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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총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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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11-20 01:26 조회6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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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향도》

장 편 소 설 총대


박 윤

( 제 5 회 )


제 1 장

5

봄이 오면 이 험준한 령에도 진달래가 붉게 타고 철쭉꽃이 만발할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겨울이다. 대지도 숲도 하늘도 엄혹한 추위에 얼어붙어 정지상태에 빠져버렸다.

어떤 사람들은 생활은 험산준령이라고 말한다.

평탄한 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지향과 리상이 높고 생활을 개척해나가려는 완강한 사나이들, 시련과 난관을 극복하는데서 긍지를 찾는 억센 사람들만이 위험을 무릅쓰고 령을 톺아오른다.

이 비파령도 어느한때는 등산객들의 관심속에 있던 험한 령이다. 사실 유진성자신은 병사시절에 간고하게 이 령을 넘은 일이 있다. 그때도 겨울이였고 눈속에 빠져 죽을번 하였으나 끝내 련락임무를 수행했었다.

야전승용차의 전조등불빛은 굽인돌이를 지날 때마다 협곡의 맞은켠을 얼비추군 했다. 그때마다 얼음이 덮인 거대한 벼랑들이 위엄있게 막아섰다. 령기슭이여서 아직은 바람이 세차지 않았다. 하지만 구배가 심하고 얼음이 깔려있어 몹시 미끄러웠다.

야전승용차는 가끔가다 얼음에 지치기도 하고 위태롭게 바퀴가 공회전을 하기도 하였다.

유진성은 바늘방석에 앉은 마음이 되여 줄곧 시창앞과 운전사의 모습을 번갈아바라보군 했다.

다년간의 운전경력을 가지고있는 경험이 풍부한 운전사였으나 벌써부터 얼굴이 땀투성이가 되였다. 그가 조심스럽게 차를 몰다나니 더 위구심이 생기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곁에 앉은 한철준대대장이 들썩들썩하며 몸을 앞으로 내미는걸보니 무엇인가 운전사에게 조언을 주고싶어하는 모양이다.

유진성은 말없이 그의 어깨를 눌러앉혔다.

한철준은 얼굴을 돌려 유진성을 쳐다보았다. 눈이 부리부리한 거무스런 얼굴이 흥분과 불안으로 약간 굳어져보인다.

유진성은 그의 손을 찾아 꽉 틀어쥔채 앞자리에 앉으신 김정일동지께로 시선을 돌렸다.

그이께서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시고 한손으로 손잡이를 잡으신채 명상에 잠기시여 어딘가 먼 산발을 바라보고계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문득 그들의 눈길을 느끼셨는지 몸을 돌리시여 운전사의 어깨를 가볍게 다치시였다.

《차를 좀 세우시오. 우리 운전사동무가 며칠째 먼길을 달리느라고 피곤한것같소. 우리가 너무 이 동무를 혹사했소. 자, 땀을 좀 씻으라구.》

김정일동지께서는 운전사에게 수건을 넘겨주시고 등을 떠미시였다.

《동무는 좀 쉬여야겠소. 내가 차를 좀 몰아봅시다.》

《아닙니다. 전 일없습니다. 그저 길이 가파롭고 미끄러워 조심하느라고…》

운전사는 펄쩍 뛰며 운전대를 꽉 틀어쥐고 놓지 않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미소를 지으며 유진성쪽을 돌아보시였다.

《허허허, 좀 쉬고 또 몰아야지. 그러다 무슨 일을 칠지 모르오. 운전도 하나의 예술이거든. 어떤 의미에서는 차도 정신력으로 간다고 볼수 있소.》

유진성과 한철준까지 만류했으나 김정일동지께서는 끝내 운전석에 앉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야전승용차를 얼마쯤 뒤로 후진시켰다가 갑자기 속도를 높여 앞으로 전진시키시였다. 진록색야전승용차는 강력한 충격에 떠밀리여 구배가 심한 구간을 단숨에 톺아올랐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차의 속도를 높여가지고 그냥 령길을 달리시였다. 검은 숲과 산악들이 휙휙 옆으로 지나가고 바람소리가 비명처럼 점차 높아진다.

유진성은 첫 순간 손에서 땀이 났으나 운전석에 산악처럼 앉으시여 침착하고 태연하게 고속으로 차를 몰아가시는 그이의 모습을 보자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지는것을 느꼈다.

