 강건은 기계적으로 대답하였다.

《계속 밀려듭니다. 이젠 놈들의 도발을 멈출 그 어떤 방법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도발을 중지할데 대한 정부성명이 발표되였소.》

최용건은 무뚝뚝하게 이 말을 하고 눈알을 찌프렸다. 강건은 기대어린 눈빛으로 그를 지켜보다가 말했다.

《금방 받은 경비국통보에 의하면 많은 경비초소들에서 지휘관 전사들이 장렬한 희생을 당했답니다. 38선은 전부 돌파당했습니다.》

최용건은 목깃단추를 열어제끼고 운학이네 책상쪽으로 다가왔다. 지도우에 몸을 굽힌 그는 꽉 부르쥔 주먹으로 서해의 백령도와 동해의 울릉도쪽을 짚고 한참이나 내려다보았다.

전화종소리가 요란히 울렸다. 그 소리에 최용건은 고개를 쳐들었다.

《강건입니다.》

침착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던 강건의 낯빛이 점점 질려가자 최용건은 다시 지도에 시선을 떨구었다. 그러나 전화가 끝났을 때 그는 기대어린 눈길로 강건을 바라보았다. 강건의 미간엔 칼날같은 주름이 일어섰다.

《경비국에서 온 전화입니다. 최현동무네 경비려단이 포위에 들었답니다. 부득이한 경우엔 철수하라고 했다는데 그냥 견지하다가 그렇게 됐다는것입니다. 아무래도 현재의 진출부대들로 반공격에 진입해야겠습니다.》

최용건은 폭우 쏟아지는 창밖에 시선을 준채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지금은 잃어버린 일부 지역이 문제가 아니요. 혼란속에 말려들지 않는것… 부대들이 방어진지를 차지하고 린접을 강화하여… 결정적인 파국을 막는것이요.》

《장군님께서는… 결심을… 내리시지 않았습니까?》

강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최용건은 지궂게 갈마드는 괴로운 생각을 털어버리듯 고개를 가볍게 젓고 침착한 태도를 살려 말했다.

《정치위원회를 소집하셨소. 우리로썬 적을 저지시키는것이 급선무요. 더이상 물러설순 없소. 더이상!》

최용건은 완강한 어조로 곱씹었다. 강건은 초조감을 덜지 못한채 말했다.

《현재 적들과 접촉한 부대들에서 잃어버린 지역을 탈환하는 반돌격전투를 진행하겠다고 합니다.》

최용건은 묵묵히 강건을 응시하다가 찍어박듯 말했다.

《지금 상태에서 마구 내치다가는 혼전에 말려들게 될것이요. 문제는 방어계선을 형성하고 린접간의 련계와 균형을 보장하는것이요.》

운학은 부장이 옆구리를 다치는바람에 일어섰다. 자기들이 여기에 더 있으면 안된다는것을 부장의 눈짓을 통해 알아차린 그는 작전문제 토의에 대한 허다한 호기심을 안은채 조용히 방을 나섰다. 림운학에게는 보위상의 말이 랭혹하나 그만큼 진실겹게 들렸다. 불의의 침습을 당하는 경우 그 쓰디쓴 곤경을 겪게 되는것은 전쟁력사들이 보여주는것처럼 어쩔수 없는 운명이였기때문이였다. 쏘련도 히틀러의 새벽공격에 수백의 광활한 땅과 수많은 사단들을 잃어버리지 않았던가.

운학은 숨이 막혀들었다. 불쑥 최현장령의 얼굴이 떠오르고 이틀전에 본 38선의 희스름한 현무암바위들과 묘지의 하얀 표말들, 지휘부의 분홍빛 건물이 밟혀왔다. 동생의 묘지도 놈들의 군화밑에 밟혀들것이였다.

그가 부관실대기탁에 마주앉아 새로운 지도를 펴놓고 복사하기 시작할 때 최용건보위상이 밀페된 방안공기틀 활 가셔내는 걸음으로 옆을 지나 복도로 서둘러 걸어나갔다. 그의 손에는 운학이네가 그린 지도가 들려있었다.

