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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총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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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11-24 22:03 조회6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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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향도》

장 편 소 설 총대


박 윤


( 제 9 회 )

제 2 장

4

출입문이 열리는지 찬 기운이 확 밀려들었다.

최남호는 가까스로 자기를 억제하며 굳어진 얼굴을 돌렸다.

얼굴이 퍼렇게 언 박신철소좌가 한철준대대장을 비롯한 구분대장들의 뒤를 따라 방에 들어섰다.

그는 어제부터 한철준소속대대쪽에 나가있었다. 사람들의 눈길이 일제히 그에게로 쏠렸다.

《부국장동지, 방금 김한경부장과 전화련락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연유차들이 간고한 행군끝에 지금 마전령너머에 몰켜있답니다. 〈노을동굴〉확장공사때문에 며칠전부터 굴을 통과할수가 없다는겁니다.》

갑자기 더운 방에 들어서서인지 박신철의 이마에서는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방이 만족할만큼 훈훈한것은 아니다. 사실 이 겨울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그리 덥게 지내지 못했다. 오히려 빼곡이 들어앉은 사람들의 열기로 후더워졌는지도 모른다.

최남호부국장은 며칠새 각 구분대들을 뛰여다니느라 볼이 푹 패인 박신철을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그래 언제면 통과할수 있다오?》

최남호의 목소리는 퍽 부드럽고 침착해졌다.

《공사를 맡은 부대지휘관들은 빨라서 이틀은 있어야 작업구간에 통로가 생길수 있답니다.》

《그건 확정된 통보요?》

《그렇습니다. 제가 다시 공사지휘부에 문의하니 같은 대답이였습니다.》

《이틀이라…》

최남호는 자리에서 불쑥 몸을 일으켰다. 그는 옆에 앉은 강무전을 내려다보았다. 대좌는 머리를 짓수그리고있었다.

최남호는 창문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내짚었다. 무거운 침묵이 깃든 방안에 그의 발자국소리만이 유표하게 들린다.

그는 착잡한 눈길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침침한 하늘밑으로 골짜기를 따라 바람이 또다시 태질을 한다. 눈가루와 락엽이 한데 몽켜 회오리치다가는 변전소가 있는 후미진 벼랑턱에 부딪쳐 산산이 흩어져내린다.

(내가 왜 이리 마음이 약해지는가.

인민군대의 싸움준비는 훈련을 떠나서 생각할수 없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주신 훈련과업은 단 한순간도 뒤로 미룰수 없다. 오늘 흘리지 않은 땀을 래일은 피로 보상하게 될것이다.

이 진리를 명심하지 못한다면 넌 혁명군대지휘성원의 자격이 없다. 그렇다, 다른 길은 없다!…)

최남호는 팔짱을 낀채 까칠까칠해진 턱을 쓰다듬다가 결심이 서자 강무전쪽으로 돌아섰다.

《부대장동무, 이젠 방도가 한길 남았소!》

최남호의 무뚝뚝한 어조에 강무전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의 관골이 두드러진 철빛얼굴에 한가닥의 기대가 강하게 실렸다.

《아무래도 후방물자수송을 위한 예비기름을 먼저 돌려야겠소.》

《예?! 예비기름을?…》

강무전은 뜻밖의 제의에 충격을 받은듯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섰다.

최남호는 오만상을 찌프렸다.

《너무 놀랄건 없소. 이틀후면 제대로 보충될테니까. 지금 정황에서 다른 방도가 있는가. 명백한것은 래일부터 부대가 훈련에 진입해야 한다는거요.》

최남호는 자기가 무엇인가를 강무전에게 애써 설복하려든다는것을 깨닫자 금시 마음의 탕개가 풀리는것을 느꼈다.

말이 길어진다는것은 자기 결심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때문일것이다. 그는 컴컴하게 굳어진 얼굴로 강무전을 바라보았다.

강무전은 복잡한 표정으로 멍하니 서있었다.

《하지만… 이 문젠… 강습간 리만순정치위원동무가 오늘 래일 올것 같은데, 이거 야단났군. 부국장동지.》

어쩐지 대좌의 목소리에는 풀기가 없었다.

최남호의 입가에 쓰거운 미소가 지나갔다.

《여보, 뭘 꼴기없이 그러는거요. 좋소. 이 문제도 내가 책임지겠소. 총참모부에 올라간 동무네 사령관동지가 내려오면 그에게도 내가 보고하겠으니 걱정할건 없소. 이틀후에 기름이 도착하는만큼 먼저 훈련용으로 좀 돌려쓰기요.》

강무전의 너부죽한 얼굴의 근육이 비로소 풀리는듯 싶었다. 그는 한결 부드러워진 눈길로 상급을 바라보았다.