야전승용차는 그이의 손안에 들어가자 마치 생명력을 가진 물체로 변해버린듯 싶었다.

한동안 말없이 차를 몰아가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약간 차속도를 늦추시였다.

점차 바람이 세차지고 눈가루들이 차창에 부딪쳤다.

《어떻습니까, 동무들, 이 험준한 령길이 마치 우리가 가는 혁명의 앞길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문득 김정일동지께서 담담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

《이 가파롭고 구배가 심한 령길, 저 얼음덮인 천길벼랑과 험준한 산악들을 보시오. 그리고 몰아치는 눈보라, 바람은 갈수록 더 사나와지누만. 까딱 방향을 잘못 잡던가 차를 바로 운전못한다면 저 협곡에 굴러떨어질수도 있소.

보시오. 얼마나 험난한 길입니까. 지금 미제를 괴수로 하는 제국주의련합세력은 우리 공화국을 고립압살해보려고 갖은 못된짓을 다하고있소.

군사적위협과 경제봉쇄는 갈수록 더 심해지고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사상문화를 침투시키려고 기회를 노리고있지. 게다가 기형적인 국제자본주의경제의 환경오염으로 엘리뇨현상이 심해져 자연재해까지 우리를 막아서고있단말입니다.

우리는 오늘 익측도 후방도 없이 포악한 제국주의련합세력과 단독으로 맞서 우리 식 사회주의길을 힘겹게 개척해나가고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주체형의 혁명가들이 붉은기를 지키느냐 마느냐를 판가리하는 엄숙한 시각입니다.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엄청난 의지와 완강성, 무한한 희생성과 용기, 혁명적락관주의가 필요합니다.

나는 우리 혁명의 난국을 우리 당의 혁명적무장력인 인민군대를 앞세우고 그들을 기둥으로 하여 끝까지 헤쳐나가려고 합니다.

수령님께서 생존해계실 때는 수령님을 마음의 기둥으로 믿고 일했지만 지금은 인민군대를 믿고 혁명을 하고있습니다.

인민군대는 우리 혁명의 기둥이며 주력군입니다.》

《?!…》

김정일동지의 의미깊은 말씀이 유진성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어주었다.

시대와 현실을 폭넓고 깊이있게 파헤쳐 집대성하시고 혁명의 진로를 일목료연하게 밝혀주시는 그이의 심원한 사색에 이끌려들수록 유진성은 가슴이 훈훈해지고 중대한 사명감과 긍지로 심장이 높뛰는것이였다.

험준한 령길을 넘으면서도 자기들은 눈앞의 가시덤불만 바라보며 가슴을 조이고있는데 그이께서는 얼마나 멀리를 돌아보시고 내다보시는것인가.

그이께서 이어가시는 선군장정의 순간순간을 동행하면서 걸음마다 충격속에 새로운 세계를 받아안고있지만 자기들은 아직도 그 숭고한 사색의 의미를 다 깨닫지 못하는것이였다.

유진성은 환희와 자책감을 동시에 느끼며 마음을 진정하지 못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차안의 엄숙한 분위기를 깨시려는듯 록음기를 틀게 하시였다.

장중하고 열렬하고 웅심깊은 전주음악이 파동치고 뒤따라 뜨거운 선률이 절절함을 안고 울려퍼진다.

가는 길 험난하다 해도

시련의 고비 넘으리

불바람 휘몰아쳐와도

생사를 같이 하리라

장군님께서 사랑하시는 가요《동지애의 노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한동안 음악을 감상하시다가 나직이 말씀하시였다.

《들을수록 이 노래는 정말 훌륭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슴을 칩니다. 간고했지만 승리의 한길만을 걸어온 우리 혁명의 위력의 뿌리가 느껴집니다. 혁명적동지애야말로 우리 혁명의 중핵이거든. 전군이 하나의 동지가 되고 우리 혁명대오를 동지애의 세계로 만들자는것이 나의 리상입니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이 노래를 조선혁명의 주제가라고 생각합니다.》

유진성은 고조되는 음악과 더불어 숭엄한 자감상태에 빠져들었다.

