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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총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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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11-16 07:43 조회6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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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향도》

장 편 소 설

총대

박 윤

( 제 1 회 )

제 1 장

1

유진성장령은 요사이 자기가 정신적으로 일정하게 피로해졌다는것을 느끼고있었다. 최근에 와서야 자기 사업에 빈 구석이 많이 존재한다는것을 깨달았기때문인지도 모른다.

최고사령부 작전지휘성원으로서 그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군령도를 충실하게 보좌하는것이 자기 사업의 생명선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와 뒤를 돌아보니 자기는 최고사령관동지의 간고한 전선시찰을 수행하면서 그이의 가르치심을 받는데 습관되여 감탄하고 만세를 부르고 눈앞에 제기된 과업만을 수행하느라 동분서주했을뿐이다.

유진성장령은 창가에 멈춰선채 그냥 사색을 이어갔다.

요즘 인민군대의 전반사업은 잘 되여가고있다. 군인들의 정치사상적각오, 전투훈련, 물질문화생활에서는 비약적인 전진이 이룩되고있다. 그러나 눈을 크게 뜨고 투시해보면 스쳐버릴수 없는 편향들과 결함들이 일부 나타나고있다. 동부지구군부대들의 훈련에서 형식주의가 나타나는가 하면 전선중부에서는 눈사태와 연유부족으로 전진공급체계에 마비가 오고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것인가? 우리 일군들의 근시안적인, 일면적인 안목과 사고… 우리 당의 군령도를 실현하려는 의지와 혁명적전개력, 열정이 부족한탓이 아니겠는가.

올해는 공화국창건 50돐을 맞는 뜻깊은 해이다.

《고난의 행군》길을 과감히 헤쳐온 조선사람들이 이제는 락원의 언덕에서 비쳐오는 눈부신 채광을 바라보며 마지막강행군길을 다그치고있다. 하지만 사회주의붉은기를 내리우게 하려는 제국주의련합세력의 정치군사적도발과 경제적봉쇄책동도 최절정으로 치달아오르고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는 더욱 엄혹하고 준엄한 해로 될것이다. 벌써 그 징조들이 나타나고있다. 적들의 군사적움직임도 주목되지만 그보다 더 위험성을 내포하고있는것은 대폭 올라간 미제의 올해 군사비예산이며 21세기를 지향하는 최신형무기개발이다. 혁명군대의 정치도덕적우월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에도 불구하고 유진성은 생각이 깊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지금은 적들을 주눅들게 만들었던 90년대 초의 핵대결때와도 또 다르다.

현대콤퓨터가 발전하고 스텔스기술이 개발된 현실은 군사과학전반의 비상한 발전을 가져왔다. 따라서 군대의 정신력도 최첨단 군사과학기술로 안받침될 때 보다 완벽한 위력으로 될것이였다.

이미 개발된 우리 군대의 현대적인 무기들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상대적인 의미와 효과가 떨어질수 있다. 우리에게 전쟁을 강요해오는 자들에 대한 그 보복타격의 속도, 그자들이 숨어있을 행성의 임의의 지점을 타격할 때의 정확성 등 혁명무력앞에는 해결을 기다리는 문제들이 허다했다.

유명무실해진 정전협정을 대신할수 있는 새로운 평화보장체계수립을 위해 이미 준비하고있는 조미군부회담도 미제의 일방적인 군사정치적전제조건과 보수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대조선정책으로 하여 그냥 공회전만 하고있다.

문득 얼마전 정찰부문에서 제기된 심상치 않은 통보가 뇌리를 쳤다.

페르샤만전쟁이후 승리감에 도취되였던 미제호전집단이 서둘러 작성하였다가 거덜이 났던 우리를 겨냥한 《5027작전계획》이 요즘 또다시 보수강경파의 두뇌진속에서 활발히 론의되고있으며 그것이 클린톤대통령의 심중한 지시밑에 비밀리에 그 규모와 내용을 보충하고있다는 정보였다.

이른바 《포용정책》을 떠들던 클린톤의 책상우에 이 악명높은 전쟁문서가 새롭게 작성되여 놓여있다는것은 공화국에 대한 엄중한 도전이 아닐수 없다. 견결한 민주주의자로 자처하는 클린톤이 전쟁매파들의 장단에 춤을 추기 시작했다는것은 그의 이중적인 가면이 벗겨졌다는것을 말하는 동시에 공화당의 압력이 극한점에 달했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다.