《사실 저도 병사들을 생각하면… 됐습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가지가 풀리는셈인데… 할수 없지요. 제 털 뽑아 제 구멍에 박긴데… 사실 시간이래야 이틀이라니까…》

강무전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군거리는 구분대장들을 넌지시 둘러보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최남호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부국장동지.》

박신철의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최남호는 온화해진 눈길을 들었다.

《왜 그러오? 참모동무.》

《…》

박신철은 몹시 주저하며 옆에 서있는 한철준을 얼핏 쳐다보더니 차렷자세를 취했다.

《갑자르지 말고 말해보오.》

《예, 저의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예비기름을 건드리는건… 심중한 문제라고 봅니다. 병사들의 생활문제를 풀기위해서 특별히 내려보낸 기름인데…》

《참모동무, 뭘 그리 심각하게 문제를 세우나. 이틀후엔 도착한다고 동무도 말하지 않았는가!》

강무전은 얼굴을 찌프린채 손을 내저었다.

박신철은 정색한 눈길로 대좌를 일별하였다.

《제 생각엔… 이틀이 아니라 한시간, 아니 한순간도 허용할수 없다는겁니다. 예비기름은 왜 필요합니까? 전…》

《그렇다면… 신철동무 의견을 말해보오. 조성된 정황은 동무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지 않소. 만약 현실적인 방안이 있다면 부대장동무말대로 왜 우리가 제 털을 뽑겠는가.》

최남호는 저으기 침착한 어조로 타이르듯 말했다. 파악이 없는 많은 군관들앞에서 부하가 자기의 결심에 반기를 든셈이였으나 어쩐지 고깝거나 난처한감이 들지 않는것이 이상했다.

박신철은 눈길을 번쩍 들었다.

《한철준대대장동무와도 이리로 오며 토론이 있었는데… 전진보장대를 파견해서 마전령을 넘어 연유차들을 끌어오자는것입니다.》

그러자 강무전이 펄쩍 뛰며 몸을 들썩들썩했다.

《여보, 정신 있소? 마전령을 알기나 하고 하는 말이요? 장갑차도 넘기 힘든 험산준령이요! 기름은커녕 차를 다 구워먹자구 그러오?》

《가만, 신철동무, 만약 령을 돌파할수 있다 해도 래일 아침까지 시간을 보장할수 있겠는가?》

최남호는 강무전의 어깨를 누른채 그냥 부드러운 눈길로 소좌를 건너다보았다.

마치 지원포라도 쏘듯 한철준이 허우대가 큰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우리 대대에 임무를 주면 수행하겠습니다. 우린 저 마전령을 몇번이나 돌파한 경험이 있습니다.》

《구체적인 행군로정과 정황, 시간을 따져봤소?》

《현지에 가서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병사들은 비록 하루이틀 맨 통강냉이를 삶아먹어도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주신 훈련명령을 관철하는 길이라면 해낼것입니다. 임무를 주십시오!》

강무전이 또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도 흥분이 가라앉은듯 얼굴표정이 정상으로 돌아갔다.

《대대장동무, 동문 분대장이 아니라 한개 구분대장이요. 여기서 마전령까지 거리가 얼만가? 그건 둘째치고 1급도로에서도 차들이 눈길에 꽝꽝 전복되는판에 아무런 대책도 없이 어떻게 령을 넘는단 말인가? 괜히 우둘우둘하면서…》

최남호는 강무전의 말을 들으며 사색에 잠겨 두 군관을 살펴보았다.

그는 깊은 고뇌가 깃든 큰 숨을 내쉬였다.

《그렇소. 동무들의 정신은 찬양할만 해. 하지만… 동무들은 하나를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들이요. 바꿔말하면 심장은 뜨거운데 차야 할 머리까지 뜨겁단 말이요. 왜냐하면 훈련도 시간이 모든걸 결정하기때문이요.》

최남호는 어깨에 큰 짐을 걸머진 사람처럼 무거운 몸동작으로 강무전을 향해 돌아섰다.

《부대장동무, 시간이 없는만큼 빨리 조직사업을 해주오. 훈련은 래일아침 무조건 시작해야 하오. 그리고 박신철동무는 이 길로 김한경부장을 찾아가시오. 랑만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이틀후엔 무조건 연유차들이 도착하도록 협조해야겠소.》

《부국장동지!》

박신철은 거의 울것같은 표정이 되였다.

《왜?》 최남호는 자신없이 손을 획 내저었다. 사실은 자기로서도 알수 없는 무의미한 군동작이였다.