오늘은 자기 일생에서 비상한 날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혁명의 새로운 진리를 받아안은 축복받은 운명적인 날이라는 느낌이 강해졌다.

《최고사령관동지, 말씀을 듣고보니 생각이 깊어집니다. 지금 험산준령을 넘고있는 이 야전승용차는 조선혁명의 사령부가 아닙니까. 그속에서 울리는 우리 혁명의 주제가가 뜻이 깊습니다.》

유진성의 절절한 목소리에 장군님께서는 밝게 웃으시였다.

《하하하, 아주 형상적입니다. 나보다 한수 더 뜹니다. 얼마나 랑만적입니까! 그렇지 않소. 대대장동무!》

《최고사령관동지, 정말 혁명하는 긍지가 커집니다. 우리 병사들은 이 노래와 함께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과 〈지새지 말아다오 평양의 밤아〉를 제일 좋아합니다.》

《그렇습니까, 병사들이 좋아한다니 기쁩니다. 음악을 떠난 생활이란 상상할수 없습니다. 나는 하루가 온통 음악으로 충만되였으면 합니다. 우리 공훈합창단의 군가를 생각해보시오. 얼마나 힘있습니까. 그야말로 우리 시대의 진군가입니다. 나의 첫 사랑은 음악입니다. 사실 우리 혁명은 노래로 시작되고 노래로 승리해왔으며 노래와 함께 주체의 위업을 완성해가고있습니다.》

차안에는 음악소리가 은은한데 차창밖에서는 눈바람소리가 더 세차졌다.

령마루가 가까와올수록 구배가 점점 더 가파로와졌다. 그 심한 구배를 지날 때마다 눈가루를 떠인 칼바람이 차를 허궁들어 길옆의 낭떠러지에 휘뿌릴듯 사납게 불어쳤다.

검회색벼랑끝으로 위태롭게 휘감겨간 한굽이를 돌아서자 눈보라속에 불빛이 보였다. 모닥불인듯 감색불길이 바람에 길게 누웠다가는 일어서고 주위에서는 영차영차하는 기운쓰는 소리가 간간이 들린다.

《저게 웬 불빛이요?》

김정일동지께서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시였다.

《최고사령관동지, 우리 전진보장대동무들입니다.》

한철준중좌가 몸을 일으키며 부르짖었다.

김정일동지께서 차에서 내리시자 목이 성큼한 소대장이 달려와 인사를 드리였다. 그러자 여러명의 병사들이 만세를 부르며 장군님을 에워쌌다. 장군님께서는 친근한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시였다.

《동무들이 구분대의 진격로를 여느라 정말 수고하누만. 그래 어찌된 일이요?》

《최고사령관동지, 눈사태에 또 길이 끊어졌습니다. 우린 벌써 밤새 세차례나 눈을 쳐내고있습니다.》

목이 성큼한 소대장이 언 볼을 놀리며 씩씩한 어조로 말씀드렸다.

《음, 이 비파령이 우리 병사들의 의지와 인내력을 시험하누만. 다들 담차보이오. 가만, 이게 누구요? 최명진동무가 아닌가?》

김정일동지께서는 문득 겨울모자를 내려쓴 중사에게로 시선을 돌리시였다.

《최고사령관동지!…》

최명진은 눈을 빛내며 어줍은 태도를 취했다.

《우린 명진동무가 지금쯤 병영에서 잠든줄 알았는데 어떻게 나타났소?》

《지름길로 해서 방금전에 도착했습니다. 장군님을 만나뵈온 소식을 한시바삐 동무들에게 알리고싶어 달려왔습니다.》

《허허, 정말 황천왕동이 한가지구만. 하긴 시간이 많이 갔지. 좋소. 동무들, 그래 차가 통과할수 있겠소?》

김정일동지의 물으심에 소대장이 한발 앞으로 나섰다.

《최고사령관동지, 비파령에서 마지막구배인 여기가 제일 험하고 가파로운 지점입니다. 눈을 갓 쳐내서 몹시 미끄럽습니다. 위험합니다!》

병사들모두가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이를 우러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병사들을 대견해하는 눈길로 둘러보시였다.