민족보위상 최용건은 이미 오산학교 학생시절에 칭기스한의 전쟁사로부터 클라위제위츠키, 엥겔스의 전쟁론에 이르기까지 이름있다는 동서고금의 전쟁서적들을 거의다 독파했었다. 그후 장구한 기간의 유격전을 통해 기성리론의 진가를 검열하고 제나름의 전투경험과 군사상식을 넓혔으며 전쟁과 군사에 관한 일정한 견해를 확립하게 되였다. 이 견해형성에 결정적영향을 미친것은 항일혁명전쟁시기 김일성동지께서 친히 작성하신 유격전쟁에 대한 소책자들에 제시된 사상과 리론, 방법들이였으며 그이께서 몸소 조직지휘하신 전투들에서 보여준 빛나는 모범들이였다. 이런데서부터 그는 해방후 민족보위상의 중책을 떠맡을 때 인민무력의 지휘일군으로서의 자기 능력에 대해 별로 동요하거나 의혹을 품지 않았다. 조선인민혁명군 출신 지휘관들이 다 그런것처럼 군사가이기전에 정치일군인 그는 모든 전투행동을 분립해보지 않고 복잡성속에서 정치와 련관시켜 변증법적으로 고찰하는 안목을 가지고있었으며 전쟁수행과정이 단순한 작전전술적기도에 의한 기계적움직임이 아니라 구체적인간의 감정과 기분, 사상과 의지의 격앙, 분출, 발전, 변화, 충돌, 해결의 과정임을 잘 알고있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적의 무장침습보고를 받을 당시 최용건은 응당하게도 군사가로서만 아닌 정치가로서의 안목으로 대세를 분석판단하려 애썼다.

지금 그의 내심을 지배하는것은 모욕감이였으며 무엇으로써도 가셔낼길 없는 노여움이였다. 수십년 피를 흘리며 싸워 찾은 내 나라를 또다시 이방놈들에게 바치려 한푼도 차지 않는 리승만이 내란을 일구었다는 기막힌 사실앞에 그는 머리가 터져나갈정도로 분통했다. 그만큼 원쑤들의 침공을 반드시 분쇄하고야말겠다는 억척같은 각오가 굳건히 뻗쳐올랐다. 그러나 지금김일성동지의 부르심을 받고있는 그의 머리속에는 오늘의 이런 사변에 대비하여 준비한 작전적방안들이 꿈결처럼 엇갈려돌뿐 《이것이다!》 하고 앞을 활 열수 있는 출로와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제 일정한 시간이 지나 인민군부대들이 경비대들이 싸우는 계선에 이르러 방어전선을 펴면 더는 퇴각이 없으리란것만을 굳게 확신하고있었다.

《더는 물러서지 않을것이다. 공고하고 완전한 방어전선을 꾸려 적의 예기를 꺾을것이다.》

최용건은 김일성동지의 부르심을 받고 가는 길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 타신 차는 당중앙위원회청사를 떠나 보통문을 에돌아 내각청사쪽으로 달렸다. 도시는 아직도 단잠에 취해있었다. 불이 켜진 창문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잠에서 깨였다가도 단조로운 비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다시 눈을 감을것이였다. 차안의 라지오에서는 적들의 전쟁도발행위를 즉시 중지할데 대한 정부성명을 발표하는 방송원의 격분된 목소리가 줄기차게 흘러나왔다.

비안개에 젖어 무거워진 어둠은 창가에 집요하게 매여달려있었다. 새벽은 힘겹게 천천히 다가오고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옆으로 흘러가는 검스레한 가로수와 건물들을 보시다가 차창에 새겨진 얼룩무늬들에 눈길을 멈추시였다. 무수한 비방울들이 부딪쳐 그려낸 얼룩덜룩한 점들과 선들은 그대로 지도의 등고선처럼 안겨들었다. 적의 침입지점들이 뚜렷이 새겨지며 얼기설기한 전호와 진창이 뿌리치는 길과 산발들이 떠오르셨다. 그것은 적의 공격대형으로, 행군해나가는 인민군대렬로, 마지막 탄알을 쏘고있는 경비대전사들의 모습으로 바꿔지기도 하였다.

차가 멈칫하는바람에 김일성동지께서는 밖을 내다보셨다.

전조등불빛에 우비를 쓴 장년 남자와 소년이 놀란 얼굴로 돌아보는것이 눈에 띄셨다. 소년의 손에는 다라치가 장년남자의 손에는 낚시대가 들려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아버지와 아들인듯 한 두사람이 어둠속에 묻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뒤돌아보셨다.