《5027작전계획》의 재출현! 그것은 엄연히 우리 공화국에 대한 엄중한 위협이다. 전쟁의지를 적라라하게 배태한, 우리 혁명에 대한 명백한 도발이다.

군사가로서의 유진성에게는 이해 1998년이 미제의 새 작전계획음모로 하여 전쟁의 불구름을 현실적으로 내포한 결전전야로 되였다는것이 조그마한 의심도 없이 느껴지였다.

유진성은 아래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렇다. 전쟁의 위험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있다.

이 준엄한 정세하에서 인민군대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미제는 민족의 대국상이후 전례없는 《고난의 행군》을 겪어온 우리 혁명의 시련을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있다.

인민군대의 싸움준비, 이것은 현 단계에 있어서 순간도 뒤로 미룰수 없는 급선무이며 우리 군지휘성원들이 사생결단의 정신으로 해결해야 할 혁명임무이다.

싸움준비에서도 기본은 인민군대의 타격력을 백배로 높일수 있는 현대적인 무장장비개발과 그 실전배비이다.

금번 국방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도 언급했지만 빨리 현대적인 무기개발정형을 경애하는최고사령관동지께 보고드리고 가르치심을 받아야 한다. 올해중으로 반드시 그 시험사격을 해야 한다.

최고사령관동지의 군령도를 잘 보장하여 우리의 사회주의를 지키고 지금 조성된 우리 혁명의 난국을 주동적으로 헤쳐나가자면 우리 일군들이 창조적인 사색과 실천으로 인민군대강화에서 실적을 내야 한다. 이것이 문제다.)

얼어붙은 겨울의 대지, 창밖에서는 바람이 불어치고있었다.

바짝 마른 수삼나무가지들이 신음소리를 내지르고 앞마당에 서있는 진록색 군용차들은 휩쓸어온 눈가루를 뒤집어써서 형체를 가늠할수 없다.

유진성대장은 짧은 숨을 내쉬며 사무실창가에서 물러나 작전대앞으로 돌아왔다.

전화종소리가 고요한 방안을 울렸다.

유진성은 주런히 놓인 전화기중에서 송수화기 하나를 집어들었다.

전화는 최남호부국장에게서 온것이였다. 일요일인데도 무엇인가 걱정이 되여 아직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있는 모양이다.

《왜 일요일인데 아직까지 앉아있소?》

《일이 밀렸습니다. 우리 국에서 제출한 훈련계획때문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유진성은 무뚝뚝하고 다소 갈린 최남호의 목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는 바람에 송수화기를 귀에서 조금 뗐다.

《사람두 참, 무슨 목소리가 그렇소?… 내 동무네 훈련계획을 검토했소. 래일아침 보내지. 계획대로 집행하시오.》

《알았습니다. 대장동지.》

최남호의 음성은 대번에 푹 가라앉았다.

유진성은 연필을 집어들었다.

《그래, 집사람은 몸이 좀 어떤가? 전번에 료양을 갔댔다면서?》

《료양이 다 뭡니까. 사실은 핑게 대고 아들녀석을 찾아떠났던것 같은데…》

《왜 아들한테 무슨 일이 있었소?》

《일이야 무슨… 대학으로 가게 된걸 제가 전연으로 떠밀어보냈으니…》

최남호의 목소리는 어쩐지 물기 같은것에 젖어있다.

《어머니가 속을 태우는 모양이군. 부대소속은 알고있을테지?》

유진성은 최남호의 올곧은 성격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그래도 묻지 않을수 없었다.

예상외로 대답은 수월히 나왔다.

《이동하기전 부대는 알고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두 참, 전화 몇통이면 알아볼걸 가지고… 하긴 그런 개인용무로 전화질할 동무가 아니지만… 허허, 어쨌든 몸이 불편한 녀성이니 동무가 잘 돌봐주어야지.》

유진성은 체소하고 말이 적은 그 녀인을 상기해보았다. 늘 보아야 병색이 짙어보이는 얼굴이다. 장대하고 완강한 사나이인 최남호곁에 세워보면 마치 그의 그림자처럼 그 존재의 의미가 희미해지는 녀인이였다.

최남호의 가벼운 한숨소리가 들린다.