《나의 병사들이 있는데 뭐가 두렵겠소. 자, 우리 함께 진격로를 개척해봅시다.》

야전승용차는 올리막길을 얼마 전진못하고 지쳐내리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야전차에 달라붙었다. 조금씩 지치던 차는 멈춰섰으나 눈가루를 뽀얗게 일구며 바퀴가 공회전을 한다.

《진성동무, 우리도 병사들과 함께 밀어보기요!》

《최고사령관동지, 저희들끼리 하겠습니다.》

유진성은 당황하여 황급히 말씀올렸다.

《됐소, 강을 건느려는 사람이면 발 적실 생각을 해야지.》

《최고사령관동지!…》

《자, 어서 따라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유진성과 함께 야전승용차에 다가가시여 어깨를 들이미시였다.

《자, 동무들! 어디 눈보라가 이기나 우리가 이기나 겨루어보기요! 병사동무들, 내 구령에 맞추오. 하나, 둘, 영차!ㅡ》

병사들이 화답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들과 한덩어리가 되시여 야전승용차를 미시였다.

야전승용차가 움씰움씰 앞으로 전진했다.

유진성은 차를 밀면서 뜨거운것을 삼켰다.

이 차가 지금 무슨 힘으로 가는것인가. 그것이 인력만이겠는가.

위인의 덕행, 위대한 군인정신, 군인들과 한몸이 되시여 혁명의 진격로를 열어가시는 그이의 불같은 사랑과 믿음으로 가는것이다.

《중좌동무, 병사들과 함께 있는 이런 밤은 얼마나 좋은가. 이런 밤은 일생에 남을거요. 내 보기엔 이 지점의 길을 갈지자로 넓히는게 좋겠소. 무한궤도들은 일없겠지만 후방차들도 생각해야지.》

김정일동지께서는 곁에서 땀을 흘리고있는 한철준을 돌아보시였다.

《최고사령관동지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제가 자주 현장에 나와보지 못한게 잘못이였습니다.》

《지휘관은 늘 병사들속에 있어야 하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책감에 얼굴을 못드는 한철준의 어깨를 짚으시였다.

야전승용차가 령마루에 올라서자 병사들이 달라붙어 모닥불을 피웠다. 새벽이 가까와오면서 바람은 잠풍해진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모닥불가에 둘러선 병사들을 바라보시다가 유진성쪽으로 돌아서시였다.

《진성동무, 우리 병사들이 밤새 눈사태와 싸우느라 지치고 출출하겠는데 식사라도 함께 나누고 가기요. 벌써 새날이 다된것 같소.》

유진성이 부관과 함께 야전식사함을 날라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손수 함을 여시고 병사들에게 골고루 줴기밥을 하나씩 나누어주시였다.

병사들은 말없이 포장지를 풀었다. 그것은 오이절임 몇쪼각에 풋고추와 토장이 든 한덩이의 줴기밥이였다. 병사들의 얼굴에 어쩐지 점직해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병사동무들, 수수한 야전식사지만 함께 들기요. 항일투사들은 백두산에서 한홉의 미시가루도 나누어먹었는데 그에 비하면 이건 진수성찬이야!》

김정일동지께서 병사들과 무릎을 마주하시고 줴기밥을 드시는 모습을 보는 유진성의 가슴은 또다시 달아올랐다.

그는 머리를 푹 수그리고 그 꼿꼿한 줴기밥을 삼키였다.

그것이 전선시찰의 먼 길에서 늘 드시는 천하제일명장의 례사로운 야전식사였다.

《가만, 명진동무, 동무네 분대의 김강인이가 누구요?》

김정일동지께서는 문득 병사들을 둘러보시였다.

《최고사령관동지, 김강인동무는 도하장의 입구도로가 걱정된다면서 급히 달려갔습니다.》

최명진의 대답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소 의아해하시였다.

《강인동무는 우리들에게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하는데서 빈틈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된다면서 소대장동지에게 제기하고 서둘러 달려갔답니다.》

《음, 김강인동무가 그렇게 속깊은 동무였단말이지…》

김정일동지께서는 자애깊은 시선을 드시여 멀리 려명이 비껴오는 령아래 도하장부근쪽을 바라보시였다.

깊은 생각에 잠기시여 그쪽을 바라보시던 그이께서 다시 병사들쪽으로 머리를 돌리시였다.