지금쯤 강에는 강아지같은 잉어를 꿈꾸며 숱한 낚시군들이 일요일휴식의 흥에 떠 앉아있을것이다. 한집의 창문에 불이 밝았다. 창문은 열려진채로였다. 런닝그바람의 사내가 밖을 내다보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 사내의 어깨에 예닐곱살난 소년이 목마를 하고앉아 발가숭이 팔을 내밀어 비방울을 잡고있는것을 보셨다.

비야 비야 오너라

참새 동네 불났다

소년은 웃음을 짓고 동요를 부르는상싶었다,

(과연 전쟁인가?)

김일성동지께서는 두눈을 감으셨다. 화염처럼 휘몰아치는 분노에 열띤 사색의 틈바구니에서 튕겨나온 이 물음앞에 그이께서는 숨결이 가빠오셨다. 비통과 분노로 굳어졌던 정치위원들의 모습이 떠오르셨다. 모두가 전쟁을 기정사실로 인정하였다. 도발을 중지할데 대한 정부성명발표에 긍정은 하면서도 누구나 그에 기대를 걸지 않았다. 김일성동지께서도 같은 견해이시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혹시나-》 하는 희망을 저버릴수 없으셨다. 단 몇분이라도 희망을 안고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그리고 그 기다림의 시간을 단 일분이라도 늦추고싶으셨다. 하여 그이께서는 내각청사로 곧추 차를 몰게 하신것이 아니라 보통문쪽을 에돌게 하셨다.

(전쟁이라면-)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신의 결심과 사색을 다시금 정리하여보셨다. 경비대들이 싸우고있는 전선들과 비상소집발령에 따라 움직이는 인민군부대들의 전개지점들을 그려보셨으며 첫 접전에서 적아간에 소모될 유생력량과 탄약에 대해서까지 생각하셨다.

퇴각인가, 방어인가, 반공격인가. 이런 정황에서 불피코 제기되는 문제를 띄워놓고 결심을 되굴려보셨으며 이 불의의 사변앞에서 취할 지휘관들과 병사들, 후방인민들의 모습도 그려보셨다.

(지금 세계는?…)

여기에 생각이 멎자 김일성동지께서는 마음이 더욱 무거워지셨다. 2차대전의 첫시기 독일군의 광포한 공격에 여지없이 무너져 버린 나라들의 실례가 상기되였다.

《아니다.》

그이께서는 입속말로 나직이 뇌이시였다.

내각청사에 이르시였을 때는 많은 방들에 불이 켜져있었다. 내각 비상회의소집으로 호출된 부수상들과 상들이 나온것이였다.

최용건보위상이 현관정문앞에 서있었다. 현관등의 불빛에 그의 모습은 청동조각처럼 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땀기가 짙은 보위상의 손을 꼭 잡아쥐시고 눈여겨 그의 얼굴을 보셨다. 군모를 깊이 눌러쓴탓인지 채양그림자가 진 최용건의 얼굴은 별로 어두워보였다.

《변화가 없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신의 마음을 짓누르는 번거로운 상념을 털어버리며 크고 우렁우렁한 소리로 물으셨다. 최용건의 입술이 알릴듯말듯 떨었다.

《전면침공입니다. 성명쯤에는 아랑곳 않습니다.》

뒤따르던 차에서 내린 김책이 그 말에 새삼스럽게 팔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올라갑시다.》

김일성동지께서 먼저 걸음을 떼시였다.

집무실은 퍼그나 달라보였다. 대형작전지도가 벽 한면에 새로 덮였고 앞상에는 부호자와 확대경, 각이한 색갈의 색연필들이 놓여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방안을 한번 둘러보시고 벽에 걸린 지도앞에 잠시 서계시다가 집무탁에 다가가시였다.

탁상일력은 여전히 6. 24일, 토요일을 가리키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백두산림철개통식거행》이라고 엊저녁에 친히 써넣으셨던 글발을 보시다가 그 일력장을 번져놓으시였다. 김책의 시선이 지궂게 쏠려오는것을 피하시며 그이께서는 최용건이 펼쳐놓은 지도앞에 다가가셨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전선정황이 회의도중 경비국과 보위성작전직일관실을 통해 료해하셨던것보다 엄청나게 변하였음을 알아보시였다. 최용건이 흥분을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정황을 보고했다.