《관심해주어 고맙습니다. 땜질한 독이 오래 간다고 그럭저럭 견디여냅니다.》

유진성은 전화를 끊은후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최남호는 유진성이 전연부대에서 부대장을 할 때 함께 싸운 전우이다. 격동적인 70년대에 그들은 적들의 끊임없는 도발속에서 생사운명을 같이 했었다. 그후 최남호를 군사대학으로 떠나보냈다.

유진성은 탁상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벌써 오후 다섯시가 가까와오고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움쭉 몸을 일으켰다. 어쩐지 몸은 탄력이 풀리고 천근으로 무겁다. 그는 외투가 걸려있는 벽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모자를 벗기려다가 문득 벽거울속에 비낀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혈색이 좋던 둥그스름한 얼굴이 창백해보이고 웃눈까풀이 얇은 눈에 통채로 피로가 실렸다. 인중이 짧고 웃입술이 얇은 그의 얼굴은 미묘한 조화가 이루어져 침착하고 유순해보였으나 그 눈귀가 약간 내리처진 예리한 눈매로 하여 다소 날카로운 인상을 띤다.

유진성은 손으로 턱을 쓰다듬다가 허구픈 미소를 지은채 돌아서고말았다.

승용차는 눈깔린 거리를 조심스럽게 달려 금릉동굴을 벗어났다. 눈가루가 시창앞을 사납게 때리며 뒤로 사라진다.

백양나무가 우거진 사택지구에 들어서자 유진성은 현관앞에 오구구 모여 왁작 떠드는 아낙네들을 띄여보았다.

유진성은 대뜸 낯을 찌프렸다.

(아낙네들이란 참, 그저 모여 수선을 떨거든. 또 무슨 입방아를 찧을 일이 생긴게로군…)

승용차가 마당에 들어서자 장령부인들은 마치 독수리에 놀란 뭇새들마냥 여기저기로 사라져버리고 두툼한 보라색 솜옷을 입은 녀인 하나만이 오똑 남아있다.

유진성은 차가 멎자 밖으로 나서며 현관쪽을 올려다보았다.

유진성의 안해 한은경이다. 서둘러 계단을 내려와 남편의 가방을 받아들었다.

《일찌기 오셨군요.》

《그건 뭐요. 할 일들이 없으면 저 길옆의 눈이라도 칠게지. 아낙네들이 모이면 남의 집 흉밖에 더 볼게 있겠소?》

유진성의 말에 한은경은 어처구니 없는듯 미소를 지었다.

《온 참, 당신이 늘 그렇게 시퍼래서 무섭게구니 동네사람들이 뭐라는지 알아요? 다른 아버지들은 만나면 롱담도 걸고 인사도 잘 받아준다는데… 어쩌다 당신만 보면 저렇게 다들 도망치는걸 보세요.》

《내가 뭘 어쩌기나 했소? 노루 제방귀에 놀라는격이지.》

유진성은 안해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몸이 무겁다. 정말 피로했는가? 아니면 운동부족인가?

《호호호, 성미두 참, 오늘은 일요일이여서 다음주에 안변청년발전소건설장을 도와줄 토론들을 하댔수다.》

《허허허, 그래? 그럼 내가 인민반모임을 훼방했는가?》

유진성은 멋적은듯 허거프게 웃으며 자기집 문앞에 다가섰다.

《참, 신철이가 왔어요.》

《뭐, 신철이가? 그러지 않아도 그 녀석을 한번 만나려던참인데…》

유진성의 얼굴에는 반가운 표정이 살아났다.

《점심전에 왔어요. 여보, 신철조카한테 애인이 생긴 모양이예요. 어쩐지 다르다니까요. 음악을 틀어놓질 않나, 실없는 소리도 내뱉지 않나. 더 의젓해진것 같기두 하구…》

한은경은 또 사설을 늘어놓을 차비다.

유진성은 방문을 열고 외투를 벗으며 안해를 돌아보았다.

《쯧쯧, 괜한 소리, 그 애가 나이 몇이요? 철이 들어두 열번은 더 들었지. 홀로 사는 그 애 어머니를 생각하면 제길…》

유진성은 한순간 결혼문제와 관련하여 박신철이 보여준 온곱지 못한 행동들이 떠올라 은근히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사실 박신철은 그의 하나밖에 없는 조카다.