《동문 행동은 민첩하지만 생각은 굼뜨구만. 왜 우리가 훈련도 전투라고 하는가? 왜 실전의 분위기속에서 훈련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뭐가 다른가 말이요? 내 말뜻을 알겠소?》

최남호는 자기가 때에 맞지 않게 말이 많아지고있다는것을 판단하자 또다시 오만상을 찌프렸다.

박신철은 다소 랭정해져서 그의 말이 론리적으로는 옳게 여겨지지만 심장에는 와닿지 못한다는듯 고집스럽게 눈을 내리깔고있었다.

《?!…》

《동문 정말… 김한경부장보다 더 완고한 사람이요!》

이튿날 아침 장갑차와 땅크들은 예비기름으로 연유탕크들을 채우고 집결구역을 벗어나 일제히 훈련에 진입하였다.

최남호는 야전지휘차곁에 서서 흐뭇한 마음으로 해빛에 진록색으로 번쩍이는 장갑타격집단의 름름한 모습을 지켜보고있었다.…

한낮이 지났을 때 급히 달려온 군용차의 문이 열리며 지난밤 강습에서 돌아온 부대정치위원 리만순의 너부죽한 얼굴이 나타났다.

최남호는 그가 아침에 만난 자리에서 눈길이 마주치기를 피하던 모습이 떠올라 어쩐지 면구스러웠다.

정치일군치고는 어딘지모르게 수더분하고 꼴기가 없어보이는 사람이다. 하지만 깊은 파악이 있는 전우이다.

《부국장동지, 유진성대장동지의 전화입니다.》

최남호는 급히 다가가 송수화기를 넘겨받았다.

《부국장동무요?》

《그렇습니다, 대장동지.》

《탄광의 동발목과 부대의 후방용예비기름을 가로챘다면서?…》

코소리가 다분히 섞인 유진성의 어조에는 어쩐지 비양조가 짙게 흐른다.

최남호는 곁에 묵묵히 서있는 리만순을 돌아보았다. 리만순은 황급히 눈길을 피해버린다.

《그래서 지금 훈련을 진행하고있습니다.》

《됐소. 긴말을 피하기요. 문제가 있소! 동무의 머리통에 문제가 있단말이요!》

《예?!…》

최남호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것 같았다.

《군복과 함께 늙어가는 동무가 감히 그런 용단을 내리다니.… 그게 얼마나 엄중한 일인지 모른단말이요? 군사재판감이란 말이요!… 장군님께서 보고받으시면 얼마나 가슴아파하시겠소. 감히 병사들의 리익을 침해하고 군민관계에 금이 가게 하다니… 탄광에서 좋지 않은 반영이 제기됐소! 그래도 부하들은 잘 키웠소.

이제 곧 연유차들이 훈련현지에 도착할거요. 그들은 동무가 불가능하다고 감히 상상조차 못한 일을 현실로 만들었소. 김한경대좌라던가? 동무네한테 그런 웅변가가 있었소? 그 동무들이 굴간확장공사에 동원된 군인동무들에게 호소해서 새벽에 통로를 열었단말이요.》

《?!…》

최남호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그저 으스러지게 송수화기를 틀어쥐고있을뿐이였다.

가슴이, 아니 심장이 지그시 아파났다. 그는 그저 두 눈을 감고 온몸이 청각이 되여 유진성의 말소리를 기다리고있었다.

《동무네는 정말… 하긴 나도 같은 놈이요. 우리가 무슨 의리가 있는 전사들인가. 여보 남호동무, 동무네가 넘을수 없다고 애초부터 감히 엄두를 못냈던 그 험준한 마전령을 우리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사흘전에 넘으셨단말이요.

숫눈길을 헤치시며 어깨로 차를 미시며 령을 넘으시여 최전선의 병사들을 찾아가셨소.

그런데 동무는 그렇게 쉬운 길만 찾아서 택한단말이요?

에잇, 우리가 무슨 전사들이겠소! 최고사령관동지의 뜻을 심장으로, 의지로 받들어야 할 우리가 아닌가!…》

《?!…》

메마른 겨울의 이깔숲을 물어뜯으며 사나운 바람이 태질하듯 불어쳤다. 나무숲이 불안하게 수선거리고 눈가루가 창공을 뿌옇게 덮어버린다.

최남호는 송수화기를 든채 못박힌듯 그자리에 굳어져버렸다.

어쩐지 활기가 오른 리만순이 선두차의 강무전에게로 젊은 사람처럼 기세있게 뛰여간다. 최남호는 상념속에 정치위원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였다.

사람이 자기를 모르면 약자가 된다고 했다. 의리와 량심은 참된 인간의 본성이라고 한다. 자기자신과의 전쟁을 선포한 사람은 자기를 아는 사람, 강한 사람이라고 일컫는다.…

최남호는 자기자신을 잊은채 광풍이 태동하는 이깔숲가에 오래도록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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