《적은 서부로는 태탄과 벽성, 연안-평천, 개성-금천, 장단-구화리 방향에서, 중부로는 동두천-련천, 포천-김화, 동부로는 춘천-화천, 어론리-양구, 소치-양양, 서림리-양양, 북분리-양양의 일곱째 방향에서 밀려들고있습니다. 전반전선에서의 이러한 침공은 주타격방향을 가늠할수 없게 하고있습니다. 명백한것은 전면전쟁이라는것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륙각으로 된 색연필을 쥐시고 적의 공격화살표마다에 짧은 선을 그으시다가 고개를 드셨다.

밖은 여전히 어두웠고 최용건이 말을 끊음으로써 생겨난 정적속에 시계의 초침소리만 바쁘게 울렸다. 시간이 없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시계의 초침소리는 이런 속삭임처럼 들리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어진 정황에서 인간의 자유란 극히 제한되여있음을 거의 애달픔 가까운 기분속에 체험하셨다. 이젠 어찌할수 없다는 랭철한 판단속에 일단 부딪쳤으니 뚫고나가야 한다는 그이의 고유한 의지가 장벽처럼 일떠섰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서둘러지는 마음과 달리 행동을 늦추셨다. 그이께서는 천천히 벽시계에 시선을 주시였다가 총참모부와 직결된 전화기를 드시였다. 솨- 하는 전류소리를 가늠하시며 (혹시?) 하는 기대감에 심장의 박동을 세는듯계시다가 말씀을 떼시였다.

《강건참모장을 바꾸시오.》

하자 낮으나 절도있는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강건 받습니다.》

《어떻소?》

《여전합니다. 방금 들어온 보고에 의하면 해주쪽으로 적들은 시내입구에까지 들어섰습니다.》

챙챙한 목소리가 련발사격하듯 튕겨나왔다.

《알겠소. 동문 즉시 나에게 오시오.》

《장군님, 더 기다릴순 없습니다.》

김책이 메마른 소리로 조용히 말씀드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책을 얼핏 보시고 상우의 지도에 시선을 주셨다. 적의 공격화살표들을 묵묵히 쏘아보시던 그이께서는 색연필을 틀어쥐고 무의식적인듯 서울에 동그라미를 치시였다. 다음 그이의 손길이 재빨리 움직이셨다. 적의 모든 전선들에 붉은 화살표가 쫙쫙 박혀들어 그 예각이 서울계선으로 뻗어나갔다. 동해안의 강릉쪽에 화살표를 그으실 때는 연필심이 다 무드러졌다. 그이께서는 다른 연필을 바꿔쥐셨으나 더 그리지 않고 한손을 허리에 얹으신채 지도의 화살표들을 바라보셨다. 다급한 발걸음소리에 그이께서는 고개를 돌리시였다. 문기척과 거의 동시에 강건이 들어섰다. 해쓱한 얼굴에 두눈만이 황황히 탔다. 계단을 달려온탓인지 숨을 가삐 쉬였다. 김일성동지의 미간에 한줄기 주름이 엉켰다가 사라졌다.

《기적을 기다렸는데 기적이란 있을수 없지.》

그이께서는 혼자 말씀하듯하시고나서 세사람을 일별하시였다. 다음 근엄한 안색으로 돌아가셨다.

《이이상 참을수는 없습니다. 전쟁입니다.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해야 합니다. 어리석게도 놈들은 우리 인민이 어제날의 조선사람이 아니라는것을 모르고 덤벼들고있습니다.

어디 그 강도의 론법이 이 땅에서 통하는가 봅시다.》

순간 그이의 눈에는 섬광같은것이 번쩍였다.

《이 즉시 우리는 전국에 전쟁상태를 선포하며 모든 경비대들과 인민군부대들은 즉시적이며 동시적인 반공격작전으로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반공격?!》

누구의 입에서인지 이 말이 되풀이되여 울려나왔다. 놀라움과 의문과 초긴장이 어린 눈길들이 그이께 쏠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신심에 찬 단호한 어조로 말씀을 계속하셨다.