백금산의 오랜 광부인 박신철의 아버지 박진호는 신철이가 군대에 입대한 다음해 광산에 큰물이 났을 때 광산설비들을 구출하다가 희생되였다. 그때부터 박신철의 어머니는 군대에 나간 아들을 생각하며 백금산광산양복부 재단사로 일하고있다. 이젠 환갑이 다 되였으나 외아들인 박신철이가 마련을 보지 않아 마음을 놓지 못하고있다. 물론 광산당조직에서 생활을 잘 돌봐주고있으나 늘그막에 손자도 없이 외롭게 지내는 누이의 그 모습이 늘 가슴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 유진성이였다.

그래서 이태전 박신철이 군사대학을 졸업했을 때 그간 한은경이 점찍어두었던 맞춤한 처녀군관을 그에게 소개했었다.

서른고개에 올라선 그에게 빨리 가정을 무어주어 홀어머니를 모신다면 한결 마음이 개운할것 같아서였다.

집이 해주인 그 처녀의 사진을 한은경이 힘들게 줄을 놓아 얻어왔다. 처녀는 척 보기에도 리지적이고 몸도 실하여 은연중 유진성내외를 기쁘게 만들었다.

백금산의 누이에게도 편지를 띄웠더니 예상대로 감격해하는 답장이 일사천리로 날아왔다.

처녀군관은 성실하게 자기 초소를 지키고있는 녀성군의였다.

군사대학을 졸업하고 배치를 기다리며 군관초대소에 있던 박신철은 어느날 집에 들렸다가 한은경이 내미는 사진을 흥심없이 얼핏 들여다보더니 옆으로 밀어놓았다.

《녀자가 어때? 곱지?》

한은경이 무릎걸음으로 바투 다가앉으며 얼굴의 주름살을 활짝 폈다.

《쑬쑬하구만요.》

박신철은 쏘파에 앉아 텔레비죤을 보고있는 유진성의 눈치를 흘끔 살피며 마지 못해 대꾸했다.

《처녀 이모의 말을 들으니 머리가 그렇게 좋다나. 중학교땐 뭐 수학경연에 참가했다던가. 하여튼…》

《그래 신철아, 이 처녀와 약속해놓자. 나두 사진을 보니 기동훈련때 현지에 나온 그를 본 일이 있는것 같구나. 아마 전연구분대의 군의일게다. 빨리 늙으신 어머님도 모셔와야지.》

유진성은 옆탁에서 물고뿌를 집어들며 박신철의 얼굴표정을 살폈다.

박신철은 한참 침묵을 지키더니 번쩍 눈길을 들었다.

《외삼촌, 전 아직… 장가들 생각이 없어요.》

《아니다. 이젠 너도 가정을 이룰 때가 됐다. 그래야 혁명과업도 더 잘 수행할수 있다.》

《저야 금방 군사대학을 졸업했는데… 삼촌, 전… 조국이 통일되기전엔 그 문젤 생각하고싶지 않아요!》

박신철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여가지고 고집을 부렸다.

《뭘?!》

유진성은 어처구니가 없어 물고뿌를 다시 내려놓은채 조카의 찌뿌둥한 얼굴을 쏘아보았다.…

유진성은 그때의 불쾌했던 감정이 다시 살아올라 쓰거운 미소를 지은채 응접실을 지나 서재로 들어섰다. 록음기앞에 앉아 음악을 듣고있던 박신철이 벌떡 일어섰다.

《왔느냐? 그새 왜 꿈쩍하지 않았니.》

유진성은 다소 덤덤한 표정으로 조카의 인사를 받고나서 의자에 앉았다.

《전연구분대들에 나가있었어요. 며칠후에 전선동부지역으로 또 출장을 떠나는데 아무래도 외삼촌과 토의할 문제가 있어서…》

박신철은 가볍게 얼굴을 붉히더니 돌아서서 록음기의 스위치를 껐다.

《음, 앉거라. 나도 최남호부국장에게서 들었다. 이번 훈련이 아주 중요해. 경애하는최고사령관동지께서 관심하시는 훈련이라는걸 잊지 말어라. 그래 토의할 문제란 뭐냐?》

유진성은 시치미를 떼며 팔짱을 끼였다.

박신철은 눈길을 내리깔았다.

《저… 사실은 저의 결혼문제를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음, 그러니 녀자를 선택했단 말이지?》

유진성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며 몸을 편안히 뒤로 젖혔다.

《예, 지난해부터 알게 된 동무인데…》

《나이는 몇이구 뭘하는 처녀지?》

유진성의 부드러운 물음에 박신철은 긴장을 풀며 눈길을 들었다.