《그런데 동무네 그 김강인동무는 왜 입대해서 오늘까지 어머니에게 단 한장의 편지도 안하고있소?》

김정일동지께서 짐짓 노여우신듯 엄하게 물으시자 병사들은 저마끔 의아해서 마주보았다.

《최고사령관동지, 우리 김강인동무는 꼭꼭 편지를 쓰댔습니다. 제가 물어보니 분명 어머니에게 쓴다고 했습니다.》

소대장이 영문을 모르겠다는듯 고개를 기웃거렸다.

《뭐? 편지를 늘 쓴다? 그래 편지를 쓰면 고향의 어머니가 동무네 강인동무소식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있겠소?》

줴기밥을 손에 든 최명진이 주밋주밋 일어났다.

《김강인동무 비밀은 제가 알고있습니다.》

《그래 명진동무가? 어서 말해보오.》

《우리 강인동무는 어머니에게 쓴 편지들을 차곡차곡 접어 배낭밑에 건사하군 합니다.》

《그건 왜?》

김정일동지께서는 놀라시며 의아하신듯 되물으시였다.

최명진은 버릇처럼 손으로 뒤더수기를 만졌다.

《저… 우리 강인동무는 입대할 때 통일이 되고 영웅이 되기전에는 집에 편지를 안보내기로 결심했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아연해하시며 그를 바라보다가 명쾌한 웃음을 터뜨리시였다.

《허허 참, 그러니 여기 또 한명의 견결한 〈혁명가〉가 있었댔구만. 한철준동무, 이게 다 동무의 그 〈좌경주의〉가 새끼친게 아니요?》

그러자 한철준은 싱글거리며 비위살 좋게 대답을 올렸다.

《최고사령관동지, 다 제 책임입니다. 하지만 싸움과 위훈만을 생각하는 그 정신은 병사답다고 봅니다.》

《허허허, 그 상관에 그 부하라더니…》

《제 김강인동무를 설복해서 집에 편지를 꼭 쓰도록 하겠습니다.》

《음, 이 최고사령관이 명령하더라고 전하오. 고향의 어머니가 마음을 쓰게 해서야 되나. 사실은 말이요. 얼마전에 우리가 자강땅에 갔을 때 그 김강인동무 어머니가 작업반장으로 일하는 공장을 돌아보았댔소. 모든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때 그 공장에서는 풀죽으로 끼니를 에우면서도 공장을 만부하로 꽝꽝 돌리고있었거든. 정말 혁명적군인정신이 차넘치고 자력갱생의 결사의 의지로 일하는 참다운 자강도사람들이였소. 그런데 혁신자인 작업반장의 눈가에 그늘이 비껴있더란 말이요. 알아보니 군대에 나간 아들이 몇해가 지나도록 소식 한장 없다질 않겠소. 내 그래 김강인동무를 만나면 되게 혼내줄 생각이였소. 허허허.》

김정일동지께서는 갑자기 야전복주머니에 손을 넣으시고 무엇인가를 찾다가 도로 꺼내시였다.

그 동작을 살펴보던 최명진이 그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최고사령관동지, 여기 담배가 있습니다.》

《오, 그럼 한대 주오. 내 이미 담배를 끊었지만 오늘은 병사동무들과 한대 피우고싶은 생각이 드누만.》

김정일동지께서는 비닐봉지에 싼 담배를 받아드시였다.

《〈백승〉이구만. 그런데 왜 이렇게 비닐에 싸가지고 다니오?》

《최고사령관동지, 제가 공급되는 담배를 다 모아가지고 비닐에 싸서 간수했다가 나눠줍니다.》

《아니 그건 왜?》

김정일동지께서 이번에는 한철준을 돌아보시였다. 한철준의 거무스레한 얼굴이 굳어져버렸다.

《그냥 둬두면 습기가 차서…》

최명진은 또 뒤더수기에 손을 가져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그이께서는 담배를 그냥 손에 들고 유진성을 돌아보시였다.

《명진동무가 자기 대원들을 생각하는걸 보면 과시 정치일군감이요. 기특하거든!》

김정일동지께서 자리를 이는 순간 최명진이 주밋거리며 다시 한걸음 나섰다.

