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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총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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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12-01 20:34 조회6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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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향도》

장 편 소 설 총대


박 윤


( 제 15 회 )

제 3 장

4

사랑이 곧 기쁨과 아름다움, 행복감으로 가득찬 놀랍고도 특유한 감정이라고 줄곧 느껴왔던 최단아에게 있어서 이즈음 별안간 불쑥불쑥 잠기게 되는 서러움과 외로움, 집요한 공상은 뜻밖의것이였다.

처음에는 그것을 큰 마음의 짐이 없이 감수하였다. 때로는 그것을 번뇌가 아니라 상처를 부드럽게 감싸는 붕대처럼 느껴보려고도 하였다.

애수ㅡ 그것은 사랑이 봄날에 입는 옷이였고 순진한 처녀가 쉽게 피신할수 있는 안식처와도 같은것이였다.

이제는 출장기일도 끝나고 볕에 타고 바람에 거밋해진 적동색얼굴로 자기앞에 나타나리라 생각했던 박신철이 봄이 짙어가도록 얼굴을 내밀지 않자 최단아는 처음엔 걱정하였고 그 다음엔 새침해졌고 나중에는 일종의 변덕에 가까운 조급증에 사로잡혔다.

어떤 순간에는 달포가 넘도록 편지 한장, 전화 한통없는 그의 무관심과 무례함을 두고 억울함과 격분을 느끼기도 했으나 차츰 그 감정도 시간이 감에 따라 그 일면적이고도 격렬한 론리를 잃어버리고 공포에 가까운 의혹이 지꿎게 머리를 쳐드는것이였다.

어느날 밤 은연중 기다리던 아버지가 돌아왔다. 아버지가 돌아왔다는것은 그가 함께 왔거나 인츰 도착한다는것을 의미한다.

그날 최단아는 어머니와 함께 때없이 신경이 곤두서서 텔레비죤앞에 마지막《래일의 순서》가 나올 때까지 끈질기게 마주 앉아있다가 제방으로 돌아왔었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으나 정신이 말똥말똥한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최단아는 눈을 뜨고 모로 돌아누운채 창문을 바라보았다. 얇은 창가림을 뚫고 푸른 달빛이 비쳐들고있다.

최단아는 소녀시절부터 밝고 명랑한 성격이였다. 꽃을 안아도 노을을 받아도 달빛을 봐도 뜻모를 웃음을 터치며 즐거운 공상과 랑만에 젖어 가슴이 부풀군 했었다. 고요한 저녁 푸른 비단처럼 비쳐내리는 저런 명상적인 달빛을 맞으면 영문모르게 활기에 넘쳐 온몸을 짜릿하게 하는 환희에 잠기던 시절도 바로 얼마전까지는 존재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왜 이리도 마음이 산란할가? 아름다운 저 달빛이 어째서 쓸쓸하게 느껴질가? 마음은 실컷 울고싶도록 가슴속에 류다른 충동이 북받쳐오른다.

최단아는 눈이 더욱 초롱초롱해지는게 이 밤을 뜬눈으로 새울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전실쪽에서 어머니의 조심스러운 움직임소리가 났다. 신경이 예민해진 딸의 잠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세심한 어머니의 왼심이 그대로 가슴을 찌른다. 나직하나 반가움이 밴 어머니의 가냘픈 탄성과 덤덤하고 석쉼한 남자의 목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온다.

아버지였다. 최단아는 자리를 차고 일어나앉았다. 아버지의 도착은 그 녀자의 마음속에 한순간 명절날을 맞은것같은 짜릿한 기쁨을 안겨주었다. 그 녀자의 눈이 달빛에 별처럼 빛나고 잠옷깃을 다듬는 손길에 가벼운 률동이 일었다. 소리없는 웃음에 입귀가 열리고 연한 주근깨가 불시에 사라져버린다.

《단아는 자오?》

무심히 던지는듯한 아버지의 음성이 최단아의 눈길을 불쑥 굳어지게 만들었다. 그 목소리는 어쩐지 침통한듯도 하고 무엇엔가 짓눌려있는것 같기도 하다. 평소의 아버지답지 않은 미묘한 음조의 변화가 최단아의 마음의 금선을 다쳤다. 부지중 최단아는 두손을 모아잡은채 무의식적으로 어머니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니, 어머니의 대답이 아니라 아버지의 다음 음성을 기다렸다.

《애가 요즘 신경이 예민해져서… 겨우 잠이 들었을거예요.》

어머니의 목소리는 어쩐지 풀이 죽어있었다.

다른때 같으면 아버지는 《왜?》 하며 너그러움과 걱정이 섞인 미소를 지은채 방문을 열것이였으나 두사람의 발소리는 안방쪽으로 멀어져가고있었다.

또 전같으면 이런때 최단아는 총알처럼 튕겨나 방문을 열어제끼고 깔깔 웃으며 아버지의 품에 뛰여들었을것이다.

하지만 침대우에 세운 무릎을 모아잡고 오도카니 앉아 일어설수 없었다.

(아버지가… 아버지가 왜 저러실가?… 무슨 일이 있었을가?… 혹시 신철동무에게 무슨 일이라도?…)

최단아는 가슴이 섬찍해지는것이 이상했다.

녀자의 예감이란 찬눈처럼 랭정한 반면에 때로 어김없이 들어맞기도 하는 법이다.