《스물여섯인데 중앙예술단체에서 무용을 합니다.》

《무용배우라… 그건 정말 뜻밖인걸?… 허, 앞으로는 현지에 나가 한개 부대도 지휘해야 할 네게 과연 어울릴가?…》

유진성은 자리에서 움쭉 일어나 벽에 주런이 놓인 책장앞을 거닐기 시작했다. 오래동안 고르고 기다리다가 결심한 조카의 선택이 어쩐지 마음에 싸지 않았다. 그는 아무말없이 돌아서서 박신철을 쏘아보았다.

(이 녀석이 어깨에 무거운 별을 달아가지고도 허파에 바람이 찬게 아니야? 바다물에 쩌들은 해군정찰병이 아련한 무용배우라?…

하긴 중앙예술단체 배우면 고르고 또 골랐을텐데 어련할려구. 아버지를 닮아 이목구비가 그쯘한게 저 녀석이 어디 내놔도 빠질거야 없지만. 허 참, 해군정찰로 나돌아다니더니 정말 밑으로 호박씨를 까는 녀석이로군.

하지만 총을 잡은 군인에게 예술인이라…)

유진성은 자기가 편견을 가지고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또 이 결혼을 구태여 반대하고싶은 생각도 없었다. 외삼촌이 반대한다고 물러설 조카도 아니였다. 어떤 일에서나 한번 결심하기가 힘들지 일단 마음먹으면 물러서지 않는것이 박씨가문의 선천적인 기질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녀석의 인생에 대한 관점만은 바로 잡아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진성은 비로소 자기가 아버지를 대신하는 외삼촌으로서만이 아니라 인생의 먼 길을 가야 할 후대앞에서 혁명의 2세로서의 원칙적인 립장을 지킬 때가 되였다는것을 깨달았다.

방안은 그리 덥지 않았으나 박신철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였다. 이마가 넓고 눈이 약간 세모진 그의 기름한 얼굴은 퍽 나이 들어보이기도 했다.

《난 지금 이태전 이 자리에서 네가 한 말이 기억나는구나! 너도 잊지 않았겠지?》

《?!…》

박신철의 얼굴이 컴컴하게 굳어졌다.

《사나이라면 또 총멘 군인이라면 일구이언이 없어야지. 허, 아직은 조국이 통일된것 같지 않은데?… 넌 우리가 그때 너에게 비쳤던 녀성군의가 생각날테지?》

《?!…》

유진성은 불쑥 이 말을 내뱉고보니 아까부터 은근히 마음속에 응어리져 개운치 않던것이 무엇이였는지 비로소 깨도가 되는듯싶었다.

박신철은 점직해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유진성은 엄한 표정을 헝클지 않은채 박신철을 바라보았다.

《물론 아직 너희들의 상세한 내막은 모르겠다만 어쨌든 어느 측면으로 보든지 네 태도가 틀렸다!…

출장을 갔다오너라. 우선 첫째로는 사업이다. 후에 다시 토론해보자.》

박신철이 돌아간후 유진성은 서재에 앉아 오래동안 사색에 잠겼다.

저녁이 되자 창밖에서 바람이 불어쳤다.

도무지 안식을 모르는 겨울바람이다. 그 바람도 제스스로는 아무런 소리를 내지 못한다. 귀기울이면 그것은 강변에 키높이 자란 희끗희끗한 백양나무의 아지들이 서로 부딪쳐 설레이는 소리다. 그 숲의 설레임소리가 때로는 장엄하게, 때로는 청승맞게 멀어졌다 가까와졌다 하면서 가뜩이나 무거운 유진성의 가슴을 번거롭게 만든다.

그러자 기다렸다는듯이 많은 근심거리들이 마치 부산스러운 저 바람처럼 그의 마음속으로 거침없이 흘러든다.

조카의 결혼문제는 한순간 그의 심중에서 사라져버렸다. 래일부터 당장 실천해야 할 여러가지 과업들이 그의 눈앞에 펼쳐지는것이다. 또다시 준엄한 정세와 함께 현대적인 무기개발과 관련한 복잡한 문제들이 그를 괴롭혔다.

밤중에 최고사령부 련락군관이 찾아왔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일동지께서 작전지휘성원들을 부르신것이였다.

(그러니 장군님께서, 장군님께서 북방의 자강땅에서 무사히 돌아오셨구나!)

유진성의 가슴은 류다른 기쁨으로 후두둑 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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