《왜 그러오? 명진동무.》

《최고사령관동지, 한가지 제기할것이 있습니다.》

《그래 뭐요? 중사동무!》

최명진은 갑자기 눈길을 내리깔고 주저하다가 절절하게 말씀올렸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신으신 신발을 모닥불에 말리게 해주십시오. 얼음과 눈에 다 젖었습니다.》

《?!…》

순간 김정일동지께서는 대답을 못하시고 그 자리에 굳어지시였다.

그이의 젖은 신발!

유진성의 눈앞에는 병사들의 발싸개를 만져보시고 몸소 아궁을 돌아보시던 그이의 모습이 우렷이 떠올랐다. 다음순간 마음은 새처럼 나래가 돋쳐 얼마전 전선시찰길에서 있은 충격적인 사실에로 달려가고있었다.

눈덮인 산발, 혹한과 눈보라가 기승을 부리던 훈련장의 언덕길… 김정일동지께서는 쌍안경을 드신채 병사들의 훈련모습을 지켜보고계시였다. 눈보라와 구름사이로 겨울의 창백한 태양이 언 하늘에서 떨고있었다. 훈련장에 찾아오시여 오랜 시간 혹한속에 서계시는 그이의 건강을 생각하는 병사들이 불돌을 안고 언덕길에 나타났다. 구분대장이 병사들이 가져온 불돌우에 서실것을 말씀올리자 그이께서는 가볍게 미간을 찌프리시였다.

《음, 동무들의 성의는 고맙지만 저길 보오.

우리 병사들이 생눈우에서 윽윽하며 훈련하는데 최고사령관은 불돌우에 있으란 말이요? 자, 난 일없으니 속탈이 있는 저 유진성대장동무에게 주오.》…

유진성은 그날의 격정이 되살아올라 지금도 젖은 신발에서 눈길을 뗄수 없었다.

한동안 말없이 최명진을 바라보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를 다정히 품에 안으시였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동무들의 그 마음을 잊지 않겠소. 하지만 천리길을 가야 할 사람이 언제 신발말릴새가 있나!…》

김정일동지께서는 모닥불가에 서있는 병사들을 둘러보시였다.

그이의 눈가에 따뜻한 미소가 빛발쳤다. 그이께서는 야전복허리에 손을 짚으시고 새벽하늘을 바라보시였다.

《동무들, 정말 좋은 새벽이요. 난 이렇게 병사들과 함께 맞는 새벽이 마음에 들거든.

우리가 이렇게 눈보라속에서 새날을 맞으며 간고분투하는것이 무엇때문인가. 지금 우리의 사회주의조국은 미제를 우두머리로 하는 제국주의반동들의 고립압살책동속에서 준엄한 시련을 헤쳐나가고있소. 놈들은 우리가 추켜든 사회주의붉은기를 내리워보려고 갖은 발악을 다하고있거든.

지금이 가장 엄혹한 겨울이지만 우리 혁명도 고난의 겨울을 이겨내고있소. 이 준엄한 길에서 우리가 물러선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김정일동지께서는 병사들쪽으로 돌아서시였다. 그이의 눈가에는 심원한 사색이 비껴있었다.

《병사동무들, 툭 터놓고 이야기하기요.

지금 우리는 어버이수령님께서 강선의 로동계급을 찾으시였던 전후시기보다 더 험난한 시련속에서 혁명을 하고있소. 동무들도 알고있지만 인민들은 굶주림과 추위속에서 어려움을 겪고있고 공장들이 제대로 돌지 못하오. 미제침략자들은 우리 공화국의 끝장을 보려고 요즘 새로운 전쟁음모를 꾸미면서 우리를 위협하고있소.

그래 동무들, 다시 노예가 되겠는가 아니면 자주적근위병이 되겠는가! 한번 대답해 보오.》

《최고사령관동지! 우리는 사회주의붉은기를 끝까지 지키겠습니다.》

얼굴이 붉게 상기된 소대장이 주먹을 불끈 쥐고 대답올리자 곁에 서있던 최명진도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최고사령관동지, 명령만 내리십시오. 미제침략자들을 이 땅에서 철저히 소멸하겠습니다.》

《음, 아주 좋소! 좋아! 그래서 우리 당은 인민군대를 믿고 이 준엄한 시련의 행군을 이겨내고있는거요. 혁명의 사령부를 결사옹위한 항일의 선렬들처럼 우리 군인들이 사상의 강자. 신념의 강자가 된다면 우리의 사회주의붉은기는 끄떡없소!