《그렇습니다. 반공격입니다. 나의 결심은 이렇습니다. 여기 금천과 구화리, 련천과 철원, 화천과 양구 일대에 강력한 집단을 조성하여 적의 공격을 좌절시킨후 전전선에서 반공격으로 넘어가자는것입니다. 우리의 주타격은 여기 의정부-서울-수원으로 지향하여 괴뢰군의 기본집단을 이 서울계선에서 포위소멸할것입니다. 계속하여 우리는 적의 전략적종심으로 빨리 진출하여 서울을 비롯한 주요거점들을 장악하고 나아가서 남조선전역을 해방하여야 합니다.》

책상모서리를 꽉 틀어잡은채 지도를 내려다보고있던 최용건이 고개를 들었다. 뭔가 말을 하려는듯 입술을 움직였으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최용건은 다시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붉고 푸른 부호와 화살표들이 보라색으로 엉켜도는 속에서 남으로 뻗은 세개의 공격화살표가 확대되여 안겨왔다.

김일성동지의 음성이 거센 진폭을 가지고 울렸다.

《물론 이 작전은 기성전쟁의 경험과 리론으로 볼 때는 모험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승리의 필연성이 있습니다. 지금 적들은 히틀러의 전격전식으로 마치 태풍이나 해일같은 기세로 덤벼듭니다. 그러나 이것은 쟁개비 끓듯하는 광란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과감히 반격하여 적의 예기를 무너뜨리면 강제로 끌려나온 괴뢰군은 그 순간부터 오합지졸로 될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할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다시는 옛날처럼 살지 않으려는 우리 인민의 각오와 결심, 념원과 지향은 그 어떤 적들의 공격도 짓부셔버리고야말것입니다.

나는 동무들에게 바로 우리 인민의 이러한 지향과 감정에 따라 반공격으로 나가야 한다는것을 다시금 강조합니다.》

최용건은 크나큰 감격속에 숨이 막혀들었다. 작전진행의 가능성과 방도문제같은것은 뒤전에 밀려들었다. 온 우주를 통털어쥐고 흔들듯 한 그이의 기세찬 담력과 웅대한 배포, 철석같은 신념에 부지중 심장이 세차게 뛰며 말할수 없는 용기가 치달아올랐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 길밖에 없다는것입니다. 조만간에 이 전쟁의 장본인 미국놈들이 직접 덤벼들수 있습니다. 그 경우 이 땅에서 우리 인민들은 더욱 많은 희생을 강요당할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놈들이 조국강토에 발을 붙이기 전에 적의 괴뢰군 집체를 소멸하고 승리를 달성해야 합니다. 이 길만이 민족의 재난을 덜고 우리 인민이 피를 흘리는 비극의 시간을 단축하는 길로 될것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격한 호흡을 묵새기시려는듯 잠시 말씀을 끊으셨다. 비장처절한 안색을 띠셨던 그이의 얼굴에 따뜻한 정이 굽이치는 미소가 떠오르셨다.

《동무들! 우리는 젊은시절부터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해방을 위해 싸웠습니다. 그때처럼 우리앞에는 또다시 간고한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우리는 그전날 그랬던것처럼 억천만번 죽더라도 원쑤를 쳐이깁시다.》

최용건은 눈물을 머금었다. 민족앞에 떨어진 비극을 마음속깊이 애통해하시며 억세인 의지로 그 모든 괴로움과 슬픔을 딛고 일어서 승리의 지평선을 그어주시는 그이의 혜안과 담력앞에 다시금 경탄을 금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한결같이 전쟁의 운명은 이 시각에 결정되였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몇분 되나마나한 시간에 내리신 결심은 오직그이만이 내리실수 있으며 또 이러한 결심은 김일성동지께서 수십여성상의 혁명전쟁경험의 총화이란것도 잘 알고있었다.

잠시후 최용건은 전방지휘소가 설치될 철원으로 떠나고 강건은 김일성동지께서 찍어주신 타격방향에 따라 매 부대장들에게 임무를 하달하였다. 반공격명령이 내려 한시간 전후하여 인민군부대들은 점령당하였던 전체 지역을 탈환하고 38선이남으로 진격하였다.

최현려단을 비롯한 38경비대들의 희생적인 전투로 중요지탱점들과 교두보들이 견지된것은 반공격속도를 높이는데서 주요한 작용을 하였다. 경비려단과 합류된 인민군부대들이 개성과 옹진쪽으로 들어갈 때 주타격부대들인 53보사, 54보사는 38선을 넘어 포천, 동두천쪽으로 진군하였고 52사와 62사, 55사도 38선이남으로 적을 구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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