최단아는 두근두근하는 봉긋한 가슴을 흰손으로 꼭 누른채 마음을 진정하지 못했다.

그 순간 발자국소리가 나직이 들렸다.

최단아는 저도모르게 황급히 자리에 누워버렸다.

눈을 감았으나 경련이라도 인듯 속눈섭이 떨렸다. 팔을 들어 두눈을 가리고 죽은듯이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방문이 열리고 소리를 죽인 무거운 발걸음과 나직한 숨소리가 곁으로 다가왔다.

아버지는 딸의 침대가까이에 와서 멈춰서버렸다.

분명 군복을 벗고 실내복차림을 하였으련만 아버지에게서는 상긋한 대지의 훈향과 휘발유냄새같은것이 가볍게 풍겨왔다.

아버지는 조용히 딸을 내려다보고있었다. 최단아는 눈을 뜰수도 얼굴을 돌릴수도 없었다. 어떤 류다른 속박감이 그로하여금 발랄하게 웃으며 뛰쳐일어나 아버지의 억센 가슴을 종주먹으로 두드리고싶은 어쩔수 없는 충동을 제어하고있었다. 눈을 감고있으나 어떤 보이지 않는 야릇한 중압감이 아버지로부터 미묘하게 풍겨오고있었던것이다.

아버지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있었다. 최단아는 얼굴에 비스듬히 올려놓은 팔사이로 살풋이 눈을 뜨고싶었다. 얽혀있던 긴 속눈섭이 조금 움직이자 별안간 눈앞이 훤해진다. 달빛때문이 아니라 전실의 불빛이 방에 흘러든것이다.

아버지의 가느다란 한숨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거의 감촉하기 어려운 미세한것이여서 최단아는 들었다기보다 느꼈다.

별안간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가 귀를 멍하게 만든다. 최단아는 살며시 입술을 깨물었다.

평시의 아버지에게서는 전혀 볼수도 느낄수도 없었던 측은한 모습이였다.

최단아는 용기를 내여 숨을 죽인채 살며시 가늘게 눈을 떴다.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분명 자기를 내려다보는 아버지와 눈길이 마주치리라 생각했다. 아버지는… 딸을 내려다보고있지 않았다. 그의 눈길은 딸에게서 벗어나 벽의 한곳에 머물러있었다.

아니, 그것은 어느한 물체를 응시하는 눈길이 아니라 초점을 잡지 않은 망연한것이였다.

아버지의 얼굴은 어쩐지 초췌해보였다. 볕에 탄 적동색얼굴의 볼이 푹 꺼지고 수염턱이 꺼칠하다.

이윽고 최남호는 몸을 흠칠하더니 무의식적인 동작으로 허리를 굽혀 딸의 모포를 여며주고 천천히 돌아섰다.

최단아는 팔을 내리고 멀어지는 아버지의 잔등을 바라보았다. 별안간 눈물이 샘처럼 솟아올라 아버지의 등이 부잇하게 안겨든다.

그 어떤 이름할수 없는 동정심과 뼈아픈 실망감이 그 녀자의 체내에 가득차오르는것이였다.

하면서도 최단아는 그것이, 아버지의 고뇌가 결코 박신철때문이 아니라는것, 보다 엄청나고 상서롭지 못한 일이 아버지의 신상에 일어났다는것을 예리한 녀자다운 촉감과 딸자식으로서의 예감으로 느끼게 되는것이였다.

비스듬히 열려진 문을 통해 전실의 불빛이 그리고 두사람의 짓눌린 목소리가 간간히 흘러들어왔다. 최단아는 온몸이 귀가 되여버렸다.

아버지: …무슨 소릴 하는…

어머니: 여보, 당신에게… 일이…

아버지: 일은 무슨… 걱정할것 없소.

어머니: 여보, 듣자니… 당신 현지출장 나가 박신철이와의 사이에 일이 있었다던지…

아버지: 무슨 당치 않은 소리요?

   그리고 언제부터 당신이 남편의 사업문제에까지… 끼여들게 되였소?

    …

어머니: 여보, 리해하세요. 미안해요.

    저도 안타까우니… 당신 일이…

아버지: 됐소. 단아가 듣겠소….

    …

최단아는 온몸의 탕개가 풀어져 침대우에 늘어지고말았다. 심장은 가슴이 아니라 머리에서 뛰는것같다. 온통 혼탕된 마음의 바다우로 날카로운 번개불같은 섬광이 휙휙 지나간다. 아니 그것은 돌연히 놀란 가슴을 아프게 허비며 찢어내는 비수같은것이였다.

최단아는 그 가슴을 움켜쥐였다.

(그러니 아버지의 고통은… 박신철에게서, 그처럼 믿고 사랑하는 그이에게서 온것이란 말인가!… 그와 함께라면 언젠가 어머니가 교편을 잡고 서있던 먼 전선마을학교에도 서슴없이 달려갈 결심을 다잡는 내 마음에 그가?…)

최단아는 순간 소스라쳐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목대에서 소리가 나도록 세차게 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아니야! 그럴수 없어, 절대로 그럴수 없어!… 하지만…)

하지만 어머니의 목소리는 불안과 실망에 차있었고 아버지의 고뇌는 지금 자기가 감수하고있는 아픔처럼 현실적인것이였다. 최단아는 전혀 다른 리유로 온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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