우리가 이번에 자강도에 가서도 확신했지만 인민들도 인민군대의 혁명적군인정신을 따라 불사신처럼 일떠섰소. 군대가 강하면 사회주의조선은 굴하지 않소.

군대의 위력은 훈련에서 다져지거든.

인민군대에서는 올해에 첫째도 둘째도 훈련이 기본이요.》

《최고사령관동지! 알았습니다! 장군님만 계시면 우리는 이깁니다!》

병사들의 힘찬 함성이 산정을 뒤흔들었다.

《동무들을 믿고가겠소. 훈련에서 성과를 거두기 바랍니다. 자, 동무들! 또 만납시다!》

병사들의 열광에 찬 환송을 남기며 야전승용차는 비교적 평탄한 령길을 내리기 시작했다. 어찌보면 비파령은 덕지대와 맞붙어있는듯도 싶다.

여기서부터 분지가 시작되고 크지 않은 강이 흐르는것이다.

새날이 밝아오고있었다. 멀리 분지너머 병풍처럼 둘러선 최전연의 산악들이 검보라빛으로 우렷이 드러나고 희미해진 별들이 점차 사라져간다.

대지는 잠에서 깨여나기전의 고요속에 잠겨있고 동쪽하늘은 희끄무레하게 트이고있다.

강반에는 겨울안개가 설피게 감돌고있었다.

야전승용차는 산기슭에서 주춤거리다가 림시로 개척한 도로에 들어섰다.

불어난 늦겨울물이 강기슭으로 넘쳐나 온통 얼음판을 만들어놓았는데 그 사이를 칼로 두부모 베듯 깎아내였다. 유진성은 몸을 솟구어 시창밖을 내다보았다.

거기, 전조등불빛과 새벽빛이 어우러진 도하장입구에 군인들이 보였다. 세명의 군인들이 삽과 곡괭이를 어깨에 메고 서있었다.

온통 얼음버캐와 서리를 뒤집어써서 군복의 형체를 가려보기 힘든 모습들이였다. 얼어서 꽛꽛해진 군복과 너덜너덜한 장갑, 추위에 언 볼, 하지만 다가오는 야전승용차를 바라보는 눈들은 별처럼 반짝인다.

호리호리한 체구에 상기된 얼굴이 동그스름한 중급병사가 왼쪽손에 삽자루를 총대처럼 비껴잡고 오른손으로 정중히 거수경례를 하고있었다.

흥분한 한철준중좌가 몸을 일으키며 부르짖었다.

《저 맨앞에 거수경례를 하고있는 중급병사동무가 김강인입니다.》

야전승용차가 그들의 곁을 가까이 지날 때 김정일동지께서는 손을 드시여 답례를 보내시였다.

순간 최고사령관과 병사의 눈길이 한점에서 부딪쳤다.

《?…》

《!…》

야전승용차가 도하장다리를 벗어났을 때 한철준이 그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최고사령관동지, 김강인동무를 만나시겠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 아무 말씀이 없으시자 유진성은 차를 세우려고 결심했다.

그 순간 그이께서 두사람을 돌아보시였다.

《차를 세우지 마시오. 나는 방금 김강인동무와 하고싶은 이야기를 다 나누었습니다.…

한생을 같이 지낸들 그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수 있겠소!》

《?!…》

야전승용차안에는 숭엄한 고요가 깃들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한동안 동터오는 앞길을 주시하다가 깊은 사색에 잠긴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자강땅의 어머니가 저렇게 훌륭히 성장한 아들의 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기뻐하겠소. 정말 좋은 군인들이요. 이젠 마음이 놓입니다.

나는 이런 병사들과 함께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합니다.》

유진성은 얼굴을 들수 없었다. 들면 뜨거운 눈물이 샘줄기처럼 쏟아질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눈길을 들었다. 멀리 연보라빛 산악우로 눈부신 태양이 솟아오르고있었다.

대지는 새날의 숨결로 가볍게 술렁거리고 눈가루들이 창공에서 은빛으로 빛난다.

겨울새들이 눈부신 채광속에 나래를 퍼덕이고 하늘은 파랗게 틔여간다.

좋은 아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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